장하성 교수의 생각은 이렇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데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한 가지는 자본주의 자체에 결함이 있다는 것. 다른 한 가지는 자본주의를 우리가 잘못 운용하고 있다는 것."
장하성 교수는 후자를 따르고 자본주의를 고쳐 쓰자고 한다. 그래서 사내유보금 과세와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 몇 가지 정책을 대안으로 내세운다. 간단히 말해 자본주의는 그대로 두고 정치로 그것을 견제하자는 얘기다.
이것은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그건 대증요법이다. 대증요법은 현재 증상을 더 복잡하게 꼬아갈 뿐이다.
실업, 경제위기, 부의 불평등의 원인은 자본주의 그 자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를 대체할 대안이 필요하다.
장하성 교수는, 공산주의와 사민주의는 대안이 아니라고 한다. 동의한다.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그 대안이 실비오 게젤이 제시한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다.
부의 불평등은 왜 생기는가? 토지제도와 화폐제도의 결함 때문이다. 땅사유권이 낳는 지대와 돈이 낳는 이자가 노동자의 노동대가를 털어가기 때문이다. 합법적인 도둑질이다.
올바른 분배란 지대와 이자를 제거해야 하며 그 방법은 토지개혁과 화폐개혁이다. 게젤은 이 두 가지 개혁에 '공짜땅', '공짜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모두가 지대와 이자라는 요금을 물지 않고 땅과 돈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다.
장하성 교수의 방법에서는 지대와 이자를 제거할 어떤 수단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사내유보금에 과세를 하면 기업들이 가진 돈이 노동자들한테 흘러나올 거라고 하는데, 분명히 쌓여있는 돈은 흘러나오겠으나 기업은 그런 과세를 하지 않는 국가로 갈아탈 수도 있다. 이 경우 상당한 부가 나라 밖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기업이 해외로 옮기면 그 기업이 만들어내던 일자리가 무너진다. 하지만 게젤의 방법에서는 이런 염려가 없다. 그의 방법에서는 모든 돈이, 쌓여있으면 벌금을 물기 때문에 전부 순환한다. 그러한 벌금을 피해서 기업이 자기가 가진 원화(공짜돈)를 외화로 바꿔서 빠져나가려고 해도 그 원화를 받는 외국인은 그 돈을 쌓아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한국제품을 사려고 자기 돈을 그 돈과 교환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경제에는 타격이 없다. 그리고 그 돈은 원래대로 순환하면서 일자리를 만들기 때문에 고용에도 문제가 없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은 소수가 쥔 경제권력을 분산시키므로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돈을 쌓아둘 수 있는 힘이 약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돈을 쌓아둘까 흐르게 할까 1명에게 결정하도록 하는 것보다 수백만 명에게 결정하도록 하면 그 돈은 흐를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 수백만 명도 교환과정에서 기본이자를 얻지 않는 한 돈을 쌓아둘 것이다. 기본이자를 제거하지 않으면 경제위기가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변한 것은 없다.
게젤이 다루는 것은 토지제도와 화폐제도다. 장하성 교수가 다루는 것은 그 제도에 종속되어 있는 하위요소다. 조세제도, 입법... 이런 것들로 토지제도와 화폐제도의 결함을 보상할 수는 없다. 장하성 교수의 방법으로 주기적인 경제위기와 실업을 막을 수는 없다. 이게 진실이다.
경제위기는 화장실 변기 물 내리는 것과 비슷하다. 변기 물이 점점 차오르듯이 사회가 생산한 부가 점점 차오른다. 하지만 어느 수위에 이르면 더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변기 안에 있는 부력장치가 함께 떠올라서 어느 지점에서 물이 들어오는 통로를 잠가버리듯이 돈이 낳는 기본이자basic interest가 부의 생산을 멈춰버리기 때문이다. 기본이자는 돈이, 그 액면가가 불변하여 저축매개물로서 다른 재화보다 선호되기 때문에 요구할 수 있는 조공이다. 재화를 가진 쪽이 이 조공을 내지 못하면 돈은 재화와 교환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들의 생산이 실물자본을 늘릴수록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서 그것이 낳는 이윤은 줄어들고 그러다보면 그 조공을 충당할 수 없으며 재화는 돈과 교환되지 않고 경제는 멈춘다. 분업이 마비되고 더이상의 부를 생산할 수 없다. 그 상태에서는 물을 한 번 내려줘야 다시 물이 차오른다. 경제위기가 한 번 터져줘야 다시 시스템이 돌아간다는 얘기다. 경제위기는 사회가 생산할 수 있는 부의 공급을 수요 이하로 유지한다. 그래서 돈 그리고 돈으로부터 태어난 모든 실물자본이 계속 이자를 낳게 한다. 이것이야말로 빈곤이 유지되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따라서 돈 자체를 개혁하지 않고서는 해결방법이 없다.
우리가 경제문제를 풀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은 토지제도 화폐제도를 개혁하는 것 뿐이다. 나머지는 다 헛짓이다. 진부한 방법이 현실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없는지 시도하기 전에 살펴봐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를 그대로 두고 문제를 풀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자본주의 그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장하성 교수가 선의를 갖고 그의 책을 썼음을 믿는다. 다만 그의 제안은 해법이 될 수 없다. 난 그가 기존 경제학의 진부한 틀을 벗어나 한국경제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