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22일, 금속노조 대의원대회 참관을 하고 와서 뉴스를 유심히 살폈다. 또 FTA 관련한 뉴스도 살폈다. 관심가는 뉴스만 살피느라고 다른 뉴스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런 사이 며칠이 흘렀다. 내가 흘려보낸 뉴스들 중에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과 관련한 뉴스들이 있었고 이제야 그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1.
닭과 오리뿐만 아니라 인간에게까지 영향을 준다는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가 3년 만에 한국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언론을 통해 알려진지 단 이틀만인 지난 11월 25일, 전라북도와 익산시는 반경 500미터 가축을 모두 매몰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오늘까지 그 며칠 동안 방역당국뿐만 아니라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매우 신속하고도 단호한 조치들을 취했다. 그러나 그 조치들의 내용이란 것은 별 거 없다. 격리, 그리고 몰살. 전염병에 대한 인간들이 취하는 전형적인 고래(古來)의 방식 그대로다.
닭의 입장에서, 아니 인간 아닌 동물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러한 사태는 종의 위기라 할 만하다. 유태인 600만 명을 학살했다는 아우슈비츠가 이에 비할 수 있을까? 전라북도와 익산시가 땅에 생매장시키겠다고 한 건 비단 닭들뿐만 아니라 개, 돼지, 소 등 모든 가축이다. 개, 돼지, 소, 그리고 그 닭들이 조류 인플루엔자에 감염되었는지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다. 그 숫자는 닭과 오리의 경우에는 질병 발생 농가의 반경 500미터 이내의 23만 6천 마리다. 익산시와 연관지어서 다시 요약하자. 익산시의 인구는 32만 명이다. 이번에 죽는 닭과 오리는 23만 마리다.
또 상황이 악화될 경우 반경 3Km 이내 37만 마리로 확대하고 더 악화될 경우 반경 10Km 이내 4백 44만 마리로 확대하며 그럴 경우 모두 합하면 총 505만 마리가 대상이 된다고 한다.
제노사이드. 그네의 입장에선 분명 제노사이드다.
2.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자. 서울 아무구 아무동에 사는 아무개가 아무병에 걸렸는데 질병이 퍼져나갈까봐 걱정하여 해당 구민 전체를 땅에 파묻는다고 치자. 그러자 그 해당구민을 제외한 전 국민이 그것을 지지한다고 치자. 웃기지 않은가? 아프면 치료를 할 일이다. 해당구민 전원을 공중의 안전을 위해서 몰살한다는 발상이라니.
물론 그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역사적으로 전염병에 대한 인간들의 공포는 마을, 혹은 부락 단위의 학살도 불사했었다.) 닭보다 인간의 존엄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존엄성은 화폐로 환산되는 존엄성이다.
3.
이보다 더욱 끔찍한 수치들이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닭 가공업체는 하림, 마니커, 체리부로, 동우, 이 4개 사로서 하루 판매량은(즉, 하루에 죽어서 팔리는 닭의 숫자는) 60만 마리이다. 물론 이는 한국의 닭 소비량이 아니다. 수입 닭고기의 물량은 전체의 25%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계육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하루 닭 소비량은 170만 마리에 이른다고 한다.
이 닭들은 모두 육계용으로 키워진 닭들이다. 이 닭들은 알에서 깨어난 후 평균 2개월 안팎을 살다가 인간의 입 속에 들어가기 위해 도축된다. 또 어떤 닭들은 일평생 알을 낳다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면 도살되어 팔려나간다. 이른바 ‘폐계’라 불리어지는 닭들이 그것이다. 폐계는 평균 1년 반에서 2년 정도의 나이를 가졌다. 그래서 ‘노계’라 불리기도 한다. 이 닭들은 마리당 1000원에 팔려 시장통에서 2000원에 팔려나간다. (육계용 닭들은 2004년 기준으로 1Kg당 1000원꼴이다. 보통 대계가 3Kg 정도 하니 산지에서의 원가는 마리당 3000원인 셈이다.) 육계용 닭이든 폐계든 노계든 죽을 때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바깥 나들이를 한다. 그리고 거대한 도계장에서 ‘닭고기’로 생산된다.
닭들의 매일매일은 이미 제노사이드의 시간이었다.
4.
인간과 조류 인플루엔자와의 관련성은 단 한 측면에서만 다루어진다. 즉, 인간에게 옮느냐, 안 옮느냐 하는 점에서만!
한명숙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TV 앞에서 삼계탕을 먹으면서 “AI는 섭씨 75도 이상에서 5분만 있어도 죽기 때문에 익혀 드시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공언한다. 인간에게 별 영향을 못 미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왜 23만 마리씩 죽여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물론 그러한 행동은 죽이지 않으면 AI의 확산을 막을 수 없다는 ‘무능함’의 솔직한 표현이기도 하다.
내가 문외한이기 때문에 잘 모르기는 하지만 1930년대 사라졌던 조류 인플루엔자가 다시금 강력하게 등장한 이유가 인간과 무관하지는 않을 듯하다. 바이러스가 진화를 하는데 인간의 책임이 없을 수 없다. 조류 스스로 바이러스를 이겨낼 능력을 갖지 못할 정도로 각종 항생제 등을 투여하거나 인간이 야들야들한 육질을 즐기기 위해서 생명 주기를 단축시킨 것이 과연 이 강력한 바이러스의 재등장과 상관이 없을 것인가? 이것이 인간과 조류 인플루엔자와의 진정한 관련성 아닌가?
5.
인간은, 인간의 시각에서 동물을 본다. 한미FTA 반대 투쟁 현장에서 미국에서 들여온 소들을 ‘美친소’로 지칭하는 퍼포먼스를 보았다. 그것은 미국의 농민, 혹은 다른 나라 사람들의 시선이 아닌, 한국의 운동진영의 시선일 뿐이라는 것이 분명하고, 또한 소의 시선도 아님 역시 분명하다. 미국에서 들여온 그 소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더구나 광우병에 걸렸는지 안 걸렸는지조차 불분명한 마당에) ‘美친소’로 지칭하는 건 넌센스다.
더구나 그 소가 광우병에 걸렸다고 치자. 국경을 막고 통관을 막아서 ‘우리만’ 안 먹으면 된다는 것인가? 진보진영의 사고는 국경 안, 섬나라 대한민국의 경계를 넘지 못하는 것인가?
사회적 소수자들을 ‘병’으로 분류하여 배제하고 추방하는 부르주아 근대의 메커니즘이 ‘美친소’와 ‘AI 조류’를 다루는 작금의 방식과 얼마나, 어떻게 다른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부르주아는 인간을 동물과 나누어 바라보지만, 자본주의는 인간과 동물을 단일한 기준으로 환산하여 보지 않는가? 그것은 '힘'이다. 동물이 '힘'으로 이용되던 시절의 관습은, '마력'이라는 단위에 잘 남아 있다. 이제 동물은 자본주의적 생산에 직접적으로 '힘'으로서 이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석유와 석탄 더 나아가 원자력이 대체하였다.) 그리고 이제 동물은 (애완용을 포함하여) 인간에게 '힘'을 주는 원천으로서 팔린다. 체력, 감성력, 지력 등등의 원천으로서의 동물들. 자본에게 그 동물들은 (인간을 포함하여) 그 어떤 독특한 존재로 취급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언제든지 호환, 대체, 폐기 가능한 존재들일 뿐이다. 대규모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이 폐계, 노계, 조류독감에 걸렸다고 의심되어 살처분되는 닭들과 무엇이 다른지. 우리와 동물은 인체의 감염성 따위의 관계가 아니라, 자본의 지배 하에 하나의 운명 고리 속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닌지.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의 아우슈비츠 안에 다만 오래 생존하기 위해 서로 투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