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2005/11/29 00:27 Tags »

오리

 

이윤학

 

오리가 쑤시고 다니는 호수를 보고 있었지

오리는 뭉툭한 부리로 호수를 쑤시고 있었지

호수의 몸속 건더기를 집어삼키고 있었지

나는 당신 마음을 쑤시고 있었지

나는 당신 마음 위에 떠 있었지

꼬리를 흔들며 갈퀴손으로

당신 마음을 긁어내고 있었지

당신 마음이 너무 깊고 넓게 퍼져

나는 가보지 않은 데 더 많고

내 눈은 어두워 보지 못했지

나는 마음 밖으로 나와 볼일을 보고

꼬리를 흔들며 뒤뚱거리며

당신 마음 위에 뜨곤 했었지

나는 당신 마음 위에서 자지 못하고

수많은 갈대 사이에 있었지

갈대가 흔드는 칼을 보았지

칼이 꺾이는 걸 보았지

내 날개는

당신을 떠나는 데만 사용되었지

 

 

 

 

우스꽝스러울것만 같은 제목에(자꾸 '맨손으로 북경오릴 때려잡고...'가 생각나는 나 자신이 저주스러움) 대단히 슬퍼지는 시라, 마음이 동해 옮겨 적었다

(시집의 제목은, 그림자를 마신다, 이다 -> 이 또한 멋지구리하다)

김영하는, 이 시를 소개하면서 맨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이런 사랑 있다.

아, 우리 이제 그만 쑤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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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9 00:27 2005/11/29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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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andora 2005/11/29 00:3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김영하는... 참 잘 긁어줘요.

  2. 진보네 2005/11/30 18:3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이윤학이 이런 시도 쓰는군요.(잘모르지만..) 느낌이 뭔가 다르네요.^^; 그리고 덩야님이 말씀하신 음악올리는 팁은 버그를 이용한 것인데 보안문제로 언젠가 막힐지도 모른답니다. 지금은 게을러서 그냥 방치하고 있지만 ;;

  3. 나름 2005/12/02 21:3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부디 쭉 게을르세요 오호호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