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외인

2006/05/22 02:21 Tags »

결혼한지 2년이 가까와오는 22개월 연상의 친언니는 우리집에, 그러니까 친정에 매우 자주 오는 편이다. 일요일마다 차로 한시간 반쯤 달려와 어릴적부터 다니던 교회에 나가고 어느 땐 형부와 함께 아예 토요일날 와서 하룻밤 자는 적도 많다

 

나야 주말에 집에 잘 붙어있지 않으니 두어달에 한번이나 언니 내외 얼굴 보면 자주 보는 셈이지만 썩 반가울 일도 아니다 왜냐면,

 

동생들 물건을 가져간다
내가 책이나 씨디 가져가는 것에 워낙 민감하다보니 어느때는 밖에서 한참 바쁜데 전화를 걸어서 "이것 이것 가져가도 돼?"하고 묻는 적도 있지만 대체로 먼저 챙겨가고 나중에 말하거나 아예 말하지 않거나 한다
금새 눈치채지 못하니까 나는 한순간 이가 몇군데 빠진 책장을 한 10여 분 동안 노려보면서 저 자리에 무슨 책이 있었는지 골머리를 썩거나, 우연히 펼친 씨디케이스 안에 씨디가 없다던가 하면 그때서야 알아채고 투덜대고 그냥 마는 거다
옷도 가끔 가져가고 가방도 가져가고 동생 신발을 아예 신고 가기도 한다
결혼하기 전에도 자기것은 악착같이 챙기고 남의것은 제것처럼 썼으니 특별히 더 나빠진 것도 아니지만 사는 집이 달라지다 보니 역시 뭔가 새나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친정에 와서 빨래도 하고 샤워도 한다
물이 아까운게 아니라, 보통의 결혼한 여자들도 그런가? 때되면 이불을 바리바리 싣고 와서 울집 세탁기에다 돌린다 참 이상하다
"왜 이불빨래를 남의집에서 해?"하고 물으면 처음 대답은 "왜 '남의집'이야!"고 발끈하고 다음 대답은 "우리집은 좁아서 이불 널 데가 없어" 그런다
"우리집은 뭐 네 식구 빨래 널 곳 많은줄 아냐?" 그러면 또 땍땍땍땍 싸우게 되니까 그러다 만다
집에 들르면 꼭 샤워를 하는데 저으 집이 얼마나 추우면 그럴까 싶기도 하다가 "그럼 니는 우리집 올때만 샤워하냐? 일주일에 한번?" 그러면서 염장지르기도 한다

 

아직도 우리집 열쇠를 갖고 있다
"쟤 저것 좀 뺏으면 안돼?" 불쑥 현관문을 따고 들어올때마다 엄마에게 그러면 난리를 치신다 아무때나 올수있게 해야 된다고.
초인종을 누른 다음에 들어오던가 전화를 주고 들어오던가 하지, 부라자빤스 차림일때 형부랑 같이 들이닥치고 말야

 

한번 시집을 갔으면 출가외인이지~ 라서 그러는게 아니라, 엄마가 힘들어지는게 젤 큰 문제다. 물론 엄마는 전혀 아니라고 하겠지만.
시집간 딸년 반찬해다 바치랴, 이불 널어주고 개어 주랴, 일주일에 한번이나 와도 상전 모시듯 하고, 매일 전화 않는다고 섭섭해하는 엄마를 보는건 대량 난감이다


내가 "쟤 너무 자주 오는거야!"라구 아무리 말해도 엄마는, 집에 간다고 일찍 일어나서 나가면 "그래도 저으 집이 더 좋은가보다"면서 한숨을 쉬고 그런다
시집간 언니도 나름대로 결혼으로 인한 고생이 많겠지만, 그래서 이해해보려고도 하지만 그렇다고 친정 엄마의 뒷바라지가 늘었으면 늘었지 크게 줄은것 같지가 않다. 시집가도 그렇게 엄마의 노동을 뽑아먹고 살아야 하면, 시집간 의미가 없잖아

 

시집 가나 안가나 어차피 엄마는 사서 고생할 거, 난 결혼하지 말고 그냥 지금까지처럼 엄마한테 빌붙어 살것이냐 아님 진정한 출가외인이 뭔지 보여줄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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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2 02:21 2006/05/22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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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우리집 오지마ㅠㅠ

    Tracked from 2007/02/12 17:49  delete

    나름님의 [출가외인] 에 관련된 글. 보통 일요일날 낮 12시나 한시쯤까지 처 자고 있으면 교회갔다온 이들이 날 깨워서 함께 점심을 먹는다 지난주도 밥먹자는 소리에 부스스 깨어 거실로

  2. Subject:부모의 굴레, 자식의 예의

    Tracked from 2007/02/12 18:36  delete

    나름님의 [출가외인] 에 관련된 글. * 작년에 독립했으니까 결혼한 건 아니지만 나도 출가외인이다. 나는 엄마아빠 집에 2, 3주에 한 번 꼴로 가는데 (백수가 됐으니까 더 자주 갈 수도 있겠

  1. 쥬느 2006/05/22 02:2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난 인도가고싶다. 인도 꽃미남들과 춤추고 헤롱거리며

  2. 나름 2006/05/22 02:2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푸하하하하

  3. human 2006/05/22 05:5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너무 재밌네요.(죄송...) 그래도 언니가 제집 드나들듯이 오고갈때가 그래도 좋을때가 아닌가 싶어요. 전 언제인가부터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하니까 자주 가기도 쉽지가 않더이다. 얼라가 있을땐 그래도 자주 갔는데 그나마 아이를 멀리 지방으로 보내놓고 보니 더 뜸해지게 되는건 저도 어쩔수가 없더라구요.

  4. 나름 2006/05/23 12:5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human/그렇겠죠? 근데 잘해줄라다가도 가끔 울컥해서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