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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부인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자기부인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누가 나를 때려도 ‘앗!’ 하고 아프다는 소리조차 않을 수 있는 것. 그런 것이 자기 부인입니다.”
최근 월명동 수련원장님께서 말씀 하신 자기 부인에 대한 정의 입니다.
쉽게 말해 ‘자기부인’이라는 것은 ‘시체’나 다름없이, ‘죽었다.’하고 살라는 말씀인지도 모릅니다. 바로 금주 말씀 ‘자기와 싸워서 이김(克己)’이, 성경상의 표현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점에서 ‘자기부인’, ‘자기를 이김’은 사도바울의 ‘나는 매일 죽노라.’라는 말씀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자기를 ‘죽일’만큼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는 것은 내 안의 서로 ‘다른’ 두 생각(두 법)때문이라고 금주 본문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자기부인이란, 자기모순을 다 없애는 경지를 이름이니 결코 쉽지 않은 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틀림’과 ‘다름’의 혼란
자기부인이 이처럼 어려운 이유는 ‘다름’과 ‘틀림’의 구분을 확실하게 하지 못 하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에서 기인 한 것일 수 있습니다. 이 ‘다름’은 말 그대로 ‘다름(Different)’ 일 수도 있고 ‘틀림(Wrong)’일 수도 있습니다. ‘틀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는 ‘다른 것’이라면서 자기 부인을 하기는커녕, 주위 사람들에게 ‘다름’을 인정 않는다고, 다양성이 부족한 전 근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것이라며 비난하는 지경에 이른 사람들도 꽤 많아 보입니다. 반면에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고 막무가내로 우기고 덤벼드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우리 섭리역사는 ‘틀린 것’이 아니고 전혀 ‘다른’ 역사인데 ‘틀린 역사’라고 오해하면서 핍박을 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 되는 것입니다.
‘틀림’과 ‘다름’의 혼란, 어쩌면 사도 바울의 삶은 그것들과 싸우는 삶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틀린 역사로 오해 하고 그토록 기독교 박해에 앞장섰던 a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를 만난 후 기독교가 ‘틀린’ 역사가 아니고, 기존과 전혀 ‘다른’ 하늘의 새 역사임을 인식하고 ‘개종(改宗)’하는 큰 싸움을 했어야 했고, 그 후로도 수 없는 ‘틀린 것’이라는 오해와 핍박들 속에서 ‘다른 것’임을 증거하는, 때로는 ‘다름’을 주장하는 수많은 ‘틀림’들과의 싸움을 하는, 그야 말로 ‘선한 싸움’을 연속한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늘 그 ‘싸움’에서 오는 ‘고난’을 자랑하였고 오히려 그 고난을 ‘사도’ 된 징표로 역설하였습니다. 그에게 있어 외부적으로 혹은 내부적으로 끝없이 벌어지는 ‘다름’과 ‘틀림’ 사이에서의 힘겨운 싸움은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향한 경주였던 것이었습니다.
우리 싸움은 ‘금메달’을 놓고 싸우는 싸움
사실 ‘다름’인지 ‘틀림’인지를 제대로 판단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노라 하면서 ‘자기 생각대로 사는 자가 90%’ 라는 말씀까지 주셨습니다. 오직 성삼위만이 유일하게 ‘선’과 ‘악’간의 ‘심판 주’ 되심을 성경에 분명히 기록 해놓으신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하늘이 주신 시대 말씀이야말로 다른 것인지, 틀린 것인지를 구분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이 시대를 제대로 분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되는 것입니다.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일(平天下)도 내 한 몸 닦는 것(修身)에서 출발 되는 것이라 했습니다.
내 안의 ‘틀림’을 철저히 부인 하고 ‘자기(육에 속한 생각)’와 싸워 이겨 늘 ‘성자 주님(영에 속한, 성자의 생각)’을 차지하고 오직 성삼위에 속한 뜻만을 내 삶 속에서 실천 해 가는 귀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더 감사하며 우리의 싸움을 할 것은 우리 싸움은 ‘금메달’을 놓고 싸우는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콜로세움과 기독교인들에 대한 잔혹한 박해
로마의 유적 중에서 가장 거대한 것으로 손꼽히는 콜로세움(Colosseum)은 로마 문명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건축 기술과 최악의 도덕성을 동시에 상징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를 건축한 황제의 이름을 따 플라비안(Flavian) 원형 경기장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콜로세움은 약 5만여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로마의 황제들은 콜로세움을 사자, 호랑이, 코끼리 등 야생동물과 사람간의 대결 등을 통해 기독교 박해의 장소로 이용하였다. 수없이 많은 기독교인들은 원형 경기장에서 검투사들에 의해 난도질되어 죽음을 맞이하거나 산 채로 굶주린 동물들의 먹이가 되어야만 했다.
당시 가장 최고의 기술로 지어진 콜로세움에서 벌어진 기독교인들에 대한 잔혹한 박해가 로마를 멸망으로 이끈 영적인 상징이었다면 이를 주도했던 로마의 황제들이 가진 육적인 탐욕은 당시 가장 세련된 구조를 뽐내었던 로마의 경제를 좀 먹고 있었다.
로마 화폐 사용과 황제와 그의 측근들이 갖는 탐욕
참고로 로마는 화폐의 사용을 장려하며 새로운 재화에 관련된 모든 사항을 법률로 제정하는 등 시장과 화폐를 기본으로 방대한 지역을 운영하였으며 당시의 문명들 중에서 가장 세련된 형태의 경제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지중해 전체와 그 주변의 섬들 전체가 로마 황제의 단일한 정치 제도 아래에 통합되었으며 그러한 통합이 가져다주는 안전성은 교역을 더욱 활발하게 하였고 이러한 상황은 상품과 측량의 표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로마의 황제들은 불필요한 정복 전쟁과 건축, 개인적 사치와 즐거움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낭비하였다. 행정과 군대에 지급되어야 할 금액이 점점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황제와 그의 측근들이 갖는 탐욕은 그칠 줄을 몰랐다. 결국 로마의 황제들은 새로운 재원의 개발을 위해 인두세(poll tax)와 토지세 등 세금을 늘려야만 했다.
이러다 보니 수많은 로마 시민들은 자신이 벌어들인 소득보다 납부해야 할 세금이 더 많아지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으며, 점차 시민들은 가축과 토지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이들과 자기 자신을 팔아 노예로 전락해 나갔다.
4세기 말 로마의 군인이자 철학자였던 암미아누스 마르셀리누스(Ammianus Marcellinus)는 로마의 이러한 상황을 가리키며 로마 제국은 이미 절정기를 넘겼으며 세금 제도와 관료제에 의해 몰락하고 있다고 탄식했다.
결국 농민들은 세금을 피할 방법을 찾아 자신이 사용할 물건을 스스로 생산하게 되었고 476년 서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로마에서는 전통적인 형식의 화폐 경제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화폐 경제가 다시 원상태로 회복될 때까지는 무려 천년이라는 암흑기간을 보내야만 했다.
로마를 멸망으로 이끈 것은 과연 돈 때문이었을까?
사도행전 8장을 보면 시몬이 성령을 돈으로 사고자 했을 때 베드로는 성령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며 돈과 함께 네가 망하리라는 저주를 내린다.
(참고) “사도행장 8장 18~20절 :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돈으로 인해 로마가 누린 최고의 경제적 번영이 돈 때문에 망한 역사적 교훈은 성령을 돈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몬의 생각이 그를 죽음으로 이끈 사실과 묘하게 어울리는 듯 하다. 성령이 임한 예수님의 사도들을 박해하였던 로마를 멸망으로 이끈 것은 과연 돈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성령의 역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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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생각으로 하늘 뜻대로 살고만 싶어라~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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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이기기가 제일 힘이 들죠 자기와의 싸움에 이기기위해 노력 노력 할께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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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잘못이 있어도 감추고 싶고 타인의 잘못은 드러내고 싶은 이상한 마음... 철저히 분석하고 버려야겠어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