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다양한 형태의 저항이 필요한, 그리고 절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래서 저항의 전선으로 뛰어들기 위해서는 일정정도의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용기를 내는 것이 필요하지만 용기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그만큼 그에게 절실하지 않다라는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정확히는 부분에 따라 용기를 낼 수 있는지 없는지가 틀려진다는 이야기이다.
뭔가.. 그런 소외감을 느낀다. 용기를 내어 본 사람들한테... 용기를 통해 견고한 일상의 벽에 작은 틈이라도 내면서, 동시에 그 개인한테는 삶의 굴레로부터 해방을 느끼게 해주는 결과를 가져온 사람들에 대한 소외감말이다. 어떻게 보면 그 시대가 그런 사람들에게 부여한 임무에 충실한 결과이겠지만 그렇다면 그런 용기있었던 사람들이 그 수많은 용기없는 사람들을 위해 하는 역할이란... 용기를 내세요... 또는 재밌으니까 해봐? 라는 말 정도 밖에 안 한다는 불쾌함 같은 거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다양한 형태의 저항이 역사로 쌓여갈수록 그 경험을 미리 가졌던 사람들이 이 저항을 확대하기 위한 실천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개인적인 용기를 실천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개인적인 용기밖에 주문할 수 없다면 이 얼마나 내용없고 무책임한 짓인가.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투쟁의 기획으로 해결될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수 많은 용기없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강요하는 것도 어찌보면 악순환의 고리를 깊게 만드는 주범이 될수도 있다는 생각인 것이다.
지혜의 '얼굴들'을 보면 삶이 투쟁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 말을 하신분은 특별이 용기있어 보이는 분이 아니었다. 지옥같은 일상과 개같은 세상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분이 한 말이었기에 그 말은 힘을 얻었고 그 작품의 진정성은 확보되었다.
Gentle Giant_Clazziquai(Love Child Of The Century)
주류에 편입된다고 꼭 안 좋은 결과만 가져오는 건 아닌거 같다.
댓글 목록
지각생
관리 메뉴
본문
사람들이 용기를 갖지 못하게 만드는게 뭘까요. 어떻게 그걸 덜어낼 수 있을까요?만일 용기있게 어떤 과정을 밟은 사람이라면, 그때 느꼈던 세세한 감정, 경험을 또다른 누군가를 위해 공유하면 좋겠어요.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가던 길만 가는 것 같아요. 아마 스스로 용기 있다 생각을 못하거나, 스스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일지 모르죠.
뒤에 남은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며 오히려 더 위축되는 건 아닌지. 그런게 반복되면 부정하게 되고, 그 부정은 계속 강화되고.. 사실 겉으로 드러나는 것 만큼 대중들의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는데.. 그 뭔가를 건드릴 수 있다면..
부가 정보
navi
관리 메뉴
본문
용기라.... 막상 그 순간에 있을때는 그게 용기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지점들이 분명히 있지요. 그걸 '용기'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지만어떻든 그 상황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걸 용기라 부르고,,
그 차이를 메울 수는 없겠지만, 어찌되었든 그게 완전 별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전달하는 게 방법이라면 방법일수도 거창한 수사와 이론적 규명이 아니더라도 그냥 그랬어. 그랬었어라는 느낌까지만 전해줄 수 있어도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