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편지에 대한 어떤 미련?
(3)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의 두번째 섹션인 '소통'은 어떤 섹션보다 관객 참여적 작품이 많다.
관객이 작품을 핸들링하고 변화한 모습 자체가 작품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에 기본적인 틀은 존재한다.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 탄생할 것 같은 상호작용은 아니다. 대체로 한차례의 관객 참여와 한차례의 틀 내의 변화 정도?
그래도 나름 재미있고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아래 마크 리의 [브레이킹 더 뉴스 - 뉴스자키되기] 같은 작품.
키보드를 통해 별명으로 'jinnee'라 쳤더니,
거대한 스크린 세곳을 통해 'jinnee'에 대한 google video 페이지가 검색되면서 무작위로 방송이 시작된다.
그런데 관객 참여적 작품들은 실제 나의 조작이 필요하기 때문에 동시에 사진으로 남기는 건 힘들어서, 돌아와 확인해보니 참여성 강한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래의 작품들도 분명 '소통'이라는 주제에 묶였으나 '보는' 것에 많이 집중했던지라 카메라에 담겨질 수 있었던 작품들.
전기종의 [CNN].
첫번째 사진만 봐서는 진짜 CNN에서 방송되는 비행기 폭발 장면같아보인다.
그러나 사실 스크린 뒤에는 무척 잘 꾸려진 세트가 눈에 띈다.
미디어의 허(虛)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멕시코/미국 에리카 하쉬의 [에로스와 타나토스].
스크린 속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나비들을 보다가 바닥에 심하게 깔린 부동의 나비들을 보니 왠지 세상만사 참 덧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야말로 사랑과 죽음이라는 신이 교차하는 그곳.
한국 뮌의 [인산인해].
참고로 이 설치물의 높이는 내 키의 두배정도 되는데, 수많은 깃털이 거대한 풍선기 바람에 날리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부산한 인파를 담은 영상들은 정신없으면서도 깃털 속으로 살짝살짝 보이는 공허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오늘은 라디오마다 가을을 알리는 노래가 나왔었죠?' -> 그렇다.
'오랜만에 메일이나 핸드폰 문자가 아닌 편지를...'
오늘 MBC 뉴스 끝무렵 김주하 아나운서가 날린 멘트다.
아직도 메일과 문자, 또는 게시판, 블로그의 글은 가슴을 울리는 그 무엇이 될 수 없다는 뜻일까?
아니면 감성계에 있어서 종이 편지의 아성은 영원히 깰 수 없는 그 무엇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시시때때로 등장하는 식상한 멘트 중 하나일까?
우린 이미 온라인과 다감각매체를 보며 웃고 울고 기쁘고 슬퍼하지 않는가?
이 감정은 편지의 진한 농도를 확보할 수 없다는 뜻인가?
가장 마지막 써본 편지는 고등학교때 남자친구에게 써본 게 끝인지라
편지가 그다지도 다른 매체를 누르는 막강한 농도의 감정선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이었는지 도무지 기억해낼 수 없다.
예전엔 막연히 '그러게'하고 맞장구 쳤던 것 같지만
편지 이외의 것들에 대해 이젠 너무 많이 쓴다고 괜히 가치 하락시킨 것 같다는 기분도 살짝 든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메일을 보낼 때, 문자를 날릴 때, 온라인에 글을 쓸 때도
때론
'이걸 보고 공감해주세요', '내 마음을 이렇게 담아요'라는 간절한 감정을 실었어야 했을 터인데,
때론
조금 가벼운, 조금 건조해도 무관할 것 같은 기분으로 무성의해져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팸문자와 스팸메일에 시달리다보니 그걸 전달하는 매체가 싫어졌을 지 몰라도,
어쩌다 그 사이 비집고 들어온 반가운 이의 소식은 언제나 기분 좋기 마련이다.
난 그냥 평소에 이미 생활화된 매체에 애정을 담뿍 쏟는 방향으로 진행해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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