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군님의 [[단편애니메이션] 아빠가 필요해] 에 관련된 글.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자면,
단아한 여성들의 재빠른 늑대 따귀 때리기, 날아올라 얼굴 차기 등 ㅋㅋ
압권이다.
그밖에도 긴장하면 흔들리는 늑대의 꼬리, 냉장고의 사슴,
여자아이 영희가 뽀로로 굴러서 늑대의 팔을 베개삼아 자는 장면들 역시 인상적이다.
2가지 정도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는데...
첫번째
사슴이 요리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 장면에서 좀 서글퍼지기 시작했다.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은
아이를 기르거나 가사를 하는 일이 아주아주 먼 옛날에는 노예에게 미루어져왔던,
노예가 사라진 이제 여자에게 미루어져온 바로 그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다.(물론 같은 노예라도 여자 노예가 많았겠지만...)
왠지 앞치마를 두른 사슴이 식탁을 준비하는 모습 속에서 가족이라는 테두리 속에서도 그가 가지고 있는 지위를 상징하는 행위처럼 보인다.
두번째
예전 돌봄노동에 대한 문건을 읽다가 돌봄을 시민적 의무화 시킬 필요성에 대해 피력한 글을 봤다. 예를 들어 남자들 군대 의무 복무하듯 말이다...헉...
음... 나는 보육노동자 몇년 해봤으니 이미 제대한 셈인가? ㅋㅋㅋ
당연히 돌보는 게 즐거우니까 하라는 건 아니었고...
요지는
1) 무지무지 힘드니까 누군가에게 떠넘길 문제가 아니라서 심지어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당사자들에게만 부과할 수 없다는 거.
2) 누가 되든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순간 사회적 가치 절하와 낮은 보상체계로 인해 넘겨받은 이에 대한 착취가 시작된다는 거.
3) 결정적으로 아이는 돌봄이 없다면 결정적 해를 입게 되는 대상인지라 나에게 돌아오는 보상이 미비하더라도 차라리 지금 그 아이를 돌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수 밖에 없는 매커니즘으로 인해 돌볼 수 밖에 없다는 거.
등등이었던 것 같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아이를 기르는 건 늑대가 영희의 진짜 아빠가 되고플 만큼 달콤하고, 모든 아이가 영희처럼 귀엽기만 한 건 아닐거다.
그렇다고 아이가 주는, 내지는 아이를 기르며 갖게 되는 놀라운 삶의 장면들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인생에서 누군가가 자신만을 온전히 필요로 하는, 내가 없다면 삶을 영위하지 못할 것 같은 존재가 옆에 있다는 건 참 색다른 경험이다.
그런데 그게 참 아이는 자라게 마련이고, 나를 필요로 하는 때는 언젠가 사라진다.
그런데 기르다보면 조금씩 "나는 얘때문에 살아요", "이 아이가 내 삶의 전부죠"라고 말하게 만드니 참 곤란곤란...
(가끔은 나를 잊게 해... 40,50대 아줌마들의 자아 상실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그래서 말인데 좀 cost 가 쎄긴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건 늑대가 운전기사로 전업할 만큼 꽤 해볼만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1) 전업 정도의 각오로는 애를 키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의 현실..-_-;;;
2) 애도 잘 키우고, 나의 자아도 쑥쑥 성장하게 하는 놀라운 중도(中道)를 찾는 길.
(자~ 살리고 살리고 늑대로 살리고, 영희도 살리고~~~
사슴도 잊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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