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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년 이사를 하기 위해 집을 보러 다닐때, 나는 꼭 뒷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고 싶었다. 뒷마당에 조그마한 텃밭을 만들어서 상추도 심고, 깻잎도 심고... 언제부터인가 나의 막연한 꿈이 되어버린 농사짓는 일을 요 작은 텃밭에서 부터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꿈은 처참히 무너졌다. 뒷마당이라고 볼 수 없는 조그마한 베란다 수준의 뒷뜰이 있긴 하지만, 삭막한 시멘트로 바닥을 꽁꽁 싸메어 버린 patio를 가진 집으로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텃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뒷뜰 한켠에 벽돌로 테두리를 만들고 흙을 부어다가 자그마한 텃밭을 만들었다. 그곳에 상추도 심고 시금치도 심고, 이름 모를 샐러드 용 풀들도 심고.....
참 신기하게도, 풀들이 자라기 시작하자, 어디선가 나타난 이름모를 벌레들. 얘네들을 죽일까 말까를 고민하며 작은 텃밭 앞에 앉아 생각한다. 이들은 밀러의 말대로 무기물로부터 생성된걸까? 아님, 원래 이 흙에 숨어 있다가 나온걸까? 생명이란 존재는 과학적으로도 어찌 알수 없는 참 신기한 존재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기엔 보잘것 없고 해로워 보이겠지만, 다들 어떤 막중한 임무를 갖고 이 세상에 나왔겠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이런 생각에 다다른다. 어쨋거나 이것들도 다 먹고 살라고 하는 짓 아닌가....
그럼 같이 나눠 먹지뭐.... 올 여름, 이 이름모를 벌레들과 나는 이 작은 텃밭에서 자란 싱싱한 채소들로, 풍성한 식탁을 맞았다. 이들이 나보다 좀 더 많이 먹은건 배가 좀 꼴리지만....ㅋ
#2
요즘 나라는 인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나라는 존재는 어떤 임무를 갖고 이 세상에 발을 딛게 된 것일까? 이런 생각은 아마도 하루하루 빠르게 변하고, 치열하고, 바쁜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라는 인간의 초라함 때문일 것이다.
모든 생태계가 각자의 역할을 갖고 있거늘, 인간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 조차 묵묵히 유기물질들을 분해시키는 막중한 일들을 하고 있는데, 신이 저지른 유일한 실수라는 인간창조. 그 인간이라는 생태계에 속한 나란 인간은, 인간이 저지른 이 막대한 재앙들을 사죄하는 척이라도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나....
아니다... 너무 거창하다.... 그저 인간사회 만으로 한정하더라도 나란 존재는 미미하다.
#3
매일 아침 채소들에게 물을 주며, 텃밭을 훑어 보면, 어느샌가 자리잡은 잡초들이 눈에 띈다. 이 놈들은 성장 속도도 참 빠르다. 이 작은 텃밭의 주인인 채소들이 먹을 영양분도 부족한데, 이놈들까지 영양분을 뺏어먹는다고 생각하니 그들이 괘씸해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을 뽑아버렸다. 그 덕분에 나의 채소들은 무럭무럭 자랐고, 나의 식탁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도 참 웃기다. 이 잡초들 역시 살아보겠다고, 어디선가 날아들어와 뿌리를 내린건데, 왜 벌레들에게는 아량(?)을 베풀고, 이들에게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텃세를 부렸을까?
사실 따지고 보면 이들이 먼저 이 세상에 존재했고, 우리 인간이 이들의 영토를 침범해서 우리집 뒷뜰처럼 시멘트 떡칠을 해대서 이들이 자랄 영토를 빼앗은거 아닌가?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강우근 메이데이, 2010 |
그래도 이 잡초들은 뽑히고 또 뽑혀도 그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사람이 이들의 터전을 앗아갔지만 "잡초들은 사람 사는 곳에 적응해서 살아간다. 그리고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중)." 그들은 "절망이라 부르는 끄트머리에서 다시 삶을 일군다."
잡초의 그 살고자 하는 의지를 알아 챈 순간, 미미한 내 존재만을 초라해했던 나의 어깨에 다시 힘을 넣어본다. 난 두발을 땅에 딛고 있었으나, 인간에 의해 잘려나가더라도 마디에서 뿌리를 내리고 다시 성장해가는 마디풀처럼 치열하게 두발을 딛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척박한 도시 콘크리트 사이에서 살아가기 위해, 줄기 아래로 짧은 털을 내어 물기를 낚아 이슬을 맺히게하고, 그것을 뿌리까지 가게 해"서 생명력을 이어가는 벼룩이자리처럼 살아 본적이 없었던 거다, 나란 존재는....
이들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회색 도시를 푸르게 만들겠다는 막중한 임무를 갖고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간다.
이렇듯 모든 생태계는 각자의 임무를 갖고있다. 그 존재가 미미할지라도, 그들의 임무는 결코 미미한 것이 아니다. 생태계에 속한 나란 존재 역시 미미할 지라도 이 세상을 떠나기전 꼭 완수해야할 어떤 임무가 있을것이다. 이 임무를 위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하는지를 내 발에 밟힌 들꽃들이 보여주고 있다.
"그대가 들꽃입니다. 보잘것 없는 것이 세상을 바꿉니다"
그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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