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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수정? 도대체 답이 없다...

피곤하다.

아침 7시부터 일어나 밥 차려주고 행주삶고 딸래미 머리감겨 이 잡아주고 숙제시키고 얼집까지 걸어서 데려다 주고 오니 도저히 공인중개사 셤공부를 하겠다고 도서관까지 갈 기운이 나지 않는다.

집안은 난장판이고 내일 딸랑구 어린이집 송편빚기 어쩌구를 위해 앞치마를 사러 이마트에 가야 하는데...이런저런 잡다한 쇼핑을 해야 하고... 돈도 없는데 돈 쓰는 것도 일이고 고민이다.

이래서야 나의 조잡한 올 하반기 스케쥴도 성사시키기가 어려울 듯 하다.

방통대 공부는 졸업학년에 이르러 엉망이 되고 있고 조악하게 짜깁기하고 있는 사십대의 취업을 위한 스펙쌓기도 전망도 불투명한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야 하나 어쩌나에 헤매고 있고...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하면 딸랑구 따라다니랴 작은 애 어린이집 새로 알아보고 적응시키랴 분주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만 들고...

남푠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아침식사를 챙겨주려 일찍 일어나니 며칠도 못 가 내 도서관 출근은 펑크가 나기 시작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아이들은 늦게 자니까 늦게 일어나고 더불어 나도 매일 한 시까지 잠 못 들고 당연 아침밥은 아무도 먹지 않게 되었는데.... 남푠을 밤에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아빠로 만들기 위해 아침밥을 챙겨주고 저녁에 함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일찍 자게 만드려는 내 계획은 초기단계에서 내게 고난을 주고 있다. 희생이 따르지 않으면 성공은 없는 것이려니...아이들을 일찍 재우지 못 한 상태에서 내가 일찍 일어나는 이 과도기에 내 한낮의 여유는 제물로 바쳐지고 있다.

하아...배 고파 죽겠다. 아빠와 아이들은 무사히 출근과 등원을 마쳤지만 나는 내 손으로 또 밥 차려 먹을 생각을 하니 몸이 안 움직여진다.

집에서 시험공부를 할라니 이불이며 옷가지며 삶다 만 행주꺼리며 난장판인 집안 상황이 시야를 가려 어찌할 수가 없다. 집을 다 치우고 나면 나는 분명히 배고픔과 피로에 지칠 것이다. 지병인 발각화증이 악화되어 오래 서 있기도 힘들다. 아프다. 발바닥. 중력과 맞서 내 몸무게를 버팅기고 있는 22.5센티의 내 발바닥이 불쌍하다. 늘 각질과 피멍이 들어있는...아무도 만져주지 않고 족욕은 커녕 목욕탕에 들어갔다 나올 때도 두 아이의 시중을 드느라 한 번 쓰다듬어 주지도 못 한 채 버림받은 내 발바닥.

남푠은 죽도록 일하고 떡이 되서 퇴근하면 집에서 밥 먹고 드라마 보다가 청소기 한 번 밀고 이불 펴고 잠자다가 한 밤에 일어나서 아이들 쉬야 시키고 열린 창문 챙겨 닫는 것 이상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면서 재우는 것까지 하는건 너무나 힘든 일이라고 한시간 반에 걸쳐  항변했다. 그것 밖에 못 하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면 이혼할 수 밖에 없다면서.

인간관계 개선을 위한 도서관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나는 배운대로, 먼저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경청하고 나서 그의 욕구인 아침밥 먹기를 채워주고 저녁시간의 한가함을 확보시켜 준 뒤에 아이에게 책 읽어주며 일찍 재우기를 시도하고 있다. 언제나 아이들이 10시에 잠들까, 그래서 내가 7시에 일어나는 걸 힘겨워하지 않을까...

일찍 일어나기.

이게 싫다.

학창시절, 자율학습을 위해 7시에 일어나서 8시까지 등교하는 것도 나는 잘 못 했다. 아침밥을 먹은 적이 없다. 서둘러 학교를 가 보니 책가방을 안 가져온 적도 있었다. 내가 냅다 들고 뛴 것은 커다란 도시락가방이었다. 사교육이니 입시니 뭐니 암껏도 모른채 학교만 보내면 된다고 생각했고 그조차도 힘에 부쳐 했던 내 엄마가 열씸히 챙겨주신 도시락, 없는 돈에 비싸게 사 주신 보온도시락통.

내가 갓난아이 둘을 키워내면서 보온병 하나 못 산 걸 보면, 그 당시에도 코끼리표 보온도시락은 무척 비쌌을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조지루시라는 브랜드를 구입하지 못 한다.

푸하하...암튼 나는 열심히 챙겨온 보온도시락만으로 걍 하루치의 수업을 때웠다. 교과서 한, 두권 안 가져오는 건 일상다반사였고 옆교실에 가서 체육복이며 온갖 준비물을 다 조달해 왔는데 7교시분의 교과서를 안 가져왔다는게 뭐 대수랴....쉬는 시간에 좀 자주 옆교실을 가면 되지...어차피 책을 보는 것도 아닌데....

책상 위에 그 수업이 아닌 교과서를 촥 펼쳐놓고 눈을 내리깔고 있다가 가끔 칠판 쪽을 한번 봐 주면 된다. 어차피 모든 교과서  아래에는 똑같은 소설책이 있을 뿐이다. 벌써 수년 째 계속되어 온 습관이다. 선생들은...중학교때도 그랬지만 고교에선 특히 더  전교석차의 일정부분 안에 있는 각반의 아이들을 대충 눈에 꿰고 있었고 자신의 수업에 주목하는 그 소수의 아이들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입시준비를 위해 존재하는 인문계고교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지만, 어차피 대입정원에 들지 못 하는 전국 70%의 고교생은 그렇게 소외되었다. 책상 위에 엎드려 자던 말던, 수업을  땡땡이 친 것이 분명한 빈 자리를 발견해도 못 본척... 수업을 포기한 학생들보다 그들에게 더 나쁜 건 중간도 못 가는 것들이 떠들어대면서 수업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상위30%의, 대입진학이 가능한 소수에게 주입하고 있는 암기포인트의 전달 -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교육활동인- 을 방해받는 것, 그건 선생들이 가장 싫어하고 그나마 제지해야 할 선생역할이었다.

공부도 잘 하는 내가 열심히 코박고 책을 보다가 가끔 자신들의 교단에 눈길을 던져주는 것만으로도 선생님들은 흡족해 했다.

젠장...내가 키가 너무 작아서, 너무 앞줄에만 앉지 않았어도  교과서 밑의 다른 책을 발견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교과서 밑을 휙 들춰 책 제목을 쓱 보더니 나를  한번 흘낏 보고 그냥 지나갔다. 아이들도 무슨 일이 있었는 지 모르게 그는 아무 말도 없었다. 내가 공부를 잘해서? 책 제목이 너무 거창해서였는지도. 그건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입문이었다.

정독도서관, 그 넓은 정원이 있는 정독도서관을 사랑했다.

세상의 지식을 모두 내 것으로 하고 싶었던 나는 그 도서관의 커다란 서가가 너무나 좋았다.

100원 내고 들어가서 300원짜리 우동을 사 먹는 것에 가끔 어려움을 느끼기는 했지만....

내가 그 시절 열람실에서 책을 읽으면서 오리무중이었던 것은 왜 사람들이 서가의 책이 아닌 듯한 두꺼운 수험서 같은 걸 펼쳐놓고 있냐는 것과 왜 전부 어른들만 있냐는 것이었다. 심심하게시리....

도서관의 로맨스도 생길 틈도 없이 말이다.

아...암튼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싫다. 자율학습 시간에 피곤에 쩔어 엎드려 자는 건 너무 꿀맛같고 지난밤 너무 늦게까지 소설에 빠져있었던 지라 오전 4교시 내내 도시락도 안 까먹고 엎드려 자고 있을라면 너무 허리도 아팠다. 어쩔땐 점심시간을 지나 5,6교시까지 내처 잔 적도 있었다. 그럼 7교시엔 턱 괴고 눈을 반쯤 뜨면서 집에 갈 정신을 수습하며 종례시간을 기다리기도 했다.

나~중에 직장에서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나오는 빈혈, 저혈압, 주의요망 어쩌고를 보면서 내가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없는 체질이라는 걸 알았다. 난....점심 때쯤 되어야 제정신이 들고 겨우 입맛을 따라 밥을 먹고 난 오후에야 에너지를 소비하여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뭐...그렇다고 내가 늘 밤중까지 정력적으로 뭔가를 하는 타입도 아니었다. 밤에는 또 피곤해서리....걍 만화책이나 보면서 공상에 빠져 잠드는 것이 행복하지...

결국...하루 8시간 노동도 겨우 해낸다는 뜻이다.

그런 내가 무슨 새벽밥을 지어 식구들을 내보내고 퇴근시간에 줄달음쳐 아이들 픽업해서 저녁밥 해 먹이고 설겆이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애들 노래불러 재우고 밤 열 두시에 내가 오늘 한 게 뭔가 하는 자괴감을 느끼며 피곤에 지친 잠에 빠져드는 맞벌이생활을 하겠나...결혼한 이후 꼭 2년 6개월을 일했지만 도저히 못 해 먹겠더라...

남는건 약간의  저축이고 서술형으로 일했다는 것 외에 의미 담을 게 아무것도 없는 걍 인생의 낭비였을뿐이다.

아, 그리고 남푠과 지독하게 싸워대면서 바닥까지 드러냈다는 것 뿐이다.

고로....맞벌이는 불가하다. 누군가....우리 가족의 밥을 해 주지 않는 한.....

누가 밥만 해 줬으면 정말 좋겠다.

나의 염원, 윤리시간에 비난과 함께 배웠던 북한의, 마을마다 있다는 밥공장....그런 공공식당이 있었으면....오늘 도서관에 가서 3000원짜리 밥을 사 먹으면 좋을텐데, 라면 끓여 김치랑 먹어야 하나....난 라면 안 좋아하는데....

제법 괜찮은 식당을 가지고 있는 울 동네 정보도서관이 좀 가까웠으면 식구들의 저녁식사도 거기서 해치울텐데....

오직 저녁밥만 짓기로 마음 먹었었는데 책읽어주며 일찍 재우는 습관 형성을 위해 남푠의 아침식사를 차려주다 보니 도대체 하루 일을 시작을 못 하겠네...라면 먹고 힘내서 청소하고 마트갔다가 은행도 가야 하나...으....

언제 셤공부를 하나...애들 챙기고 밥 해 대면서 직장 생활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은데 취업준비를 해야 하나....전망이 어둡다....걍 전업주부로 사십고개를 넘겨야 하나...그럼 무슨 일을 내가 할 수 있을까.....인생의 플랜이 이렇게 안 짜지기도 참 처음이다. 세부적으로 실행되진 못 해도 대강의 윤곽과 방향은 가지면서 지금껏 살아왔는데....이건 당췌 그림이 안 그려진다.

가사노동이 내 발목을 붙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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