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성 맥주
간만의 취생몽사 포스팅 ㅎㅎ
여러 종류로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경험해봤지만 역시나 안정된 직장에 다닐 때만큼 술을 많이 마신 적도 없는 듯하다. 구로공단 있을 때는 허구한 날 체불되는 임금 덕분에 동료들과 밥도 한끼 같이 제대로 먹은 적이 없고, 팔자에도 없는 세일즈맨 시절 역시 뭐 주머니에 돈이 들어와야 누구랑 술이라도 한 잔 하지. 다른 거 할 때도 마찬가지고.
인천 공장에서는 어찌되었던 밥은 제때 먹을만 했고, 쥐꼬리만큼이라도 월급은 꼬박꼬박 나왔으니 달아놓고 외상술 먹기도 꽤 수월했다. 그러다보니 주당들도 많이 만나게 되었고...
같이 근무하던 사람 중에 1년 선배인 DJ는 술버릇이 꽤나 안 좋은 축에 속했다.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해봐야 남 뒷다마 까는 수준이므로 다 생략하기로 하고. 어쨌거나 이 선배와는 인연이 겹치는 덕에 술도 같이 제법 마셔댔더랬다. 그러던 어느날...
그날은 부서에서 야유회를 가는 날이었다. 관광버스를 타고 속리산이었나 어디었나를 갔는데 출발하기 전부터 술을 퍼마시기 시작해서 돌아오는 그 순간까지 술들을 퍼제끼느라고 뭘 보고 왔는지도 모르는 그런 상황이었다. 부서에 근무하는 사람들 자체가 워낙 말술들이 많았던 터라 야유회비로 책정되었던 돈은 물론이고 사장과 실장이 보탠 상당액의 금일봉보자 술을 사는데 소요되었다.
45명 정원 버스에 약 30명이 타고 남은 자리는 소주상자와 맥주상자로 가득찼고, 관광버스 옆구리의 짐칸에 역시 술상자들을 빼곡히 쌓아 놓고서야 관광버스는 출발했다. 버스 안에서는 고스톱과 포커, 짤짤이가 쉴새 없이 진행되었고, 틈나는 대로 마이크 붙잡고 노래자랑이 벌어졌으며 일부 술취한 멤버들이 관광버스 디스코택을 개설하기도 했다.
어찌어찌 도착해서 밥먹고 술먹고 여차저차 오락도 하고 하니 후딱 하루가 지났고, 다시 돌아오는 버스 안. 사람 머릿수의 몇 배나 되는 술을 준비했는데 벌써 술은 다 떨어졌고, 놀다 지친 일부 사람들은 곯아 떨어져 코를 골고 있던 중이었다.
이때 갑자기 급부상한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DJ. 게슴츠레한 눈을 휘번덕 거리면서 한 손엔 맥주병을 들고 다른 한 손엔 컵을 들고 왔다 갔다 한다. 자는 사람은 깨워서 술을 먹이고 깨있던 사람은 당연히 술을 먹인다. 손에 들고 있던 맥주병에 맥주가 떨어지면 또 후다닥 뒤로 달려가 맥주를 꺼내오고 그렇게 잔을 돌리고 돌리고...
누군가 "야, 이제 그만 먹자. 아직도 술이 남았냐?"라고 했는데, DJ선배는 아랑곳 없이 아직 술이 많이 남았다고 하며 연신 맥주를 돌렸다. 도대체 저넘의 손은 마이더스의 손이란 말이냐, 얼마나 술을 쟁여 놨길래 아직도 맥주가 남았단 말이냐 하면서 돌리는 맥주를 하염없이 받아마시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남달리 눈썰미가 강했던 행인, 이건 뭔가 야료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술잔을 피하길 몇 차례. 선배가 다가오면 뒤로 갔다가 선배가 다른 사람에게 술을 부어주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는 다시 앞으로.
이 익숙하지 못한 상황이 계속된 데는 선배의 행동이 심히 이상했다는 점에 있다. 이 선배, 일단 이상하게 자신은 술을 받아 마시지 않는다. 뒷자리에 갔다가 앞으로 올 때 맥주 한 잔을 들고 와서 마시는 것 이외에는 자신이 술을 권하면서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술을 받지 않는다는 거다.
또 하나 이상했던 점은 뒷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이었는데, 그 선배의 동기들을 비롯해서 대여섯명의 선배들은 지들끼리 맥주를 마시면서 앞으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여기까진 별 문제가 없는데 술을 돌리던 DJ선배가 이상하게도 그 사람들에겐 맥주를 권하지 않고 있었다는 게 이상하게 생각되는 점이었다.
버스는 달리고 있고, 사람들은 술을 계속 퍼먹고, 그 와중에 선배의 자리이동에 맞추어 행인이 자리를 이동하는 일이 진행되다가 결국 몇 사람의 안쓰러운 호소 덕분에 갓길에 버스가 정차하게 되었다. 방광파열의 위험에 직면해 있던 다수 승객들은 버스가 정지하자마자 쓰러질 듯 뛰어내려 수풀 속에 들어갔고, 인근 수풀 일대에서는 오밤중에 폭포수가 쏟아지는 듯한 장엄한 굉음이 울려퍼졌던 거다.
요도의 개방만을 오매불망하던 행인 역시 그 대열에 합류하여 바야흐로 대양으로 흘러가게 될 물줄기의 방출을 몸소 경험하고 있었다. 간만에 대사를 치룬 사람들이 버스 밖에서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행인의 눈 안에 얼핏 버스 뒷자리에 걍 앉아 있는 그들이 들어왔다. 저들도 맥주를 마셨는데, 우째 저들은 볼일을 보지 않았을까? 저들의 방광은 대용량 수조쯤 된단 말인가...
지들끼리 앉아서 낄낄거리고 웃고 있는데 마침 버스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DJ선배가 보였다. 해서 냉큼 버스 안으로 기어올라가 텅빈 좌석을 가로질러 뒷자리로 후다닥 달려갔더니...
분명히 비어있어야 할 맥주박스에 내용물이 찰랑거리는 맥주병들이 가득 꽂혀 있었다. 뚜껑이 온전히 닫힌 맥주병은 불과 대여섯병 정도. 뚜껑이 열린채 찰랑거리는 맥주병들은 그 몇 배. 아뿔사, 그제사 상황을 알게된 행인. 이들은 언제부턴가 즉시제조된 동물성 생맥주를 맥주병에 담아 사람들에게 돌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도대체 언제부터인가? 저 불쌍한 중생들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동물성 맥주를 마셨단 말인가?
좌석이 정비되고 사람들이 정좌한 후 안전밸트 부여매고 힘찬 출발 하던 차에, 또다시 발동걸린 DJ, 자리를 털고 일어나 여지 없이 맥주병과 컵을 들고 앞으로 전진. 그렇게 몇 사람 먹여가며 뒤로 오던 중 자리에서 일어나던 행인과 조우하게 되었다.
"어? 그러고보니 너 한 잔도 안마셨지?"
"아 난 됐어여."
"야 이 쫘샤가 선배가 주는 술을 마다해? 맞고 마실래 걍 마실래?"
"아, 형. 난 됐으니까 내가 한 잔 따라줄께."
"이 쉬바쉐리가 언넝 안 마셔?"
"내가 따라준다니까?"
"워~ 이거 많이 컸네. 얼렁 받아. 안 그럼 너 기숙사 가서 죽어!"
귀차니즘이 극단까지 발동한 행인, 결국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말았으니...
"아 쉬파, 이거 형 오줌이잖어! 저 뒷자리에서 막 만든 오줌맥주! 쒸바 내가 닭이여? 이걸 먹게?"
술을 받으라고 강권하던 DJ, 놀란 눈을 치켜뜨며 손에 든 맥주병과 컵을 떨어트리고 내 입을 막느라 전전긍긍. 뒷자리에 있던 일당 여러명은 갑자기 박장대소를 하면서 배를 잡고 뒹굴고. 자리에 앉아 멍청한 얼굴로 한동안 충격과 경악에 휩싸여 있던 사람들, 잠깐의 침묵이 지난 뒤 갑자기 차세우라고 난리 법석을 떨고...
영문 모르고 당했던 선배들이 DJ일당을 갓길로 끌어내려 한따까리를 하는 동안 비위가 왕창 상한 일부 인사들은 삼삼오오 사이좋게 모여 오바이트를 하거나 맹물로 가글링을 하고... 그 난리를 치고도 인천에 도착해 뒷풀이로 맥주집을 전전한 그이들은 진정 가공할 비윗장을 지닌 인물들이었던 것인가?
뭐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피하느라고 피했음에도 행인 역시 그 동물성 생체 생맥주를 한 컵 마셨더란다. 날은 덥고 버스안은 후덥지근하고 그래서 맥주가 밍밍해진 줄만 알았지 그게 어디 그런 건지 알았더란 말인가.
퇴사한 이래 DJ와는 연락이 닿질 않아 뭐먹고 사는지 도통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가끔 맥주 마시는 사람들을 볼 때면 불현듯 이 선배가 떠오른다. 사실 그 맥주 아닌 맥주, 강부자 고소영 일당들에게 먹였으면 싶은 요즘이기도 하다.
웨~엑. 당분간 맥주 못 마시겠당.
글정말로 잘쓰신다. 들어와 볼때마다 느끼지만...
이러다 내가 맹랑좌파당에 입당원서 쓰는거 아닌지 몰라...
아까운 맥주를 강부자 고소영 일달에게 먹이다니, 그건 안되여..
말걸기/ 어차피 못마시잖아. ㅋ
달구지/ 허걱... 감사합니다. 맹랑좌파당 당원을 이런 식으로 끌어모으게 되다뉘...ㅡ.ㅡ;;;
산오리/ 진짜 맥주는 못주죠. ㅎㅎ
저는 술을 안 마시므로 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