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

문화라고는 문화일보를 보면서 꼴통들의 세계관을 들여다보는 것이 다인줄 알았던 행인, 그 행인에게 불어닥친 봄바람 덕분(^^)에 10여년 만에 문화생활이라는 것을 즐기기 시작했다. 아니, 시작할 거다. 음홧홧홧홧홧~~!!

 

한 때, 행인에게 무대는 동경의 대상이었더랬다. 수많은 삶을 골고루 한 번 살아본다는 것, 그것만큼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일이 또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 원대한 꿈은 생활에 찌든 인고의 나날 속에서 훌훌 날라가 버렸단 말이다. 고백하자면, 무대라는 곳은 행인처럼 게을러 터지기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환상의 세계가 아니라 지옥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꿈을 접은 것이지만서두.

 

이렇게 무대라는 곳이 하늘 저편 안드로메다의 어느 별에서 온 사람들이 엮어 나가는 곳이라고 단정지으면서 행인의 문화생활이라는 것은 짤짤이와 고스톱 등 사행성 잡기를 거쳐 당구와 축구라는 구기종목에 국한되고 말았던 것이었다. 가물에 콩나듯이 등산을 가거나 봄바람 불기 전(!)까지 주말마다 혹은 격주로 겜방에 틀어박혀 노닥거리던 온라인 게임이 여가시간의 전부였다. 아아... 이 얼마나 무미건조한 나날들이었단 말인가?

 

생활이 이렇게 고착되다보니 나중엔 생각이 좀 있어도 연극이나 뮤지컬이나 오페라나 하는 공연을 보러 가기가 겁났더랬다. 왠지 부담스럽고, 뭔가 나와는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보러가는 그런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게다가 이 천박한 문화적 소양은 과연 무대의 열기를 내 몸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만들기도 했던 것이다.

 

그랬던 행인이 드뎌 연극을 한 편 봤다. 기껏 연극 한 번 보고 왠 오바질이냐고 궁시렁거리실 블로거들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건 이제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행인의 일보 전진이라는데 의의가 있으므로, 오바질에 대한 거부감이 있으시더라도 어린 것(?)들이 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시기 바란다. 흠...

 

암튼 그리하여 오늘 보게 된 연극은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이었더랬다.

 


성실하게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살아가고자 하는 세탁소 주인 강씨 아저씨와 그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이 전개되다가 갑작스레 돈에 굶주린 인간군상의 면면이 드러나게 되는, 아기자기하면서도 조금은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연극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고, 무엇보다도 너무나 오랜만에 느껴본 소극장의 분위기가 공연 내내 설레임의 쯔나미를 몰고왔더랬다. 그다지 무겁지 않은 진행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문제점들에 대한 지적이 곳곳에서 풍자된다.

 

아파트단지가 되어버린 동네에서 반세기라는 세월동안 대를 이어 운영되는 오아시스 세탁소. 세탁소 주인은 "때에 쩔은 세상의 때를 빼면서" 살고 싶은 작은 소망을 가지고 있다. 세탁소의 역사로 인해 선대때 있었던 아픈 사연을 자신이 보듬어야할 때도 있고, 동네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덕분에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무던히 돌봐주는 역할도 한다.

 

죽어가는 어머니를 돌볼 생각은 하지 않고 유산에만 목을 건 자식들과, 여기에 엉켜 혹여나 떡고물이 떨어지지 않을까 눈에 불을 켜게 되는 주변인물들로 인해 세탁소는 평지풍파에 휩쓸리지만, 결국 하얗게 때가 빠진 사람들로 세탁되고 마는, 어찌 보면 해피엔딩의 전형을 보여주는 결말을 가지고 있다. 강씨 아저씨는 옷을 세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쩐 때를 빼주는 사람이었다.

 

연극에 대한 평론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시다시피 행인의 짧은 지식으로 미학적 평가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 느낀 감정을 그대로 이야기한다는 것도 예술이라는 거창한 대상 앞에선 힘들다. 뻥구라도 분야가 따로 있는 거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 연극이 가지고 있는 착함에 대해선 몇 가지 언급할 것이 있다. 우선, 소품. 영화를 볼 때 가장 눈이 많이 가는 것은 소품이다. 그 영화에 적절한 소품이 적재적소에 쓰였을 때, 영화는 정이 간다. 연극도 마찬가지.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은 동네 세탁소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무대가 인상적이다. 그 하나 하나가 오래되고 허름한 동네 세탁소를 정밀하게 그려놓은 것 같아서 좋았다.

 

다음으로 개성있는 배우들의 연기. 배우가 독백을 하거나 주요한 대사를 연기할 때 주변에 있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은 또다른 즐거움이다. 배우들이 녹록치 않은 관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자신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 상황에 가장 적절한 표정과 제스쳐를 보여주고 있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섣부른 애드립이 없으면서도 가장 적절한 순간에 표정 하나만으로 그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조연, 이건 시간과 돈을 들인 관객에게 보람을 주는 최상의 서비스다.

 

1시간 여의 시간 동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면면을 보여주려 하다보니 생각의 틈을 넉넉히 주지 못한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오랜만에 감정의 동화를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다. 더불어 막연하게 무대에 가지고 있었던 두려움을 조금은 해소시켜주는 기회가 되었다. 대단원에서 빨랫줄에 매달려 펄럭이고 있던 새하얀 빨래들처럼 그렇게 세상이 깨끗하게 되었으면 하는 교과서적인 바램을 간직하면서 객석을 빠져나왔다.

 

 

ps :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이 포스팅은 염장용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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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2 22:55 2007/09/22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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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9/11/05 09:49

    "우리 아빠는 대나무 사업을 했어. 전국 대나무 숲을 다니며 대나무를 쪼갰는데.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 알지? 아빠가 살아있었다면 아마 거기에 출연했을 거야. 대나무를 누구보다 빨리 베었거든. 어렸을 땐 그게 부끄러웠는데.." 어느 날 지인이 털어놓은 가족사 한 토막, 재벌 이야기도 고급 가구 무대도 없지만 댓잎같은 애정이 서걱였다. 지난 18일 찾은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 사건>의 흥행 비결도 소시민의 생활밀착형 따스함에 있었다....

  1. 드디어 행인의 염장이 시작인 건가? 지난번에 운만 띄우고 너무 조용했다는 거 알고 있겠지요. 염장으로 진보넷을 달궈보시기를...

  2. 이 정도면 뭐 그냥 그저 그렇군요. 좀더 강한 걸로...

  3. 가을에 접어들었는데도 뒤늦은 봄바람도 부는군요..
    그 봄바람 산넘어 남촌에서 불어 오던가요?ㅎ

  4. 동화같은 이야기. 저도 좋아하는 연극입니다. 극단 <모시는 사람들> 특유의 뚝심있는 진지함이 철철 넘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5. 제가 과외하는 녀석중에 하나가 이 연극을 봤다던데, 그 녀석의 평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만, 역시 염장을 못 질러서 그랬을 거에요.ㅋㅋㅋ

  6. 토깽이/ 헉... 뉘신지... 암튼 행인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닭살이 오르다못해 닭으로 변신할 때까지 염장질을 하려 했으나... 스스로 쪽팔려서 못하고 있는 중임돠. ㅋㅋ

    새벽길/ ㅜㅜ... 그기 뻥구라의 영역에 염장질도 포함되진 않는 듯 하여용...

    산오리/ 여기서 보면 한참 북촌입니다. ㅎㅎㅎ

    빨간그림자/ 동화같은 이야기죠. 강씨아저씨 같은 사람이 바보취급당하는 세상이 웃기기도 하구요. ㅎㅎㅎ

    ScanPlease/ 물론 취향이 달라서 그럴 수도 있고, 비평을 하자면 또 여러가지가 걸리겠지만 초짜수준의 관객입장에서는 무난하고 괜찮았답니다. ㅎㅎ 염장 못질러서라기보다는 불꺼진 무대에서 염장질하고 있는 관객들이 있어서가 아니었을까용???

  7. 퍼가요~~

  8. 이종현/ 넹~~ ^^

  9. 누구긴요. 수많은 진보넷 블로거 중 하나지요. 그리고 이렇게 금방 꼬리를 내리다니... 실망이에요. 칼을 뽑았으면 한 번 휘둘러 보는 척이라도 해야지 안그래요? 다시 전의를 가다듬고 닭 제조를 위해 전진!

  10. 토깽이/ ㅎㅎㅎ 전 국토의 양계장화를 위하여 일로매진하겠사와용~! ^^

  11. 모르는 연극이었음 소외감 느꼈을틴디(이런걸 염장용?) 저도 본 연극이라 아주아주 반가운걸요~그때는 국립극장의 무슨극장에서 했었는데, 저는 보고 엄청 울었었어요. 그 외..미화된 슬픔이랄까. 뭐 그런 걸 느꼈던 것 같아요 또 보러가고 싶네~

  12. 구렛나루저~/ 시종 웃을 수만은 없는 연극이었어요. 죽은 아버지의 유품을 들여다보며 깡소주를 마시던 강씨아저씨가 내뱉던 독백은 언젠가 행인이 내뱉던 독백하고 똑같았죠. 연극 말미에 돌아가신 동네 할머니의 비밀을 혼자 간직하는 독백은 조금은 오버라는 생각도 들구요. 어쨌든 다시 볼만한 연극은 맞는 거 같아요. 일단 제 취향으로는 그렇다는 이야깁니다. 헤...

  13. 이게 무슨 염장? 야게야게~

  14. 말걸기/ 흠... 글취??? 당고 블로그를 보면서 연구 좀 해야겠당... ㅋㅋ

  15. 이건 그냥 연극 얘기일 뿐-ㅅ-;;;
    그동안 제 블로그에서 뭘 배우셨던 겁니까-ㅅ-;;;
    학습의 효과가 너무 미약하여 실망실망 ㅋㅋㅋㅋㅋ

  16. 당고/ 헉... 염장의 대가출동... 역시 글쳐??? 뻥구라에 합당한 염장질을 위해서라도 당고 블로그를 계속 봐야겠심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