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의 검찰
지난 해 포항건설노조의 포스코 본사 점거사건 과정에서 검찰이 조직적으로 파업와해공작을 펼쳤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침부터 이 문제로 부산을 떨었는데, 이 난리통의 원인은 다름 아니라 대구지방검찰청 포항지청에서 발간한 한 권의 백서때문이었다. 무려 350페이지가 넘는 이 백서를 아침 댓바람에 받아들고 들여다보는데 이 와중에 들었던 생각은 대~한민국 검찰의 힘이다.
백서 첫 장에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이 책자는 민주노총 산하 포항지역건설노조 불법파업사건의 진행경과 및 이에 대한 검찰의 단계별 대책 등을 분석 · 정리한 것으로 대외적으로 공개될 경우 검찰의 발전을 위하여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으므로 보안에 각별히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시쳇말로 '썩소'가 절로 흘러나오게 만드는 이 문장은 "알림"이라는 친절한 제목 아래 달려 있었다. "검찰의 발전을 위하여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우려하면서까지 이 백서를 발간한 이유는 뭘까? 도대체 뭔 깡다구로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350페이지가 넘는 백서를 만들어 돌린 걸까?
결론은 무척 간단하다. 대구지검 포항지청은 이 사건에서 올린 혁혁한 전과를 자랑하고팠던 거다. 유래를 찾기 힘든 대규모 파업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고, 해당 노조를 거의 와해시켜버린 대~한민국 검찰의 자랑스러운 전적을 지들끼리만이라도 공유하면서 우쭐대고 싶었던 거다. 백서 곳곳에 드러나는 검찰의 자화자찬은 이런 취지를 충분히 보여주고도 남는다.
백서를 훑어보면 마치 한 편의 초현실주의 전쟁드라마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어찌나 정리를 잘 해놨던지 시시각각으로 변화되는 현장의 상황을 그대로 지켜보는 듯 하다. 이 땅의 검사들은 글도 잘 쓴다. 너무 잘 쓴 나머지 그 급박한 현장의 뒤켠에서 지들이 했던 짓들까지도 너무나 사실적으로 잘 묘사해 놓았다.
예컨대 검찰은 노조가 정식으로 파업에 돌입하기 하루 전인 6월 30일부터 긴박하게 동향파악에 나서고 있다. 물론 7월 1일부터 정식파업에 들어갔으나 그 전날인 6월 30일 오후부터 실질적인 파업에 돌입했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에 시기의 문제는 그닥 큰 것이 아니다. 그런데 검찰이 주장하는 소위 "불법파업"의 양상은 7월 1일부터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6월 30일부터 파업동향파악에 들어가고 3일 후인 7월 3일 불법성 검토를 끝내고, 그로부터 또 3일 뒤인 7월 6일 유관기관 대책회의를 여는 등의 치밀하고 기민한 대응을 전개했다. 이걸 검찰은 자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6월 30일부터 이루어진 검찰의 동향파악은 애초부터 건설노조의 파업을 불법으로 예단하고 이에 대한 사전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검찰은 "6.30(금)부터 노동청(동향보고) · 경찰(정보상황보고) 등을 통한 파업동향 파악 착수", "특히 포항제철소를 관할하는 남부경찰서 정보과 직원들과 긴밀한 협조체제 구축하여 신속한 파업동향 입수"를 하는가 하면, "6.30(금)부터 노조 측의 입장과 의도를 파악하기 위하여 포항지역건설노조, 민주노총 본부, 민주노총 경북지역본부, 민주노총 포항시협의회,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의 홈페이지에 상시 접속하여 자료 수집 및 관련 쟁점 파악'을 했다.
게다가 "위 5개 노동단체의 홈페이지를 epros의 '즐겨찾기'에 수록한 후 수시로 관련 문건을 검색하여 노조측의 주장과 의도를 파악함. 노조측이 (주) 포스코 본사건물을 점거한 이후에는 민노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파업사태에 관여하는 사례가 늘어나 민노당 홈페이지에도 접속하여 그들의 입장을 파악" 했단다. 도대체 검찰은 왜 아직 불법행위가 일어나기도 전에 불법행위가 일어날 것이라고 단정하고 사찰을 진행했을까?
언론에 보도된 대로, 검찰은 지방노동청이 건설노조 조합원들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하자 이를 중지하고 기 지급된 급여를 환수하라는 요청까지 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하중근 열사의 부검 현장에 노동자들의 결집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부검병원을 옮겨버리는 짓까지 했다. 이런 등등의 내용보다도 더 눈길을 끄는 것은 건설노조파업을 완전히 파괴하려는 작업을 검찰이 했다는 점이다.
청와대가 강경진압을 표명하자 검찰은 이에 따라 경북도경에서 본사건물에 경찰력을 투입하여 강제진압하는 방안을 확정한다. 이 때 경찰은 청와대의 강제진압방침에 따를 경우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로 강제진압에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이를 본 대구지검 포항지청은 경찰이 강제진압을 시도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사태에 대응했다고 한다. 검찰주도로 세워진 강제진압작전은 이렇다.
"건물 주변에 안전망 등 투신자살 기도에 대비한 조치를 취한 후, 헬기를 이용하여 경찰력을 옥상에 투입하고 동시에 대형 크레인을 이용하여 창문을 통하여 경찰력 투입"
지금 이게 파업농성자들을 해산시키려는 경찰작전인지, 아니면 건물을 점거한 테러리스트를 진압하기 위한 군사작전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다. 하중근 열사가 사망하자 검찰은 하중근 열사의 문중, 지역단체인 '애향회', 하중근 열사의 고향 면장 등을 종용해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룰 것을 설득하기도 한다.
사건 전개과정 전반에 걸쳐 검찰은 처음부터 끝까지 파업분쇄를 위한 기획조정과 실무지휘를 담당했다. 그 모든 내용이 이 350페이지가 넘는 백서에 담겨 있다. 검찰이 작성한 구속영장청구서에는 노조원들의 행위에 대해 '소요죄에 상당하는 사회적 위험을 야기'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고, "건설노조원들의 시위현장은 최소한의 법치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건설노조의 '해방구'"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방구라... 얘네들, 솔직히 이게 뭔 소린지 알고나 썼을라나?
이처럼 노동운동 탄압을 위한 공안검사의 진면목을 보여준 검찰들은 주제넘게 파업에 대처하는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건설근로자와 같은 일용직 노조가 파업에 돌입할 경우 신규인력충원을 일정기간(예컨대 1개월) 제한한 후 대체인력투입을 허용한다든가 또는 대체인력 투입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등의 입법적 조치가 필요함"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가? "일용직의 경우 노무제공을 거부하는 순간 고용관계가 종료되므로 신규인력을 충원해도 대체인력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법리에 맞는다"는 근거에서다. 검찰이 건설일용직 노동자, 소위 '노가다'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논리다. 이들에게 일용직은 그저 일당치기, 다시 말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일 뿐이다. 검찰에게 일용직 노가다들은 일하고 있는 그 순간만 '노동자'일 뿐, 손에서 일을 놓고 있을 때는 노동자가 아닌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거의 밑바닥 인생이라고 자조하는 건설노동자들은 이렇게 '인권검찰' 앞에서 노동자성마저 부인당한다. 이따위 정신나간 인권관념을 가진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인권보장을 하기 위해 선풍기 몇 대 구비했다고 백서에다 자랑하고 있다. 꼴같잖은 짓거리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하중근이 나타나야 검찰은 제정신을 차릴까?
검찰이 '범죄'에 대한 증오를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증오가 잘 못 발전하여 아예 어떤 대상은 뭘 해도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라는 예단을 가진 채, 그들이 뭘 이야기하는지조차 들어볼 새도 없이 입을 막아버리는 것은 검찰이 할 일이 아니다. 민주경찰? 인권검찰? 되먹지 않게 지들 직위 앞에다 호화찬란한 구호를 갖다 붙이기 전에 이 땅에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노가다' 판에서 허리 휘도록 들통을 지고 땀을 흘리고 있는지, 그들이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 사람들인지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원래 이 백서는 당에서 시급히 검토를 하여 검찰의 위법성 여부를 판단해달라고 요청하면서 보낸 자료다. 하지만, 검찰이 비록 싸가지가 없다고 해도 닭대가리는 아니다. 노동자들의 피를 말리기 위해 전심전력한 검찰이라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현행 법으로 지들이 지들 목을 옭아맬 천치같은 짓은 하지 않는다. 백서를 보니 역시 그렇다. 이땅에서 나름대로 내로라 하는 머리를 가지고 있는 검찰들, 현행법으로는 어떻게 해볼 수 없게 알아서 잘들 처신을 했다. 장하다, 그 머리. 그런 머리 속에 왜 인권이라는 아주 기본적인 소양은 없는 걸까? 하나 제대로 걸리기를 바라면서 이 오밤중에 다시 백서를 들여다보고 있지만, 아쉽도다, 법무부장관과 검찰청장 한 번 날려보고 싶으나 다시 한 번 확인하건데, 이것들은 닭이 아니다. 젠장...
행인님의 [무소불위의 검찰] 에 관련된 글. 그래도 싸워야지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