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힘
어차피 황우석 사태의 여파는 하루 이틀에 끝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물론 서너달만 지나면 사람들은 꽤나 먼 과거의 일인 것처럼 황우석의 사건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과학정책, 과학기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황우석 쯔나미의 여파는 못해도 5년은 가야 그 후유증이 어느 정도 가시지 않을까 한다.
황우석 사건 관련된 여러 가지 사회적 현상들이 있었다. 줄서기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정치인들, 연구가 아닌 정치에 휘둘린 과학기술정책, 영웅주의에 매몰되는 이성 등등... 그 가운데서도 앞으로 계속해서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현상 중의 하나는 인터넷을 통한 여론의 형성과정이다.
사건경과를 살펴보면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형성되는 여론이라는 것이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민주노동당이 올 초 정부의 과학기술 예산이 그 근거도 확신할 수 없는 한 사람의 개인 연구에 올인되는 현상에 대해 비판하자 인터넷이 후끈 닳아올랐었다. 졸지에 민주노동당은 반민족, 반애국세력으로 매도되었고, 이 틈에 정부여당은 오히려 한 술 더 떠 장기적인 황우석 지원프로그램을 가동한다고 선언한다. 그나마 이 때만 해도 이 사건이 이렇게 확대될 줄은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때였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사건이 터진다. mbc PD 수첩에서 황우석의 연구에 결정적인 딴지를 걸고 넘어진 것이다. 방영 전부터 황우석 지지자들로부터 방영을 할 경우에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을 받았지만 어쨌든 방영은 되었고, 그 덕분에 PD 수첩은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이 때부터 소위 '황빠'와 '황까'간의 공방이 시작되었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살신성인 가까운 역할을 하였다는 황우석을 못살게 구는 집단은 조직적으로 집단 구타를 당하게 된다.
인터넷은 실로 놀라운 현상을 보여주었다. 6%의 시청률을 보인 PD 수첩에 대해 95%의 네티즌들이 분노한 것이다. 거의 종교적 신앙의 수준으로 펼쳐지는 지지자들의 경이로운 인터넷 장악과 함께, 인터넷으로 형성된 그들의 힘이 오프라인의 촛불로 집결되는 현상까지 발생한다. 이제 그들의 주장에 반대하거나 황우석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은 온라인은 물론, 오프라인에서조차 설 자리가 없어진듯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또 다른 움직임이 벌어졌다. 생물학연구정보센터, 소위 '브릭'이라고 칭해지는 한 사이트에서 연일 황우석 논문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졌다. 이른바 소장과학자들이라고 불리우는 일군의 사람들이 진실을 밝히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던 거다. 이들은 사이언스에 게재된 황우석 팀의 논문에 대해 사진조작에 대한 의혹과 논문의 내용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또한 과학기술인연합이 운영하는 '싸이엔지'에서도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역시 현직 연구원, 교수, 대학원생 등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 사이트에서도 황우석에 대한 문제제기가 활발하게 벌어지게 되었다.
대중적인 사이트에서도 이 문제가 활발하게 토론되면서 의견형성의 장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디씨인사이드의 과학갤러리였다. 앞의 두 사이트가 일종의 전문가집단의 토론장이었다면 디씨 과갤은 전문가들은 물론 일반인들이 드나들면서 자신의 의사를 제기하고 새로운 논쟁의 씨를 뿌렸다. 그리고 디씨 과갤에는 브릭과 싸이엔지의 게시판에 올라온 각종 자료들이 퍼 날라졌고, 약간은 새로운 재해석과 패러디 등을 통해 보다 쉽게 대중들로 하여금 문제의 본질에 대해 눈을 뜨게 해주었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특이한 것은 각 사이트 게시판에 결정적인 주장을 펼친 상당수의 사람들이 모두 '익명'으로 글을 올렸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익명'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에 신빙성을 떨어트리지는 못했다. 오히려 이들의 입장으로 인해 이들이 '익명'이 아니었던들 이러한 주장들을 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소장과학자라는 타이틀이 붙기는 했으나 이들은 층층시하 윗 '어른'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입장들이었다. 그 '어른'들은 그들만의 커넥션으로 엮여 있는 사람들이었고, 그 와중에 자신의 실명을 거론했다가는 언제 어떻게 매장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 이들을 옭죄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 '소장' 과학자들은 '익명'으로 자신들의 견해를 밝히기 시작했고, 그 견해들은 '익명'이라는 믿지못할 가면을 극복하면서 가장 신뢰성 있는 정보로 기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이야기하던 진실은 지금 세상을 한 번 뒤집고 말았다. 또한 거의 신앙의 수준에서 이루어지던 비이성적 주장들을 잠재우기 시작했다.
처음 인터넷에서 벌어진 이상한 몰아부치기를 보면서 과연 이 상황에서 무슨 진실을 이야기하고 진보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낙담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낙담을 극복하고 희망을 가지게 만든 것 역시 인터넷의 사람들이었다. '익명'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는 것을 이번 사태는 웅변한다.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이 무엇인가, 그 내용이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아니면 거짓을 이야기하는 것인가가 중요했던 거다. 이걸 깨닫기 위해 엄청난 희생과 반목이 있었지만 그러나 그 아픔 뒤에 깨달은 이 사실은 소중하게 새겨야할 것이다.
물론 익명으로 감추어진 뒷면에서 온갖 잘못을 저지를 수 있음까지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절망을 이야기하면서 익명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없앴더라면 과연 오늘날과 같은 희망적인 상황을 우리가 만날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연장은 그 손잡이를 누가 쥐고 있는가에 따라 이렇게 살상무기도 될 수 있고, 반대로 세상을 풍요롭게 할 수도 있다.
덧말 : 같이 공부하던 학생들 중에 익명으로 이야기를 남기는 것에 대해 약간은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길. 그렇게 소통을 하는 것이 오히려 더욱 평등하게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방법일 수도 있다는 것을 기뻐하시길...
행인님의 [익명의 힘] 에 관련된 글. 그렇지, 요거지. 중요한 것은 너의 이름이 아니라 네가 진실을 말하는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