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다
노자의 치도(治道)라는 건, 예의 '정치(政治)'라는 것과는 구분해야 하는데,
정치의 근본을 타협으로 보는 입장에서든
아니면 그 근본을 불화로 보는 입장에서든
이러한 입장에서 논의하는 '정치'와 노자의 '치도'는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할 때,
행인이 볼 때 노자의 치도의 핵심은 바로 이 구절에 있는 듯 하다.
是以聖人之治, 虛基心實基腹 弱基志强基骨
대충 뜻을 보자면,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이라는 것)은
(백성으로 하여금) 마음을 비우게 하되 배를 불려주고
뜻을 약하게 하되 뼈를 튼튼하게 해주는 것
어떤 해석에 따르면 다스림의 대상이 백성이 아니라 다스리는 자(즉 성인) 본인으로 나오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이라는 것)은
(스스로) 마음을 비움으로 내실이 알차고
(무리한) 뜻을 자제함으로써 근본을 강하게 하는 것
앞의 해석이 통치대상으로서 백성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즉 백성을 어떤 식으로 다스릴 것인가에 주목한 해석이라면,
뒤의 해석은 통치주체로서 통치자가 가져야 할 덕목이 무엇인가에 주목한 해석이리라.
개인적으로는 전자의 해석을 취하는데, 왜냐하면 그게 도덕경 전체의 틀과 더 잘 부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어쨌든 선호취향에 따라 전자의 해석을 택할 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거다.
實腹强骨
즉 백성의 배가 부르고 뼈가 튼튼해야
虛心弱志가 가능하다는 것.
물론 이 두 쌍이 선후관계나 종속관계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동일선상에서 논의되어야 할 이야기겠지만,
어떻게 보더라도 앞의 것은 뒤의 것을 가능하게 하는 배경이 될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 나라가 조용하려면 무엇보다도 구성원들의 배가 불러야 한다는 것.
갑자기 이 대목이 생각난 이유는 어떤 분의 결기가 서린 선언문을 보았기 때문이다.
(링크는 했으나 안구훼손의 우려 있으니 클릭 전에 한 번 더 생각하시길 바람)
관련된 부가적인 이야기는 생략하더라도, 오늘 이러한 선언이 나오게 된 것은
아무리 봐도 선언을 낭독하고 눈물을 흩뿌리며 무릎을 꿇었던 저분이
자신의 實心强志를 위해 백성의 虛腹弱骨을 추구한 때문이라고밖에는 생각되질 않는군.
다스림의 대상이 백성이라고 해석하든, 다스리는 자 본인이라고 해석하든 마찬가지.
하긴 저 자리가 노자 생존시의 왕좌도 아니고, 말 그대로 '시민의 종복'의 자리일 터인데
애들 밥먹이자는 시민의 아우성을 포퓰리즘이라는 아리송한 말로 덮어버리는 것은 '종복'의 자세도 아닐듯.
부잣집 애들은 지 부모들이 돈내서 밥먹게 하자는 이상한 소리를 하는 시민도 있긴 하다만...
암튼 간만에 보는 햇빛 아래 쌩코메디를 보는 심정이 여간 요사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기분이 요사스럽죠...
쩝...
이 글도 e노트에 올렸습니다^^
괜히 다른 분들까지 기분 요사시럽게 해드렸군요. ^^;;;
서울시장님께서는 꼭 요즘에만 그런 건 아니었지만, 요즘하는 짓을 보면 정말 머저리같아요(-_-).
그나저나 행인님의 새 글 넘 오랜만에 봅니다. 그만큼 반갑고, 아, 이제 자주 와야겠구나, 라는 생각도 듭니다(^-^). 건강하게 지내고 계시면 좋겠어요!
무연님 오랜만입니다. ^^
두문불출을 끝내고(더 두문입고하고 있다가는 히키코모리가 될 듯 해서...) 다시 불질 시작했습니다.
건강하시고요~!!!
좋은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