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뉀장, 니나 먼저 하던가...
가끔 느끼는 건데, 결과론을 가지고 선견지명을 발휘하는 사람들을 보면 좀 웃긴다. "내가 한 말이 맞았지?"라고 하는 건 애교로 봐줄만 한데, 한참 난리가 났을 때는 닥치고 가만 있거나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다가 기껏 일끝나고 나면 그게 이래서 저래서 요렇게 조롷게 된 거니 내가 왕이삼 하는 사람들 보면 썩소가 저절로 흐른다.
행인이 블로그 시작한 게 벌써 만으로 6년이 되었는데, 아마 그동안 찌끄린 글 중에 거의 10위 안에 든 소재 중 하나가 "닥치고 대동단결" 까는 거였을 걸. 기왕에 대동단결이라는 말 자체가 가지고 있는 남한사회 내에서의 역사성이라는 것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렇듯이 그 앞에 달라붙는 "닥치고"에 주목하던 행인의 입장에서, 구라의 자유를 침해하는 "닥치고" 정신은 용납할 수 없는 것. 하여 한 두 번도 아니고 기회 있을 때마다 손가락에 물집잡혀가도록 키보드 두드리며 광분했던 것이 제발 "닥치고" 모이자던 자들에게 제발 그 입좀 닥치라고 했던 거였다능...
선거기간 중에 음으로 양으로 불굴의 "닥치고"정신을 발휘하던 사람들은 지금 뭐하고 있을까? 반엠비 한 길로 깃발들고 뛰었던 그 노고를 자찬하고 있을라나? 선거 끝나고 각종 언론에다 대고 한 마디씩 올리는 범상찮은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개인적으로 용납하기 힘든 전력을 가진 사람들 꽤 되는데, 어째 이 사람들이 남한 사회에서 진보인냥 하고 이름값 받으며 사는 사람들이라는 게 영 걸린다.
뭐 자세한 내막이야 알 사람은 아는 거고, 행인이라고 해서 다 아는 것도 아니고, 따라서 썰을 풀만한 것도 있고 풀 여지가 없는 것도 있고 한데, 그러므로 개인적 썰을 푼다기보다는 궁금한 것들이 여럿 있어 함 물어보고 싶어진다. 하긴 뭐 이 온라인 변방의 어느 구석탱이에 처박혀 신세한탄의 뻥구라만 늘어놓는 블로그에 그 중 누군가가 어쩌다 눈길이라도 한 번 주고는 '엣다 관심 하나 받아둬~!'하고 덧글 하나 남길 일 없겠다만, 그래도 좀 물어보고 싶은 건 물어보도록 하자.
항상 선거기간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그 시민사회라는 곳의 움직임이다. 무슨 시민단체니 진보진영이니 하는 곳의 다종다양한 집단들. 이 집단들은 도대체 정치라는 것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자신들의 입김이 정기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시기? 이건 뭐 자신들이 한국 진보운동의 배후라고 자부하는지도 모르겠다만, 아무리 이해를 해보려고 해도 이 동네 인류들은 무슨 생각을 마빡 안에 집어넣고 있는지 이해를 하기 힘들다.
'5+4' 한다고 설레발이 치면서 그 자리에 안 오면 마치 남한 진보정치운동에 대역죄를 짓는 것처럼 분위기 잡던 무슨 무슨 단체들은 그냥 제끼자. 그거 이야기해봐야 답도 안 나오고, 어차피 민주당으로 대동단결이야 반엠비 이전에 하던 짓 계속 하는 거니까 그려려니 한다. 제 버릇 개주겠냐. 민주노총? 이것도 역시 제껴놓자. 아직까지 민노총에 가지고 있는 한 줌의 기대라는 것이 영 쑥스럽긴 하다만, 꼭 그것 때문이 아니라 민주노총의 현재 스코어는 거의 정신줄 놨다는 거. 술처먹고 주사부리는 넘 데리고 진지한 얘기해봐야 얘기하는 넘이 븅딱이니 일단 제끼자.
그것보다 더 궁금한 건, 소위 시민단체 운운하면서 선거때마다 지들 영향력을 은근히 과시하려는 집단들. 이번 선거때 문자폭탄 돌려서 서울광장 돌려줄 후보를 찍자고 선동질 했던 어떤 단체의 예를 들어보자. 이 단체는 과거 노무현 탄핵때 "친노=민주, 반노=반민주"라는 얼토당토 않은 공식을 내놓고 활동했던 단체기도 하다. 물론 저 구호의 저작권이 이 단체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런 되도 않는 공식을 탄핵반대 촛불집회의 상징으로 만든 건 그 단체니까.
시민사회의 한 집단으로서 정치에 개입하고 정책을 제시하고 잘못된 정권의 행동에 대해 항의하는 거, 이거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해를 하기 힘든 건 이들이 어쩌다 자신들을 킹메이커쯤 되는 존재로 착각들 하고 있는가 하는 거다. 지들이 무슨 장자방이냐? 아닌 말로 집단적으로 이번에 우리는 어떤 정당 무슨 후보를 지지한다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게 선거법때문에 그렇다면 선거법 뜯어고치자는 운동이나 빡시게 해보던가. 민노총은 그나마 조직적 지지후보 명단이라도 올리는 센스라도 있지.
이건 그것도 아니면서 때마다 사람들 끌어모아 전대협의장 옹립하듯이 후보자 하나 만들어놓고 진보단일후보니 어쩌니 하고 있는 꼴들을 보면 어이가 없다. 예를 들어 이번에 서울시 교육감이 된 곽노현 선거운동과정을 보자. '진보후보'들이라고 나온 사람들 몇을 모아 놓고 몇이나 되는지도 모를 예의 그 시민단체라는 사람들이 모여앉아 지들끼리 쑥덕거리고 나더니 진보단일후보 운운한다. 왜 그렇게 된 건데?
거기들 모여 앉아 어떤 이야기가 어떻게 오갔고, 어떤 단체는 누구를 지지했고, 또 어떤 단체는 어떤 주장을 관철시키려 했고 뭐 이런 내용들을 유권자들 중에 몇이나 알고 있나? 교육감 후보 선정하는 과정에서 흘러나온 지저분한 이야기들은 차치하고, 막상 진보후보에게 표를 주고 싶어하던 행인같은 입장에서도 진보후보라는 사람이 얼굴을 내밀기까지 있었던 과정을 모르고 있는데 그 사람을 왜 시민사회게 일심단결해서 밀어줬는지, 다른 사람들은 왜 물러났는지 그 정도 이야기들은 좀 알려줘야 유권자들에 대한 서비스가 되지 않겠나?
아닌 말로 민교협 교수 몇 명이 작당을 하면 교육감 후보 하나 만들어내는 것은 식은죽 먹기고, 거기다가 전교조 논란을 피하고자 하는 골육지책(?)을 동원하다보니 대충 교수출신 명망가 한 둘 세워놓는 것이 진보교육감후보 선정이라는 비판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건 엔간한 보수집단만도 못한 처신인데, 2002년에 민주당이나 2007년 한나라당은 그래도 지들 후보들 중 대선후보 선출하면서 유권자들에게 광고라도 대박 했지. 어차피 절차적 민주주의는 보수더러 하라고 하고 진보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관철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래놓고 나서 기껏 한다는 소리들이 "40대의 야성" 운운... 아유 그냥 맘 편하게 386이 486으로 업글되었어요 드립이나 치지 무슨 야성씩이나... 이 이야기하는 김기식의 논리를 가만 들여다보면, 한국사회에서 일정한 "역사성"을 가진 현재 40대는 아무리 가 봐야 진보 보수 가리지 않고 제 주머니 채울 사람 찍는 수준의 정치의식밖에 가진 거 없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걸 무슨 논리라고 들고 나오는지. 하긴 정치를 덧셈뺄셈 수준에서 사고하는 두뇌가 유권자의 정치의식을 이정도로 판단한다고 한들 이상할 것은 없겠다만.
묘한 건 김기식의 논리, 또는 닥치고 대동단결 외치며 배후놀이 하느라 정신줄 놨던 각 단체 및 선거 끝나고 나니까 노회찬 때문에 한명숙 떨어졌다고 징징거리던 앵벌이들이 하는 이야기 중에 상당히 공통된 부분이 있다는 거. 뭐냐 하면 진보는 당장 선명성 주장하기 전에 파이나 먼저 키우라는 것. 예를 들면,
분립된 정당구조에서의 연합구조는 혁신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합이 혁신과 맞물리기 위해선 실질적 경쟁이 가능한 구조가 돼야한다. 미국 민주당처럼 리버럴부터 사민주의까지 하나의 연합정당 구조 하에서 헤게모니 경쟁을 하는, 각자가 정치적 주장과 대중적 기반을 확장해 가며 새로움 창출하고 변화를 강제해 가는 구조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한국 민주당도 그런 동력 없이는 집권에 성공하기 어렵다. 민노당도 이번 선거에서 실리를 챙겼다고는 하지만 민주당에 붙어서 간 것일 뿐이다. 야권 전체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민노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은 각자의 존재 이유와 그 이후의 전략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받은 것이다. 자기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자기 틀을 깨는 혁신방식을 택해야 한다. 합당 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를 넘어 범진보개혁 세력이 철학적, 정책적 공감대의 폭을 조금 더 넓게 짜면서 그 안에서 경쟁하는 구도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
미국 민주당을 연합정당이라고 하는 건 많이 웃기니까 좀 넘어가고, "자기 틀을 깨는 혁신"은 바로 그 뒤를 이은 자신의 말에서 근거를 소거해버린다. 즉 "범진보개혁 세력이 철학적, 정책적 공감대의 폭을 조금 더 넓게 짜면서 그 안에서 경쟁하는 구도"는 결국 "자기 틀을 깨는 혁신"이 아니라 "닥치고"정신으로 매진하던 사람들이 맨날 폼재며 남발하던 "구동존이" 그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지면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 굴로 갔다던 김문수는 "자기 틀을 깨는 혁신"의 선구주자냐?
여기서 또 재밌는 거 하나 발견하게 되는데, 이 김기식류의 논리가 프레시안과 진행된 심상정의 인터뷰에서 그대로 드러난다는 거. 묘한 데쟈뷰가 느껴지는데, 어째 2004년 보안법 철폐투쟁하던 때의 일이 생각난다. 당시에 "열우당 2중대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어쩌구 하면서 선동질했던 김기식이었고, 당은 또 그걸 금과옥조로 받아들고 뛴 당의 누구누구들... 이게 원래 짜고 치는 고돌인지는 모르겠는데, 숭고한 말들의 성찬에서 에피타이저와 디저트 빼고 메인디쉬만 들여다보면 우째 쟤들은 먹는 게 이렇게 똑같은지...
결국 이들의 감수성에 흐르는 동질감이라는 것은 예의 "닥치고" 정신. 인터넷 실명제라는 것이 인터넷에서 누구 깔 때는 그넘 실명 거명하면서 까라는 것은 아닐테니 실명을 까긴 그렇고, 모모 단체의 모모 인사들, 선거과정에서 누가 누구랑 단일화하고 누가 언제 사퇴하면 뭐가 어떻게 될 거라고 공적 자리에서 사적 자리에서 떠들고 다니는 거 한 두 명 본 것도 아닌데, 이들이 하는 이야기가 다 거기서 거기다. 웃긴 건 이네들이 어느 자리든 가면 진보인사 대접받고 다닌다는 거. 아 씨바, 진보인사연 하는 거 이제 그만 두고 본격적으로 정치컨설팅을 업삼아 하는 것이 더 좋을 텐데, 그건 왠지 뽀대가 안 나는 건가?
문제는 이런 류의 사람들이 가진 구라빨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과, 그 구라빨의 영향력이 꽤 크다는 거. 그러다보니 현실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사람들조차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판 깨는 것도 모자라서 무슨 "자기 틀을 깨는 혁신" 같은 거 하라고 등떠미는 수작은 어이상실이다. 니들이나 먼저 혁신하세요... 골방에 들어 앉아 지들끼리 수군거리다가 대놓고 진보후보 어쩌구 하면서 안 찍는 사람들 자괴감에 빠지게 하는 수작들 그만하고.
아우... 이거 웹서핑을 중단하던지 해야지...
행인님의 [혁신은 뉀장, 니나 먼저 하던가...] 에 관련된 글. 프레시안의 좌담과 마찬가지로 한겨레21의 인터뷰에서 역시 김기식은 조야한 정계개편의 구상을 늘어놓는다. 트랙백 건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던 바, 현실정치를 더하기 빼기로 계산하는 건 이네들의 고질병인지 한계인지 모르겠다. 김기식의 인터뷰에 관해서는 진보신당 당게시판에 그럭저럭 잘 비판한 것이 있으므로 그것으로 대신하기로 하고...라고 했으나 하나만 부연하자면. 지방선거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