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노동자가 작품속에서 어떻게 그려지나 쭉 찾아보려고 영화를 여럿 구해서 밤마다 보길 몇 주째.
정신없이 긁어 모으다 보니 "스크리머스"란 영화가 보인다.
이젠 많이 알려진 필립 K.딕의 소설 "두번째 변종"을 원작으로 1995년에 만들어진 영화가 있는데, 작년에 새 버전이 나왔다. "헌팅"이라는 부제를 달고.
보고 난 소감은.. 음.. 한 줄로 말하자면 만든 사람을 "헌팅"하고 싶다. 놀라운 반전의, 많은 생각꺼리를 주면서도 늘어짐 없는, 심지어 짧고 재밌는 원작소설을, 두 번에 걸쳐 영화로 만들었는데 왜 다 이모냥이냐... ㅡ_ㅡ 제 멋대로 몇장면 꼽아가며 얘기해볼테니 각자 판단해보시길. 원작소설 "두번째 변종"은 얼마전에 나온 SF단편집에 있으니 구해보긴 어렵지 않아요.
우선 소설과 공유하는 기본 설정은,
* 전쟁 중에 갈고리 형태를 기본으로 하는 살인기계로봇이 만들어짐
* 특정한 신호를 보내는 (영화에서는 "나 죽었음"이란 신호를 보낸다고) 장비를 갖고 있음 공격 안함. 그 밖에는 자비 없음
* 완전 자체 자동 생산, 지하 기지에서 기계가 스스로 모델을 개선해감.
소설과 다른 전제는,
* 배경이 지구가 아님. (원작은 지구에서 두 거대 세력의 대립.. 짐작하죠? 필립은 몇 십년 전 사람)
* 그런만큼 좀 더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듯.
첫번째 영화가 많이 아쉬웠지만 'SF소설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대개 그렇지'하며 그냥 가볍게 넘겼는데 십여년 이후 다시 만들어진 영화는 좀 다르지 않을까.. 싶어 기대를 하며 봤다. 영화 시작 장면은 왠 사람들이 어디론가 이동하다 살인기계로봇(스크리머스)의 습격을 받는다. (잔인한 장면 꽤 있음)
(어랏. 좀 강하게 나오네. 그래도 소설 처음 읽을때처럼 뭔가 긴장감은 있군. 95년판과 CG말고도 좀 많이 달라야할텐데.. )
그래도 다행히 한명이 살아서 목적지에 도착하고, 지구로 구조 요청을 보낸다. 이 행성의 모든 사람이 죽은 줄 알았던 지구 정부 연합(?)은 7인으로 구성된 특공대를 파견. 2달의 동면을 거쳐 목적지 별에 도착한다.
아.. 그러나 지각생처럼 과도한 기대를 갖는 사람이 있을까 염려해서 금방 마음을 놓고 즐기게 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아니 대체 이 "특공대"는 뭐하는 사람들이길래, 이런 위험천만한 임무를 맡기면서 목적지 다 와서야 임무를 설명하는것이냐.. 난 혹시 이들이 "두려움을 전혀 모르는" 전투의 달인들인가 했는데 계속 봐도 그런 면모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임무 직전에, 다시 한번 최종점검을 하는거겠지.. 했지만 계속되는 대화 장면들은 아무리 그렇게 보려고 보려고 보려고 해도 여유있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은 아니었다. 긴장한 얼굴들,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 아.. 나도 믿을 수 없다. 두번째 영화도.. 뭔가 아닌것 같다..
훌쩍. 마음 수양이 덜되어 쉽게 분노하고 좌절하는 건 내 마음일뿐. 다른 분들은 어케 느낄지 모르죠. 어쨌든 도착해서 생존자를 찾으러 특공대가 움직인다.
지하 공장. 여기서 기계들이 스스로 진화하며 자동 대량 생산을 하는데, 에너지가 딸려 잠시 쉬던 중. 그런데 이 특공대 중 한녀석이 (네 이런 사람 꼭 한명씩은 있어야죠) 딴 짓하면서 이들을 일깨운다.
생존자와 처음 만난 특공대는 오히려 그들에게 공격을 당한다. 지구에서 왔다는 말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스크리머스가 자체 진화한 새로운 타입의 기계로봇이 사람의 형상까지 하고 있기 때문.
어찌어찌하다보니 사람들을 6일 안에 안 구하면 이 행성이 운석들 때문에 쑥대밭이 된다 하고.. 서둘러야 하는데 특공대가 나간 사이 우주선은 스크리머스에게 털려서 연료 못 구하면 못 뜨게 되고.. 그래서 상종하기 싫은 "생존자"를 다시 만나러가고..
우연히 이 4차원 소녀를 구해준 걸 계기로 생존자의 아지트에 들어가는데..
뭘 썰다 왔는지 모를 낫으로 생살을 찢어 "피남.. 인간 인증"까지 해서 겨우 서로 인간임을 확인한다.
(이제부터 좀 혐오스런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저도 이게 싫었습니다. 필요 없이 기계들을 혐오스럽게만 만들어서 뭔가 감정이입같은걸 못하게 함 -_-)
그런데 참.. 위험한건 잘 숨겨놓던가 아님 외부인에게 미리 설명을 좀 하덩가, 아예 글로 못가게 하덩가 해야하는데 대체 이 생존자들은 지금껏 그런 정신으로 어떻게 살았는지 헐렁헐렁 이 외부 손님에게 "위험한 존재"들을 접하게 한다. 또 이 외부의 구원자는 무슨 오지랖인지 잘 알아보지도 않고, 지들 멋대로 시스템을 훼손해 가며 어쭙잖은 정의심을 발휘해서 모두를 위험에 빠뜨린다. 대체 이들이 여기에 사람을 구하러 온건지, 멸망시키러 온건지. 멈춰 있던 공장을 가동시키지 않나, 기껏 생포한 스크리머스를 풀어 주어 남아 있던 생존자를 거의 몰살시키지 않나 -_-
덕분에 드뎌 존재를 드러낸 인간형 스크리머스들. 어, 근데??
좀 놀라는 분도 있을텐데.. 죄송요. 좋은밤 되세요. 근데 사실 영화볼땐 안 무서웠어요. ㅜㅜ 도대체 V (2009)의 파충류 외계인처럼 안구 회전술을 쓰는 건지.. 기껏 인간과 똑같이 만들어놓고 왜 싸울때는 저리 되나요 ㅜㅜ
왠지 스타크래프트의 캐리건'님'을 떠올리게 하는 이 분들의 포스.. ㄷㄷ
아.. 사진은 그만 올릴게요. 그냥 보면, 뱀파이어 영화에서 좀 나와주시던 모습들하고, "기생수" 만화에서 우정 출연해주신 것 같은 분들이 좀 나옵니다.
역시나 목적지 다 와서야 임무 설명할때 예상한대로, "생각 실험"이라는 과학(혹은 '사변') 소설 SF를 영화화하면서 그냥 단순한 볼거리, 그나마도 참 안습인 B급 호러 영화로 가는 것 같습니다. 소설을 본 사람에게는 정말 너무나 뻔히 예상되는 진행, 왠만한 영화에서 흔히 나온 장치들. 긴장은 계속 풀려만 가고.. 아.. 소설 마지막에 주인공이 너털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 그 장면의 감동을 역시 영화에서 기대한 것은 무리였나봅니다.
흠. 그럼 난 이걸 왜 쓰는거지? 화가 나서? 흠 그런거였나 -_- 내가 생각하는 좋은 SF는 거의 대부분 다 읽고 났을때, 인간에 대해, 나와 다른 존재들, 관계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해주고, 평소에 하기 힘들었던 과감한 상상을 하게 해준다. 하지만 SF영화중에서는, 그렇게 해주는게 손에 꼽을 정도밖에 안되는 듯.
아.. 까고 싶은 부분이 너무 많아서 안되겠다. 내 성격 이상해진거 다 드러나겠음. 이 영화에서 가장 공포스러웠던 건 마지막 장면.
제발.. 속편 나오지 말아라 ㄷㄷㄷ
네 소설 재밌습니다. 소설을 보셔요. 반전 정말 끝내줍니다. 그리고 SF 영화만드시는 분들. 수고 많으시긴 한데, 기왕이면 한탄의 눈물이 아니라 감동의 눈물을 좀 쏟게 해주면 안될까요? ㅜㅜ
재밌고 박진감 넘치면서도 끝나고 나면 많은 생각꺼리를 남겨 주는 수많은 SF들. 그냥 충실히 원작대로 만들면 뭐 안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