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길을 잃다
- 원재길
꽃그늘 나무 그늘
흙더미 한쪽
스르르 무너지는 소리의 그늘
돌연 서늘히
눈앞 스치는 구름
드문드문
꿈결로 날아가는 꽃가루 그늘
귀 기울이면 들린다
물은 흙을 살리는 핏방울
벌레들 사각사각
핏물의 길을 연다
사람 흔적 없는 곳
나는 멍한 얼굴로
팔다리 그림자 내려놓고
그 위에 가만히 앉는다
스스로에게 묻노니
그늘끼리 허공에 풀려
몸 섞는 풍경은 아름다운가
지난날 더듬는 마음은 즐거운가
골짜기 어두워진 뒤까지 머물며
모든 생각 지우고 이곳에서
남은 삶 접는 건 어떨까
또다시 묻겠노니
사람 냄새가 늘 역겨웠던가
습한 날 팔뚝끼리 닿았다가 떨어질 때의
따뜻한 비린내
한눈팔며
다른 하늘로 가는 꽃잎 쫓는 이 순간
정떨어질 새 없이 사람 소리
다시 그리운 이 변덕은 사랑스러운가
- 원재길 시집 '나는 걷는다 물먹은 대지 위를' 중에서
2006/08/30 21:36
2006/08/30 21:36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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