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우라지게 퍼부은 뒤, 그는 나에게 라이터를 빌려달라고 했다.
내 라이터를 꺼냈지만 물에 흠뻑 젖어 불이 켜지지 않았다.
난 옆 사람에게 라이터를 빌려 그에게 건냈다.
그는 담배 한개비를 피운 뒤 떠났다.
비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대포처럼 쏟아지던 물줄기였다. 물대포라고 하던가.
라이터를 빌려서까지 건네준 건,
10년만에 만난 그 사람을 그냥 보내기는 불안했기 때문이다.
라이터라도 건네야, 10년 뒤에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10년 전, 그 눈은 평온한 사진관에서 내가 들고 있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렌즈를 빼고 있었다.
그 때, 내가 거울을 들어줬기 때문에 10년이 지나서 그를 만난 것같은 느낌.
그가 떠난 뒤, 다시 비가 우라지게 퍼부었다.
아! 대포처럼 쏟아지는 물줄기.
으슬으슬 떨리고, 10년 뒤가 기다려지는 느낌.
그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게 차라리 잘 된 일이다.
10년 뒤가 당장 오늘로 당겨지는 건 나도 원하는 일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