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행정과 지방자치: 이익ㆍ제도ㆍ이데올로기 시각에서

View Comments

아키즈키 겐고. 하정봉ㆍ길종백 옮김. 2008. 『행정과 지방자치: 이익ㆍ제도ㆍ이데올로기 시각에서』. 서울: 논형.
 
옮긴이들은 국가와 사회 사이에서 두 영역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이 지방정부로, 국가 입장에서 보면 가장 말단의 행정조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주민 입장에서 지방정부는 가장 가까운 행정이 된다고 하면서, 국가와 사회 속에서 분석할 때, 행정과 지방자치의 위치가 명확하게 이해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약간 편향된 느낌이다.
 
이 책은 ‘사회과학의 이론과 모델’이라는 시리즈의 하나로서 나온 것인 듯한데, 편집자의 말에서 드러나듯이, 공공선택론과 계량분석을 통합하여 다양한 사회과학의 이론과 모델을 정리ㆍ소개하는 것이 목적이다. 책의 부제를 보고 그럴싸하다고 봤는데, 그 실 내용은 그게 아니었던 셈이다. 아래 몇 가지 발췌한 부분은 있지만, 새롭게 내가 여기서 알게 된 것은 별로 없다. 지방행정론에 대한 교과서로 보기에는 조금 미치지 못하고... 

 

아래 발췌한 내용은 나중에 관련된 글을 쓸 때 혹시나 써먹을 수 있을까 해서, 또는 과거에 공부했던 것을 복습하는 겸해서 옮겨놓은 것이다.

 

○ 세 가지 ‘시각’으로서 이익ㆍ제도ㆍ이데올로기는 보다 안정적이다. 시각이란 인간과 단체 등 정치적 행위자의 행동패턴에 관한 결정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이데올로기는 ‘어떤 종류의 행동양식을 형성하고 유도하며 조직화 및 정당화하는 동시에 그 외의 행동양식은 부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현실을 묘사ㆍ해석ㆍ평가하는 신조 및 언어의 패턴’이다. (42쪽)
모델을 만들거나 이용하거나 혹은 정치현상을 분석할 때 이익ㆍ제도ㆍ이데올로기의 세 가지 시각을 의식하는 것이 유용하다. (52쪽)
 
○ 제도의 문제
제도는 사회 내 개인의 행동을 일정한 패턴으로 유도하며 이익의 배치상황까지 좌우한다. (47쪽)
일본에서는 몇 차례 지방제도를 근본적으로 변경하려는 구상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실현되고 있지 못한데, 그 이유는 첫째, 시정촌, 부현이라는 제도구조에 따라 사회의 조직화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부현이 없어지게 되면 지사직과 의원직이 없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의 여러 행위자들도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중앙정부의 행정기구도 마찬가지다. 2001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성청재편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다. 이렇게 성청재편이 난항을 겪은 것은 각 성청별로 잘 조직화되어 있는 관료들의 저항과 함께 각 성(省)ㆍ국(局)ㆍ과(課)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사회 내 이익단체의 힘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47-48쪽)
한번 탄생한 제도는 변경ㆍ폐지되기 어렵기 때문에 장기간 존속하는 경우가 많다. 제도가 장기간 존속하게 되면 제도는 중립성과 익명성이라는 성격을 획득하게 된다. 중립성과 정통성을 획득한 제도는 더더욱 장기간 존속하게 된다. 여러 나라에서 채택된 위헌법률심사 제도의 경우 제도를 탄생시킨 산파역(마샬 미 연방최고재판소 수석판사)의 의도는 연방파에 유리한 판결을 내리려는 당파성에 기초한 것이었지만, 오늘날 이러한 점 때문에 위헌법률심사 제도의 정통성을 의문시하는 사람은 없다. (48-49쪽)
제도에는 보완성이라는 성격도 있다. 제도는 몇 가지 관련된 제도가 상호의존적으로 기능한다. 초등교육, 중등교육, 대학 등의 교육제도가 그 좋은 예다. 어떤 계기로 하나의 제도가 변하면 이에 관련된 제도들의 변화가 도미노처럼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제도의 보완성이라는 성격은 그만큼 제도개혁이 어렵다는 점을 나타낸다. (49쪽)
 
○ ‘행정’은 어디에 위치하는가
국가와 사회와의 관계에서 행정의 위치는 유동적이다. 행정의 위치는 행정의 정의에 따라 다르며, 행정과 정치와의 관계, 즉 어떤 방식을 통해 정치가 행정을 통제하는가, 그리고 사회 내 다양한 이익이 행정에 어느 정도 침투하는가라는 것에 따라 변화한다. (57쪽)
 
○ 사회의 기능적 분화와 지방정부
다원주의 모델의 발전은 국내의 지리적 단위로서의 지방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1960년대의 소위 지역권력구조논쟁에서 다원주의 논자들은 미국 도시정치를 폐쇄공간으로, 그리고 국가의 축소판으로 간주하여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정치현상을 분석하였다.
코포라티즘과 국가주의에서는 많은 경우 지리적인 단위로서의 지방과 지방정부를 분석의 초점에서 제외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코포라티즘 분야에서는 ‘지역(region)’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중범위 차원인 지리적(지역, 지방정부), 기능적(정책영역) 하위체제에 한정하면 코포라티즘의 적용 가능성은 높아진다. (66-68쪽)
근대화라는 과정이 가져온 ‘제1차적인 공동성(민족ㆍ언어ㆍ종교ㆍ동일공간의 지속적 공유 등의 요소로 구성됨)과 제2차적인 사회적ㆍ경제적ㆍ정치적 편성원리(시장관계ㆍ행정ㆍ통치기구ㆍ교육제도 등)’의 긴장관계 속에서 ‘후자의 차원적 우위’가 점차 명확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대국가에서 지방정부의 활동, 사회에서 지리적 연계, 경제성과의 지역별 다양성 등에 연구자들은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의 ‘부활’(“puting region back in”)이라는 문맥에서 국가와 사회와의 관계 전체를 재점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69쪽)
지방정부의 행정서비스 확대, 지방재정지출의 확대라는 양적변화의 배경에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심이 중복된다는 문제가 있다. 중앙은 외교ㆍ사법ㆍ국방 기능을 담당하고 지방은 사회서비스를 담당한다는 고전적 역할분담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중앙정부는 교육ㆍ문화ㆍ보건위생ㆍ의료 등 지방정부가 주로 담당하였던 사회서비스를 비롯해 최근에는 환경보전 문제에까지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와 함께 기술혁신에 의해 과거 지역수준에서 완결되었던 사업도 전국규모로 확대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정부간 관계론이 등장하게 되는 배경이 된다. (70-71쪽)
 
○ 전문기능화ㆍ네트워크ㆍ지방정부
정책네트워크에 관한 논의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논점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이러한 정책네트워크론은 국가가 사회로부터 완전히 자율적이지 않다는 발견에서 출발한다. 둘째, 전문가들의 집단, 소위 ‘전문가 공동체’라 불리는 특정문제에 관한 전문지식ㆍ기능을 상당부분 배타적으로 공유하는 집단에 대해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Laffin, 1986). 셋째, 이러한 정책네트워크는 유동적이다. 어떤 한 정책영역을 설정하였다 하더라도 시간의 경과와 함께 그 형태가 변화하기 때문에 과거의 분류유형과 현재의 분류유형이 다를 수 있다. 넷째, 이러한 정책네트워크 논의는 소위 중범위 수준의 분석도구, 즉 정책영역 별로 다양한 과정을 설명하는 것에만 한정되지 않고 거시수준의 이론모델로 연결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77-80쪽)
정책네트워크가 지방자치, 지방정부에 갖는 함의: 첫째, 정책네트워크론은 지방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간주하는 전제조건하에서 지방정부를 국가(중앙정부)로 의제하여 지방정부와 주민, 각종 단체, 기업 등 사회 내 행위자들과의 관계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또한 지방정부와 한정된 국가행위자 간의 배타적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경우도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지방정부가 국가와 사회에 걸친 정책네트워크에 대해 다양한 전략을 동원하여 침투를 시도한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정책네트워크가 형성되면 국가차원에서 한 관청이 가지는 정책전반에 관한 통제력은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경향이 있다. 그 경우 지방정부 지도자들은 정책네트워크에 참여함으로써 정책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정책네트워크에서 전문가(professional) 공동체가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지방정부가 전문가 공동체와 어떤 관계를 맺는가는 지방정부의 자원과 전략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81-83쪽)
 
○ 지방자치: 그 존재이유
(1) 목적으로서의 지방자치 (96-98쪽)
- 자기 통치(self rule): 자기 지배 소망을 만족시키는 정치적 방법으로 자신에게 가능한 한 가까운 정부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방법이 있다. 지방자치제도는 인간의 이러한 본질적인 소망에 합치되었기 때문에 많은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 지역 자율성(regional autonomy)
(2) 도구로서의 지방자치
- 효율성: 제국의 한계(아무리 교통과 통신 등의 기술이 진보한다 하여도 단일한 권력체제, 정치체제가 지배 혹은 통치할 수 있는 범위는 물리적ㆍ심리적으로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것)에 대처하기 위한 효율적 통치시스템으로서 지방자치제도라는 성격은 민주주의 체제의 확립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공리주의자들은 한정된 자원을 유효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정 범위 내에서 지방정부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편이 오히려 통치에 효율적이라는 이유에서 지방자치를 촉진 내지 추진하려 하였다. (98-99쪽)
- 중층적인 접근 점(access point): 메디슨 등 미국의 고전적 다원론자들은 다원적 정치사회에서 주와 지방정부가 중층적인 접근점으로서 기능할 것을 기대하여, 보다 강력한 중앙정부를 수립하려고 하면서도 주와 지방정부의 존재를 제도설계에 불가결한 요소로 생각하였다. 어떤 국면에서는 패자일지라도 다른 국면에서는 이를 만회할 가능성을 보장하는 수단으로써 자치의 의의를 인정하였던 것이다. (99쪽)
- 정책의 선택지(대안)
 
○ 잭슨주의의 제도화와 지방자치
잭슨의 대통령선거 승리는 미국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반영한 것이었다. 상인, 금융업자, 무역상, 대농장경영자 등으로 구성된 독립당시의 안정된 통치연합은 지리적으로는 서부에 위치하면서 토지를 갖지 못하여 개척을 통한 정주를 되풀이하는 사회의 하위 계층, 이른바 ‘서민’으로부터 도전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잭슨은 그러한 서민들의 대변자였다. 그들의 정치적 태도와 사고방식은 잭슨의 선거, 잭슨의 통치를 거치면서 점차 이데올로기적인 색채를 띠게 된다. 그 핵심 내용은 통치에 있어서 귀족태생, 특수한 능력, 그리고 대학 등에서 획득하는 교양이나 자격이라는 것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며 만일 그러한 조건들을 필요로 하는 통치체제라고 한다면 그것은 올바르지 않은 통치체제라는 신념이다. 통치에 종사하는 공직자는 오로지 선거에 의해서 선출되어야만 한다. 공직에 의해 선출되는 자리가 많을수록 좋으며 그 임기는 짧을수록 좋다(long ballot, short term). 왜냐하면 이런 방식이 피통치자가 통치자를 통제하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선거에서 피통치자의 의사형성, 의사전달을 위한 가장 유효한 수단은 정당이라고 간주된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통상 잭슨 민주주의(Jacksonian Democracy)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방식은 지금도 주와 지방차원의 정치에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117쪽)
잭슨민주주의와는 대조적으로 19세기 후반의 시정개혁운동 추진자들은 통치에서 전문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선거는 의회와 단체장 정도로 한정하고 당선자에게는 타 공직에 대한 임면권을 포함한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자는 것이다(strong mayor system). 정당은 민의를 반영하는 것보다 민의를 왜곡할 우려가 있으므로 부정적으로 생각하였다. 선거와 행정의 집행에서 부패방지를 중시하였으며 이를 위해 공직선출에서 엽관제를 폐지하고 실적주의를 도입하였다. 또한 시정개혁운동은 학문으로서의 행정학을 탄생시켰다. 행정학이 그 태동기에 정치와 행정의 명확한 구분이 필요했던 것은 이러한 시대배경에서 볼 때 당연한 것이었다. 개혁운동은 부정부패를 근절하기 위해 주와 시의 통치구조 개혁을 추진하였으며, 그것은 일정정도 실현되었다.
잭슨 민주주의와 개혁주의라는 통치에 대한 두 개의 상반된 이데올로기는 미국의 정치 전체 그리고 지방자치의 큰 조류로서 현재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Johnson et al., 1990: appendix, 7). (118-119쪽)
 
○ 인권과 지방자치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나 총체로서의 국가보다도 그 권력을 행사하는 데 ‘상대적으로 강제적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면 지방자치를 촉진하는 것이 인권을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March and Olsen, 1989: 97). 
때로는 자치 그 자체가 가치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또한 경합하는 여러 가치들을 어떻게 조화시키는가라는 문제도 지방자치의 운영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125쪽)
 
○ 아마카와 아키라(天川晃)의 집권ㆍ분권/융합ㆍ분리 모델
집권과 분권의 문제는 다양한 정책결정 권한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어느 쪽이 보다 강한가라는 것이다. 아마카와는 융합과 분리를 중앙의 결정을 중앙의 특별행정기관에서 실시하는가 아니면 지방에 분담시키는가라는 일종의 사무배분에 기초하여 정의하고 있다. (139쪽)
어떤 특정한 사업 혹은 정책영역이 중앙정부, 지방정부 어느 쪽의 관할 하에 속하는지가 명확하게 되어있는 경우는 ‘분리적’, 혼재되어 중첩되어 있는 경우에는 ‘융합적’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한 국가 통치시스템에 대해 융합적인가 분리적인가를 측정하는 경우 당연히 모든 정책영역을 고려한 종합적인 판단이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중앙과 지방, 양쪽 모두 정당화 가능한 동시에 관심이 있는 영역에 대한 판단 방법일 것이다. 즉 어떻게든 한쪽의 정부수준에 일임하려는 태도를 취할 경우 분리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고 복수의 정부 차원의 관심, 혹은 관여의 중복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오히려 협동을 위한 제도를 정비하여야 한다는 태도를 취할 경우에는 융합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44쪽)
 
○ 토포크라트(topocrat)
통치상 전문지식과 기술의 필요성은 행정기관과 행정관료의 분화를 가져왔다. 미국에서도 행정의 여러 기능이 세분화되면서 특정한 지식을 갖춘 이른바 테크노크라트(technocrat)로 불리는 소수 전문 기술관료 집단의 영향력 증대경향이 지적되기 시작했다. 새뮤얼 비어(Beer, 1978)에 따르면, 이러한 테크노크라트의 대두와 함께 그 대항자로서 토포크라트가 등장한다고 한다. 토포크라트는 그리스어의 ‘토포스’(장소)에서 파생된 조어로서 지역적 단위로부터 정치적인 위임을 받아 그 지역의 전체적 이익 증진을 도모하려고 하는 선출ㆍ비선출직의 정치 엘리트를 가리킨다. 그들은 단독으로 혹은 단체장 및 지방의원의 전국조직이라는 장을 활용하여 활동한다. 비어는 이러한 현상을 ‘중앙집권과 지방분권의 분석틀로서는 파악하기 어려운 연방제 대표구조의 변화’라고 본다. 아울러 지역과 기능의 대립이 지방정치의 지도자들에게 일종의 정통성을 부여하는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토포크라트의 관심 범위는 그들 권위의 원천인 지역의 경계선에 한정된다. 이념형으로서 토포크라트는 특정한 기능적 이익에 대해서는 일체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만일 그들이 특정한 기능적 이익에 편향되어 지역전체 이익에 손해를 끼쳤다고 지역주민들이 판단하는 경우, 그들의 정통성은 무너지게 된다. 한편 이념형으로서의 테크노크라트는 특정 지역에 대해서는 일체 관심을 두지 않는다. (146-147쪽)
라이트는 ‘말뚝 울타리 연방주의(picket fence federalism)’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각종 이익단체가 정책영역별로 연방ㆍ주ㆍ지방자치단체라는 정부차원을 종단하는 형태로 발달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항하는 것으로서 정부차원별로 전국횡단적인 조직(소위 Big Seven, 미국 주정부 및 지방정부와 관련된 지방연합조직)이 형성되어 있다. 전자가 자신의 지분확대를 위해서 개별보조금 획득에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후자는 주ㆍ지방자치단체의 재정에서 보다 운용 폭을 넓히기 위해 세입공유(revenue sharing)제도의 도입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 양자의 긴장관계가 미국 연방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토포크라트의 활동은 이러한 전국횡단적인 지방조직의 로비활동에 그치지 않고 개별적인 지방정치가들의 지도력 발휘라는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주지사의 법적 권한강화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이는 주민이 지방정치 리더가 발휘하는 기능적 이익에 대한 대항력에 기대 내지 일정한 지지를 보내고 있음을 시사한다(Wright, 1990). (147-148쪽)
 
○ 티부(Tiebout) 모델
티부 모델이 지방재정 논의에서도 아주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이유는 그것이 현실의 지방정부가 납세자 획득경쟁을 서비스와 세율의 패키지를 통해 행하고 있다는 것, 또한 주민이 어느 정도까지 그러한 지방정부가 제시하는 패키지에 따라 실제로 주거지를 바꾸고 있는지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였다는 점이다. 티부 모델은 현실 관찰에서 도출된 모델이 아니라는 약점이 있지만, 현실 발견을 촉진하는 기능을 담당하였다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172쪽)
 
○ 피터슨(Peterson) 모델
피터슨은 『도시한계(City Limits)』에서 미국 연방제 가운데 도시가 놓여 있는 구조적인 위치를 명백하게 하면서, 복지(또는 재분배)라는 정책영역에서의 정부간 관계의 특징을 묘사하고 있다. 피터슨에 따르면 주민이 세금 부담으로 얻는 편익과 세금의 비율, 그리고 공공서비스의 수요와 공급 비율과의 2개의 선이 교차하는 점에서 공공지출은 최적규모가 된다. 또한 피터슨은 ‘도시 이익’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지방정부가 복지정책을 열심히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피터슨에 의하면 도시의 이익증진에 공헌한다고 생각되는 개발정책, 즉 도시의 경제적인 가치를 증진하려는 기업유치정책이나 관광자원보호정책 등은 주민의 지지를 얻기가 쉽다. 한편 재분배정책, 즉 수익자(복지서비스의 소비자)와 부담자(그 때문에 필요한 세금을 납부하는 자) 간에 불일치가 생기고 그 결과 소득계층 사이에 자원이 이전되는 정책은 주민 사이에서 지지의 차이를 발생시킨다. 즉 재분배정책을 충실하게 실시하는 것은 이미 살고 있는 저소득자층의 지지를 받을 뿐만 아니라 타 지역으로부터 그러한 서비스의 제공을 기대하는 저소득층의 유입을 불러온다. 반대로 편익보다 부담이 커지는 소득수준이 높은 주민은 이러한 정책을 지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선호와 더 일치하는 지방정부로 거주지를 옮기고 만다. 부유한 이주자들이 이주하게 되는 도시는 당연히 재분배정책에 다른 지역만큼 열정을 기울이지 않는데, 그 도시의 지방정부에게 이러한 유입은 그 자체로 잉여자원(세금부담 능력이 높은 신주민)을 낳고, 도시 이익에 일치하기 때문에 재분배정책에 열정적이지 않은 태도를 지속하게 될 것이다(Peterson, 1981: 20-38). (173-174쪽) 피터슨은 복지정책과 지방정부의 관계에 관한 기존 연구와는 달리 정치가나 행정관의 선호 등의 요인에도 불구하고 지방정부에는 구조적인 제약이 있기 때문에 복지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고 하였다. (175-176쪽)
피터슨과 마크 롬(M. Rom)은 복지서비스 수준의 격차에 의해 복지수급자의 이동이 발생한다고 하는, 이른바 ‘복지의 자석효과’에 대해 검증하였다. 그들은 복지의 자석효과를 검증하는 데 직접적 관찰대상인 낮은 수준의 주로부터 높은 수준의 주로의 수급자의 이동에 더하여 해당 주에 거주하는 빈곤층의 정주 정도와 합쳐 표준화한 빈곤율을 고안하였는데, 복지수준이 올라갈수록 빈곤율도 상승한다고 하는 정의 상관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Peterson and Rom, 1990: 2-71). 즉 주를 포함한 지방정부 지도자들이 복지를 충실하게 시행할수록 도시의 경제적인 지위를 저하시킨다고 하는 딜레마에 실제로 직면하고 만다는 것을 확인했던 것이다. (176쪽)
 
○ 이중국가론
손더스는 국가구조에는 중앙과 지방의 이중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다원주의 모델은 지방차원의 경합적이며 개방적인 정치과정에 적합하고, 마르크스주의 모델은 중앙차원의 코포라티즘적인 정치과정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다원주의 모델은 노동재생산 비용을 낮게 억제하려는 목적으로 행해지는 ‘사회소비(social consumption)’에 해당하는 공공지출을 둘러싼 과정이며, 마르크스주의 모델은 생산성 향상을 목적으로 한 ‘사회투자(social investment)’에 해당하는 공공지출을 둘러싼 과정이다. 사회소비는 지방정부가 주민에 대한 투자나 서비스 제공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지지만 사회투자는 중앙정부에 의해 사적 부문(private sector)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두 개의 국가기능은 때때로 충돌하지만 지방정부가 사회소비를, 그리고 중앙정부가 사회투자를 맡는다고 하는 기능분화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손더스는 그 이유를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
첫째, 사회소비 기능이 필연적으로 사회투자 기능에 종속되는 것은 사회투자가 생산을 지속하기 위한 조건들을 정비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둘째, 지방주민에 대한 (지방정부의) 민주주의적인 책임은 필연적으로 중앙차원의 코포라티즘 전략에 의해 저해받기 때문이다. 셋째, 대개 자본주의 사회에서 (복지 등의) 사회적인 필요(needs)를 요구하는 이데올로기가 개인 소유권의 이데올로기 앞에 굴복하기 때문이다(Saunders, 1981: 34). 즉 사회투자는 결국 사회소비와 충돌하여도 우선되어진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회투자가 사회소비에 비해 이익으로서 더 중요할 뿐만 아니라,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에 종속된다고 하는 제도적인 구조에 의해 확보되기 때문이며, 나아가 이데올로기로서도 더 강고하게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중국가론 모델은 영국에서 대처 정권에 의한 복지국가 해체 시도의 흐름과 맞물려 발생하였던 노동당 좌파가 장악한 지방정부와 대처리즘하의 중앙정부와의 다툼이라고 하는 현실정치의 전개 하에서 어느 정도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되었다. 그러나 영국에서도 이에 대한 상당한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먼저 이중국가론이 너무도 결정론에 기울어 중앙과 지방 리더의 정치적 책략 등의 연구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중국가론은 국가와 사회의 관계 그 자체에 초점을 둔 나머지 중앙ㆍ지방을 포함한 공공부문 내부의 조직이나 전략을 소홀히 다루었다. 다음으로 자본주의 국가의 공공지출을 이 모델과 같이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어느 정도 타당한가라는 의문이다. 예를 들어 교육정책은 개개인의 교양을 높여 사회생활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의미에서는 사회소비적인 요소를 지니는 것이지만, 동시에 노동력의 질을 높여 생산성을 더 향상시킨다는 의미에서는 사회투자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국가기능의 분류가 곤란하다고 하는 문제는 오코너(O'Conner) 등도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떠한 예산항목도 그것의 주요한 목적을 판별하고, 어떤 정치적ㆍ경제적 세력에 공헌하는가를 판단하는 것으로 대략적인 분류가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러한 모호함을 남긴 구분에 따라 정부조직이나 그 외의 정치행위자가 어떻게 행동하며, 어떠한 정책과정을 거치게 되는가가 결정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왜 그러한가 라는 의문이 남는다. 나아가 사실인식의 문제로서 예컨대, 어느 정도 중앙정부의 구속 하에 산업정책 등의 사회투자가 있지만, 점차 영국에서도 지방정부의 중요한 역할로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것, 또한 전국 기준에서 중앙정부가 행하고 있는 사회보장 프로그램도 존재한다는 것 등을 들어서, 이중국가론 모델이 시사하는 정도로 단순한 기능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177-179쪽)
 
○ 공공부문에 의한 서비스 제공에 대해, 어느 정부 차원이 서비스 내용의 결정권을 가질 것인가의 논의는, 국내의 통일적 기준에 적합한 평등하며 지리적인 조건에 따른 격차 없는 서비스와 지방별 특수 사정을 고려에 둔 개성 있는 서비스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에 의하여 결정된다. 일본에서는 전자의 평등한 공급 쪽에 중점을 두어 왔다. 따라서 중앙정부가 권한을 보유하고 (행정)지도를 통해 평균적인 서비스 제공이 이루어져 왔다. (202쪽)
 
○ 이와사키 모델
이와사키 미키코는 분권개념에 대해 전체차원(중앙정부)과 지역차원(지방정부)의 법적인 관계, 결정자와 집행자의 위치, 지역차원의 재정, 각각의 시민과의 관계 등을 근간으로 하여, 연합형ㆍ연방형ㆍ단일형ㆍ출장형의 4가지 주요 모델을 제시한다. 연합형은 전체차원의 기관이 지역차원의 복수정부에 의해 창조되고, 시민은 지역차원에서만 참정권을 지닌다. 연방형은 전체차원ㆍ지역차원이 각각 독자적인 헌법을 지니며, 시민도 각 차원에 모두 참정권을 지니고, 양자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대등하다. 단일형은 전체차원 정부에 의해 지역차원의 정부가 창조되는 관계이지만, 양자 모두 시민이 참정권을 지닌다. 양자의 관계는 전체차원이 결정하고 지역차원이 집행하는 측면과 전체차원이 지역차원의 결정에 영향을 주는 측면 등이 있다. 출장형은 전체차원의 조직 일부로서 지역차원 기관이 존재하고, 시민은 지역차원에 대한 참정권이 없다. 이러한 각 주요 모델 중 지방차원이 결정(가정)에서 지닌 영향력과 집행(과정)에서 행사하는 재량을 기준으로 하여 다시 4개의 분류가 있다. 이와사키 모델에서 집행자의 재량 등은 하위 모델 중에서 처리되며, 최종적으로는 시민에 의한 접근 내지는 의견표출 통로가 보장된 정부단위가 어느 수준까지 공존, 경합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에 의해 분권의 정도가 측정된다. (205-206쪽)
 
○ 분권을 둘러싼 이익ㆍ제도ㆍ이데올로기
(1) 이익
분권개혁을 추진하는 데 과연 어떠한 이익이 작용하고 있는 것인가?
우선 국가 행위자 중에서 중앙정부가 집권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에서도 분권화개혁의 경우 때때로 ‘관료의 저항’이 있었다. 확실히 중앙 관료가 분권을 열심히 추진하는 것은 통상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다. 다만 몇 가지 유보사항이 필요하다. 첫째, 중앙관료제에서 지방정부와 직접 연결된 관청이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그 관청의 방침에 따라 분권개혁이 진행되는 경우이다. 둘째, 국가 행위자로서 중앙관료제를 넘어서는 정치적 영향력이나 법적 권한을 지니는 행위자가 관료를 뛰어 넘어서 지방분권 추진을 시도하는 경우 국가주도형 분권이 된다. 영국의 블레어 정권의 분권개혁은 수상 자신과 아주 소수의 측근이 협의하여 단기간에 결정하고 그것을 국민투표에 회부했던 것이다. 셋째, 국제환경 변동 등의 영향을 생각하는 경우 중앙관료제가 적극적으로 분권을 추진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관청 형성(bureau-shaping) 모델에 따르면 관료는 자신들의 기능을 정리하여 재량을 확대하려고 한다. 이 경우에는 중앙관료제가 오히려 지방분권을 촉진하거나 거기에는 이르지 않더라도 높은 비용을 투입하여 저지하려는 선택은 하지 않을 가능성이 남아 있다. (215-216쪽)
지방정부는 기본적으로 분권에 찬성할 것이다. 정치에 참가하는 행위자로서 영향력과 재량 확대는 바람직한 것이며, 그것을 제도적으로 안정시키는 것이라면 추진을 찬성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유보가 필요하다. 지방정부도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며 조직단위의 수는 지방정부가 더 많다. 지방정부가 분권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과 관련하여 지방정부 내부는 두 가지 측면에서 분열될 가능성이 높다. 첫째는 제도상 위치다. 분권개혁의 수익자 내지는 분권의 주요 담당자가 어떤 정부 수준이 될 것인가가 명확해지면, 정부 차원 간에 의견차이가 발생하며, 단지 지방분권추진으로 정리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 된다. 둘째는 윤택한 지역과 빈곤한 지역의 사회경제적 격차다. 재무내용이 좋은 지방정부, 지역 내에 우량 기업이 있어 조세수입이 윤택한 지방정부라면 개혁에 적극 지지를 하겠지만, 중앙이 관리하는 지역간 격차 보정 계획에 의해 재정을 지탱하고 있던 지방정부는 오히려 반대로 돌아서게 되는 것이다.
사회의 중요한 이익인 비즈니스 단체 등의 행위자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완전히 다른 방향성이 시사되어 왔다. ‘분할하여 통치하라’는 격언대로 국가권력보다 세분화된 지방정부로 권한을 이전하는 편이 비즈니스로서는 제어하기 쉽다고 생각하여 분권을 추진 내지는 지지할 것이라는 것과, 지방분권이 지나치면 경제활동 등의 규제 및 관여가 지리적인 단위에 따라 제각각 이루어지는 것으로 인해 비용이 커지게 되므로, 특히 전국 규모의 시장에서 활동하는 비즈니스 단체의 경우는 분권에 반대할 것이라는 두 견해이다.
개발도상국에 원조를 실시하는 국제기관이나 선진국 원조기관의 경우 분권화를 촉진하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최근에는 우세한 것 같다. 그 배경에는 분권화가 높은 참여와 응답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좋은 정부(good governance)’로 이어진다는 기대와 함께, 지금까지 원조 장애(bottle neck)가 중앙정부의 관료제나 국가원수급 거물의 부패에 그 원인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분권화를 통해 원조 프로젝트를 직접 모니터링하는 편이 낫다는 인식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방분권화는 권력의 세분화를 낳고 이에 따라 점검 및 감시능력이 저하되며, 지방 보스의 할거주의 부패도 심화된다고 하는 정반대의 견해도 있다. (216-218쪽)
 
(2) 제도
분권개혁은 기존의 제도를 전제로 하여 그것을 변경하고, 미세조정하면서 진행하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 경로의존의 문제다. ‘어디로 갈 수 있는가는 어디로부터 왔는가에 의존한다. 현재의 발전은 과거의 발전경로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제도 중에서도 각 국가의 기본적인 통치 틀을 설정하는 것은 헌법이다. 헌법 개정을 고려하지 않는 분권개혁의 경우 당연히 헌법이 개혁의 범위를 제한한다.
일본 전후의 지방제도개혁 시도는 제도로서의 지방정부를 개편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즉 개혁을 통해 행위자의 종류, 수, 명칭 등을 크게 바꾸는 것을 지향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분권이란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 담당되어지는 것이다. 소멸되는 지방정부(차원)가 있다면 그 대상이 되는 지방정부는 필사적으로 방해하려고 할 것이다. (218-220쪽)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3/23 20:35 2010/03/23 20:35

댓글0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피의자 신상공개 문제에 대해

View Comments

새벽길님의 [사형제, 전자발찌 확대는 아동·여성의 안전을 위한 것이 아니다] 에 관련된 글. 
 
 

전자발찌 확대 문제와 함께 피의자 얼굴/신상 공개 문제도 검토되어야 한다. 미디어오늘의 기사를 보면 어이 없게 그간 진보적으로 알려진 인사가 신상공개에 찬성하고, 경찰대의 표창원 교수가 이에 반대하는 아이러니가 있었다. 갑자기 표창원 교수에 급호감. 일관성이 있달까. 하긴 이 또한 나름의 원칙이 있었기에 그러할 것이다.

 

각 영역마다 파워엘리트가 다를 수 있고, 쟁점에 있어서 진보/보수의 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특히나 과학기술, 정보인권, 행정, 지방정치 등으로 가면 무엇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물론, 진보적인 것과 보수적인 것을 구별하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그러할수록 제대로 입장을 세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단지 가난하거나 사회적 약자의 입장이 정치적으로 옳다는, 두루뭉실한 입장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토론과 소통이 필요한 것이고... 물론 피의자 신상공개 문제는 사실 그리 어렵지 않다. 논란이 되었기에 관련 기사를 담아왔을 뿐이다.  

 

 

----------------------
김길태 사건-피의자 신상공개 찬반의견 '팽팽' (미디어오늘, 2010년 03월 11일 (목) 12:28:16 김종화 기자) 
[찬반 인터뷰] 김창룡 인제대 교수-표창원 경찰대 교수
  
부산 여중생 납치살해사건 용의자인 김길태(33)씨의 신상 공개와 관련해 찬반 양론이 맞서고 있다. 10일 검거 직후 경찰은 2005년 이후 이례적으로 김씨의 신상을 공개했으며, 대다수 언론도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무죄 추정의 원칙'과 '피의자 공표 금지의 원칙', '이중처벌 금지 원칙', '여론 재판 위험성' 때문에 일부 언론은 신상을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공개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김씨를 포함해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선 피의자의 신상 공개와 관련해 찬반 양론을 들어봤다. / 편집자
 
"피의자만 인권 있나, 공개가 원칙"
[공개 찬성] 김창룡 인제대 교수(언론정치학)
 
김창룡 인제대 교수(언론정치학)는 11일 미디어오늘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공개 쪽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비록 최종 재판으로 유죄가 확정되기 전이라도 범인의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건 아래 세 가지다.
 
첫째, 연쇄살인범이나 아동성폭행범 등 반 인륜범죄나 흉악범죄에 한한다. 둘째, 범인임을 스스로 자백, 인정하고 이를 뒷받침할만한 물증 일부 등이 나타나야 한다. 셋째,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며 타인의 행복추구권 등 인권을 유린한 사건에 한한다. 김 교수는 위의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할 경우, 언론사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해서 범인의 신상공개를 원칙으로 할 것을 제안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 초 강호순사건 때도 이런 주장을 펼치며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이 과감하게 범인 강씨의 얼굴사진을 공개한 것은 용기 있는 도전으로 한국사회에 새로운 규범을 만드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하나의 원칙에 불과할 뿐, 예외 없는 원칙은 없다"는 게 김 교수 주장이다.
 
김 교수는 10일 "피의자 신상공개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데, 우리는 너무 피의자의 인권만 강조하고 피해자의 인권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피해자 유가족의 피해나 행복추구권은 어디서 보상받아야 하나"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우리 사회의 성문제에 대한 폐쇄성 때문에 성범죄는 10%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며 "범죄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피의자 신상공개는 물론 다양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전자발찌는 단순한 위치추적 기능에 그칠 뿐 제대로 된 대안이 못 된다"며 "화학적 거세를 비롯해 성범죄자들을 사회에서 격리시킬 수 있는 제도적 법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피의자 신상공개, 언론 책임 있다"
[공개 반대] 표창원 경찰대 교수(행정학)
 
표창원 경찰대 교수(행정학)는 11일 미디어오늘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강호순 때와 마찬가지로 공개에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조두순사건 등에 있어 '아동 성폭행범을 장기 격리하라'고 줄곧 주장해 온 표 교수지만, 성폭행범의 처벌 수위가 낮은 것과 피의자 신상공개 여부는 별개로 바라봤다.
 
먼저 언론이다. 표 교수는 "김길태가 피의사실을 부인하고 있고 무죄추정의 원칙을 고려해 공개하지 않는 대신, 공공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해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한 것은 언론사의 자기책임"이라며 "공개에 대한 형사적인 책임은 물을 수 없지만 민사적인 손해배상 책임은 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흉악범이 신상공개에 대해 언론사에 책임을 물은 적은 없지만, 정치인 등 유명인이 소송한 사례는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경찰이다. 표 교수는 "국가기관은 언론과 다르다"며 "피의자 신상정보를 공개했을 경우 민사책임은 물론 형사책임도 져야 한다"고 말했다. 표 교수는 "다만 이번 사건에서 경찰은 대단히 기술적인 모습을 보였다"며 "적극적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고 호송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노출되게끔 한 것에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5년 경찰청 훈령으로 마련된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에 "경찰서에서 피의자와 피해자의 신분이 노출될 우려가 있는 장면이 촬영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긴 하나, 자연스레 형성된 포토라인에서 피의자 의사에 반해 '얼굴을 들어라'랄지 강제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표 교수는 "강호순 때와 마찬가지로 국가기관이 피의자의 신상을 강제로 공개하는 것에는 반대 한다"며 "다만 개별 언론사의 노력으로 호송과정이나 다른 경로로 신상이 노출되는 것은 해당사가 책임지면 된다"고 주장했다. 표 교수는 이어 "신상공개 문제를 입법을 통해 해결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며 "강호순사건이나 이번 사건에서 공익변호사들이 소송을 내 신상공개에 대한 판례를 마련하는 게 어떨까 싶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004년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접견하고 온 한 언론전문 변호사는 "유영철이 허락만 해줬다면 그에 대해 마구잡이로 기사를 쓴 기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모두 승소할 수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표 교수는 피의자 신상보도와 관련한 언론사 간 경쟁심리를 지적하기도 했다. 표 교수는 "언론사들이 보도 경쟁에 매몰되다 보니까 피의자 신상을 공개한 언론사는 남보다 앞서 공개한 것을 자랑하고 싶어 하고, 그렇지 않은 언론사는 스스로 뒤쳐진 느낌을 받는 것 같은 모습"이라며 "이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 지도 숙제"라고 말했다.
  
--------------------------
얼굴공개 먼저 해놓고 가이드라인 만들겠다? (한겨레, 홍석재, 부산/신동명 기자,2010-03-11 오후 07:27:55)
경찰 “인권보다 공익 우선” 인권단체 “무죄추정 원칙 어겨” 
 
경찰이 부산 여중생 납치·살해 사건의 피의자 김길태(33)씨를 검거해 호송하면서 김씨의 얼굴을 가리지 않아 ‘흉악범 얼굴 공개’ 논란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경찰은 호송 과정에서 김씨가 쓰고 있던 마스크를 일부러 벗겼는데, 경찰이 피의자 얼굴을 공개한 것은 2004년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이후 처음이다.
  
경찰은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피의자의 인권 침해를 우려해 마스크 또는 모자를 씌우거나 얼굴에 점퍼를 덮어왔다. 이는 ‘피의자의 신원을 추정할 수 있거나 신분이 노출될 우려가 있는 장면은 촬영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제85조)에 따른 것이다. 인권위가 2005년 6월 “경찰이 유아무개씨 등 벌금 미납자를 호송하는 과정을 외부에 노출해 인권을 침해했다”며 경찰청장한테 ‘호송업무 개선’을 권고한 것이 계기가 됐다. 
 
하지만 피의자 얼굴 공개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연쇄살인·어린이 성폭행·반인륜 범죄 등 강력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해 연쇄살인범 강호순(40)씨가 붙잡혔을 때는, 정부가 강력범죄 피의자의 얼굴과 이름 등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한 ‘특정강력범죄의 가중처벌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내기도 했다. 당시 경찰은 끝내 강씨의 얼굴을 가렸지만, 일부 언론은 따로 그의 얼굴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런데 경찰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태도를 바꿨다. 피의자 얼굴 공개가 범죄 예방과 재범 방지, 국민의 알권리 보장 등의 이익을 준다는 것이다. 김영식 부산경찰청 차장은 “흉악범죄자인데다 다른 범죄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공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내친김에 경찰은 11일 ‘흉악범 얼굴 공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청 관계자는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 흉악범의 기준을 정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들은 피의자 얼굴 공개가 헌법이 보장한 ‘무죄 추정의 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기소 전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한 형사소송법과도 배치된다며 반대 의견을 표시했다. 김형완 인권위 인권정책과장은 “흉악 범죄자나 아동 성폭력 범죄자에게 엄격히 죄를 물어야 한다는 원칙에 이견이 있을 순 없지만,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보장하는 인권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무죄 추정의 원칙이 엄연한데 국가가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찍어 사전에 공표하고 있다”며 “이른바 ‘괴물’의 얼굴을 공개해 대중의 분노가 한 사람한테 집중되게 함으로써 정부와 경찰이 책임져야 할 치안 부재 문제를 호도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무죄추정 위배” 얼굴 공개 논란 (경향, 송진식·김지환 기자, 2010-03-11 18:13:15)
ㆍ경찰 “흉악범 사안별 공개” 공익성·인권침해 싸고 찬반
 
경찰이 호송 과정에서 부산 여중생 납치살해 피의자 김길태씨의 얼굴을 공개한 것을 놓고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현행 규정상 불법행위라는 주장과 국민의 알 권리와 법 감정을 고려해 공개해야 옳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경찰은 지난 10일 김씨를 붙잡아 수사본부가 있는 부산 사상경찰서로 호송하는 과정에서 그의 얼굴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김씨는 검거 당시 후드티셔츠에 달린 모자를 눌러쓰고 파란색 마스크를 쓴 상태였지만 호송할 때는 모두 벗겨진 상태였다. 그의 얼굴은 주요 방송과 전국 일간지 1면 등에 집중 보도됐다. 
 
경찰청 김중확 수사국장은 11일 “과거 주요 강력사건의 경우 피의자를 지나치게 보호한다는 지적을 받았다”며 “분노하는 국민들의 법 감정과 알 권리를 보장하는 공익적 차원에서 얼굴을 공개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 국장은 “앞으로도 흉악범 사안별로, 국회에 제출된 관련 법안내용을 근거로 공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경찰이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행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이나 ‘피의자 유치 및 호송규칙’에는 수사나 호송 중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조국 교수는 “명확한 증거가 있더라도 김씨가 범행을 부인하는 한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기 때문에 얼굴 공개로 피의자가 입게 될 피해가 크다”고 밝혔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하태훈 교수는 “수배 당시 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범죄 예방 등 공익적 목적이 있지만 잡힌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국민의 분노를 식히는 것 외에 어떤 공익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는 현재 주요 범죄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할 수 있게 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돼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은 그러나 얼굴 공개를 판단하는 주체의 문제, 공개 시 공익성의 모호함과 인권침해 문제 등을 놓고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해 6월 “호송 과정에서 수감자의 얼굴을 노출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결정을 내렸던 국가인권위원회는 침묵을 지켰다. 현병철 위원장은 “개인적인 의견을 얘기하면 시끄러워질 수 있다”며 “흉악범 얼굴 공개는 내부에서 심의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
 
경찰은 그제 부산 여중생 납치살해 피의자를 붙잡아 압송하면서 이례적으로 얼굴을 공개했다. 나아가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만큼 사안별로 공개하고 공개 기준도 만들겠다고 밝혔다. 경찰의 이 같은 방침은 최근 몇 년간 사회적 논란 속에서 어렵게 유지돼온 피의자 인권보호 원칙에 역행하는 처사다. 이 문제는 단순히 여론의 향방에 따라 자의적으로 접근하고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경찰이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한 것은 그동안 지켜온 경찰 내부 규정을 무시한 것이다. 경찰청은 ‘피의자의 초상권도 보호돼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2005년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을 마련했다. 피의자의 신원을 추정하거나 신분이 노출될 수 있는 장면이 촬영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이에 따라 경찰은 2006년 연쇄 살인범 정남규씨, 2008년 초등생 2명 납치 살해범 정성현씨, 지난해 1월 연쇄 살인범 강호순씨 등을 압송하거나 현장검증할 때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렸다. “살인마의 얼굴을 가리지 말라”는 피해자 가족 등의 항의가 빗발쳤지만 비공개 원칙을 지켰다. 
 
경찰은 이번에 검거된 피의자 김길태씨의 경우 공익에 부합하는 것 같아 얼굴 공개를 결정했다고 한다. DNA 검출 등으로 물증이 확실하고 공개수배로 사진이 이미 공개된 점도 고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경찰의 자의적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인권위가 피의자의 초상권 보호를 권고하고, 경찰이 이를 수용한 것은 피의자의 인권 보호와 공익을 충분히 저울질해 내린 결론으로 봐야 한다. 경찰청 수사국장은 “내부 지침대로 피의자 초상권을 보호하는 것이 맞다고 보지만, 이번에 또 얼굴을 가렸다면 국민이 더 분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들끓을 여론이 무서워 규정을 위반했다는 얘기로 들린다. 법을 집행하는 경찰로서 무책임하다는 지적을 받아 마땅하다.
 
흉악범의 얼굴 공개 기준을 만들겠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직무규칙 외에 인권보호 수사준칙이나 형법의 피의사실 공표 금지 규정에도 위배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극악범죄에 한해 피의자의 얼굴 등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한 ‘특정강력범죄 처벌특례법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했으나 아직까지 진전이 없는 상태다.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서도, 알 권리도 이해하지만 보편적인 피의자 인권 보호 원칙은 그것과 상관없이 지켜져야 한다. 
 
---------------------------
피의자 얼굴 공개 또다시 점화 (미디어오늘, 2010년 03월 12일 (금) 08:56:03 김원정)
[아침신문솎아보기] 동아, 법무부, 사형집행 신중 검토 
 
피의자 얼굴 공개 문제가 신문의 이념을 가르는 또 하나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까? 부산 여중생 살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낳고 있는 가운데 적어도 12일치 신문만 놓고 보면 범죄 발생 이후 '처벌'에 집중하는 신문과 '범죄를 배태한 사회'에 초점을 둔 신문으로 대별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한겨레 경향은 피의자 김길태씨 얼굴을 공개하는 문제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고 조선일보는 김씨의 어린시절 사진까지 공개했다. 중앙일보는 해외사례를 들어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을 적극 펴는 양상이다. 
  
경찰이 호송 과정에서 부산 여중생 납치살해 피의자 김길태씨의 얼굴을 공개한 것을 놓고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현행 규정상 불법행위라는 주장과 국민의 알 권리와 법 감정을 고려해 공개해야 옳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경찰의 이 같은 방침은 최근 몇 년간 사회적 논란 속에서 어렵게 유지돼온 피의자 인권보호 원칙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규정 어기고 피의자 얼굴 공개해도 되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흉악범의 얼굴 공개 기준을 만들겠다는 것은 더 큰 문제"라면서 "국민의 정서도, 알 권리도 이해하지만 보편적인 피의자 인권 보호 원칙은 그것과 상관없이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겨레는 9면 <얼굴공개 먼저 해놓고 가이드라인 만들겠다?>에서 경찰이 부산 여중생 납치·살해 사건의 피의자 김길태씨를 검거해 호송하면서 김씨의 얼굴을 가리지 않아 ‘흉악범 얼굴 공개’ 논란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고 전하면서도 인권단체들은 피의자 얼굴 공개가 헌법이 보장한 ‘무죄 추정의 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기소 전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한 형사소송법과도 배치된다며 반대 의견을 표시했다는 사실 역시 비중있게 보도했다. 
  
반면 서울신문은 법제화를 촉구했다. 서울신문은 사설 <흉악범 얼굴공개 법제화로 정리하라>에서 "우리는 흉악범의 얼굴 공개를 지지하는 여론이 우세한 사실을 주목하고자 한다"며 "흉악범 신상공개로 범죄예방효과는 극대화하되 오남용의 소지가 없도록 요건을 엄정히 하는 법제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일보는 한발 더 나아가 "경찰은 법제화되기 전이라도 흉악범 얼굴을 공개하는 가이드라인을 자체적으로 마련해 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일보는 사설 <‘김길태 얼굴 공개법’ 위에서 낮잠 자는 국회>에서 국가인권위 권고에 따라 경찰이 그동안 피의자의 신원을 추정하거나 신분이 노출될 우려가 있는 장면이 촬영되지 않도록 해왔던 것을 "어설픈 인권 만능주의가 엿보이는 규칙"이라고 지적한 뒤 "증거가 분명하고 범행을 시인한 흉악범의 얼굴은 공개돼야 마땅"하고 "미국의 일부 주에서처럼 아동성범죄자가 석방되면 자동적으로 거주지 이웃들에게 이름, 주소, 사진 등을 공개하는 제도를 시행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앙일보도 4면 <“흉악범 얼굴 가리는 건 인권 앞세운 위선”> 기사에서 "이번 (피의자 김길태 얼굴) 공개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흉악범 인권도 보호해야 한다는 위선의 가면을 벗어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같은 면 하단에 흉악범 얼굴을 공개하는 미국과 벨기에 등 해외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법무부가 반인륜적 흉악 범죄가 되풀이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 현재 사형이 확정된 57명 가운데 잔혹한 성폭행범죄나 연쇄살인범죄를 저지른 사형수를 선별해 사형을 집행하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11일 확인됐다고 동아일보가 법무부 관계자 말을 인용해 1면에서 단독보도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법무부는 최근 헌법재판소에서 사형제도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린 데다, 부산 여중생 살해사건으로 “극악한 흉악범에 대해선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고 보고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3/23 00:11 2010/03/23 00:11

댓글0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Richard Sennett. 유병선 옮김. 2009. 『뉴캐피털리즘』

View Comments

관료제론과 관련하여 쓸만한 대목이 있을 듯하여 이 책을 집어들었는데, 의외로 생각할 대목들이 많더라. 저자인 세넷이 블레어 밑에서 일했다는 게 별로였지만, 책의 내용 자체는 이와 별로 상관이 없다. 전체적인 요약은 서평기사들에 잘 나와 있다.

 

Richard Sennett. 유병선 옮김. 2009. 『뉴캐피털리즘』. 위즈덤하우스; The Culture of the New Capitalism. Yale University Press. 2006.
 
○ 역자 후기: 사감 냄새나는 세상을 꿈꾸는 사회학자
세넷은 새로운 자본주의하에서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지, 새로운 제도들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흔들어놓고 있는지를 막힘없이 풀어낸다. 그는 세계화로 인해 우리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졌는지에 대한 현상 분석이 아니라 퇴출의 공포로 대변되는 불안정한 삶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어디서 어떻게 비롯되는지에 주목한다. 삶과 노동의 관점에서 새로운 자본주의의 문화적 천박함을 해부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사람 냄새나는 비판인 셈이다.
이 책의 핵심 단어를 하나만 꼽는다면 서사(narrative)가 아닐까 싶다. 자신의 삶을 연속적인 이야기로 만들어줄 수 있는 어떤 전후 연관성도 사라지게 하는 것이 오늘날의 새로운 자본주의의 속성이라고 세넷은 진단한다. 그는 “변화하지 않으면 죽는다. 장기적 관점을 버리고 단기적으로 승부하라. 남과 깊이 사귀지 말고, 손해 보면서 호의를 베풀지 말라”는 것이 이 시대의 이상적인 가치로 강요되고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자본주의 경제는 불확실성을 긍정적으로 인정하라는 도덕적 압박을 가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자본주의와 구분되는데, 이러한 압박이 삶의 서사와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어떻게 서사의 고리를 단절시키는가? 세넷은 컨설턴트와 MP3, 그리고 월마트 등 일상의 언어로 새로운 경제ㆍ사회ㆍ정치의 특성을 손에 잡히게 설명한다. 컨설턴트들은 기업의 구조조정에 끼어들어 조직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지만 결코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끊임없는 변화를 재촉할 뿐 무엇을 위한 변화인지를 설명하지도,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도 않는 신경제는 컨설턴트식 경제라 할 수 있다.
음반이나 테이프를 사용하던 이전의 오디오와 달리 MP3는 특정음역만을 연주하고 수시로 듣고 싶은 노래들을 마음대로 바꿔 들을 수 있게 해준다. MP3형 조직과 사회는 피라미드의 중간층을 줄여 상부의 명령이 곧바로 하부에 연결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정보 전달체계의 변화가 서사의 여지를 없앤다는 게 세넷의 설명이다. 이러한 경제ㆍ사회적 변화는 또한 월마트식 정치로 나타난다. 상표만 다를 뿐 내용물은 비슷한 상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월마트 매장에서 물건을 고르듯 시민들도 정치를 단지 소비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천박한 문화는 유리그릇처럼 작은 충격에도 쉬 깨어질 것이라는 게 세넷의 전망이다. 삶의 서사를 끊어놓은 지배체제는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넷은 현대사회의 유동화를 마냥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삶을 속박하던 제도로부터 개인이 보다 자유로워진 것은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단지 보다 자유로워진 개인들이 잃어버린 서사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가 우리 시대의 과제라고 지적한다.

  

----------------------------------
19세기 말 투자 결정과 관련된 용어에 처음으로 군대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전쟁론(On War)』을 쓴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의 ‘성과 분석(outcome analysis)’이란 말도 경제용어로 자리잡았다. 시장이 위기를 맞게 되면 관료제가 손실을 보전해주었다. 관료제는 시장보다 훨씬 효율적인 것처럼 보였다. 미국 역사학자 로버트 위비(Robert H. Wiebe)가 말한 ‘질서를 위한 모색(search for order)’이 기업에서 정부로, 그리고 민간사회로 확산됐다. 전략적 이윤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효율적인 정부의 규범으로 자리잡으면서 공무원들의 지위는 한 단계 올라갔다. 공무원의 관료사회는 집권당에 관계없이 정치의 외풍을 타지 않게 됐다.
 
시민사회의 영역에서도 학교의 수업과 교육 내용이 표준화되고, 전통적인 전문직종인 의료ㆍ법를ㆍ과학 분야에서 전문가들의 입김은 더욱 세졌다. 베버는 이처럼 군대에 뿌리를 둔 제도가 일상적인 삶을 규정함에 따라 그 속성상 군대와 다를 바 없는 우애와 권위, 공격 따위에 대한 규범을 가진 사회가 도래할 것으로 보았다. 물론 그렇게 되더라도 사람들은 스스로가 군인과 같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것이라고 베버는 생각했다(Sennett, 2009: 32-33).
 
베버는 보상 유예의 규율과 현실의 불일치에서 비롯된 좌절감이 개개인의 주관을 어떻게 왜곡시키는지를 설명했다. 예컨대, 보상유예의 규율이 몸에 밴 사람들은 스스로가 목표에 이르는 것을 허용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앞만 보고 달려온 사람들은 불만에 빠지고 만다. 그들은 지금 손에 많이 쥐고 있든 적게 쥐고 있든 부족하다고 여기며, 당장의 즐거움을 위해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은 가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성취의 지연이 삶의 방식으로 굳어져 버린 것이다. 베버의 관점은 주관적 충동에 제도적 전후관계를 대입하는 것이었다. 관료제라는 피라미드의 계단을 올라가는 것은 또 하나의 삶의 방식일 수 있다. 관료제의 쇠창살은 감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심리적인 안식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Sennett, 2009: 41-44).
 
복지국가도 관료제의 피라미드 형태를 취했다. 사회민주주의의 원리대로라면, 기본적으로 노령연금이나 교육과 같은 복지 혜택은 보편적인 권리에 해당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북유럽이나 영국에서조차 복지 혜택의 수혜자들은 필요로 하는 도움을 받으면서도 관료처럼 생각하도록 강요받았다. 관료제의 규칙들은 관료제 자체를 무엇보다도 우선시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래서 고령자와 학생, 실업자와 병약자는 저마다의 삶을 영위하는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베버가 말한 관료제의 관료처럼 행동해야만 한다. 복지국가 시스템의 초점은 복지 혜택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분배되는가보다는 제도 자체를 유지하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Sennett, 2009: 44-46).
 
군대에서나 기업에서나 조직에 대해 행복감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그 조직에 헌신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컨대, 설령 조직에 불만이 있더라도 자신에게 어떤 일이 주어지게 되면 일반적으로 조직의 일을 우선적으로 처리하는 것처럼 말이다. 과거 현장연구를 하면서 세넷은 조직에 대한 불만과 헌신이 뒤섞이는 현상이 피라미드형 관료제를 구현한 복지국가의 공공서비스부문 노동자들에게서 특히 두드러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미국의 시카고와 영국의 런던에서 쇠락하는 도심 학교의 교사들이나 뉴욕의 공동화된 도심에 자리한 시립병원의 간호사들의 상당수는 보다 나은 일자리를 구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 뭔가 유용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Sennett, 2003: 200-204). 그들을 그 조직에 묶어두는 것 또한 자신들의 개인적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조직 내부의 타협과 중재의 기능이었다. 뉴욕의 한 간호사는 민간병원에서 임시직으로 일하는 게 벌이는 더 낫지만 자신이 보잘것없는 시립병원에 머물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간호라는 행위는 어디에서든 유익한 것이지만 병원에 따라 유익함의 정도는 달랐다(Sennett, 2009: 46-48).
 
국경이 없어지면서 풀려나간 자본과 단기성과에 대한 경영 압박이 결합되면서 주식투자자들이 기업의 제도와 구조를 바꿔놓았다. 외부 사람들의 눈에 근사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투자자들은 회사에 엄청난 경영 압박을 가했다 제도적인 이점을 과시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내부적으로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했다. 심지어 멀쩡하게 잘 굴러가고 있는 회사조차도 시장에서 보다 역동적인 것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해야 했다. 선빔(SunBeam)이나 엔론(Enron) 같은 회사들이 궁지에 몰린 것은 이러한 투자자들의 요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거나 내부적으로 부패했기 때문이었다.
 
이전 테일러 시대의 피라미드식 제도의 사고방식으로 본다면 지금처럼 한 가지 과업을 여러 팀이 나누어 수행하는 것은 노력이 중복된다는 점에서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새로운 조직의 사고방식에서는 설혹 얼마간의 비효율이 있다손 치더라도 가능한 한 신속하게 최선의 결과를 내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바로 이것이 효율성에 대한 현대의 잣대다. 이러한 조직 내부의 경쟁은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가 말한 ‘승자독식(winner-take-all)’의 방식으로 보상된다. 경쟁에서 이긴 팀에게만 큰 상이 돌아간다. 예전 같았으면 2, 3등상, 혹은 아차상이라도 있으련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컨설팅 작업은 사회적 거리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컨설턴트들은 현대 관료제 권력의 필수적인 요소이며, 관료제가 원활하게 작동하게 하는 윤활제이기도 하다. 원칙적으로 컨설턴트들은 객관적인 자문과 전략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그들이 하는 일은 조직의 구석구석을 돌며 고통스러운 구조조정 작업을 벌이는 것이다. 예컨대, 퇴직을 강권하고, 부서를 통폐합하거나, 해고되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업무를 부과하는 따위가 컨설턴트의 몫이다(Sennett, 2009: 70).
 
외부에 컨설팅을 의뢰함으로써 경영진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요구되는 고통스런 의사결정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요컨대 MP3 플레이어의 중앙처리장치와도 같은 조직의 중심부는 명령을 내리지만 책임을 지지는 않는 것이다. 실제로 컨설턴트들은 한번 구조조정에 관여했던 회사와는 다시 일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도 그렇게 함으로써 구조조정의 책임에서 벗어나려 하는 셈이다. 이러한 컨설팅 관행으로 인한 결과물이 바로 의사결정과 책임의 분리다.
 
첨단 조직문화가 공공부문에 적용될 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점이 권력과 권위의 분리다. 영국과 독일에서 복지국가 제도를 수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개혁가들은 복지 혜택을 제대로 제공하기 위해, 권력은 중앙집중화하고 권위는 배제한 모델을 채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늙은이나 병든 사람들은 정부에게 도와달라고 징징거리는 사람들일 뿐이다. 하지만 공공부문에 권위는 없고 권력만 집중될 경우 권력자 스스로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권력자는 제도 개혁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오직 자신의 카리스마에만 의존해야 되기 때문이다. 카리스마가 부족한 개혁가들은 자칫 독단적으로 비춰질 수 있고, 책임을 지지 않는 제도는 말 그대로 무책임한 제도로 보일 수밖에 없다(Sennett, 2009: 77).
 
새로운 정보 시스템이 도입되면 조직의 효율이 크게 향상될 것처럼 말하는 이들이 있다. 특히 조직에 대해 경험을 통해 터득한 지식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컨설턴트들이 그렇다. 하지만 이는 대단히 순진한 발상이다. 물론 기계 자체가 나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사실 로터스 노츠와 같은 프로그램은 조직의 지식 공유 기반을 크게 확장해 줄 수 있다. 그 프로그램의 통제와 적용을 직접 사용자의 손에 맡겨놓기만 한다면 말이다. 구조조정 과정을 들여다보면 새로운 컴퓨터 프로그램을 들여올 때 그 프로그램을 사용자에 맞게 변형시키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경향이 있다. 프로그램의 통제 권한도 직접 사용하지 않는 조직의 상층부가 쥐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럴 경우 아무리 좋은 컴퓨터 프로그램이라도 표류효과, 즉 겉도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젊을 때는 자유로움을 추구하지만 가족이 딸리고 주택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중년이 되면서 가치관이 바뀌기는 기업가들도 마찬가지다. 첨단분야에 종사한다는 도덕적 위신은 출세의 부적일지는 몰라도 중간층 노동자들이 평생 그런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고용 기간과 관련 새로운 첨단 분야의 노동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조건들은 베버가 근대 노동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도덕적 가치라고 주장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베버가 관료제를 분석하면서 ‘철창의 비밀(the secret of iron cage)’이라고 지적했던 것이 바로 시간의 문제였다. 사람들은 미래에 보상을 받을 것이란 희망으로 고정된 제도 속에 스스로를 속박시킨다는 게 베버의 해석이었다. 보상의 지연을 통해 사람들은 절제하게 된다. 좋든 싫든 사람들이 직장에서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것도 나중에 돌아올 보상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인들이 어떤 일을 함으로써 명예나 위신을 얻게 되려면 신뢰할 만한 특정한 제도와 조직이 필요하다. 미래의 보상을 보장해줄 수 있을 만큼 조직의 안정성이 높아야 하고, 나중에라도 조직원들의 그간 업적을 제대로 펑가해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노동의 패러다임은 당장의 보상을 나중으로 미루는 금욕을 부질없는 것처럼 만든다.
불황기에 상류층은 중ㆍ하류층에 비해 운신의 폭이 훨씬 크다. 불황기에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의 경영진은 서로 인맥과 학맥 등 관계망을 활발히 가동할 수 있어 노동자들에 비해 위기에서 발을 빼기가 훨씬 용이하다. 관료제의 틀 속에서 노동자들이 나중을 기약하고 열심히 일해온 것을 평가하고 보상해줘야 할 직장의 경영자와 상사들이 달아나고 없는 상창이 벌어지는 것이다. 하이테크회사나 금융과 미디어 분야에서 나타나는 경영진의 잦은 이동과 교체는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며 금욕한들 나중에 이를 제대로 평가할 책임자가 없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강력하고 광범한 인맥이야말로 특권층이 현재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다. 인적 네트워크가 바로 특권층에게 장기적인 전략적 설계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일종의 안전망(safety net)역할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자본주의에서 신흥 지배층은 보상의 지연이라는 낡은 윤리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기가 속한 회사나 조직과 무관하게 든든한 인맥과 학맥 등의 네트워크를 통해 지배층과 부단히 접촉하며 스스로 그 일원임을 확인한다. 그러나 대중은 사정이 다르다. 제도와 조직 속에서 비공식적 접촉과 지원이 줄어들면 그들의 연결망은 협소해지게 되며, 그럴수록 점점 더 제도에 의존하게 된다.
 
젊은 노동자들을 ‘제멋대로인 말썽꾸러기’라고 간주하는 고정관념은 왜곡된 것이다. 신참 노동자들은 경험도 적고 지위도 낮기 때문에 회사에서 신중하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또 이들은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땐 이에 맞서기보다는 차라리 회사를 떠나는 쪽을 택하기 쉽다. 딸린 식구도, 지역사회에서 지켜야 할 체면에 대한 부담도 적은 만큼 선택의 폭이 넓은 것이다. 따라서 기업 조직의 경우 앨버트 허쉬만(Albert O. Hirschmann)이 말했던 ‘떠나기(exit)’와 ‘개선하기(voice)’라는 양자택일의 기준은 바로 노동자들의 나이다.
 
컨설턴트는 여기저기를 집적거릴 뿐 결코 한 가지에 몰두하지 않는다. 더구나 누구든 숙련도를 끌어올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실제 현장에 투입돼 일하면서 숙련도를 향상시킨다는 발상은 첨단을 달리는 새로운 제도의 생리와 맞지 않는다. 이들 첨단 제도는 사람들이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업무들도 지체 없이 처리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첨단 조직들은 똑똑한 인재들 덕에 잘나가고 있지만, 만에 하나 그 똑똑한 사람들이 장인정신으로 한 가지 일을 파고들기라도 한다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말 것이다.
 
오늘날 소멸하는 열정은 극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구경꾼 소비자(spectator-consumer)에겐 어떤 물건을 내 것으로 소유하고 싶다는 열망보다는 지금까지 가져보지 못한 것이기에 갖고 싶다는 열망이 훨씬 더 크다. 잠재력의 효능이 과장됨에 따라 구경꾼 소비자들은 사용하지도 않을 복잡한 기능을 갖춘 물건에 욕심을 내게 된다. 정치도 연극적이긴 마찬가지다. 특히나 진보적인 정치에는 특별한 수사법(rhetoric)이 요구된다. 정치인들은 시민들이 경험을 통해 마음속에 쌓아둔 진보 정치에 대한 불신을 잠시 접어두게 하기 위해 수사법을 동원한다. 나는 이제껏 정치적 수사법이 지닌 긍정적인 측면을 중시해왔다. 하지만 상품의 판촉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치의 판촉 행위도 훨씬 더 부정적인 쪽으로 향하고 있다. 시민들은 진보적인 변화를 바라면서도 잊고 있는 것이 있다. 환상이 현대사회에서 너무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것이 변화에 대한 희망을 심각하게 갉아먹는다는 사실이다. 사람들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점점 더 수동적이 되어가는 수동성 역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Sennett, 2009: 191).
 
정치적 플랫폼에서 유일하고도 가장 중요한 공통의 요소는 국가의 역할이다. 국가는 쇠퇴하기는커녕 여전히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다. 국가는 각기 위임받은 조직에 자원이 적절하게 배분될 수 있도록 통제하고, 그 실행 과정을 감시하는 중심부의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지금의 국가는 권력과 권위가 분리된다는 점에서 베버가 분석했던 초기 자본주의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기업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치의 관료주의도 시민에 대해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권력은 더욱 중앙집중화하는 추세다. 기업의 사례를 통해 분석했듯이 권력과 권위가 분리되는 것을 결코 정치적인 진보라고 볼 수 없다. 여기서 ‘진보적(progressive)’라고 언급한 것은 모름지기 좋은 정치란 모든 시민들이 동일한 구상 아래 서로 통합되어 있다고 믿는 것을 뜻한다는 의미에서다. 사회자본주의는 군대를 본뜬 민간제도를 통해 공동 계획을 창조했지만 연대(solidarity)의 철창이란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이에 비해 새로운 제도는 주변부로 밀려난 개인과 집단에 대해 자유란 이름으로 책임을 회피한다. 새로운 자본주의에서 비롯된 정치의 약점이 바로 무관심이다.
 
정치적 금박입히기의 가장 단순한 형태가 상징 부풀리기다. 영국의 경우 보수당과 노동당은 여우 사냥에 개를 풀어놓는 것을 금지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둘러싸고 열정적으로 서로의 차이를 부각했다. 이 문제가 의회에서 논의된 시간만 얼추 700시간에 달한다. 이에 비해 영국 의회가 대법원을 신설할 것인가를 논의한 건 고작 8시간에 불과했다. 사소한 것을 상징적으로 부풀리는 방식 자체가 새로울 것은 없지만, 상품의 광고와 정치 행위가 서로 일치한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치인들이 자신을 대증들에게 홍보하는 방식은 비누를 판촉하는 일과 점점 더 흡사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 사소한 차이에 금박을 입히는 행위는 동일한 플랫폼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광고만 달리해 전혀 다른 제품인 것처럼 포장해 대중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려는 마케팅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시민이 소비자처럼 행동하게 되면 더 이상 장인처럼 생각하지 않게 된다. 시민이 소비자처럼 행동하면 할수록 정치인들은 태만해진다. 더구나 소비자로서의 시민은 난해하거나 첨예하게 찬반이 갈리는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는 눈길을 돌려버린다.
 
사용자 중심이라는 것이 민주주의를 망치는 결과를 가져온다. 민주주의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노력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는 미국인들 중에서조차 이라크가 어떤 나라인지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소비자로서의 시민이 아니라 장인으로서의 시민이라면 마땅히 그 이유를 알려고 했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소비자로서의 시민을 기반으로 하고, 사용자 중심으로 치닫게 될 때 알고자 하는 의지는 사라진다.
 
사람들은 경제적 변화로 인해 의혹이나 불안을 느끼더라도, 논리적으로는 이를 정치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정치인들이 중심을 못 잡고 우왕좌왕하거나, 실행 의지가 없거나 둘 중의 하나가 원인이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특히 진보적인 정치인들이 소비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면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결과를 낳거나 매우 심각한 불만들이 생겨날 수 있다.
 
이민 노동자들은 돈 잘 버는 민간병원에서 일하는 게 돈벌이는 더 나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공공병원을 떠나지 않은 것은 지위(status) 때문이었다. 영국인 대부분이 국민 모두에게 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영국 국민건강보험(NHS) 제도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 이러한 평판은 공공병원의 이민 노동자들이 영국 사회 안에서 긍정적인 지위를 얻을 수 있도록 해주었던 것이다. 지위의 보다 근본적인 가치는 정당성(legitimacy)이란 측면에서 다루어져야 마땅하다. 제도가 정당성을 부여할 때 당신은 지위를 갖게 된다. 쓸모 있는 존재라는 것도 이러한 얼개를 벗어나지 않는다. 요컨대, 그것은 사적으로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란 의미를 넘어서는 것이며, 공적으로 인정받은 존재를 가리킨다. 군대의 하사관들도 공공의료기관의 이민 노동자들과 똑같은 정서를 갖고 있었다. 이들은 보다 편하고, 보수도 더 좋은 사설 경호원으로 일할 수도 있지만 군복을 벗지 않았다. 민간부문에서보다 공공부문에서 일할 때 더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장인정신은 새로운 문화가 빠뜨린 기본 덕목을 가지고 있다. 이상적인 노동자, 이상적인 학생, 이상적인 시민의 자질이 지니지 못한 미덕, 즉 헌신(commitment)이 바로 그것이다. 헌신의 미덕은 외곬의 경쟁심 많은 장인들이 일을 잘해내기 위해 혼신을 다할 수도 있다는 것에 있다기보다 장인들이 일 자체의 객관적 가치를 믿는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는?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2009-03-13 07:00)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경제 흐름 속에서 빚어진 글로벌 금융위기는 세계의 모습을 어떻게 바꿔놓을까? 미국 출신의 좌파 지식인 리처드 세넷 런던 정경대 사회학과 교수가 지은 '뉴캐피털리즘'(위즈덤하우스 펴냄)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가 안은 문제를 진단하고 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제시한 책이다.
 
저자는 글로벌 금융위기는 세계화와 신경제의 성장 신화 속에 숨어 있던 함정이며, 이는 퇴출의 공포로 대변되는 불안정한 삶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몰고 와 개인의 삶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고 진단한다. 이어 개인의 삶을 나락으로 빠뜨리는 새로운 자본주의 경제의 속성으로 '서사적 삶의 파괴'를 꼽는다.
 
저자가 말하는 '서사적 삶'은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건과 경험이 축적되는 것을 일컫는다. 하지만 새로운 자본주의 경제는 이해관계에 따라 빠른 속도로 이합집산을 되풀이하고, 필요한 재능을 가진 사람만 선택적으로 고용하며, 효용성이 사라졌을 때 즉시 해고해버리는 조직문화를 통해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연속적인 이야기로 구성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는 서사의 고리가 단절된 정치·경제·사회의 특성으로 ▲월마트식 정치 ▲컨설턴트식 경제 ▲MP3형 사회를 든다. 저자는 "정치조직의 중앙집중화는 지방조직과 다양한 이해집단의 중재에 기초해온 기존 정당정치를 해체한다"면서 "소비자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월마트 매장에서 상표만 보고 물건을 고르듯 정치를 소비할 뿐"이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변화를 재촉할 뿐 무엇을 위한 변화인지도 설명하지 않고, 기업의 구조조정에 끼어들어 조직을 뒤죽박죽 만들고서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컨설턴트식 경제'도 개인에게서 삶의 서사를 빼앗는 신자유주의 경제의 함정 가운데 하나이다.
 
저자는 노동계의 비정규직화, 간소화 등을 심화시키는 현상을 'MP3형 사회'라는 개념으로 풀이한다. 듣고 싶은 노래들을 마음대로 바꿔 들을 수 있는 MP3처럼 신자유주의 경제는 조직 구성원들의 역할을 뒤바꾸고, 조직 피라미드의 중간층을 없애 간소화하며, 조직의 일부 기능을 아웃소싱하는 형태 등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저자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서 서사적 삶의 고리가 끊어진 구성원들이 '제도에 머물면서 보장받을 수 있는 기간'은 계속 짧아지고 있다"면서 "이는 구성원 스스로 쓸모없는 잉여인간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이게 하는 등 사회적 퇴화의 핵심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고용이 불안정하고 퇴출의 공포가 심화하여 삶의 서사가 흔들리는 시점에서 개인들에게 오랜 세월 고용과 승진을 보장해주는 관료제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기도 한다. 저자는 나아가 신자유주의 경제 속에서 개인이 자유롭고 인간적인 삶을 이어갈 방안으로 일자리 나누기 등을 통한 '서사적 삶의 회복', 자원봉사 등을 통해 자신을 쓸모 있는 존재로 느끼도록 '개인의 유용성 발휘', 이해득실을 떠나 자기만족을 느낄 수 있는 '장인정신 갖기' 등 세 가지를 제시한다.
  
---------------------------------------
[책으로 읽는 경제이야기]삶을 망가뜨리는 ‘MP3 자본주의’ (내일, 이재걸 기자, 2009-03-13 오후 2:14:40)
<뉴캐피털리즘> 리처드 세넷/ 유병선 옮김, 위즈덤하우스 , 1만3000원
 
‘뉴캐피털리즘(The Culture of the New Capitalism)’은 미국을 대표하는 좌파 지식인 리처드 세넷이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를 진단하고 현재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혜안과 해결의 실마리를 주는 책이다. 세계화와 신경제로 인해 우리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졌는지에 대한 현상 분석이 아니라 퇴출의 공포로 대변되는 불안정한 삶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어디서 어떻게 비롯되는지에 주목한다. 새로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지, 새로운 제도들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흔들어놓고 있는지를 막힘없이 풀어낸다.
 
아무 가치기준 없이 강요되는 변화는 삶의 연속성 즉 ‘서사’를 파괴한다. 이해관계에 따라 빠른 속도로 이합집산을 되풀이하고 필요한 재능을 가진 사람만을 선택적으로 고용하며 효용성이 사라졌을 경우 즉시 해고해버리는 고용 문화가 우리가 내년, 10년 후, 그리고 삶의 마지막은 어떠하리라는 예측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이로써 우리는 머릿속으로 스스로의 삶의 연속적인 이야기를 구상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세넷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이들이 표류하지 않게 단단히 붙들어주는 문화적 닻이라고 말한다. 일과 권력의 변화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를 평가할 수 있게 해주는 가치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회는? (매경, 손동우 기자, 2009.03.13 15:21:34) 
`MP3 자본주의` 심화 … 일자리 나누기로 극복을
MP3처럼 연속성 무시된 사회, 개인은 미래를 설계하기 힘들어
자원봉사ㆍ장인정신 등으로 개인의 `삶의 서사` 유지해야

  
저자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개인의 삶을 나락으로 빠뜨릴 수 있는 위험을 애초부터 가지고 있었다"며 "지금의 금융위기도 그 부작용이 드러난 결과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어떤 속성이 개인의 삶을 불안하게 몰아가는 것일까. 세넷은 대표적인 원인으로 `서사적 삶의 파괴`를 든다. 여기서 말하는 `서사적 삶`이란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경험을 축적해 가는 현상을 말한다. 즉, 자신의 미래를 개인이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경험으로 예측해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새로운 자본주의 경제는 이런 `서사적 삶`을 이어갈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파괴한다"고 주장한다. 이해관계에 따라 빠른 속도로 이합집산을 되풀이하는 분위기에서 개인이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어 서사의 고리가 파괴된 사회의 특성으로 세 가지를 든다. 가장 먼저 제시되는 것이 `MP3식 조직`. MP3는 음반이나 테이프와는 달리 특정 음역만을 들을 수 있고, 순서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세넷은 "현대의 조직 역시 MP3처럼 순서와 매뉴얼을 파괴하고 유연하게 운영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다음이 `컨설턴트식 경제`다. 컨설턴트는 기업의 구조조정에 끼어들어 조직의 판을 뒤엎어 버리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 끊임없는 변화를 재촉할 뿐 무엇을 위한 변화인지 설명하지도 않고, 책임도 확실히 지지 않는 지금의 경제가 바로 `컨설턴트식 경제`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사회ㆍ경제적 변화는 정치 영역에도 영향을 미친다. 소비자들이 `월마트`에서 매장의 선반에 널린 엇비슷한 비누 가운데 상표만 보고 구매를 결정하듯, 정치 권력을 선택하는 일도 비슷한 양상으로 변해간다는 것. 세넷은 이런 변화를 `월마트식 정치`라고 명명하며 "이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사회는 유리그릇처럼 작은 충격에도 쉽게 깨지기 때문에 그 속에 사는 개인은 불안해 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저자는 현대사회의 유동화를 완전히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삶을 속박하던 제도로부터 개인이 자유로워진 만큼 그동안 잃어버린 것들을 어떻게 회복할지가 우리의 과제라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 세넷은 먼저 "삶의 서사를 되찾으라"고 주문한다. `일자리 나누기` 등을 통해 사람들이 인생을 길게 보고 계획을 세우도록 만들라는 얘기다. 이 밖에도 책은 자원봉사 등 시민사회의 다양한 비공식적 관계를 통해 스스로를 쓸모 있는 존재로 느끼도록 만드는 방법, `장인정신`을 가져 작은 이해득실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 만족감을 느끼는 방법 등을 새로운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돌파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
[책과 삶]천박한 자본주의 ‘삶의 서사’가 흔들린다 (경향, 김진우 기자, 2009-03-13-17:44:28)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관료제를 ‘쇠창살’에 비유했다. 자신의 삶을 다른 누군가가 설계한 틀에 맞춰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에서였다. 1960년대 신좌파(New Left)는 관료제를 개인을 억압하는 ‘감옥’이라고까지 비판했다. 하지만 관료제의 쇠창살은 ‘안식처’이기도 했다. 관료제의 최대 유산인 ‘조직화된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서사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를 연속적으로 설명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었다.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또 다른 자아를 느낄 수도 있었고 사회관계를 맺는 것도 가능했다. 
 
오늘날 삶을 서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하는 제도는 녹아 사라지고 있다. 종신고용제는 막을 내렸고 복지정책과 사회안전망은 단기화되고 변덕스러워졌다. 고용은 불안정해지고 퇴출의 공포는 심화됐다. ‘새로운 자본주의’의 확산으로 ‘삶의 서사’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뉴캐피탈리즘>(원제 The Culture of the New Capitalism)은 새로운 자본주의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흔들어 놓고 있는지 풀어내면서 퇴출 공포로 대변되는 불안정한 삶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짚은 책이다. 노동 및 도시화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저자는 새로운 자본주의 제도·문화가 노동 윤리나 능력에 대한 태도, 소비와 정치에까지 어떻게 작용하는지 파헤쳤다. 
 
책에 따르면 새로운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가치는 다음과 같다. ‘항상 변화하라’ ‘불확실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라’ ‘장기보다 단기가 중요하다’ ‘지난 업적보다 미래 잠재력이 중요하다’. 이 같은 가치는 개인이 자기 삶의 연속적인 이야기를 구상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이해 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되풀이하고 필요한 재능을 가진 사람만을 선택적으로 고용하며 효용성이 사라졌을 경우 해고해버리는 고용 문화는 개인이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저자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속성을 MP3 플레이어를 빗대 설명한다. MP3가 듣고 싶은 노래의 순서를 그때 그때 바꿔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새로운 조직은 주력 업무에 따라 고용을 늘리거나 줄이면서 신축적으로 조직을 운영할 수 있다. 신경제는 또한 끊임없는 변화를 재촉할 뿐 무엇을 위한 변화인지를 설명하지도,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도 않는 ‘컨설턴트식 경제’다. 이로 인해 조직에 대한 충성도 저하, 노동자들 사이의 비공식적 신뢰 붕괴, 구성원들의 조직 생리에 대한 무지 등 세 가지 ‘사회적 적자’가 발생한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새로운 조직과 제도가 관료제에 비해 더 작아진 것도 민주적이 된 것도 아니다. 권력의 중앙 집중화가 심화되고 권력에서 권위는 떨어져 나갔다. “자본주의만 살아남고 사회적인 것은 죽은 셈”이라는 평가다. 
 
게다가 단기간에 일을 처리하고 다시 다른 일로 옮겨가야 하는 새로운 자본주의는 잠재력 같은 재능만을 강조한다. 오랫동안 쌓은 업적과 숙련의 가치는 소멸하고 그에 깃든 지식의 맥락과 내용도 소진된다. 어떤 일을 깊이 파고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보니 장인정신은 사라진다. 잠재력이 없다는 판정을 받은 사람들에겐 과거의 업적에 상관없이 더 이상 쓸모 없고 경쟁력 없는 인물이란 낙인이 찍힌다. 
 
저자는 나아가 새로운 자본주의 문화가 소비를 넘어 정치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월마트식 정치’를 통해 보여준다. 소비자가 상표만 다를 뿐 내용물은 비슷한 상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월마트 매장에서 물건을 고르듯 시민들은 정치를 단지 소비할 뿐이라는 것이다. 
 
책은 소비자이자 구경꾼이기도 한 시민들이 진보 정치에 점점 등을 돌리고 스스로 수동적이 되어가는 이유를 설명한다. 자동차 회사가 공동의 플랫폼을 바탕으로 디자인과 옵션을 약간 달리한 자동차들을 내놓듯 현대 정치는 ‘신자유주의’와 같은 공동의 정치적 플랫폼을 제공한다. 이로 인해 정치 제품에는 ‘금박을 입힌 정도의 차이’만 존재하고 서로의 차이를 부각시킬 수 있는 ‘수사법’만 난무하게 된다. 또 시민이 더 이상 장인이 아니라 소비자처럼 행동하면서 난해하거나 첨예하게 찬반이 갈리는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눈길을 돌려버린다. 저자는 “‘사용자 중심’이라는 것이 민주주의를 망친다”고 말한다. 민주주의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노력할 것을 요구한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개개인이 표류하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문화적 닻’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가치로 사건과 경험의 축적을 통한 서사적 삶의 회복, 스스로를 쓸모 있는 존재로 느끼도록 해주는 개인 유용성의 발휘, 장인정신 등 세 가지를 든다. 일자리를 알선하거나 연금 관리 및 의료보험 가입을 대행하는 등 노동자들의 경험이 서사적으로 단절되지 않게 하는 ‘병렬 조직’의 설립, 일자리 나누기, 인생 설계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초자본의 제공 등이 제시된다. 
 
물론 책은 새로운 자본주의 문화가 가져온 긍정적인 결과를 부인하지 않는다. 제도가 사람들의 삶을 덜 구속하게 되면서 자유로운 개인의 영역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현재 새로운 권력 구조를 탄생시킨 자본주의 문화의 천박함을 삶과 노동의 관점에서 비판한다. 그리고 현재 일터나 학교, 정치의 세계를 뒤덮고 있는 문화의 천박함은 “유리그릇처럼 작은 충격에도 쉬 깨질 것”이라면서 새로운 문화에 대한 ‘반란’을 전망한다. 유병선 옮김. 1만3000원
 
------------------------------------------------
[BOOK북카페] 툭하면 “헤쳐 모여” …샐러리맨은 불안하다 (중앙일보, 이은주 기자, 2009.03.13 19:30)
뉴캐피털리즘, 리처드 세넷 지음, 유병선 옮김, 위즈덤하우스, 243쪽, 1만3000원
 
불안정, 그게 자본주의의 변함없는 속성이라는 것이다. 노동·도시화 연구로 유명한 세넷은 토니 블레어 영국 전 총리의 ‘지적 조언자’(intellectual mentor)로 주목받았다. 그는 이 책에서 20세기 후반 들어 전개된 경제적인 변화의 실체가 무엇이었고, 이것이 우리의 소비·정치 행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조망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는 이 변화의 핵심을 ‘MP3형 조직’과 ‘월마트식 정치’란 두 키워드로 요약한다. 기업의 조직은 극도의 유연성을 내세우며 통제만 강화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면, 정치는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소비하는’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있다는 얘기다.
  
세넷은 “현재 일터나 학교, 정치의 세계를 뒤덮고 있는” 천박한 문화는 “유리 그릇처럼 작은 충격에도 쉬 깨질” 것으로 내다본다. “개인이 유용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일거리를 찾고(국가도 자원봉사 등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에 적극 관여해야 한다), 새로운 문화가 빠뜨린 기본 덕목, 즉 헌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장인정신의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현재 개인들이 겪고 있는 불안이 덜어질 리 없다. 하지만 일상의 사례들을 풍부하게 곁들이며 자신의 논지를 펼치는 지은이의 통찰력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한 발짝 떨어져 다시 바라보게 한다. 특히 개인의 삶을 배려하는 제도야 말로 헌신을 이끌어내고, 지속가능한 사회의 핵심이라는 주장은 곱씹어볼 만한 여운을 남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3/22 22:39 2010/03/22 22:39

댓글0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민주 생태 사회주의 조직 건설을 위한 토론회

View Comments

 

 

민주 생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새로운 정치조직을 함께 건설합시다!!!

 

1. 지금 왜 사회주의인가?

 

우리는 여러 동지들께 새로운 사회주의 정치조직의 건설을 제안합니다. 이제까지의 운동 성과들을 이어받되 지금 우리가 마주한 전혀 새로운 시대 상황에 맞게 새로운 고민과 결의, 실천에 함께 하자고 제안합니다.

 

‘전혀 새로운’ 시대! 그렇습니다. 2008년은 정말 중대한 역사의 전환점이었습니다. 몇 십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거대한 사건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연초에 있었던 이명박 정권의 등장, 총선에서 보수 세력의 압승, 민주노동당 내부 모순의 폭발 등만 해도 동시대사의 커다란 매듭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 사건의 충격 속에서 우리는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어려운 과제에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서곡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뜻밖에도 촛불 항쟁이 터져 나와 대중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30여 년간 온 세상을 지배해온 지구화와 금융화가 그 본거지 미국에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진보의 재구성’은 애초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방향 전환과 노력을 요구한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절감합니다.

 

특히 우리가 그 의미를 곱씹어야 할 것은 현재 계속 진행 중인 지구 자본주의의 위기입니다. 이 위기가 관성적인 케인스주의 경기 조절 정책만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은 이제 분명합니다. 이번 위기가 말하는 것은 지구화와 금융화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그럴 수 없다는 진실입니다. 그런데 지금 자본주의 문명에는 지구화와 금융화 외에 다른 어떤 해법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방향 상실의 시대입니다. 정해진 방향이 없으니, 당연히 또한 혼돈의 시대입니다. 1차 대전으로 19세기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붕괴한 뒤 한 세대 넘게 혼란을 거듭했던 과거 20세기 초를 돌이켜 보면, 이 혼돈의 시대는 결코 짧게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더구나 산업 자본주의 200년 역사가 재촉한 생태계 위기가 경제 사회 체제 위기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든 인류는 인류사 초유의 시험에 맞닥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시대가 이러합니다. 이런 시대에 사회 변혁을 고민하고 실천한다는 것은 그 이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니, 달라야 합니다. 87년 6월 항쟁으로 폭발한 민주화의 에너지를 어떻게 하면 노동자 ․ 민중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전개시킬까를 주로 고민했던 지난 20여 년간의 경험과 관성으로 될 일이 아닙니다.

 

사실 이전에도 우리 중 많은 이들은 ‘사회주의’를 이야기했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때 우리가 이야기한 ‘사회주의’는 체제의 변화, 삶의 방식 자체의 변화, 더 나아가 문명의 변화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습니다. 추상적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실제 실천으로 나타난 것은 이런 심원한 변화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그렇게 절박하지도, 구체적이지도 못했습니다. 현실 정책에서는 사회민주주의 노선과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그저 먼 미래의 과제로서 사회주의를 강조하는 정도로만 보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서구 사회민주주의가 성취한 복지 체제 정도라도 실현시키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중요한 당면 과제들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기다리는 기나긴 혼돈의 시대에는 이 정도 목표조차도 과거와 같은 방식만으로는 쉽게 달성할 수 없습니다. 오직 지구 자본주의의 위기를 직시하고 그 자체에 도전할 때에만 부분적이고 잠정적인 성과들도 쟁취할 수 있습니다.

 

지구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도전 ― 우리는 이제 ‘사회주의’를 이야기하면서 바로 이것을 고민하며 추구해야 합니다. 과거와는 다른 절박함과 구체성으로 이 오랜 이상을 되살려야 합니다. 우리는 바로 이 작업을 함께 해나갈 동지들의 토론과 실천의 공동체로서 사회주의 정치조직을 만들자고 제안 드리는 것입니다.

 

 

 
2.
민주 생태 사회주의를 향해

 

물론 사회주의 자체도 변화해야 합니다. 사회주의의 오래된 이상, 즉 생산수단을 사회적으로 소유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것, 생산자와 소비자가 경제 활동 전반을 자주 관리해야 한다는 것, 모든 시민에게 기본적 소득과 보편적 복지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 등은 지금 우리에게도 절실한 과제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제들을 21세기 우리 사회에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도 사회주의 운동의 나머지 역사적 구성 요소들은 그야말로 환골탈태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보의 재구성’의 핵심에는 ‘사회주의의 재구성’이라는 과제가 있다고 봅니다. 재구성의 구체적인 쟁점들은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민족국가‧민족주의와 국제주의의 쟁점들도 있고, 여성주의의 쟁점들도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 출발점으로서 특히 민주주의와 생태주의의 쟁점에 주목합니다. 일단 이 문제의식들에서부터 사회주의 이념과 운동을 재구성해가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향에 굳이 이름을 불이자면, ‘민주 생태 사회주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왜 ‘민주사회주의인가?

 

두말할 필요 없이 이것은 과거 스탈린주의의 일당 독재‧관료 독재 경험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에 이것은 결코 ‘과거’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스탈린주의의 모순을 확대 재생산한 북한 체제가 한반도에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식 ‘사회주의’와 우리의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 생생히 보여주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어렵지만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 사회주의가 곧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민주주의 노선은 스탈린주의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민주주의의 성숙을 제약했습니다. 사회민주주의는 현존 대의제에 일방적으로 적응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민중이 자기 삶의 현장에서 권력의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노력들에 장애물이 되고는 했습니다.

 

물론 우리의 민주 사회주의도 현존 민주주의의 틀에 참여하는 데서부터 출발할 것입니다. 거기에서부터 대중 정치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그 틀에 갇혀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결코 그래서는 안 됩니다. 현존 대의제에서 출발하더라도, 항상 그것 자체를 더욱 민주화하고, 그 좁은 틀을 넘어서서 대중 참여와 자치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참으로 중요한 이유는 그래야만 사회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이상이 비로소 실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그래야만 경제 활동의 핵심 영역인 생산 현장에서 자주 관리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그간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에서도 일정하게 실현되었던 부의 재분배는 의회에서 법령을 만드는 것으로 실현시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주 관리는 그렇게 해서는 실현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오직 대중 스스로 모든 생활 현장의 결정 과정에 참여하려고 나설 때에만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국가’ 사회주의의 관성에서 완전히 탈피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현실사회주의의 일당 독재도 ‘국가’주의였고, 의회와 관료기관 등 기존 국가기구에 결정권이 집중되었던 사회민주주의도 결국은 ‘국가’주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 사회주의에서는, 국가 자체가 민주화해야 할뿐더러, 국가기구가 더 이상 권력의 유일한 주체가 아니어야 합니다. 국가기구 외에도 생산자 조직, 소비자 조직 등이 권력을 나눠야 합니다. 그래서 현재의 자본주의보다도 훨씬 더 실질적으로 다원적인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집권 이전부터 다양한 대중운동들이 발전해 있어야 합니다. 이들 운동이 대중 권력 주체들로까지 성장해가야 합니다. 정당운동과 사회운동들이 동반 성장해서 집권의 공동 주역이 되어야 합니다. 노동운동은 정규직-비정규직의 벽을 넘어서 다시금 도약해야 하고, 모든 운동이 지역에서부터 새롭게 뿌리를 내려야 하며, 진보정당은 이러한 대중운동의 발전을 북돋는 ‘운동 정당’의 노선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실현하고자 하는 민주 사회주의의 길입니다.

 

다음으로, 그럼 왜 ‘생태사회주의인가?

 

위에서도 이미 말한 것처럼, 우리 시대의 위기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것입니다. 경제 사회 체제의 위기뿐만 아니라 생태계 위기를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생태계 위기는, 경제 사회 체제 위기와 마찬가지로, 지구 자본주의와 밀접한 연관을 갖습니다.

 

이 연관에서 가장 눈에 드러나 보이는 고리 중 하나가 에너지 문제입니다. 자본주의는 그 탄생기부터 화석 에너지의 과소비에 밑바탕을 두었습니다. 200년간의 그 과소비는 결국 우리 세기에 화석 에너지 고갈을 불러왔습니다. 또한 탄소 과잉 배출로 지구 생태계의 균형을 깨서 기온을 높이고 있습니다. 앞으로 21세기 내내 인류 사회는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긴장이 높아질 것이고, 이 긴장은 결국 강대국간 충돌로 이어질지 모릅니다.

 

이것은 그간 자본주의가 추구해온 생산력 발전 방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항구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는 게 드러난 것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생산력 발전은 자신의 그림자마냥 필연적으로 파괴력의 증대를 동반한다는 것 역시 분명해졌습니다.

 

그런데 과거 사회주의 운동 내의 주된 흐름은 이러한 점을 제대로 주목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회주의를 자본주의의 성과를 노동자‧민중의 것으로 전취하는 것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자본주의 생산력을 그대로 계승하고 오히려 그것을 기존 성장 방향의 연장선에서 더욱 급속하게 확대시키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5개년 계획을 통해 물량 중심 성장의 극치를 보여준 스탈린주의는 그 전형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노동자‧민중은 자본주의의 생산력과 함께 그 파괴력까지, 생산력 발전뿐만 아니라 생산 강박까지 물려받게 됩니다. 이것은 사회주의의 본래 이상인 ‘인간 해방’, ‘노동 해방’과도 거리가 멉니다. 맑스 자신이 이미 ‘노동 해방’의 핵심 내용으로서, 노동시간의 획기적 단축과 이를 통한 자유시간의 확대를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이상은 생산 강박에 빠진 사회와는 양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노동자‧민중 스스로 생산 강박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켜야 합니다. 생산 강박의 동전 반대면은 소비 강박입니다. 따라서 소비 강박으로부터도 벗어나야 합니다. 말하자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전에 그 사회를 건설할 우리 자신의 삶의 방식부터 바꿔나가야 합니다. 자본의 지배로부터 우리의 생활과 생명을 되찾는 생활 혁명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러한 생활 혁명이 곧 반자본주의 사회 혁명의 주체를 형성하는 진지전이 될 것입니다.

 

이 점에서 협동조합운동의 의의와 가능성을 새롭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노동조합운동이 생산 현장의 연대 조직이라면, 협동조합운동은 생활과 생명 현장의 연대 조직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대중조직으로서 기존의 노동조합과 함께 각종 협동조합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새롭게 조직되는 비정규직 노동운동에서는 아예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이 서로 중첩되었던 초기 노동운동의 경험을 되살리는 실험을 펼칠 수도 있겠습니다.

 

이것은 우리 운동 전반을 생태주의의 문제의식과 상상력을 통해 개조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생태 사회주의란 이제 노동운동보다는 환경운동에 주목하자는 식의 주장이 아닙니다. 노동운동을 새롭게 다시 시작하자는 것입니다. 주택과 교육 거품에 휩쓸려서 더 많은 임금 소득을 얻으려고 생산 경쟁에 자발적으로 뛰어드는 우리 노동자들의 현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을 바꾸기보다는 그것에 편승하기만 하는 노동조합운동의 현 상황을 넘어서자는 것입니다.

 

이미 지적한 것처럼 협동조합을 노동해방의 또 다른 중요한 진지로서 발전시키는 것도 그 한 방향일 수 있고, 우리 노동조합운동에서 늘 장식품 취급을 받아온 ‘실질 노동시간 단축’ 요구를 보다 강력하게 제기하는 것도 또 다른 방향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자주관리의 이상을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대안 생산의 지향과 연결시켜야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생태 사회주의의 문제의식입니다.

 

 


3.
민주 생태 사회주의 정치조직 건설을 통해 이런 일들을 합시다

 

우리는 위와 같은 새로운 사회주의의 지향에 공감하는 모든 개인과 조직들에게, 민주 생태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정치조직을 함께 건설할 것을 제안합니다.

 

지난 11월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 연대’(약칭 ‘전진’)는 민주 생태 사회주의 정치조직의 건설을 위해 기존 조직을 해체하고 새 조직 건설을 광범하게 제안할 것을 결의한 바 있습니다. 기존의 좁은 조직 울타리를 넘어서 사회주의의 재구성과 실천에 뜻을 같이 하는 분들과 함께 정치운동을 새롭게 시작하자는 것이 그 기본 취지입니다.

 

새로운 사회주의 정치조직의 건설을 통해 앞으로 다음과 같은 과제들을 실천해나갑시다.

 

첫째, 21세기 우리 사회에 필요한 사회주의 이념과 전략, 노선과 정책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토론 ‧학습합시다. 위에 밝힌 민주 생태 사회주의의 지향은 그야말로 출발점에 불과합니다. 그 연장선에서 보다 깊이 있는 연구와 토론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결코 몇몇 지식인에게 맡겨놓을 문제가 아닙니다. 변혁 운동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경험과 지혜를 모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를 새로운 사회의 주역으로 단련시켜가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재구성 작업의 성과들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확산시켜 나갑시다. 이러한 작업들을 함께 벌여나갑시다.

 

둘째, 장기적 시야와 긴 호흡으로 대중운동의 재구성 작업에 함께 합시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노동운동입니다. 무슨 거대 이론의 전제 때문만은 아닙니다. 노동운동이 제대로 서지 않고서는 민주주의의 성숙과 진보적 사회 변화가 쉽지 않다는 것은 이미 숱한 역사 사례들이 증명하는 경험적 진실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가 이토록 교착과 정체 상태에 빠진 것도 결국은 노동운동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원인에 대한 진단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정규직-비정규직 등 노동 유연화로 인한 노동계급 내부의 균열과 분열, 그리고 이를 해결하는 데 무능한 기업별 노동조합 체제. 다만 이 난마와 같은 현실을 돌파할 대중적인 결단이 어디에서도 터져 나오고 있지 못할 따름입니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은 그 동안 기존 민주노조운동 내부의 혁신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리고 이 노력은 앞으로도 더욱 치열하게 계속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또한 절감하고 있습니다. 기존 민주노조운동 바깥에서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새롭게 조직하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그 동안 우리 운동은 상대적으로 이 부분에 너무 취약했습니다. 늦다고 생각한 때가 적기라고 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이러한 새로운 조직화 작업에 역량을 집중해서 우리 노동운동 전반을 변화시킬 중요한 출발점 중 하나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여러 동지들께 바로 이 작업에 함께 착수하자고 제안 드립니다.

 

물론 사회운동 재구성의 지점들이 이것만은 아닙니다. 지역 생활 현장에서 협동조합운동을 일구는 것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또한 지역을 중심으로 노동운동, 여성운동, 생태운동 그리고 장애인 등 소수자 운동의 연대를 형성해야 합니다. 노동운동의 재구성과 긴밀한 연관 아래 학생운동을 새롭게 시작해야 하고, 민주화 및 노동운동 1세대의 노령화와 생태적인 농민운동의 전망을 서로 연결시킬 수 있는지 탐색해보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지금 당장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10년의 전망을 갖고 미래 실천을 기획하며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서도, 여러 동지들의 힘을 모아야 합니다. 이러한 공동의 꿈꾸기와 씨앗 뿌리기 작업에 함께 합시다.

 

셋째, 진보정당운동이 제 역할을 하도록 그 실천 방향을 고민하고 제시해나갑시다. 우리에게는 진보신당이 창당 정신으로 밝힌 ‘진보의 재구성’을 올곧게 그리고 끈기 있게 추진해나갈 진보정당운동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진보정당운동을 통해 좌파 대중정치의 가능성을 계속 탐색하고 실현시켜나가야만 대중운동의 재구성도 가능하며 그 의미를 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숱한 난관이 예상됩니다. 이미 우리 눈앞에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반MB 연대의 요구가 자칫하면 민주당 ․ 국민참여당의 헤게모니만 강화하는 방식의 신종 ‘민주대연합’으로 귀결될 위험이 높습니다. 이 격랑에 잘못 휩쓸렸다가는 ‘진보의 재구성’을 추진해나갈 우리의 정당운동 자체가 침몰해버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험의 순간에 진보정당운동의 키를 굳세게 부여잡고 파도를 함께 헤쳐 나갈 동지들을 간절히 바랍니다. 함께 토론하고 공동의 의견을 만들어 조직된 힘을 펼쳐나가고자 합니다.

 

긴박한 정세를 감안한다면, 적어도 2010년 봄까지는 새로운 조직이 출범하는 게 바람직할 것입니다. 그 때까지, 관심 있는 모든 분들과 함께 새로운 조직의 노선과 전략, 과제들에 대한 열띤 토론으로 올해 겨울을 달구고자 합니다.

 

다시 한 번 호소합니다.

민주 생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새로운 정치조직을 함께 건설합시다!!!

10년 뒤를 내다보며 우리 운동의 재구성에 나설 토론과 실천 공동체의 건설에 함께 나서 주십시오!!!

 

2010년 1월 4일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연대(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3/22 16:38 2010/03/22 16:38

댓글0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역동적 복지국가론에 대한 단상

View Comments

1.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내세운 역동적 복지국가가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한 경향과 한겨레의 관심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그런데 왜 내 눈에는 구태의연하게 보일까.
 
2.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의제27과 함께 '역동적 복지국가' 담론을 꾸준히 설파해왔다. 그 정치적 형태는 단일한 진보개혁정당 내지 진보대연합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제는 과거 비판적 지지세력과 커다란 차이를 보이지 않는 민주노동당과, 사민주의 강령에도 못미치는 제3의 길 수준의 내용으로 후퇴하고 있는 진보신당이 '맨 왼쪽'에 있고, 그 왼쪽의 세력에게는 입장권이 허용되지 않는다. 물론 별다른 정치적 활동을 보이지 못한 데에도 이유가 있지만, 그렇다고 이를 배제할 일은 아닌데, 그렇게 가고 있다. 이를 가시화하고 있는 정치적 매개체는 바로 5+4 회의이다. (진보신당이 여기에서 나갔다고 하지만, 지역 수준에서는 여전히 같은 행보를 걷고 있고, 중앙 차원에서도 노심에 배려를 해준다면 다시 뛰어들 태세다.) 그렇다면 지금의 역동적 복지국가 담론이 얘기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대략 알 수 있지 않겠는가.
 
3. 책 발간 현장에 나타난 인사들의 면면만 보더라도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사실상 자유주의 보수세력을 진보개혁세력이라는 이름으로 묶어주는 것만으로 모자라 이제는 복지라는 이름을 새롭게 붙여서 포장해준 것에 불과하다. 얼마 전에는 박근혜가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복지한국을 건설하겠다고 하더니, 이제는 정동영, 손학규마저 복지라는 이름하에 대동단결의 장에 섰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복지국가나 동물의 왕국이냐의 선택이라고 하였지만, 그게 민주 대 반민주와 어떠한 차별성이 있는가? 단지 의제가 변하였을 뿐이다.
    
4. 물론 개발과 지역주의 선거담론이 생활과 복지담론으로 프레임이 바뀌게 되는 것 자체만으로 분명 의미가 있다. 하지만 보편적 복지가 선거의 쟁점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 부쩍 심화된 빈곤과 불평등을 민중들이 인지하게 되었기 때문 아닌가. 진보개혁진영이 밥상을 차린 것은 아님을 다 알고 있지 않은가.
 
5. 우리는 서구 복지국가의 경험에서 배우고 있나. 복지국가의 확립에 필수적인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는 제껴놓은 채 사민주의 복지국가의 모델을 가지고 왔다고 할 수 있나. 노동운동이 아니라면 이를 대체하는 세력은 있는가. 이를 시도했던 제3의 길, 사회투자국가 또한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역동적인 복지국가 제안이 실효성이 있으려면 운동정치와 결합되어야 한다.
 
6. 복지가 아니고 복지국가라고 한 것은 국가를 강조해서, 지금까지의 선별적 복지와 구별되는 체제의 변화를 시도한 것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국가중심의 기획이 가진 문제에 주목한다면, 그 대안이 시장이 아니라면 이를 뛰어넘는 사회화의 문제, 반자본주의 지향을 가진 사회복지투쟁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역동적 복지국가론에서는 이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시장만큼 역동적인' 복지국가를 역설하는 것이 답답하다.
 
7. 마지막으로 말꼬리를 잡아보자. 역동적 복지국가의 핵심은 능동적 복지란다. 적극적 복지의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겠지만, 이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제안되었던 것이다. 그것과 용어상이라도 구별되는 뭔가를 제시해야 하지 않나. 또한 역동적이라고 하니 괜시리 '다이나믹 코리아'가 떠오른다. 이것을 우리말로 번역한 건가.
 

----------------------------
"2012 대선, 단일진보정당으로 맞서야" (레디앙, 2009년 11월 19일 사단법인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의견] 역동적 복지국가 위한 진보대통합…원탁회의 구성 시급 
   
민주정부 10년 동안 우리사회의 정치적 절차적 민주주의는 크게 발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경제사회적 양극화는 심화되었다. 민생의 고통과 불안은 만성화되고 있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우리나라 복지제도를 크게 확충하였고 노무현 정부는 온정적 복지정책으로 김대중 정부 때 도입된 각종 복지제도를 공고히 했다. 그러나 이러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복지노선은 이명박 정부의 복지제도와 본질적으로는 동일하다. 보편주의 복지가 아니라 선별적 잔여주의 복지제도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가 역동적 복지국가의 시대를 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진보대통합의 정치이다. 우리가 복지국가 세력의 역량을 꾸준히 확대 강화하는 동시에 신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압박과 공세를 계속하려면, 2012년 대선까지 진보대통합의 단일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서 민주당, 한나라당과 함께 단일진보정당이 맞서는 3자 구도로 대선을 맞이해야 한다. 
  
우리는 그 동안의 역사를 통해 민주당의 집권만으로는 복지국가를 결코 이룰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민주당의 태생적 한계는 진보정치세력의 확장된 정치적 역량을 통해 크게 보완되어야 한다. 진보정치세력이 성장하면 할수록 민주당을 친 복지국가 노선 쪽으로 견인하기에 더욱 유리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아무리 늦어도 2012년 총선 이전까지는 진보대통합 정당이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진보대통합 정당의 상은 당의 문호를 최대한 넓게 열어준 정당이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체제를 극복하고 역동적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데 동의하는 모든 기성 정치세력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진보대통합이 단순히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재결합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이렇게 협소한 통합만으로는 아무런 통합의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없고 사람들의 눈에는 의미 없는 이합집산 정도로 비추어질 뿐이다. 따라서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 시민사회의 진보개혁세력, 여타 기존 정당의 참여 희망 세력 등 진보대통합의 대의에 동의하는 모든 주체가 제3세력으로 참여하는 의미에서의 통합진보정당이 등장해야만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시급하게 진보대통합 정치를 위한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되길 기대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진보정당과 진보정치세력들의 대표 또는 실질적 교섭권을 위임 받은 대표들이 참여하는 ‘진보대통합을 위한 원탁회의’의 구성을 제안하고자 한다. 
  
진보정치가 민중의 이해와 요구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진보정치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독선과 독주는 이미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을 체감하기에 충분할 정도가 되었다. 이제 이명박 정부를 극복하기 위한 범국민적 ‘반MB 전선’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 전선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역동적 복지국가의 비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역사적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진보대통합 정치가 필수적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계속된 진보를 위한 노력과 희생이 헛되지 않고 미래의 ‘역동적 복지국가’를 힘차게 열어나갈 수 있도록, 이제 현재의 진보가 과거와 미래의 진보를 위해 크게 결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2010 지방선거를 앞둔 현 시점에서 ‘진보대통합을 위한 원탁회의’를 시급히 구성할 것을 제 정당과 시민사회에 다시 한 번 제안하고자 한다. 
     
----------------------------------
계급연대전략으로써 사회복지 (문제는 자본주의다 15호, 2009/12/07 20:35, 제갈현숙(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외래교수), 사노준) 
 
복지에 대한 사회권은 노동자들을 시민으로서 사회에 통합시키고 노동자들이 국가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음을 상징한다.복지국가는 이러한 노동자들을 사회적으로 통합하고, 이를 통해 연대감을 증진시켜온 여러 방법 중 하나다. 이러한 연대감은 노동계급운동에는 치명적이다. 왜냐하면 풀란차스(Poulantzas)의 분석처럼 기본적으로 사회복지는 지배세력의 경제적 양보를 요한다는 점에서 경제에 대한 국가의 자율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지만, 자본의 정치권력에 위협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복지국가 역시도 장기적으로 자본에 유리하거나 자본의 확대재생산과 양립하는 전략으로 가능성과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노동자들의 투쟁의 성과로 제도화된 복지투쟁의 사회성과 역사성 역시도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독일의 사회학자 하이만(Heimann)은 사회정책에 대해 자본소유와 상품질서에 반하는 원칙으로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사회적 이상의 실재로 설명하였다. 피지배계급의 자본주의 메커니즘에 반대하는 사회적 이상은 사회운동을 통해 현실에서 구체화되고 사회운동의 정도에 따라 사회정책의 성격이 시장질서에 반하는 정도가 결정된다. 사회정책의 이러한 혁명적 성격은 체제를 유지, 통합하려는 자본 및 보수주의자들과 항상 갈등하고 대립하게 된다. 이러한 혁명성과 보수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 사회정책이고 이로 인해 사회정책은 야누스의 얼굴과 같은 양면성을 띤다. 그러므로 사회정책은 매우 유기적이며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사회적 이상과 투쟁의 정도에 따라 이 양면성의 색채는 결정된다. 노동운동의 사회복지 투쟁은 반자본주의에 대한 지향성을 가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사회복지 투쟁이라 할지라도 자본의 심장부를 공격할 수 있어야 한다.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은 시급하다. 이들은 가처분소득인 낮기 때문에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해서도 예비할 수 있는 자원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소득이자 노후소득의 기능을 하는 연금제도에서 배제되고 있다. 사회보험은 사회적 위험이 더 높은 계층에게 더욱더 예방적인 기능을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오히려 사회적 위험이 더 큰 집단일수록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사회연대전략에서처럼 시장임금 소득이 상대적으로 높은 노동자들로부터 갹출 받은 기금을 바탕으로 시급하게 지원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계와 같은 공동체간의 상호부조관습 등은 이미 존재해왔다. 또한 실업과 비정규직의 문제에 대해 자본과 국가가 현재처럼 그 어떤 개선의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면, 노동계급의 경제적 양보가 자본의 양보보다 수월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 노동운동의 새로운 출구 전략으로 유용하지 못하다. ‘경제적 양보’로 표현되는 연대는 노동계급 내부의 정치적 동의를 끌어내기 힘들고, 경제적 양보가 가져올 효과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사회연대를 통해 계급연대가 형성될 것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예상일뿐이다. 사회임금으로 보다 나은 소득보전을 받은 노동자들은 여전히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많은 시간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물론 보다 향상된 사회임금으로 그들의 가계소득은 다소 향상될 수 있으나 삶의 질을 변화시킬 수준만큼은 되지 못한다. 이들을 정치적으로 세력화하거나 노동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회임금으로 얻게 되는 결과와는 전혀 다른 메커니즘을 가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것이 미래소득인 연금제도라면 현재를 변화시킬 정치세력화로 연결되기 힘들다. 또한 사회임금이 향상되었다고 계급 간 연대가 향상되었다는 증거는 서구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은 사민주의자들의 주장이었지 실제 현실에서 사회임금 확대를 통한 노동계급의 정치가 비례적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노동자의 시장임금 재분배를 통한 사회임금 증액은 결국 총노동비용에 대한 계급 내적 재분배라는 한계와 이렇게 향상된 사회임금이 역으로 시장임금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고려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이후 사회복지 개혁은 시민과 노동자의 책임강화로 수렴되어져 왔다. 이에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좌파세력들은 오랫동안 개인의 책임강화로 전환되는 사회정책에 대해 반대해 왔다. 그런데 사회연대전략은 다른 이름의 노동책임 강화론이 될 수 있다.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태생의 비밀이자 계급연대로 가기 힘든 요소가 된다.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자본과 국가에게 임금 및 사회적 비용의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 왜 실현하기 어려운 것이라고만 여겨지는 것일까? 예를 들면 현재 노동과 자본이 5:5로 분담하고 있는 사회보험요율을 5:6과 같은 방식으로, 자본의 비율만 총액 대비 10%만 증가시켜 이 재원을 사각지대의 사회보험료로 활용하는 방안은 비현실적인가? 이것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이제까지 노동운동이 이와 같은 혁명적 성격을 담지한 사회정책 투쟁에 적극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좌파진영 역시 이와 같은 투쟁을 중심의 과제로 수용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역으로 노조가 임금투쟁이나 고용안정을 위해 파업하지만 연금보장성 강화를 위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비판은 오히려 임금, 고용, 그리고 복지의 문제를 분리시키는데 일조하였고 각각의 투쟁 과제를 선후의 문제나 선택의 문제로 개별화시켰다. 임금 및 고용투쟁의 중요성은 신자유주의 전환이후 더욱 부각되었다. 그러나 임금이나 고용을 위한 투쟁은 매우 이기적인 해당 사업장의 노동자만을 위한 투쟁으로 폄하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노동자 스스로 그리고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분리된 임금, 고용, 복지의 연관성을 노동자계급 스스로가 찾아갈 수 있는 전략이 요청된다.
 
노동현장과 직결되어 있는 노동조건 및 임금의 문제는 명료하게 계급문제로 인식하지만 작업장을 벗어난 문제와 당장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벗어나는 문제에 대해서 계급적으로 이해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산별운동이 진행되어 왔으나 아직은 넘어야할 산이 더 많아 보인다. 그 넘어야 할 산마다 계급적 연대를 강화할 수 있는 관점에서 사회정책이 제출되어져야 한다.
 
사회연대가 정치적 힘을 발휘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계급연대로부터 출발한다. 노동운동이 발전하지 않은 곳에서 사회권은 발전되기 어렵거나 매우 형식적인 수준에서 머문다. 노동이 자본과 국가에 대항하지 않고 먼저 타협한 사회복지제도로는 보편적인 인민의 삶의 질 향상은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노동자의 사회복지투쟁은 계급연대를 도모하는 동시에 자본주의 메커니즘을 반대하는 전략이 되어야 한다.
 
--------------------------
사회투자론, 한국사회에서 통할까? (레디앙, 2009년 12월 13일 (일) 12:03:58 손기영 기자)
[새책] 『사회투자와 한국 사회정책의 미래』…학계 평가와 논쟁 담아 
  
“세금폭탄이라는 감성적 용어가 국가 역할 축소, 시장 역할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담론을 대중적으로 관철시킨 것이라며, ‘사회투자’는 복지 확대가 경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의 필수전제임을 각인시키는 친복지진영의 대중적 담론이 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전통적 복지국가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구축하기 어렵다면, 엄청난 재원을 필요로 한다는 사회투자국가에 대한 지지를 구축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다.” 
  
참여정부 중반 이후 핵심적 복지담론이었던 ‘사회투자’에 대한 학계의 평가와 논쟁을 역은 『사회투자와 한국 사회정책의 미래(나눔의 집, 김연명 등 지음, 23000원)』가 출간되었다. 사회투자 개념은 참여정부 시절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저출산?고령화 대비의 필요성 등 참여정부의 굵직한 의제들을 뒷받침하는 핵심 논거로 사용되었다. 
  
국민의 정부의 ‘생산적 복지’와 참여정부 초기의 ‘참여복지’는 견고한 학술적 기반에 정책적 근거가 매우 빈약한 정치적 상징 정도의 성격을 갖는 반면, ‘사회투자’는 이론과 정책사례 양 측면에서 보다 견고한 기반을 갖고 있으며, 국제적으로도 통용이 가능한 용어라는 점에서 단순한 정치적 상징을 넘어서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은 크게 3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사회투자론의 맥락과 한국적 함의’라는 제목의 제1편은 사회투자론의 출현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기존의 사회정책 접근방법과 구별되는 사회투자전략의 특징, 그리고 이것이 한국 사회에 주는 함의와 관련된 글들로 이뤄져 있다. 주로 사회투자가 한국사회에서 유효한 패러다임으로 가능하다는 내용의 메시지다. 
 
반면 ‘사회투자론의 주요 쟁점과 논쟁’이라는 제목의 제2편에서는 이러한 메시지에 대한 반론과 쟁점을 다룬 논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특히 김영순 서울산업대 교수는 ‘사회투자국가가 우리의 대안인가’라는 글에서 사회투자에 우호적인 논문들의 이론적 실천적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논쟁의 불길을 당기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영국 사회투자정책의 성과와 한계’라는 제목의 제3편은 사회투자 국가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신노동당 집권기의 영국 사회투자정책의 성과를 평가하는 논문들이 실려 있다. 전체적인 논지는 신노동당의 사회투자정책은 어느 정도 성과는 있었지만, 그것이 영국의 자유주의 복지체제의 특성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MB정부의 복지담론은 ‘능동적 복지’다. 영어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OECD 보고서 등에 자주 사용되는 ‘적극적 복지(active welfare)’다. OECD에서 사용하는 ‘적극적 사회정책’의 프로그램이 상당부분 사회투자 전략과 유사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참여정부와 성격이 다른 정부가 비슷한 맥락의 사회정책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김연명 중앙대 교수는 ‘현재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어떠한 정부가 들어서건 노동시장의 구조 변화와 인구구조의 변동이 가져오는 ‘신사회 위험’의 증가라는 속박에서 자유로울 없다‘고 밝힌다. 즉 사용하는 용어는 다를 수 있지만, 사회투자 전략이 제기하는 문제의식과 정책은 향후 상당기간 한국 사회정책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
[경제와 세상]역동적 복지국가를 향한 출구전략 (경향, 조원희 | 국민대 교수·경제학, 2010-01-21 18:10:12)
 
투기에 기댄 수요가 아닌 견실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창출되려면 시스템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진보적 미래’란, 금융이 아니라 생산이 중심이 되고 복지가 생산과 긴밀히 연계되며 소득 분배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어 ‘생산적 수요’가 시스템 내부로부터 지속적으로 창출되는, 이른바 ‘역동적 복지국가’ 체제다. 
  
-----------------------------
‘역동적 복지국가’우리의 해법과 대안 (내일, 범현주 기자, 2010-02-12 오전 11:40:20)
대한민국, 복지국가를 부탁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편저, 도서출판 밈/1만3900원
 
------------------------------
시장처럼 ‘역동적’인 복지 정책 꿈꾸다 (시사저널 [1063호] 2010년 03월 03일 (수) 조철)
보육·교육·보건 의료·조세 재정 등 각 주제별 과제로 본 한국 사회의 이슈와 대안
 
복지국가소사이어티 홍보위원회는 “박정희 시대에 떠들었던 복지 국가의 모습이란 ‘1인당 국민소득 1천 달러를 달성해 더 이상 굶는 사람이 없고, 집집마다 자가용이 있는’ 정도의 그림으로 상상되었던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에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았던 국민은 이러한 국가적 목표에 동의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 당시 우리 민중들은 ‘대기업과 재벌 중심의 성장 전략’과 ‘세계 최고 수준의 근로 시간’ 그리고 ‘최악의 노동 조건’을 수용해야만 했다. 박정희 시대에 꿈꾸었던 복지란 이렇게 나중에 잘살기 위해 지금 당장의 고통을 모두 감내하며 열심히 일하자는 식의 기복 신앙과도 같은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어느덧 한국은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들어섰고, 집집마다 자동차가 넘쳐나 이제는 주차 문제로 골치를 썩일 정도로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청년 실업, 비정규직, 저출산, 사교육 문제 등 현안들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사회 전체가 우울한 모습으로 치닫고 있다. 이 책은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 “복지 국가를 추구하지 않아서 발생한 신자유주의적 사회 불평등이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라고 못박았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양극화의 모순이 가중되고 있음을 강조하는 저자들은 “민생의 고통과 불안이 심화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가 기존의 패러다임을 과감하게 넘어서서 ‘역동적 복지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
그나마 있던 복지마저 줄이는 친서민 정부? (프레시안,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학교 교수, 2010-03-05 오전 10:30:44)
[기고] "잔여적 복지마저 위험하다"
  
---------------------
사람에 투자하라 (프레시안,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2010-03-11 오전 11:29:39)
[의제27 '시선'] 군나르 뮈르달의 통찰력과 복지국가의 역동성
 
스웨덴의 복지제도는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철저하게 자본주의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복지제도가 경제성장을 방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1938년 스웨덴 정부, 노동조합, 기업 대표가 잘쯔요바덴에 모여 자본가의 경영권을 인정하는 대신 노동자를 위한 사회복지를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그 후 스웨덴의 파업은 사라지고 경제는 높은 성장률을 이룩했다. 결국 스웨덴의 복지국가는 대공황으로 망해가는 자본주의 경제를 살려놓았다.
 
스웨덴이 복지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사실 생산적, 투자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1934년 스웨덴 경제학자 군나르 뮈르달과 부인 알바 뮈르달은 유명한 저서 <인구문제의 위기>에서 출산율의 저하와 인구 고령화가 결국 경제의 쇠퇴를 야기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인구가 감소한다면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우수한 노동력 확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적자본을 위한 투자'를 강조하는 새로운 사회정책을 강조했다. 그리고 육아와 가정의 문제를 사회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후 스웨덴의 노동조합(LO)과 사회민주당(SAP)은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을 밀접하게 연결하려고 노력했다. 실업자들에게 단순히 실업급여만 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교육과 훈련의 기회를 제공하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active labor market policy)을 추진했다.
 
1990년대 집권한 우파 정부는 시장 자유화 정책을 확대했다. 정부 재정을 축소하고, 연금 제도를 개혁하고, 복지를 지불 가능한 수준으로 감소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높은 조세를 토대로 하는 보편주의적 사회복지체제는 스웨덴 모델의 핵심적 요소로 계속 유지되고 있다. 정부가 바뀌어도 국민의 절대다수가 여전히 복지국가를 지지하고 있다.
  
네덜란드 사회학자 안톤 헤머릭은 <21세기 새로운 복지국가>에서 북유럽 국가들이 불평등의 저하, 높은 수준의 고용, 적절한 공공지출을 동시에 유지하는 성공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특히 스웨덴 정부는 직접 사회서비스를 제공하여 전체 노동력의 30% 수준의 고용을 창출했다.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에 세계경제가 침체되면서 수출주도경제인 스웨덴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4년 실업율은 4%이었으나, 경제위기 이후 2009년 6.3%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실업율은 8.8%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학계에서는 인적자본에 대한 사회적 투자가 고용 증대와 소비 촉진을 통해 내수 부양 효과가 있고 경제성장에도 기여한다고 본다. 실제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처음 시작한 스웨덴과 노르웨이뿐 아니라 1990년대 이후 유사한 정책을 도입한 덴마크와 네덜란드의 실업율도 점차 하락했다.
  
복지가 필요한 시민에게 수동적으로 지원하는 전통적 복지국가가 달라지고 있다. 시민의 자활을 격려하고 책임을 강화하며 유급노동으로 이동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역동적 복지국가'로 전환해야 한다는 시각이 확산되었다. 이제 사회정책은 단순한 복지급여의 전달에서 사회투자의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제 한국에서도 복지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한다. 경제성장과 고용확대를 위해 복지국가가 필요하다는 새로운 정치적 담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마디로,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

 

---------------------------------
“이젠 복지정책 넘어 복지국가로” (경향, 최우규 기자, 2010-03-14 18:29:02)
ㆍ시민단체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제안
ㆍ진보·개혁진영 연대·통합 고리될지 주목
 
이상이 제주대 교수는 발제문을 통해 “신자유주의에 따른 양극화는 국민에게 일자리, 보육·교육, 주거, 노후, 건강·의료 등 5가지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며 “이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역동적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 단순한 복지 확충을 넘어 국가 시스템으로서 복지국가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이상구 사무처장은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신자유주의에 따른 사회 양극화로 민생은 고통받지만, 진보 진영은 혼란·분열 등으로 인해 정치적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진보·개혁세력이 공유할 수 있는 지향과 담론을 도출하고, 이를 중심으로 진보의 재구성 시도를 공론화하자는 것”이라고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
‘복지국가’에 담긴 숨은 뜻 (시사IN [130호] 2010년 03월 14일 (일) 22:42:37 이종태 기자)
  
한국 사회의 복지 대안에 대한 이들의 구상은 ‘역동적 복지국가’라는 말 속에 잘 표현이 되어 있다. 우선 이들은 복지라는 말 대신 복지국가라는 말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복지’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소외층에 대한 국가 시혜’, 이른바 ‘시혜적 복지’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복지’는, 시장경제에서 어김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패자’들을 위로하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시혜적 복지’의 관점에서 볼 때 유일한 대안은 ‘복지 혜택의 확대’이다. 소외층에게 지금보다 좀 더 많은 복지급여를 주면 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복지의 확대는 김대중-노무현 때 많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 복지국가 전략이 아니라 그냥 복지의 확대 전략이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복지국가 제안자’들은 ‘복지국가’란 용어에 ‘국가 시스템의 근본적 전환’이라는 의미를 담으려 노력하고 있다. 예컨대 근대화 이후 지속되어 온 토목건설 산업의 ‘경기 조절자’ 역할을 복지 부문으로 옮길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지나치게 수출에 치중된 한국경제 구조에서 내수 비중을 크게 높이는 것이 가능하다. 
 
보육 및 교육 부문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평등의 질’을 강화하는 동시에 우수한 노동력을 대대적으로 양성토록 할 것이다. 이처럼 ‘기본생활이 보장되는’ 우수한 노동력은 노동시장에서 이뤄지는 자본 측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입장에 설 뿐 아니라 구조조정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덕분에 기업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미래 투자를 기획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들이 ‘일과 돌봄’의 상충관계에서 해방되고, 양성 평등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복지환경에서 육성되는 진취적 ‘기업가 정신’은 혁신을 가속화하고 대기업-중소기업 간 불평등 관계를 끝내는 데 공헌할 것이다. 이처럼 최근의 ‘복지국가 운동’은 고작 건강보험 급여나 실업급여, 기초생활보장금 등의 액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을 바꾸는 운동으로 기획되고 있다.
 
‘역동적 복지국가’는, 서구사회에서 1970년대까지 절정을 이뤘던 ‘전통적 복지’와 1990년대 이후 등장한 ‘새로운 복지’를 결합시킨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사회에서 이른바 ‘전통적 복지’는 국민들이 삶에서 접하게 되는 일상적 리스크(위험 요인들 : 실업, 질병, 노후)에 국가가 ‘사회적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이 혜택이 소외층에만 제공되면 ‘시혜적 복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면 ‘보편적 복지’으로 불린다.
 
‘새로운 복지’는 1990년대 들어서면서 영국 신노동당과 미국 신민주당이 주도적으로 도입한 ‘사회적 투자’ 개념을 가리킨다. 이 정책은 한마디로 자본의 이동을 통제할 수 없게 된 세계화 국면에서 국민들의 생산성을 높여 노동시장에 잘 진입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다. 국민들의 생산성, 즉 ‘인적자본’을 육성하기 위해 영유아 조기교육, 평생교육 등에 대한 파격적 재정투자로 ‘교육기회의 평등’과 ‘국민경제의 고도화’를 함께 성취하겠다는 것. 최근 오바마 행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보육 및 교육 복지 역시 이 흐름 위에 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측의 ‘역동적 복지국가’에서 ‘역동적’이란 용어는 ‘새로운 복지’의 긍정적 측면을 포용한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복지’엔 보육, 교육 이외의 전통적 복지 부문(실업급여, 노후 연금, 건강보험 등)을 낭비적 지출로 간주하고 억압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새로운 복지’를 신자유주의의 한 갈래로 간주하기도 했다. 그래서 ‘전통적 복지’와 ‘새로운 복지’는 상충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역동적 복지국가’는 국민건강보험, 노후보장, 고용보장 등 전통적 복지 영역을 강조하면서, 교육과 보육에 대한 파격적 사회투자도 촉구하는 개념이다. ‘전통적 복지’와 ‘새로운 복지’를 ‘보완관계’로 파악하면서 이를 통합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
‘역동적 복지국가’ 진보개혁 화두로 (한겨레, 이유주현 기자, 2010-03-15 오후 02:02:28)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제안
“보편적 복지 제도화로 양극화 해소”
보수정권 ‘선진화 담론’에 정면도전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존엄·연대·정의를 ‘역동적 복지국가’의 3대 가치로 설정하고,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 △혁신적 경제를 4대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 중 핵심적 개념인 ‘보편적 복지’는 사회적 약자를 위주로 한 기존의 시혜적 복지 정책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고용·보육·의료·주거·일자리 불안을 덜어주는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복지 분야뿐 아니라 조세정책·국가재정운용·기업규제 등 경제분야까지도 포괄해 사회구조적 체질을 바꾸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신자유주의 시장 국가들의 고통과 불안에도, 오히려 더 많은 신자유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선진화의 깃발 아래로 모여들어 보수진영의 강고한 세력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데도 진보진영은 무력하기만 했다”며 “진보진영 내부의 작은 차이를 넘어 큰 공통분모를 찾아 나가야 하고, 진보진영의 대통합과 국민적 지지의 대대적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역동적 복지국가’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
국격 높아진다는데 복지수준 ‘바닥’ (한겨레, 성연철 기자, 2010-03-15 오후 02:23:25)
진보진영 ‘역동적 복지국가’ 화두
공보육시설·의료인력 수, 선진국과 비교 ‘무의미’
 
------------------------------
빈곤층만의 ‘수혜’ 아닌 모든이의 ‘권리’ (한겨레, 이정애 기자, 2010-03-15 오후 02:08:07)
‘보편적 복지’란 질병급여 등 사회서비스 제공 
전국민 평균적 ‘삶의 질’ 높이기
대표의제 무상급식 ‘논쟁중’
 
“단순한 복지의 확충이 아니라 명백하게 새로운 국가시스템으로서의 ‘복지국가’를 추구한다.” 중산층을 포함한 대다수 국민의 삶을 불안의 늪으로 내몬 일자리, 보육·교육, 주거, 노후, 건강·의료 등 ‘5대 불안’을 해소하려면 단순히 복지를 늘리는 차원을 넘어 ‘사회적 안전망’을 촘촘히 짜야 한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기존의 ‘잔여주의 선별적 복지’를 뛰어넘어 ‘보편적 복지 시스템’으로 가자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는 복지를 사회 구성원의 권리로 보고 전 국민의 평균적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궁극적 목표를 두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출범한 국민의 정부는 국민건강보험을 비롯해 국민연금과 고용보험을 포함한 4대 사회보험 체계를 확립하고, 과거의 생활보장제도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로 전환해 사회적 기본권 개념을 법제화했다. 하지만 이런 복지 ‘확충’만으로는 서민과 중산층의 패배와 추락에 대한 불안을 거의 해소하지 못했고, 최소한의 ‘패자부활전’마저도 허용되지 않았다는 게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진단이다. 참여정부의 경우에도 ‘온정적 복지정책’으로 해마다 복지예산을 늘려 급격한 신자유주의적 해체를 지연하는 정도의 구실은 했으나, 사회정책 분야의 공공성을 강화하지 못한 채, 잔여주의 복지체제만 강화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신자유주의자들이 내세우는 ‘낙수효과’(정부가 대기업 등 특정 계층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경제성장을 이루면 저소득층에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이론) 대신 능동적 복지를 국가의 성장·발전전략으로 내놓고 있다. 그러나 스웨덴 등 북유럽과 달리 노동자의 정치세력화가 허약하고 사회민주주의 전통이 약한 우리나라에서, 보편적 복지를 얼마나 강력히 추진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최병모 대표는 “결국 국민들의 의식 대전환이 열쇠”라고 말했다.
 
------------------------------
보수진영 복지론, ‘시혜적 복지’ 기본 틀 못벗어 (한겨레, 신승근 기자, 2010-03-15 오후 02:13:01)
 
지난 2월 <창조적 세계화론>을 출간한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21세기 대한민국의 국가과제를 ‘선진화와 통일’로 제시하며 이를 이루기 위한 방안으로 공동체적 자유주의를 역설하고 있다. “그동안의 이기적 자유주의를 버리고 중산층이 두터운 항아리형 경제구조를 만들어 국민들 사이에 신뢰가 있고 사랑이 깊어지는 공동체적 자유주의 국가를 만들자”고 주장한다.
 
‘공동체적 자유주의’ 개념 정립에 적극 관여해온 나성린 한나라당 의원은 “여전히 자유주의에 강조점을 두지만,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국민 1인당 조세 부담률을 높여 복지를 확대하고, 투기자본과 기업의 건전성 규제를 강화하는 등 신자유주의와는 확연히 다른 처방”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유력한 차기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도 “경제성장의 목표는 성장이 아니라 국민 누구나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라며 ‘복지한국’을 내걸었다. 박 전 대표는 지난해 5월 미국 스탠퍼드대학 연설에서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공동선이 합치될 때 진정한 성장”이라며 ‘공동체 행복론’을 제기한 바 있다.
  
-------------------------------
진보·개혁 공통분모…‘반MB 구축’ 새동력 (한겨레, 이유주현 기자, 2010-03-15 오후 02:19:40)
보편적 가치로 대통합 유도
부자감세·규제완화 등 ‘안티복지’정책 담론 비판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복지국가론’은 이처럼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난파한 진보개혁진영을 하나로 묶는 정책 대안이 될 가능성이 있다. 복지국가는 야권이 보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가치의 공통분모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인 이상이 교수가 “복지국가론에서 야권 대통합의 가능성이 열린다”고 보는 이유도 이런 맥락이다.
 
복지국가론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은 지난해 11월 사회민주주의연대와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한 진보대통합 정치’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 진보정당이 참여한 게 계기가 됐다. 토론회를 통해 ‘복지’가 야권 연대의 담론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 가능성이 확인된 것이다. 여기에 ‘진보의 미래를 복지’라고 여겼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계승하는 친노 인사들도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유지를 잇는 것이라는 인식을 하기 시작했다.
  
진보개혁진영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이후 본격 밀어닥친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어떤 정책적 대안도 내놓지 못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사회안전망을 마련했으나, 극심한 사회양극화를 막지는 못했다. 복지국가론은 이런 상황에서 진보개혁진영에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유력한 이론적 대안이 될 것으로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기대하고 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전략은 두 가지다. 활발한 출판활동과 아카데미·포럼·세미나 개최, 지역의 언론인·시민사회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순회강연 등을 통해 복지의 중요성을 알려나가는 일이다. 이들은 복지국가 건설은 ‘국민의 요구’에 의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 밑으로부터의 동력이 전제돼야 한다는 뜻이다. 복지국가론을 정치무대의 핵심 담론으로 끌어올려 정책적으로 구현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다.
 
---------------------------
 
진보 또는 개혁 정치세력은 호소력 있는 논리와 세부 대안을 통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책임이 있다. 이를 위해 주목할 대목은 일자리 확대 등 경제문제와 복지의 관계다. 개발과 성장에 대한 집착이 우리 사회 전체를 강하게 지배하는 탓도 있지만, 이 고리를 제대로 풀지 못할 경우 서구의 실패 사례를 답습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 제공이 최고의 복지라는 말에는 간과할 수 없는 진실이 담겨 있다. 개발 집착에서 벗어나더라도 일자리를 창출하고 삶의 질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음을 보여줘야 복지국가 담론은 설득력을 갖는다. 
 
-----------------
"복지국가로 갈 텐가, 동물의 왕국으로 갈 텐가?" (프레시안, 박세열 기자, 2010-03-15 오후 11:22:33)
진보ㆍ개혁 '복지 동맹' 대장정 첫 발
  
----------------------------
진보의 재구성, ‘복지’로 뭉치나 (경향, 최우규 기자, 2010-03-15 18:14:51)
ㆍ새 화두 떠오른 ‘능동적 복지국가론’
ㆍ양극화·정치적 분열 반성… 새 공통분모 구축
ㆍ보수 ‘선진화’ 맞설 담론… 국민 동의 등 과제로
 
‘역동적 복지국가론’ 담론화를 주도하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제안의 배경을 과거 10년과 현재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외환위기와 함께 출범한 김대중 정부와, 이를 계승한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 궤도에 머물렀고 이로 인해 사회 양극화는 심화됐고 민생의 고통과 불안은 커졌다는 진단이 깔려 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들과 이정우 교수 등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 사회·노동 운동가 등이 한자리에 앉았다. 민주당 정동영·천정배·이종걸 의원, 민주노동당 이정희,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와 심상정 전 대표 등도 발제자로 나섰다. 2005년 7월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옛 민주당 사이에 실개천이 흐른다면, 민주노동당과 보수정치 사이에 큰 강물이 흐른다”(심상정 전 대표)던 사이였다. 이들을 묶은 능동적 복지국가 개념은 복지의 폭을 확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 시스템’으로 채용하는 전환을 말한다. 복지를 사회 구성원의 권리로 보고 전 국민의 평균적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게 목표다. 투명한 기업구조와 공정한 기업질서, 노동권 신장,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등 ‘공정하고 혁신적 경제’까지 아우르고 있다.
 
전세 사는 사람들조차 ‘종합부동산세 삭감’을 찬성하는 우리나라에서 “더 많은 세금, 더 많은 복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정치 세력화도 난제다. ‘복지’라는 공통분모가 마련돼도, ‘정치적 이해’라는 분자가 맞아떨어져야 통합과 연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
지방선거 쟁점 개발서 복지로 (한겨레, 최혜정 이유주현 기자, 2010-03-15 오후 08:36:49)
급식·교육 등 복지문제, 지방선거 핵심의제로
 
6·2 지방선거에서 정책대결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여야가 뉴타운 개발 등 ‘개발’ 경쟁 대신에 무상급식 등 ‘복지’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오는 18일 정부와 당정회의를 열어 △2012년까지 농어촌 자녀에게 100% 무상급식 등 무상급식 단계적 확대 △방과후 교육 프로그램에서 무상교육 확대 등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등 야권의 ‘무상급식’ 이슈에 맞선 맞불작전이다. 청계천 복원사업, 한강 재정비사업, 뉴타운사업 등 개발 이슈를 선점해 과거 선거에서 승리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나라당 지방선거기획위원회 관계자는 15일 “이제는 서민들이 국가에서 얼마만큼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되고 있다”며 “금융위기 극복 이후 서민들의 경기회복 체감을 높이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하는 움직임”이라고 전했다.
 
야권은 일자리·아동·교육 등 생활복지 이슈를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다. 야5당이 지난 8일 발표한 ‘정책연합 1차 합의문’에선 사회공공서비스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친환경 무상급식 실시, 아동수당 도입 등을 공동의제로 삼고 힘을 합치기로 했다.
 
시민사회도 복지 담론 형성에 앞장서고 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공동대표 최병모 이래경 이상이 이태수)가 이날 ‘역동적 복지국가론’을 제시한 데 이어 ‘친환경 무상급식 풀뿌리 국민연대’(상임운영위원장 배옥병)가 16일 출범한다. ‘학교급식 전국네트워크’와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등 전국 20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국민연대’는 다음달 임시국회에서 무상급식법 개정안 통과와 6월 지방선거에서 친환경 무상급식 정책 공약화를 위한 750만명 서명운동 등을 벌일 예정이다.
 
이처럼 복지 이슈가 전면적으로 떠오른 데는 사회양극화로 인한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진 것에 대한 대응과 함께 이명박 정부 2년에 대한 ‘반작용’ 등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4대강·세종시 등을 통한 개발이라는 화두가 정치·사회적인 갈등을 증폭시킨 반면 서민들의 ‘윗목’을 덥히진 못했기 때문이다.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교수는 “지금까지는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개발을 답습하는 모양새였지만, 복지에 대한 사회적인 요구가 강해지면서 이를 정치권이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으론 야권에서 이뤄지고 있는 연대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조성대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은 “선거연합은 결국 정치적 지분과 정책을 양보하는 형태인데, 이번 야권 선거연합은 민주당의 정책기조를 왼쪽으로 한 클릭 이동시킨 효과가 있었다”며 “제1야당이 무상급식 문제를 전면적으로 내세우면서 복지 프레임이 형성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복지 문제는 당분간 한국 사회의 선거판을 뒤흔드는 주요 의제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국가의 역할과 분배에 대한 관심은 계속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인재영입위원장인 남경필 의원은 “중산층이 언제든지 저소득층으로 내려앉을 수 있는 ‘불안의 시대’를 살고 있다”며 “사회안전망에 대한 고민이 높아지고 정부의 역할에 대한 논란도 커지는 만큼, 앞으로 총선과 대선에서도 복지 문제가 주요 의제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
[사설]복지국가를 향한 첫발 (경향, 2010-03-15 22:41:01)
 
이제는 구호가 아니라 실천해야 할 당면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복지문제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된 결과이다. 그동안 복지는 가난한 사람에게 작은 시혜를 베푸는 일 정도로 여겼다. 그 때문에 역대 정권은 시혜의 폭에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시장에 분배의 대부분을 맡기고 극히 일부의 분배만 복지에 의존했다. 그 결과 양극화는 심화되고 주거·교육·보육·일자리가 불안해져 시민의 삶을 갉아먹고, 저출산·고령화·고실업으로 성장의 기반이 붕괴되어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 모두가 복지에 대한 접근법을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복지를 시민의 당연한 기본권으로 받아들이고 보편적 복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각각 정당을 달리하고 활동 방향도 다소 차이가 있는 정치인, 다양한 부문의 학자·시민운동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 나라의 진로는 바로 복지국가에 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진보·개혁 세력은 성장 지상주의·시장 만능·무한 경쟁을 중시하는 이명박 정권의 대안을 위해서도 복지국가 구축에 자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하자면 복지국가에 적합하도록 기존 정치는 물론 경제·사회 체제도 개편해야 한다.
  
--------------------------------
"무너지는 중산층, 계속 방치할 건가?" (프레시안, 주대환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협력위원·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2010-03-16 오전 10:42:56)
[복지국가SOCIETY]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 위한 시민정치운동
 
문제는 60% 가까운 중산층이다. 그들의 삶은 지극히 불안하다. 이른바 '5대 불안'은 그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일자리 불안, 보육 및 교육 불안, 주거 불안, 노후 불안, 의료 불안 등 소위 5대 불안이라 불리는 만성적인 불안 증후군에 포획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시장에서 개인적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불안 회피책을 찾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여전히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있는 것이다.
 
지난 정권들의 사회경제정책은 놀랄 정도로 연속성이 있었다. 그것은 정책을 정치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행정이, 정당이나 정치인이 아니라 관료가 주도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히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이전 정권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시장만능주의 성장 정책으로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주장도 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에 순응하고, 이를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다. 양극화에 대한 제도적 대비도 극히 부족하였다. 그나마 기초생활보장 제도를 도입하고 국민건강보험 제도를 개선한 것이 다행이다.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현재 우리나라보다 국민소득이 더 적을 때부터 복지국가 체제를 확립했으니, 문제는 복지국가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다. 복지국가를 만들려면 우리 실정에 맞는 '역동적 복지국가'의 패러다임을 제시할 강력한 진보정치세력이 존재해야 한다. 역동적 복지국가를 구성하는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 혁신적 경제라는 네 개의 정책 범주를 포괄적으로 실천할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정치세력을 우리는 진보정치세력이라 부른다.
 
'역동적 복지국가'를 제대로 건설하려면, 즉 소득보장 시스템을 완전한 보편주의 제도로 발전시키고, 출생에서 사망까지 보편적 사회서비스 제공 체계를 제도적으로 완비하기 위해서는 '큰 정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누진적 목적세로 증세를 해야 하며, 특히 부자와 고소득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해야 한다. 보수적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이런 일을 할 의사와 능력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진보정치세력에 주목하는 것이다.
  
흩어져 있는 여러 진보정당들의 통합이야말로 국민적 요구이자 희망이다. 그러나 단순한 통합이 아니라 새로운 컨텐츠가 필요하고 정체성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국민의 불신과 의구심을 적극적으로 풀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먼 미래의 아름다운 천국을 '공상하는' 진보가 아닌, 오늘 이 땅의 현실을 바꾸는 '유능한' 진보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바로 '역동적 복지국가'의 비전이 중요한 것이다.
 
복지국가 건설을 뚜렷한 목표로 내건 진보대통합 정당이 만들어지면 국민에겐 만성적 불안에서 벗어날 의지처가 생길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진보대통합 정당이 만들어져야 한다. 진보대통합 정당은 보편적 복지, 평화통일, 생태환경을 핵심적 가치로 삼아 앞으로 20년 동안 역동적 복지국가 건설의 대장정을 선도하게 될 것이다.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진보주의 유지를 잇겠다는 소위 '친노' 세력이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 또한 국정을 책임졌던 소중한 경험과 치열한 반성을 통해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한 진보정치에 나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 내부에서 최근 들어 복지국가를 주창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창조한국당과 기성 보수정당의 참여 희망 세력 등 진보대통합의 대의에 동의하는 모든 주체들도 다 함께 진보대통합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정당의 당원이 될 수 없는 사람들도 진보의 재구성과 진보대통합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 바로 그 통로의 역할을 '시민정치운동'이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정당에 직접 가입하거나 선거에 출마할 수 없는 사람들, 지식인, 노동운동가, 시민운동가, 그리고 문화예술인이나 종교인까지도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시민정치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
시대를 향해 던지는 진보의 승부수? (시사IN [130호] 2010년 03월 16일 (화) 11:34:51 이종태 기자)
 
‘복지국가’는 진보․개혁 세력에게 ‘민주 대 반민주’ ‘반신자유주의’ 등 전통적 의제를 넘어 ‘포지티브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정책 대안인 동시에 정치적 연대의 매개체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
[이대근 칼럼]복지국가의 역습 (경향,  이대근 논설위원, 2010-03-17 18:02:40)
 
성장이냐 분배냐를 놓고 대립하던 때 분배의 논리가 먹히지 않자 일각에서 진보적 성장 혹은 성장 친화적 진보를 제기한 적이 있다. 성장론이 지배하는 사회 분위기와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편승하기로 한 것이다. 진보가 성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데 성장 대 분배의 잘못된 구도로 인해 이길 수 없는 대결을 하게 되었으니 전략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러나 성장 경쟁에 뛰어 들어봤자 보수의 성장론을 이길 방법이 없다. 당연하게도 이런 접근은 성장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기는커녕 강화시켰다. 게다가 성장론은 선진화로 진화했다. 따라가기도 버거운데 저 멀리 앞서갔다. 그런데도 반대세력의 대응은 여전히 ‘이렇게 해야 진짜 선진화’라며 편승하기 아니면 ‘선진화는 시장 만능’ 운운의 흠집내기뿐이었다. 흠집내기는 편승 전략보다 나아보이지만, 대안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없고, 바로 그 대안 부재로 인해 선진화가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은 된다고 보증하는 역효과를 낸다는 점에서 별로 다르지 않다.
  
최근 그 선진화론이 도전을 받고 있다. 성장·선진화 담론에 무력하게 끌려갔던 야당의 상황을 한나라당이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장면이다. 무상급식이 좌파적이라고 할수록, 한나라당에 대안이 없다는 사실이 폭로되고, ‘서민 무상급식 대 부자 무상급식’을 대비할수록 무상급식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한나라당은 서민급식, 야당은 부자급식’이라는 대립 구도 역시 논리 비약으로 헷갈리게 하는 데다 일반적 정서와도 안 맞는다. 의제가 무엇이든 이기는 자가 이기는 이유와 지는 자가 지는 이유는 같은가 보다.
  
한나라당이 무상급식과 같은 복지의제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까닭이 있다. 그동안 보수 세력은 자기 논리를 발전시키고 시민들을 설득하고 동의를 이끌어내는 고생을 하지 않았다. 아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보수 우위의 유리한 지형에서 성장론이 자연스럽게 먹히는 데다 그게 약발이 떨어진다 해도 선진화로 약간 변형하는 것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지층이 움직이고 있다. 삼성이 최대 수익을 냈다, 경제성장률이 회복됐다 해도 서민들은 자기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과거보다 프로파간다가 덜 그럴 듯해지거나 논리가 허술해져서가 아니라 모순을 피부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국가론이 시민의 가슴에 와 닿는 것 역시 이론이나 구호가 그럴 듯해서가 아니다. 그건 마른 수건이 물을 빨아들이는 것과 같은 사물의 이치이며 살아가는 자들의 생존 본능이다.
 
지층의 변화는 정치 감각이 뛰어난 정동영·손학규의 행보에서도 감지된다. 중도의 기수를 자처했던 두 사람은 요즘 복지정책에 천착하고 있다. 그냥 놔두면 마냥 오른쪽으로 기우는 민주당도 일단 멈춰 섰다. 그러나 이 모두 최신 유행이니까 따라하고 보자는 일시적 쏠림 현상일 수 있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썰물처럼 빠져 나갈지 모른다. 민주당, 믿을 수 없다. 그래서인데, 복지국가라는 매력적인 대안을 과연 누가 끝까지 책임지고 실현시킬지 확신하기 어렵다.
 
진보적 의제가 보수적 담론을 위협할 정도로 부상한 것 자체가 이미 한국 현대사에서는 일대 사건이다. 하지만 그 구상을 펼쳐나갈 마땅한 정치세력이 없다. 그동안 진보정당이 복지국가를 꿈꿔왔지만, 그 구상은 당위이자 이상이었지, 실현 가능성의 차원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그들이 소수파라는 사실이다. 단지 그 이유로 그들의 구상은 비현실적이라는 모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랜 갈증 끝에 비는 내리는데 담을 그릇이 없다. 준비하지 못한 한국 정치에 닥친 복지국가의 역습이다.
 
--------------------------------
‘자리나누기 연합’ 아닌 ‘복지연합’을... (참세상, 강동진 (진보전략회의)  / 2010년03월17일 20시09분)
[진보논평] 불투명한 ‘복지연합’...‘운동정치’로 풀자
 
16일자 어느 일간신문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은 ‘개발에서 복지로’였다. 지방선거의 쟁점이 뉴타운개발 등 개발과 성장중심에서 무상급식, 교육 등 복지의제가 부각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사회양극화로 인한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지고 일자리, 주거, 의료, 교육, 노후 등 5대불안이라고 일컬어지는 ‘불안의 시대’에 정치권이 반응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15일에는 야 5당, 시민사회, 노동조합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에 선진화 담론에 맞서 ‘역동적 복지국가론’을 제안하는 대회가 열리기도 했고, 16일에는 2000여개 이상의 단체가 결합한 ‘친환경 무상급식 풀뿌리 국민연대’가 출범하여 6.2지방선거에서 후보들에게 무상급식 공약을 요구하고 무상급식을 법제화하기 위한 운동에 돌입했다. 이른바 3월 8일 ‘5+4기구’에서는 일자리, 교육, 복지, 주거 주택, 보건의료, 중소기업 소상공인, 4대강사업 분야에 걸쳐 야5당 정책합의문이 발표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을 굳이 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한 ‘말의 성찬’이라거나, 선거를 앞둔 일시적인 움직임일 뿐이라고 폄하할 필요는 없다. 한국사회의 현실과 인민들의 삶이 그만큼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16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농어촌 가구를 제외하고 2인이상 전국가구 중 가처분소득이 중위소득 50%미만인 빈곤층은 2003년 11.6%에서 2009년 13.1%로 늘었다. 빈곤가구의 60%가 1인가구인 점을 감안한다면 빈곤인구는 이보다 훨씬 많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노인인구의 절반정도는 빈곤층이다. 반면 중위소득의 50-150%인 중산층은 2003년 70.1%에서 2009년 66.7%로 줄어들었다. 지니계수는 2003년 0.277에서 2009년 0.293으로 올라갔고, 하위 20% 대비 상위 20% 계층의 소득 비율인 5분위 배율도 2003년 4.44배에서 2009년 4.92배로 높아졌다. 지니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이 심하다는 의미다.
 
빈곤층이 늘어나고 소득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지만, 빈곤과 불평등을 확대하는 원인인 노동시장유연화와 구조조정은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에는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1996-97년 IMF경제위기 이후 처음으로 줄어들었다. 쌍용자동차에서 대표적으로 보여주었던 정리해고는 금호타이어에서 이어지려 하고 있으며, 이미 자동차, 조선 등의 제조업사업장에서 사내하청노동자 등의 비정규직의 실직이 줄을 잇고 있다. 앞으로의 구조조정 여파에 따라 정규직에까지 대량정리해고 사태도 벌어질 것이란 예측이 힘을 얻고 있다.
  
반면에 소득재분배를 강화해야할 사회정책은 매우 취약하거나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는 상황이다. ‘고용전략회의’가 대통령 주재로 한 달에 한 번씩 열리지만 뚜렷한 대책은 내놓지 못한 채 오히려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노동유연화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는 거꾸로 된 처방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재벌과 소수의 부자를 위한 감세정책은 철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빈곤층의 최저생활을 보장해주는 기초생활보장예산은 오히려 삭감되었으며, ‘친서민정책’이라고 내놓은 취업후 학자금상환제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결과를 낳아 오히려 수많은 대학생을 졸업 후 빚을 갚기 위해 불안정한 일자리를 감내해야 하는 신세로 내몰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대기업 등의 매출은 사상최대이고, 이익도 사상최대로 늘어 쌓아놓고 있는 돈이 200조 가까이 된다고 하지만 지난 1월 OECD 22개 국가 중에서 한국의 실업률이 사상최대의 상승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위와 같은 현실에서 유권자의 흐름에 가장 민감한 정치권이 ‘복지’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할 것이다. 오히려 늦어도 한참 늦었다는 것이 맞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은 무상급식이란 단일 의제이긴 하더라도 ‘보편적 복지’가 의제로 떠올라, 복지의 철학과 담론을 둘러싼 사회적, 정치적으로 쟁점이 되고, 빈곤과 실업, 불평등, 삶의 불안을 야기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제어흐름이 가시화되었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또한 선거 시기만 되면 ‘개발과 성장’의 미명하에서 ‘누구나 잘 살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힌 행태가 기승을 부렸던 데에 비해, 생활과 삶을 둘러싼 사회적 모색의 장으로서 전환이 되는 것은 개발과 지역주의에 사로잡힌 현재의 정치구조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개발성장연합프레임’에서 ‘생태복지연합’의 프레임으로 바뀐다면 현재 보수정당중심의 정치구도가 바뀔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능성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진보진영에게 놓인 과제 또한 만만치 않다고 할 것이다.
 
진보진영과 여러 사회운동진영의 주체적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 복지’가 선거의 쟁점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앞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빈곤과 불평등심화라는 사회적 상황과 이명박 정부에 의해 야기되고 있는 민주주의 후퇴, 삶과 국토의 파괴, 재벌과 소수 부자를 위한 정책의 강행 이라는 객관적 조건이 강제한 측면이 강하다. 그리고 여전히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듯이 보수세력은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으며, 이는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민주당의 우경화 경향을 제어해내고 좌로 한 클릭 이동시킨 것도 지난 10년 동안 사회양극화를 심화시켜왔던 세력의 진정한 자기반성과 성찰, 그리고 진보진영의 힘에 의한 강제라고 보기 힘들다.
  
한미FTA나 비정규직 문제, 그리고 지역개발의 사안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미래’가 ‘한나라당의 현재’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충분히 가능하다. ‘5+4기구’라는 틀 속에서의 연합도 정책을 중심으로 한 연합이라기보다, 각 당 후보간 ‘자리나누기’에 더욱 방점이 찍힌 모습이다. 그만큼 현실에서의 ‘복지연합’은 불안정하고 미래가 불투명하다. 광역단체후보의 선정방식을 둘러싼 쟁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여 진보신당이 합의에 불참한 것은 단적인 예이다.
  
‘복지연합’이 이후 공고화되기 위해서는 무상급식운동이 걸어왔던 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시혜가 아닌 권리라는 철학에 기반해 보편성을 원칙으로 하여 직영급식, 친환경급식, 무상급식이라는 방향이 세워지고 이에 따라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학부모단체, 복지단체, 지역시민단체, 진보정당, 노동조합, 그리고 먹거리의 직접적 생산자인 농민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연대가 활성화되어 왔다.
  
그리고 이를 제도적으로 관철하기 위한 운동이 몇 년 동안 지속되어 왔고, 여러 지역에서 이를 현실화한 성과가 축적되어 온 과정을 밟아온 것이다. 이것이 경기도에서의 무상급식시행을 둘러싼 논란을 계기로 정치적 의제로 발전되어 온 것이다. 향후 복지연합도 진보정치의 재구성, 노동정치의 혁신, 사회운동의 활성화, 생산자와 권리수급자와의 연대 등 ‘제도정치’영역과 더불어 보다 중요하게는 ‘운동정치’의 활성화가 필요조건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3/21 16:08 2010/03/21 16:08

3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Newer Entries Older Entries

새벽길

Recent Trackbacks

Calender

«   2026/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