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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면제 vs 현역' 구도는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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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암함 침몰과 관련한 현 정부의 대처를 보고 있노라면 분통이 터진다. 과연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나.
 
많은 사람들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지하벙커에서 네 차례나 열렸는데도 거기에서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진상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어 울분을 삼킨다. 그로 인해 스스로 관련 자료와 기사를 챙기고 다양한 경우의 수를 살펴보는 이들이 많다.
 
평소 이명박 정부 하에서 경직된 국가와 맞서면서 위축되었던 상상력도 고양되고, 그 동안 몰랐던 서해 및 백령도의 날씨와 파고는 물론, 군함과 탑재무기 등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시나브로 쌓이고 있다. 아무래도 노무현정부에 이어 MB정부도 대중들을 전문가로 만들어서 전반적인 국가지식수준을 높이려고 하는 모양이다. 황우석, 한미FTA, 광우병에 이어 천안함까지, 국가가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대중들은 속시원히 풀리지 않은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발로 뛰어다니며 파헤치다가 스스로 전문가가 된다. 지식강국은 이렇게 달성되나 보다.
 
그건 그렇고, 이번 사건에서 '군 면제자'와 '군 복무자'를 대립시키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좌빨이라고 비난할 때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손쉬운 탈출구가 병역을 마쳤다는 주장이다 보니, 그리고 이런 상투적인 억지를 부리는 이들이 '병역면제자'이다 보니 그런 일이 발생한다는 걸 이해는 한다. 그리고 면제란 분명 부당한 방법으로 병역을 기피한 소수의 기득권층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그리고 병역의 의무조차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자들이 설치는 것은 모순적인 것이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하지만 ‘면제'들 때문에 애꿎은 ‘현역’이 당한다는 식의, 군대도 갔다 오지 않았으면서 천안함 침몰에 대해 말을 자격이나 능력이 있겠냐는 식의 분노와 냉소 앞에서는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내가 18방이라서가 아니다. 이러한 편리한 도식화가 우리 앞에 놓인 미시적인 문제들을 은폐하고 해결을 어렵게 할 것 같아서이다.
   
우리 간의 병영국가, 군사문화는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우리 삶에 녹아든다. 이 추상적인 문제들을 몇 글자의 구호로 정리해서 설득력 있게 말하면 좋겠지만, 그게 쉽지 않기 때문에 그냥 이렇게 투덜거리기만 한다. 사실 이 시점에서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어색하고 그 진정성을 꼬이게 만들 것이기에...
 
그래도 세상을 제대로 바꾸고자 한다면 군대, 병역, 전쟁 등에 대해 말하거나 들을 때는 좀더 신중해졌으면 좋겠다. 아래 발췌한 고은태 님의 글을 읽고 여기에 몇 자 더 붙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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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병역면제자들의 나라, 그리고 불편함 (앰네스티 일기, 2010/03/29 04:16, 고은태)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대통령이 주재한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가 열렸다는 소식에 트위터의 타임라인은 군대도 안간 병역면제자들이 무슨 일을 제대로 하겠냐는 비난으로 가득 찼다. 이후 사고수습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설명과 지지부진한 모습이 보이자 이런 비난은 더욱 고조되었다. "군대도 안 갔다 왔으면서 무슨 해결책이 있겠나", "병역 미필자들이니 무서워서 벙커에 박혀있는 거겠지", "병역 면제자들에게 나라를 맡기면 안 된다", "병역 면제자 들은 공직에 못 오르게 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등등. 우연찮게도 월남참전용사인 명진 스님 대 병역면제자인 안상수의 구도도 부각되고 있다.
 
물론,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부당한 방법으로 병역을 기피했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자들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이해한다. 이와 더불어 현재의 정부에 실망한 국민들이 많고, 정부가 하는 일들의 어설픔과 잘못됨이 결국 권력자들에 대한 반발로 이어진 것 역시 이해 가능하다. 그리고 그런 맥락에서 이런 비판들도 바라보아야 할 것도 동의한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에서 병역을 필한 사람은 반도 안 된다. 여성이 있고, 장애인들이 있으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정당한 사유로 군대에 갈 수 없었거나 군대에 가지 않은 사람도 부지기수다. 비록 소수의 권력자들을 향한 비판이라고는 하나 대단히 많은 - 수가 꼭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 사람들이 이런 비판의 유탄을 맞고 아파할 수 있다. 더군다나 병역에 대해 아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입게 되는 직간접적인 피해는 매우 치명적일 수 있다. 병역거부자, 절대적 평화주의자 혹은 다른 형태의 병역체제를 지지하는 사람들.
 
일단 병역에 대해 서로 다른 처지와 생각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병역의무의 이행이 한 인간의 성장에 필수적이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열등한 존재이고, 병역을 마친 자들만이 가지는 특권이 존재해야 한다는 듯한 전제 위에서 이야기해 버리면, 의도와는 무관한 폭력이 되어 소수자의 심장에 피를 흘리게 하고, 기존체제를 공고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병역을 신성시하고 군복무를 절대화하기에 이르면 결과적으로 병역국가, 군사국가를 예찬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군대라고는 구경도 못한 여성이 대통령이 되어 국군 통수권자가 되고, 역시 병역과는 거리가 먼 장애인이 국방장관을 할 수도 있다. 그게 민주공화국이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 한다.
 
권력자들의 병역기피 의혹은 그것대로 문제제기를 하되, 그것이 마치 무능의 원인인양 이야기하는 것을 옳지도 바르지도 않다. 그래도 정 화가 나면 최소한 용어라도 정확히 쓰자. 면제자가 아닌 기피자. 기피자라는 법적 판단이 아직 없으므로 기피의혹자라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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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30 11:24 2010/03/30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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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원청 '사용자성' 인정 첫 판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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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한계는 있으나, 매우 의미있는 판결이 나왔다. 그러나 관련기사의 댓글을 보면 이에 대한 관심은 그리 높지 않은 것 같다. 아직 기사를 보지 못한 이들이 많아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당연한 판결이라서 그런 것일까. 이 시가에 관심을 가질 사람은 인터넷에 접속하여 이 기사들를 보기 어렵기 때문일까. 설마 사내하청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많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 이른바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이 이에 관심이 없다고 보고 싶진 않다.

 

이 판결에 대해 경제신문들과 조중동에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거나 단신으로 처리하고 있다. 한겨레가 이와 관련하여 해설기사를 크게 내고 사설까지 쓴 것은 주목할 만하다. 한겨레가 노동문제에도 좀더 관심을 가지려는 건가. 

 

앞으로 하청 비정규 노동자들이 원천 사업장에서 일상적인 노동조합 활동과 단체교섭을 포함한 쟁의활동을 할 수 있게 되어 반갑다. 비정규 노동운동이 활성화되는 조그마한 계기가 될 수 있으려나. 이외에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에게도 노동자성이 인정되고 그들이 정당한 노동권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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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사내하청 노동자도 원청과 교섭 가능” (참세상, 김용욱 기자 / 2010년03월29일 8시52분)
원청 사업주 사용자 책임 인정...하청 폐업 방식 노조 탄압에 제동
 
대법원은 원청회사가 하청업체들을 폐업시키는 방법으로 하청 노동조합 활동을 위축시킨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근로계약관계가 없는 원청회사가 사내하청과 같은 간접고용 노동자의 근로계약 관계에 실질적인 영향력과 지배력이 있다면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상 사용자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내하청 노동자가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원청회사와 직접 교섭을 할 수 있게 됐다.
 
대법원 특별 2부(주심 대법관 전수안, 사건번호 2007두8881, 2007두9075)는 지난 25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 설립 이후 사내하청노조의 간부와 조합원들에 대하여 하청업체의 폐업이라는 방식으로 사업장에서 배제(해고)한 것이 정당한 노조활동에 대한 지배개입 행위로서 부당노동행위라고 판결했다. 또 원청회사인 현대중공업이 사용자로서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이번 판결은 하청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원청 사업주의 사업장내에서 일상적인 노조활동과 쟁의활동의 길도 열어준 것으로 볼 수 있다.
 
2003년 8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이 설립되자 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이 소속된 사내하청업체들은 그해 9월과 12월 사이 속속 폐업 또는 사업부분이 폐쇄 됐다. 하청업체 폐업은 소속 사내하청 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의 해고(사업장 배제)로 이어졌다. 이어 현대중공업은 새로 하청업체를 설립하고 공개된 조합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직원을 재고용해 이전과 같은 일에 배치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사내하청노조의 부당해고 및 부당 노동행위 구제 신청을 받아들여 현대중공업에 구제명령을 냈다. 현대중공업은 이에 불복하고 소송을 내 1심과 2심에서 패소하자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대법은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부당노동행위의 예방, 제거는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구제명령을 이행할 수 있는 법률적 또는 사실적인 권한이나 능력을 가지는 지위에 있는 한 그 한도 내에서는 부당노동행위의 주체로서 구제명령의 대상자인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또 ”근로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하여 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등으로 법 제81조 제4호 소정의 행위를 하였다면 그 시정을 명하는 구제명령을 이행하여야 할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간 근로자파견, 용역, 도급, 위탁, 사내하청, 외주, 분사, 소사장제 도입 등과 같은 간접고용의 활용은 직접 고용시 부담해야할 사용자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돼 왔다. 이를 통해 하청업체의 중간착취가 합법적으로 용인됐다. 또 하청업체 폐업으로 노조활동을 봉쇄하거나,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있지 않다면서 단체교섭 거부도 용인됐다. 심지어 원청회사들은 하청 노동자들의 사업장 내 노조활동을 가처분 등을 통해 봉쇄해 왔다.
 
한편 재판부는 “현대중공업이 해고된 직원의 직접적 사용자로 볼 수 없는 만큼 하청업체에 복직시켜줄 의무는 없다”며 부당노동행위 과정에서 해고된 하청업체 직원 원직복직과 소급임금지급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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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하청 폐업, 원청 부당노동행위 (레디앙, 2010년 03월 29일 (월) 09:37:03 이은영 기자)
대법원, 원청 '사용자성' 인정 첫 판례…현중이 실질 책임"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의 근로조건 등에 실질적인 영향력과 지배력을 가지고 있을 경우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는 원청업체의 노조법상 사용자성을 인정한 첫 판결로, 향후 하청업체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거나 부당노동행위가 발생했을 경우 직접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길이 열려, 하청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2부(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지난 25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 설립 이후 하청업체의 폐업이란 방식으로 사업장에서 배제(해고)한 것은 정당한 노조활동에 대한 지배개입 행위로서 부당노동행위”라며 현대중공업이 중앙노동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003년, 사내하청 노동자 조 아무개 씨 등이 노조를 설립하자 “하청업체가 자진 폐업했다”며 이들을 몰아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와 소속 조합원들은 “현대중공업이 개입해 하청을 폐업시켰다”며, 이를 강제해고로 규정하고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했고, 중앙노동위원회가 이를 받아들이자 현대중공업이 취하소송을 낸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사내하청 노조 간부들이 소속된 하청업체들은 경영상 폐업할 별다른 사정이 없었음에도 조합 설립 뒤 즉시 폐업이 결정된 것을 볼 때, 노조 설립 이외에 다른 폐업 이유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현대중공업이 노조활동을 한 협력업체들의 폐업을 유도함으로써 협력업체 노조의 활동을 위축시키거나 침해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했다고 인정한 원심 판결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사용자의 지배ㆍ개입이 사실 행위로 이뤄져 원상회복은 곤란하지만 같은 행위가 장래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커 (중앙노동위원회가) 이를 금지하는 '부작위명령'을 내린 것은 적절한 구제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원청회사가 하청업체를 폐업시키는 방법으로 하청 노조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을 ‘부당노동행위’로 적시하고, 하청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등에 실질적 영향력을 미치는 원청인 현대중공업이 ‘노조법상 사용자’로서 구제명령을 이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 동간 근로계약 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사용자의 지위를 파악한 대법원 판례는 몇 차례에 있었으나, 원청회사가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주체로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한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동안 원청은 “노조법상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하청 노동조합의 단체협약을 거부해 왔고, 테이블에 마주 앉더라도 “교섭이 아닌 면담” 또는 “대화”임을 강조해왔다. 노동부도 그동안 “근로계약 상 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원청업체에 대해 부당노동행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왔다.
 
그러나 이번 판결이 원청을 사실상 ‘노조법상 사용자’로 간주함에 따라 원청과 하청업체 노조와의 단체협약 체결 가능성을 열었다. 노조법상의 사용자는 단체교섭에 임해야 하며, 이를 거부할 경우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 따라서 사내하청 노조의 단체협약 체결을 통한 정당한 노조활동 확대는 물론 동희오토 등 하청업체들이 다수를 이루는 장기투쟁사업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번 판결을 통해 원청 사업장 내에서 하청업체 노조의 활동이 보다 자유로워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 동안 원청은 하청업체 노조의 사업장 내 유인물 배포나 농성장 설치 등에 대해서도 근기법상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제약해 왔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이번 판례는 원청이, 하청의 근로조건이나 노조활동에 영향을 미친다면 사용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한 것”이라며 “근로기준법 상 사용자 관계가 아니더라도 실질적인 사용자의 지위에 있다면 노조법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처음 확인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조활동 개입에 대해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책임 청구를 할 수 있는 법적인 실마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이번 판결을 근거로 하청업체 노조는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는 한편 정당한 노조 활동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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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 노동자 지휘·감독땐 원청업체가 실제 사용자" (뉴시스, 김종민 기자, 2010-03-2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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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 노동자도 지휘·감독한 원청업체가 사용자” (경향, 박홍두 기자, 2010-03-29 04:42:34)
ㆍ대법, 현대중공업 부당노동행위 구제 결정
 
대법원 2부(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현대중공업이 근무시간 배정이나 노무제공 형태와 방법 등을 결정했고, 작업 전반을 지휘·감독해 근로계약서의 사용자인 하청업체와 같은 정도로 기본적인 노동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며 “노동조합·노동관계 조정법에서 정하는 지배·개입의 주체로서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현대중공업의 일부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2003년 8월 노조 설립을 신고했다. 그러자 이들 하청업체는 폐업을 하겠다며 조합원들에게 노조활동 중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노조원들이 이에 응하지 않자 이들 업체는 신분이 공개된 노조 임원과 조합원들에게 해고를 통보하고, 자진 폐업했다. 하지만 이들 업체가 새로 회사를 설립한 뒤 이 노조원들을 뺀 노동자 대부분을 재고용하자, 해고된 노조원들은 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재심 신청 등을 냈다. 중노위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현대중공업 측에 이들에 대한 구제를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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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의 고용관계’ 판단 노사갈등 책임 회피 제동 (한겨레, 남종영 기자, 2010-03-28 오후 08:17:29)
대법, 원청업체에 하청 사용자성 인정
  
대규모 사업장에서 공장 안에 하청업체를 두고 노동자를 고용하는 관행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크게 증가했다. 사내하청 노동자는 형식상으로는 하청업체에 고용돼 있지만, 일은 원청업체에서 하는 비정규직이다. 원청업체는 노동자를 직접 고용할 때보다 임금을 크게 낮출 수 있고, 인력을 줄여야 할 경우 하청업체와의 도급계약만 해지하면 되기 때문에 ‘노동 유연성’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극심한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려 노사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원청업체는 노동자들이 하청업체와 근로계약을 맺었다는 이유로 노동조합법이나 근로기준법상의 의무를 회피해왔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원청업체의 ‘하청업체에 책임 떠넘기기’는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개별 노동자와 회사의 근로계약 관계가 없더라도,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면 노동조합법상의 사용자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원청업체가 사내하청 노동자의 노조활동을 방해할 경우 부당노동행위로 법적 책임을 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박점규 전국금속노동조합 미조직비정규부장은 “그동안 노조를 결성하면 하청업체를 폐업하거나 사내하청 노조의 공장 내 활동을 방해하는 등 상시적인 개입이 있었다”며 “앞으로 원청업체가 이런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노조의 교섭 요구에 응해야 하는지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 노조법상 사용자가 되면 단체교섭 의무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원청업체는 근로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하청업체 노조와 교섭을 거부해왔다. 권두섭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법률원 변호사는 “원청업체의 사업장 안에서 사내하청 노조의 일상적인 노조활동과 쟁의활동도 당연히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청의 사용자성을 확신할 수 없다며,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해온 정부의 태도가 바뀔지도 관심거리다. 그동안 검찰은 부당노동행위 사건에서 원청업체를 기소하지 않았고, 노동부도 사내하청 문제를 사실상 방치해왔다. 반면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9월 “현행 노동 관련 법률의 ‘사용자’에 대한 정의를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에서 ‘근로조건 등의 결정에 대해 실질적인 영향력이 있는 자’로 확대하라”며 노동부 장관에게 법 개정을 권고한 바 있다. 노동부가 2008년 집계한 자료를 보면, 300인 이상 사업장 963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168만5995명 가운데 21.9%인 36만8590명이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이들은 공장·지역별로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어 원청업체에 교섭을 요구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교섭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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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원청업체, 하청노동자에 대한 책임 회피하지 말아야 (한겨레, 2010-03-28 오후 07:28:42)
 
도급으로 위장한 경우 원청업체를 사용자로 본다는 판결은 있었지만,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원청업체의 책임을 물은 대법원 판결은 처음이다. 이 판결은 간접고용을 통해 책임을 회피하는 게 더는 용인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간접고용이 일상화하면서 하청노동자들이 큰 희생을 치르는 현실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특히 이번 판결은 비정규직의 기본권 보장에 진전을 이루는 계기가 될 걸로 노동계는 보고 있다. 하청노동자가 원청업체에 교섭을 요구할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청노동자는 조선업과 같은 대형 제조업에 가장 많지만 서비스업 등 다른 분야로도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노동자들은 해고나 고용 상황 악화에 맞서 싸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명목상의 고용주들은 교섭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에게 “원청업체에서 결정된 것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기 일쑤다. 하지만 원청업체를 찾아가면 “왜 고용주도 아닌 우리에게 그러느냐”는 말만 돌아온다.
 
비정규직은 단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일에 대한 책임감, 업무 혁신 의지 따위는 생길 수 없다. 이는 기업으로서도 큰 손실임을 최근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사례가 잘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이 회사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과도한 비정규직 의존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젠 한국 기업들도 비정규직 축소·폐지가 기업과 노동자 모두를 위한 일임을 인정할 때가 됐다. 정부 또한 비정규직의 여건 개선과 정규직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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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노동자 실질적 지배땐 원청업체를 사용자로 봐야” (한겨레, 노현웅 기자, 2010-03-28 오후 06:54:36)
대법 ‘부당노동행위 책임’ 인정
 
원청업체인 대기업이 하청업체에 실질적인 영향력과 지배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도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정하고 있는 부당노동행위 책임 사업자는 근로자에게 실질적인 영향력과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며 “현대중공업은 당시 사내 하청업체 근로자들의 작업 시간·방법·일정 등을 통제하는 등 기본적인 노동조건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법이 정하는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조씨 등 사내하청 노조 간부들이 소속된 하청업체들은 경영상 폐업할 별다른 사정이 없었음에도 조합 설립 뒤 즉시 폐업이 결정된 것을 볼 때, 노조 설립 이외에 다른 폐업 이유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현대중공업이 하청업체들의 사업 폐지를 유도해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거나 침해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폐업과 함께 해고된 사내 협력업체 직원들의 원직 복직과 임금 소급 지급 청구는 “현대중공업을 근로계약관계에 있는 사용자로는 볼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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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노동자 지휘, 원청업체 사용자 책임 (내일, 이경기 강경흠 기자, 2010-03-29 오후 12:26:50)
대법원, 원청업체 부당노동행위 인정
 
하청업체의 고용 노동자라도 원청업체가 작업 전반에 실질적인 지휘·감독을 하고 노동조건을 결정했다면 원청업체가 사용자로서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최근 확대되고 있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에 대한 원청업체의 사용자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2003년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노조활동에 일부 하청업체가 노조활동 중단 등을 요구했고 이들에 대한 해고 통보와 함께 폐업을 해버렸다. 하지만 새로 설립된 하청업체들은 노조원을 뺀 노동자 대부분을 다시 고용했고 폐업한 업체와 동일한 일을 했다. 재판부는 “현대중공업이 협력업체들의 폐업을 유도함으로써 협력업체 노조의 활동을 위축시키거나 침해하는 부당노동행위를 했다고 인정한 원심 판결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간접고용은 상시고용이 필요한 사업주가 직접 근로자를 고용하지 않고 타인에게 고용된 근로자를 마치 자신이 고용한 것처럼 사용하는 방식이다. 최근 근로자파견 용역 도급 위탁 사내하청 외주 분사 소사장제 등 다양한 형태의 간접고용이 늘어났는데, 인력활용의 유연화뿐만 아니라 직접고용시 부담하는 사용자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간접고용 근로자들은 노동자면서도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했다. 하청근로자가 노조를 만들면 하청업체 폐업을 통해 활동을 봉쇄하거나, 원청업체가 하청근로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있지 않다면서 단체교섭 자체를 거부해온 탓이다.
 
재판부는 “원고가 근무시간 배정, 노무제공 형태 및 방법, 작업환경 등을 결정하고 작업 전반을 지휘 감독해 근로계약서상의 사용자인 하청업체와 같은 정도로 기본적인 노동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에서 정하는 지배·개입의 주체로서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법률원은 “근로계약관계가 없는 원청회사도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근로자에게 실질적인 지배력과 영향력이 있다면 사용자고, 부당노동행위의 주체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라며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노동기본권 보장에 있어서 획기적인 판결”이라고 말했다. 2003년 노조활동으로 해고된 노조원들은 중노위에 부당해고 및 부당 노동행위 구제 재심신청을 냈으며, 중노위는 노조원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현대중공업에 구제명령을 내렸다. 현대중공업은 중노위 결정에 불복, 법원에 소송을 냈으나, 1심과 2심에서 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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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9 14:43 2010/03/2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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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형빈] 자사고 된 학교 사직, 민중 속으로 ‘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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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공무원은 영혼이 없는 자들이라고 하지만, 도를 더해가는 이명박 정부의 행태 앞에서 몇 명 정도는 관료를 때려치고 양심선언 같은 걸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서는 안보이더라. 역시 관료들은 어쩔 수 없는 건가 싶었다. 하긴 생계가 달려 있는데 그런 결정을 쉽게 하진 못할 테고 이해가 안되는 바도 아니었지만, 공무원노동자의 한계를 다시한번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이형빈 선생의 사직 소식을 들었다. 처음에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크게 관심도 가지지 않았는데, 아래 레디앙 인터뷰를 보고 그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인터뷰가 모든 것을 말해주진 않지만, 이형빈 선생이 학교를 떠난 것과 관련하여 많은 정보를 준다.

 

트위터에다 이런 인터뷰도 있다 하고 소개하고 넘길까 하다가 생각할 꺼리가 있는 듯하여 블로그에 담아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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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명문 귀족학교를 거부한다 (레디앙, 2010년 03월 29일 (월) 18:19:57 이재영 기획위원)
입학설명회 고급백화점 VIP룸서"
[인터뷰-이형빈] 자사고 된 이화여고 사직, 민중 속으로 ‘망명’

 
이형빈 선생이 학교를 그만둘 생각을 한 것은 꽤 오래 전인 듯하다. 이화여고 국어 교사로 10년을 일해온 그는 <우리 교육> 1월호에 실은 「학교를 그만둘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기」에서 자신의 진로를 암시했다. 이형빈 선생은 그 글에서 “학교를 그만두면 무슨 일을 하게 될까 상상해 본다”라고 교직 사직이 상상인 척 말했지만, 그가 들려주는 상상은 너무도 현실적이었다. 섬진강 여행, 박노자와 우석훈의 강의 듣기, 플루트와 춤 배우기, 서울 교육감 선거운동, 진보신당 입당, 여러 교육단체와 사회단체에서 일하기 등등.
 
물론,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갈망이 그를 학교에서 떠나게 한 것은 아니다. 이런 갈망은 만약 학교를 그만 두게 된다면 하고 싶거나 할 수 있는 것들이지, 학교를 그만 두어야 하거나 그만 둘 수밖에 없는 충분한 조건은 아닌 것이다.
 
그동안 이형빈 선생이 스스로의 갈망을 억누를 수 있었던 것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 곁을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변화하는 학교는, 바깥 세상처럼 돈 놓고 돈 먹기 판으로 변해버린 학교는 이형빈 선생으로부터 아이들을 빼앗아 가고야 말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는 ‘학교 안’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학교조차 바꿀 수 없는 시기가 분명히 온 것 같다. ‘학교 안’에만 머물러 있으면 학교를 바꾸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바뀌게 될지도 모른다”는 고통의 자각에 이른다.
 
이형빈 선생이 지난 2월 말 이화여고를 사직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조중동을 제외한 대부분의 언론이 그 사실을 알리거나 그와의 인터뷰에 나섰다. 서울 명문 고등학교의 교사가 국가 교육정책에 반발하여 사직했다는 사실은 충분히 충격적이고, 언론은 제 임무를 잘 수행한 셈이다. 문제는, 사직은 하나의 전환점일 뿐이며, 그 전환점 후의 새로운 길, 그리고 길고 지리할 것임이 분명한 그 길에서는 10년 전 이화여고에 처음 몸 담을 때처럼 이형빈 선생 혼자 헤쳐나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가 여전히 ‘선생’임을 자부하고 있고, 학교 밖의 수많은 ‘학생들’을 이미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학교 밖으로 나왔으되, 제 본분에 더욱 충실하려 하므로 이형빈 선생에게 남겨진 날들은 아주 행복할 것이다. <레디앙>이 이형빈 선생을 만나 왜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는지, 앞으로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물었다. 이형빈 선생과의 인터뷰는 지난 25일 오후 여의도에서 이루어졌다. 

 

- 왜 그만둔 건가? 
= 우리 교육의 문제점이야 오래된 일이고 학교 안에서 부딪치는 갈등과 양심의 문제도 오래됐지만, 교직을 떠나겠다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자율형 사립고 때문이었다. 수많은 교육 문제점이 있고 자사고도 그 중 하나인데, 굳이 자사고 때문에 학교를 떠나야 하느냐는 의문들이 있는 것 같다. 우리 교육의 온갖 모순들이 학교 안에 그대로 투영돼 있지만, 일하고 있는 학교의 형태 자체가 바뀌는 것은 좀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자본주의 체제 밖으로의 탈출구를 내지 못하는 한 그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들 가듯이 학교 안에서도 대한민국 교사로 살아가면서 싸워야 하겠지만, 속해 있는 작은 단위가 의도적으로 가난한 자들, 성적이 나쁜 자들을 배제하는 구조가 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우리가 자사고 반대 싸움을 하면서 ‘입시명문 귀족학교 반대한다’는 집회도 무수히 했는데, 서울에서 20여 학교가 자사고가 되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그토록 반대하고 비판하는 것이 현실화됐을 때, 그래도 한 명 정도는 저와 같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모든 사람이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멀쩡한 학교가 귀족학교로 변할 때 한 명 정도는 귀족학교를 거부하고 떠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년 5월에 이화여고가 자사고 신청서를 냈고, 7월에 지정이 됐고, 올 3월부터 신입생을 받게 됐다. 그 몇 달 동안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모습들이 너무나도 일상적으로 벌어졌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백화점 VIP룸 사건이다. 자사고는 학교별로 입학설명회를 하는데, 자사고가 된 이화여고는 현대백화점 VIP룸에서 입학설명회를 개최했다. 이 사건이, 자사고가 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백화점 VIP회원들을 타겟으로 하는 학교인 것이다. 그 정도 경제적 능력이 있는 부모들의 자녀들만 받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비판해온 교육시장화를 너무나도 명백하게 보여준 것이다. 구매력 있는 소비자를 위한 명품 교육, 구매력 있는 소비자만 와라, 그들만 상대하겠다는 선언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학교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더라. 
 
이화여고는 1886년에 미국 선교사가 세운 우리 나라 두 번째의 근대교육 기관이다. 여기서 이화여전이 분리돼서 이화여대가 됐다. 서당이 양반 자제를 위한 특권교육이었던 데 비해 배재나 이화 같은 학교들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보통교육의 시초였다. 이화학당에 입학했던 사람들은 양반집 규수들이 아니라, 배움의 기회가 없었던 기생의 딸, 백정의 딸이었다. 그 당시에 이화학당은 기존 교육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교육하는 곳이었다.  
 
그러다가 비평준화 시기에 점차 명문 엘리트 학교가 된다. 정계, 관계, 재계 유명 인사의 부인들 대부분이 이화여고 출신이다. 이들 사이의 자부심과 카르텔이 굉장히 막강하다. 그래서 고교평준화 이후에 ‘물이 흐려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자사고 정책이 실시되면서 ‘묻지마 자사고’로 달려가게 된다. 이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사람은 ‘배신자’나 ‘공적’으로 찍히는 분위기였다. 결국 현재의 이화여고는 최초의 건학이념을 배반하고 있는 것이다.
 
- 백화점 VIP룸에서 열린 입학설명회에 가봤나? 
= 근무시간이라 가보지는 못했다. 거기 간 사람들은 학교 수업을 빠져가면서까지 홍보 업무에 올인했다. 갔다 와서 교직원회의에 보고하더라. “많은 학부모들이 오시지는 못했지만, 엑기스들만 왔습니다”라고. 그 소리를 듣고 교직원회의에서 저 혼자 웃었다. ‘심하다.’ 그 때 이미 마음 속으로 사표를 냈다. 하지만, 담임 맡고 수업을 하고 있는 학기 중간에 사표를 낼 수는 없어서, 올해 2월 28일에 사표를 냈다. 
 
- 자사고가 된 학교의 모든 교사들이 사표를 낼 수는 없다고 하면서도 본인이 사표를 낸 것은 자사고 문제를 알리기 위한 상징적이고 정치적인 의미가 있는 행동이라 볼 수 있다. 정확하게 뭘 원하는가? 
= 사람들이 자사고가 뭔지를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신입생 모집, 교육과정, 재정, 이 세 가지를 학교 자율로 하겠다는 것이 자율형 사립고다. 서울에서는 중학교 내신성적이 50% 이상, 광주에서는 20~30% 이상인 학생들만 자사고 지원을 할 수 있다. 그 아래 학생들에게는 아예 지원 자격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외고든 서울대든 내신성적으로 지원 자격을 처음부터 제한하지는 않는다. 

 
교육과정의 자율을 마음대로 짜라고 하니까, 누구나 다 예상하듯이 입시교육으로 몰려가고 있다. 국영수가 늘고 음미체가 줄고. 국영수를 너무 많이 집어넣다 보니 정규수업이 8교시까지 늘어나고, 5시 반에 수업 끝난 다음에 학교에서 저녁 먹고, 모든 학생이 강제로 보충수업 한두 시간 듣고, 야간자율학습을 10시까지 한다. 이게 그들이 원하는 ‘자율’이다. 
 
재정의 자율이란 교육청 돈을 받지 않고, 학생 등록금과 재단에서 내는 돈으로 학교를 운영하겠다는 것인데, 우리 나라 재단들이 많은 돈을 내지는 않는다. 결국 학생 등록금으로 운영하게 된다. 지금 자사고 등록금이 일반고에 비해 세 배라고 알고들 있는데, 이 정도로 학교를 운영할 수는 없기 때문에 앞으로는 더 오르게 된다. 일반고 등록금이 분기당 45만 원, 한 학기에 90만 원 정도 된다. 이 돈도 못내는 학생들이 많다. 그런데 자사고는 그 세 배이니 학기에 250~300만 원이 된다. 국공립대 등록금과 같다. 여기에 급식비, 보충수업비, 수학여행비 등을 합하면 400만 원까지 올라간다. 
 
자사고끼리의 입시 경쟁에 의해 지원율 낮은 학교와 지원율 낮은 학교로 나누어지고, 지원율 낮은 학교는 재정 악화로 문을 닫게 될 것이고, 지원율 높은 학교는 등록금을 더 올릴 것이다. 자사고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민족사관고등학교 1년 학비가 1천만 원이 넘어간다. 기숙사비 등까지 합하면 1천8백만 원까지 나온다. 이 정도 등록금을 내고 사교육을 안 받으면 되는 거 아니냐는 말도 있는데, 현실에서는 자사고, 특목고 아이들이 사교육을 더 받는다. 자사고는 사교육 흡수 기능을 전혀 할 수 없다. 
 
- 두고 온 아이들은 어떻게? 
= 1학년 담임이었다. 그게 가장 가슴 아프다. 교사는 교육노동자다. 교사들이, 일반 노동자와 다르다는 자부심은 아이들을 만나는 데서부터 비롯된다. 나의 교육, 나의 수업, 나의 학급은 교육 노동자의 가장 소중한 가치고, 자부심이다. 물고기가 물을 떠난 셈이다. 자부심이 무너졌고, 상실감이 크다. 마음 속으로 사표를 낸 작년부터 몇 달 동안 늘 눈물이 목구멍까지 차 있었다. 누군가 툭 건드리면 쏟아져 나올 정도로. 그동안 많이 말랐다. 자사고가 제게서 학생들을 빼앗아 갔다. 교사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가난하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빼앗아 갔다. 
 
이화여고의 건학이념은 기독교다.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가라는 것이 기독교 정신인데, 이 학교는 99마리의 양을 버리고 우량한 한 마리의 양을 잘 길러서 높은 가격에 팔아먹자고 하고 있다. 제가 이화여고에 계속 남아 있다면 그런 학생들만 만나게 될 것이다.
 
- 사표 내고 아이들과 만나봤나? 
= 작년 중반쯤에, 제가 학교를 그만둔다는 소문이 났다. 저는 한 마디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 아이들이 마음을 읽은 거 같다. 아이들이 흥분해서 학교 관두지 말라고, 정의는 승리한다고 하지 않았냐고 항의하더라. 2월에는 아이들이 담담해졌었는데, <경향신문>에 기사가 나면서 아이들이 문자 보내고, 그리워하고…. 
 
- <우리 교육> 1월호에서 사직을 암시하면서 ‘망명’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망명’은 무슨 뜻인가? 
= 김상봉 교수님의 글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과거 식민지 시절에는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하든지 외국으로 떠나는 영토적 망명을 했었다. 자본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망명할 영토가 없다. 그래서 김상봉 교수는 ‘내부로의 망명’이라는 표현을 썼고, ‘자발적 낙오자’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저는 ‘내부로의 망명’을, 체제 안에서 체제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들을 확장해 나가는 것으로 이해한다. 철학하는 사람들이 많이 쓰는 ‘탈주’와는 많이 다른 거 같다. 
 
직장이나 학교에 매어있을 때는 새로운 대안을 만들기 어렵다는 김상봉 교수의 진단에 완벽하게 동의하는 것은 아니고 모든 사람이 망명을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자기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이 자본의 완전한 식민지가 되었다는 판단이 설 때는 내부로의 망명을 떠나는 것도 나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 처음 교단에 섰을 때 어땠나? 10년 동안 어땠나? 그동안 학교가 어떻게 변했나? 
= 점점 나빠졌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것은 경제학의 원칙이 아니라, 우리 나라 교육학의 원칙이다. 아무리 자본주의 시장이 나쁘더라도 악화가 양화 전제를 잡아먹지는 못한다. 그런데 교육에서는 나쁜 정책 하나가 교육 전체를 말아먹는다. 우리 학교는 3학년 강제보충 시키는데 옆 학교는 2학년도 강제보충 시킨다더라, 그러면 우리는 1학년도 시키자. 옆 학교는 11시까지 야간자율 시킨다더라, 그러면 우리는 12시까지 야간자율 시키자. 이게 교육학의 법칙이다. 
 
지금의 ‘학교 자율’이라는 건 학교 마음대로 나쁜 짓 할 수 있는 자율이다. 밤 11시, 12시까지 아이들 붙잡아둘 수 있는 자율이다. 그러니, 촛불집회에서 아이들이 들고 나온 게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였다. 지금 학교는 누가 더 나쁜 짓 하고 있는가를 내기 하고 있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직설이다. 현 정부는 학교들끼리 서로 나쁜 짓 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 국어 교육에 대한 여러 글과 책을 써냈다. 어떤가? 
= 보통 사람들은 학창 시절을 회상할 때 좋은 교사들보다 나쁜 교사 한 사람을 먼저 기억한다.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고등학교 국어 교육은 굉장히 발전했다. 새 교과서도 만들고, 새 수업방법론도 실천했다. 대학에 간 학생들이 고등학교 수업이 더 재미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경쟁교육 정책에 의해 이런 성과들이 하나 둘 유실돼 가고 있다는 점이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아이들 뛰어놀게 하고 꿈을 키워주려 하면, 일제고사 성적이 나쁘다고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거나 심한 경우는 해직되기도 한다. 
 
국어 교육에서는 논술이 끼치는 해악이 엄청 크다. 현재의 논술은 지식과 교양을 상품화하는 것이다. 논술 교육을 통해 많은 것을 하고 있는 분들의 선의와는 무관하게, 많은 사유의 시간이 필요한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공산당선언』 요약본을 읽혀 외우게 하고 있다. 대학에 가서는 정작 원전을 읽지 않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 전교조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가장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노동조합이다. 조합원의 한 명으로서 평가하자면, 전교조는 어떤가? 
= 전교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지만, 흔히 말하는 ‘전교조가 초심을 잃었다’는 비판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전교조 만큼 초심을 간직하고 있는 선생님들이나 노조는 없다. 우리 나라 노조 중에 임금인상에 대한 정책이 아예 없는 노조는 전교조뿐이다. 이런 전교조에게 ‘조합 이기주의’니 ‘밥그릇 챙기기’니 비판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전교조의 사업계획은 공교육 정상화뿐이다. 교사들의 권익 향상에서도 공교육 정상화와 일치되는 부분만 대변한다. 조합원들의 경제적 욕구를 배반하는 유일한 노조가 전교조다. 
 
문제는, 조건이 어렵고 정책적 상상력이 부족하다 보니 실천이 학교 안에 멈춰져 있는 것이다. 또, 학교 안에서도 조합원 내부에 실천이 머물러 있다. 학교 내부, 조합원 내부에 전교조의 시야가 멈춰져 있는데, 모든 국민이 교육의 당사자이다 보니 그런 전교조가 실망스러운 것이다. 대학서열화 문제, 학벌사회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해야 하는데, 전교조는 거기에 소심하다. 더 나아가, 학부모와 만나기 위해 지역으로 나가 소통해야 한다. 공세적으로 나가야 한다. 집회를 많이 하라는 게 아니라, 실천의 폭을 넓히라는 것이다. 
 
- 마포 ‘민중의 집’ 강좌를 하고 있다는데, 어떤 건가? 소감은? 
= 생활의 영역인 지역에서 핵심 문제가 교육이라 생각한다. 물론 환경, 주거 문제도 중요하지만, 주민들이 늘상 부딪히는 것은 교육이다. 지역에는 학부모가 있고, 학교 밖 청소년들이 있다. 이런 지역에서 활로를 찾고 싶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지역을 위해 일하고 싶었는데, 제가 사는 곳은 아니지만 마침 마포 ‘민중의 집’에서 지역사업의 일환으로 학부모 강좌를 기획해서 거기에 참여하게 됐다. 학교를 관둔 후 3월 2일 하루 쉬고, 3월 3일에 ‘민중의 집’에서 첫 강의를 했다. 학교 밖에 나가서 교사 노릇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하고 좋았다.
 
독서교육이었다. 어떻게 하면 자녀들과 독서를 통해 소통할 수 있을까, 부모들부터 책 읽자는 내용이었다. 학부모들이 너무 좋아해서 곧장 학부모 독서모임이 생겼다. 
 
- 미국에서는 보안관과 검사를 선거로 뽑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교육감을 선거로 뽑는다. 교육감 선거에도 개입할 것인가? 
= 아마 그렇게 될 것 같다. 교사여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만, 교사가 아니어서 할 수 있는 일도 많은 것 같다. 교사가 아니어서 교육감 선거에 개입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받았다. 
 
- 진보정당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늘 마음은 함께 해왔지만, 한국 사회의 특수한 조건 때문에 직접 참여하지 못했던 진보정당에 함께 하게 될 것 같다. 진보신당에 입당하려 한다. 
 
- 앞으로 뭐 할 건가? 
= 하고 싶은 짓 다 하려 한다. 지금쯤 섬진강을 돌아다녀야 하는데, 너무 바쁘다. 백수가 바쁘다더니. 학교 그만 뒀다고 해서 교육활동을 그만 둔 것은 아니니, 학교 밖에서 청소년 만나고 학부모 만나겠다. 김예슬씨 사건이 많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 경쟁과 승자독식의 무한질주에 균열을 주려했던 행동에 사람들이 목말라 했던 것 같다. 이 갑갑한 세상을 벗어나는 가능성과 씨앗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사람들이 교육 문제에, 막연하게 알면서 불만만 가지지 말고, 여러 교육 문제에 대해 자세히 알았으면 좋겠다. 진보 진영도 교육 문제를 좀 더 심도 깊게 봐야 한다. 교육을 통해 한국 사회의 구성원과 주체가 형성된다. 깊이 있는 천착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을 함께 할 수 있는 단위들을 학교와 지역에서 만들길 바란다. 서울 교육감 선거에서 또 한 번 ‘강남 교육감’을 뽑는 우를 범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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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9 13:46 2010/03/29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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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용설명서 - 일하는 사람이 알아야 할 경제의 모든 것/짐 스탠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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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스탠포드가 주장하듯이, 반자본주의가 아닌 건전한 자본주의가 대안일까. 우선은 이 정도라도 의미있다고 봐야 하나. 하긴 자본주의 변화매뉴얼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용설명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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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는 경제이야기]임금 낮추면 고용이 늘어날까 (내일, 이재걸 기자, 2010-03-26 오후 12:03:11)
자본주의 사용설명서 - 일하는 사람이 알아야 할 경제의 모든 것/짐 스탠포드/안세민/부키/408쪽/1만4천원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완전한 고용을 믿는다. 그들은 사회보장제도와 노동조합, 그리고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법률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방해해 장기적으로 실업률을 낮게 유지할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추진하는 게 노동시장 유연화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란 말에는 본질을 숨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현실에서 노동자는 신분이 불안정하다면 잘 적응하지 못하더라도 일을 그만두려고 하지 않는다. 문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아니라 노동자와 고용주의 힘의 관계에 있다. 이른바 ‘기업 프렌들리’한 학자, 정치인들은 실업자들이 원하는 임금수준을 낮추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저임금제나 임금을 올리려는 여러 가지 시도에 딴지를 건다. 최저임금 수준이 높을수록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으려고 하겠지만 고용주들은 반대로 인색해지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저자는 최저임금 수준이 변해도 고용수준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본다. 고용수준은 상품을 생산하려는 기업의 의지에 달려 있다. 고용주들의 의지가 바로 노동 수요를 결정한다. 그러나 임금이 낮다고 해서 불도저 한 대로 파면 될 땅에 노동자 10명을 동원하려는 고용주는 현실에 없다. 오히려 반대로 볼 수 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번 돈으로 소비를 한다. 임금수준이 낮아지면 지출이 줄어든다. 경제 전체의 총수요가 떨어진다. 투자지출이나 수출이 늘어나 이를 상쇄하지 못하면 임금수준의 하락은 경제 전체의 생산량 감소와 그에 따른 고용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드물지만 임금을 올려 고용과 매출을 함께 잡은 경우도 있다. 헨리포드는 1914년 노동자들에게 일당으로 당시 매우 큰 돈인 5달러를 지급했다. 당시 임금은 2~3달러 수준이었다. 노동자들은 이 돈을 모아 자기가 만든 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임금이 높으면 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경제 전체의 구매력이 상승하기 때문에 부정적 영향을 상쇄하고도 남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상황을 ‘임금이 주도하는(wage-led) 경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효과를 지나치게 믿어서는 안 된다. 높은 임금이 경제 전체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려면 몇 가지 전제조건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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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낮아지면 일자리 더 늘어날까 (디지털타임스, 이지성 기자, 2010-03-25 20:52)
 
"경제학자들을 믿지 마라" 경제학자인 저자 짐 스탠퍼드는 경제학자들에 대한 불신을 표출하며 글을 시작한다. 이유는 많은 경제학자들이 기업과 자본가의 편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나 자영업자가 경제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은 노동자의 임금이 낮아지면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임금이 내리면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들기도 한다. 임금이 줄어든 노동자는 소비를 줄이게 되고 그에 따라 기업의 이윤도 떨어져 생산과 고용 역시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임금을 올렸을 때 기업의 이윤이 더 늘기도 한다.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기업의 투자를 통해 고용과 소비가 발생하므로 기업이 투자를 줄이면 경제 전체가 침체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기업친화적인 정책, 이른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펼치게 된다. 
  
책은 이 같은 현상이 좌파정부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난다고 지적한다. 좌파가 정권을 잡으면 기업은 그들이 개혁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측해 투자를 줄이게 된다. 이에 따라 좌파 정치인들은 오히려 기업보다 먼저 나서서 기업인들을 안심시키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기업이 지갑을 열지 않는 행동 하나로 정부를 길들이는 셈이다. 이는 한편으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투자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1990년대 일본은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걷히면서 장기 불황의 늪에 빠졌다. 당시 일본중앙은행은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자율을 0%로 낮췄다. 돈을 공짜로 빌려준 것이다. 하지만 수년 동안 대출은 기대했던 만큼 늘어나지 않았고 소비자들의 지출 역시 비슷한 수준에 머물렀다. 바로 일본 기업들이 향후 경제상황을 비관적으로 전망했기 때문이다. 경제 전망이 좋지 않으면 대출이자율이 아무리 낮아도 기업은 대출을 받지 않는 현상이 발생한다.
 
책은 분배와 환경문제에도 큰 관심을 기울이면서 어떻게 하면 자본주의 경제를 개선해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인상적인 점은 이러한 논의가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장점은 역동성과 유연성은 인정하면서 빈곤과 환경오염 같은 문제는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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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세상보기> 경제학, 이젠 숫자를 넘어서라 (문화, 김종락기자, 2010-03-26 14:06)
 
많은 경제학자들이 기업이나 자본가들 편에 서서 일하므로 자주 이들과 이익이 상충되는 노동자나 자영업자에게는 해로운 경제학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사례는 적겠지만 그 역도 성립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따라서 ‘경제학자를 믿지 말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경제학의 근원적인 한계보다는 경제학자가 모두가 아닌, 자신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일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캐나다의 진보 경제학자인 짐 스탠퍼드는 ‘자본주의 사용설명서’(안세민 옮김, 부키)에서 모두를 위한 경제학을 주장합니다. 이를 위해 그는 먼저 주류 경제학자들이 늘 주장하는 몇가지 중요한 주장의 근거를 뒤흔듭니다.
 
흔히 경제학자들은 단기적으로 노동자의 이익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친기업 정책을 펴면, 장기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이익이라고 말합니다. 기업이 이익을 투자하면 그만큼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하의 많은 국가에서 친기업 정책을 도입했고, 그 결과 기업 이익이 크게 늘어도 일자리는 별로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기업이 늘어난 현금을 설비 등에 투자하지 않고 주주배당금으로 돌리거나 금융자산 등에 투자했기 때문이지요.
 
책이 이처럼 주류 경제학이 유통시키는 경제 상식을 부정하는 것은 반자본주의를 조장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책은 현실 자본주의의 여러 문제를 지적하다 사회주의의 가능성도 검토해 봅니다. 그러나 결론은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만한 청사진을 내놓진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 사회 집단이 공존하려는 의지와 상호 신뢰만 있다면 자본주의야말로 경제 효율을 추구하면서 소득재분배와 사회안정, 환경보호, 개발도상국 보호와 같은 많은 문제를 개선할 여력이 충분하다고 보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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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도 경제학을 공부해야 한다 (세계, 조정진 기자, 2010.03.26 (금) 21:50)
 
기업과 정부의 관계는 어떨까. 보통은 정부의 일방적 승리를 예상한다. 하지만 정부의 압력을 받으면 기업은 투자 결정 여부를 통해 엄청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한다. 정부가 기업에 불리한 정책을 펴면 지갑을 닫고 투자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경제는 위축된다.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기업들이 공모할 필요도 없다. 정부가 기업친화적인 자세로 돌아갈 때까지 그냥 투자 결정을 미루고 현금을 움켜쥐고 있기만 하면 된다. 기업은 투자하지 않겠다는 말 한마디만으로 정부를 기업친화적으로 돌아서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우파이고 좌파이고 정치인이라면 기업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 오늘날에는 좌파 정당들도 선거 때가 되면 기업친화적인 모습을 보이려고 애를 쓴다. 심지어 이들은 기업이 투자하지 않아 불황이 발생하는 상황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기업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는 정책은 추진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국력을 가늠하는 국내총생산(GDP)을 집계할 땐 보통 돈을 벌지 않는 일은 제외한다. 그러나 이는 매우 자의적이고 잘못된 것이다. 이를테면 가족을 위해 보수 없이 일하는 가사노동이나 자원봉사는 통계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가사노동을 가정부나 외식업체에 맡길 경우엔 GDP에 포함된다. 이런 일들은 대부분 여성들이 맡는다. 따라서 GDP는 여성들의 경제적 기여를 낮게 평가하는 셈이다.
 
‘자본주의 사용설명서’는 이처럼 평범한 노동자와 자영업자, 소비자들이 경제생활을 하면서 알아야 할 노동, 소비, 투자 같은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 개념과 특징을 쉽고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책엔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자본주의 체제에 던져진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들로 꼭 찼다.
 
책은 보통 사람들도 경제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는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에 경제학자들에게만 맡겨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도 가치 있는 경제 지식이 있지만,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이를 무시한다. 더 중요한 것은 경제학자들의 분석과 조언이 종종 자신들의 처지에 따라 좌우된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모두 경제활동을 하면서 이해관계를 갖는다. 자신과 동일시하고 지켜야 할 경제적 이해관계 말이다. 이처럼 모든 사람이 거대한 경제 시스템에서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고 정당한 권익을 얻도록 돕는 것이 바로 경제학을 가르치는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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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8 21:20 2010/03/2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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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스의 『관료제』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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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es, Ludwig von. 황수연 옮김. 2009. 『관료제』.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Bureaucracy. Libertarian Press, Inc. 1996.
 
- 미제스의 『관료제』는 관료제론을 강의하면서 참고도서 중의 하나로 읽은 것이다. 그런데 이를 읽어서 관료제에 대한 지식이 늘었다기보다는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200여 페이지의 짧은 팜플렛을 읽은 느낌이다. 미제스는 하이에크의 스승이 되는 사람으로, 그 밑에 '훌륭한' 신자유주의 전사들을 길러냈다. 이 책은 초판이 1944년도에 나왔고... 
 
- 미제스는 사회주의에 대해 지나치게 편협하고 단순한 개념에 입각하여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대부분의 시민들이 모두 사회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의 이름을 딴 연구소까지 있다니 잘 이해가 안 된다.
미제스는 관료주의의 배후에 사회주의 경향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래서 관료주의를 비판할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로의 경향 그 자체와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좋으면 우리편, 나쁜 것은 사회주의라는 식이다. 그러면서도 ‘진보주의적’ 비판가들이 단순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긴 그런 이들도 있을 테지만, 극소수이다. 머리 속에 하나의 전형을 만들어놓고 이를 비판하는 짓, 이런 걸 누가 못하나.
 
- 미제스는 정부가 창조적 성격의 사람의 노력을 마비시키고 그가 공동체에 유용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막는다고 하면서, 소득세와 법인세 때문에 신참(사업분야의 혁신자)이 자본을 축적할 수가 없게 되는 예를 든다. 소득세가 신참의 최초 이윤의 80% 이상을 흡수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과연 기업이 자본을 축적하지 못하는 주된 요인이 세금일까.
 
- 사회주의와 개입주의, 관료주의가 동일한 것인가. 단순하게 이를 동일시하는 발상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미제스나 해설에서 말하는 관료제는 무엇을 의미할까. 사부문에는 관료제가 없는 건가. 베버의 논의에서부터 제대로 알고 말하면 좋을 텐데.
 
- 국민들이 실상을 제대로 알게 되면 관료주의 경향을 막을 수 있다고? 과거 골방 좌파들이 민중들이 각성만 하면 사회주의 혁명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과연 몰라서 막지 못하는 것인가.
- 관료제를 옹호하고 싶진 않지만, 이윤 관리가 가능한 것을 관료제가 맡아 하면 왜 안 되는 걸까. 미제스의 논리대로라면 관료제가 맡아 해서 이윤 관리를 더 잘하고 그만큼 효율적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게 된다. 미제스나 해설의 논리는 결국 뭐라고 해도 깰 수 없는 도그마가 있다.
 
- 편집자 서문에 1944년 이 책이 나왔을 당시 영국, 독일, 그리고 소련에서는 사회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단다. (17쪽) 이것만으로도 이 책이 사회주의에 대한 얼마나 무식한 발상을 하고 있는지가 잘 드러나 있다.
 
- 미제스의 주장 중에서는 역설적이게도 모든 것을 시장화하고 시장원리를 전일적으로 관철시키고자 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도 들어 있다. 정부 고유의 영역과 논리를 인정하는 셈인데, 이에 대해서 신자유주의자들은 어떻게 볼까.
 
- 미제스의 공기업에 대한 논의도 흥미롭다. 공기업은 사실상 이윤 추구 기업과 다르게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명령과 지시가 관철되는 정부 관료제와 다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공부문을 차츰 사유화(민영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미제스의 논리로는 이것은 전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사유화되는 영역은 원래부터 시장 원리가 관철되었어야 하는 부분인 것이다.
 
- 미제스의 주장을 그대로 지금의 시장지상주의자들에게 돌려주면 좋을 것들이 많다. 이를테면 시장과 국가의 중간 영역, 제3의 영역, 경제적 개입주의에 대한 옹호는 결국 사회주의 옹호와 다르지 않다고 하는데, 이와 비슷하게 이는 사실상 세련된 자본주의를 하자는 논리다라고 해도 그리 어색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평범한 시민 대 전문적인 관료제화 선전원을 대립시킨 부분 등 ‘당신들이 떠받드는 미제스도 이런 주장도 했어’ 하는 식으로 꼴 보수들에게 들이밀 만한 내용도 꽤 있다.
 
- 미제스의 책을 읽으면서 이분법적인, 단순한 사고는 한계가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선전ㆍ선동하는 데에는 나름 기능을 하겠지만, 궁극적으로 보면 설득력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 미제스는 소비자 주권을 강조하는데, 소비자가 주인이라고 떠들곤 하는 자본가들의 앞잡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소비자가 주인이고 왕이라면 그 주인이나 왕을 할 것이지 왜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공급자, 자본가의 역할을 하느냐고. 당신들의 이론적 기반이 되고 있는, 합리적ㆍ이기적 경제인을 강조하는 공공선택이론에 따르더라도 그게 타당할 텐데 말이지.
 
- 덧붙여, 기회가 되면 우체국시스템에 대해 제대로 연구해보기로 했다. 레닌이 쓴 '국가와 혁명'에 우체국을 찬양하면서 모든 사회 시스템을 우체국과 같이 바꾸자는 제안이 있었던가. 미제스는 자꾸 레닌이 칭송했다는 우체국 사례를 반복해서 언급하면서 관료제를 비판하는데, 최근 일본의 우정 민영화 무산 사례 및 오바마의 우체국 민영화 반대 발언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우체국 법인화 시도를 비교하여 분석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아래 글은 책 내용 중에서 해설 부분을 발췌 요약한 것이다.

 

『관료제』에서 미제스는 이윤을 벌고 손실을 피하려는 기업가들에 의해 움직이는 시장 관리와 정부가 정해놓은 규칙들과 규정들에 따른 관료적 관리 사이를 비교한다. 이윤과 손실의 시장 관리 아래서는 기업가들은 특정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에 필요한 다양한 생산 요소들의 비용에 반영되는 시장 가격의 지도를 받는다. 그 결과 시장 경제에서 활동하는 기업가들은 비용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수요를 만족시키는 최상의 방법도 계산할 수 있다.
반면, 관료적 관리에서는 관료제의 목표를 화폐로 측정할 수 없고 업무 수행에 대해 손익 계산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업무에 관해 관료들의 재량에 맡길 수 없고 법과 예산을 통해 통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관료들은 확실하게 정의되지 않는 목표의 달성보다는 지시와 규정을 준수하는 것을 목표로 행동한다. 그 결과 관료제는 비용이 많이 들며 낭비적이라고, 관료적 절차는 경직적이며 형식적이라고, 그리고 관료들은 나태하며 반응이 느리다고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관료제 그 자체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그것은 치안 및 사법과 같은 일정 인간 활동 영역들을 관리하는 적합한 방법이다. 범죄 없는 거리 및 정의와 같은 ‘산출물’은 매우 가치 있고 심지어 필수 불가결하지만 시장에서 가격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러므로 그것들을 야기하려는 노력에서 이루어진 총지출과 대비될 수가 없다. 이런 것은 성격상 이윤 관리로 처리될 수가 없다.
미제스에 따르면, 관료제에 대한 통렬한 비난은 요점을 놓치고 있다. 그러한 현상의 전개에 대해 관료제나 관료들이 책임져야 할 것이 아니고 그 원인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관료제란 업무를 수행한 결과이자 징후일 뿐, 그러한 문제의 뿌리는 훨씬 더 깊다. 관료제나 관료들이 문제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경제 통제에 문제가 있다.
이윤 관리가 가능하지 않은 한정된 인간 활동 영역들은 관료제가 맡아서 관료적 관리를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윤 관리가 가능한 것을 관료제가 맡아 하면 안 된다. 관료제에서는 경제 계산을 할 수가 없으므로 문제가 야기되기 때문이다. 즉 사기업을 관료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나 관료제가 공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실패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확립된 절차에 대한 강요된 복종은 기업 관리자에게 소비자 욕망을 예상하여 조정하거나 혁신할 여지를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경제 정책은 기회가 닿는 대로 자유 기업을 정부 통제로 대체하려 하고 있다. 정당들과 압력 집단들은 경제 활동들의 공적 통제를, 정부 계획을, 그리고 기업의 국유화를 강력하게 요구한다. 그들은 교육의 정부 통제, 의료 분야의 사회주의화를 겨냥한다. 그들의 눈에는 국가 통제는 모든 질병들에 대한 만병통치약으로 보인다. 미제스에 따르면, 이러한 자칭 ‘진보적인(progressive)’ 정책들 때문에 새로운 사무실들과 정부 기관들이 버섯처럼 번창한다. 관료들은 숫자가 늘어나고 차츰차츰 개별 시민들의 행동의 자유를 제약한다.
오늘날 관료제의 문제점은 관료적 방식으로 처리해서는 안 될 일에 정부가 개입한다는 점이다. 경제적 생산과 분배 체제에는 관료제가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심하게 나타나는 관료적 경직성으로의 추세는 기업 활동에 대한 정부 개입의 결과다. 그것은 사회의 경제 조직의 틀에서 이윤 동기가 수행하는 역할을 제거하려는 정책들의 결과다. 다시 말해, 정책들이, 정치 및 경제 체제가, 정부의 경제 통제가 관료제화와 관료주의를 야기한다.
이러한 사회주의, 개입주의, 관료주의의 경향은 의회가, 더 나아가서는 유권자가 만든 것이다. 소위 ‘진보주의적' 경향은 의회가 유권자가 막을 수 있다. 유권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의원들이 사업에 대한 정부 통제의 입법을 못하게 막을 수 있다. 따라서 유권자들의 의식이 중요하고 국민들의 사상이 중요하다. 국민들이 실상을 제대로 알게 되면 사회주의, 개입주의, 관료주의의 경향을 막을 수 있다. 이러한 것을 막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경제학적 독해력 향상이 중요하다. 시민들이 경제 문제를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스스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다.
민주 국가 국민들은 경제 문제에 대한 상식을 갖출 의무가 있다. 국민들은 스스로를 교육하고 훈련시켜야 한다. 관료제화를 막기 위해서는 국민 경제 교육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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