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노동 OTL' 기사를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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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OTL (전체 기사 수 : 27개)
‘4천원짜리 인간’들이 있다. 2009년 최저 임금인 시급 4천원을 받고 살아가는 노동자들이다. 언론은 가난한 노동자의 이야기를 종종 전해왔지만,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틈은 무장 벌어지기만 한다. ‘워킹푸어’(working poor)는 2년전 이미 300만 명을 넘어섰다는 분석도 나왔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동트기 전에 출근해 별을 보며 퇴근해도 가난은 결코 저물지 않는 이들이다. <한겨레21>은 그들의 세계로 직접 들어가보기로 했다. 시급 4천원짜리 일자리를 구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부닥치고 일했다. 그 돈으로 한 달 생활을 직접 꾸려보았다.
한겨레21의 이 기획연재 기사, 처음에는 보지 못했다. 한겨레가 다루는 노동기사가 뻔하지 않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임지선 기자의 내 이름은 아줌마, 혹은 '파블로프의 개'라는, 갈빗집과 감자탕집을 다룬 기사를, '제목의 선정성' 때문에 읽게 되었다. 긴 기사임에도 단숨에 읽게 되더라.
그리고 난 후 거슬러 올라가서 안산공장의 비정규직을 다룬 임인택 기자의 기사를 다 읽었다. 그리고 작년 12월 마석 가구공장과 대형 마트를 다룬 전종휘 기자, 안수찬 기자의 기사를 몇 시간에 걸쳐서 읽었다. 안수찬 기자의 맨 첫 기사는 너무 생생하게 다가왔는데, 역시나 엄청난 댓글이 그에 호응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기사부터는 인상적인 부분을 발췌해서 담아왔다. 처음부터 다시 읽으면서 체크할 수는 없었고...
이 노동 OTL 기획연재 기사는 주간지의 특성을 잘 살린 심층탐사보도라고 본다. 직접 체험하면서 너무 세세한 부분에 집착하고 구조나 제도를 놓치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에필로그에 나온 대담을 보니 기자들도 이를 인식하고 있더라. 오히려 이를 제끼고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다. 사실 구조나 제도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언론의 몫만은 아니지 않은가.
기자들이 본 현장노동자의 목소리에는 예상대로 정치가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 정치가 전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겠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억지로 눈감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풀어나가기 쉬운 문제가 아니며, 여기에 뭘 쏟아붓는다 해도 성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 자체에 대해 많은 이들이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이와 비슷한 기사를 또 접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지만, 좀더 많은 이들이 노동 OTL 기사를 알지 못하고 넘어가게 될 것 같아서 아쉽다. 그래서 이렇게 블로그에다 링크를 걸어놓는 수고도 하는 것이고...
나중에 이를 모아서 책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에필로그에 이를 제안하는 출판사들이 꽤 있다고 나온다. 하긴 인권 OTL도 얼마 전에 책으로 나왔으니 노동 OTL도 가능하겠지. 그 책이 나오기 전에라도 이 기획연재 기사를 접하지 않은 이들에게 이 기사를 권한다. 다 읽어보려면 몇 시간이 걸리겠지만, 다 읽고나면 그 수고가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님을 느끼게 될 것이다.
참, OTL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으려나.
나는 아침이 두려운 ‘9번 기계’였다 (한겨레21 2009.09.18 제778호, 임인택 기자)
[표지이야기-노동 OTL] ① 작업 라인의 노예
종일 12시간 서서 일하면 떼어내고 싶어지는 몸과 머리…
감시 속에 말조차 잃은 단절의 작업장에서 보낸 한달
절망과 빈곤으로 ‘완조립’돼가는 삶들 (한겨레21 2009.09.25 제779호, 임인택 기자)
[노동 OTL-제1부 안산공장] ② 4천원의 삶과 행복
세월 가며 몸값은 추락하고 빚더미는 높아가는 ‘4천원 시급 인생’…
그래도 작업 라인 없어질라 조마조마
15만원 남았다, 희망은 남지 않았다 (한겨레21 2009.09.25 제779호, 임인택 기자)
[노동 OTL-제1부 안산공장]
비정규직 공장 노동자로 살아본 한 달 가계부…
최소한의 ‘행복의 조건’ 지키니 1년 모아야 원룸 보증금 나와
바람처럼 왔다 이슬처럼 떠나는 섬 (한겨레21 2009.10.09 제780호, 임인택 기자)
[노동 OTL-제1부 안산공장] ③ 그들에게 보내는 편지
일할 때도 쉴 때도 말문을 닫은 그들에게 연애는 넘기 힘든 ‘작업’
노동 디스토피아, 그래도 희망을 꿈꾼다 (한겨레21 2009.10.09 제780호,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노동 OTL-제1부 안산공장] ‘노동 OTL’ 1부를 읽고…
1970년대의 미싱이 전동 드라이버로 대체됐을 뿐, 여전히 일해도 빈곤한 역설 바꾸는 계기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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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은 일하고 여성은 애쓴다? (한겨레21 2009.10.16 제781호, 조계완 기자)
[표지이야기-노동 OTL]
기혼여성 3명 중 2명은 비정규직, 남자 정규직 임금 100·여자 비정규직 임금 39.1
내 이름은 아줌마, 혹은 ‘파블로프의 개’ (한겨레21 2009.10.16 제781호, 임지선 기자)
[표지이야기-노동 OTL 제2부 서울 갈빗집과 인천 감자탕집] ① 언제나 젖은 앞치마
서울 갈빗집과 인천 감자탕집 ‘아줌마’로 보낸 한 달…
손님·팀장 언니·동료·사장의 명령 속에 하루 12시간 뺑뺑이
식당일 끝나면 집안일 (한겨레21 2009.10.16 제781호, 임지선 기자)
[표지이야기-노동 OTL 제2부 서울 갈빗집과 인천 감자탕집]
여성 8782명 가운데 91%가 거의 매번 식사 준비와 설거지를 담당해
웬만해선 식당에서 탈출할 수 없다 (한겨레21 2009.10.23 제782호, 임지선 기자)
[노동 OTL-제2부 서울 갈빗집과 인천 감자탕집] ② 몰락 가장의 부인과 올드미스
열심히 일하고 성공하는 것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
가족 생계 부양 때문에 아파도 못 쉬는 식당 아줌마들
이보다 더 낮은 삶을 어디서 찾으리오 (한겨레21 2009.11.06 제784호, 임지선 기자)
[노동 OTL-제2부 서울 갈빗집과 인천 감자탕집] ③ 사장님, 손님, 남편님
식당 아줌마 짓누르는 손님·사장·남편의 3중 억압구조… 묻지도 따지지도 못하는 그들의 이름은 ‘사람’
“우리끼리 서로 알아주고 연대하자” (한겨레21, 2009.11.06 제784호, 장귀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장·사회학 박사)
[노동 OTL-제2부 서울 갈빗집과 인천 감자탕집] ‘노동 OTL’ 2부를 읽고…
혼이 반쯤 달아난 듯한 식당 아줌마가 눈에 들어오며 절로 돕게 되더라
“제발 한 달에 이틀은 쉬세요” (한겨레21 2009.11.06 제784호, 2009년 10월30일 식당 막내 임지선 드림)
[노동 OTL-제2부 서울 갈빗집과 인천 감자탕집] ‘언니들’에게 보내는 편지
“내가 떠나 더 힘들 텐데… 하루의 절반을 일하고 가족까지 챙기는 언니들이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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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힌 노동 닫힌 희망 (한겨레21, 2009.11.13 제785호, 전종휘 기자)
[표지이야기-노동OTL 제3부 마석 가구공장] ① 톱밥 더미에 갇힌 꿈
마석가구공단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한 한 달
짓누르는 합판, 목을 막는 먼지, 살을 파고드는 타카 핀보다 더 두려운 건 단속
‘영혼없는 노동’의 버팀목, 꿈 그리고 가족 (한겨레21 2009.11.20 제786호, 전종휘 기자)
[노동OTL 제3부 마석 가구공장] ② 빠빠, 마마 그리고 겐드라노나
본국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이주노동자들… 향수와 사랑에 울고 웃는 공장 밖 그들의 일상
20년 만의 귀향, 그러나 딸에겐 국적이 없네 (한겨레21 2009.12.04 제788호, 전종휘 기자)
[노동OTL 제3부 마석 가구공장] ③ 13살 노동자의 귀환, 그리고…
사우디서 8년, 한국서 12년 일하다 돌아간 방글라데시인 무띠의 비애…
‘한국에서 낳은 아이’에 국적 안 주고 가족들 현지 재적응도 험난
한국말은 늘었어도 병원 문턱은 여전 (한겨레21 2009.12.04 제788호, 전종휘 기자)
[노동OTL 제3부 마석 가구공장]
1년 만에 다시 만난 ‘무국적 아이’ 마히아…보험 적용 안 돼 감기 진료에 6만원
“편협한 나라의 국민이어서 미안해요” (한겨레21 2009.12.04 제788호, 전종휘 기자)
[노동OTL 제3부 마석 가구공장] 동료들에게 보내는 편지
“공장의 먼지도, 단속의 공포도 여전할 텐데 내 손가락의 상처만 벌써 나았네요”
100만 이주민 시대, 전향적 이주노동 정책을 (한겨레21 2009.12.04 제788호, 이영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사무처장)
[노동OTL 제3부 마석 가구공장] ‘노동 OTL’ 3부를 읽고…
그들을 껴안으면 태부족 기능직 인력 보완하고 저출산 문제도 대비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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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선 매일 지기만 한다 (한겨레21 2009.12.11 제789호, 안수찬 기자)
[표지이야기- 노동OTL 제4부 서울 A대형마트] ① 히치하이커의 슬픔
서울 A대형마트에서 보낸 한 달…
먹고 먹히는 1천 명의 ‘평등’한 노동, 버티고 버텨도 최후의 승자는 언제나 마트
석 달 전, 일당 6만원의 그 일을 영희가 처음 시작했을 때, 용역회사 사장은 딱 한마디를 했다. “마트에 가서 다른 아가씨들이 멘트 치는 걸 보고 배워.” 잔인하지만 절묘한 말이었다. ‘멘트를 친다’는 문장에는 판촉 점원이 감당해야 할 모든 기교가 담겨 있다. 멘트는 성대에서 술술 나오지 않는다. 가슴 아래 뜨거운 것을 쳐올려내야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마트 노동자의 편이 됐다. 건너편 매대에서 돼지고기를 굽는데, 시식하려던 아주머니의 옷에 기름이 튀었다. 튀어봤자 이쑤시개로 찍어낼 만큼의 한 점 기름이었다. 손님은 세탁비를 요구했다. 점원은 자기 돈 1만원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의 월급은 120만원이었다. 2시간의 품삯이 세탁비로 날아갔다. “기름 안 없어지면 다시 올 거야.” 손님은 시식용 돼지고기를 질겅질겅 씹으며 말했다. 나는 ‘세탁비 아줌마’를 마음 깊이 증오했다. 편을 나누자면, 물건 사는 서민이 아니라 물건 파는 서민의 편에 섰다. 그러나 도대체 이 세상에 좋은 편이 있기는 한가.
40대 이하 젊은 점원들은 꼬박꼬박 나이를 따진다. “형님이셔. 인사드려.” 철수가 옆 매대 점원에게 말했다. 나는 난생처음으로 조폭 보스 같은 대접을 받았다. 10년을 일했건 하루를 일했건, 나이가 많으면 형님이다. “그 나이에 왜 이런 데서 일하세요?” 그런 질문은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다 한들, 몸으로 치러야 하는 노역은 서로 같다는 것을 그도 알고 나도 안다.
나이는 존중하되, 연공서열을 무시하는 호칭이 ‘형님’이었다. 연공서열을 타파해야 한다고 사람들은 곧잘 말한다. 마트 노동자에겐 타파할 연공서열이 없었다. 나는 ‘형님’이라 불릴 때마다 씁쓸했다. 일한 시간만큼 존중받아야 할 기술·지식 따위가 마트엔 없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마트 매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하루를 일하건 10년을 일하건 그냥 점원이다. 승진은 없고, 월급 호봉이 올라가는 일도 없고, 매출이 오른다고 보너스를 받는 일은 더구나 없다. 그들은 서로 여사님과 형님으로 치켜세운다. 그것을 제외하면, 그들의 마음에 드는 일은 그들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점포가 망하면 그들의 일자리도 함께 사라질 것이라는 점만 분명히 알고 있다. 내가 일한 양념육 매대의 바로 옆에는 비슷한 품목을 파는 다른 양념육 매대가 있다. 50m 전방에는 또 하나의 양념육 매대가 있다. “경쟁시키는 거죠. 세상은 먹고 먹히는 거니까.” 철수가 말했다. 마트는 점포들을 먹고 먹히게 했다. 그것은 전투다. 그 싸움에서 어떤 노동자도 이기지 못한다. 매일 지기만 한다. 마트는 석 달에 한 번씩 여러 돼지고기 업체들의 매출액을 정산한다. 꼴찌가 되면 물건을 빼야 한다. 대신 다른 돼지고기 업체가 제 상품을 진열할 것이다. 승리는 항상 마트의 차지다.
이들을 위한 노동조합은 마트에 없다. 마트 본사 직원들이 결성한 노조가 있지만, 그것은 웜홀 너머 다른 차원의 세상이다. 철수와 영희는 마트에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다. 같은 처지의 마트 비정규직을 모두 아우르는 것은 어떨까.
상용직 취업, 고졸자 17%·대졸자 51.1%
대졸자 실업이 문제라고?
2004년 고등학교 졸업자의 44.3%가 임시직, 38.7%가 일용직에 취업했다. 상용직 취업은 17.0%에 불과했다. 2년제 대학 졸업자 가운데 임시직을 얻은 경우도 50.1%나 됐다. 12.4%가 일용직이다. 상용직은 37.5%로 고졸자에 비해서는 높다. 그러나 대학 졸업자의 51.1%가 상용직을 구한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대졸자는 정규직을 기다리며 취업을 회피한다. 그러나 4년제 대학에 가지 못한 이들은 일용직과 임시직의 길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이들의 취업률이 대졸자보다 다소 높은 이유다. 관련 보고서에서 한국노동연구원은 “이들의 일용직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하면서 “청년실업에 대한 효과적인 대책은 취업을 촉진하는 게 아니라, 적합한 일자리를 찾아 잘 정착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히치하이커’의 끝없는 방랑에 대한 처방이다.
‘무업자’ 가운데 고졸 59.6%
취업을 삼킨 학력의 벽
한국노동연구원은 2008년 보고서에서 “청년실업보다는 청년 취약계층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국·일본 등은 이미 청년실업 문제의 초점을 바꾸고 있다. 이들 나라는 ‘무업자’(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관련 통계를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무업자는 취업의 의지와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학력이 문제일 수도 있고, 끝없는 불안정 노동에서 스스로 이탈한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주요 선진국에선 청년 무업자를 중심으로 실업 대책을 세운다.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은 2004년 노동 통계를 바탕 삼아 국내 청년 무업자의 연령별·학력별 분포를 제시했다. 연령별로는 20~24살이 44.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 연령대는 고등학교 및 2년제 대학 졸업자가 취업에 나서는 시기다. 4년제 대학 진학에 실패한 사람들이 단기간의 불안정 노동에 이어 청년 무업자로 전락하고 있음을 웅변하는 수치다. 4년제 대학 졸업자가 주를 이루는 25~29살이 청년 무업자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8.1%에 머물렀다.
학력별로 보면 그 차이가 더욱 뚜렷해진다. 2004년 전체 청년 무업자 가운데 중졸 이하 학력자는 7만6천 명(9.4%), 고등학교 졸업자는 48만1천 명(59.6%), 2년제 대학 졸업자는 10만2천 명(12.6%)에 이르렀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이들이 한국 청년 무업자의 92%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다. 80%가 넘는 대학 진학률이 세계적 수준이라고 자찬하는 이면에는 ‘학력의 벽’을 넘지 못한 청년 비정규직, 청년 무업자들이 있다.
빈곤은 뫼비우스 띠처럼 (한겨레21 2009.12.18 제790호, 안수찬 기자)
[노동OTL 제4부 서울 A대형마트] ② 빈곤 가족의 탄생
‘가난한 집안·낮은 학력·고된 아르바이트 경험’ 공통점 가진 마트의 젊은이들…
그들의 소박한 꿈에도 햇빛이 들까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기초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들에겐 돈이 필요하다. A마트에서 보낸 한 달 동안, 나는 수많은 ‘경수들’과 ‘영희들’을 만났다. 경수들과 영희들은 이른바 ‘결손 가정’에서 자랐다. 부모가 이혼했거나, 일찍 사망했다. 비정규직이란 말이 생겨나기 전부터 그들의 부모는 비정규직이었다. 부모의 이혼과 사망은 가난과 무관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성인이 되어 그들은 아르바이트와 다름없는 일자리를 구했다.
빈곤을 쳇바퀴 도는 ‘뫼비우스의 띠’는 영철의 가족에서 그치지 않는다. 오직 한 달 동안 A마트에서 지냈을 뿐인데도 나는 그런 이야기를 끝없이 들었다. 끝없이 여기에 적을 수 있다. 뫼비우스의 띠 위에 서면 오직 한 가지 법칙만 통한다. 미래는 과거에 의해 무력화된다.
철수의 휴대전화는 모토롤라가 내놓은 최신형이다. 매달 휴대전화 요금과 함께 단말기 값을 분할해 치르지만, 단말기 값만 50만원이 넘는다. 영호는 한 달에 6만원을 내고 피트니스 클럽에 다닌다. 영희는 한 달 휴대전화 요금만 10만원을 낸다. 이들은 100여만원을 벌면서 수십만원을 쓴다. 나는 그들에게 낭비벽이 있다고 비난할 수 없었다. 한 달에 수십만원씩 10년 동안 저축한들 A마트 주변에서 전셋집도 구할 수 없다. 철수가 땀 흘린 돈으로 구입한 금빛 휴대전화는 부동산 시세차익을 거둔 회장님의 금빛 휴대전화와 같다. 오직 소비할 때, 마트 노동자는 세상의 뭇사람들과 평등해진다.
멈춰선 무빙워크 (한겨레21 2009.12.25 제791호, 안수찬 기자)
[노동OTL 제4부 서울 A대형마트] ③ 친구들의 엇갈린 행로
히치하이커의 친구들은 히치하이커, 그들이 올라타는 차는 언제나 비슷한 차…
별의 행로는 일찍 정해져버리네
영철(가명)은 8년째, 철수는 5년째, 경수(가명)는 2년째 A마트에서 일하고 있다. 115만~140만원 정도를 번다. 왜 다른 직업을 찾지 않을까? “공장보다 마트가 훨씬 나아요.” 영철은 봉제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다. 하루 12시간씩 일했다. 마트에서 일하는 청년 노동자들에게 마트의 비교 대상은 ‘공장’밖에 없었다.
새 직업이 어렵다면 새 마트라도 찾아 옮기는 건 어떨까? “길들여진 거죠. 어차피 평생 일할 것도 아니고.” 철수가 흐흐 웃으며 말했다. 마트에서 만난 누구도 제 처지를 ‘직업’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다. 미지의 규칙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 그들에겐 있었다. 용기가 부족한 것이 그들의 탓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느 면에서 그들은 마트를 좋아했다. 공장보다 깨끗하고, 공장보다 자유로운 마트를 좋아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잊었다.
고용주에 대한 불만도 까맣게 잊었다. “지금 사장이 마음에 든단 말이에요.” “우리 사장하고는 말이 통하거든요.” 비정규직으로 자신을 고용한 용역업체 사장을 ‘인간적’으로 믿는다고 그들은 종종 말했다. 근로계약서를 썼는지, 무슨 내용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오직 사장의 ‘말’을 기억했다. 그들은 제도를 신뢰하지 않았다.
정치가 보호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그들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언제 무슨 선거가 있든지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일하느라 투표도 못한단 말이에요.” 내년 지방선거 이야기를 꺼냈더니 영희가 잘라 말했다. 정치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가장 강력한 통로라고 나는 말해주지 못했다. 어렵게 노동조합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다 좋은데 민주노총은 꺼림칙하다고 다들 말하던데요.” 영철이 말했다. 당장의 월급을 주는 사장에게 그들은 더 강하게 끌렸다. 정부, 정당, 언론, 노조가 힘이 되어준 기억이 그들에겐 없었다. 차라리 장차 뒤를 봐줄지도 모를 대학원 졸업생과 친해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제 꿈은요.” 집이 있고, 차가 있고, 통장에 1천만원이 들어 있고, 빵집을 하면서 한 달에 200만원을 버는 것이다. “월 200이면 행복하겠어요.” 그들의 행복은 상류 계층과는 상관이 없었다. 나라가 돌아가는 사정에도 별로 영향을 받지 않았다. 적어도 그들의 상상 속에서 행복은 직선이었다. 돈을 모아 가게를 내어 또 돈을 버는 것이다. 월 200만원이면 행복한 그들이 증오와 분노를 품지 않아 참 다행인 사람들이 한국에는 많다. 그들이 태어났을 때, 우주는 반짝이는 별로 가득했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그들에겐 선택할 것이 많지 않았다. 별의 운행 궤도가 결정돼버렸다. 다르게 태어나 엇갈려 자랐지만, 지금 그들은 서로 닮아 있다.
망치들의 언어로 (한겨레21 2009.12.25 제791호, 안수찬 기자)
[노동OTL 제4부 서울 A대형마트] 시를 쓰던 고교시절 이후 일터로 뛰어든 친구 ‘망치’에게…
그곳에서 나는 수많은 너의 스무 살을 보았어
네가 읽은 책을 읽고 네가 쓴 시를 베껴 썼는데, 우리의 언어가 왜 이렇게 달라졌는지, 어리석은 나는 여전히 이해 못하고 있어. 그래서 취재를 핑계 삼아 네 곁에서 함께 일하고 싶었어. 지난 세월을, 우리가 이해했다 믿었던, 넘어서려 했던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었어. 고작 한 달의 경험으로 그걸 대체할 수는 없었어. 그렇지만 나는 수많은 ‘망치’를 봤어. 수많은 네 스무 살을 봤어. 세상 물정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 나는 너한테 별로 좋은 친구가 되지 못했어. 별 힘이 되지 못했지. 이제라도 그걸 만회하고 싶었는데, 나의 지혜와 노력은 여전히 부족해. 그래서 철수와 영희에게, 영철과 경수에게 진심을 털어놓는 편지를 쓰지 못하겠어. 해법은 보이지 않고, 문제만 무수히 튀어나오는 현실이 너무 벅차구나. 그 문제들은 기다렸다는 듯 내 경험과 상식을 흔들고 비웃고 무너뜨렸어.
그래도 조심스럽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어. 친구야. 이제야 나는 너와 대화하는 방법을 알 것 같아. 네 말을, 네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우정을 다시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망치들’의 언어로, 입장으로, 경험으로, 관점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 저들이 쳐올린 장벽을 망치로 두들기면서 우리 사회의 연대를 더 높이 더 굳건히 쌓아올릴 수 있을 것만 같아.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한겨레21 2009.12.25 제791호, 이수정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설 민주노무법인 공인노무사)
[노동OTL 제4부 서울 A대형마트] 인턴제 허술함 드러난 가운데 내년 청년 고용 예산은 삭감…
청년실업 반은 고졸 이하, 완전히 새 판을 짜야
‘학력’이라는 스펙조차 애당초 없는 이들은 노동 빈곤의 굴레를 벗어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은 이제 없다. 학력이라는 커다란 퍼즐 조각 하나를 쥐고 있다 해도 학점과 영어, 자격증, 외모 관리와 성형에 이르기까지 온갖 스펙을 관리하며 퍼즐을 완성하지 않는 한 정규직 취업은 언감생심이다.
정부가 마련한 청년고용 대책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청년인턴이었다. 그 실효성에 대해 우려하던 바가 이미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런데 내년에도 중앙정부와 지자체에서 1만3천여 명의 행정인턴을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얼마 전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노동부 장관이 “청년실업은 대책이 없다”고 고백까지 한 직후였다. 게다가 내년 국가예산안을 살펴보면 엉성한 대책이나마 대부분 관련 예산이 삭감됐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보면, 정부가 주력하겠다는 ‘청년층 뉴스타트 프로젝트’는 45.5% 삭감, ‘중소기업 청년인턴제’는 20% 삭감, ‘취업장려수당’은 65%를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 널뛰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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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조차 몰랐던 현실에 놀랐다” (한겨레21 2010.01.08 제793호, 정리 유재영·최고라 17기 독자편집위원)
[노동OTL] 에필로그 - 독자 대표와 ‘노동 OTL’ 취재기자들의 방담…
“고된 노동·단단한 계층 장벽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사는 건 아닐까”
전종휘: 그동안 우리 언론은 누군가의 말을 사실인 것으로 믿고 그에 근거해 사실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만 기사를 써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같이 땀 냄새를 맡고, 그들의 말을 듣고, 때론 협업하면서 오감을 이용해 취재했다. 노동 현장에 기자가 뛰어듦으로써, ‘인용 전달’을 넘어 좀더 객관적으로 기사를 쓸 수 있었다. 획기적 방식을 시도했다는 데 의미를 둔다면 좋겠다. 그것이 이번 4부작을 읽는 온당한 방식이 될 듯하다. ‘심층 탐사보도 농사’의 첫해로 봐도 좋고.
안수찬: 한 달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라면 옳다. 더 오랫동안 취재해야 한다. 다만 현재 한국 언론의 현실에서는 한 달도 어려웠다. 서민들의 언어는 선정적이고 단말마적이다. 그러나 그 언어에 진실이 담긴 경우가 있다. 우리가 쓴 기사에 서민의 날것 그대로의 언어가 담겼거나, 기자의 감정이 지나치게 개입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출입처에 기대는 관급 기사의 선정성이 판치는 상황을 생각해야 한다. 서민 이야기의 선정성이 관청 보도자료의 선정성보다 낫다.
안수찬: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관점·경험·감성에 충실하려 했는데, 막상 그 세계에는 정치가 없었다. 정치가 없는 빈곤 노동의 현장이 사실의 총체에 가장 근접하는 이야기라고 봤다. 다만 노동자들을 투표소로 끌어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이들, 예컨대 민주당·진보정당 심지어 우리 자신을 향해 ‘이런 식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한테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묻고 싶었다. 그것이 우리가 생각한 ‘노동 OTL’의 정치성이었다.
임지선: 바쁘게 만들면 정치에 무관심해진다고 하지 않나. 이른바 ‘스펙’의 기준을 강화해 대학생들이 바빠지면서 정치에 무관심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식당 아줌마는 투표날에 일한다. 오히려 공휴일이라 식당일이 더 바쁘다.
전종휘: 일하면서 느낀 건,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인 노동자의 진입장벽이 되는 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이 일하는 곳에는 한국인 노동자가 들어오지 않는다. 노동의 환경·조건을 따져보고 한국 사람들이 안 오기 때문에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것이지, 그들로 인해 한국인 노동자가 진입하지 못한다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저임금 노동을 충당하는 이들은 그 사회에서 가장 약자 계층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가 그런 수요를 감당하고 있다.
임지선: 마트만 빼고, 이주노동 문제는 모든 일터와 맞닿아 있었다. 내 경우에도 식당 취업을 위해 전화를 걸면 제일 먼저 중국 사람이냐고 물어보더라. 이주노동은 어느 한곳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이주노동자와 한국인 노동자를 구분해보기 전에 인간이 이런 식의 노동을 하면서 저임금에 허덕이며 살아도 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안수찬: 기사에 등장하는 노동자들을 보고 ‘이렇게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 생각을 오래 품다 보면, 막상 그렇게 살게 되었을 때 그 부당함을 절감하고 행동하게 될 것이다. 대안을 보고 싶다는 독자도 있었는데, 굳이 변명하자면, 교육·빈곤 대물림·일자리·실업복지·주택·육아·의료·노조 등을 한 두름에 꿰뚫을 수 있는 간단하고 강력한 대안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문제를 단순화해 풀어나가는 건 오히려 무책임하다는 생각이다.
임지선: ‘노동 OTL’을 읽은 독자들이 스스로에게도 대안을 한번 물었으면 한다. 사람이 사람을 부리고 노동시키는 현실, 일을 하면 할수록 가난해지는 계층의 벽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가. 나 역시 이번 기획에 참여하며 많이 반성했다. 문제의 해결은 노동의 ‘인간성’을 찾는 데서 시작되리라 믿는다.
“뒤통수를 빵 때리는 분노가…” (한겨레21 2010.01.08 제793호, 임인택 기자)
[노동OTL] 에필로그 - “내가 바로 당사자” 독자 반응 폭발적…
고용주·식당 주인들 사과, ‘국회 버전 노동 OTL’, 다큐 제작 등 잇따라
툴카스 2010/01/09 19:56
http://www.hanitv.com/regate.php?movie_idx=850
86,98,09. 공장의 시계는 멈추었는가? 다큐영상도 보시면 좋겠어요.
툴카스 2010/01/09 19:58
한계레 21 노동 otl 관련 영상으로 함께 올라와 있네요.
새벽길 2010/01/10 06:01
한겨레21의 위 기획연재 기사 에필로그에 보면 툴카스님이 언급한 라넷의 동영상이 올라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언급한다는 것이 빼먹었네요.
사실 처음에 그리고 중간에 97년경의 현대계열사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2009년도에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주려는 건가 생각을 했는데, 2009년도의 인터뷰 대상은 현대계열사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이더군요. 10년 전의 정규직 노동자들의 근로조건과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의 근로조건이 그리 다르지 않다고 말해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조금 시사점이 약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라넷 분들 중에 개인적으로 아는 이들도 있고, 임인애 감독도 인사를 나눈 적이 있으며, 과거 밥꽃양을 보고 느낀 바가 많이 있었기에 이번 다큐영상도 혹시 그에 필적하는 뭔가가 있지 않나 기대했었거든요. 이번 다큐영상이 지금의 비정규노동 현실을 파헤치는 본격적인 영화의 초벌구이 정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툴카스 2010/01/10 10:17
제가 보기에는 98년의 노동자들이 기억하는 86년의 상황과
2009년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현실이 비슷하다는 점 자체가
시사점으로 보입니다. 노동현장의 인적 구성이 비정규직으로 바뀐 현실 그 자체를 드러내는 은은한 관점이 보였고요, 한진의 파워그라인더 비정규직이 하는 말,
자의반 타의반 노예가 되고 있다는 말은 평범한
넋두리 같지만 직장 생활 하는 사람 모두의 상황을
은근히 아프게 건드리는 것 같았습니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말로
10년 단위로 노동현실을 짚어주는 맛도 묘하더라구요.
새벽길님, 이 블로거의 자료들을 가끔씩 잘보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오늘 쪽글로도 대화를 하니 반가웠습니다.^^ 또 들러겠습니다.
진철 2010/01/11 00:47
누군가가 이처럼 기사 목록을 정리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기사 목록 제 블로그로 가져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