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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에서의 죽음의 뜀박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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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를 하다가 이렇게 긴장하면서 길게 뛰어본 것도 처음이다. 평택 쌍용차공장이 있는 삼거리에서 법원사거리까지가 5km라고 하는데, 거의 2km를 계속 뛰지 않았나 싶다.
 
회의 끝나고 연구소로 가는 길에 운수노조의 박모 동지와 함께 가게 되었는데, 방향을 바꾸어서 나도 평택에 가기로 했다. 차로 갈 수 있다는 점이 이러한 결심을 하게 한 배경이다. 평택에 가게 된 것은 대추리 이후 처음이다. 하긴 쌍차 사태와 관련하여 꼭 가서 연대하려고 했는데, 이날 아니면 공권력이 투입될 듯하여 기회가 없을 것 같았고, 그래서 쪽수를 채우는 심정으로 간 것이다.
  
교통체증 때문에 집회시간에 맞출 수는 없었고, 도착해서 보니 4시가 다되었다. 이미 평택역 앞 전국노동자대회는 종반이었고... 하지만 어차피 집회참여보다는 행진에 더 염두를 두었기에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집회 때는 평택역 광장을 꽉 채우기는 했지만, 그리 많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행진하면서 보니 거의 배로 늘어나서 만여명이 되는 듯 싶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연대의 대오들, 그들이 공장에 갇혀 있는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어 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쌍용차 공장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10km라고 하니 엄청난 거리다. 해남읍에서 대흥사까지가 12km였는데... 그 거리를 걸어서 간신히 공장 앞 삼거리 근처에까지 진출했는데, 전경들로 가득차있다. 숲속에까지 말이다. 평소보다 증원을 했다고 한다. 도장공장에서 붉은 깃발을 흔드는 쌍차 조합원들이 보였다. 물도, 음식물도, 의약품도 제공되지 않는데,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건지... 괜시리 눈물이 나더라. 물론 이를 보기 위해 앞쪽으로 일부러 나간 것인데, 25일에 쌍차 도장공장 건물을 본 이들은 아마 민주노총 선봉대들을 비롯한 대오의 선두 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대치하고 있던 것도 잠깐. 선봉대와 본대가 거리를 두고 진격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본대를 몇 걸음 뒤로 가게 했는데, 얼마후 경찰과 충돌하게 되고, 그 이후 계속 밀렸다. 살수차로 최루액을 섞은 물을 살수하면서 경찰이 다가오는데, 물러서지 않을 재주가 없었다. 관련기사를 보니 짱돌을 던지는 모습도 나오긴 하더만, 본대에 있던 사람들에게 그런 모습까지는 보이지 않고, 시원한 물대포가 진군하는 모습만이 잡혔다. 그러니 쫄지 않을 수 있나. 
 
게다가 하늘에서는 두 대의 경찰헬기가 떠서 도장공장과 행진대오를 감시하더니 결국에는 하늘에서 색소가 든 봉지를 떨어뜨렸다. 아마도 행진대오를 향해서 거의 50여개를 떨어뜨렸을 것이다. 거기에 최류액이 들었는지 여부는 확실지 않지만, 그것을 피하느라 집회대오는 계속 우왕좌왕했고, 짭새들은 그 사이를 노려서 치고 들어왔다.
 
법원사거리까지 도망가는 길에 옆으로 빠지는 길은 거의 없었다. 서울에서 가투를 하다가 경찰에 쫒기면 길가는 행인 행세를 할 수도 있고, 옆길로 빠질 수도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짜알이 없다. 살수차가 계속해서 틈을 주지 않고 밀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헉헉거리며 2km가량을 계속 뛰었다. 그 중 대열에서 낙오된 이들도 상당했다. 하지만 선봉대를 비롯하여 남성들은 계속 뛸 수밖에 없었다. 연행될 경우 짭새들에게 폭력세례를 받으면서 오히려 폭력 등의 혐의로 구속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평택역에 있을 때보다 훨씬 늘어나서 만여명에 가까운 인원이 된 집회대오는 그렇게 힘없이 물러났다. 물론 선봉대는 나름대로 저항을 했겠지만, 그것으로는 역부족이었으리라. 그렇게 뛰어서 물러나면서 들었던 죽봉을 내버지고 뛰는 이들이 10여명 보았다. 하긴 그 무거운 것을 계속 들고 2km를 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민주노총은 법원사거리에서 싸울 것을 준비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쌍차 공장으로 진입하려 할 때에도 법원사거리에서 한동안 실강이를 벌이다가 나아간 것인데, 그 만큼 준비가 되어 있진 않았기에 경찰이 밀고 오는 순간 속수무책이었던 것 같다. 후퇴를 하면서 자위를 하자고 하여 보도블럭을 깨고 죽봉을 든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일부만 그랬을 뿐이고, 대부분은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어하며 함께 하지 않았다. 아마 짱돌과 죽봉을 든 동지들은 약간 아쉬움을 느꼈으리라.
 
나중에 낙오된 후에 천천히 걸어왔던 이들의 말을 들어보니 집회 대오 속에 사복형사들이 상당히 있었다고 한다. 5-6명이서 걸어가는 이들이 있어 이들도 낙오된 조합원인가 싶었는데, 대화하는 걸 보니 사복이었다는 것이다. 하긴 복장이 비슷한데 어떻게 구별할 수 있었겠는가. 아마도 이들이 중심이 되어 근처 아파트나 논길로 빠진 이들을 색출해낸 모양이다. 당연히 그렇게 앞장서지 않았던 여성조합원등은 연행하지 않았고...
  
암튼 나는 몇번이고 그만 뛰고 주저앉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은 낙오되지 않고 대오와 함께 후퇴를 했고, 그것은 정말 죽음의 뜀박질이었다. 예정에 없던 평택행이었기 때문에 구두를 신고 가방까지 들고 뜀박질하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가관이다. 그렇게 시위 도중 짭새에 쫒기면서 공포감에 젖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물론 이는 후미에 있던 선봉대 동지들이 압도적인 물리력을 가진 짭새를 저지할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던 이유였겠지만, 중과부적인 상황에서 그렇게 무력하게 엄청나게 뛰면서 물러난 경험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법원사거리까지 이동하는 동안 계속 머리 위에서는 경찰헬기가 떠돌면서 색소가 든 봉지를 떨어뜨리면서 겁을 준다. 아마도 길거리에 있는 집회대오에 대해 그렇게 헬기에서 뭔가 던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결국 법원사거리에서 대오를 정비하여 이제는 제대로 붙어보자 하면서 짭새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그들은 거기까지 나와 해산시킬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쇠파이프까지 등장했지만, 시간만 흘러갔고, 법원사거리에 모여있던 3-4000되는 인원들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9시경 집회지도부는 법원사거리에서 집회마무리를 하고 평택역으로 다시 이동하면서 평택경찰서를 타격하자는 전술을 짠 것 같았는데, 집회 사회를 보았던 동지가 지도부 지침을 따르지 않고 대오가 진격하여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을 탓하자, 이에 대해 여기저기서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나왔고, 결국 신승철 사무총장이 나와 사과를 하면서 자신이 선두에 서서 진격하겠다고 하여 다시 공장 쪽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방송차도 다 빠지고 쇠파이프도 다시 회수한 상황에서 진격하여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그건 대중의 판단에 반발한 지도부의 객기였다. 냉철하고 현명한 지도부라면 조합원들을 잘 설득하여 최선의 선택을 했어야 하는데, 그러게 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이해는 한다. 지금 도장공장 안에 있는 이들은 물도 마시지 못하고 있는데, 물도 전달하지 못하고 이대로 물러나야 되겠는가, 29일에 다시 모이자고 했지만, 오늘처럼 모일 수 있는지, 모이기 전에 쌍차에 공권력이 진입하지 않을지 하는 걱정을 누구나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대오를 사지에 몰아넣는 짓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경찰이 밤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집회대오를 칠 생각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충돌을 했다면 엄청난 연행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뒤늦게 별 성과 없이 대오는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돌아오는 길은 정말 힘 빠지더라. 안타깝기도 하고...
하루 온종일 그렇게 평택에 있었는데,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뜀박질을 했다는 것 이외에 남는 게 없다. 그렇더라도 평택에 가지 않았던 것이 더 나았을까 하면 그것은 아니다.
 
민중의 소리 기자가 지적한 것처럼, 민주노총은 집회의 상황을 참가자들에게 설명하여 잘 설득하고 대회가 원만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하든지, 아니면 물과 음식을 공장에 반드시 넣어줄 수 있는 투쟁을 벌였어야 했다. 물론 이렇게 민주노총의 무능함을 비판하지만, 다른 수를 내기도 애매했다고 본다. 아쉽기는 하지만...
 
그날 총 20km이상을 걸은 것 같다. 한달 운동할 것을 다 했더니 몸상태가 영... ㅜㅜ 그래도 쌍차 도장공장 안에 있는 이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도 감사해야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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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사태 해결 촉구" 전국노동자·범국민대회 개최 (민중의 소리, 배혜정 이준형 기자, 2009-07-26 00:30:27)
"집단살인 당장 멈춰라".. 경찰, '최루액' 쏘며 강제진압
 
[3신 대체:오후 10시 50분] 쌍용차 공장 향하던 집회대오, 10시께 해산
[2신추가:오후 7시 50분] 경찰, 하늘에선 '최루액' 투척.. 땅에선 마구잡이 연행
[1신:오후 5시20분] "쌍용차 사태 해결 촉구" 전국노동자·범국민대회 개최
 
쌍용, 협상결렬 … 경찰, 집회 무력해산 (레디앙, 2009년 07월 26일 (일) 01:26:09 이은영 기자)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범국민대회 "독재 분쇄"… 30명 연행 
 
'쌍용차사태 해결촉구' 민주노총, 경찰과 충돌 (참세상, 정문교 기자, 2009년07월26일 3시10분)
쌍용차 노사교섭 사측거부로 무산
 
민주노총 전략도 없고, 전술도 없고.. (민중의 소리, 배혜정 기자, 2009-07-27 17:47:00)
1만여명 집결한 25일 전국노동자대회, 지도부는 '우왕좌왕'만
 
민주노총이 이날 집회에서 시종일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데는 쌍용자동차 사측이 "민주노총이 폭력을 행사한다"는 이유 등을 들어 대화를 거부하고 나서 것에 부담을 느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높다. 실제 이날 오전 노사정 간담회가 무산되면서 금속노조 정갑득 위원장은 임성규 위원장에게 평화적인 집회가 될 수 있도록 고려해 달라는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민주노총은 이같은 상황을 참가자들에게 설명한 뒤 대회가 평화적 기조로 치러질 수 있도록 설득을 하든가, 아니면 민심을 반영해 '어떤 과정을 치르더라도' 물과 음식을 공장에 넣어주는 투쟁을 벌였어야 했다. 쌍용자동차지부 핵심관계자는 "민주노총이 사측의 언론플레이에 말리는 것 같다"며 "민주노총이 투쟁으로 이 상황을 돌파해야 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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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요구한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2009.07.25 쌍용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건강과 안전을 생각하는 의사 일동)
[의사 83인 연명 기고] "쌍용차 공장에 의료진 출입을 보장하라"
 
소위 '쌍용차 사태'가 벌어진 이래, 벌써 네 명이 세상을 떠났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 혹은 노동자의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얼마나 대단한 것이기에 이렇듯 목숨까지 걸어야하는지 그저 가슴이 먹먹해질 뿐이다. 이제 와서 새삼스레 파업 투쟁의 정당성이니, 먹튀 자본의 부도덕성이니 따지고 싶지 않다. 강 건너 불구경을 지나쳐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고 있는 정부의 무책임함도 따지고 싶지 않다.
 
다만, 우리는 인간에 대한 예의, 그것도 최소한의 예의를 요구하고자 한다. 장사에도 상도덕이 있다. 야간에 빚 독촉을 하고 채무자의 가족을 협박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심지어 전쟁터에도 지켜져야 할 룰은 있다. 적군이라도 환자들에게는 의료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하며, 의료물자의 수송은 보호받아야 한다.
 
쌍용자동차 사 측은 어제까지 함께 일하던 노동자를 파업 파괴조로 동원하여 노동자들의 가슴을 찢어놓고, '수면가스' 살포 운운하며 진압 작전을 모의해 왔다. 식수와 가스를 차단하는 것도 모자라 확성기로 음악을 틀어대며 잠을 못 자게 하는 주도면밀함까지 보여주었다. 그리고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며 파업 참가 노동자들의 연로한 부모와 가족들을 협박했다.
 
심지어 환자들을 위한 약품 반입을 금지하고, 환자를 만나러 가겠다는 의료진의 출입을 차단하기까지 했다. 후송이 필요한 환자들마저, 체포 협박 때문에 현장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측의 행태에, 우리는 의사이기에 앞서, 인간으로서 분노를 감출 수 없다.
 
지난주, 다섯 살도 채 안 된 두 아이를 남겨두고 한 노조간부의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가 평소에 우울증을 앓았다는 사측의 설명이 사실이라 해도, 현재의 '사태'가 그녀 죽음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게다가 우울증을 앓는 환자에게 '협박'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더더군다나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사측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경찰의 의료진 출입 봉쇄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하물며 가운을 입은 현장 진료 의사를 연행하는 모습에서 사실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에도 이런 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정체불명의 '비닐 봉투 최루액'을 맞은 노동자들의 피부에 수포가 생기고 진물이 흘러내리는 사진이며, 미국 영화에서나 보던 테이저 건의 탄환이 노동자 얼굴에 박힌 사진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런 모습을 도대체 어떤 의학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있겠나? 이제 경찰은 '용산'에서 특공대를 투입할 때 사용했던 진압용 컨테이너를 배치했다고 한다. 어디까지 갈 셈인가? 용산 참사만으로는 진정 부족하단 말인가?
 
우리는 의사로서 쌍용자동차 사측에 '최소한'의 것들을 요구한다.
첫째, 사측은 노동자 가족들을 회유ㆍ협박함으로써 극심한 스트레스와 가족 갈등을 유발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죽음은 한 명으로 충분하다.
둘째, 식수 공급을 재개하고 음식물 반입을 허용해야 한다. 이 무더위에 물을 공급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살인 행위다.
셋째, 의료진의 자유로운 출입과 의약품 반입, 안전한 환자 후송을 허용해야 한다.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을 가진 이들에게 무더위와 스트레스, 수면박탈은 견디기 어려운 조건이다. 또한 각종 외상을 입은 이들에 대한 위생적 처치 또한 매우 시급하다. 이러한 세 가지 요구는 결코 커다란 정치적 결단도 아니고, 숭고한 인도주의적 희생도 아니다. 다만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또한 우리는 정부에도 '최소한'을 요구한다.
첫째, 무엇보다 강제 진압은 절대 안 된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도 꿈쩍 안했는데, 그깟 노동자들의 목숨이 뭐가 중요하냐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우리는 또 다른 용산 참사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
둘째, 최루액과 테이저 건 등 어떤 건강 위해를 가져올지 모르는 진압장비의 무차별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 파업과 시위 현장은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진압 장비의 임상 시험장이 결코 아니다.
 
마지막으로, 의사로서 우리는 쌍용차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부탁한다.
죽지 말고, 제발 살아서 싸워야 한다. 가족들과, 친구들과, 동료들과 함께 했던 소중한 순간들을 떠올려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건강하게 살아남아, 다시 일터에서 가정에서 그 행복했던 시간들을 함께 하길 바라는 수많은 이들의 연대의 마음을 당신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혹은 연구실에서 건강문제를 연구해왔던 우리 의사들은, 더 이상의 불필요한 죽음을 두고 볼 수 없다. 환자 한 사람의 건강을 되찾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평균 수명 1년을 늘리는 보건정책을 개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이렇듯 아까운 생명들을 줄줄이 떠나보내고 속수무책으로 다음 차례의 비극을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진심으로, 다시 한번, 사 측과 정부의 최소한의 예의를 요구한다!
 

 

[투고] 25일 평택 노동자대회에 참석한 한 활동가의 주장 (주간 현장노동자회 37호)
“한 것 없이 욕만 먹은 집회”
 
25일 평택역 노동자대회에서 총연맹 위원장은 대회사를 통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심정 같아서는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들고 싶다. 그러나 오늘 그렇게 해서는 못 이긴다. 돌발행위 폭력행위는 하지 말고 위원장의 통제에 따라 달라.” 그러자 장내는 술렁거렸습니다. 무언가 극한 투쟁이라도 벌여야 된다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 아니냐는 아우성이었죠.
 
그리고 행진으로 쌍용차로 향하는 도중 맨앞 지도부는 어느 시점에서인가 멈춥니다. 투쟁을 총괄 지휘하는 총연맹 간부 누군가가 핸드마이크로 이렇게 외칩니다. “민주노총 깃발은 앞으로 가지 않습니다. 여기 도로를 잡습니다. 산하연맹 깃발도 앞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자 “경찰이랑 짜고 여기서 해산하는 거 아니냐”는 말과 욕설 및 고함들이 쏟아지고 급기야 일부 참가자들은 지도부가 들고 있는 플랜카드마저 빼앗습니다. 몇몇 운동단체들이 총연맹 지도부를 넘어 앞으로 나아갔죠. 나중에 들어보니 당시 대오를 멈춘 것은 선봉대오를 갖추기 위해 시간을 벌려고 했던 계획된 전술이었다죠.
 
쌍용차 정문에서부터 법원사거리까지 경찰력에 밀려 퇴각합니다. 그 때 각 단위별 조직담당자회의가 진행되고 대오는 1시간 넘게 방치됩니다. 그 뒤 총연맹의 어느 간부가 핸드마이크를 잡고 회의결정사항을 알리러 나옵니다. “애초 전술이 계획되었으나 일부 조합원들이 지도부를 무시하고 앞으로 치고 나갔습니다. 우리는 조직입니다. 조직은 조직다워야 합니다.” 그러자 욕설과 고성이 난무합니다. 이에 그는 “조합원이 아닌 사람은 조용하십시오.”라고 공개적으로 말합니다. 물통까지 날라갔습니다. 결국 총연맹 사무총장이 대신 사과하고 “해산하지 않고 다시 진격 한다”고 밝히면서 사태는 수습됩니다.
 
집회를 하는 것이 소정의 목적(회사나 정부압박, 정문돌파, 생수공급)을 달성하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집회참가자들의 결의와 결속력을 높이는 성과를 노려야 합니다. 그래서 “아, 오늘 정말 힘차게 싸우고 돌아간다. 다음에는 더 싸워보자”는 이야기가 지방으로 내려가는 버스안에서 이야기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25일 전국노동자대회는 굳이 안 해도 될 말들 몇 가지 때문에 서로 오해하고 불신하고 갈등과 혼란이 표출된 집회였습니다. 온갖 비아냥과 험한 말들, 그리고 멱살잡이까지 나오는 모양새로 5km를 행진하면서 쌍용차 앞까지 진출했던 괴풍경을 봤습니다.
 
투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예상되는 우려지점을 논하거나, 투쟁이 끝나기도 전에 잘잘못을 따지며 성급하게 평가하려고 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25일, 몇 가지 차분하지 못한 투쟁지휘부의 말 실수 때문에 소정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커녕 내부의 결집력도 훼손시킨 하루가 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준비는 준비대로 한 것 같은데, 한 것은 없고 욕은 욕대로 먹는.
 
이것은 단지 실수일 뿐일까요, 아니면 누군가가 이야기하듯이 ‘신뢰 자체를 하기 힘든’ 근본적인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요? 어찌되었든, 이러한 질문이 증폭되는 순간, 지도부는 한순간에 아래로부터의 신뢰와 지도력을 잃어간다는 것을 ‘제발’ 가슴에 새겼으면 합니다. 29일 투쟁 때는 이런 일의 반복이 없기를 기대합니다.
 
25일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한 한 활동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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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7 23:38 2009/07/27 23:38

14 Comments (+add yours?)

  1. 마성은 2009/07/28 00:01

    고생하셨습니다.

     Reply  Address

  2. 처절한기타맨 2009/07/28 01:17

    허걱 10Km라고라? 전 4Km로 알고 있었는데...5일인가를 거기서 밤새우고 체력엥꼬상태에서 거기 왕복을 두어번하니...주거버릴뻔...막판에 가대위분들 이야기들으니 너무 속이 상해서...ㅠ.ㅠ;;

     Reply  Address

  3. 아스팔트 꽁지 2009/07/28 08:27

    죽음의 뜀박질 현장에 계셨군요..^^ 민주노총 사무총장이 해명하는 모습을 찍고 있었는데
    쌍용차 조합원의 부인이 사무총장에게 다가가서 거세게 항의를 했지요. 근데 민주노총 사무총국 사람으로 보이는 여성이 나와서 지도부가 말씀하고 계시는데 어쩌고 하면서 제지를 하다가 두 사람이 싸움이 났는데, 사무총국 사람으로 보이는 여성이 갑자기 너 나와 하면서 끌고 나가려다가 안되니까 "쌍용차 가대위가 무슨 대통령이냐?"라고 큰소리를 치는 해프닝까지 있었죠. 더 웃긴건 그 장면까지 찍고 있는데 갑자기 카메라를 가로막고 좋지도 않은 장면을 왜 찍냐고 제지하면서 자신을 자동차라고만 밝힌 한 무례한 인간까지.. 완장 찬 인간이 한둘이 아니더군요.

     Reply  Address

    • 에밀리오 2009/07/28 09:42

      정말요? 지대로 안습인데요;;

       Address

    • 새벽길 2009/07/30 22:28

      마성은/ 별 말씀을...
      처절한기타맨/ 법원사거리에서 공장앞삼거리까지가 4km정도 될 듯... 정말 두어번 뛰어서 왕복하면 반죽었다고 봐야죠.
      아스팔트 꽁지/ 저도 법원사거리에서 9시경 가대위분과 민주노총 사람이 말다툼하는 걸 들었지요. 여기저기서 사과하라는 고함소리가 들리고요. 괜히 제가 쪽팔려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습니다.

       Address

  4. 에밀리오 2009/07/28 09:42

    아마 이 날이 늦잠자서 (응?) 못 간 날인거 같은데... 여러모로 안습이네요; 후배 중에 한 명은 그 날 쇠파이프 잡고 선봉대 뛰었다고 하던데... 흐음...

     Reply  Address

  5. 2009/07/28 12:39

    그날 저는 일찍 돌아가서 쌍용차 가대위가 대통령이냐고 말하는 현장을 전해듣기만했는데 이런 상황이었군요. 정말 화나네요. 가대위 동지들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는데 저런식으로 대할수 있다니 참 기가 막힙니다.

     Reply  Address

  6. 적린 2009/07/28 13:46

    아이고... 여러 모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ㅠ

     Reply  Address

  7. 스밀라 2009/07/28 22:12

    아이고... 저도 평택 삽니다. 시청 근처요. 헬기 뜨는 장소가 근처 종합운동장이라서 오후면 거의 아파트에 닿을듯이 낮게 나는 헬기를 봅니다. 오늘은 안 떳네요. 평택역에서 공장까지 행진하던 사람들 마구잡이로 구타하고 연행했다는 기사를 읽고나니, 이거 무서워서 그저 참가만도 못하겠구나 생각이 절로 듭디다. 이렇게 스스로 움츠리게 만들고 침묵하게 만들려고 그렇게 해고하고 구속하고 그러는 거겠지요.

     Reply  Address

    • 새벽길 2009/07/30 22:33

      에밀리오/ 그날은 쇠파이프를 든 사람은 있었지만, 사용한 사람은 없었던 듯. 개인적으로 물리력으로 저들과 맞서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다른 방식이 필요하지요.

      현/ 한번 밀린 다음에 절반 정도는 빠져나갔지요. 저도 여기서 끝인가 했는데, 그 뒤에 개운치 않은 사건이 있었던 거죠.

      적린/ 공장안에 있는 분들을 생각하니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더군요.

      스밀라/ 어제 그러니까 29일은 정말 헬기가 장난 아니더군요. 그렇게 저공비행하면서 사람들을 위협하는 건 처음봤어요. 그런 경험이 있으면 움츠려드니까 그런 걸 노린 것일 수도 있을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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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비밀방문자 2009/07/28 22:57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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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길 2009/07/30 22:35

      사측이 요청을 하니까 그렇지요. 건물보호요청 같은 거 하면 즉각 개입하지요. 물론 그렇게 개입하는 것이 국가의 본성이기도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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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EM 2009/07/29 01:10

    바깥에 나와있는게 가장 후회될 때가 바로 이럴 때인 것 같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새벽길님 포함한 그곳에 계셨던 모든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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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길 2009/07/30 22:38

      그런 집회 한번으로 끝나는 싸움이 아니잖아요. '아흔아홉번 패배할지라도 단한번 승리'한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지만, 질기게 싸워야죠. 평택에 있는 분들도, 용산에서 매일 미사하고 촛불집회를 하는 이들도, 다 수고하고 있는 거죠. 그게 헛되이 되진 않아야 할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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