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대환의 레디앙 인터뷰에 대한 코멘트
장태수 대표가 주대환과 나눈 인터뷰가 레디앙에 실렸다. 이전 레디앙 기고글에서 다 하지 못했던 말을 풀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진 회원이었던 장태수 대표는 과거 주대환과 함께 활동한 적이 있는 만큼 아마도 오해의 소지가 없이 주대환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정리한 듯 싶었다.
그가 쓴 글과 그 글과 관련된 글들에 대해 이러저러한 논평이 오고가고 논란이 되는 것 자체가 사실 그리 바라는 상황은 아니다. 커밍아웃을 통해, 일련의 논쟁을 통해 자신들의 세력을 확대하려는 계획에 말려드는 것 같기 때문이다. 레디앙과 진보신당 홈페이지를 통해서 일부가 논란을 벌이고 있지만, 이에 대해 좌파가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지금 이에 대한 토론에 임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괜시리 판을 키우고 싶지 않은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실제로 『한국 사회와 좌파의 재정립』이라는 책을 뉴레프트 기관지 첫 준비호라고 한 것에서 드러난 것처럼, 사민+복지 기획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사민주의연대와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그리고 장하준 패밀리 등이 모여 정치세력화를 도모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그들에 대해 본격적인 대응을 할 필요성은 없었다.
게다가 주대환이 시대정신에 발표했던 글은 이해하기 쉬운 글쓰기를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친 단순화와 도식화, 사실의 과장 및 왜곡에 입각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본격적인 대응을 하는 게 타당한지도 의문이었다. 그 자체가 그들의 프레임에 말려드는 것이다. 물론 주대환이 대한민국의 긍정성으로 내세우고 있는 토지개혁이나 보통선거권 등의 개념들이 바로 뉴라이트의 것이라는 점에서 이미 프레임전쟁에서 한 수 접고 들어가고 있는 주대환의 논리는 너무 앙상해보였다.
그렇지만 그 동안 나름대로 주대환의 과거 행보를 긍정적으로 보았던 입장에서 이번 일련의 글들에 대해 한 마디 하고 싶었는데, 이번 인터뷰에 대해 간단하게 코멘트해보기로 했다.
1. 주대환은 자신이 죽은 김철순이 아니고, 살아 있는 주대환이라고 하면서 "진리의 근원이 인간의 이성이라고 믿었던 30대 이상주의자와 진리의 근거가 경험이라고 믿는 50대 실용주의자의 차이"이며, "맑스-레닌주의자와 페이비안 사회주의에 깊이 공감하는 사람의 차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사람이란 과거의 평가를 다 가지고 가야 하는 것 아닌가.
그가 페이비안 사회주의에 깊이 공감하는 걸 보면 고세훈 교수가 쓴 『영국노동당사』나 번역한 『페이비언 사회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처럼 보인다. 페이비언 사회주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 언급하는 게 조심스럽지만, 지금은 갈수록 맛이 가고 있는 영국노동당에만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페이비언 사회주의에 대한 깊은 공감을 표명하는 것은 더 넓은 이념적 조류를 간과한, 또 하나의 독선은 아닌지 묻고 싶다.
2. 주대환은 '1992년에 ‘노동당’ 노선을, 그리고 1987년에 ‘독자 후보(정당) 노선’을 주장했던 책임'을 언급하면서 자유의 몸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 그러한 책임을 요구했던 이들이 얼마나 있었는지 의문이다. 주대환은 그 정도로 책임감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독자 정당 노선을 포기하겠다는 주대환의 결단에 박수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그 길이 사민주의의 길이라고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3. 뉴-레프트 운동은 한국 사회에서 이미 나름의 세력화도 하지 못한 채 구태의연한 이름이 되어 버렸다. 오히려 여전히 올드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꼴보수들이 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데 명분은 준다고나 할까.
더욱이 뉴-레프트라고 한다면 올드-레프트라는 실체가 존재해야 할 텐데, 그 실체 또한 명확하지 않다. 한국에 구태를 벗어야할 구좌파라고 할 만한 집단이 있던가. 더욱이 뉴-레프트 운동을 주창하면서 그것이 사회민주주의라고 하면 뉴-레프트에 대한 모독이라고 할 만하다. 적어도 서구식의 개념으로 뉴-레프트는 사민주의에 반발하여 나왔기 때문이다.
4. 한국사회에서 ‘운동권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 운동권이라는 용어에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가 섞여 있기 때문에 그 중에서 부정적인 함의를 털어내려는 것이 그 핵심일 텐데, 이 중에는 보수언론에서 고의로 실체가 없는 것을 만들어낸 것들도 있다. 소위 'PT독재'나 '폭력혁명론' 등이 그런 것일 게다. 그런데 주대환 등의 사민주의 세력들은 운동의 혁신을 이야기하면서 이를 자신들의 단골소재로 삼는다. 나는 그들이 ‘운동권 이데올로기’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그리고 그 중에서 혹시나 긍정적인 요소들까지 버린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운동권 물을 마신 것이 자랑은 아니지만, 도처에 자본주의의 모순이 널려있는 한국사회에서 비판의식, 저항의식(운동권 물을 이렇게도 포현할 수 있지 않을까)을 가졌다는 것이 죽은 개 취급을 당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
5. 주대환은 지난 10년 동안 정권에 참여했던 이들이 국정 운영에 참여한 경험은 소중하다고 파악한다. 그리고 "구여권이 이제는 야당이 되었으며, 야당 중에서도 아웃사이더가 된 분들이 많다"고 하면서 자유주의 좌파까지도 정치 연합의 대상으로 할 것을 주장한다. 하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관료들에 의해 휘둘렸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관료들의 국정 운영 참여 경험을 소중히 여긴 결과 기술관료경영주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물론 관료들의 국정 운영 참여 경험은 더 풍부하고 다양한 정보를 다루는 것에 기인한 것이지 전문성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하여간 영혼이 없는 관료가 아니라 견고한 영혼이 있는 자유주의 좌파들과 사안별 연대(이는 엔엘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몰라도 한 당을 하자는 주장은 그 안에 무슨 철학이나 근거가 있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아마 구여당 세력은 갈수록 여당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 변화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며, 그들이 다시 집권할 경우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재판이 될 것임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러하기에 그들과 선을 그으면서 좌파의 정체성과 정치노선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그들이 좌파의 정책에 동의하는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6. 주대환은 자신이 정치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언론 매체를 가릴 수 없다고 얘기한다. 여기에서 그의 정치관이 잘 드러난다. 대의민주주의를 긍정하는 한 어쩔 수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정치하는 사람과 정치하지 않는 사람이 구별될 수 있는가. 우리의 삶 자체가 정치가 아니던가. 단지 여의도만이 정치공간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주대환식 정치는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함의를 드러내고 있다. 소위 정권 획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식의 관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 주대환은 '지식인들이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하고 <조선일보>에 기고와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을 존경한다'고 하면서도 '안티조선 운동'의 함의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조선일보>와 재향군인회, 자유총연맹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고 있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조선일보는 평범한 매체가 아니다. 진보정치를 지향하는 이라면 각종 선거에서 당장은 도움은 되지 않을지라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나 기고 등을 하지 않아야 한다. <조선일보>가 진보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이나 이데올로기적 위치를 멀리 보고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7. "지구당 폐지 반대, 투명 회계, 당직공직 겸직금지, 일심회 사건, 분당 사태 등 중요한 순간마다 운동권 PD의 사고방식, 목소리만 들리고 보이는데, 그대들의 ‘운동권을 졸업했다’는 생각은 자기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주대환의 이러한 발언은 주대환 및 사민넷 인사들 자신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자신들만이 옳다는 도그마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8. 내가 현재 꿈꾸는 진보정당은 집권가능한 정당은 아니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정당이라고 생각하고, 이 땅에 녹색이 상징으로만 남지 않도록 하는, 유의미한 정치세력이 되어 정치판에 변수로서 작용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 점에서 사민주의 세력의 집권을 도모하는 주대환 등과는 구별된다. 계속 그렇게 집권을 꿈꾸다 보니 자유주의 세력과의 연합마저 용인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집권을 통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많이 있겠지만, 그 한계를 우리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이미 본 바 있다. 우리가 집권하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설사 좌파가 집권에 참여한다 하더라도 정치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변화가 수반될 때 정치에서의 변화도 유의미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을 만드는 것이다. 좌파의 재구성이 아니라 제대로 성립되지 않은 좌파의 구성 자체가 필요하다.
9. 주대환은 지난 대선 시기 민주노동당 후보 경선에서 왜 오랜 동지 노회찬을 지지하지 않고 권영길을 지지한 이유로 민주노총의 간부들의 뜻이 권영길 후보에게 있었다는 점을 든다. 그런데 과연 권영길이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이라는 것이 그렇게 민주노총 간부들에게 어필되었을까. 민주노총 내의 다수인 국민파가 민주노총의 조직적 지지를 유도하였지만, 그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고, 많은 이들이 금속노조 사무처장을 지낸 심상정을 지지하기도 했다. 더욱이 민주노총의 국민파가 권과 노 사이에서 저울질하다가 입장을 정한 것은 2007년 7월이었는데, 주대환은 그 전부터 권영길 지지를 역설하고 다녔다.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을 역임했던 권영길이 자신의 역할과 입장을 얼마나 분명히 하고 노동자 중심적인 활동을 벌였는지에 대해 주대환은 좀더 평가했어야 했다. 주대환의 권영길 지지가 1992년부터 그가 걸어온 ‘노동당’ 노선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 얼마나 공감을 얻을 것인지 의문이다.
10. 주대환은 조봉암으로부터 유래하는 ‘대한민국 좌파’를 하자고 한다. 조봉암은 후대의 사람들이 자신을 좌파라고 떠받드는 것을 어떻게 바라볼까. 더욱이 지난 월드컵 이후 확고하게 자리잡은 '대한민국'이라는 용어를 좌파와 결합시키는 것 또한 어색해서 그의 의도대로 실용적으로 보기 어렵다. 영국노동당도 대영제국 노동당이라고 해야 하나.
농지개혁을 조봉암과 관련지어 파악하는 주대환의 인식도 문제가 있다. 물론 초대 농림부 장관이자 국회부의장을 지냈던 조봉암이 농지개혁에 있어서 나름의 역할을 하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북한의 농지개혁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한국현대사에서 좌파가 모범으로 삼을 만한 인물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가상하지만, 좀더 한국현대사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 이재유 평전 등을 통해 경성콤 등이 유명해지기는 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남한 좌파가 박헌영이나 여운형 등을 사상적 근원으로 내세운 적은 없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11. 지구당 폐지를 규정한 신정당법(이른바 오세훈법)에 대해 나는 이 기회에 정당법 등에 구애받지 말고 정치활동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지역편재를 마련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주장은 소광역 편재를 기본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주대환의 의견과도 비슷한 점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기존 보수정당의 지구당 운영상의 폐해를 들어 지구당을 폐지한 것은 지역정치활동을 공간을 축소한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보았고, 이는 정치에 있어서 정당의 역할을 역설하는 최장집 사단의 입장과도 비슷한 것이었는데, 주대환은 여기에서 입장이 달랐다. 특히 오세훈법을 지지하는 논리가 당시 보수언론의 것과 다르지 않아 의아했는데, 그에 대해 반성적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주장의 근거로 삼는 모습은 실망스럽다.
12. 국민건강보험, 공공부문, 상속세, 종부세를 지키자고 하는 주대환의 언급 속에서 미래지향적인 모습보다는 과거회귀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지금은 야당이 된 자유주의 좌파와 입장이 비슷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언급된 것들이 민중의 힘에 의해 도입되고 유지된 것이 아니라 개발독재와 자본, 자유주의세력들의 필요에 의해 생성되고 유지되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민주화의 물결을 타고 신자유주의적 시장화, 사유화의 광풍에 의해 위기에 처하게 되었어도 그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다.
(미국과는 달리) 우리는 있는 것을 지키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 전에 왜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하는지, 기존의 관치나 국가의 이름으로 강요되어 온 것과는 어떻게 다른지 등을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의무가 좌파진영에 존재한다. 이것은 사회공공성 강화의 과제를 국가에만 맡겨두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아가 프레임 싸움에서 이기려면 단지 지키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통신, 정유, 인터넷 등에 있어서 재국유화 등을 제기하고 공공부문에 있어서도 민중과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민주적인 지배구조의 확립, 공영화(公營化)가 필요함을 공세적으로 주장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증세 주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감세 정책의 문제를 폭로하면서 그에 대한 반대가 주 대치선인 현 상황이 답답하지만 말이다.
13. 이제 주대환과는 다른 길을 가야할 모양이다. 아니, 4-5년 전부터 그가 가는 길은 우리가 가야할 길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 명확하게 되었다. 아직 구체적인 정책에 있어서 어떻게 차이가 날지 모르겠지만, 주대환과 함께하는 이들이 정치세력화된다면 그들과는 사안별 연대는 할 수 있을지언정 함께 당을 하지는 못할 것 같다. 기회가 되면 『한국 사회와 좌파의 재정립』을 읽어봐야겠다.
그나저나 나는 구좌파인 걸까. 뚜렷하게 좌파인 적도 없었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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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좌파와 전쟁 각오, 동지들에 미안 (레디앙, 2008년 09월 15일 (월) 07:36:27 장태수 / 대구 서구문화복지센터 대표)
'대한민국 좌파'하자, 야권재편 필연
[인터뷰-주대환] "뉴레프트가 뭡니까"…"운동권 이데올로기 난치병"
그가 쓴 글과 그 글과 관련된 글들에 대해 이러저러한 논평이 오고가고 논란이 되는 것 자체가 사실 그리 바라는 상황은 아니다. 커밍아웃을 통해, 일련의 논쟁을 통해 자신들의 세력을 확대하려는 계획에 말려드는 것 같기 때문이다. 레디앙과 진보신당 홈페이지를 통해서 일부가 논란을 벌이고 있지만, 이에 대해 좌파가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지금 이에 대한 토론에 임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괜시리 판을 키우고 싶지 않은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실제로 『한국 사회와 좌파의 재정립』이라는 책을 뉴레프트 기관지 첫 준비호라고 한 것에서 드러난 것처럼, 사민+복지 기획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사민주의연대와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그리고 장하준 패밀리 등이 모여 정치세력화를 도모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그들에 대해 본격적인 대응을 할 필요성은 없었다.
게다가 주대환이 시대정신에 발표했던 글은 이해하기 쉬운 글쓰기를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친 단순화와 도식화, 사실의 과장 및 왜곡에 입각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본격적인 대응을 하는 게 타당한지도 의문이었다. 그 자체가 그들의 프레임에 말려드는 것이다. 물론 주대환이 대한민국의 긍정성으로 내세우고 있는 토지개혁이나 보통선거권 등의 개념들이 바로 뉴라이트의 것이라는 점에서 이미 프레임전쟁에서 한 수 접고 들어가고 있는 주대환의 논리는 너무 앙상해보였다.
그렇지만 그 동안 나름대로 주대환의 과거 행보를 긍정적으로 보았던 입장에서 이번 일련의 글들에 대해 한 마디 하고 싶었는데, 이번 인터뷰에 대해 간단하게 코멘트해보기로 했다.
1. 주대환은 자신이 죽은 김철순이 아니고, 살아 있는 주대환이라고 하면서 "진리의 근원이 인간의 이성이라고 믿었던 30대 이상주의자와 진리의 근거가 경험이라고 믿는 50대 실용주의자의 차이"이며, "맑스-레닌주의자와 페이비안 사회주의에 깊이 공감하는 사람의 차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사람이란 과거의 평가를 다 가지고 가야 하는 것 아닌가.
그가 페이비안 사회주의에 깊이 공감하는 걸 보면 고세훈 교수가 쓴 『영국노동당사』나 번역한 『페이비언 사회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처럼 보인다. 페이비언 사회주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 언급하는 게 조심스럽지만, 지금은 갈수록 맛이 가고 있는 영국노동당에만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페이비언 사회주의에 대한 깊은 공감을 표명하는 것은 더 넓은 이념적 조류를 간과한, 또 하나의 독선은 아닌지 묻고 싶다.
2. 주대환은 '1992년에 ‘노동당’ 노선을, 그리고 1987년에 ‘독자 후보(정당) 노선’을 주장했던 책임'을 언급하면서 자유의 몸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 그러한 책임을 요구했던 이들이 얼마나 있었는지 의문이다. 주대환은 그 정도로 책임감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독자 정당 노선을 포기하겠다는 주대환의 결단에 박수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그 길이 사민주의의 길이라고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3. 뉴-레프트 운동은 한국 사회에서 이미 나름의 세력화도 하지 못한 채 구태의연한 이름이 되어 버렸다. 오히려 여전히 올드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꼴보수들이 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데 명분은 준다고나 할까.
더욱이 뉴-레프트라고 한다면 올드-레프트라는 실체가 존재해야 할 텐데, 그 실체 또한 명확하지 않다. 한국에 구태를 벗어야할 구좌파라고 할 만한 집단이 있던가. 더욱이 뉴-레프트 운동을 주창하면서 그것이 사회민주주의라고 하면 뉴-레프트에 대한 모독이라고 할 만하다. 적어도 서구식의 개념으로 뉴-레프트는 사민주의에 반발하여 나왔기 때문이다.
4. 한국사회에서 ‘운동권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 운동권이라는 용어에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가 섞여 있기 때문에 그 중에서 부정적인 함의를 털어내려는 것이 그 핵심일 텐데, 이 중에는 보수언론에서 고의로 실체가 없는 것을 만들어낸 것들도 있다. 소위 'PT독재'나 '폭력혁명론' 등이 그런 것일 게다. 그런데 주대환 등의 사민주의 세력들은 운동의 혁신을 이야기하면서 이를 자신들의 단골소재로 삼는다. 나는 그들이 ‘운동권 이데올로기’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그리고 그 중에서 혹시나 긍정적인 요소들까지 버린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운동권 물을 마신 것이 자랑은 아니지만, 도처에 자본주의의 모순이 널려있는 한국사회에서 비판의식, 저항의식(운동권 물을 이렇게도 포현할 수 있지 않을까)을 가졌다는 것이 죽은 개 취급을 당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
5. 주대환은 지난 10년 동안 정권에 참여했던 이들이 국정 운영에 참여한 경험은 소중하다고 파악한다. 그리고 "구여권이 이제는 야당이 되었으며, 야당 중에서도 아웃사이더가 된 분들이 많다"고 하면서 자유주의 좌파까지도 정치 연합의 대상으로 할 것을 주장한다. 하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관료들에 의해 휘둘렸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관료들의 국정 운영 참여 경험을 소중히 여긴 결과 기술관료경영주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물론 관료들의 국정 운영 참여 경험은 더 풍부하고 다양한 정보를 다루는 것에 기인한 것이지 전문성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하여간 영혼이 없는 관료가 아니라 견고한 영혼이 있는 자유주의 좌파들과 사안별 연대(이는 엔엘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몰라도 한 당을 하자는 주장은 그 안에 무슨 철학이나 근거가 있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아마 구여당 세력은 갈수록 여당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 변화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며, 그들이 다시 집권할 경우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재판이 될 것임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러하기에 그들과 선을 그으면서 좌파의 정체성과 정치노선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그들이 좌파의 정책에 동의하는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6. 주대환은 자신이 정치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언론 매체를 가릴 수 없다고 얘기한다. 여기에서 그의 정치관이 잘 드러난다. 대의민주주의를 긍정하는 한 어쩔 수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정치하는 사람과 정치하지 않는 사람이 구별될 수 있는가. 우리의 삶 자체가 정치가 아니던가. 단지 여의도만이 정치공간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주대환식 정치는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함의를 드러내고 있다. 소위 정권 획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식의 관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 주대환은 '지식인들이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하고 <조선일보>에 기고와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을 존경한다'고 하면서도 '안티조선 운동'의 함의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조선일보>와 재향군인회, 자유총연맹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고 있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조선일보는 평범한 매체가 아니다. 진보정치를 지향하는 이라면 각종 선거에서 당장은 도움은 되지 않을지라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나 기고 등을 하지 않아야 한다. <조선일보>가 진보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이나 이데올로기적 위치를 멀리 보고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7. "지구당 폐지 반대, 투명 회계, 당직공직 겸직금지, 일심회 사건, 분당 사태 등 중요한 순간마다 운동권 PD의 사고방식, 목소리만 들리고 보이는데, 그대들의 ‘운동권을 졸업했다’는 생각은 자기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주대환의 이러한 발언은 주대환 및 사민넷 인사들 자신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자신들만이 옳다는 도그마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8. 내가 현재 꿈꾸는 진보정당은 집권가능한 정당은 아니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정당이라고 생각하고, 이 땅에 녹색이 상징으로만 남지 않도록 하는, 유의미한 정치세력이 되어 정치판에 변수로서 작용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 점에서 사민주의 세력의 집권을 도모하는 주대환 등과는 구별된다. 계속 그렇게 집권을 꿈꾸다 보니 자유주의 세력과의 연합마저 용인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집권을 통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많이 있겠지만, 그 한계를 우리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이미 본 바 있다. 우리가 집권하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설사 좌파가 집권에 참여한다 하더라도 정치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변화가 수반될 때 정치에서의 변화도 유의미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을 만드는 것이다. 좌파의 재구성이 아니라 제대로 성립되지 않은 좌파의 구성 자체가 필요하다.
9. 주대환은 지난 대선 시기 민주노동당 후보 경선에서 왜 오랜 동지 노회찬을 지지하지 않고 권영길을 지지한 이유로 민주노총의 간부들의 뜻이 권영길 후보에게 있었다는 점을 든다. 그런데 과연 권영길이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이라는 것이 그렇게 민주노총 간부들에게 어필되었을까. 민주노총 내의 다수인 국민파가 민주노총의 조직적 지지를 유도하였지만, 그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고, 많은 이들이 금속노조 사무처장을 지낸 심상정을 지지하기도 했다. 더욱이 민주노총의 국민파가 권과 노 사이에서 저울질하다가 입장을 정한 것은 2007년 7월이었는데, 주대환은 그 전부터 권영길 지지를 역설하고 다녔다.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을 역임했던 권영길이 자신의 역할과 입장을 얼마나 분명히 하고 노동자 중심적인 활동을 벌였는지에 대해 주대환은 좀더 평가했어야 했다. 주대환의 권영길 지지가 1992년부터 그가 걸어온 ‘노동당’ 노선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 얼마나 공감을 얻을 것인지 의문이다.
10. 주대환은 조봉암으로부터 유래하는 ‘대한민국 좌파’를 하자고 한다. 조봉암은 후대의 사람들이 자신을 좌파라고 떠받드는 것을 어떻게 바라볼까. 더욱이 지난 월드컵 이후 확고하게 자리잡은 '대한민국'이라는 용어를 좌파와 결합시키는 것 또한 어색해서 그의 의도대로 실용적으로 보기 어렵다. 영국노동당도 대영제국 노동당이라고 해야 하나.
농지개혁을 조봉암과 관련지어 파악하는 주대환의 인식도 문제가 있다. 물론 초대 농림부 장관이자 국회부의장을 지냈던 조봉암이 농지개혁에 있어서 나름의 역할을 하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북한의 농지개혁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한국현대사에서 좌파가 모범으로 삼을 만한 인물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가상하지만, 좀더 한국현대사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 이재유 평전 등을 통해 경성콤 등이 유명해지기는 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남한 좌파가 박헌영이나 여운형 등을 사상적 근원으로 내세운 적은 없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11. 지구당 폐지를 규정한 신정당법(이른바 오세훈법)에 대해 나는 이 기회에 정당법 등에 구애받지 말고 정치활동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지역편재를 마련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주장은 소광역 편재를 기본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주대환의 의견과도 비슷한 점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기존 보수정당의 지구당 운영상의 폐해를 들어 지구당을 폐지한 것은 지역정치활동을 공간을 축소한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보았고, 이는 정치에 있어서 정당의 역할을 역설하는 최장집 사단의 입장과도 비슷한 것이었는데, 주대환은 여기에서 입장이 달랐다. 특히 오세훈법을 지지하는 논리가 당시 보수언론의 것과 다르지 않아 의아했는데, 그에 대해 반성적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주장의 근거로 삼는 모습은 실망스럽다.
12. 국민건강보험, 공공부문, 상속세, 종부세를 지키자고 하는 주대환의 언급 속에서 미래지향적인 모습보다는 과거회귀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지금은 야당이 된 자유주의 좌파와 입장이 비슷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언급된 것들이 민중의 힘에 의해 도입되고 유지된 것이 아니라 개발독재와 자본, 자유주의세력들의 필요에 의해 생성되고 유지되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민주화의 물결을 타고 신자유주의적 시장화, 사유화의 광풍에 의해 위기에 처하게 되었어도 그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다.
(미국과는 달리) 우리는 있는 것을 지키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 전에 왜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하는지, 기존의 관치나 국가의 이름으로 강요되어 온 것과는 어떻게 다른지 등을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의무가 좌파진영에 존재한다. 이것은 사회공공성 강화의 과제를 국가에만 맡겨두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아가 프레임 싸움에서 이기려면 단지 지키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통신, 정유, 인터넷 등에 있어서 재국유화 등을 제기하고 공공부문에 있어서도 민중과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민주적인 지배구조의 확립, 공영화(公營化)가 필요함을 공세적으로 주장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증세 주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감세 정책의 문제를 폭로하면서 그에 대한 반대가 주 대치선인 현 상황이 답답하지만 말이다.
13. 이제 주대환과는 다른 길을 가야할 모양이다. 아니, 4-5년 전부터 그가 가는 길은 우리가 가야할 길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 명확하게 되었다. 아직 구체적인 정책에 있어서 어떻게 차이가 날지 모르겠지만, 주대환과 함께하는 이들이 정치세력화된다면 그들과는 사안별 연대는 할 수 있을지언정 함께 당을 하지는 못할 것 같다. 기회가 되면 『한국 사회와 좌파의 재정립』을 읽어봐야겠다.
그나저나 나는 구좌파인 걸까. 뚜렷하게 좌파인 적도 없었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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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좌파와 전쟁 각오, 동지들에 미안 (레디앙, 2008년 09월 15일 (월) 07:36:27 장태수 / 대구 서구문화복지센터 대표)
'대한민국 좌파'하자, 야권재편 필연
[인터뷰-주대환] "뉴레프트가 뭡니까"…"운동권 이데올로기 난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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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민주노동당의 분당 사태와 좌파의 진로 (레디앙, 2008년 09월 02일 주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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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6 22:53
한 마디로 당황스럽다. 주대환이 이렇게까지 변할 줄이야... 어쩌면 그가 변한 것은 없고, 단지 변하는 세상에 맞춰 적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내뱉는 언사들은 너무 나갔다. 그의 눈에는 구 소련과 북한, 미국 사회당의 실패, 그리고 과거 영국 노동당의 성공밖에 보이지 않는 건가. 영국 노동당은 불합리한 소선거구제의 틀에 안주하면서 변화를 주도하려 하지 않았다. 그 결과 현재는 자유당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노동당..
불씨 2008/09/16 11:07
아웃사이드와 인사이드의 차이는....
조직의 중앙으로 나아가는 것은
결국 정치란 인생의 빈곤이나 숙청의 대상이 되지만 바로 그것이 진보정치운동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