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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한윤형 vs. 최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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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실이님의 [ [말들의 풍경] 진경산수?] 에 관련된 글.

홍실이님의 블로그에 고종석의 [말들의 풍경]을 사서 읽은 얘기가 올려와 있더군요. 고종석은 거기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개'를 뽑아놓았는데, 정말 그럴싸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시내, 서리서리, 그리움, 저절로, 설레다, 짠하다, 아내, 가을, 넋, 술, 그윽하다'가 그 예랍니다. 저에게도 느낌이 좋게 다가오던 단어들입니다. 블로그 주인장은 '애틋하다, 노을, 설렘, 올챙이, 소담스럽다, 뭉게뭉게, 오솔길, 맛나다'를 뽑았더군요.

   

한번씩 스스로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열 개 정도 뽑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요. 짠하다는 전라도 사투리라고 생각했는데, 아무튼 인상적인 말입니다. '벼리, 누리, 시나브로, 설레다, 우리, 아쉽다, 안타깝다, 벗, 앞으로, 빛'. 지금 생각나는 건 이 정도네요. 사실 고종석이 한글전용론자가 아니고, 한글의 오염에 대해서도 나름의 긍정성을 부여하는 것에 비추어 아름다운 우리말을 뽑은 것 자체가 조금은 낯설게 여겨지기도 하겠지만, 저는 고종석 정도의 자리매김이 적당하다고 봅니다.

 
고종석의 [말들의 풍경]은 나중에 시간날 때 사봐야지 하다가 아직까지 미뤄두고 있던 책입니다. 제가 고종석 매니아라는 건 아는 이들은 아는 사실이죠. 이 블로그에서도 상당히 많이 다룬 적이 있었고요. 생각난 김에 그의 글 하나를 담아왔습니다. 아흐리만 필명을 썼던 한윤형과 최익구에 대해 쓴 글입니다.

 
고종석 같은 이가 높게 평가하는 걸 보면 두 사람 모두 글을 참 잘 쓰는 모양입니다. 저는 아직 나이차가 별로 나지 않아서 질투심을 느끼는 모양인지 그들의 글을 가까이 하는 편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이들에게서 배우려고 하지 않는데, 고종석은 다르네요. 저 또한 아래 글에서 이 부분에 동의를 하는데 말이죠.
 

 
이들이 부리는 지식과 정보의 총량은, 그리고 그 앎에 떠밀리는 생각과 느낌의 포물선은 이들 나이 때의 나에게 견주어서는 물론이고 지금의 나에게 견주어서도 한결 크고 아리땁다. 나이는 한 사람의 지적 정서적 윤리적 성숙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겠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한윤형 vs. 최익구 (씨네21, 고종석 (저널리스트) | 2007.05.04)
  

글 표제의 ‘vs.’는 허풍이다. 내 눈에 비친 두 사람은 민주공화국 시민의 양식을 공유하고 있고, 생각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나는 &나 as well as로 두 이름을 이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좀 더 자극적인 ‘vs.’를 넣은 것은 좀 더 많은 독자를 낚기 위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한윤형씨는 군복무를 마치고 얼마 전 학교로 돌아온, 철학 전공의 복학생인 듯하다. ‘듯하다’, 라고 한 자락 깐 것은 내가 그와 친분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의 글을 처음 읽은 것은 꽤 오래 전이다. 새것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내가 인터넷 사이트라는 델 처음 들어가 본 것은 막 새 천년을 맞았을 때다. 그 사이트가 <인물과 사상> 홈페이지였다. 정치학자 최장집씨의 사상을 검증하겠다고 조선일보가 거들먹거리면서 시민사회 일각에서 일기 시작한 ‘안티조선’ 운동이라는 것이 세상에 알려질 무렵이었고, <인물과 사상> 홈페이지는 그 운동의 한 근거지였다. 자신을 고교생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이 ‘아흐리만’이라는 닉네임으로 그 사이트 게시판에 바지런히 글을 올리고 있었는데, 고교생이 썼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글이 (여러 의미에서) 어른스러웠다. ‘아흐리만’(옛날 조로아스터교도들은 어둠의 세계를 다스린다고 자신들이 상상한 신을 이 이름으로 불렀다 한다)이라는 닉네임에서 설핏 읽히는 위악만이 덜 어른스러워 보였다.

 

그 시절 안티조선 운동에 발 담갔던 한 친구를 지난주 술자리에서 보았다. 문득 ‘아흐리만’이라는 이름이 떠올라 그 친구에게 아흐리만의 실명과 근황을 물었다. 친구는 그의 근황은 알지 못했으나, 이름이 한윤형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 이름으로 구글을 뒤져보니 그의 블로그에 실린 글이 여럿 떠올랐다. 나는 아예 한윤형씨의 블로그에 들어가 두 시간 남짓을 보냈다. 그가 철학 전공의 복학생이리라는 짐작은 그의 글들을 훑고 나서 하게 된 것이다. 고교생 시절의 조숙이 워낙 인상 깊었던 터라 그가 그동안 더 ‘어른스러워’졌는지는 판단하기 어려웠으나, 그 글들은 만개한 시장사회를 버텨내는 한 젊은이의 정치적 문화적 감수성으로 뾰족했다.

 
한윤형이라는 이름 옆에 최익구라는 이름을 놓는 것을 나는 꽤 망설였다. 한윤형씨와 달리, 최익구씨는 내가 사적으로 모르는 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한해에 한두번쯤 만나는 술친구다. 공적 지면에 제 친구 얘기를 늘어놓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 그러나 내게 그런 전과가 없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두 이름을 나란히 놓는 것이 그럴듯해 보이기도 해, 나는 뻔뻔해지기로 했다. 최익구씨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다 휴학하고 지금 공익 근무를 하고 있다. 한윤형씨의 동갑내기가 아닌가 싶다. 그가 개인 홈페이지를 지니고 있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됐는데, 한윤형씨 글들을 읽다가 내친김에 최익구씨의 홈피에도 들어가 보았다. 전자우편으로만 읽어보던 그의 글을 한꺼번에 여럿 읽고 있자니 다시 한윤형씨 생각이 났다. 크게 다르지 않은 교육 배경을 지녔을 이 두 동년배가 취향이나 기질에서 꽤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블로그는 일종의 일기장이다. 그러나 그것은 공개된 일기장이다. 그곳에선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뒤섞이고, (사회적) 윤리와 (개인적) 도덕이 미묘하게 맞버티며, 드러냄의 욕망과 감춤의 솜씨가 서로 스며든다. 낯선 사람의 블로그를 들여다보는 재미는 거기서 나올 것이다.

 
한윤형씨와 최익구씨는 둘 다 만만찮은 독서가인 듯한데, 철학도의 취향이 새것에 쏠려 있다면 경영학도의 취향은 옛것에 쏠려 있다. 둘 다 개인주의자이지만, 한쪽의 개인주의는 민중의 벗 겸 검술교사가 되고자 하는 프티부르주아 지식분자의 욕망으로 눅눅해지고, 다른 쪽의 개인주의는 백성의 살림을 걱정하는 사대부 독서인의 목민의식으로 불순해진다. 한윤형씨의 언어는 날카롭게 벼려져 있고, 최익구씨의 언어는 넉넉하게 다습다. 그 날카로움이 냉소주의의 각박함으로 졸아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넉넉함이 온정주의의 무원칙으로 흐물흐물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치적 존재로서, 이 두 사람이 제가끔 한국 정치의 공간에서 자신들에게 부여한 좌표도 사뭇 달라 보인다. 한윤형씨에 견줘 최익구씨는, 그의 닉네임 ‘새우범생’이 암시하듯, 주류 정치질서에 더 너그럽다.

 
그러나 이들이 부리는 지식과 정보의 총량은, 그리고 그 앎에 떠밀리는 생각과 느낌의 포물선은 이들 나이 때의 나에게 견주어서는 물론이고 지금의 나에게 견주어서도 한결 크고 아리땁다. 나이는 한 사람의 지적 정서적 윤리적 성숙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겠다. 나는 이들보다 두배는 더 산 듯싶다. 다행이다. 나이 차가 이만큼 크지 않았다면, 나는 질투심 때문에 이들의 글을 읽기 힘들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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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1 13:58 2007/10/11 13:58

6 Comments (+add yours?)

  1. 지나가다 2007/10/11 14:47

    저도 예전에 씨네21에서 저 글 보고 놀랐었지요. 둘 다 알던 사람이어서 그런지. 최익구씨는 고대에서 작년엔 남몰래 반운동권 총학생회장 후보를 도운 정말 정치적인 우파입니다. 2002년엔 최초 반권 총학생회 집행부였고. 글 잘쓴다는 생각 단 한번도 안해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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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hongsili 2007/10/11 21:37

    이제 '짠하다'는 표준어 지위를 얻은 거 아닐까 싶어요. 딱히 민족주의적 정서가 강한 건 아니지만, '글' 없이도 오랜동안 입으로 전해진 아름다운 고유어들을 보면, 애틋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그래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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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새벽길 2007/10/12 19:52

    저는 최익구씨에 대해서는 몰라요. 사실 관심도 별로 없고요. 그런데 반권 총학생회장 후보를 도왔다니... 아마 고종석씨는 너무 적나라하게 표현하기 뭐해서 유한 표현을 사용했나 봐요.
    한윤형씨는 깨손, 진보누리 등을 통해서 개인적으로도 알게 된 사이인데, 그 친구가 저를 기억할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배울 것이 있는 이인 것은 사실이죠.

    '짠하다'라는 표현을 저는 별로 사용해본 적이 없는 듯 하네요. 어머니나 할머니가 많이 사용하셨는데 말이죠. 애틋하다라는 말하고도 비슷하지 않나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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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익구 2013/03/20 09:51

    안녕하세요. 위 글에서 등장하는 최익구라고 합니다.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들르게 되었습니다.

    오래 전 글에 댓글을 남기는 것이 민망하지만 사실관계를 정정하기 위해 잡글 남깁니다. 위에서 지나가다님께서 남기신 댓글 중에 “작년엔 남몰래 반운동권 총학생회장 후보를 도운”이라는 표현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 당시 저는 휴학 중이어서 자세한 정황을 몰라 검색해보니, 위 댓글에서 언급한 ‘작년’에 해당하는 2006년에는 ㄱ대학교 39대 총학 재선거와 40대 총학 선거가 치러졌더군요. 저는 이 두 선거에 관여한 바가 없습니다. 지나가다님이 저를 아시는 분인지는 모르겠으나 착각을 하신 모양이네요. 저는 학부를 다니면서 총학 선거 운동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여기서 가릴 문제는 아니지만 ‘반운동권’이라는 표현도 묘한 느낌입니다. 2007년 총학부터인가 자신들은 반운동권이 아니라 비운동권이라며 차별화를 하면서 마치 반권과 비권이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구분을 짓기도 한 듯싶습니다. 물론 이와 달리 반권과 비권을 동의어로 쓰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반권이라는 용어는 비권을 자칭하는 분들이 자신들은 좀 더 온건하고 합리적임을 뽐내기 위해 비권과 반권이라는 구분을 만든 측면이 적잖은 듯합니다. 반대로 스스로 반권을 표방하는 경우도 있지만 매우 드문 것 같고요.

    여하간 비운동권이라는 표현이 좀 더 널리 쓰이고 가치중립적인 말이 아닐까 싶네요. 참고로 기사 검색을 해봐도 비운동권이라는 말이 훨씬 많이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반운동권이라는 말은 굳이 구분할 실익이 있는 경우에 제한적으로 쓰이는 말로 보입니다. 댓글 주신 분께서는 아무래도 부정적인 뉘앙스를 강조하기 위해 반운동권이라는 말을 부러 쓰셨을 것 같아 몇 마디 늘어놓아 보았습니다.

    새벽길 님의 블로그에서 개인적인 잡설을 늘어놓아 송구합니다. 고 선생님이나 한 기자님 글을 더 즐겁게 읽으시길 바랄 따름입니다. 건승하시고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Reply  Address

    • 익구 2013/03/20 09:58

      아참 댓글 말미의 “글 잘쓴다는 생각 단 한번도 안해봤는데”라는 표현은 맞는 말씀이고, 동감합니다. 사실 고종석 선생님이 이 글을 쓰셨을 때 제가 살짝 투정부렸던 기억이 납니다. 한윤형 기자님은 제가 오래 전부터 흠모해온 분이어서요.

       Address

  5. 새벽길 2013/03/21 21:43

    익구/ 인터넷 검색으로 걸리는 줄은 미쳐 몰랐네요. 그것도 거의 6년만에 관련 댓글을 써주셔서... 글 잘 쓰는 거야 주관적인 것이라 사람마다 다를 듯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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