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문화일보, 접속자 폭주해서 기분 좋은가?

View Comments

 

지금 문화일보에 접속하면 위와 같은 화면이 나온다.

왜냐고?

문화일보가 신정아 씨의 누드 사진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각종 포털에 톱으로 올라왔다가 포털들도 '이건 아니다' 싶었던 모양인지 문화일보 관련 기사를 모두 내렸다.

현재는 포털에서도 검색이 되지 않는다.

 

갈수록 개인의 사생활 침해가 극에 달하더니 드디어 누드 사진을 공개하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이들은 개념을 어디에 두고 있는 것일까.

이들에게 인권감수성이라는 게 있는 걸까.

이게 과연 권력형 비리를 캐내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봐도 좋은 걸까.

 

문화일보는 조중동에 버금가는 찌라시임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외설로 문제되었던 <강안남자> 또한 아마 지금도 연재되고 있을 것이다.

할 말이 안나온다.

그래, 접속자 폭주해서 기분 좋은가?

 

------------------------------------------------------ 

<문화일보> 신정아 누드 사태, 反인권 보도의 극치 (프레시안, 성현석/기자, 2007-09-13 오후 4:26:00)
[기자의 눈] "누가 그들에게 인격 짓밟을 권리 부여했나"  
 
  언론의 선정 보도가 극에 달했다. 13일자 <문화일보>는 최근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염문으로 물의를 빚은 신정아 씨(전 동국대 교수)의 누드 사진을 공개했다.
  
  "개인 이메일 내용 흘리는 검찰과 언론"
  
  이런 보도가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선정적이어서만은 아니다. 대중의 관음증에 영합하는 선정성은 '상업 언론의 어쩔 수 없는 속성' 정도로 취급하고 넘어갈 수 있다. 오히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개인의 인권에 대한 고려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 <문화일보>가 처음 게재한 신정아 씨의 누드를 다른 언론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사진은 13일자 <조선일보> 인터넷판 머릿기사 부분. ⓒ<조선일보>

  최근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신정아 씨(전 동국대 교수)의 염문이 신문 지면을 뒤엎었다. 거의 모든 매체가 익명의 검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변 실장과 신 씨가 주고받은 메일 가운데 상당수가 "매우 노골적인 표현"을 담고 있고 보도했다. 또 변 전 실장과 신 씨가 서울 광화문의 한 오피스텔에서 사실상 동거해 온 관계였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권력 핵심부에 있는 인사와 문화계 유명인의 부적절한 연애 관계는 대중의 관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또 이 과정에서 권력형 비리가 있었다면,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개인의 사생활이 낱낱이 공개되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를 묻는 목소리는 찾기 힘들었다. 또 아직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개인의 사생활이 담긴 이메일 내용을 언론에 흘리는 검찰의 몰인권적 태도를 나무라는 목소리도 듣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권력형 비리는 철저히 규명하되, 인권의 영역인 사생활 보호에 대해서는 엄격한 원칙을 세우려는 모습은 너무 먼 이야기였다. 오직 더 자극적인 기삿거리를 찾기 위한 경쟁이 있었을 따름이다.
  
  "권력을 견제하는 목적부터 돌아보라"
  

▲ 지난 11일자 <중앙일보> 인터넷판 머릿기사 부분. 변양균 전 실장과 신정아 씨가 사사로이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에 대해 선정적으로 보도했다. ⓒ<중앙일보>

  결국 이런 맹목적인 경쟁이 13일자 <문화일보> 누드 사태를 낳았다. 신 씨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적절한 처벌을 하면 된다. 또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잘못이 있다면, 꼼꼼한 취재와 차분한 조사로 밝혀내야 한다.
  
  하지만 누드 사진을 공개하여 신 씨의 인격권까지 짓밟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신정아 사태를 선정 보도 경쟁으로 몰아가는 언론은 "권력형 비리를 캐기 위한 노력"이라고 변호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때가 됐다. "언론이 권력을 견제해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여러 대답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질문에 접한 사람라면 누구나 빠뜨리지 않을 대답은 "권력 앞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요컨대 권력을 견제하는 이유는 상대적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런 견제가 없다면, 권력은 가장 약한 사람부터 유린하기 시작해 종국에는 최고 권력자가 아닌 모두의 권리를 짓밟을 것이기 때문이다.
  
  "섬세한 인권 감수성이 절실하다"
  
  이런 논리에 수긍한다면, 권력을 견제하는 언론이 갖춰야 할 덕목도 명확해진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 이들의 인권을 배려하는 섬세한 감수성이다.
  
  그런데 권력을 견제해야할 언론이 스스로 권력이 됐다. 그리고 개인의 인권을 공개적으로 짓밟는다. 그래서 <문화일보>에 게재된 신정아 씨의 누드 사진은, 한국 언론의 치부가 그대로 드러난 자화상이기도 하다. 이를 지켜보는 심정이 수치스럽고, 비참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9/13 18:12 2007/09/13 18:12

3 Comments (+add yours?)

  1. 행인 2007/09/14 14:08

    문화일보의 이러한 행태는 저질스러우면서도 매우 교묘한 셈을 가지고 이루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더 밉살맞죠. 노무현을 흔들어 이명박을 당선시키겠다는 철저한 정치적 계산. 문화일보, 이명박 당선을 위해서라면 이보다 더한 일도 저지를 겁니다.

     Reply  Address

  2. 비올 2007/09/14 15:43

    언론에 사진이 유출된 문제뿐만 아니라, 신정아 이메일과 관련한 개인정보 과다노출 등 검찰의 의도적이며 또는 반인권적인 감수성 문제가 극대화된 사건이라고 봅니다. 정말 말도 안돼요.

     Reply  Address

  3. chesterya 2007/09/14 17:30

    신정아 죽이기..인가봅니다 ㅋ

     Reply  Address

Leave a Reply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gimche/trackback/494

Newer Entries Older Entries

새벽길

Recent Trackbacks

Calender

«   2024/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