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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북핵과 북미갈등 - 서선생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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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으로 있는 정종권 선배가 자신의 네이버 블로그에 쓴 '북핵과 북미갈등'에 관한 글을 퍼왔습니다.

정종권 선배에게 그 동안 네이버에 블로그가 있긴 했지만, 글이 하나도 올라와 있지 않아  로그인용으로 아이디만 만들고 글은 하나도 쓰지 않았다고 투덜대면서 블로그를 만들고자 한다면 네이버 대신 진보넷을 추천한다고 했는데, 며칠새 네이버 블로그에 개시를 했네요.

 

그런데 개시된 글이 참 차분하고 읽기 쉽습니다. 정종권 선배 답지 않게 말이죠.

추천할 만한 글이라고 보아 담아왔습니다. 사실 이 글이 올라온 줄도 몰랐다가 민주노동당 홈페이지에 [펌]된 것을 보고 다시 재펌했지요.

 

출처: http://blog.naver.com/jjkpssp/10009566410

 



선생님, 오랜만이네요. 벌써 떠나신지 1년이 다되어 갑니다.      
두어번 짧은 메일로 연락을 드렸는데, 항상 아쉬운 마음이 남습니다. 권낙기 선생이나 최정규 선생을 통해 잘지내신다는 소식, 특히 애들이 잘 적응하고 좋아한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감이랄까 뭐 그런 마음이 들더군요. 최정규 선생은 한국으로 돌아와서 당 남원연수원에 계십니다. 알고 계시죠.   
항상 공부와 연구에 대한 집착과 집념이 대단하신 선생님이시니까 지금은 독일어를 웬만큼은 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물론 그래도 만족하거나 안주할 성격이 아닌 것은 제가 알지요.
           
하여튼 선생님 보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듭니다. 예전에 선생님 만나면 항상 제가 투정부리듯이 이야기를 하고 대화 같지 않은 대화 방식으로 대화를 했지요. 물론 선생님도 저 못지않게 전투적인 버전으로 저에게 꾸중도 하시고 문제제기도 하셨죠. 새삼 그때가 생각나는 것은 제 고민과 생각들을 날 것 그대로 여쭤보고 의견도 듣고, 또 나름대로 반박도 할 수 있는, 조금은 편한 사람이 별로 흔치 않아서입니다.
      
요즘 북한 문제, 정확하게는 북미갈등과 북한 핵실험으로 빚어진 국면에 대한 고민이 깊습니다. 한국의 현안이나 문제들에 대해서는 선생님이 불편하실 것 같아서 말씀 드릴 생각은 없지만, 북미 갈등과 북핵 문제는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어서 독일에 계신 선생님도 접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 생각되는군요.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에 계실 때도 자주 여쭤보고 의견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북한 관련 논의 중 선생님이 하시거나 인용하시거나 또 때로는 알 듯 모를 듯 던지신 말씀 중 세가지 정도를 저는 또렷이 기억합니다.
    
“너희 좌파들은 북한에 대해 애정이 없다. 그렇지 않냐? 애정은 찬성과 지지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문제를 접근할 때 똑같은 비판이라고 하더라도 애정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의 비판은 그 비판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는 것을 아냐?”
   
“요즘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조선일보의 북한 관련 기사가 가치와 지향은 나와 정반대이지만 그것이 팩트냐 아니냐의 문제에서는 팩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기사에 나오는 보도내용이 ‘사실’이라면 이에 대한 고민과 분석과 의미를 조선일보류의 보수반동세력들이 선점하도록 놔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00이라는 스님을 개인적으로 좀 알게 되었는데, 이 스님을 초청하여 토론회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들었던 이 양반의 독백같은 말이 여운이 길게 남는다. ‘예전에 나(00)는 북한의 경제사회적 어려움을 보면서 그 원인을 세가지로 생각하였다. 첫째는 미국의 지속적이고 악랄한 봉쇄정책, 둘째 유례없는 자연재해, 세째 사회주의 경제시스템의 비효율성과 내적 문제점, 이렇게 세가지로 원인 진단을 하였고 그 비중의 순위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요즈음은 첫째와 셋째의 순위가 뒤바뀐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고 발언하더라. 동의 여부를 떠나서 여운이 남는다”
      
이것이 선생님과의 수많은 대화 중에서 남는 북한과 관련한 세가지 대화의 장면입니다. 물론 때와 장소는 각기 달랐고, 그 의미와 맥락도 달랐지만 제 기억에는 강하게 남아있는 장면들입니다. 물론 저 또한 때로는 반박을, 때로는 공감의 의견을 전했지만 2000년을 전후한 그 때의 고민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말 중 가장 아픈 말이 그 때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너희 좌파는 북한에 대한 애정이 있냐’ 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북한 핵실험과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보면서 많은 고민이 됩니다. 요지는 두가지입니다. 북한을 압박하고 붕괴시키려는 미국, 아니 미국이 이끌고 있는 대북 적대동맹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것과 북한의 핵실험과 핵무장을 어떻게 봐야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요즘 민주노동당 당 내에서도 북한의 핵실험과 북미 갈등을 둘러싸고 적지 않은 긴장과 갈등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강한 반발과 핵실험이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유발한 원인이 미국과 친미국가들의 대북 적대동맹정책에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민주노동당 내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북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북미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제 중단, 대북제제에 동참하려는 노무현정권에 대한 비판을 조직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인이 미국에게 있기 때문에 그 결과로서 북한 핵실험에 대해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일부, 아니 자민통 진영의 견해에 대해서 저는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전후 배경을 생략하고 저의 핵심적인 고민과 생각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반핵과 반전 반제국주의의 가치가 때에 따라서는 달라지는 선택의 문제이거나 그 중요성의 비중이 적절하게 분배 조절할 수 있다는 논리에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특정한 시기에 어떠한 가치와 목소리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킬 것인가의 문제(반핵이냐 반전이냐)는 전술의 문제로 충분히 논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전 반핵 반제의 지향과 정신을 바꾸는 문제는 정체성과 존립근거를 부정하는 문제입니다. 백번 양보하여 대중적 실천은 반핵이 아니라 반전의 기치를 중심으로 전개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대중을 대상으로 정치활동을 하고, 대중을 설득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당연히 대중을 설득하는 순서는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는 사실의 확인 -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우리는 진보정당으로서 핵무장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 그런데 도대체 왜 북한이 핵실험이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강행했나 - 50년이 넘게 지속되고 강화되어 온 미국의 대북 봉쇄정책, 적대정책으로 북한의 개혁도 생존도 가능하지 않다는 위기의식이 극단적 조치를 낳았다 - 그러면 북의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비핵화)는 미국의 대북봉쇄정책 대북적대정책이 해소되어야 한다 - 그럴 때만 북핵 문제만이 아니라 한반도의 전쟁이라는 파국적인 상황을 막아낼 수 있다>는 순서가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일 것입니다.
    
여기에서 반핵의 가치를 확인하는 것은 현시기 반핵을 제1의 실천적 슬로건을 드는 문제가 아니라 진보정당의 가치를 확인하는 문제인 동시에 ‘대중 설득의 첫걸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니라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서는 어떠한 가치판단과 입장표명도 없이, 모든 것이 미국의 적대정책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라는 논리는 논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무능하고 어이없는 태도입니다. 한마디로 북한 핵실험이 있기 전과 후의 문제에 정세적으로 어떠한 질적 변화도 없다는 판단인 것입니다. 누구 말마따나 북한에 대한 어떠한 비판적 언급도 인정할 수 없다는 광신적 소아병적 태도입니다.
   
오히려 범청학련의 태도는 전혀 동의할 수 없어도 논리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핵실험은 비판해야 할 조치가 아니라 미국제국주의를 타격하고 한반도의 미국지배력을 분쇄할 수 있는 전략적이고 공세적인 조치라는 것이죠. 당연히 비판과 유감의 대상이 아니라 공세적으로 옹호해야 할 문제인 것이죠. 물론 제가 이 논지에 전혀 절대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아실 겁니다. 당 내 자민통 세력은 심정적으로는 이 마음인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아니면 북한이라는 성역은 건드리면 안된다는 유치한 심리일 뿐입니다.    
   
둘째 자위권의 문제입니다. 저는 하나의 국가로서 북한이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적국의 군사적 침략에 대해 군사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핵을 자위적 군사력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세계 진보세력이 공통으로 반핵을, 모든 군사적 행동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핵을 군사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한 치의 차이도 없이 반대하는 것입니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지만 핵전쟁은 정치의 연장이 결코 아닙니다. 인류에 대한 파괴이자 저주일 뿐입니다.
         
팔레스타인 인민들의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투쟁을 우리가 적극 고무 찬양하지는 않더라도 결코 비판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의 침략과 탄압, 말살정책이 극단적이고 이에 대한 저항과 투쟁의 절박성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정부가 이스라엘의 핵에 맞서는 핵무장을 추진한다면(물론 현재 가능하지 않은 시나리오이지만) 동의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비판되어야 하는 행위입니다.
    
미국과 노무현 정권은 평택이라는 평화의 터를 미국의 동아시아 전쟁기지 침략기지로 만들려 하고 있고 우리 모두는 이에 견결히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평택이라는 평화를 반평화세력 전쟁세력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우리는 결연하고 단호하게 투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키기 위해 우리는 자위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 자위력은 대중투쟁과 대중의 지지여론입니다. 때로는 소박한 자위력으로 대나무 작대기로 맞서기도 하고, 격렬한 몸싸움으로 맞서기도 하고, 인권활동가들이 망루에 몸을 묶고 결사투쟁을 하기도 합니다. 그 과정이 바로 우리의 자위력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는 군대와 경찰의 거대한 물리력 앞에 무너지거나 짓밟히기도 합니다. 만약 우리가 자위력이라는 그 자체에만 집착한다면 즉 물리적 수단이나 방법에 집착한다면 화염병과 쇠파이프 아니 그보다 더한 자위적 무장력으로 버틴다면 우리는 더 오래 더 격렬하게 싸우면서 버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이 올바르지도 효과적이지도 않다는 판단을 우리는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비록 저 거대한 무장력, 경찰과 군대, 용역깡패의 힘에 맞서 우리는 평화적으로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평화는 비타협적이고 단호한 자세와 투쟁으로 지켜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비타협과 단호함은 ‘투쟁수단’(화염병 등)의 비타협과 단호함으로 표현되지 않습니다. 이게 뭘 의미합니까? 
            
셋째 그러면 항상 나오는 질문이 ‘그럼 당신은 북한이 핵실험 말고 무엇을 어떻게 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핵실험과 핵무장을 추진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절박하고 위기의식을 가진 북한의 처지를 당신은 이해하고 있느냐? 관념적인 이상주의라는 진단이거나 북한의 핵실험이 세계 제국주의의 약한 고리를 타격하는 전략적이고 공세적인 정책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책상물림이라는 고약한 진단이 내려집니다.
          
가장 어이없는 태도이지요. 너는 그 동안 뭘 했느냐? 하이텍 5년 하이닉스 650일 코오롱 600일 기륭 400일의 장기투쟁 그리고 비정규 개악안이 3년째 국회에 계류 중인 이시기에 비정규 투쟁을 위해 너는 무엇을 했느냐? 평택 투쟁이 2년 넘게 진행되고 있는데 너는 무엇을 했느냐? 지율스님이 100일동안 목숨을 건 투쟁을 하고 있을 때 너는 무엇을 했느냐? 성람재단비리 척결, 활동보조인제도 쟁취 등을 위해 수많은 장애인들이 처절하게 투쟁을 하고 있을 때 너는 무엇을 했느냐? 열사들이 몸에 불을 지르며 세상에 절규하고 있을 때 너는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미국의 말살정책에 맞서 북한이 처절하게 싸우고 있을 때 너는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이런 질문이지요.
       
중요한 문제이고 우리가 이 사회를 변혁하고 바꾸어내기 위한 활동가로서 성찰적으로 던져야 하고 항상 경계의 자세로서 되새겨야 하는 질문입니다. 부끄러운 활동가로 살지 않기 위해 우리 민중들과 민족의 과제를 늘 실천하고 고민하는 계로 삼아야 할 화두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너는 노동문제에 열심히 한 것이 없으니까 닥쳐라, 너는 환경문제에 관심도 없으니까 닥쳐라, 네가 언제 장애인 투쟁에 참여라도 했느냐 입 닥쳐라, 너는 민족문제에 실천활동이 부족하니까 비판하지 말고 입닥치고 있어라. 이런 식이 되면 안되잖습니까?
        
중국이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미국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포섭되어가고 있다는 지적과 비판들을 많이 합니다. 활동가들도 그러하고 연구자들도 그러한 시각에서 발언을 많이 하는 것을 접합니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사회주의 국가가 자본주의로 퇴행적으로 넘어가고 있는데, 미국의 세계체제에 포섭되어가고 있는데, 이에 대한 중국인민들의 고통이 심화되고 저항이 기층에서부터 형성되고 있는데, 너는 중국이 자본주의이니 아니니 하는 책상물림식 논리에 매몰되어 있다’는 식의 비판은 아무런 생산적 발전적 비판이 아니라는 것은 명약관화하지 않습니까. 물론 이 비유에 대한 반응도 예상이 됩니다. 중국과 북한이 같냐는 식이겠죠. 북한은 우리 민족이고, 또 북한은 중국처럼 실패하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을 겁니다. 씁쓸함만 깊어질 것 같습니다. 
       
.. 짧은 안부 연락만 드리려다 오늘(10월 16일 월요일 당 중앙위원회 다음날입니다)의 채 해결되지 않은 고민덩어리를 선생님에게 하소연하듯이 함께 담아서 보내게 되네요. 언짢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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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6 19:41 2006/10/16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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