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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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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복날이었던가. 그제가 복날이었던가.

사촌동생과 고기를 먹었다고 했더니, 누군가가 어떻게 그런 것을 먹을 수 있냐고 한다.

아마도 개를 떠올리고 하는 말일께다.

 

하지만 나는 개를 먹지 않는다. 아니 먹지 못한다.

복날이라는 이름으로 영양보충을 얘기하면서 어떻게 그런 것을 먹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돼지는 괜찮은가. 그건 물론 아니지만, 어제 먹은 것은 사촌동생이 온 김에 오겹살을 먹은 것 뿐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건강을 위해 채식을 하는 것도 좋긴 하지만, 나는 쉽지 않다.

 

그건 그렇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묶어서 잘 얘기하는 고종석의 재주가 부럽다.

나는 복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맨날 하는 게 공상인데...



[고종석 칼럼] 복날의 환(幻)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한국일보 입력시간 : 2006/07/19 18:12

   
‘어이구 이 한심한 중생아!’ 하는 ‘면피용’ 자학이 마음 한 구석에서 불쑥불쑥 고개를 쳐들긴 했으나, 그래도 월드컵 때가 좋았다. 수비에 치우치는 압박축구가 대세를 이루는 바람에 월드컵 축구 경기가 지루해졌다는 말도 있었지만, 방패의 튼실함과 아름다움만 해도 눈요깃감으로 넉넉했다.
포르투갈-네덜란드 경기의 난투극 앞에서도, 결승 경기의 ‘지단 박치기’ 앞에서도 나는 눈살을 찌푸리지 않았다. 그건 그냥 볼거리일 뿐이었으니. 잔디구장이 이종격투기장 꼬락서니를 설핏 보여준다 해도, 축구 경기는 그 야만성에서 진짜 이종격투기에 도저히 미치지 못한다.
  
전쟁의 은유가 아무리 스타디움 위를 파닥거려도, 공놀이는 진짜 전쟁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우아하다. 미군의 바그다드 폭격 장면을 태연스레 시청할 수 있었던 무디고 잔혹한 영혼이 축구장의 소란에 호들갑을 떤다면 웃음거리밖에 안 될 테다.
  
●월드컵 끝나고 다시 현실로
  
월드컵이 끝나니 세상이 다시 보인다. 북한 미사일. 도대체 국방위원장 동지의 머릿속엔 뭐가 들어있을까? 그는 오프라인에서 체제와 인민의 목숨을 판돈으로 걸고 리니지게임이라도 하고 싶은 걸까?
  
한-미 FTA. 한국 유권자들은 2002년 겨울에 너무 지적인 철학자 대통령을 뽑은 게 분명하다. 철학자의 임무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라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노 대통령에 앞설 철학자는 없다. 그런데 나는 이 변화가 왠지 겁난다.
  
2차 협상 결렬 소식에 한 움큼의 안도감이 들었을 정도다. 나이가 나를 의심 많은 ‘보수주의자’로 만들고 있나 보다. 또 시작된 이스라엘의 전쟁 놀음과 미국의 두둔. 정말 징그러운 신성동맹이다, 이들은.
  
워런 와거의 ‘인류의 미래사’(교양인 발행)는 서기 2200년에 피터 젠슨이라는 가상의 역사학자가 자신의 손녀 잉그리드에게 읽히기 위해 쓴 두 세기 동안의 인류사다.
이 가상의 미래사에 따르면 인류는 21세기 전반기에 세계무역컨소시엄이 이끄는 극단적 자본주의 체제 아래 놓였다가, 2044년에 터진 제3차 세계대전 뒤 세계당이 주도하는 사회주의 세계연방을 이루고, 2147년 세계연방이 해체된 뒤엔 분권화한 소규모 자치공동체들을 꾸린다.
 
지금 진행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결국 세계대전으로 파국을 맞으리라는 게 저자의 상상인데, 가난한 사람들의 지지로 집권한 미국 여성 대통령이 가난한 나라들과 연대해 (자본가들이 쥐락펴락하는) 지구국가연합에 맞선다는 설정이 인상적이다.
  
2198년 어느 날, 지금 덴마크 어디쯤에서 유토피아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린다. 윤석미라는 평양 출신 토론자의 말. “모든 시대는, 비록 그 시대 사람들 눈에는 그리 보이지 않을지라도, 유토피아입니다. 각 시대는 앞서 간 조상들의 열망을 실현합니다. 각 시대를 그 자손들은 노스탤지어라는 황금빛 아지랑이 사이로 엿봅니다. 유토피아는 희망이자 향수병이며, 전능함을 이루려는 열망이자 자궁이라는 아스라한 기억 속 천국으로 돌아가려는 의지이기도 합니다.” ‘절대적 상대주의자’로 설정된 윤석미의 이 발언은 자신의 시대가 유토피아라는 게 아니라 유토피아는 없다는 것이다.
 
아니, 모든 시대는 생각하기에 따라 유토피아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책 저자는 윤석미의 이 지성과 요설을 다소 부정적인 맥락에 배치했지만, 지금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를 견디는데 쓸모 있는 것은 그런 상대주의 같기도 하다. 그런 상대주의 없이 국방위원장 동지를, 시오니스트들과 미스터 프레지던트의 주사위놀이를, 거룩한 시장의 독재를 어떻게 견뎌낸단 말인가?
  
●시대를 견뎌내는 방법
  
그러나 이런 수다는 또 나날의 구체적 삶에서 얼마나 먼가? 세계체제는 우리 일상을 근원적으로 규정하지만, 그것은 근원적인 만큼이나 어렴풋한 허깨비로, 곡두(幻)로 보인다. 지금의 진화단계가 인류 개개인에게 그어놓은 감각의 한계 탓일 테다. 복날이다. 장맛비와 무더위에 지친 몸을,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삼계탕으로든 장어구이로든 추슬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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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31 23:42 2006/07/31 23:42

2 Comments (+add yours?)

  1. 로자 2006/08/01 16:30

    저는 이번 초복 때 처음으로 개고기를 먹었습니다... 맛있던데요. 하하하...;;;
    <인류의 미래사> 재밌겠네요... 음.. 도서관 검색해 보았더니 없군요. 사서 봐야겠군.

     Reply  Address

  2. 새벽길 2006/08/02 16:16

    "어떻게 개고기를... ㅡ.ㅡ;;" 이라고 말하면 뜬금 없는 건가요?
    인류의 미래사를 사시면 읽고 나중에 빌려주세요. ㅋㅋㅋ

     Reply  Add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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