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1'에 해당되는 글 8건
- 작업중 2004/01/28
- 장애우라는 말이 싫어 (2) 2004/01/19
- 설연휴가 기대돼 2004/01/16
- 이미지 광고가 싫어 2004/01/15
- 도그빌 2004/01/13
- 장애인 2004/01/12
- 브루스 올마이티 2004/01/12
- 가만히 있고 싶어 2004/01/07
설날이 일주일도 안남았다.
나는 설에 양재동에 있는 부모님 댁에 잠깐 갔다가는
쭈~욱 논다.ㅋㅋ
사무실에 나올 필요도 없고, 남자친구는 시골에 내려가고,
간소하게 밥해 먹는 일도 즐거울 것이다.
책도 읽고, 그림이나 글자를 긁적거리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아아~ 핸드폰도 꺼놓아야 겠다.
아아~
그런데, 한가지 문제는, 잠이다.
나는 깜깜한 밤을 무서워 한다.
깜깜해지면, 갑자기 방안의 모든 것이 살아서 나를 지켜보는 것만 같아.
그래서, 혼자 있는 밤에 불끄는 것을 두려워 하다보니
밤을 꼬박 새고 만다.
뭐 나름대로 밤을 꼬박 새면서 깔작거리는 것도 즐겁지만
모처럼
남들처럼 살아보려고 애쓴지 겨우 며칠만에
모든 노력을 수포로 돌리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어제는 아침 7시에 일어났다.
나의 의지로 즐겁게 일어나 아침밥도 먹고(대략 11년 만인가!)
샤워도 하고 사무실에 일찍 출근해서는
즐겁게 일도 했건만
집에 돌아오자 알수 없는 짜증비스무리한 것이 물밀듯이 밀려오면서
칭얼대기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칭얼이 난폭이 될 무렵 피곤에 지쳐 잠이 들었으니 망정이지...쯧쯧...
다시는 아침 7시에 일어나거나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어쨌건,
설연휴는 기대되지만 잠은 어떻게 하나....
나는 설에 양재동에 있는 부모님 댁에 잠깐 갔다가는
쭈~욱 논다.ㅋㅋ
사무실에 나올 필요도 없고, 남자친구는 시골에 내려가고,
간소하게 밥해 먹는 일도 즐거울 것이다.
책도 읽고, 그림이나 글자를 긁적거리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아아~ 핸드폰도 꺼놓아야 겠다.
아아~
그런데, 한가지 문제는, 잠이다.
나는 깜깜한 밤을 무서워 한다.
깜깜해지면, 갑자기 방안의 모든 것이 살아서 나를 지켜보는 것만 같아.
그래서, 혼자 있는 밤에 불끄는 것을 두려워 하다보니
밤을 꼬박 새고 만다.
뭐 나름대로 밤을 꼬박 새면서 깔작거리는 것도 즐겁지만
모처럼
남들처럼 살아보려고 애쓴지 겨우 며칠만에
모든 노력을 수포로 돌리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어제는 아침 7시에 일어났다.
나의 의지로 즐겁게 일어나 아침밥도 먹고(대략 11년 만인가!)
샤워도 하고 사무실에 일찍 출근해서는
즐겁게 일도 했건만
집에 돌아오자 알수 없는 짜증비스무리한 것이 물밀듯이 밀려오면서
칭얼대기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칭얼이 난폭이 될 무렵 피곤에 지쳐 잠이 들었으니 망정이지...쯧쯧...
다시는 아침 7시에 일어나거나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어쨌건,
설연휴는 기대되지만 잠은 어떻게 하나....
사랑은 이제 LG의 것이 되었다.
어떻게 LG와 나의 김상을 '똑같은 사랑'으로 대할 수 있겠는가.
나는 더이상 김상을 '사랑'할 수 없다.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
여자마음은 이제 '딤채'가 되었다.
여자마음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모르나
적어도 '딤채'는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나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내 마음에는 하늘도 달도 바다도 아닌
김치냉장고가 담겨 버렸다.
또하나의 가족이라기보다는
아예 유일한 가족이 되어버린 삼성.
텅빈 집에서 세계와의 통로가 되어주고
의지가 되어주고 위로를 주는
내 가족 삼성 TV와 삼성 모니터 만세, 만만세다.
내가 좀 더 어렸을 적엔 광고가 좀 더 솔직했다.
치사하게 거짓말을 할지언정
뜻도 모를 '사랑'이니 '여자마음'이니 '가족'이니
반짝반짝 무지개가 그려진, 속이 텅빈, 실팍한 비누방울같지는 않았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그 광고들은 파괴충동을 일으킨다.
그들이 진흙탕에 쳐박고 있는 그 모든 것이
나를 슬프게 한다, 분노하게 한다.
하루에 열두번도 더 분노하겠구나.
나는 속이 좁아서 대체 TV며 신문이며 도저히 못보겠다!
어떻게 LG와 나의 김상을 '똑같은 사랑'으로 대할 수 있겠는가.
나는 더이상 김상을 '사랑'할 수 없다.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
여자마음은 이제 '딤채'가 되었다.
여자마음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모르나
적어도 '딤채'는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나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내 마음에는 하늘도 달도 바다도 아닌
김치냉장고가 담겨 버렸다.
또하나의 가족이라기보다는
아예 유일한 가족이 되어버린 삼성.
텅빈 집에서 세계와의 통로가 되어주고
의지가 되어주고 위로를 주는
내 가족 삼성 TV와 삼성 모니터 만세, 만만세다.
내가 좀 더 어렸을 적엔 광고가 좀 더 솔직했다.
치사하게 거짓말을 할지언정
뜻도 모를 '사랑'이니 '여자마음'이니 '가족'이니
반짝반짝 무지개가 그려진, 속이 텅빈, 실팍한 비누방울같지는 않았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그 광고들은 파괴충동을 일으킨다.
그들이 진흙탕에 쳐박고 있는 그 모든 것이
나를 슬프게 한다, 분노하게 한다.
하루에 열두번도 더 분노하겠구나.
나는 속이 좁아서 대체 TV며 신문이며 도저히 못보겠다!
라스 폰 트리예의 작품은 폭력적이다.
핸드헬드 카메라의 시선에서부터
진실과 순수의 여주인공에 대한 잔혹하고 구차한 폭행들까지.
부패하고 있는 날고기를 보고 있는 것처럼 구역질이 난다.
어둠속의 댄서를 보다가는 중간에 극장에서 뛰어나와 구토를 했다.
보는 동안에는 눈물 한 방울 나지 않더니
끝나고 나서 가슴속에 얹혀있던 응어리같은 것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한 이틀은 앓았던 것 같다.
그가 싫었다.
굳이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아서 '마구 흔들어 대는 것'이 싫었다.
그가 보여주는 폭력들이 싫었다.
한없이 나약한 진실과 순수가 싫었다.
모든 인간들의 죄를 떠안고 죽어가는 예수의 은유가 싫었다.
인간은 너무 나약해서 진실을 지킬 힘이 없는가?
라스 폰 트리예의 영화가 폭력적인 이유는
나 자신을 극단까지 몰아가서 질문하게 하기 때문이다.
너에게는 진실을 지킬 힘이 있는가?
[미국 삼부작]의 첫 작품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그의 최근 작인 브레이킹 더 웨이브, 어둠속의 댄서와 비슷한 듯 하면서 많이 다르다.
우선은 핸드헬드 카메라가 대단히 절제된 고정 카메라로 대체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차갑게 응시한다.
무대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바로 그 장소가 아닌 연극 무대로 대체되었다.
인간들이 서로를 가리기 위해 만든 벽 같은 것은 허상일 뿐이다.
가장 큰 변화는 결말 부분이다.
'또 이런 식이야, 아~ 짜증난다!' 싶을 때
여주인공이 갑자기 냉정한 시선으로 도그빌을 심판하기 시작한다.
그 심판은 통쾌한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절망이다.
얄팍한 해석인지 몰라도, 그러한 변화들은
그의 시선이 같은 인간의 시선에서 신의 시선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고 느껴졌댜.
[미국 삼부작]이라는 타이틀에서 어쩔 수 없이 미국의 9.11과 그에 잇따르는 반응들을
이 영화와 연관짓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더이상은 인간이라는 싸구려 변명으로 자신들의 죄악을 지저분하게 감추지 않았으면 하는
소박하고도 진부하고 거창한 소망이 감독에게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에 대한 과도한 모욕인 것일까?
결말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는 냉소적이거나 절망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영화가 열려있기 때문이다.
다음 영화에서 그는 어떤 또 다른 변화를 보여줄 것인가?
미치도록 괴롭히면서도 또다시 다가가게 하는 그의 영화가 기다려 진다.
핸드헬드 카메라의 시선에서부터
진실과 순수의 여주인공에 대한 잔혹하고 구차한 폭행들까지.
부패하고 있는 날고기를 보고 있는 것처럼 구역질이 난다.
어둠속의 댄서를 보다가는 중간에 극장에서 뛰어나와 구토를 했다.
보는 동안에는 눈물 한 방울 나지 않더니
끝나고 나서 가슴속에 얹혀있던 응어리같은 것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한 이틀은 앓았던 것 같다.
그가 싫었다.
굳이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아서 '마구 흔들어 대는 것'이 싫었다.
그가 보여주는 폭력들이 싫었다.
한없이 나약한 진실과 순수가 싫었다.
모든 인간들의 죄를 떠안고 죽어가는 예수의 은유가 싫었다.
인간은 너무 나약해서 진실을 지킬 힘이 없는가?
라스 폰 트리예의 영화가 폭력적인 이유는
나 자신을 극단까지 몰아가서 질문하게 하기 때문이다.
너에게는 진실을 지킬 힘이 있는가?
[미국 삼부작]의 첫 작품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그의 최근 작인 브레이킹 더 웨이브, 어둠속의 댄서와 비슷한 듯 하면서 많이 다르다.
우선은 핸드헬드 카메라가 대단히 절제된 고정 카메라로 대체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차갑게 응시한다.
무대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바로 그 장소가 아닌 연극 무대로 대체되었다.
인간들이 서로를 가리기 위해 만든 벽 같은 것은 허상일 뿐이다.
가장 큰 변화는 결말 부분이다.
'또 이런 식이야, 아~ 짜증난다!' 싶을 때
여주인공이 갑자기 냉정한 시선으로 도그빌을 심판하기 시작한다.
그 심판은 통쾌한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절망이다.
얄팍한 해석인지 몰라도, 그러한 변화들은
그의 시선이 같은 인간의 시선에서 신의 시선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고 느껴졌댜.
[미국 삼부작]이라는 타이틀에서 어쩔 수 없이 미국의 9.11과 그에 잇따르는 반응들을
이 영화와 연관짓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더이상은 인간이라는 싸구려 변명으로 자신들의 죄악을 지저분하게 감추지 않았으면 하는
소박하고도 진부하고 거창한 소망이 감독에게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에 대한 과도한 모욕인 것일까?
결말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는 냉소적이거나 절망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영화가 열려있기 때문이다.
다음 영화에서 그는 어떤 또 다른 변화를 보여줄 것인가?
미치도록 괴롭히면서도 또다시 다가가게 하는 그의 영화가 기다려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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