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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 내용 유출 있음.

  • 등록일
    2012/02/10 02:26
  • 수정일
    2012/02/13 13:12

0.

원제 : Ensaio sobre a cegueira  (실명失明에 대한 에세이)

영제 : Blindness (실명失明)

한제 : 눈먼 자들의 도시

이렇게 보니 원제가 바뀌어 가는 양상을 보는 기분 (...)

 

1. ㅇㅈㅇ와 소설 스터디를 3주째 하면서 읽은 책.

ㅅㅇㅅ가 재밌다고 했던 것 같아서(아닌가?)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는데,

기대한 만큼 인상 깊지는 않았다.

 

2.

제일 처음 눈이 머는 순간은 강렬했다.

'눈이 안 보여'

느닷없이 닥친 재난. 공포. 당황. 영문도 모르는 주변인. 막혀 버린 도로.

내가 저런 상황에 처하면 어떨까 상상하고 겁내면서 읽었다.

 

2-1.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먼다면?

- 이런 발상을 했고, 그걸로 이야기를 만들어 낸 데 감탄했다.

나라면 그런 참신한 발상을 못했을 거고,

했더라도 이야기로 완성하지 못했을 것 같다.

 

3.

그러나 멀쩡히 잘 살던 한 사람 한 사람이

(첫 번째 사람과 접촉이 있고서) 전염병처럼 눈이 멀어가는 과정은 지루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필요한 부분이겠다 싶기도 한데

읽을 때는 '모두 한꺼번에 눈이 멀었다고 하는 게 낫겠다ㅠㅠ' 이랬다.

 

4.

전체적으로 '실감이 안 난다'는 느낌.

수도도 안 나오고, 대소변을 내릴 수도 없는 수용소(?)에 유폐당한 채

밥도 제 때 앙껏 못 먹고, 나가려고 하면 총 맞아 죽고, 여자는 강간까지 당하는데

(남자 여럿에게 너무 심하게 강간당한 나머지 죽는 여자도 있다),

소설 첫 부분에서처럼 겁이 나진 않았다.

공포에 질려서 수용소의 맹인을 쏴 죽인 병사도

생각해 보면 안쓰러운 상황인데 별 감흥이 안 생겼고,

강압에 못 이겨 오랄을 하는 상황도 다소 작위적이라 느끼며 무심히 보았다.

(ㅇㅈㅇ도 '분명히 끔찍한 상황인데 에구, 어쩌나 싶지 않고

그런갑다 싶었다'고 하더라.)

 

5.

간간이 작가의 생각을 대변하는 인물이 거슬렸다.

크게 거슬린 부분만 짚으면 이렇다.

'우리는 우리 분수에 맞지 않은

마지막 한 조각의 존엄성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소.'

- 검은 안대를 한 노인 (275쪽)

이 노인은 그 뒤에도 작가의 철학을 전하는 듯한 인상을 몇 번 풍긴다.

그래서인지 다른 인물이 그에게 '이제 보니 철학자시네요'라고 말하기도 하더라.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볼 수는 있지만 보지는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 의사의 아내 (461쪽)

감각을 잃었다가 되찾고 환호하는 상황에

왜 저런 추상적인 얘기를 나오는 거야 -_-;;;;;

볼 수는(시력) 있지만 보지는(작가의 지향) 않는 <--- 라고 짐작되지만,

저 상황에 자연스럽게 느껴지진 않았다.

 

6.

이런 발상을 했고, 그걸로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과 첫 장면의 강렬함이 아쉬운 책.

그래서 '첫 끗발이 개끗발'이라고 요약했다.

한편 ㅇㅈㅇ는 '흐릿하다'고 요약하면서 김현이라는 사람의 말을 인용했다. 

'소설에서는 선명하지 않은 것도, 선명하게 선명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했단다.

알 수 없는 걸 표현했을 때 '이게 알 수 없는 거구나'라고 분명히 와닿아야 한다는 뜻이란다.

 

7.

다음 책은 <아버지에게 네 가지 질문을> (ABE 전집 82권).

중원문화사에서도 <아버지에게 던지는 네 가지 질문>으로 번역해 출간했다.

나는 지금도 의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ㅇㅈㅇ한테는 어떠려나 6-_-`.`.`.

 

 

 

뱀발) 포르투갈어를 공부할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사전까지 뒤진 김에 메모함.

- Ensaio : 에세이

- sobre : ~에 대한

- a cegueira : 실명失明

 

뱀발2) '백색 어둠'. 어둠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려고 한 듯.

근데 번역은 '하얀 어둠'이 낫지 않나 6-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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