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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은 김치찌개 한 냄비 놓은 게 전부인데도 밥을 양푼으로 퍼다놓고 먹기 시작하였다.
엄마네 김치찌개는 어찌 멸치국물만으로 끓여도 이렇게 다냐.
그거 멸치만 넣은 거 아냐. 동태대가리도 넣었다야.
웬 동태대가리?
시장길 여고 후배가 언니 이거 가져가, 언니 줄려고 남들이 대가리 안 넣어준다고 뭐라 하는 걸 다 무시 하고 꼭꼭 싸놨는데. 이거 가져가.하고 날 그렇게 주고 싶어해.
왜 그래?
내가 지나가다 야쿠르트 한 병도 주고, 엄마 있을 때 엄마 드리라고 음료수 하나 사다주고,하니까 날 언니언니하면서 좋아하네. 사람들 다 나 좋아해. 영화사(엄마 다니는 절)에서도 다 나만 보면 좋아서 우리집에 놀러오고 싶어하고, 뭐든 주고 싶어하고 그런다니까.
그러게, 내가 봐도 엄마는 누구든 좋아할만한 양반이다. 그 나이 되도록 욕심 없고 헛치레없고 바보처럼.
그런데 아빠만은 그런 엄마를 인정하지 않는다.
세상이 다 인정하지 않는대도 서로 인정해야할 관계라면 부모와 자식이고 부부이더라. 그게 결국 인간살이더만, 그런 의미에서 우리 아빠, 그 고집 좀 이젠 꺽으시면 좋을텐데 여자 앞에서는 반드시 대접을 받아야한다.
사실 알고보면 아빠는 엄마에게 가장 의지하고 있다.
내가 봐도 알겠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외출하는 걸 무지 싫어했었는데, 난 그게 그냥 꼴통 가부장이라 그런 건 줄 알았었다. 어쩌면 내가 어렸고 두 양반이 젊었을 땐 그래서 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아빠는 집에 엄마가 없으면 날개 떨어진 수탉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곧 죽어도 붉은 벼슬을 곧추 세우는 폼을 하고 있지만, 여지없이 느껴진다. 그래서 엄마가 어딘가로 놀러간다,하면 아빠는 대리전쟁을 한다.
며칠전엔 엄마가 즐겨듣는 라디오 불교 방송의 어떤 프로의 공개녹화를 들으러 간다고 했단다.
토요일 오후였다.
처음에 우리 아빠는 스스로도 개선되려 마음 먹었고 그걸 보이려했는지..
당신 밖에서 밥 사먹는 거 싫어하니까 고구마 좀 싸가져가서 출출하면 먹지그래. 그게 냄새도 안 나고 좋아.했단다.
나가기 한 시간 여 전. 엄마, 안방에서 신문 펼쳐놓고 보고있는데 아빠가 난데없이 청소기를 들고 들어와 청소를 시작하며 딴 데가서 신문 펼쳐보라고 빽 고함을...
어이없는 우리 엄마, 어차피 한 시간 후면 나 외출할 건데 이왕 청소할 것 그때 아무도 없을 때 청소하면 편하잖아?(그게 원래 주부들이 일하는 방식 아닌가)
아침밥먹고 무슨 일을 했다고 지금 큰소리야.라는 아빠의 대꾸.
이런 식이다.
결국 엄마 혼자 외출을 앞두고 아빠는 불안불안.. 자신의 불만을 그러나 솔직하게 말도 못 하고 대리전쟁을 시작한다.
엄마는 내가 동태대가리 김치찌개와 밥 한 양푼을 먹는 동안 아빠 흉을 내차 봤다.
딸래미한테 아빠 흉 보는 게 마음 편한 엄마에게 나도 정성껏 대꾸. 맞장구를 쳤다.
우리는 그렇게 같이 아빠 흉을 본다.
그런데 지금 엄마 눈에 눈물이 그렁하다.
지금 속에 있는 얘기는.......
가슴 칠 일이 하나 있는데.. 이 얘길 내가 누구한테 하겠니.. 아고, 너한테 또 이 말하면 너도 가슴 아플텐데..
얼마전에 어린이집에서 빨개벗겨 벌 세운 선생 얘기 나왔었잖아. 그걸 보더니 나쁜놈들,나쁜놈들 그러더라. 늬 아빠가. 그런데 생각나? 우택이에게 그랬었잖아. 어렸을때. 너 기억나? 그래서 내가 눈물만 뚝뚝 흘리고 반성할 사람은 우리야.그말만 하고 말았어.
지금 속에 있는 얘기는 역시 동생 얘기였다.
그래도 엄마는 이제 그런 짤막짤막한 얘기를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다.
그리고 나도 엄마 앞에서 동생 얘기로 눈물을 흘릴 수 있다.
올해로 동생 11주기가 된다. 벌써.
2월3일은 그 아이의 생일이었다.
나는 걔가 죽은 후 몇년 동안은 생일날에 생크림케잌을 사가지고 그 아이 뼛가루를 뿌렸던 산에 갔었다.
그런데 생일은 산 사람에게이고, 죽은이에게는 제일인것이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생일날이면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
생일날에 어떤 선물이 좋을까,가 더 어울리는 나이인 것이다. 걔는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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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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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아픈 글이예요. 저희 엄마도 동생 발가벗겨서 쫓아낸 적이 있었는데...제 블로그가 어둡다는 사람이 있어서 글을 안올리고 있었는데요 요며칠 죽은 후배가 자꾸생각이 났었어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 기도를 해요. 성공회 미사 시간에 별세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순간이 있거든요.그래서 일주일에 한번씩은 그 사람을 생각해요. 그게 저를 위한 일이라하더라도 상상을 해요. 밝은 빛 안에서 평화롭게 있는 그 애를. 설 잘 보내요....부가 정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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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세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순간이라니, 좋은 기회를 사람들에게 만들어주는군요. 일본에 낙태한 아이들의 영혼을 위한 무덤인가 사당인가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일부러 만드는 기회가 좋은 거 같아요..부가 정보
동란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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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지갑속에 있던 동생 사진 보고, 내가 여자친구 있냐고 그랬더니 아마 있다고 그랬었어. 2000년인가지. 동생에 대한 얘기, 이제 처음 듣네... 언니의 글로. 우리 엄마도 나하고만 하는 이야기가 많아. 내가 들어주고 맞장구쳐주지. 아빠 흉보고, 엄마 지난날 얘기하고. 자식을 잃은 엄마들은 마찬가지야. 그 자식과 관련한 얘기. 아무리해도 후회가 끊이지 않지. 엄마와 얘기하다보면 항상 잃은 오빠얘기가 나와.그래도 우리엄마, 신앙으로 잘 이겨내셨지만. 이제라도 그렇게 이야기 꺼내시는 언니 엄마, 언니, 다행이다... 언니 엄마. 사무실로 팥죽이며 맛있는 음식 싸가지고 오실때 언니 덕분에 얻어먹고 그랬는데.활짝 웃으시고. 정말 엄마사랑이 흘러 넘친다고 느꼈지. 건강하신가?부가 정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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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여전 건강하시다네. 나도 여전 엄마가 제일 만만해 엄마만 보면 짜증만빵인 싸가지 딸이고... ^^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