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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범주와 자연과학

「물질 범주와 자연과학」 『총명한 유물론』 제3집 가을호


„Glava VI: Kategoriya materii i yestestvoznanie“, Materiya kak filosofskaya kategoriya, Moskva: Izdatel'stvo AN SSSR, 1961, 237-70.


F. T. Arkhiptsev | 구 소련 유물론 철학자

    ✮ α. 물질 범주의 발전에서 자연과학의 긴요성
    ✮ β. 자연과학의 발전에서 물질 범주의 긴요성
    ✮ γ. 현대물리학에서 물질 범주, 그리고 유물론과 관념론 사이의 투쟁


L12✬ R12

“자연과학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가르침이 객관적 실재를 반영한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오직 이러한 철학만이 자연과학과 양립할 수 있다!”1​

 

AA AB AC AD AE AF AG AH AI AJ AK AL AM AN AO AP AQ AR AS AT AU AV AW AX AY AZ BA BB BC BD BE BF BG BH BI BJ BK BL BM BN BO BP BQ BR BS BT BU BV BW BX BY BZ CA CB CC CD CE CF CG CH CI CJ CK CL CM CN CO CP CQ CR CS CT CU CV CW CX CY CZ DA DB DC DD DE DF DG DH DI DJ DK DL DM DN DO DP DQ DR DS DT DU DV DW DX DY DZ EA EB EC ED EE EF EG EH EI EJ EK EL EM EN EO EP EQ ER ES ET EU EV EW EX EY EZ

물질 범주의 발전에서 자연과학의 긴요성

 

철학적 유물론과 물질의 구조 및 속성에 관한 자연과학 이론 사이의 연관성이 긴요한 이유는 두 이론이 서로를 풍요롭게 한다는 점에 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적 물질 이해는 노동하는 이들과 과학의 사회적-역사적 실천에 기초하며, 이 실천은 “사물, 세계, 환경이 우리와 독립하여 존재한다는 우리의 확신을 만들어낸다. ⋯ 우리의 감각들이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외부 세계의 반영들이라는 ‘소박 실재론자들(즉 모든 인류)’2의 확신은, 자연과학자 대중의 변함없이 성장하고 강화되는 확신이다.”3

 

과학과 기술의 전 역사, 인간의 일상생활, 살아있는 인간의 실천은 필연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 ⋯ 우리 바깥에, 그리고 우리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사물, 물체, 신체가 있으며, 우리의 감각은 외부 세계의 반영”4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 유물론은 이 결론을 의식적으로 인식론의 핵심에 두고 있다.

 

자연과학은 물질 개념을 비롯하여 철학적 유물론의 제 원리를 정립하는 데서 일차적 의의를 지닌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세계의 물질성에 관한 변증법적 유물론의 테제가 철학과 자연과학의 길고 험난한 발전을 통해 입증된다고 썼다. 레닌의 물질 규정은 인류 인식 발전 역사의 논리적 결론이자 귀결이다.

 

자연과학 발전의 모든 단계는 물질을 철학적 범주로 정의한 레닌의 견해를 뒷받침한다. 자연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유형의 물질이 발견되고, 외부 세계의 본질에 대한 관념론자들의 자의적이고 선험적인 구성이 반박된다.

 

아카데미 회원 S. I. 바빌로프는 다음과 같이 썼다: “무엇보다도 밝혀지는 세계 시스템의 뜻밖임, ‘기이함(dikovinka)’은 이 세계의 객관성을 확증하는 심오한 논거의 하나이다.”5

 

물리학, 화학 및 기타 과학은 특정 종류의 물질의 특수한 성질들을 발견하며, 이러저러한 자연 현상의 초자연성에 관한 관념론적 및 종교적 관념들을 반박한다. 자연과학은 다양한 종류들의 물질이 지닌 보편적 물리적 성질들(질량, 에너지 등)과 이러한 성질들의 보존 법칙들을 밝혀내며, 이 법칙 속에서 물질의 불멸성(neunichtozhimost')과 창조 불가능성(nesotvorimost')이 발현된다.

 

자연과학은 철학적 유물론과 자연의 변증법적 이해의 경험적 기초가 됨으로써─물질의 빛으로의, 그리고 그 역으로의 이행과 같은, 물질의 다양한 종류의 상호 이행, 또한 어느 한 종류의 물질의 타 종류의 물질로부터의 역사적 기원을 밝혀내면서─세계의 물질성과 그것의 통일성을 증명한다. 반면 변증법적 유물론은 자기 발전에서 자연과학의 성과에 뿌리를 둔다.

 

유물론적 철학의 이러저러한 발전 단계상에서의 성격, 특징, 형태를 규정함에서,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지적했듯이, 항상 자연과학의 수준과 상태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엥겔스는 18세기 프랑스 유물론의 기계론적 성격의 원인을 규명하면서, 그 당시 물리학, 화학 그리고 생물학이 발달하지 못했으며, 그것이 자연에 관한 어떤 보편적 관점의 기초로서 기능할 수 없었다는 점을 첫째로 지적한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고전들은 철학적 유물론과 그것의 물질에 관한 학설이 자연과학의 전진적 발전에 의존함을 발견했다. 엥겔스가 썼듯이, “시대를 이루는 각각의 발견과 함께, 자연사적 영역에서조차 유물론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형태를 바꾸어야 한다.”6 유물론의 형태 변화와 함께 물질에의 철학의 표상 또한 변화했다.

 

자연과학은 물질의 특정한 운동 형태, 개별 측면, 자연의 속성, 물질체의 구조와 구성 등을 연구함으로써 철학적 일반화를 위한 사실적 자료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물질의 속성으로서 운동에 대한 입장을 정립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자.

 

변증법적 유물론에 의한 물질과 운동의 불가분성 입증은 형이상학적 유물론과 그것의 본질적인 질적 차이의 하나이자 현대 관념론(토마스주의, 에너지론7 등)과의 투쟁에서 긴요한 명제이다.

 

마르크스 전(前) 유물론은 물질과 운동의 연관에 관한 당시 자연과학의 제한된 표상들에 의거하고 화학, 생물학, 지질학과 같은 지식 분과들의 미발달에 의존하여 발전의 사상을 논증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사상은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갔으며,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일련의 과학들에서─천문학, 지질학, 생물학에서─물질의 진화를 증명하는 재료가 축적되었다. 더욱이 이미 18세기 중반 M. V. 로모노소프의 ‘물질과 운동 보존의 보편적 자연법칙’의 발견과 태양계의 발생·발전에 관한 I. 칸트의 가설 제창 시기부터 운동은 물질에서 떼어낼 수 없는 속성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엥겔스는 마지막 발견과 관련하여 만약 자연과학자들이 사유에 대한 혐오감을 느끼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칸트의 천재적인 발견으로부터(이는 로모노소프의 발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정당하다) 가장 위대한 결론들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썼다.

 

만약 우리 태양계와 지구가 시간 속에서 형성된 어떠한 것이라면, 지구의 지질학적, 지리적, 기후적 상태, 동식물 또한 형성된 어떠한 것이어야만 했다. 당시의 자연과학자들은 이와 유사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로모노소프와 칸트의 천재적 사상과는 독립적으로도, 인식의 또다른 영역에서 자연과학은 다시금 발전이라는 사상에 부딪혔다. 지구가 시간 속에서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확립한 지질학이 발생했다. 이때 지질학은 “ ⋯ 서로의 뒤를 이어 형성되고 서로의 위에 놓여 있는 지질학적 지층들의 현존뿐만 아니라, 이 지층들 속에 보존되어 있는 멸종된 동물들의 껍데기와 골격, 이제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식물들의 줄기, 잎 그리고 열매도 발견했다.”8

 

이 모든 것은 지구상 동식물이 변화하며 자신들만의 발전의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증명했다. 하지만 형이상학적으로 사유하는 자연과학자들은 날마다 발전하는 자연과학에 의해, 삶 그 자체에 의해 암시되는 이 결론에 저항했다.

 

퀴비에는 동식물 세계의 변화들을 재앙, 세계의 멸망 그리고 새로운 세계의 탄생으로 설명하는 형이상학적이고 반동적인 가설을 제안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썼듯이, 퀴비에의 이론은 “신의 단일한 창조 행위 대신에 수많은 반복적인 일련의 창조 행위를 자리매김했으며 기적을 자연의 본질적인 지렛대로 만들었다.”9 오직 라이엘만이, 자신의 이론이 지닌 일련의 본질적 결함들에도 불구하고, 창조자의 변덕에 의해 야기된 갑작스러운 혁명을 지구의 느린 개조의 점진적 작용으로 대체했다.

 

각각의 자연과학이 지식의 자신만의 제한된 영역을 다룬다는 사실은, 자연의 모든 현상·과정의 공통적인 것을 연구하며 개별 과학의 발견들에 의거하여 어떠한 개별 과학에 대해서도 구속력을 지니는 결론들을 도출할 마땅한 지식의 특수한 분과를 요구한다. 공통적인 것을 연구하며 온갖 운동과 발전이 복종하는 일반 법칙에 관한 지식을 제공하는 바로 그러한 특수 과학이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이다. 과학적 철학에의 무지는 자연과학자들로 하여금 맹목적으로 우회로들을 따라 헤매게 만들며, 종종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막대한 양의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게 만든다.

 

운동이 물질의 떼어낼 수 없는 속성이라는 명제의 수립, 그리고 물질과 운동의 불가분성이라는 명제에 관한 사태는 이런 식으로 전개되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과학 지식과 실천의 일반화에 기초하여, 운동 밖의 물질은 존재하지 않으며, 운동은 물질의 가장 본질적인 속성이자 그것의 떼어낼 수 없는 속성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측면에서, 자연과학과 특히 물리학이 새롭고 커다란 발견들과 함께, 운동하는 물질은 시공간 밖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어떻게 확증해 왔는지를 추적하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시공간에서 운동하는 물질로서의 세계에 관한 변증법적 유물론의 학설은 무엇보다도, 물질의 운동과 그것의 연관 속에 있는 시공간의 속성에 관한 물리학의 자료들(뉴턴과 그의 추종자들의 물리 이론,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 등)에 기초한다.10

 

물질에 관한 변증법적 유물론 학설의 발전을 위해 특별히 중요한 의의를 지니는 것은, 외부 세계의 가장 일반적이고 가장 단순한 속성들과 법칙들을 연구하는 과학인 물리학에서의 실험적 및 이론적 발견들이다. 바로 물리 현상을 탐구하는 과학이 주로 자연과학적 세계상을 정립한다. 따라서 역학은 19세기 말-20세기 초 물리학에서의 위대한 발견이 있기 전까지 자연에 대한 지배적이었던 이해를 규정했다. 이의 교체로 전자기적 세계상, 그리고 뒤이어 양자역학적 및 핵이론적 세계상이 도래했다.

 

자연과학의 발전에서 물질 범주의 긴요성 

 

새 시대─자연과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들의 시대이자 동시에 물리학의 위기의 시대─에 발전된, 물질에 관한 레닌의 학설은 개별 자연과학의 발전을 위한 지도적 의의를 지닌다.

 

다양한 변종의 관념론, 그중에서도 ‘물리학적’ 관념론과의 투쟁 속에서 도출된, 철학적 범주로서의 물질에 관한 레닌의 학설의 의의는 특히나 크다. 물질의 철학적 개념과 그것의 구조 및 속성에 관한 자연과학적 표상의 연관에 관한 명제는 유물론으로부터 물리 이론을 관념론적으로 단절시키는 것을 겨냥했다.

 

자연과학을 위해 커다란 의의를 지니는 것은, 물질의 개념 속에 표현되어 있는 현실에 관한 그러한 지식들, 즉 어떠한 과학 연구 대상의 의식과 인식으로부터 독립적인 객관적 성격, 세계를 그것의 본성에 있어 물질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 물질의 창조 불가능성과 불멸성, 물질과 운동의 불가분성, 물질과 그것의 존재 형식들─시공간─의 통일성, 사물·현상·속성과 운동 형식의 무진성, 심층으로의 물질의 무한성 그리고 변증법의 법칙에 의하는 물질의 자기 발전의 무한성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원리는 자연과학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을 가능하게 하는, 지식의 토대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자연과학을 운동하는 물질에 관한 과학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물질에 관한 철학적 해석은 자연과학의 대상과 목적들, 그것의 연구 기법과 수단을 정의하는 데서 직접적인 방법론적 의의를 지닌다. 지식의 원천으로서의 물질에 관한 이해, 외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자 하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기본 지침은 과학적 사고를 현실의 사실에의 연구로 향하게 한다.

“⋯ 모든 과학 영역─자연의 영역에서든 역사의 영역에서든─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실들로부터 출발해야 마땅하며, 따라서 자연과학에서는 다양한 대상적 형태와 물질의 다양한 운동 형태로부터 출발해야 마땅하다 ⋯ 따라서 이론 자연과학에서 역시 연관들을 임의로 구성해 내고 그것들을 사실들 속에 들여놓아서는 안 되며, 오히려 사실들로부터 그것들을 추출해야 하고, 그것들을 발견한 후에는 가능한 한 경험적인 방법으로 그것들을 증명해야 한다.”11​

물질 범주는 자연과학을 위해 방법론적 의의를 지닌다. 이와 관련하여, 문헌 속에는 인식의 방법으로서의 변증법을, 현실의 현상들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이론이자 인식론으로서의 유물론에 맞세워 대립시키는 경향이 널리 퍼져 있음을 지적해 둔다. 방법과 이론의 그러한 대립은 비판을 견뎌내지 못한다. 특히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고전들이 헤겔 변증법을 단지 방법으로서뿐만 아니라 논리학이자 인식론으로서 고찰했다는 사실이 바로 이를 증명한다.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적 방법은 형이상학과의 투쟁에서뿐만 아니라 관념론적 헤겔 철학과의 투쟁 속에서도 탄생하여 성장했다. K. 마르크스와 F. 엥겔스는 변증법적 방법의 전개 분야에서의 헤겔의 공헌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 출발점에서의 관념론적 관점에 주된 결함이 있었다고 간주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절대 이념이 변증법적으로 발전하는 헤겔과 대조적으로, K. 마르크스와 F. 엥겔스는 물질, 객관적 실재, 자연 그리고 사회의 발전으로부터 출발한다. F. 엥겔스에 의하면, 변증법은 현실의 아날로그이며, 따라서 해명의 방법─객관적 세계의 모든 현상을 탐구하기 위한 방법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들은 변증법이 그것의 ‘근본정신(osnovnomu dukhu)’에 있어 유물론적이라는 점을 입증해야만 했다.

 

K.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나의 변증법적 방법은 그것의 기초에 있어 헤겔의 방법과 단지 다를 뿐만 아니라 그것의 완전한 대립물이다. 헤겔이 그가 이념이라는 명칭 하에 심지어 자립적인 주체로 다듬어 놓는 사고 과정은 실재적인 것의 데미우르고스(창조자)이며, 실재적인 것은 단지 그것의 외적 현현을 구성할 뿐이다. 반대로 나에게 이념은 인간의 머리 속으로 옮겨 심어져 그 안에서 변형된 물질적인 것에 다름 아니다.”12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세계관뿐 아니라 인식 방법으로서도 헤겔 관념론에 반대한다. 물질이 먼저 오는가, 아니면 관념이 먼저 오는가 하는 명제는 변증법적 방법의 핵심 요소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들이 그것을 따르면서 진리에 도달하는, 인식의 근본적-방법론적 원칙에는 “모든 것은 운동하며 변화한다”는 테제뿐만 아니라 “물질이 의식을 규정한다”는 테제 역시 속한다.

 

마르크스 전 유물론에서는 물질 범주가 지니는 방법론적 의의의 문제가 다루어지지 않았으며, 철학의 근본문제에 관한 유물론적 해법과 과학적 인식의 방법론 사이에 내적 연관성을 확립하려 시도하지도 않았다.

 

V. I. 레닌은 자연과학에서의 혁명과 무엇보다도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독립적인 객관적 실재성을 인정하기를 거부한 일부 자연과학자에 의해 야기된 19세기 말-20세기 초 물리학의 위기에 대한 분석과 연관하여, 물질 범주가 지니는 방법론적 의의, 철학의 근본문제에의 해법 그리고 유물론적 인식론을 정립했는데, 이 위기는 부르주아 사회에서의 관념론의 지배와 물리학자 대다수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무지의 조건들 속에서 진행되는 물리학 내부의 낡은 개념의 파열 속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이러한 조건들 속에서 V. I. 레닌은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적 유물론이 자연과학의 유일하고 일관되게 과학적인 기초이며, 그것의 가장 심오한 내용으로서 그것이 변증법적이라는 점을 입증해야만 했다.

 

자연과학은 인간의 의식과 무관하게 우리의 의식 외부에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인식론에서 물질이라고 불리는 것─를 연구한다는 레닌의 명제는, 과학적 사고를 물질적 물체들의 구조에 관한 문제들, 지구상의 생명 및 인간 사회의 기원에 관한 원인과 합법칙성에 관한 문제들의 연구로 향하게 한다.

 

유물론은 자연과학이 아직 해결하지 않은 문제를 명확히 제기하며 바로 그로 인해 그것에의 해결과 추가적인 실험적 연구들로 [과학을] 떠밀어내는 데 반해, 관념론은 일반적으로 어떠한 초감각적이며 인식에 접근할 수 없는 힘, 이념 또는 의지에 의한 세계의 창조에 관한 주장으로 자연의 인식을 지연시키고, 새로운 낱말과 자의적이고 작위적인 이론의 발명으로 자연과학자들을 당혹스럽게 하며, 문제의 해결이라는 외관을 만들어내면서 자연과학을 올바른 길로부터 일탈하게 한다.

 

자연에 관한 지식에서 물질에의 유물론적 가르침의 방법론적 긴요성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원자론을 들 수 있다.

 

초감각적 본질이 아니라 물질적 물체의 구조라는 문제로 자연과학자들의 주의를 환기한 것은 유물론 철학의 가장 위대한 공헌이다. 원자론의 기본 명제가 유물론 철학자들과 자연과학자들에 의해 창출되고 전개되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식의 역사에서 원자론은 거의 언제나 유물론적 이론으로서 출현하였다. 물질의 구조에 관한, 그리고 원자와 다른 입자의 객관성과 인식 가능성, 그것의 무진성에 관한 현대 지식의 원리적 기초들은 유물론 철학이 발전시켰다.

 

만약 자연과학이 자신들의 연구를 유물론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그것의 발전 법칙이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점으로부터 출발했거나 존재하는 모든 것이 감각의 총합이거나 절대정신의 타재(他在)라는 점으로부터 출발했다면, 자연과학은 그토록 성공적으로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연과학의 연구 주제 그 자체인 자연은 자연과학자들을 자연발생적 유물론적 입장들로 떠민다. 관념론자들은 오래전에 이를 인정했고 이로부터 상응하는 결론들을 이끌어냈다. 예를 들어, 주관적 관념론자들은, 세계의 구조와 속성에 관한 물리적 표상들을 비롯한 지식이 단 하나의 조건 하에서만 있을 수 있음을 표명해 왔고 지금도 표명하고 있다: 그 조건이란 만약 자연과학이 세계에 대한 유물론적 관점, 즉 물질이 객관적 실재임을 승인하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협소한 전문 분야의 테두리 속에 스스로를 가둔 채, 자신의 발견들로부터 비롯되는 이론적-인식론적 일반화와 결론을 관념론 철학자들에게 내맡겨 버리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한 버클리의 견해의 본질을 개진하면서 V. I. 레닌은 다음과 같이 썼다: “외부 세계, 즉 자연을 우리 안에서 신에 의해 유발되는 ‘감각의 조합’이라고 간주하자. 이것을 인정하라, 의식의 외부에서, 인간의 외부에서 이 감각들의 '기초'를 찾는 것을 포기하라 ─ 그러면 나는 내 관념론적 인식론의 테두리들 내에서 모든 자연과학을, 그 결론들의 모든 의의와 타당성을 인정하겠다. ‘세계와 종교’에 유리한 나의 결론들을 위해 내게는 바로 이 테두리가, 오직 이 테두리만이 필요하다. 이것이 버클리의 생각이다.”13

 

마흐주의자들의 자연과학에 대한 태도를 철저하고 심오한 분석에 노출시키면서 V. I. 레닌은 이 문제에서의 그들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우리는 과학을 당신들에게 넘겨주겠다, 신사 자연과학자 여러분, 그러니 우리에게 인식론과 철학을 넘겨달라 ─ 이것이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신학자들과 교수들의 공존 조건이다.”14

 

관념론자들은 과학이 무의식적으로 유물론의 인식론적 전제들을 고수하고 있음을, 자연과학자들의 자연발생적 유물론과의 투쟁에서 자기 자신이 수다한 편법에 호소하고 있음을 목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자연과학 이론을 유물론 철학으로부터 떼어내어 그것에 관념론을 덧씌우려 든다.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는, 관념론 철학은 “과학이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인식론적 전제들에 대한 비판을 필연적으로 포함한다”15고 표명한 심령론자 워드의 발언들이 인용되어 있다. 레닌은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정말 그렇다! 자연과학은 이 가르침이 객관적 실재를 반영한다는 점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오직 그러한 철학만이 자연과학과 양립할 수 있다!”16

 

V. I. 레닌은, 의식에 반영되는 외부 세계의 객관적 실재에 관한 압도 다수 자연과학자의 자연발생적이고 철학적으로 무의식적인 확신이야말로 온갖 부류의 관념론 소학파의 모든 노력과 헛된 발버둥이 부서져 깨지는 기반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하여 자연과학자들이 변증법적 유물론과 그 물질에 관한 가르침을 의식적으로 장악하는 것의 의의는 한층 더 지대해진다.

 

자연과학에서 각각의 구체적 탐구 대상이 물질의 운동 법칙들에 따라 발전하며 어떠한 ‘세계정신’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한 확신, 즉 인간의 사고가 자신 외부에서 그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외부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확신은, 실재를 한층 더 심오하고 진실되게 반영하는 물리 이론들의 창출을 상당 정도 자극한다. 그리고 인간의 인식이 자기를 에워싼 세계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수록, 탐구 대상이 더더욱 복잡해질수록, 자연과학자가 변증법적 유물론을 의식적으로 장악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진다. 이제 자연과학을 위한 물질이라는 철학적 개념의 의의가 명백해진다. 의식에 반영되는 객관적 실재로서의 물질 개념은 모든 자연과학적 이론과 과학적 연구를 위해 일반적이고, 무조건적이며, 필수적인 전제이다.

 

자연과학의 발전을 위한 물질이라는 철학적 범주의 그리고 이 범주의 레닌에 의한 발달의 방법론적 의의는, 20세기 물리학적 관념론에 대항한 유물론의 투쟁에서 특히나 실감된다.

 

지난 세기 말, 형이상학적 유물론이 물리학자 사이에서 지배적인 세계관이었고 주로 물질에 관한 교의 분야에서의 새로운 발견들과 이 발견들이 야기한 개념의 파열을 해명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관념론자들은 물리 현상을 취급하는 학자들의 인식론적으로 부적절한 표현들인 “물질은 소멸한다”, “물질은 전기로 환원된다” 등을 집어 들고서는, “물질은 낡았다”, “물질은 소멸했다”, 유물론은 기실 논박되었으며 관념론은 물리학의 새로운 발견들 속에서 과학적 정당성을 획득했다는 식의 견해를 통짜 묶음으로 그것을 부풀려 과장하려 시도했다.

 

철학적 범주로서의 물질에 관한 레닌의 분석은 물리학의 새로운 발견들의 유물론적 일반화에서 거대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그것은 차례로 자연과학 교설의 이론적 및 방법론적 기반으로서 물질 범주 자체의 한층 더 정확한 규정의 도출에 이바지했는데, 아울러 그것은 이 발견들에 기생하는 관념론의 사상적 격파에서도 커다란 의의를 지녔다. 레닌은 “물질의 소멸”이라는 관념론적 결론의 인식론적 뿌리가 물질이라는 개념에 원자의 불가분성, 질량의 불변성 등이 결부되어 있다는 형이상학적 명제에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그는 원자의 가분성과 가변성, 새로운 형태의 물질(여기서는 전자 및 기타 소립자들), 물질에서의 새로운 물리화학적 속성들의 발견은 오직 인식이 더 깊어지고 있다는 점을, 그리고 불변하는 질량 관념에 기초하고 느린 운동들의 속성과 법칙을 반영하는 뉴턴 역학이 빛의 속도에 근접하는 속도로 운동하는 물리적 물체들로까지 확장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실상 물질은 소멸하지 않았으며 소멸할 수도 없었다. 단지 그것에 관한 인간 지식이 구식이라는 한계, 즉 그것의 구조가 불변하는 화학적 원소들, 분해 불가능하고 자기동일한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식의 종전의 관념이 소멸했을 뿐이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종전의 관념은 새롭고 더 심층적인 관념으로 대체되었으며, 이는 객관적 실재로서의 물질의 소멸을 결코 의미하지 않으며, 유물론도, 인식론적 범주로서의 물질 개념도 결코 논박하지 않는다.

 

19세기와 20세기 전환기에서의 물리학과 자연과학의 위기에 관한 레닌의 분석은, 자연과학, 특히 물리학의 개념들의 혁명적인 파열을 기초로 하여 변증법적 유물론이 어떻게 풍부해지며 발전하는가를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이다.

 

현대물리학에서 물질 범주, 그리고

| 유물론과 관념론 사이의 투쟁

 

“물질 그 자체 구조물의 기초(fundament samoto zdaniya materii)”를 이루는 물리적 물체들의 구조와 속성 분야에서의 낡은 관념들과 개념들의 새로우며 혁명적인 파열은, 20세기 제1사분기의 말엽에 양자역학의 창출과 함께 일어났다. 물리학은 물질의 심층으로 향하는 본질적인 걸음을 내디뎠고, 새로운 물질적 객체들에의 탐구로 넘어갔으며, 미립자의 입자-파동 성질을 밝혀내었다. 미립자의 물질성과 그것의 성질들에 관한 철학적 문제들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미립자가 오직 기구와 상호작용하는 것으로서만 발견될 수 있다는 근거 위에서 그것이 인식하는 주체의 외부에서 그리고 그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미립자는 직접 관찰이 불가능하므로 그것이 감각에 주어져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인가; 미립자에 시공간적 및 인과적 속성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인가?

 

19세기와 20세기의 전환기에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양자역학으로부터의 철학적 결론의 문제에 관해 물리학자들 사이에서는 두 방향, 즉 유물론적 방향과 주관적-관념론적(실증주의적) 방향이 형성되었다.

 

1924년, 프랑스의 물리학자이자 유물론자인 P. 랑주뱅의 제자인 L. 드 브로이에 의해, 광자뿐만 아니라 물질의 입자에서도 입자적 성질과 더불어 파동적 성질이 내재한다는, 즉 미시세계의 모든 객체는 이중적 본성을 지닌다는 가설이 표명되었다. 드 브로이식 파동역학 구축의 출발점은 파동적 성질과 입자적 성질이 객관적이며 광자, 전자 및 기타 입자와 같은 모든 미시 입자에 내재한다는 관념이었다. 드 브로이는 다음과 같이 썼다: “ ⋯ 나는 파동-입자의 이중성은 외관상 보편적이며, 적어도 이 관점에서 볼 때 광자와 여타의 입자 사이에는 어떠한 본질적인 차이도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17 드 브로이의 사상은 그후 슈뢰딩거에 의해(1926) 이론적으로 발전되었다. 1927년 봄 미국에서의 데이비슨과 거머의 실험들은 결정을 통과하는 전자들의 회절 현상을 발견해 내었다. 1924-7년에 드 브로이는 미립자의 물질성과 그것의 성질인 입자성과 파동성의 객관성에 관한 유물론적 개념을 고수했다.18

 

입자적 성질과 파동적 성질의 통일성은 물리 개념들과 수학적 공식들 속에서 표현하기는 어려웠는데, 그것에의 단순화의 길로 들어선 드 브로이는 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드 브로이는 1927년 10월 제5차 솔베이 회의에서 〈이중 해법 이론〉의 간소화된 판, 즉 자신이 〈파일럿 파동 이론〉이라 명명한 가설을 발표하였는데, 이 가설은 파동성과 입자성을 〈미시세계의 물리적 실재〉의 상호 배타적인 “상보적” 성질로 간주하는 이른바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학파 측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실증주의 철학의 영향과 물질의 심층으로 침투하는 새로운 단계에 관한 물리 이론을 구축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 아래서, 자본주의 국가의 수많은 물리학자는 모순적인 입자적 성질과 파동적 성질의 통일성의 물리적 본성에 관한 탐구를 사실상 포기했다.

 

〈코펜하겐 학파〉의 견해들을 고찰함에서, 이 조류의 대표자들이 물리 이론으로서 양자역학의 발전 영역에서 쌓은 공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로 우리는 오직 철학적 문제에만 천착하고자 한다.

 

양자역학의 주요 철학적 결론은 미시 대상과 관찰자 사이의 관계에 관한 것에 있다.

 

미시 대상은 관찰자(주체), 측정 과정 및 장치와는 별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가? 주지하듯, 양자역학에서 객체는 직접 관찰이 불가능하며, 물리학자가 이 객체의 성질들을 밝혀내는 기구는 미시 대상의 상태에 영향을 미치며, 그 결과 기구의 영향 밖에서의 그것─그 자체로서의 미시 대상에 관하여 그리고 그것의 존재 일반에 관한 물음들이 야기된다.

 

현대 이론물리학의 발전에 중대한 공헌을 한 코펜하겐 물리학파의 지도자인 N. 보어와 W.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의 대상을 ‘소립자’가 아니라, 그것들과 기구와의, 그리고 관찰자와의 상호작용으로 이해한다. 1926년 뒤셀도르프에서 개최된 제89차 독일 자연과학자 및 의사 대회에서 W. 하이젠베르크는, 그의 양자역학에 관한 보고에서 “전자들 또는 원자들은 일상 경험의 대상들과 같은 정도의 직접적인 실재를 지니지 않는다”고 선언했으며, 아울러 “광양자들에는 주변 세계의 대상들과 같은 정도의 실재가 결코 부여된 적이 없다”고 선언했다. 보고서에서는 양자역학이 미시 대상들의 운동 법칙들을 연구하는 물리 이론일 뿐만 아니라, 인식론에서의 제 문제에 관한 재검토를 요구하며, 객체와 주체의 상관관계에 관한 문제에서 원칙적으로 새로운 정립을 요구하고, 양자역학의 진정한 내용은 미시 대상들의 “실재의 정도”에 대한 연구에 놓여 있다고 언급되었다.19

 

이 노선을 지속하면서, 하이젠베르크의 지지자들, 예컨대 보어의 제자인 프랑스의 물리학자 L. 로젠펠트는 “보어와 코펜하겐 학파의 주요 발견은 관찰되는 현상을 관찰자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관찰자와 미시 대상 사이의 불가분한 연관에 관한 그릇된 사상에 기초하여, 보어와 하이젠베르크는 원자물리학에서 모든 관찰마다 객체에 대한 원칙적으로 통제 불가능한 교란이 결부되어 있다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미시 대상과 기구의 통제 불가능한 상호작용의 결과로, 객체의 운동량을 규정하는 실험들은 동시에, 이전에 확정되어 있던 그것의 좌표를 불확정하게 만들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사상이 양자역학 전체를 관통하여 관철되었다.20 ‘물리학적’ 관념론자들은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의 이 개념을 낚아채었다. 거대 규모의 실증주의 철학자 집단은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의 개념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이용했다. 곧이어 저명한 신실증주의자 F. 프랭크는 “원자적 객체가 ‘실재하는 입자’처럼 거동한다는 전제는 원자물리학의 관찰 사실들과 양립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객체는 위치도, 운동량도─측정될 수 없는─지니지 않기 때문이며, 이 이유는 그것들이 실재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라고 썼다.21

 

서독의 상징주의자 W. 슈넬은 소립자들은 오직 우리의 주관적인 체험들일 뿐이며, 그것들의 실재에 관해서는 말해질 수조차 없다고 주장했다. “엄밀한 의미의 물리학은 더이상 실재하는 자연의 존재론적 사물 사이의 관계들에 관하여 말하지 않으며, 오직 그것들에 관한 진술들에 관하여만 말한다.”22 “현실 세계는 주어진 모든 경험의 총합이다.”23 

 

물리학자-과학자들의 철학적 오류들을 비판함에서, 우리가 그들의 모든 진술을 관념론적인, 그리고 흔히는 단적으로 신앙주의적인 명제들에 귀속시키거나, 현대물리학의 인식론적 난제들을 이용해 사변을 늘어놓는 직업 철학자들의 ‘이론들’과 그것들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레닌은 관념론 철학의 지배와 제국주의 세계 체제 전반에 걸친 정치적 반동의 강화라는 조건 속에서, 자연과학에서의 혁명은 자연과학의 새로운 발견들에 기생하는 관념론 학파들의 출현을 동반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20세기의 자연과학의 위기는 자연과학의 괄목할 만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격화되었으며 새로운 형태를 띠었다. 수많은 부르주아 자연과학자는 노골적으로 교권주의를 과학과 조화시키려 시도하고 있으며, ‘물리학적’ 관념론자들 사이에서는 종교로의 회귀가 관찰된다. 하지만 제국주의의 제 모순의 격화와 결부되어 있는 이 추세와 더불어, 과학 내부에는 정반대 성격의 추세가 나타났다. 사회주의 진영의 나라에서는 자연과학의 위기가 극복되었다. 소련의 과학의 일부 분야들은 세계에서 선두 자리에 올랐다.

 

관념론적 개념들에 반대하여 유물론이 관념론에 대항하여 벌이는 투쟁 속에서 자연의 인식에서 모든 성과가 달성된다고 확신하는 자본주의 나라의 과학자의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서구의 자연과학자들 사이에서 실증주의의 영향력은 감소하고 있다. 일찍이 실증주의적 견해들을 공유했던 수다한 물리학자가 실증주의에 대한 비판에 함께 나서고 있다.

 

닐스 보어는 1958년에 『물리학의 진보』라는 학회지에 게재하기 위해 소련의 과학자 V. A. 포크에게 「양자물리학과 철학(인과성과 상보성)」이라는 원고를 제출했는데, 이 문건에서 저자는 자신의 공식으로 양자물리학의 핵심 명제들의 유물론적 해석에 접근한다.

 

고전역학에 의해 연구되는 물질적 대상에의 인식과 구별되는 원자적 현상에의 인식의 특수성을 지적하면서, N. 보어는 우리의 관찰 방식이 물질의 성질에 의존한다는 유물론적 명제를 제기한다. 이 문헌에서 그는 원자적 현상에의 기술이 이를 인식하는 주체와는 무관한 객관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을 최초로 강조한다.24

 

또다른 저명한 물리학자 막스 보른은 일찍이 실증주의적 견해를 고수했다. 그는 이제 자신이 변증법적 유물론의 일련의 명제들과 동의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면서, 자신이 표현하는 바와 같이 “마르크스주의적 용어들에 반대하여” 발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논문에서는 실증주의가 세계의 객관적 실재성을 부정한다는 이유로 그것을 비판한다. 「물리학에서의 실재 개념」이라는 논문에서 막스 보른은 다음과 같이 썼다: “이리하여 나는 한 공산주의자 과학자와─이는 내게 기쁜 일이었는데─직접적인 우호적 사유의 교환 속으로[당대에 소련 과학자 S. 수보로프의 논문이 M. 보른에게 전달되었다; F. Arkhiptsev], 그것도 철학과 물리학 사이의 경계 지대를 마련하는 그러한 영역에서 끌려들어갔다. ⋯ ”25

 

M. 보른은 자신의 철학적 신조를 다음과 같은 말들로 표명한다: “나는 이 체계[실증주의와 유물론; F. Arkhiptsev]의 어느 한 가지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두 체계 모두의 합리적인 면모들을 자신 속에 포괄하며 나아가 또다른 사상들을 더하는 관점을 표명한다.”26

 

M. 보른은 자신이, 1951년 에든버러에서 열린 영국과학진흥협회의 연례 총회에서 표명된 G. 딩글(Dingle) 교수의 극단적인 실증주의형(形)의 보고에 반대하는 논문을 발표했음을 지적한다. 그 보고에서 G. 딩글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물리학이 다루는 사물들은 외부 물질 세계의 입자들의 객관적인 성질들에 대한 측정이 아니며, 그것들은 우리가 특정한 연산을 수행할 때 우리가 체험하는 사건에 불과하다.”27

 

딩글의 조작주의적 관점을 보른은 극단적 주관주의이자 “물리학적 유아론”이라 부른다. 이것을 비판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명제를 제기한다: “실험물리학에서의 모든 위대한 발견은, 자기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실제 사물의 대리자들이었던 모델들을 정직하게 이용했던 사람들의 직관[감각적 지각; F. Arkhiptsev]에 빚지고 있다.”28

 

M. 보른은 유물론을 겨냥하는 비평을 행한다. 그러나 보른이 유물론이라 할 때 그것은 본질적으로 고전물리학에 기초하는 기계적 유물론을 의미하고 있다. 그를 만족시키지 않는 것은 “고전 시기, 또는 뉴턴 시기에서 그토록 성공적이었던 실재의 문제에 대한 소박한 접근”9이며, 그것은 현대적 이론들의 적용에서 불만족스러운 것으로 판명되었다. M. 보른은 또한 “오직 정신 세계만이 실재하며, 물리 세계는 단지 가상일 뿐, 실체 없는 그림자라고 가르치는”9 주관[주의]적인 철학 유파의 주장들을 기각하며, 그것은 물리적 실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본다.

 

자연과학에 해를 끼치지 않고서 ‘실재’라는 개념과 용어의 사용을 폐기할 수 없는가 하는 딩글의 물음에 대해, 보른은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 ⋯ 그 어떤 경험으로부터도, 그리고 모든 실제적인 일과 관찰로부터도 멀리 떨어진 채 고립된 공중누각 속에서 살아가는 그러한 사람만이, 결과적으로 순수 수학, 형이상학 또는 논리학에 너무나도 깊이 몰두한 나머지 세계로부터 완전히 멀어진 그러한 유형의 사람만이 이 개념을 포기할 수 있다.”31

 

실증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M. 보른은 실천이라는 것에 기대는데, 이는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보른이 지적하듯, 실증주의는 미시물리학에서의 사물들의 실재를 부정하며 그것들을 오직 관찰되는 제 현상의 논리적 연결을 위한 구성물로 취급할 뿐이다. 수미일관한 실증주의자라면 별자리로 구성된 우주계 또한 그의 관념의 순수한 세계로서 설명해야만 할 것이다. 종국에는 태양·달·행성들의 크기와 물리적 성질들에 관한 모든 진술은 오직 사고와 계산을 통해서만 습득되기 때문이다. “나는[─M. 보른은 결론짓는다─; F. Arkhiptsev]오늘날, 즉 ‘스푸트니크’와 ‘익스플로러’의 시대에서 그러한 논거들이 터무니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마침내 개는 벌써 우주여행을 완수했으며, 곧 사람도 그 뒤를 따를 것이다.”32 이는 객관적 세계의 인식을 다루는 참된 과학자의 세계관 변화에 관한 소련 과학의 성과가 미친 영향의 선명한 예이다.

 

실재에 관한 실증주의적 관점에 대한 비판에서 M. 보른은 일련의 흥미로운 논거들을 제시한다. 실재에 관한 실증주의적 관점에 대한 비판에서 M. 보른은 일련의 흥미로운 논거들을 제시한다. 주지하듯, 실증주의는 사실들의 순전히 경험적인 서술과 그것들의 체계화를 사물의 본질에 대한 과학적 침투와 대립시킨다. 양자역학에서의 실증주의적 관점은, ‘물리적 실재’가 ‘실험 장치 속의 사태’와 동일시되며, 미시 대상 그 자체는 실험 외부에서는 존재하지 않고 원칙적으로 인식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M. 보른은 본질을 현상으로 환원하는 그러한 태도를 비판한다. 그는 물리학이 무엇보다도 “실험 장치 속의 사태”를 취급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나, 그에 의하면 그 후자는 물리적 실재 그 자체인 것이 아니라 실재 그 자체의 “장치에의 투영”일 뿐이다. 따라서 장치는 대상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것을 인식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연구자는 “실험 장치 속에서” 오직 그 대상적 본질이 밝혀져야 할 현상들만을 다룬다. 변화무쌍한 현상의 흐름 이면에서 우리는 그것들의 안정적인 기초, 즉 물리적 실재를 찾아내고 밝혀내야 한다.

 

M. 보른은 불변량을 그러한 변하지 않는, 영구적인 요소로 간주한다. 그러한 접근 방식에서 합리적인 것은, 그가 현상들의 표층에 머무르지 않고, 실험 자료의 노예가 되지 않으며, 장치들의 실험 자료의 이면에서 관찰·기구들로부터 독립된 실재를 발견하고자 한다는 점에 있다. 이 입장에서 보른은 상보성 원리 또한 다르게 해석한다. 상호 배타적이면서도 상호 보완적인, 다양한 유형의 장치로부터의 실험 자료는 오직 물리적 실재의 투영일 뿐이며, 연구자는 물리적 개념들과 수학적 형식들을 사용하여 그 기초 위에서 미립자의 모순적인 성질이 반영되어야만 하는 정신적 상을 창조해야 한다. 보른에 의하면 물리적 실재를 대표하는 것은 불변량이다. 그는 “나는 불변량 학설이, 비단 물리학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측면에서도, 실재에 대한 합리적인 개념으로 향하는 열쇠라고 확신한다”33고 썼다.

 

보른은 나아가 양자역학이 물리적 세계를 기술하는 새로운 길로 우리를 인도하지만, 그것의 실재에 대한 포기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상보적 실험의 최종 결과는 토의되고 있는 본질에 특유한 불변량 군이다. 주요 불변량이라 불리는 것은 전하, 질량(혹은 더 나아가 정지 질량), 스핀 등이다; 그리고 이 크기들을 결정할 수 있는 각각의 경우에 우리는 특정한 입자를 다루고 있다고 결론짓는다. 나는 우리가 이 입자들을, 이 용어의 통상 의미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그런 의미에서 실재하는 것으로 간주할 권리가 있다고 확신한다.”34

 

그는 또한 이렇게 썼다: “ ⋯ 우리는 현상의 흐름 속에서 어떠한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내기 위해 분석을 적용하는데, 그것이 바로 불변량이다. 따라서 불변량은, 자연과학이 일상어에서 ‘사물’에 대해 말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마치 그것들이 보통의 사물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에 이름을 부여하는 그런 개념이다.”35

 

비록 보른이 유물론의 관점을 끝까지 일관되게 관철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말 속에는 어떤 면에서든 W. 하이젠베르크의 견해와 대립되는 관점이 나타나 있다. 하이젠베르크는 다음과 같이 썼다: “ ⋯ 미시적 입자는, 우리가 그것들을 관찰하든 안 하든 간에 돌이나 나무와 같은, 그러한 의미에서의 실재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관찰로부터도, 장치로부터도, 기준계로부터도 독립된 어떤 실재를 발견하고자 하는 시도 그 자체는 진보적이지만, 불변량 이론은 물리 이론일 뿐이며 객관적 실재에 관한 철학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엄밀히 말해 그것은 물리 현상에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적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다.

 

만약 막스 보른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선입견을 품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는 철학 탐구와 물리 탐구의 차이에 관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특히 V. I. 레닌의 저서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발견하였을 터인데, 이 저작은 철학적 범주로서, 객관적 실재로서의 물질에의 정의가 오직 물질의 특정한 형태 및 그것의 성질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물질의 구조 및 속성에 관한, 역사적으로 제한된 지식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님을 지적하고 있다. 물질의 구조나 속성의 일부 특정 형태만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아직 유물론자가 되기에 충분하지 않다. 물리학적 관념론자인 P. 조던, G. 딩글 그리고 그들의 반대자인 M. 보른은 모두 동일한 물리량들의 불변성을 승인하지만, ‘물리적 실재’에의 철학적 이해에서는 차이가 난다.

 

M. 보른에게 물질에의 철학적 정의가 물리학이 취급하는 대상의 성질에 관한 문제와 혼동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특정 형태의 물질로서의 미시 입자의 정의, 그리고 물질로서의 그 속성 규정은, 일군의 불변량들이 아니라 입자 및 그것의 성질이 의식과 관찰자와 맺는 관계가 특징 짓는다. 양자역학의 대상─전자, 양성자, 중성자 등─을 주체, 관찰자, 측정 및 관찰 등 과정의 외부에서 그리고 그에 독립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하면서, 우리는 그것들을 물질로서 규정하고 유물론의 입장에 선다. 이에 반해 그것들을 오직 사유적 대상으로서, 논리적 구성물로서, 측정 및 관찰의 산물로서만 고찰하는 이들은 이 입자들의 물질성을 부정하며, 물리학에 이질적인 관념론적 철학을 도입하는 것이다.

 

미시체─원자, 전자, 장(場) 등─가 의식과 관찰의 외부에서 그리고 그에 독립하여 존재하는지, 아니면 그것이 의식 및 관찰의 산물인지에 관한 문제는 특수 과학들의 자료와 인간 실천에 기초하여 해결되는 철학적 문제이다. 비록 이것이 철학적 문제이기는 하지만, 오직 철학자만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자연과학자들 또한 필연적으로 자신들의 세계관에 따라, 즉 그들이 의식적으로든 자연발생적으로든 고수하는 그 철학에 의거해 답할 수밖에 없다.

 

‘기본’ 입자, 장 등이 인간 의식의 외부에, “실험 장치 속의 사태”의 외부에 객관적 실재로서 존재하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이 문제에 답하면서, M. 보른은 “그렇다”라고 말하며, 바로 이로써 그 문제를 유물론의 편에서 실증주의에 대항하여 해결한다. 그러나 객관적 실재를 불변량과 동일시함으로써, 보른은 자신의 유물론적 입장을 약화시키는데, 왜냐하면 인식의 역사 속에서 어떠한 이론에서 [명백히] 불변량인 크기가, 보다 심층의 연관을 반영하는 다른 이론 속에서는 불변량이기를 중단한다는 점이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M. 보른은 스스로 이 점을 지적한다: “과거의 이론에서 불변량들로서 고찰되었던 크기들이─예를 들면 강체계(剛體系) 속에서의 거리, 서로 다른 장소에 있는 시계들에 의해 표시된 시간 간격, 물체들의 질량들─현재는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불변량인 크기들의 투영으로서, 성분으로서 표현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36

 

만약 M. 보른이 하는 것처럼 불변량을 객관적 실재와 동일시한다면, 우리의 지식들이 변화하고 그 불변량이─그의 용어를 빌리자면─투영으로 변할 때, 객관적 실재는 무언가 불확정적인 것, 즉 물질체들의 성질과 관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의 변화에 종속되는 것으로 되어 버린다.

 

이와 관련하여 19세기와 20세기 전환기의 물리학에서의 유사한 상황을 상기해 보자. 낡은 고전물리학과 형이상학적 유물론은 객관적 실재·물질을 원자·질량과 동일시했으며, 후자를 물질의 양으로 간주했다.

 

19세기 말 원자·질량에 관한 물리적 표상들의 변화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알지 못하는 물리학자들이 “원자가 비물질화되었다”, “물질이 소멸했다”라고 주장하도록 이끌었다.

 

실제로 “물질이 소멸”한 것이 아니라, 오직 과거에 원자를 넘어 더 나아가지 못했던 물질에 관한 우리의 지식이 심화되었고, 원자는 객관적 실재에의 인식에서 이미 지나쳐 온 계단, 즉 하나의 단계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물질체의 성질로서의 질량에 관한 표상도 변화했다. 하지만 그것의 구조와 성질에 관한 우리 지식의 외부에서 그리고 이에 독립하여 물질이 존재한다는 유물론적 명제는 변함없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불변량인 크기들에 관한 물리적 표상들 역시 변화하며 또 앞으로도 변화할 것이지만, 물질체들과 그것들의 성질 및 관계의 객관적 실재성에 관한, 그리고 의식, 관찰, “장치들 속의 상황”의 외부에서 그리고 이에 독립하여 그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에 관한 변증법적 유물론의 명제는 변함없이 남을 것이며 낡은 것이 되지 않을 것이다.

 

M. 보른의 논문 「물리적 실재」는 소련 과학자 S. G. 수보로프의 흥미롭고 심오한 분석을 받았는데, 수보로프는 저자에게 비판적 지적을 보내고 그 지적에 대한 저자로부터의 답변을 받아냈다. 이 토론은 해외 학자들에게 현대물리학의 현안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을 상기시키고 우호적인 유대들을 확립하는 일에서 의심의 여지 없이 유용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수보로프의 비판적 논문에서 제출된, 객관적 실재와 불변량의 상관관계에 관한 엄밀하지 않은 해결책을 지적해야만 한다. S. G. 수보로프는 보른의 불변성-실재 동일시가 무엇을 초래하는가 하는 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의 각도, 레닌적 물질 규정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현상과 본질의 관계 문제를 해소하는 관점에서 고찰하고 있다. S. G. 수보로프는 “이는 가장 중요한 인식론적 문제”라고 하면서 “철학자들이 본질과 현상 사이의 관계에 관한 문제에 답하는 그 방식에 따라, 철학에서 그들이 어떠한 유파에 소속되어 있는가가 드러나게 된다. 예를 들어 주관적-관념론적 철학은 현상을 본질과 동일시하며, 바로 그로 인해 현상으로부터 본질로의 이행의 필연성을 부정한다”고 썼다.37

 

주지하듯, S. G. 수보로프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현상을 본질과 동일시했던 유파는 주관적 관념론자들뿐만이 아니라 일부 유물론자(베이컨, 로크)도 속했으며, 반면 “현상으로부터 본질로의 이행의 필연성”을 옹호했던 것은 관념론자 헤겔이었다.

 

불변성의 문제를 본질과 현상의 상관관계라는 각도에서 고찰하면서, S. G. 수보로프는 “그러나 객체의 본질은 상수들의 집합(즉, 불변량들)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객체에게 내재한 합법칙성에 의해, 다른 객체와의 그것의 연관에 의해 특징 지어지며, 그러한 연관으로부터 그것의 상수들이 해명되어야 하는 것이다”라고 썼다.38

 

S. G. 수보로프의 교정은 유물론을 관념론에 대립시키지도 않고, 객관적 실재의 규정에 관계되는 것도 아니며, 외려 본질, 즉 한 객체와 다른 객체의 질적 차이의 해명을 향하고 있다. “우리가 보고 있듯, 새로운 류의 객체를 식별하기 위한 특수한 합법칙성들을 확립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반면, 이 더 일반적인 과제에 관계하여 일부 불변량인 크기들을 추려내는 것은, 오직 일부 성질, 그리고 물질적 대상들 속의 일부 상호 연관만을 드러내는 단지 부차적인 과제일 뿐이다.”39

 

하지만 그의 논리 전개와는 무관하게 우리는 S. G. 수보로프의 결론이 완전히 옳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 ⋯ 만약 실증주의의 비판자들 스스로가 수미일관하고자 한다면, 객관성에 관한 유물론적 이해를, 존재와 사유 사이의 관계에 관한 그것의 해명을, 인간의 의식 속에서 객체의 상이 형성되는 과정으로서의 인식 과정에 관한 그것의 이해를 받아들여야 하며, 우리가 창조해 내는 실재의 상의 타당성의 기준으로서 실천을 승인해야 한다”고 썼다.40

 

S. G. 수보로프의 비판적 지적의 결함은 부정적 결과들을 초래했다.

 

M. 보른은 S. G. 수보로프가 인용한 예시를 근거로 “특수한 합법칙성”이란 불변량들의 집합에 지나지 않음을 도출하고자 시도했다. “만약 입자들에 관한 불변량적 진술의 총합을 위해 “특수한 합법칙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자 한다면, 나는 이에 대해 아무런 반대도 하지 않는다. 단, 이 불확정적이고 모호한 개념이 ‘유물론’이라는 용어와 마찬가지로 지난 세기에 생겨났다는 사실은 예외로 하고 말이다.”41 이어서 M. 보른은, 과학이 이제 개별 기본 입자들, 즉 핵자나 전자뿐만 아니라 광자, 중성자, 중간자, 하이페론42의 사전적 특성 기술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단일하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이론을 구축하고자 애쓰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시 입자의 객관적 실재성에 관한 문제에서 W. 하이젠베르크의 철학적 입장은 M. 보른의 그것보다 훨씬 더 모순적이고 비일관적이다.

 

W. 하이젠베르크는 양자 이론에서 코펜하겐 해석을 옹호하면서, 그것의 실증주의적 본질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실증주의 철학과도 선을 긋고 있다. 하이젠베르크는 단언한다: “ ⋯ 양자 이론의 코펜하겐 해석은 결코 실증주의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실증주의가 관찰자의 감각적 지각(실재적 요소)에 기초하고 있는 데 반해, 코펜하겐 해석은 고전적 개념들의 도움으로 기술될 수 있는 대상과 과정을 고찰하기 때문이며, 다시 말해 실재를 모든 물리적 해석의 기초로서 간주하기 때문이다.”43

 

이 경우에서 긴요한 것은 W. 하이젠베르크가 실증주의 철학을 거부했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어쨌든─이는 자연과학자들의 눈에 실증주의[의 권위]가 얼마나 실추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지표이다.

 

W. 하이젠베르크는 코펜하겐 해석에 반대하는 이들을 세 유파로 구분했다. 그는 첫 번째이자 가장 규모가 큰 유파에 알렉산드로프, 블로힌체프, 봄, 보프, 드 브로이, 페녜시, 바이첼을 포함시키면서, 이 유파가 “ ⋯ 적어도 현재까지 수행된 실험들에 관한 한 실험에의 코펜하겐 해석을 아무런 이의 없이 수용했으나, 이 해석이 사용하는 언어[기술 방식]44, 즉 철학적 기초에 대한 불만을 공표했으며 다른 언어를 이 언어의 대안으로 삼았다”고 표명했다.45

 

나아가 하이젠베르크는 다음과 같이 표명한다: “ ⋯ 코펜하겐 해석의 모든 반대자는 한 가지 점에서 일치했다. 그들의 의견에 의한다면, 고전물리학의 실재 개념으로, 혹은 더 일반적인 언어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유물론의 존재론인데, 다시 말해 우리가 그것들을 관찰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상관없이 돌과 나무가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에서 극미한 요소 또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그러한 객관적 세계에 대한 사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었다.”9

 

이 구절에서 하이젠베르크가 “유물론의 존재론”을 고전물리학에서의 실재 개념과 동일시하고 있음이, 즉 세계관 일반의 하나로서의 유물론을 그것의 특수한 형태─당대 고전물리학에 현실에 관한 결론들을 종속시켰던 낡은 형이상학적 유물론─와 동일시하고 있음이 밝혀진다.

 

하이젠베르크는 뒤이어 우리가 그것들을 관찰하든 그렇지 않든 무관하게 거시세계의 대상과 현상의 존재를 승인한다. 참고로 그는 여러 저작에서 고전물리학이 세계를 주체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으로서 기술한다고 표명한다. 이 점에서 하이젠베르크는 거시세계의 대상과 현상이 오직 우리의 경험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간주하는 실증주의자 [헨리] 마르게나우와 구분된다.

 

하이젠베르크는 다음과 같이 썼다: “고전물리학은 어떠한 의미에서, 물질 개념에의 가장 명확한 표현을 제시하며, 그것은 이 개념을 가지고 우리의 주관적 경험으로부터 가능한 한 독립적인 세계의 기술을 제공하고자 시도한다. 이로 인해 고전물리학의 제 개념은 언제나 엄밀하고 객관적인 모든 자연과학의 기초로서 남을 것이다.”47

 

물질이라는 개념이 오직 고전물리학으로만 표현된다는 입장의 오류는 M. E. 오멜랴노프스키가 잘 해명되어 있다.48

 

이와 관련하여, 하이젠베르크가 물질에 관한 낡은 유물론의 관점만을 알 뿐인 채로 그것이 양자역학에는 적용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은 흥미롭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그러하다. 하이젠베르크는 형이상학적 유물론과 변증법적 유물론 사이의 근본 차이를 무시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사실은 W. 하이젠베르크가 블로힌체프의 공식화를 “우리가 유물론의 존재론을 아주 멀리(아마도 너무 멀리) 할 수 있게 하는 것”49으로 주목했다는 사실에 의해서도 증명된다. 실제로 소련 물리학 진영 내부에서의 블로힌체프와 양자역학의 다른 해석(포크, 알렉산드로프) 사이의 견해차는 철학적 문제가 아니다. 입자의 물리적 성질들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면서도, 블로힌체프와 그의 반대자들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입장들 위에 서 있다. 블로힌체프는 다음과 같이 썼다: “양자역학에서 입자의 상태는 참으로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그 입자가 다양한 앙상블(혼합 앙상블이든 순수 앙상블이든)에 속한다는 사실에 의해 특징 지어진다. 이러한 입자 소속은 완전히 객관적 성격을 지니며 관찰자의 정보, 즉 주관에 의존하지 않는다.”50 이 공식화에는 유물론으로부터의 이탈이 표명되어 있지 않으며, 외려 그와는 반대인데, 그에게서 입자가 앙상블에 속한다는 것은 “완전히 객관적 성격을 지니며 관찰자의 정보, 주관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이 강조되어 있다.

 

W. 하이젠베르크의 관념론적 혼란은, 그가 양자역학적 대상의 특수성을 철학 개념으로 규정하려들 때 시작된다. 그는 ‘객관적 실재’라는 개념이 원자물리학에서 부딪히지 않을 수 없는 명제들에 적용 불가능하다고 표명한다.

 

하이젠베르크는 원자물리학과 고전물리학 사이의 질적 차이를 ‘객관적-’ 개념과 ‘실재적-’ 개념 사이의 구분에서 찾는다. ‘객관적-’이라는 말을 그는 장치 관찰자로부터도, 외부 세계로부터도 독립적인 ‘그 자체의’ 폐쇄 체계로 이해한다. 이 체계는 ‘객관적-’이지만 실재적이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고전적 개념들로는 기술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것’은 인식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인식이란 오직 관찰자와의 연관, 관찰자와의 체계를 설정할 때에만 가능하며, 바로 이것이 객관적인 것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이 특정한 경우[세계가 폐쇄되어 있다면; F. Arkhiptsev] 상은 온전히 ‘객관적’이다. 즉, 그것은 이미 관찰자의 지식과 연관된 특징을 포함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완전하게 추상적이고 이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다양한 수학적 표현들 Ψ(q), Ψ(p) 등은 실재적 공간이나 실재적 성질에 관계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컨대 그것은 전적으로 비물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51

 

하이젠베르크에 따르면, ‘객관적인 것’은 오직 수학적 방정식들을 사용하여 기술되는, 가능한 것일 뿐이다. 관찰자의 부재 시에 체계의 수학적 상은 부단히 변화한다. 관찰자가 체계를 인식하고자 그것을 측정하려 시도할 때, 그는 바로 이로써 연속성을 단절시키며 가능한 것을 현실적인 것으로 이행시킨다. 현실적인 것은 ‘주관적인’ 요소, 즉 관찰자나 장치의 개입을 그 자체에 내포한다.

 

따라서 하이젠베르크에 의하면, 미립자는 ‘실재적인 것’인데─이는 오직 실험 장치 속에서만 존재하는 ‘물리적 실재’이다. 그 자체로 미립자는 가능한 것이지 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공간 속에서 실존하면서 객관적 성질을 지니고 다른 물체들과 상호작용하는 물질적 물체가 아니라, 오직 수학적 양(量), 즉 기호일 뿐이다.

 

하이젠베르크는 이 도식을,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의 상호관계, ‘객관적‘ 실재, ‘현실’ 및 단순히 ‘객관적인 것’이라는 개념 사이의 관계에 관한 자신의 분석을 총괄하면서 구축한다. 거시세계의 과정이 존재하는데, “ ⋯ 이 과정은 공간과 시간을 통해, 즉 고전적 개념들을 통해 단순히 기술될 수 있으며, 따라서 이 방식으로 이 용어의 본래 의미에서 우리의 ‘실재’를 형성한다. 만일 우리가 이 실재의 경계를 넘어 원자 현상의 그 세부 사항들 속으로 파고들려 시도한다면, 이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세계의 윤곽은 희석되어 사라지는데─그것은 새롭고 아직 불분명한 실재상의 안개 속으로가 아니라, 그 법칙들이 가능한 것을 지배하되 현실적인 것은 지배하지 않는, 수학의 투명한 명료함 속으로 사라진다. ⋯ 유물론의 존재론은 우리를 에워싼 세계의 직접적 ‘현실’을 원자 영역으로 외삽(外揷)할 수 있다는 환상에 기초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외삽은 불가능하다.”52

 

하이젠베르크는 형이상학적 유물론에 대한 비판에 나섬으로써 그것을 관념론으로 대체하였으며, 미시 대상의 세계를 수학적 관계의 세계로 변환했다. 가능성과 현실의 상호관계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그는 이 문제에 관한 형이상학적 해답을 내놓았다. 변증법은 가능한 것과 현실적인 것은 대립물의 통일이며, 가능성이란 실현되지 않은 현실임을 가르친다. 가능성은 현실이 창조하고 그것에 의해 한정되며, 인간 의식의 외부에 그리고 그것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실존한다.

 

하이젠베르크에 의하면, 가능성이라는 것은 수학적 제 관계의 세계이며, 그것이 미시 대상의 세계로 변환되고, 후자는 실험 와중에 그리고 이를 통해 창조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와 관련하여 실증주의에 대한 M. 보른의 또다른 비판적 논평을 인용하는 것은 흥미롭다. M. 보른은 정당하게도 다음과 같이 썼다: “보통 커다란 물체들의 일상적 세계와 미시세계 사이에는 어떠한 명확한 경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식용 소금 덩어리는 당연히 보통의 세계, 즉 부엌의 세계에 속한다. 그것을 잘게 부수어 분말로 만들어 보아라. 그 입자들은 너무나 작아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돋보기를 이용해야 하며, 더욱 잘게 부술 경우에는 현미경도 이용해야 한다. 이로 인해 분말 입자가 덜 실재적이 되고 덜 물질적이 되는가? 콜로이드들 속에 실존하는 것과 같은 더욱 작은 입자들에 대해서는 초현미경을 동원할 수 있으며, 그것이 효과를 내지 못하는 곳에서는 상술했듯이 분자량까지 연장해 주는 전자현미경을 동원할 수 있다. 이때 실제로, 관찰되는 입자들 속에 실존하는 전자들이 관찰될 수 있다. 분자, 원자 그리고 마침내 원자핵의 내부 성질로 침투해 그 구조들을 규명할 수 있게 해 주는 실험들은, 원리적으로 이러한 산란 관찰들에 기초하고 있다. 이제 자기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재를 지닌 감각 세계와, 실증주의자가 오직 구성물로만 인정하는 저 미시세계 사이의 경계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53

 

V. 하이젠베르크는 과연 자기 논증들의 모순으로 말미암아 M. 보른의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 하이젠베르크에 의하면, 거시물리학의 세계는 시공간에서 실존하는 물질인 ‘객관적 실재’이나, 미시 입자들의 세계는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기서 후자는 수학적 관계로 드러난다. 따라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실재적이고 현실적인 세계─물질─는 수학적 관계들의 총체이다. 양자역학의 제 대상에 관한 관념론적 해석은 일상적 사물의 세계에 대한 물리학자의 자연발생적-유물론적 접근법과 양립 불가능하다.

 

비록 원자 현상 영역이 제아무리 복잡하든지 간에 그것은 과학 개념들, 수학적 방정식들 그리고 물리 이론들 속에서 반영되므로, 그것은 인간 의식 및 그것을 인식하고 측정하는 방법들 등의 외부에 그리고 그것들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실존한다.

 

현대물리학의 발전을 위하여 세계를 운동하는 물질로서 규정하는 것은 막중한 의의를 지닌다. 현대물리학은 물질과 그것의 구체적 형태들이 운동의 외부에 실존하는 게 아니라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명제를 찬란히 확증했다.

 

당대에 레닌의 에너지론 비판은 물질의 ‘소멸’에 관한 온갖 주장에 맞선 투쟁에서 진보적 과학자들을 지원했으며, 지금도 변함없이 지원하고 있다.

 

현대 에너지론 옹호자들은 우리 시대에도 물질이 운동으로, 에너지로 ‘전환’된다고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그들은 질량 결손, 전자-양전자 쌍의 광자로의 변환 등의 왜곡 해석된 실험적 사실들에 근거하려 시도한다. 이에 관해서는 V. 하이젠베르크를 인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그는 ‘기본’ 입자들이 에너지로부터 “창조되고”, 입자들은 운동 에너지로부터 “형성되며”, 에너지는 질량으로 “변환”되어 물질이 된다고 역설한다.54

 

물질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가 아니면 달리 존재하지 않는다는 레닌의 명제는 현대물리학에서 확증되며, 현대의 ‘물리학적’ 관념론자들의 궤변에 맞선 투쟁에서 진보적 사상가들을 무장시킨다.

 

최근 몇 년간 물리학자들 사이에서는, 상대론적 공변성의 요구에 따라 ‘기본’ 입자들이 연장을 지니지 않고, 모양이나 크기도 전혀 없으며, 도리어 점 모양의 형성체들을 이루고 있다는 견해가 널리 퍼졌다. 물리 이론의 이러한 특수한 결론은, 연장을 지니지 않는 물질적 물체들은 존재하지 않으며, 물질과 그것의 구체적 형태들은 그것들이 비록 얼마나 작고 기본적이라 할지라도 공간의 밖에서 존재할 수 없고 공간적 속성을 갖지 않을 수 없다는 철학 이론의 일반적 결론과 명백한 모순 속에 있었다. ‘기본’ 입자들에 관한 현대 이론은 그것들의 점적(點的) 성격에 관한 상을 거부한다. 수많은 이론물리학자는 실험 자료에 의거하여 ‘기본’ 입자들의 구조성(構造性)과 그것들의 연장성(延長性)을 인정하고 있다.

 

물질은 시공간의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명제는 ‘기본’ 입자들에 관한 이론의 발전을 위한 투쟁에서 물리학자들을 방법론적으로 무장시킨다.

 

현대물리학에서는, ‘기본’ 입자들에 관한 이론이 그 발전에서 실험에 비해 근본적으로 뒤처져 있다는 주장이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바 있다. 속성과 구조를 해명함에서 기존의 기초 물리학적 이론들─상대성 이론, 양자역학─은 심각한 난관에 직면하고 있다. 자연과학의 철학적 제 문제에 관한 제1차 전(全)소련 회의에서 D. M. 블로힌체프가 말했던 것처럼, 입자들과 공간에 관한 우리의 표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새로운 “미치광이 같은” 상이 필요하다.

 

기존 물리 이론들의 토대에 대한 단호한 재검토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제9차 고에너지물리학국제회의(키예프, 1959년 7월)의 참가자들인 저명한 소련 과학자 N. N. 보고류보프, L. D. 란다우, I. E. 탐 및 알려진 일련의 해외 물리학자들─W. 하이젠베르크, H. 유카와 등─역시 말하였다. 기존의 것들에 대한 새로운 물리 이론의 관계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어떤 이들은 새로운 이론의 창조가 기존 이론에의 부정적 수정의 노선을 따라야 한다고(파동함수 개념의 거부, 해밀턴 형식론의 거부, 미시적 인과성 개념의 거부 등) 믿는다. I. E. 탐은 다음과 같이 표명했다: “새로운 이론의 구축은, 현대 물리학적 개념들의 적용 가능성에 대한 이러한 종류의 전적으로 필수적인 제약들과 더불어, 이론의 물리학적 내용의 풍부화(마치 양자역학이 고전역학보다 그 내용에 있어 더 풍부한 것처럼), 그리고 새로운 물리학적 구상─하이젠베르크가 제안한 기본 길이[Fundamentallänge] 구상, 단일한 비선형적 장으로부터의 모든 입자의 구축 가능성[Nichtlineare Feldtheorie], 부정 대칭 거리의 구상과 같은 종류의 것들─과 필수적으로 결부되어야만 한다.”55 물질의 입자와 물리학적 장의 전체 체계를 하나의 수학적 공식으로 통합하려는 유망한 시도의 하나는 하이젠베르크가 공식화한 “물질의 방정식”이다. 이 수학적 방정식은 하나의 단일한 공식 속에 알려진 ‘기본’ 입자들의 모든 속성들을 표현하고, 바로 이 ‘기본’ 입자들의 기원 및 그것들의 가장 중요한 법칙성─상호 전환성─을 해명하고자 시도한다.

 

하이젠베르크의 이론은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통일성을 스스로 이루는 단일한 물리학적 장의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불연속성의 성질은 전자 10-13cm의 ‘직경’ 정도인 ‘기본 길이’ ℓ이라는 개념으로 표현된다. 하이젠베르크는 그렇게 진공 속에서의 빛의 속도 c 및 작용 양자 h와 더불어 새로운 제3의 세계적 보편 상수 ℓ을 물리학에 도입한다.

 

D. I. 블로힌체프는 하이젠베르크의 이론을 알려진 고전적 개념들에 지나치게 유사하며, 충분히 “미치광이 같지” 않다고 규정한다. 이 이론의 모든 요소이 이미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56

 

과학을 위한 [이론의] 일대 전환의 순간에서 올바른 과학적 세계관은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 이는 물리학 발전의 모든 경험 및 유물론의 관념론과의 투쟁의 모든 경험이 찬란히 입증한다.

 

현대물리학을 위한 철학의 긴요성은 A. 아인슈타인이 반복해서 강조했던 것처럼, 바로 그 물리학의 창조자들조차 갈수록 가일층 의식하기 시작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W. 하이젠베르크가 물리학의 제 문제를 해명함에서 철학에 커다란 의의를 부여하며 그 자신 또한 현대물리학의 철학적 제 문제에 관하여 빈번히 발언했음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그의 발언들은 모순적이다. 최근 수년 동안 그는 실증주의를 비판하고 플라톤주의를 칭송하고 있다. 거의 동시에, W. 하이젠베르크는 기본 입자 이론의 법칙 형성에서 유물론적 세계관의 창조적 의의를 사실상 승인했다. 그는 고에너지물리학국제회의의 결과들과 관련한 자신의 성명에서 다음과 같이 표명했다: “그러한 법칙을 공식화할 때 물리학자는 시공간에서의 물질의 존재라는 사실들, 현상들 사이의 인과적 연관의 존재, 그 결과를 야기하는 원인에 뒤이은 결과의 발생, 기타 등등으로부터 출발해야만 한다.”57 [하지만] 바로 이 동일한 성명에서 하이젠베르크는 모든 기본 입자가 “에너지로부터 창조되어져 있다”는 자신의 에너지론적 입장을 다시 한번 되풀이했다.

 

V. I. 레닌이 물질을 철학적 범주로 정의한 것은 현대물리학에서 긴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 속에는 다음과 같은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세계의 물질성, 과학적 연구 대상의 객관적 성격, 주관적인 것으로부터의 그 대상의 독립성, 물질의 창조 불가능성과 불멸성, 물질과 운동의 불가분성, 물질과 그 존재 형태들─시간, 공간─의 통일성, 물질의 구조·속성 및 운동 형태들의 무한성, 심층으로의 물질의 무한성, 물질의 자기 발전의 무한성. 변증법적 유물론의 이 테제 및 기타 다양한 테제는 현대물리학에서 근본문제의 해결을 위한 철학적 기초를 이루고 있다. 이는 물리학과 과학에 새로우며 가장 위대한 발견을 위한 올바른 방법을 부여하는 인식의 지지대이다.

 

제6장에서 다룬 내용을 요약하고 간략한 결론을 내리도록 하겠다:

 

1. 물질에의 변증법적-유물론적 학설은 철학의 발전,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에서 그 발전뿐만 아니라, 수 세기간 자연과학 발전이 보편화한 귀결이기도 하다.

 

2. 마르크스-레닌주의적 물질의 정의에 내포되어 있는 심오한 사상은 자연의 새로운, 아직까지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속성과 합법칙성들을 밝혀내는 과업에서 가장 위대한 방법론적 무기로 기능한다. 관념에 대한 물질의 선차성 및 그것의 인식 가능성을 승인하는 것은 과학이 구축되는 견고한 기초이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자연과학의 제 문제에 관한 올바른 변증법적-유물론적 정식화는 그것의 해결을 향해, 그리고 더 나아간 실험적 탐구를 향해 [과학을] 추동한다. 유물론적 사유의 엄격한 일관성은 언제나 인식의 발전에 공헌해 왔다.

 

3. 우리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와 그것이 우리 의식에 반영된다는 것을 자연의 탐구자들이 승인한다는 점은 점점 더 광범위해지고 설득력을 얻고 있으며, 이는 현대에서 철학적 관념론을 향해 연이은 타격을 가하고 있다. 사회주의 진영 나라에서 과학이 성공적으로 발전했음은, 자연과학과 변증법적 유물론의 긴밀한 결합이 양쪽 모두의 발전을 위한 그 [학문적] 결실을 풍부하게 함을 증언하고 있다.

 

현대 자연과학은 그것에 필수적인 방법론적 제 문제를, 과학에서 가장 긴요한 개념인 물질 범주를 이용하고, 객관적 실재─우리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및 우리 의식 속에서의 그것의 반영이라는 유물론의 근본 원리에 기초함으로써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번역: 한동백 | 중앙사무위원

2026년 11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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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V. I. Lenin, Sochinneiniya, t. 15, 264.텍스트로 돌아가기
  2. 〔역자 주〕 이 대목은 당대 마흐주의자들과 가지각색의 주관적 관념론자들이 유물론자를 ‘소박 실재론자’라 멸칭한 것을 레닌이 일관된 유물론자라는 의미로서 의도적으로 되받아 적은 대목이다.텍스트로 돌아가기
  3. V. I. Lenin, Sochinneiniya, t. 14, 57, 336.텍스트로 돌아가기
  4. Tam zhe., 91.텍스트로 돌아가기
  5. S. I. Vavilov, „Lenin i filosofskie problemy sovremennoy fiziki“, V sb.: Velikaya sila idey leninizma, Gospolitizdat, 1950, 183.텍스트로 돌아가기
  6. K. Marks & F. Engel's, Izbr. proizv., t. II, 353-4.텍스트로 돌아가기
  7. 〔역자 주〕 19세기 말 W. 오스트발트, G. 헬름, P. 뒤헴이 제창하였던 형이상학이었다. 당대 원자와 분자가 실험적으로 명확히 입증되어 있지 않던 틈을 타 오스트발트는 역학 원리로서 생생하게 증명되는 에너지만이 실재임을 주장하였다. 따라서 에너지론은 물리학에서 에너지 범주를 우주와 자연의 원초 범주로 설정하였고, 원자론에 반대하였다. 오스트발트는 이를 사회원리에까지 유비하였다.텍스트로 돌아가기
  8. F. Engel's, Dialektika prirody, 9.텍스트로 돌아가기
  9. Tam zhe.텍스트로 돌아가기
  10. V. I. Svidersky. Prostranstvo i vremya, Gospolitizdat, 1958.텍스트로 돌아가기
  11. Dialektika prirody, 96.텍스트로 돌아가기
  12. K. Marks & F. Engel's, Izbr. proizv., t. I, 416.텍스트로 돌아가기
  13. Sochineniya, t. 14, 18.텍스트로 돌아가기
  14. Tam Zhe., 267.텍스트로 돌아가기
  15. Tam Zhe., 264.텍스트로 돌아가기
  16. Tam Zhe.텍스트로 돌아가기
  17. Lui de Broyl', „Inteepretatsiya volnovoy mekhaniki“, Voprosy filosofii, 1956, № 6, 80. 드 브로이는 P. 랑주뱅의 지도 하에 완성한 박사 학위 논문 「양자 이론 연구」에서도 이와 같은 입장을 취했다.텍스트로 돌아가기
  18. 드 브로이와 그의 학파에 대한 현대적 견해에 대해서는 Yu. Sachkov, O materialisticheskom istolkovanii kvantovoy mekhaniki, Gospolitizdat, 1959.를 참조하라.텍스트로 돌아가기
  19. Uspekhi fizicheskikh nauk, 1926, t. VI, v'l. 6, 425-6.를 참조하라.텍스트로 돌아가기
  20. M. E. Omel'yanovsky, Filosofskie voprosy kvantovoy mekhaniki, Izd-vo AN SSSR, 1956.을 참조하라.텍스트로 돌아가기
  21. Ph. Frank, Philosophy of science, Englewood cliffs. N. Y.: Prentice-Hall, Inc., 1957, 230.텍스트로 돌아가기
  22. W. Schnell, Die Erkenntnis der Natur, W. Kohlkammer — Verlag, Stuttgart, 1955, 5.텍스트로 돌아가기
  23. Ibid., 13.텍스트로 돌아가기
  24. N. Bor, „Kvantovaya fizika i filosofiya“, Uspekhi fizicheskikh nauk, t. LXVII, vyp. I, 1959, yanvar', 38-42.를 참조하라.텍스트로 돌아가기
  25. M. Born, „Der Realitäts Begriff in der Physik“, Die Sammlung, 1958, H. 718, 349.텍스트로 돌아가기
  26. Ibid., 348.텍스트로 돌아가기
  27. Ibid., 349.텍스트로 돌아가기
  28. M. Born, „Fizicheskaya real'nost'“, Uspekhi fizicheskikh nauk, 1957, t. LXII, vyp. 2, 130.텍스트로 돌아가기
  29. Tam zhe.텍스트로 돌아가기
  30. Tam zhe.텍스트로 돌아가기
  31. Tam zhe., 130-1.텍스트로 돌아가기
  32. „Der Realitäts Begriff in der Physik“m Die Sammlung, 1958, H. 718, 351.텍스트로 돌아가기
  33. Ibid., 130.텍스트로 돌아가기
  34. „Fizicheskaya real'nost'“, Uspekhi fizicheskikh nauk, 1957, t. LXII, vyp. 2, 136.텍스트로 돌아가기
  35. Tam zhe., 138-9.텍스트로 돌아가기
  36. Tam zhe., 134.텍스트로 돌아가기
  37. S. G. Suvorov, „Problema «fizicheskoy real'nosti» v kopengagenskoy shkole“, Uspekhi fizicheskikh nauk, 1957, t. LXII, vyp. 2, 152.텍스트로 돌아가기
  38. Tam zhe., 153.텍스트로 돌아가기
  39. Tam zhe., 154.텍스트로 돌아가기
  40. Tam zhe., 152.텍스트로 돌아가기
  41. „Der Realitäts Begriff in der Physik“, Die Sammlung, 1958, H. 718, 357.텍스트로 돌아가기
  42. 〔역자 주〕 오늘날에도 광자는 기본입자로 분류되지만, 중성자·중간자·하이페론은 복합입자로 분류된다. 보른의 이 논문은 1958년에 작성되었는데, 이 당시에는 세계 물리학계에서 기본입자 세트를 정의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고, 여러 시도에서 중성자·중간자·하이페론은 일반적으로 기본입자로 분류되었다.텍스트로 돌아가기
  43. V. Geyzenberg, „Razvitie interpretatsii kvantovoy teorii“, V sb.: Nil's Bor i razvitiye fiziki, IL, 1958, 36.텍스트로 돌아가기
  44. W. 하이젠베르크는 실증주의 철학을 대체로 고수하는데,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철학은 철학을 언어 기호로 환원한다.텍스트로 돌아가기
  45. Tam zhe., 29.텍스트로 돌아가기
  46. Tam zhe.텍스트로 돌아가기
  47. V. Geyzenberg, Filosofskie problemy atomnoy fiziki, 38.텍스트로 돌아가기
  48. M. E. Omel'yanovsky, „Znachenie truda V. I. Lenina «Materializm i empiriokrititsizm» dlya kritiki fizicheskogo idealizma“, V sb.: Velikoe proizvedenie voinstvuyushchego materializma, Sotsekgiz, 1939, 147.텍스트로 돌아가기
  49. „Razvitie interpretatsii kvantovoy teoriv“, V sb.: Nil's Bor i razvitiye fiziki, 35.텍스트로 돌아가기
  50. Tam zhe., 36.텍스트로 돌아가기
  51. Tam zhe., 41.텍스트로 돌아가기
  52. Tam zhe., 43-4.텍스트로 돌아가기
  53. „Der Realitäts Begriff in der Physik“, Die Sammlung, 1958, H. 718, 351-2.텍스트로 돌아가기
  54. I. V. Kuznetsov, „V chem prav i v chem oshibayetsya V. Geyzenberg“, V sb.: Voprosy filosofii, 1958, № 11, 80.를 참조하라.텍스트로 돌아가기
  55. I. Ye. Tamm, „Zaklyuchitel'noe slovo na konferentsii“, Voprosy filosofii, 1959, № 12, 157.텍스트로 돌아가기
  56. D. I. Blokhintsev, Nekotorye voprosy razvitiya sovremennoy fiziki, Voprosy filosofii, 1959, № 10, 34.를 참조하라.텍스트로 돌아가기
  57. V. Geyzenberg, „O vozmozhnosti yedinoy teorii polya materii“, Voprosy filosofii, 1959, № 12, 159.를 참조하라.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