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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한 변증법적·역사적 유물론에서 물질 이해의 정립 과정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한 변증법적·역사적 유물론에서 물질 이해의 정립 과정」 『총명한 유물론』 제3집 가을호


„Zur Herausarbeitung des Materieverständnisses des dialektischen und historischen Materialismus durch Marx und Engels“, Beiträge zur Marx-Engels-Forschung, 16, 1984: 75-79.


P. Heller | 구 민주 독일(DDR) 유물론 철학자


L11✬ R11

(간격 값)

<75>마르크스 전(前) 유물론의 사유는 일면적이고 자연주의적인 입장을 취하는데, 이는 독일 고전 관념론으로부터 폭넓게 비판받았으며, 인간을 역사의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주체로 파악하는 시야를 차단한다. 그것이 사회적 문제에 관하여 그 자체로 관념론으로 전도되지 않는 한, 즉 그것이 유물론적인 인간상과 사회상을 보존하고자 노력하는 한, 그것은 인간을 자연의 산물로 설명하기는 하지만 동시에 그를 자연 자체의 한낱 한 계기로 남아있게 만든다. 운동하는 물질로서 인간을 실체적으로 통합하고 그의 감각 속에서 직접적으로 표출되는 이 자연은, 마르크스 전 유물론에서는 물질로 간주된다. 이 개념은 비록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실존의 계기를 함유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는 상기의 자연주의 지향성(Naturorientiertheit)에 의해 덧씌워지고 한정된다.

 

포이어바흐는 생각하고 느끼는 자연 존재로서의 인간을 나머지 자연으로부터 부각시켜 끄집어내어, 인간을 자연에의 감성적이고 이성적인 인식 관계 속에 위치시킨다. 자연과 사유(물질과 정신)의 개념 관계 속에서 포이어바흐는 철학의 근본문제라는 문제에 접근하는데, 잘 알려져 있듯이 그는 이 문제를 일관되게 해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못하다.

 

포이어바흐 방식의 원리는 청년 카를 마르크스에게 유물론으로의 자기 자신의 세계관적 전환에 대한 이론적-방법론적 반성의 모델로서 기능하며, 이러한 이행은 『헤겔 법철학 비판』 원고에 포함된 관념론적 요구들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이 원고가 증명한다. 여기서 형성되는, 당초 사회-지향적인(gesellschaftsbezogene) 이 유물론은, 오직 자연만을 지향하는 영국과 프랑스 유물론의 용어법과 개념 체계 속에서는 자기의 목적에 부합하는 알맞은 토대를 발견할 수 없다. 질료(Stoff)로 이해되는 물질은 활동하는 인간에 외적이며, 그를 해명하지 못한다. 따라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용례 속에서 물질이라는 용어는 대개 ‘질료’ 또는 ‘자연’이라는 의미를 지닌다.12 (여기서는 은유적이거나 단발적인 구어적 용법들은 고려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포이어바흐의 사유 모델은 그것의 언어적 기관과 더불어 자기 자신의 대상에 적용 가능한 것으로 나타나며, 마르크스는 특히 <76>1843년부터 1845년까지의 저작에서 이 언어적 기관을 사용한다. 카를 마르크스는 자기 견해의 성립 속에서 사회-지향적 철학의 근본문제 상황을 다음과 같은 개념 형식으로 정립한다:

 

1. 『헤겔 법철학 비판』 원고에 나타난 ‘경험적 현실’과 ‘이념’ 사이의 대비.3 이 경우 문제되는 것은, 실제적·역사적 사태들에 지향되어 있는 사회 분석에 대한 자기 자신의 접근 방식을 ‘논리적 이념(logischen Idee)’의 헤겔적 자립화(Hegelschen Verselbständigung)로부터 구별하는 것이다;

 

2. 특히 『경제학-철학 수고』 속의 ‘감성적인 것(또는 ‘감성적·대상적인 것’, ‘감성적·현실적인 것’)’이라는 개념에서 그렇다.4 이 경우 한편으로 제1자연과 제2자연의, 그리고 ‘소외된 노동’이라는 개념 주위에 무리지어 있는 그러한 사회적 현상의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실존이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감성적인 것’ 개념은 현실에 대한 인간의 감성적-활동적 행태(sinnlich-tätige Verhalten)를 함유하며, 그리하여 철학의 근본문제 상황과 더불어 주객 변증법을 주제화한다. 후자의 유물론적 토대 위에 『수고』에서의 철학적 탐구의 중점이 놓여 있다;

 

3. 이는 『신성가족』 및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다양한 후속 문헌 속에서의 ‘존재’와 ‘의식’의 개념 관계에 관한 것이다.5 이미 ‘감성’이라는 개념 속에 함유되어 있던 2차원성은 이 문헌들에서 이어지며, 그것들은 감각론적 경향을 띠는 외양(tendenziell sensualistische Verkleidung)을 벗어던진다. 한편으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사변적 관념론을 향한 타격 방향을 가지고 여기서 명확한 인식론적 구분을 단행하며, 이때 존재는 “현실적인 것”으로서─즉 객관적으로 실재하며 자연과 사회를 아우르는─존재(Sein als „wirkliches“)로 이해되고, 그리하여 그것은 포이어바흐의 해당 개념 파악 방식보다도, 그리고 종래의 물질 개념보다도 더 넓은 의미를 지닌다. 의식에 대해 그것은 1차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동시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사회적 존재라는 개념을, 사회적 의식을 산출하며 그 의식이 곧 그[과정]의 직접적인 요소인, 실천적 삶의 과정(praktischen Lebensprozesses)을 지칭하는 것으로(특히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이해한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존재와 의식의 절대 분리는 물러나며, 주객 변증법의 차원에서 상대화된다. 하지만 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한 유물론적 해답이라는 의미에서의 그것─상술한 존재와 의식의 대립을 통하여, 주객 변증법의 유물론적 토대는 『경제학-철학 수고』에서보다 『신성가족』에서 훨씬 더 강하게 부각되어 나타난다. 상기한 두 가지 관점 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관념론에 대한 자신들의 인식론적 비판과 더불어, 세계관으로서의 유물론을 근본적이고 무조적으로 천명하기에 이른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이는, 종래의 유물론의 중심에 서 있는 물질이라는 개념 속에서 질료적-자연적 속성에의 기술 이상의 것을 보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77>포이어바흐처럼 그들[종래의 유물론자들]도 인간 의식과 무관한 그리고 그의 외부에 실존하는 물질(여기서는 여전히 자연으로 이해되는)의 존재를 강조한다. 이 의미에서 포이어바흐의 영향 하 집필된 저작들(1843-5년) 속에서 “물질적-”이라는 용어는 일부 문헌 맥락에서 “외적-” 또는 “현실적-”의 동의어로 읽을 수 있다;

 

4. 사회적 영역에서의 물질과 이념의 분리─이는 『독일 이데올로기』 이래 포이어바흐적 영향에의 극복을 거치며, 이제는 독자적인 용어법과 개념 틀에서 다루어진다.6 마르크스는 파리에서의 경제학 탐구 시절부터 일반적으로 생산을 사회의 기초로 취급하였던 데 반해, 『독일 이데올로기』와 함께 이제 주되게, 다양한 질(verschiedenen Qualitäten)에서의 생산관계가 역사적-사회적 제 과정의 근본 구조를 이룬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이 생산관계는 생산력의 발전과 상호작용하면서 다양한 시대들에 저마다의 각인을 부여한다. 사회적 의식은 이제 실천을 매개로 하는, 바로 그 생산관계들의─비록 인간 노동의 결과물이기는 하나 이[의식]와는 독립적으로 그리고 이의 외부에서 존립하는─반영상(反映像)으로 출현한다. 생산관계들의 이러한 비정신적 존립과 그것들로부터 발원하는 사회적 행위의 규정성은─오직 자연법칙의 작용에만 비견될 수 있는─마르크스와 엥겔스로 하여금 유추 형성(Analogiebildung)을 통해 종래의 물질 개념을 그것들에 [확장] 전용하도록 이끌었을지도 모른다. 두 고전 작가는 『독일 이데올로기』 이래 “물질적인 사회적 관계(materiellen gesellschaftlichen Verhältnissen)”를 말한다.7 허나 이 표현은 물질이 질료라는 구상과는 모순되므로 그 표현은 종래의 [물질에의] 개념 이해 속에 가려져 있던 그것─물질의 객관적 실재성이라는 표지 위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8 따라서 내 생각에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비로소 최초로, 변증법적 및 역사적 유물론의 물질 개념이 용어와 개념의 통일 속에서 확고하게 출현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전체 저작에서 1846년부터 ‘물질’(또는 ‘물질적-’)이라는 용어는 이로써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한편으로는 방금 간추린 바와 같이 철학적 개념으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 질료, 소재 또는 노동의 대상 등의 명명법으로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사용된다.

 

상술한 두 번째 범주에 속하는 용어 사용에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자연의 변증법』에서 물질에의 정의가 해당되는데, 내 생각에 이는 19세기 자연과학적 언어의 개념에 해당하며, 해당 대목에서는 그것이 오직 보편자와 개별자의 문제라는 측면에서만 논의되고 있다.9

 

새로우며 언어적으로도 성찰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물질 이해의 형성은, 철학적 근본 지향으로서의 유물론(Materialismus als philosophischer Grundrichtung)에 대한 그들의 평가와도 연관 지어 고찰되어야 한다. 『경제학-철학 수고』에 이르기까지 마르크스는 [기성의] 유물론과 관념론에 대해 빈번히 비판적인 태도를 표명한다. 여기서 둘 다 그에게는, <78>각각 ‘자연주의’ 혹은 ‘인본주의’ 내부에서 비로소 자기의 “통합하는 진리”를 발견하게 되는 일면적 견해로 간주된다.10 마르크스는 이러한 견해를 철회하지 않은 채,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대목에서 포이어바흐에게 ‘참된 유물론’을 정립한 공로를 돌린다.11 이러한 겉보기 모순은, 철학적 관점에서─상술하였듯─마르크스가 『수고』에서 주객 변증법의 유물론적 재정립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었다는 점으로부터 해명된다. 두 철학적 근본 지향에 대한 단죄는 이 문제에 대한 저마다의 한정된 시야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사변적 관념론에서의 주체의 자립화뿐만 아니라 과거의 유물론의 자연주의적-객관주의적 형태도 겨냥한다. 반면에 포이어바흐에 대한 평가는, 한편으로는 이 문제에 대한 그의 나름의 해결책과도 관련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헤겔에 대한 그의 원칙적인 인식론적 비판─마르크스가 여기서 사회적-역사적 영역에 적용하는 비판─과도 연관된다.

 

『신성가족』은 그가 유물론과 관념론을 인식론적으로 양측을 배제하는 철학적 근본 관점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 정교화된 관점으로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이끈 것은 순수하게 이론적인 동기 외에도 무엇보다 청년헤겔파와의 원칙적인 대결에의 필요였다. 여기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세계관으로서의 유물론을 전면적으로 천명하며, 관념론에 대한 인식론적 비판을 가하고, 유물론의 역사에 대한 차별화된 고찰을 수행한다.12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는 관념론의 사회적 원인들이 밝혀진다. 우리에게 여기서 관심의 대상이 되는 물질 및 유물론 이해의 문제와 관련하여, 그들은 바로 이 대목에서 “물질에 관한 유물론자들의 수사적 언사”를 “그들 학설의 세계관적 내용”13으로부터 분리할 것을 간접적으로 요구한다.14

 

번역: 한동백 | 중앙사무위원

2026년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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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arl Marx: Ö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In: MEGA² I/2, 360, 368, 385, 389. — Friedrich Engels/Karl Marx: Die heilige Familie. In: MEW, Bd. 2, 49. — Karl Marx/Friedrich Engels; Die deutsche Ideologie. In: MEW, Bd. 3, 30, — Karl Marx: Das Kapital. Erster Band. In: MEW, Bd. 23, 53, 57, 88, 104, 403, 407, 451, 501, 532.의 사례를 참조하라.텍스트로 돌아가기
  2. 〔역자 주〕 헬러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개념 사용이 아니라 용어법만을 지칭한다. 이 용어법은 본래 두 작가의 물질 이해에서, 즉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물질을 “물질적인 사회적 관계”로 이해하지 못했던 초기의 관점에서 유래하였다. 하지만 이 관점이 극복된 『독일 이데올로기』 이후의 저작에서도 그것은 두 작가의 용어법으로서는 잔재하고 있다. 헬러의 의도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에서 등장하는 용어법과 확장된 개념 이해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이 문헌의 77-8쪽을 참조하라.)텍스트로 돌아가기
  3. Karl Marx: Zur Kritik der Hegelsehen Rechtsphilosophie, In: MEGA² I/2, 8, 9f, 12, 18.텍스트로 돌아가기
  4. Karl Marx: Ö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In: MEGA² I/2, S.365, 366, 370, 371 f, 392, 396, 437 f. u. a.텍스트로 돌아가기
  5. Friedrich Engels/Karl Marx: Die heilige Familie. A. a. O., 38, 55 f. — Karl Marx/Friedrich Engels: Die deutsche Ideologie. A. a. O., 21, 26. — Karl Marx: Zu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Vorwort. In: MEW, Bd. 12, 9.텍스트로 돌아가기
  6. Karl Marx/Friedrich Engels: Die deutsche Ideologie. A. a. O., 14, 20, 25, 26, 36, 46, 160 f, 168, 217.텍스트로 돌아가기
  7. Ebenda, 75, 26, 36, 46, 178.텍스트로 돌아가기
  8. 〔역자 주〕 물론 종래의 물질 이해로서 ‘질료’도 객관적 실재성을 함유한다. 하지만 그것은 객관적 실재성 자체는 아니며, 차라리 그것에의 특수한 이해의 산물로서 어떠한 한 객관적 실재라고 해야 한다. “물질적인 사회적 관계”에는 이 특수성이─특수한 이해에 의한 산물, 예를 들어 ‘질료’, ‘자연’, ‘실체’ 등의 이론적 근거인 종차(種差)─남아 있지 않지만, 객관적 실재성이라는 보편성은 요지부동하다. 따라서 “물질적인 사회적 관계”도 어떠한 특수한 객관적 실재이다.텍스트로 돌아가기
  9. Friedrich Engels: Dialektik der Natur. In MEW, Bd. 20, 303, 502, 519.텍스트로 돌아가기
  10. Karl Marx: Ö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A. a. O., 408.텍스트로 돌아가기
  11. Ebenda, 400.텍스트로 돌아가기
  12. Karl Marx/Friedrich Engels: Die heilige Familie, A. a. O., 59 f, 131 f.텍스트로 돌아가기
  13. Karl Marx/Friedrich Engels: Die deutsche Ideologie. A. a. O., 89.텍스트로 돌아가기
  14. 여기에 설명된 전체 문제 세트에 대해서는 Peter Heller: „Zur Herausarbeitung des Materieverständnisses des Diaektischen und historischen Materialismus durch Karl Marx und Friedrich Engels. Eine philosophiegeschichtliche Untersuchung“; 그리고 동일 저자의 미간행 A급 논문(Halle, 1983): „Die begriffliche Reflexion des Übergangs zum Materialismus durch Marx und Engels bis 1846“, in: Arbeitsblätter zur Marx-Engels-Forschung, Issue 16 (Halle/Saale, 1983).를 참조하라.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