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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11/06/30

<격주간 정치신문-사노위 : 14호>교섭창구단일화는 복수노조허용이 아니다! 노조 활동을 파괴하려는 교섭창구단일화

교섭창구단일화는 복수노조허용이 아니다!

노조 활동을 파괴하려는 교섭창구단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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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전임자에 대한 유급활동제한을 골자로 하는 타임오프제는 지난해 7월1일 이후 시행되었고, 현대차 아산공장 박일수 열사에 자결에서도 나타나듯이 현장의 노조 활동을 억압하고 있다. 참으로 참담한 일이다. 그러나 타임오프제는 올해 7월 1일부터 시행될 복수노조 교섭 창구단일화에 비한다면 전초전에 불과하다. 그만큼 교섭 창구단일화는 기간의 민주노조운동 자체를 흔들 만큼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
 

악법인 이유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악법이다.
 
첫째, 기존 복수노조허용 마저도 부정하고 있다.
법 개정 이전 기업별 노조의 복수설립은 금지되었지만, 산별노조, 지역노조 등 조직형태를 확장함으로써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 복수노조라고 하더라도 조직형태가 다르면 독자적인 교섭권과 쟁의권을 인정하고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악법은 조직형태와 무관하게 하나의 사업장에서 동일한 조직대상을 가진 모든 노조는 교섭창구단일화의 대상임을 못 박고 있다. 법규범 상으로 보아도 기존에 인정된 복수노조를 불허하는 반동적 후퇴이다.
 
둘째, 교섭창구단일화는 노동3권을 전면부정하고 있다.
교섭창구단일화는 복수노조의 경우 한 노조의 협약만료일 3개월 전에 교섭을 신청해야하고, 다른 노조는 자신의 협약만료일과 무관하게 이 시기 교섭에 참가해야한다. 교섭대표노조를 확정하기 까지 최소 1개월, 최대 2개월 이상 교섭대표를 선정해야 한다. 이전에 전례가 없는 과정이다. 교섭대표노조를 결정하지 못하면 자본은 교섭에 응할 의무가 없다. 교섭대표노조가 선정되고 나서 1년 이내에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할 시 다시금 교섭대표노조를 가리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교섭대표노조라 하더라도 쟁의행위 시 복수노조의 전체 조합원의 과반수를 얻어야 쟁의권을 득할 수 있다. 더구나 현재 법 집행은 교섭권이 있을 때 쟁의권을 인정하고 있어 1년 이내에 협약을 체결하지 않는다면 교섭기간 중의 쟁의행위 결의는 전에 없었던 유효기간 분쟁을 낳게 된다.
 
셋째, 소수노조의 존립을 부정하고 있다.
악법은 조합원 대비 10% 미만의 조직률을 가진 소수 노조에 대해서는 아예 교섭단위 결정 참가의 자격을 인정 않고 있다. 교섭 과정에서 조차 개입할 수 없는 것이다. 조직율과 무관하게 노동조합은 독자적인 노동3권이 향유해야 한다.
 
넷째, 현장의 분열을 노골적으로 획책한다.
결국 교섭권을 누가 쥐느냐에 따라 노조의 사활이 결정되는 구조이다. 악법은 전체조합대비 과반수를 차지하는 노조에게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이는 노동조합의 민주적, 자주적 활동과 무관하게 ‘쪽수’ 불리기 경쟁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복수노조 때문에 현장 노동자가 분열하는 것이 아니라, 교섭창구단일화로 인해 분열되는 것이다.
 
다섯째, 노동조합운동을 보수화, 개량화를 가속화하려 한다.
교섭창구단일화로 인해 사용자가 주도하는 어용노조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노조는 조합원의 유지를 위해 더욱 더 당장의 실리적인 답을 찾으려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어렵지만 해야 할 투쟁에 노동조합 집행부는 고민이 깊어지는 것이다. 자칫 조합원의 이탈로 교섭권을 잃는다면 아니면 소수노조로 전락한다면 하는 고민에 놓이게 된다. 악법이 진정 정치적으로 노리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국회만 바라 볼 것인가

 
물론 사업장 마다 여건에 따라 교섭창구단일화의 악영향이 순차적으로 닥칠 수 있다. 오히려 이러한 문제가 대응을 사분오열 시키는 악재이기도 하다. 따라서 상황을 지켜보면서, 국회만을 쳐다볼 것이 아니라 당장의 저항을 조직해야 한다. 당장의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악법으로 인해 죽임을 당하는 열사를 보며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반복할 수는 없다.
 
김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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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사노위 : 14호>교섭창구단일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악법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

 

교섭창구단일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악법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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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조운동을 다시 생각할 시기

 

악법에 대응한 투쟁을 어떻게 할 것인가? 96/97 총파업과 같이 악법을 뒤집을 전국총파업을 조직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러나 답답하게도 총파업이 녹록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총파업의 조직과 더불어 현장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악법은 분명 민주노조운동에 독이다. 그러나 악법을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노동자계급에게는 약이 될 수 있다. 현실에서 대부분의 기존노조는 복수노조를 불편해한다. 설사 창구단일화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때문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상호불가침조약(?), 서로 성립된 곳에서는 복수노조 만들지 않기를 약속한다. 그러나 지금 이 시기야 말로 노조의 민주성과 자주성이 무엇인지 환기해야만 한다. 만일 새로운 노조의 설립을 틀어막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당장은 어떨지 모르지만, 결과는 참담할 것이다. 기존노조의 지도부는 기 성립된 노조가 민주적이며 자주적이라고 자신한다. 정말 그러한가? 그러면서도 조합원 대중을 불신한다. 기간의 노조 활동에서 조합원은 이미 ‘빠꼼이’가 되어서, 철저히 실리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조합원 대중은 구조조정 시기를 거치면서 실리성이 강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조합원 대중은 폭발적 분노와 온건한 실리지향성을 동시에 가진 존재다. 이것을 어떠한 방향으로 이끄는가는 노동조합에 달려있다. 이점을 간과한다면 노조운동은 대중을 대상화하고 오히려 고립된다. 조합원이 노동조합의 민주성과 자주성을 토대로 한 투쟁을 자신의 삶의 총체로서 인식하지 않는다면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시기에서 노조의 개량화, 조합원의 보수화는 급격해질 것이다. 자본은 타임오프제 시행 시 호언하였다. “타임오프는 조합원과 관계없는 일이니 별다른 투쟁을 못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현장에서 그러했다. 대부분의 현장의 간부와 활동가는 자본의 예언과 같이 조합원으로부터 고립되었다. 지금부터라도 관성을 걷어내고, 제2의 민주노조 운동이라는 결의로 간부와 활동가는 조합원을 만나야 한다. 지켜져야 할 노조는 현재 있는 노조가 아니라,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조다. 그래야만 교섭창구단일화 시기에 반동과 자본의 교란을 막을 수 있다.
 

우리가 아니라 자본을 교란시키자

 
우선 자본이 법을 핑계로 우기는 교섭창구단일화를 분쇄해야 한다. 현재 악법은 자본이 원한다면 노조마다의 자율교섭을 가능하게하고 있다.(자본에게 선택권을 주는 악법이다) 이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교섭과 무관한 현장투쟁은 불가피하다. 악법 하에 자율교섭이 보장되지 않음을 선언하고, 현실투쟁으로부터 자본이 자율교섭에 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방법뿐이 없다. 한편 그동안 노조 설립이 제약되었던 모든 자들은 노조를 자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만드는 것이다. 일관된 형태로 자본이 현장을 관리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주체의 역량에 달려있다. 맞다. 현실은 주체의 역량을 진전시키지 않고는 극복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민주성과 자주성을 환기하자는 것이다. 지난 10년 간 노조는 합법의 틀에서 후퇴하는 운동을 하였다. 막무가내 불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도저히 법 틀에서 어찌 할 수 없다면 그 틀을 깨는 투쟁을 해야 한다. 유성투쟁을 보라! 노동자에게 합법을 강요하고, 자본은 위법과 탈법을 버젓이 행사하는 것을. 이것이 자본이 바라는 바다. 자본이 우리는 교란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본을 교란시키는 투쟁을 해야 한다.
 
김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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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사노위 : 14호>유성동지들의 완강한 투쟁! 이제, 총파업투쟁으로 화답하자!

 

유성동지들의 완강한 투쟁!

이제, 총파업투쟁으로 화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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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동지들의 완강한 투쟁의지가 확인되었다

 
지난 6월 22일 밤, 공권력과의 격렬한 ‘전투’가 있었다. 유성지회와 건설노조를 중심으로 지역의 동지들은 2,000여명의 경찰병력을 완강하게 몰아쳤다. 유성지회 동지들을 곤봉과 군화발로 공장에서 끌어낸 공권력이 아니던가! 용역깡패와 유성자본을 비호하는 공권력에 대한 정당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이것으로 유성 동지들의 강고한 투쟁의지가 전국적으로 ‘확인’되었다. 다시금 전국적인 투쟁전선의 ‘정점’에 올라선 것이다.
 
유성동지들은 언제나 자본의 허를 찌르는 ‘과감함’을 보여주었다. 불법적인 직장폐쇄와 용역깡패 투입에 맞서 즉각적으로 공장을 해방구로 만들었다. 그리고 유례없이 신속한 공권력 투입에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았다. 공권력에 의해 공장을 적들에게 넘겨주고 어떤 노동조합이 유성지회와 같은 투쟁의지와 조직력을 보여주었던가! 이것이 유성지회 동지들의 구력과 기풍이다. 자랑스러운 전통이다!
 

업무복귀 선언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공장 앞으로 전선을 이동!

 
유성지회의 투쟁에 대해서 금속노조는 ‘업무복귀 선언’을 통해서 ‘공장안에서 민주노조를 사수하자’는 전술을 제안했다. 이는 아산과 영동을 분리시키고, 내용적으로는 파업철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유성자본에게 생존권을 위임할 수 있는 전술이다. 결국 완강한 투쟁을 주장하는 유성지회와의 논쟁을 통해서 업무복귀 선언과 완강한 투쟁을 동시에 배치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유성지회 동지들은 총회를 통해서 요구안과 투쟁전술을 확정하고, 과감하게 투쟁전선을 공장 앞으로 이동시켜내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공장안으로 ‘일괄복직’을 위해 매일 출근을 시작하고, 용역깡패들에게 막히더라도 퇴각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공장 정문 앞에서 용역깡패들과 몸과 몸이 부딪히는 직접적인 전선이 펼쳐진 것이다. 더구나 45세 이상 선배님들은 공장 전체를 에워싸는 노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제는 유성지회가 자본을 공장 안으로 몰아붙이는 데까지 올라선 것이다. 힘 관계의 반전이 시작되고 있다.
 

이제는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이 나서야 한다. 총노동의 반격이 절실하다!

 
업무복귀 선언이후, ‘유성투쟁이 사실상 끝났다’는 흉흉한 소문도 나돌았다. 적극적인 연대투쟁이 조직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유성동지들은 차분히 조직력을 다져나가며 과감한 전술을 결의했다. 그리고 6월 22일, 유례없이 공권력을 밀어붙이는 완강함으로 폭발했다. 유성지회 동지들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적들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투쟁의지는 하늘을 찌를듯하다. 더욱 공세적으로! 더욱 단호하게! 유성지회 동지들의 영웅적인 투쟁에 이제는 총노동의 엄호와 연대가 절실하다.
 
금속노조는 합법적 쟁의권 확보가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금속노조 대의원대회 결의사항인 ‘6말7초 총파업’투쟁을 즉각적으로 준비해 들어가자.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및 노동법개악저지와 더불어 유성투쟁을 전국적인 투쟁전선으로 확대시켜내자. 언제까지 단위사업장 주체들만의 투쟁으로 방치할 것인가! 적극적인 연대투쟁이 조직되지 못하여, 눈물을 머금고 퇴각하는 짓은 이제 그만하자. 유성지회 투쟁을 승리로 움켜쥐고, 이제 총노동의 반격을 시작하자.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승리한다. 투쟁!
 
이인석(금속노조 충남지부 조합원)
이제, 총파업투쟁으로 화답하자!유성동지들의 완강한 투쟁!
이제, 총파업투쟁으로 화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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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사노위 : 14호>“희망의 버스”를 “희망의 공장”으로!

“희망의 버스”를 “희망의 공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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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 밤 11시 30분, 전국에서 출발한 버스들이 부산대교 앞에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이들이 부산에 온 것은 조선소 노동자들이 자본의 이윤 논리에 목이 날아가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희망의 버스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움직인 것은 경찰이 아닌 용역깡패들이었다. 6월 10일 회사 측에서는 11~12일 “희망의 버스”를 봉쇄한다는 목적으로 용역깡패 800여명을 투입해 회사의 출입문을 장악하는 작전을 펼쳤다.
 
제일 먼저 특수선문을 빼앗겼고, 조합원들은 출입문 안쪽으로 들어와서 소화기, 고압에어호스를 설치해 용역과 대치했으나 역부족이어서 출입문을 완전히 용역들에게 빼앗겼다. “쇠파이프로 무장해 한판 붙어보자”고 했으나, 지도부에서 이를 말려 제대로 싸움도 해 보지 못하고 용역들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하지만 “희망의 버스”는 다시 희망을 만들어 주었다. 용역들에게 현장을 장악당한 상태이고 경찰병력 25개 중대까지 합세하여 정문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포기하지 않고 치밀한 작전을 준비하였다. 200여개 정도의 쇠사다리를 준비하고 “희망의 버스” 동지들이 85크레인 밑 담벼락으로 이동할 때 조합원들은 신속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담벼락에 다리를 설치하고 연대동지들을 보듬어 안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경찰들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용역을 수백 명을 배치하고 경찰병력을 수천 명을 배치했으나 노동자들의 일사 분란한 작전에 그들의 봉쇄망은 뚫리고 말았다. 현장으로 들어온 연대 동지들은 정문으로 이동해 용역깡패를 몰아내었다.
 
“희망버스”를 보내며 조합원들은 두려움에 잠겼다. 연대 동지들이 떠나고 나면 회사가 즉각 용역깡패와 공권력을 투입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지도부들은 더욱 이련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지도부 일부에서는 “희망의 버스” 아닌 “절망의 버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그러하지 않았다. “희망의 버스”가 전국으로 알려져 나가고 먼저 현장을 나가던 김여진과 날라리 동지들이 경찰에 임의 동행을 당하면서 순식간에 언론 매체를 통해 한진중공업 공권력 침탈을 반대하는 전국적 여론이 형성되었다. “희망의 버스”는 노동부 장관을 한진중공업으로 불러왔고, 조남호 회장을 국회청문회까지 출석케 했다.
 
“희망의 버스”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의 새로운 물꼬를 틔우고 있지만 전면파업 6개월을 넘기고 있는 현장은 마냥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정권과 자본은 또 다시 압박을 가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6월 17일 오전 10시경에는 “출입가처분” 신청에 대한 결정문 고시를 부산지방법원 집행관들이 현장에 와서 부착했다. 조합원들은 7월 9일(토) 제2차 “희망의 버스”에 더욱 기대를 하고 있다. “희망의 버스”가 희망의 배로, 희망의 공장을 만들어 내는 기대를 가지는 것이다.
 
현재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은 좁게는 한진중공업 자본과 싸우는 것이고, 넓게는 이 땅에서 자본이 남발하고 있는 정리해고를 전면에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운동세력과 진보세력들이 함께 해야 한다고 본다. “희망의 버스”는 대부분 일반시민들로 구성되어 자발적으로 참여 하고 있다. 2차 “희망의 버스”가 오는 날은 동료들의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해 김진숙 동지가 85크레인에 오른지 185일째가 되는 날이다. 그래서 “희망의 버스” 185대가 김진숙 동지를 안전하게 우리들 품으로 안아 올수 있는 날이 되길 간절히 바라면서 동지들의 연대를 호소한다.
 
박성호(한진중공업 해고자)

 

 

6월 11일 밤 11시 30분, 전국에서 출발한 버스들이 부산대교 앞에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이들이 부산에 온 것은 조선소 노동자들이 자본의 이윤 논리에 목이 날아가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희망의 버스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움직인 것은 경찰이 아닌 용역깡패들이었다. 6월 10일 회사 측에서는 11~12일 “희망의 버스”를 봉쇄한다는 목적으로 용역깡패 800여명을 투입해 회사의 출입문을 장악하는 작전을 펼쳤다.
제일 먼저 특수선문을 빼앗겼고, 조합원들은 출입문 안쪽으로 들어와서 소화기, 고압에어호스를 설치해 용역과 대치했으나 역부족이어서 출입문을 완전히 용역들에게 빼앗겼다. “쇠파이프로 무장해 한판 붙어보자”고 했으나, 지도부에서 이를 말려 제대로 싸움도 해 보지 못하고 용역들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하지만 “희망의 버스”는 다시 희망을 만들어 주었다. 용역들에게 현장을 장악당한 상태이고 경찰병력 25개 중대까지 합세하여 정문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포기하지 않고 치밀한 작전을 준비하였다. 200여개 정도의 쇠사다리를 준비하고 “희망의 버스” 동지들이 85크레인 밑 담벼락으로 이동할 때 조합원들은 신속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담벼락에 다리를 설치하고 연대동지들을 보듬어 안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경찰들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용역을 수백 명을 배치하고 경찰병력을 수천 명을 배치했으나 노동자들의 일사 분란한 작전에 그들의 봉쇄망은 뚫리고 말았다. 현장으로 들어온 연대 동지들은 정문으로 이동해 용역깡패를 몰아내었다.
“희망버스”를 보내며 조합원들은 두려움에 잠겼다. 연대 동지들이 떠나고 나면 회사가 즉각 용역깡패와 공권력을 투입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지도부들은 더욱 이련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지도부 일부에서는 “희망의 버스” 아닌 “절망의 버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그러하지 않았다. “희망의 버스”가 전국으로 알려져 나가고 먼저 현장을 나가던 김여진과 날라리 동지들이 경찰에 임의 동행을 당하면서 순식간에 언론 매체를 통해 한진중공업 공권력 침탈을 반대하는 전국적 여론이 형성되었다. “희망의 버스”는 노동부 장관을 한진중공업으로 불러왔고, 조남호 회장을 국회청문회까지 출석케 했다.
“희망의 버스”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의 새로운 물꼬를 틔우고 있지만 전면파업 6개월을 넘기고 있는 현장은 마냥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정권과 자본은 또 다시 압박을 가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6월 17일 오전 10시경에는 “출입가처분” 신청에 대한 결정문 고시를 부산지방법원 집행관들이 현장에 와서 부착했다. 조합원들은 7월 9일(토) 제2차 “희망의 버스”에 더욱 기대를 하고 있다. “희망의 버스”가 희망의 배로, 희망의 공장을 만들어 내는 기대를 가지는 것이다.
현재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은 좁게는 한진중공업 자본과 싸우는 것이고, 넓게는 이 땅에서 자본이 남발하고 있는 정리해고를 전면에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운동세력과 진보세력들이 함께 해야 한다고 본다. “희망의 버스”는 대부분 일반시민들로 구성되어 자발적으로 참여 하고 있다. 2차 “희망의 버스”가 오는 날은 동료들의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해 김진숙 동지가 85크레인에 오른지 185일째가 되는 날이다. 그래서 “희망의 버스” 185대가 김진숙 동지를 안전하게 우리들 품으로 안아 올수 있는 날이 되길 간절히 바라면서 동지들의 연대를 호소한다.
박승호(한진중공업 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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