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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위 주간 초점2>미완의 혁명 - 이집트 민중봉기는 여전히 진행 중

미완의 혁명 - 이집트 민중봉기는 여전히 진행 중

 

민중봉기는 끝나지 않았다

 

이집트 민중봉기는 30년 독재의 무바라크 대통령이 지난 2월에 물러나면서 끝난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집트에서는 수 만 명이 계속 시위를 하고 있으며, 군 발포에 의한 사망자 수는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지난 10월 9일, 극단 이슬람주의자들의 공격에 항의하는 콥트기독교인들의 시위에 군이 발포하면서 하루 26명이 숨지는 사태가 발발했다. 30년 만의 첫 자유선거인 총선이 시작되기 일주일 전인 11월 18일, 이집트에서는 ‘2차 혁명’이라 불리는 대대적인 시위가 며칠 동안 계속 벌어졌고, 임시정부(이집트 군부 최고위원회)는 이를 폭력적으로 진압하여 3~4일 사이 무려 38명이 사망하고 3,000여명이 부상당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 있는 타흐리르광장(지난 1월 민중봉기가 일어났던 장소)에 하루에 수 만 명 씩 쏟아져 나와 ‘혁명의 성과’를 탈취하고 개혁의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폭압 정치를 계속 이어가고 있는 임시정부에 항의하면서 다시 한 번 ‘정권퇴진’을 외쳤다. 시위는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다.

2차 투표 직후인 12월 16일 이후 시위대와 군 간의 충돌로 또 1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어쩌면 애당초 이집트 '혁명‘이라 일컬어지는 2011년 1~2월 상황보다 지금이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도 있다. 매우 복잡한 총선 과정이 무려 3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과정에서 허구적 ’개혁‘이 아닌 진정한 변혁을 원하는 혁명 세력과 그 허구적 ’개혁‘ 안에 혁명적 열기를 가두려는 반혁명 세력이 격돌하고 있다.

 

3개월 간의 총선 과정 - 보수적 이슬람주의자들의 부상

 

30년 만에 치러지는 이번 총선은 대단히 복잡하다. 11월부터 내년 1월까지 3개월 간 진행된다. 의회 하원의원 총 498명과 주지사를 뽑는 이번 총선에 약 40개 정당과 정치조직 총 6,000명의 후보가 뛰어들었으며, 지난 11월 28일에 총선 1차 투표가 진행됐다. 1차 투표 결과 발표가 연기되고 선거관리위원회는 잘못된 투표율을 발표하는 등 많은 의혹이 제기되다가, 12월 5일에는 하원 52개 의석에 대해, 그리고 최근 12월 14~15일에는 180개 의석에 대한 2차 투표가 진행됐으며, 3차 및 최종 투표는 2012년 1월에 예정되어 있다. 아직 최종 선거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지만, 1차 및 2차 투표에서 무슬림형제단이 이끄는 자유정의당(Freedom & Justice Party)이 거의 절반에 이르는 득표율을 얻었고, 엄격한 이슬람 율법을 강조하는 극보수 이슬람주의 정당인 알누르(al-Nour)도 20%대를 기록했다. 반면, 자유이집트당(Free Egyptians Party) 등 기독계열 혹은 자유주의자들은 10%도 얻지 못하는 등, 이슬람주의자들이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다. 즉, 올해 초 처절한 빈곤과 숨막히는 독재에 항거하면서 민중봉기를 일으켰던 노동자·민중, 청년의 혁명적 열기가 선거를 거치면서 ‘이슬람주의’로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반혁명 세력에 맞서는 노동자·민중의 투쟁

 

많은 논평가들은 튀니지, 이집트 등 아랍지역에서 ‘혁명’이 완수된 것처럼 얘기하나 다른 아랍 국가는 물론이고 이집트에서는 ‘혁명’이 끝난 것이 결코 아니다. 또 주류 언론에서는 이번시위가 ‘1차’ 봉기 이후 몇 개월의 공백 끝에 ‘2차’ 봉기가 일어난 것처럼 보도하거나 콥트기독교인들과 이슬람주의자들 간의 갈등 때문에 촉발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이집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계급투쟁을 애써 외면하려는 노력이다. 선거 중간 결과가 모여주고 있듯이, 무바라크라는 독재자를 퇴진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자본가와 제국주의 세력, 군부, 정치적 이슬람주의자들의 합동 지배체제는 여전히 건재하다. 근본적인 경제, 사회, 정치적 변혁은 점점 멀어지고 시위에 동참하면서 ‘민주 세력’이라 자칭한 자본가계급과 군부, 정치적 이슬람주의자, 자유주의자들이 지난 투쟁의 성과를 가로채고 선거를 발판 삼아 반동으로 득세하고 있다. 이집트 노동자·민중은 이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그래서 진정한 혁명을 향해 총알을 맞아가면서 지난 2월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진한 이후에도 계속 파업과 거리시위 등을 해왔다. 사실 ‘1차’와 ‘2차’ 민중봉기를 구분하는 것이 무색할 정도이다.

 

처절한 빈곤, 부정부패, 그리고 이에 맞선 오랜 투쟁의 역사

 

이미 많이 알려져 있듯이, 이집트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난 배경에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통한 자본의 착취 및 독점화 심화 그리고 만연한 부정부패, 숨막히는 독재 정치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그 동안 체제에 저항해온 노동자·민중 그리고 젊은이들의 투쟁의 역사가 있다.

 

- ‘신프롤레타리아트’인 청년

2010년 이집트의 청년실업율은 42.8%를 기록하는 등 젊은이들은 ‘신프롤레타리아트’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중산층 진입의 꿈이 꺾인 채 빈곤층으로 추락하면서 정치적으로 각석된 젊은이들은 일찍이 무바라크 반대 투쟁을 벌여왔다. 지난 10여 년 동안 케파야(Kefaya; 아랍어로 ‘이제 그만’)나 4.6운동(2008.4.6 섬유노동자 파업과 연대투쟁을 벌이면서 형성) 등 다양한 反무라라크 청년 조직들의 생겨났다. 이런 조직들이 2011년 민중봉기의 주축이 되었고, 이들은 곳곳에서 파업하는 노동자 및 새롭게 건설된 민주노조 등과 함께 지난 수 개 월 동안 여러 차례 대규모 투쟁을 벌이는 등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진한 2월 이후에도 계속 시위를 이어나갔다.

 

- 투쟁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노동자

이집트 노동자 역시 이번 민중봉기를 일으킨 주축이다. 이집트 노동자들은 오랜 동안 억압과 착취에 주눅 들어 있었다. 그러나 80~90년대 신자유주의 정책이 도입되면서 노동자들은 탄압에도 불구하고 두르러지게 조직화하고 투쟁하기 시작했다. 최저임금 등 임금 인상 투쟁, 어용노조에 맞선 민주노조 건설 투쟁 등 여러 산업에 걸친 파업 투쟁이 전개되었고, 이집트독립노동조합연맹(EFITU)이 타흐리르광장 투쟁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1월 30일에 출범을 선언하면서 어용 이집트노동조합연맹(ETUF)의 독점체제를 무너뜨렸다. 새롭게 출범한 민주노조들은 2011년 1월과 2월 민중봉기가 벌어지는 과정을 포함해 2011년 상반기에 총 200 여 건의 크고 작은 파업과 기타 단체 행동을 벌인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8월과 9월에도 계속 이어졌다. 여러 산업에 걸쳐 각각 10만 명 이상 참가하는 대규모 전국적인 파업과 시위가 증가했다. 이런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의 요구가 더욱 급진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처음에는 개별 사업장에서의 임금인상 등 노동조건 개선 등의 경제적 요구로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하반기로 넘어가면서 노동자들의 요구는 명백하게 대정부 성격을 띠면서 정치화되었다. 10월 이후 벌어진 광범위한 시위는 바로 이런 노동자들의 끈질기고 전국적인 파업투쟁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사회주의 및 좌파 세력

이집트의 핍박과 독재의 근본 원인이 된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세속주의에 기반한 대안 사회를 건설하자는 이집트의 좌파 및 사회주의 활동가들은 그 간 노동자 투쟁과 민주노조 건설에 연대하면서 세력을 키워나갔으며, 민중봉기 과정에 ‘반민주 전선’의 좌경화와 노동자들의 조직적 참여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특히, 전국 곳곳에 ‘혁명위원회’를 만들어 아래로부터의 전국적인 투쟁을 도모하고, 마을 치안을 자체적으로 담당하는 감시단 활동도 이끌면서 조직화·의식화되지 않은 일반 이집트인들이 대거 시위에 참여하게 유도했다. 무바라크 퇴진 이후 군부가 정권을 잡고 폭압 통치를 이어나가자, 이에 반발하는 범민주·좌파 세력은 ‘혁명은지속된다동맹(RCA)’을 만들었다. RCA는 무슬림과 자유주의자부터 사회주의자까지 포괄하는 연대체이지만 RCA를 실제 이끄는 세력은 사민주의 및 사회주의 정당의 연합체인 사회주의연합(Coalition of Socialist Forces)으로 알려져 있다. RCA 및 사회주의연합은 2월 이후에도 지속적인 투쟁을 촉구하면서도 이번 총선에서 후보전술을 사용하면서 공동 대응을 하고 있다.

 

반혁명 세력 득세로 우려스러운 이집트의 미래 전망

 

튀니지와 함께 ‘아랍의 봄’의 주축인 이집트의 미래가 암울할 수밖에 없는 요소가 여러 가지 있다. 일단, 후보 6,000여 명이 경합을 벌이는 3개월 간의 총선이라는 매우 복잡한 정치적 과정이 있다. 선거 부정 혐의가 이미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고 내년 초가 되어야 선거가 완료되기 때문에, 선거 자체만 보더라도 모두가 수긍할만한 선거 결과가 나올 리 만무하다. 두 번째 우려 요소는 이슬람주의자들의 득세이다. 아직 최종 선거 결과가 안 나왔지만, 60% 넘는 하원의원이 이슬람주의자인 샘이다. 무슬림형제단은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면서도 임시 정부와 관계를 은밀히 유지해왔으며, 궁극적으로 근본적인 변혁을 결코 가져오기는커녕 오히려 이슬람 율법의 의거한 억압 체제를 이집트에 뿌리내리게 할 것이다. 셋째, 반자본주의적 혁명의 열기가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고자 본격적으로 나선 외부 세력의 개입이 점점 노골화되고 있다. 임시정부는 시위가 다른 아랍지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아준다는 조건 하에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등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도 임시정부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IMF 등 국제금융기구들도 나서서 차관을 제공해주면서 그 대가로 친자본 환경을 요구하고 있다. 넷째 우려 요소는 노동탄압 등 기본적 권리가 박탈되는 것은 물론 군부의 살인행위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총 12,000명이 기소당해 군사 법원에서 재판을 받았으며, 10월~12월 사이에 무려 80여명나 사망했다. 결론적으로, 이집트에서 원활한 권력 이양과 그나마 최소한의 민주적 개혁을 수행할 수 있는 정권 창출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노동자·민중의 지속된 투쟁이 있기에 희망도 있어

 

그러나 이렇게 이집트 정세가 극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에서 여전히 희망을 엿볼 수 있는 이유는 이집트의 노동자·민중이 이에 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붉어진 시위에 대해 이집트 현 총리는 “시위대는 반혁명 세력”이라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반혁명 세력은 임시정부를 구성하는 군부와 그 동안 편안하게 축적해온 부를 어떻게든 지키고 싶어하는 자본가계급, 이들을 비호하는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며, 혁명세력은 여전히 길거리에서 생명을 감수하면서 투쟁하고 있는 이집트의 노동자·민중과 좌파 및 사회주의 세력이다. 물론 좌파 및 사회주의 세력은 한편으로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이루어지는 자유 선거에서 후보 전술을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 부르주아 ‘정치적 민주화’의 한계를 정확히 인식하면서 보다 근본적인 변혁(나아가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계속 투쟁하고 있다. 이집트의 민중봉기는 전혀 끝나지 않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는 이 끝나지 않은 이집트 혁명 과정에 대한 무한한 지지와 지원을 보내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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