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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7/16
- 2008년 7월 14일, 15일
아버지는 충청도의 한 교회에서 동갑내기 어머니와 결혼을 하셨고, 나이 스물에 큰 아들을 낳았다.
아버지는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두고 서울에 돈을 벌러 가셨고, 서울에 올라와 시장에서 개척을 하고 있던 목회자를 만나 그곳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셨다.
시간이 지난 뒤 아버지는 어머니와 동생을 서울로 데리고 가면서 큰 아들인 나는 시골에 두고 가셨다.
또 시간이 흐른 뒤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오셨다.
나는 부모님을 따라 교회에 다녔고, 국민학교에 들어갔고, 청소년기엔 친구들과 형들을 따라 교회 수련회를 다녔다. 부모님을 따라 교회 어른들과 청평에도 갔었고, 여러 기도원들도 다녔다.
아버지는 서울에 올라와 처음 신앙생활을 하던 교회에서 그곳을 떠나기까지 3번의 건축을 성도들과 함께 하셨다.
한 번은 불이 나서 교회를 다시 건축해야 했는데, 어린 시절 친구들과 불구경을 하러 갔더니, 내가 다니던 교회였다.
아버지는 여러 사정으로 그 교회를 떠나셨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골에서 신앙 생활하던 당시 교회 목사님이 서울로 올라오셔서 목회를 하던 교회로 옮기셨다.
아버지가 교회를 옮길 때 그 교회는 건축을 하던 상태였다.
아버지는 또 다시 교회를 건축하는데 함께 하셨고, 목사님이 다른 교회로 옮기실 때 온 식구가 함께 교회를 옮겼다.
처음 아버지와 어머니가 교회를 옮기셨을 때 나와 동생은 아버지가 서울에 처음 올라와서 다니던 교회를 계속 다녔었다. 하지만 집이 교회 안으로 이사를 하는 바람에 같이 교회를 옮겼다.
그 교회에서 나는 고등학교를 다녔고, 신학교에 들어갔다. 군대를 다녀온 뒤 교단을 찾아 간다는 핑계로 그 교회를 떠났다.
목사님이 바뀌고, 교회가(?) 자리를 옮겨 건축을 하기로 해서 아버지는 다시 교회 건축을 함께했다.
아버지는 교회 건축 현장에서 상주를 했고, 하경이를 입양하던 날 건축 현장에 들려 아버지에게 하경이를 보여드렸다. 그리고 하경이 돌잔치를 건축이 끝난 교회에서 했다.
시간이 흘러 교회는 건물을 팔았고, 임시 예배 장소를 구해서 예배를 드리면서, 다시 건축을 했다. 아버지는 다시 교회 건축 현장에서 사셨고, 교회 건축을 마친 후 지방으로 가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건축이 끝난 교회에서 가족들과 칠순 잔치를 하셨다.
오늘 아버지는 교회가 속한 지방회에서 다른 교회 2분의 장로님들과 함께 은퇴식을 했다. 호적이 늦어서 일 년 늦어지진 아버지 때문에, 동갑내기 어머니는 3월에 교회에서 권사 은퇴식을 간단하게 하신다. 작년에 할 것을 아버지하고 같이하고 싶다고, 은퇴식을 일 년을 미루셨단다.
내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어머니는 신학을 공부하셔서 한 장로교회에서 전도사 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지금도 여교역자 모임에 가신다. 나와 아내는 어머니가 전도사 생활을 하던 교회에서 결혼식을 했다.
현재 아버지와 어머니는 지방에서 살고 계신다. 두 분은 그곳에 있는 교회에 출석을 하시면서 어머니는 유초등부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계신다. 덕분에, 서울에는 자주 올라오지 못하고 계셔서 어머니가 권사 은퇴식을 하시면 서울에 있는 교회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질 것이다.
남들은 교회 건축이 한 번도 어렵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그 어려운 교회 건축 현장에 참 많이도 참여하셨다. 그 많고 많은 이야기들을 조금은 알기에 아버지에게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다는 말씀만 드렸다. 참 많이도 애쓰셨다. 어머니도.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 까지 두 분 모두 건강하시기를....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 땀과 눈물을 하나님께서 아시니 남들같이 자식들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지 못한 것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 가지지 마시기를 ....
이기대 장로님 김재순 권사님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 까지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