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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56회 – 마음 비우기

 

 

 

1

 

텃밭에 채소들이 많이 자랐습니다.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아서 주위에 조금씩 나눠주고 있는데

그런데도 많아서 살짝 고민이었습니다.

 

사랑이와 산책을 할 때 가끔 마주치는 분이 있었습니다.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정도 사이였는데

채소를 드리겠다고 하니 환한 얼굴로 즐거워하시더군요.

산책하던 개를 집에 두고 오겠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참이 지나도 오지를 않는 겁니다.

딱히 바쁜 일도 없어서 차 한 잔 마시면서 여유롭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시간이 지나서 그분이 오시더군요.

손에 뭔가를 들고 오셨는데 열어봤더니 직접 구운 빵이었습니다.

빵을 굽느라고 늦었다면서 미안함과 즐거움이 함께 담긴 미소를 보여 주시더군요.

 

이것저것 채소들을 나눠드리고 나서

빵을 먹어봤는데

투박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괜찮았습니다.

이렇게 이웃이 하나 늘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

 

며칠 사이에 택배가 연달아 전해졌습니다.

어떤 분은 참외를 보내주셨고

어떤 분은 홍삼을 보내주셨고

어떤 분은 건어물을 보내주셨습니다.

지난 달에 감귤을 수확하고 몇몇 분들에게 조금씩 보내드렸더니

생각지도 못한 답례들이 이렇게 도착한 것이었습니다.

 

뜻밖의 선물을 받으니 기분이 좋더군요.

오고가는 마음들이 이렇게 전해져서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불편한 마음도 함께 생겨났습니다.

감귤을 받고 이렇게 답례를 보내주시는 분도 있지만

고맙다는 문자메시지 하나로 끝내는 분도 있었고

인사치레조차 없는 분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뭔가를 바라고 보냈던 것들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뭔가를 받고 보니

제 마음 속에 욕심이 생겨서

괜히 불편한 마음만 생겨버리고 말았습니다.

 

답례로 받은 것들도 동생들과 나눠 갖고

제 마음도 비워내려고 노력해봅니다.

그저 제가 나눌 것이 있으면 나누며 살아갈 뿐이니

거기에서 욕심을 만들지 말자고 제 마음을 달래봅니다.

 

 

3

 

예전에 같이 활동했던 분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아는 분을 만나러 이곳에 오는데 그 참에 저에게 들르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 문자를 받고 오만가지 감정이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예전 기억들은 즐거움과 함께 쓰라린 고통을 안겨주는데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것들을 꺼내 늘어놓는 것이 편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분이지만 그 만남이 머뭇거려져서 아무런 답장을 하지 못했습니다.

 

텃밭 채소를 드리고 답례로 수제 빵을 받았던 분은 길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하는 사이였습니다.

어디 사는지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지만 작지만 소중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재미를 느끼고 싶은 욕심도 생기더군요.

다시 마주치면 채소를 더 드려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좀처럼 마주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괜히 제 마음만 앞서는 꼴이 돼 버려서 조금 우스웠습니다.

 

어떤 만남은 머뭇거려지고

어떤 만남은 기다려지는데

머뭇거림도 기다림도 제 안에 있는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니

그 둘 다 내려놔버리기로 했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해보렵니다.

 

 

 

(범능스님의 ‘바람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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