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줄줄 알았던 여성부 농성장 강제철거
곡절많은 사연…나이어린 소장 자고 싶다” 조장은 ‘사랑한다’ 문자
성희롱 신고했더니 징계위원장은 소장이 맡아 피해자·조장 동일 징계
인권위 진정했더니 ‘해고’ 문자통보, 인권위 배상 권고 듣지 않아
지난 2일 오후 여성부가 입주한 건물 한 커피숍에서 만난 박미경(46·가명)씨의 눈이 자꾸 감겼다. 밤에는 잠을 못 자고, 낮에는 병든 닭마냥 졸리는 악순환이라고 했다.
박씨는 청계천 입구 여성가족부가 있는 건물 앞에 텐트를 치고 70일 넘게 생활했다. 2일 오전 7시 건물주가 고용한 용역 30여명이 그가 자고 있던 텐트를 강제로 철거했다. 서울 중구청 가로정비단속반원들도 들이닥쳤다. 박씨는 순식간에 끌려나왔다.
박씨는 1년 전까지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일했다. 현대차 사내협력업체인 금양물류에서 출고차량을 최종 점검하는 일을 했다. 14년째 근무한 베테랑이었다. 14년 일했지만 해고는 한순간이었다. 해고 이유는 그보다 나이 어린 두 남성 간부의 성희롱 때문이었다.
2009년 4월 무렵부터 박씨보다 7~8살 정도 나이가 어린 이아무개 소장은 “너희 집에 가서 자고 싶다”며 밤에 전화를 해 성희롱을 했다. 일할 때면 박씨의 엉덩이를 무릎으로 치고, 어깨와 팔을 주물렀다. 작업 도중 욕설과 음담패설도 서슴지 않았다.
그보다 두 살 어린 정아무개 조장은 문자를 보냈다.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문자는 물론 “우리 둘이 자고 나도 우리 둘만 입 다물면 누가 알겠느냐”는 문자를 보냈다. 그의 부인은 박씨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같은 회사를 다니고 같은 동네에 살았다.
가해자의 아내이자 피해자의 친구는 남편 편이었다. 박씨는 “조장 정씨는 ‘아내 친구라서 더 쉬웠다’고 말했고 친구는 ‘술 먹고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라고 남편을 두둔했다”고 말했다.
피해 사실이 회사에 알려졌고 회사는 징계위원회를 열었다. 징계위원회 위원장은 박씨를 성희롱했던 소장이었다. 소장은 자기 자신은 처벌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해자인 조장과 피해자인 박씨에게 동일하게 ‘정직 6개월, 보직변경’의 징계를 내렸다. 박씨가 징계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하자 이번에는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억울함을 호소할 곳을 찾던 박씨는 2010년 8월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한 달 뒤인 2010년 9월 노동조합과 함께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그러자 회사는 ‘회사 안에서 풍속을 문란하게 했고 사회통념상 근로관계를 계속 유지하기 곤란하다’며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해고를 통보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1월19일 성희롱 사실을 인정했다. 두 간부가 박씨에게 각각 300만원, 6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에 진정했다는 이유로 박씨를 해고한 회사 사장은 900만원을 피해자에게 배상할 것을 권고했다.
국가기관이 ‘성희롱’을 인정하고 노동청이 ‘부당해고’를 결정했어도 박씨의 현실은 변한 것이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한 사항들에 대해 가해자 누구도 이행하지 않았다. 해고 사실은 변함없고 성희롱 가해자는 회사에 잘 다니고 있다.
삶이 무너진 건 피해자인 박씨 한 명이다. 그는 해고 이후부터 지금까지 1년째 길 위에 서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현대차 아산공장 앞에서 마스크와 모자를 눌러쓰고 1인시위를 했다. 가해자 부부는 함께 차를 타고 1인시위하는 박씨를 쳐다보며 유유히 출근했다. 돌아온 건 전치 4주의 진단서와 입원이었다. 현대자동차가 “아줌마가 부끄러운 줄 모르냐”며 그를 밀쳐냈기 때문이다. 1월에는 추위를 이기려고 비닐을 치고 1인시위를 이어갔다. 박씨는 “현대차 경비들은 그때마다 그 비닐조차 걷어갔다”고 말했다.
박씨와 함께 1년째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는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권수정씨는 “해고에도 끄떡 않고 활발하던 언니가 1인시위할 때부터 마음이 약해지고 불안증세를 호소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1인시위 때 나를 보고 웃으며 출근하는 가해자 가족, 오히려 나를 죄인 취급하던 현대차 경비원들 때문에 너무나 억울하고 가슴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신경정신과에서는 “박씨가 직장에서 지속적인 성희롱 및 성추행을 당해 참아왔으나 정도가 심해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며 성추행과 관련하여 추행 장면이 회상되고 쉽게 놀라고 불면, 우울, 불안해지는 등의 증상을 호소”한다며 “심리적 안정·약물치료, 증상에 대한 관찰이 요구된다”고 진단했다.
박씨는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수도 없다. 박씨가 성희롱을 당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의 사내협력업체인 금양물류가 지난해 10월6일 폐업했기 때문이다.
열쇠는 현대자동차가 쥐고 있다. 박씨는 현대자동차의 하청업체에서 14년간 같은 일을 했다. 14년 동안 업체는 7번이나 바뀌었다. 그때마다 사장과 사장이 데려온 소장 외에는 모두 고용이 승계됐다. 지금도 금양물류 대신 형진기업이 같은 일을 하고 있다. 금양물류에서 일하던 직원들도 형진기업으로 고용이 승계돼 다 일하고 있다. 박씨는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은 성희롱 당했다고 이야기하면 해고되고, 인권위가 성희롱 사실을 인정해도 더 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냐”며 “지금이라도 현대차가 나서서, 형진기업이 고용을 승계하도록 이야기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청인 현대자동차에 항의하기 위해 지난 5월31일 서울 방배동 서초경찰서 앞으로 왔다.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농성하고 싶었는데 현대자동차 직원들이 차례로 집회 신고를 해서 합법적 집회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취지로 서초경찰서 앞에서 약 20일간 농성을 했지만, 문제를 알릴 수가 없었다.
6월22일 여성가족부 앞으로 왔다. 성희롱 피해자이기 때문에 여성가족부가 도와줄 줄 알았다. 그러나 여성가족부는 “성희롱을 예방하는 일은 하지만 사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힘이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여성가족부가 나에게 해준 것은 처음 여가부 앞에 왔을때 면담 한 차례, 그리고 하루는 불러서 ‘건물주가 자진철수하지 않으면 용역을 고용해서 밀어내겠다고 하니 철수해달라’는 건물주의 입장을 전달한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실제로 2일 여성가족부가 말한대로 건물주는 용역을 고용해 박씨의 텐트를 한 차례 철거했다. 박씨의 해고는 9월20일이면 1년째로 접어든다. 박씨는 오늘도 변함없이 ‘노숙 농성’ 중이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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