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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성 텐트 청계광장 여성가족부 앞에 설치된 농성텐트. 아산 현대차 공장에서 1인 시위를 하다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서울로 와 농성 중. |
ⓒ 이혜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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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계광장 여성가족부가 있는 건물 앞에는 텐트 두 개가 놓여 있다. 높은 건물들 사이로 땅두더쥐처럼 납작 엎드려 있는 텐트. 지상에서는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는 모습이다. 그 주위의 손피켓과 가로수마다 걸려 있는 현수막에는 이 시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삶이 얼마나 피폐하고 열악한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 텐트는 지난해 9월 자신이 회사 관리자한테 당한 성희롱 피해를 고발했다가 도리어 해고를 당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여성노동자 A씨의 농성 텐트다. 성희롱 피해자가 그 사실을 알렸다고 해고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A씨! 당연히 가해자가 해고될 줄 알았는데 성희롱 피해자인 자신이 오히려 해고된 이 상황을 지금도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한다.
그녀는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사내하청지회에 가입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부당함을 진정한 후 해고를 당하였다. 해고 사유는 '사회 통념상 근로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이란다. 현대차 하청업체의 통념은 성희롱을 당해도 말 한마디 하지 말고 당해야 한다는 것인지.
지난 20일 여성가족부 앞 농성텐트에서 A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아래는 일문일답.
- 과정을 잠깐 설명해주시겠습니까?
"2008년부터 하청업체 조장과 소장에 의해 지속적인 성희롱을 당하다가 2009년 말 참다 못하고 동료에게 가해자가 보내온 문자메시지를 보여주며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 이후 회사에 그 사실이 알려졌어요. 그런데 가해자인 소장이 회사 내 인권위원회를 소집하여 피해자인 저에게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내리더군요. 이유는 문자메시지를 보여준 것이 사내의 선량한 풍속을 문란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재심을 신청했더니 감봉 3개월로 징계의 수위가 낮아졌어요. 그래서 그냥 지냈어요. 그런데 회사안 분위기가 가해자들이 중심이 되어 알게 모르게 압박이 가해지는 것입니다. 대놓고 그러지는 않지만 비아냥거리는 그런 분위기였죠. 제가 저절로 회사를 퇴사하게 만드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국가인권위원에 진정서를 내게 된 것입니다."
- 어떤 식으로 성희롱을 하던가요?
소장은 "너희 집에 가서 자고 싶다" 등의 내용으로 한밤중에도 수차례 전화를 했습니다. "왜 오려고 하느냐?"고 물으면 "내 맘이다"라는 식으로 안하무인이었습니다. 나중에 뭔가 대책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에 녹취를 해두었습니다. 작업 도중에는 제 엉덩이를 무릎으로 치고 어깨와 팔을 주물럭거리는 성추행에 가까운 행동도 했습니다.
게다가 "간밤에 힘 좀 썼더니 오늘은 기운이 딸린다", "나는 밤새 해도 끄떡없다", "○○○(피해자 이름을 대며) 그 년이 대줄 것 같은데 대주지 않는다"는 음담패설에, 작업지시를 할 경우도 "XX, 개X같다. 말도 안 듣는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이런 욕설도 심했구요.
조장은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문자메시지에, "우리 둘이 자고 나도 우리 둘만 입 다물면 누가 알겠느냐?"고 해서 들은 척도 안 했더니, 전화로 "밤길 조심하라"며 협박까지 했어요. 이런 일을 당한 사람이 비단 저뿐이겠습니까? 말을 안 하고 있어서 그렇지. 저 역시 처음에는 시끄러운 것이 싫어 모른 척했더니 점점 심하게 계속되는 바람에 인간적인 모독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성희롱 피해자는 해고, 가해자는 징계도 없이 고용승계
- 국가 인권위에는 언제 진정서를 냈나요?
"2010년 9월 3일 진정서를 냈습니다. 그러자 하청업체는 9월 20일 저를 해고하고 11월 4일 폐업했습니다. 현재는 피해자인 저를 제외하고 가해자까지 포함한 전원은 고용승계되어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 현재 법적으로든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아무것도 없습니까?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피해자에게 가해진 것은 성희롱이 맞다는 결정문이 나왔습니다. 그 결정문에 의하여 성희롱을 한 가해자 두 명과 그것을 묵인한 하청업체 사장에게 손해배상을 하라는 권고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강제성이 있는 것은 아니라 모두 거부하고 주지 않고 있습니다.
더구나 하청업체 사장은 오히려 손해배상 6500만 원을 청구하는 맞고소를 한 상황입니다. 노동부는 그 회사가 폐업을 하였으니 원직복직을 권유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이유로 어떤 해결책도 내어놓지 않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성희롱 결정문을 내린 것으로 자신들의 일은 다 했다는 입장이고, 여성가족부는 성희롱예방교육이 담당이지 이 문제는 여성가족부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 농성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요?
"회사가 폐업신고를 낸 후 다른 사람은 고용승계가 되는데 저는 되질 않자 회사 앞에서 1인시위를 했습니다. 그때 아산공장 회사 관리인들이 와서 앉은 자리의 비닐도 다 빼앗아가는 바람에 그 추위에 비닐 한 장 없이 맨땅에 앉아 시위를 했습니다. 그곳에서 아무리 농성을 해도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질 않아 서울로 온 것입니다.
여성의 문제라 청계광장 여성가족부 앞에서 텐트를 치고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9월 9일이면 상경 농성한 지 100일이 됩니다. 해고당한 지는 1년이 다 되어갑니다. 이렇게 길게 오래 갈 줄 저도 몰랐습니다. 갈수록 고공크레인에 올라간 김진숙 동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해결되지 않고 물러설 수 없다는 마음이 듭니다."
- 그렇다면 이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습니까?
"가해자 처벌과 저의 원직복직입니다. 현대자동차에서 다른 회사에 취업 알선해 주겠다고 지나가는 듯한 말로 제안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다른 회사 취업 정도는 저 혼자 힘으로도 할 수 있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억울함도 있지만 다만 그것뿐이라면 제가 이렇게 긴 농성을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저의 해고가 억울해서 시작한 농성이었지만 지금은 이것이 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근무할 때 회사의 이름은 ㄱ물류였습니다. 그때 함께 일했던 직원들이 ㅎ기업이라는 새로운 회사에 그대로 고용승계되었습니다. 저를 성희롱했던 조장도 그 회사에 그대로 갔습니다. 설혹 원직복직된다고 하더라도 저를 성희롱했던 그 가해자와 함께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그 가해자를 처벌하고 저는 원래 제가 있었던 그 자리로 돌아가는 일, 즉 원직복직이 제가 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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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자 대리인 권수정 님 피해자는 얼굴 찍는 것도 두렵다고 한다. 그래서 피해자 대리인인 권수정씨가 씩씩하게 피해자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다. |
ⓒ 이혜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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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가 유일하게 해준 말, "건물주가 텐트 철거하래요"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라며 그렇게 법을 지켜야 한다고 떠드는데, 법률적으로 성희롱 피해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법 하나 없는 것이다. 다시 한번 과연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A씨 옆에 항상 그림자처럼 다니는 분이 한 분 계시다. A씨의 대리인 권수정(38,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해고노동자)씨. A씨는 자신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 대리인인 권수정씨에 의해 사건은 진행되고 있다. 성희롱, 성추행 사건은 언제나 이렇다. 피해를 당한 여성이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네가 헤프니까 그렇지' 하는 그런 시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하지만 얼마 전, 여성들이 옷을 야하게 입었다고 남성들의 성욕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슬럿워크(slut walk) 행사도 있지 않았나. 더구나 여성 당사자가 분명 싫어하는데도 계속 추근대는 것은 명백한 성희롱이다.
아래는 A씨의 대리인 권수정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여성가족부도 국가인권위도 노동부도 다 손을 놓았는데 이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는 누구인가요?
"이제 현대자동차가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의 특단의 조처가 필요합니다. 지금은 폐업했지만 그 회사가 현대차의 하청업체였고 지금도 회사 이름만 바뀌었지 사원들은 그대로 고용계승되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피해자를 원직복직시키기가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피해자가 일했던 그 자리에 복직시켜 주는 것이 피해자가 바라는 것입니다. 다만 가해자와는 함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가해자를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조건입니다."
- 상경까지 하여 농성하는 있는데, 지금 이 사건이 어느 정도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까?
"그동안 많은 언론에서 취재를 해갔습니다. 얼마 전에는 KBS에서도 취재를 해가지고 갔습니다. 방송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촬영은 해갔습니다."
- 함께해주시는 단체는 어디입니까?
"정말 많은 단체들이 함께해주시고 계십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민주노총 여성위원회와 다함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공동실천위원회, 사회진보연대,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대, 금속노조, 전국여성연대, 전국학생행진,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등 정당과 노동조합 각 시민단체들이 지금 속속 결합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힘을 꼭 보여주고 이 문제를 해결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여성들의 힘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직장내 성희롱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뿌리 뽑아야 합니다. 사회적 약자층인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에게 가해지는 이 야만적인 처사가 묵과되는 것을 손놓고 지켜보고 있을 수 없습니다.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일입니다."
여성들이여, 현대자동차를 거부하라!
-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까?
"저녁마다 문화제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21일에는 상경 50일 촛불 문화제를 하였고 8월 18일에는 8월의 크리스마스 행사도 하였습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 행사를 기획하게 된 것은 농성장의 건물주가 저희들의 농성을 막고자 대형 화분을 길에 설치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화분을 크리스마스트리처럼 꾸미기로 한 것입니다. 우리의 농성을 방해하고자 놓은 화분에 우리의 소망을 담았습니다. 어떤 탄압도 우리의 상상력을 당해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웃음)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올해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에 이 농성을 마무리하고 피해자가 원직복직되기를 원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앞으로 후원금 마련을 위한 티셔츠 판매, 희망 걷기 대회, 상경 100일 촛불 문화제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매일 양재역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1인시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비장의 카드를 준비하고 있는데 아직 발표할 수가 없습니다.(웃음)"
-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
"건물주가 농성장 텐트를 철거하겠다고 공문을 보냈습니다. 이유는 건물의 지하실 누수로 인한 방수 공사 때문이라고 하지만 결국 농성을 해체하겠다는 뜻일 것입니다. 여성가족부에 서운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여성문제로 농성을 하고 있는데 여성가족부 사무관이라는 분이 딱 한 번 내려와 하신 말씀은 농성장을 치워달라는 건물주의 말을 전한 것뿐입니다.
여성가족부가 피해를 당한 여성의 대변인이 아니라 건물주 대변인 노릇이나 하고 있다는 사실이 슬픕니다. 여성가족부라면 당연히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벗고 뛸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나 몰라라 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국민이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니 국가란 정말 무엇인가 하는 생각, 여성의 문제에 여성가족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니 여성가족부란 왜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하나는 역시 돈 문제입니다. 현재 형사 민사 소송을 해야하다 보니 소송 비용이 몇 백만 원씩 듭니다. 그리고 A씨의 생활비도 문제입니다. 십시일반 도와주고는 있지만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입니다. 어쩌면 현대자동차나 국가도 피해자의 이런 약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제풀에 떨어지기를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힘든 이야기를 하면서도 권수정씨의 태도는 참 밝고 명쾌하다. 대리인으로서의 자질은 만점 이상이다. 피해자를 위해 저렇게 뛸 수 있는 대리인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살짝 물어보았다. 후원금을 받고 있느냐고. 반색을 하는 권수정씨의 장난스럽기까지 한 표정. 그러면서 전단지 한 장을 주었다 후원계좌번호가 적힌.
인터뷰를 하는 동안 희망과 좌절이 교차하였다. 일반 시민들과 진보정당과 진보단체들의 열렬한 지원과 응원 그리고 격려는 희망이다. 그런데 국가와 국가단체, 그리고 현대차라는 거대한 골리앗은 "너희들 쓸데없는 일 하고 있어. 빨리 좌절하고 집으로 가라"는 메시지만 주고 있다.
둘러보면 세상은 온통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골리앗의 큰 덩치와 힘으로도 이길 수 없는 지혜를 다윗은 가지고 있다. 우리는 지혜를 모을 것이다. 그리고 골리앗을 무너뜨릴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지만 가야할 길이다. 이 땅의 여성들이 돈이 없다는 이유로, 지위가 낮다는 이유로 힘이 없다는 이유로 직장 내에서든 어디에서든 성희롱, 성추행에 시달려서는 안 될 것이다. 당당하게 자신의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A씨와 권수정씨가 절대 지치지 말기를 바란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문제와 여성에 대한 성희롱 피해 문제가 함께 맞물려 있는 이 사건은 꼭 해결해야 할 우리 사회의 중요한 여성문제이다. 내 문제가 아니니 상관하지 않겠다고 생각하지 말자.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문제다. 그래서 말한다.
"성희롱 피해자 부당해고 묵인하는 현대자동차! 여성들이여 거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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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수막 성희롱 피해자 부당해고 묵인하는 현대자동차! 여성들이여 거부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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