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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생각, 기억 뭐 그런거. 아즈 스트립쇼

1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2/15
    넋두리로다(4)
    아즈
  2. 2010/02/12
    ㅁㄴㅇㄹ
    아즈
  3. 2009/12/14
    오해를 풀기 위한 승리의 까발리기(7)
    아즈
  4. 2009/12/07
    내 삶의 방식?
    아즈
  5. 2009/11/25
    음음(1)
    아즈
  6. 2009/11/22
    솔직히 까놓고 허세없이 고해성사(4)
    아즈
  7. 2009/11/22
    마음. 뒤틀림.(4)
    아즈
  8. 2009/11/22
    채식(2)
    아즈
  9. 2009/11/19
    생각해봤는데
    아즈
  10. 2009/11/19
    아동심리학??
    아즈

넋두리로다

*

호흡이 점점 가팔라지고 코 끝이 짜르르 떨려오고 가슴 한가운데가 누군가 꽉 틀어쥔 듯 답답해지고 머리가 쿵, 쿵  뜨겁게 울려와도 끝끝내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게 그저 알량한 자존심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고정관념을 깨라고 소리소리 지르는 나지만 정작 내 마음 내 정신 한 구석에 응어리져 있는 족쇄들은 아무리 지랄발광을 해 봐도 풀리지가 않으니, 역시 지나친 모순이다. 아, 씨발. 들뢰즈가 부럽다. 어설픈 들뢰즈 워너비라도 하고 있으면 내 사고의 딜레마들 삶이 던져주는 어두컴컴한 질문들이 모조리 아오안으로 처리되면서해소될까. 근데 그건 도피지 해결이 아닌 듯.

더 아파하고 더 고민하고 더 상처받고 더 생각봐야겠다.

+ 나누면 더 편할 거 같긴 한데 누구하고 나누냐. 나라는 어지러운데 인재는 보이질 안코...... 는 아니고 암튼 딱히 이렇다할만한 신뢰의 대상?? 이 없다.....기보다는 내가 먼저 미안해져서 나누기가 꺼려진다. 내가 풀어놓는 고민들이 상대방을 괜히 걱정시킬까봐, 상관없는 남의 일로 에너지 소비하다가 피해 볼까봐 미안하다. All this shit from someone constantly listening to others. Another fucking irony.

 

 

 

*

ㄷㅈ먀ㅐ;ㅗㅜㄹ;ㅐㅑ도햐ㅐ;ㅈㄷ해;;ㅐㅈㄷㅁ림ㄷㄴㄹ러흎매ㅑ;ㅗ해ㅑㅁ;ㅗㅎ먀ㅐ;ㄷ조ㅑㅐ;ㄷ조랴;ㅐ더랴ㅐ;몯햐ㅐ;궇파ㅣㅁㄹ눟ㅁㅈㄷ;ㅜㅗㄹ햄;ㅑㅈ두해; 아 잠 안와.

 

 

 

*

여러 가치관들이 한 번에 연쇄충돌할 때, 무언가를 '선택'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 상황에서 무엇도 선택 '안'하기란 더 어렵고.

'이해'와 '용인'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일방적 선택을 강요하는 세상이 날 술푸게 만들면 좋겠지만 요즘은 먹지도 못하겠고 어헝헝

 

 

 

*

꼭 관계를 정의해야 하나? '너'와 '나' 사이를 정의하기란 정말 어렵다. 세상에 검정 하양 회색 말고도 얼마나 많은 색깔이 있는데.

근데 이런 정신상태로 살다간 씨발 결혼은 빠이빠일듯요 ㅋㅋㅋㅋㅋㅋㅋ 여보 난 당신과의 관계를 굳이 정의하고 한계선 긋기 싫어 ㅇㅋ??? 

 

그리고 그는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gg 끗

 

...까지 극단적인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 사고방식이 정말 모순적인 건 사실이다. 이런 문제는 공유를 해 줘야 하는데 앞서 쓴 미안함 땜에 내가 뻘쭘해서 제대로 얘기도 못하겠고 암튼 난 참 병신인듯 ㅋㅋㅋ

 

 

 

*

BB King이 귀에 착착 와 감기는 새벽이로다 ㅇㅇ 재즈벌레가 되어가다니 정말 큰일임 안그래도 음반지출 큰데 장르가 넓어지면 존내 지갑 거꾸로 들고 탈탈 터는 꼴인데 ㅋㅋㅋㅋㅋ One Republic 신보는 또 언제 사냐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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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ㄴㅇㄹ

*

'동경'과 '사랑'의 감정을 착각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사실 내가 사랑하는 건 그 사람의 '무엇'이었음에도 '그'를, 그의 '존재'를 사랑한다고 착각한 것이다.

근데 수단으로서 시작하더라도 수단 속에서 목적을 찾아낼 수 있다고 믿는 나인만큼 '일부'를 사랑함과 '전부'를 사랑함 사이에 주욱 선을 그어버리는 건 정말 모순적ㅋㅋ 그래도 선긋기를 어찌할 수 없다 여기는 나는 나약한 걸까.

암튼

요즘도 가끔 헷갈린다. 오늘도 현재진행형으로 헷갈린다.

 

 

 

*

그다지 땡기진 않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돈을 버는 것과 금전적 보상은 없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몸을 던지는 것.

후자를 헛짓거리에 허송세월이라며 폄하하고 찍어내리는 누구 덕에 스트레스 장난없긔

지금이 아니면, 10대의 마지막 해가 아니면, 20대의 첫 몇 해가 아니면, 언제 또 이것저것 안 따지고 이런 도전을 할 수 있는데??

가시적 성과가 없다고 해서 허송세월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지만  '성과물' 꼬투리에 있어 내 논리는 너무나도 빈약하지 씨발

계속 이런 식이면 하고 싶은 일을 통해 성과물이 나와도 보여주고 싶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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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를 풀기 위한 승리의 까발리기

내가 스케줄 펑크내거나 지각하거나 하니까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같아서 까발리는 건데

나 아픔. 

의사가 스케줄 잡아주는 대로 병원 다녀야 하는데

병명이 뭔지 알려주면 괜히 더 걱정할 거 같고 그냥 천천히 나아가는 중이야ㅇㅇ

게다가 금요일 밤에는 목하고 귀하고 계속 윙윙 아프더니 중이염 어택을 맞아버렸어.

약속한 건 지켜야 할 거 같아서 비코딘인가 하는 약의 은총을 입고 나가 싸돌아다니는데 그래도 아픈 건 아프더라 시바

암튼 더 이상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공지: 병원 가는 게 내맘대로가 아니니까 쫌 늦게 가거나 못가겠다고 하면

그냥 대강 아~또가는구나 하고 못마땅하게 생각 안하셨으면 하는 게 바램임미다.

뭐근데 미워하셔도 딱히 상관은 없음 사유만 정확하게 파악하시면 됨.

 

 

이렇게 써놨으니까 굳이 광고 안 해도 알아서들 읽겠지 흠흠

아 몰라 알아서들 반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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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방식?

공원을 걷다가 졸리면

주변 나무밑에서 자다 일어나

마저 걷는 정도

 

 

새벽에 오선이와 대화 중에 나온 소린데 사실은 갑툭튀 문구였으나

또한 갑자기 오선 싸이어리에 오려붙여진 걸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해봤는데

내가 살아가는 방식, 내가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인듯.

걸어가도 충분히 멀리 갈 수 있는데 굳이 미친 듯 뛸 필요가 뭐 있나, 라는 생각도 하고

대퇴근을 혹사하면서 아드레날린 분비로 쾌감을 느낄 지는 몰라도 휙휙 지나가는 주변에 우월감을 느낄 지는 몰라도

빠르게 쌩 지나가면서 놓치는 여러 가지를 걷는 중에는 실수하지 않고 모두 볼 수 있고, 배울 수 있다... 라는 생각도 하고

나머지는 일일이 해석하기 귀찮고

 

아무튼 그렇다.

뭔가 내 생활에 충격과 공포가 그지깽깽이처럼 찾아오거나 내 결심이 마구 흔들리는 일이 왔을 때

그 때 이걸 다시 보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까. 하여 모토 등ㅋ극ㅋ

 

요즘은 급하게도 살아볼까, 해서 가끔씩 막 뛰어보기도 하지만

결국 20년 30년 살면서 유지할 '내가 사는 방식'은 저거겠다.

 

아 진짜 나 왜케 잉여냐 생각 한 줄기 한 줄기가 다 잉여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아무튼 다급하게 고민하는 그런 건 안좋아!!! 심장나빠져 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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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음

*

요즘 들어 칭찬을 많이 듣는다. 착하단 얘기도 듣고 웃기단 얘기도 듣고 다소 포괄적이지만 좋은 사람이란 얘기도 듣고

편하단 얘기엔 으악 기분이 흐뭇해졌고 평생 같이 살아도 안 질릴 거 같단 얘기는 새로운 충격이었다ㅋㅋ정말 그렇단 말이지...

소금인형 싸이어리에 만세 써져있을 땐 솔직히 오그라들었다. 그래도 고맙긴 진짜 고맙다 그런 인정을 받을 줄 몰랐음ㅇㅇ

그런데 좋은 얘기를 들을 때마다 항상 드는 생각은 '진짜?', '날 제대로 알고서 하는 얘길까?'

 

내가 볼 때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다.

복합성이란 게 좋은 말이 아니다.

나는 복합적이므로 언제 어디로 어떻게 튈 지 나 자신조차 모른다.

두 가지 사상이 내 안에 공존할 수 있고, 여러 가지가 얽히다 보면 정말 이상한 특성이 고개를 들 때도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굳게 믿는 동시에 그 사람이 하룻밤만에 죽어도 개의치 않고 살아갈 수도 있다.

솔직하려고 하지만 그 솔직함이 가져오는 피해에 대해선 그저 당연하다는 생각뿐이다.

가족 구성원 하나하나를 내 목숨보다 더 사랑하지만 웬걸, 나는 나의 가치를 0으로 평가하잖아?

100까지의 스칼라 상에서 끽해봤자 한 자릿수다.

엄마가 내 그릇이 감당 안될만큼 커서 미치겠다고 목놓아 엉엉 울 때 나는 아무런 무엇도 느끼지 못했다.

아빠가 너와는 앞으로 얘기하면 안 되겠다고 한숨쉬며 등 돌릴 때 나는 웃었다.

사람이 죽는 것에 대해 끔찍한 공포증이 있지만 역으로 그 트라우마가 나를 죽음과 슬픔에 대해 무감각해지게 만들었다.

아무리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 아무리 기가 막힌 일을 겪고 보고 들어도 감정이 욱 할 수가 없다.

깊숙이 억눌린 무언가를 시원하게 매듭풀어 끄집어내고 싶어서 미치겠는데 그냥 안 된다.

어떤 식으로든 싸우는 걸 오지게도 싫어한다. 군대야 가겠지만 반전주의자이며 평화주의자다.

하지만 그건 한 번 싸우게 되면 이기든 지든 그저 최대한 효율적으로, 철저하게 짓밟고 찢어발기는 데에서 쾌감을 느끼는

그런 나 자신이 혐오스러워서 그렇다. 이 또한 이기적인 이유에서의 사상 전환이다.

중학교 1학년 때 4월의 어느 점심시간, 같은 반 여자아이와 말싸움이 붙었던 적이 있다. 그날따라 열이 좀 심했는데

인신공격 한 방에 인내심이고 뭐고 그냥 다 벗어던지고 붙었다. 점심시간이 끝나자 그 애는 가방도 안 싼 채로 집에 갔고,

이틀 동안 학교에 못 나왔으며 결국은 선생님이 나를 끌고 가서 사과시켰다.

2년 반 후 한창 외고준비하느라 늦게 들어가던 8월 중순의 밤 3시 10분,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옆 건물 정전이나 시키고

문 닫은 시청 안으로 감시카메라 피해 들어가는 걸 함께 즐기던 친구와 열심히 문제풀다 늦는 양 알리바이 짜서 집에 가다 삥뜯겼다.

덩치 큰 고릴라 한 마리와 나만치 작은 키지만 날선 과도로 위협하던 그 두 명은 고1이랬다.

일 년 차이다. 몰래 따라가서 주머니와 가방에 든 지갑들 내용물을 죄다 뺏으려고 덮쳤다.

두 명이라서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아 뒤를 밟은 우리는 철없었지만, 뜯긴 놈들이 곧장 추적까지 해 올 줄 몰랐던 그들에겐 잘 먹혔다.

그 후로 여러 경험을 보고 들은 바에 의하면 내가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로 쉽게 끝났다. 지금 돌이켜봐도 사기극 같다.

킥복싱을 아버지로부터 수년 간 배운 친구는 타고난 힘을 믿었던 길거리아가리파이터 고릴라를 눕히는 데 별 힘을 들이지 않았다.

고릴라에게 복부를 허용했을 때보다 체육관 사범하고 연습경기 할 때가 훨씬 아프다고 했다. 하긴 지금도 정말 괴물같은 놈이다.

그에 비해 나는 태권도 1품이 전부인데 돌려차기로 과도를 떨어뜨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벽돌로 찍었다.

딴에는 소리없이 달려가서 납작한 면으로 옆통수를 후려갈겼는데 발소리가 들렸는지 팔을 올려 첫타를 막았다.

그래도 제대로 맞았는지 팔을 순간적으로 감쌌는데 그 때 거짓말 안 보태고 팔을 270도는 돌려서 때렸을 것이다. 있는 힘껏.

거짓말같이 손 한 번 못 올리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최초의 극단적 폭력이 가져온 우월함은 더한 우월함에 대한 확신을 불러왔다.

올라탄 다음 어디서 본 건 있어 라이터를 말아쥔 왼손으로 오른쪽 광대뼈를 때리고 때리고 또 때렸다.

세 번째부터 빨간 색으로 변하더니 스물댓번째부터는 얼굴 한 쪽이 시퍼렇다 못해 시커매지기 시작했다.

코를 때려서 코피가 샜고 열몇번째부턴 때리는 자리의 피부가 터졌다.

내 손도 벌겋게 부어올랐지만 골절상을 입었지만 그 땐 그런 걸 몰랐다. 그저 아래에 깔린 이 새끼 머리에 내 손이 닿는 게

그 생것의 느낌이 좋았다. 친구가 떼어놓지 않았으면 진짜 큰일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3년 전 그때만 해도 감시카메라가 곳곳에 있는 정도가 아니었고

cctv 사각 정도야 지금도 대강 기억날 정도로 잘 알고 있었으니 벽돌이라던지 하는 증거인멸하고 우리 것만 챙겨서 슬슬 빠져나왔다.

그렇게 떡이 되도록 때려 놨는데 신기하게도 신고가 들어가지는 않았는지 그 후로 아무 일도 없었다.

마음 한켠은 그 날의 그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반면, 한편으론 또 그 일에 대해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국방부 소속 아버지 밑에서 자란 사람이 평화주의 반전주의를 주장하는 이유다. 알량하지만 부분적으론 자기구속을 위해서다.

내키는 대로 하게 냅뒀다가는 다음 번에는 누가 알까, 그러다 사람을 죽일 지. 난 감옥에 갈 마음이 없다.

 

그들은, 나와 친하다 일컫는 많은 이들은, 이러한 내 모습에 대해선 아는 게 없다.

알고도 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적절한 선에서 제어를 하고 있다. 제어하지 못할 부분은 아예 막아버린다.

그렇지만 그걸로 내가 저렇다는 게, 사실은 이기적이고 폭력적이고 메마르고 끔찍하다는 게

그런 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수면 위로 떠오르겠지. 그 때, 내 주위의 여러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를 따지는 건 사실 무의미하다. 예전에 어쨌건 지금은 이 꼴이니까.

나는 내 숨겨놓은 본성을 바꿀 수 있을까? 슬플 때 울어볼 수 있을까? 비폭력을 진정으로 실현할 수 있을까?

현재로썬 전망이 어둡기만 하다.

 

좋은 의도에서라도 가식에는 질려가는 중이니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이 나를 재평가해줬으면 좋겠다.

지금의 모든 관계가 사상의 누각같아서 불안해 죽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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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까놓고 허세없이 고해성사

*

걸을수록 아프다. 사고 당시에는 별로 안 아프다더니 진짜다-_-

어제는

공기하고 정말 정상적으로 통화하면서 약간 절뚝거릴 뿐이었는데

뼈가 놀랐고 근육이 놀랐고 단순타박상이고 외상후스트레스 있고

아무튼설명하는 증상이 빈약해보여서 얕잡아봤다가 훅갔다.

지금 피씨방인데 허벅지에만 오던 아픔이 무릎하고 정강이까지 내려와서 집에 갈 수 있을 지조차 모르겠다.

이대로 죽돌이 되는 건가염 ㅋㅋㅋ

부은 건 멍든 자리만 부었는데 아픈 건 오른다리 뚝 잘라놓고 보면 대강 절반 정도가 시큰시큰 화끈화끈.

아 씨바 왜 아까 공들여서 밥 해놓고 정작 나는 먹지도 않았을까 그래서 또 왜 약도 안 먹었을까 진통제있는데 거기

앞으로 의사 말이라면 꼬박꼬박 들어야겠다 돈드는거 빼고

 

 

 

 

*

언급했듯이 지금 피씨방. 성명서 보내려고 노트북 달라니까 엄마가 안 주셔서 으르릉 와우웅 왈왈 컹컹 깨갱깨갱

열뻗치는데 집에 계속 있어봤자 나만 불편하니까 일단 나와서 어디갈까염 생각해봤는데

일산에는 겨울에 딱히 놀거나 쉴 공간이 없는거다. 열라 추운데.

그래서 주변에 뭐 투썸이라도 있나 봤더니 또 생각해보니까 투썸 가려면 반대쪽으로 20분은 걸어야겠는거다.

츄리닝에 후드여서 추운데 마땅히 갈 곳도 없고 다리도 점점 이상하고 그래서 그냥 거리에 보이는 피씨방 아무데나 들어갔다.

근데 또 엘리베이터가 없는거다. 3층인데.

그래서 올라가는데 2층도 못 가서 아 다리에 불붙었구나 싶었는데 쓸데없는 오기가 생겨서 결국 3층까지 올라갔다.

난 정말 진짜로 내 몸 신경 안 쓰는 거 같다-_- 오래 살고 싶은데 무의식 중에 막 굴린다.

저질러놓고 나중에 힘들 건 생각 안 한다. 나쁜 습관이다=_=

역시 솔로라서 자기 몸 소중한 줄 모르는 게 된 건가 ㅋㅋ 깨진 지 얼마나 됐다고 자포자기냐 

아무튼 살려줘

 

 

 

*

아까 리얼 허세 부려놔서 애들 지금쯤 나 열라 잉여에 한개도 안 아픈데 괜히 부탁 씹고 그러는 줄 알겠다.

앞으로 정직하게 살게 나 진심 존내 아프단다 선처좀 따이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요일까지만 나아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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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뒤틀림.

1.

어렸을 때 초등학교 5학년이 되도록 야뇨증에 시달렸었다.

 

원래 틱 장애나 ADHD나 자폐 증세가 나타나야 하는 환경이었지만 그간 키워놓은 나의 공상과 엄마의 필사적인 자식보호로

 

거진 이틀 걸러 하룻밤마다 이불에 침대에 방바닥에 지리는 것으로 액땜할 수 있었다.

 

물론 위의 세 방해꾼들이 내게 찾아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고, 지금도 그들의 잔재에 조금씩은 영향을 받는 중이다.

 

그래도 정말 엄청난 문제로까지 심화될 수 있었던 증상들이 약간의 말 꼬임과 가끔씩 나타나는 '준'자폐?? 로 끝난 건 정말 다행이다.

 

 

 

2.

나름 가까웠던 지인들 중 중학교 1학년 때 한 명, 2학년 때 한 명, 3학년 때 두 명이 죽었다.

 

슬픈 것에 눈물을 흘릴 수 없게 된 트라우마는 2학년 때 찾아왔고, 현재 통합실조증이라 불리는, 더 대중적인 용어로는

 

정신분열증이 될 나의 제일 큰 문제는 1학년 여름방학의 초입부터 내게 굴레를 씌웠다.

 

정신분열이라 하면 영화 아이덴티티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텐데, 사실 schizo.의 범위는 진짜진짜 넓다.

 

존 내쉬처럼 사람이 보이는 경우가 흔하지만, 내 증상은 내가 쓰레기같은 현실 상황에서 도피하고자 불려놓은 상상력에서 기인했다.

 

초기엔 사촌 형의 환청이 들리고 꿈에 자꾸만 나타났다. 무섭고 다급해진 기분의 내 마음은 돌파구를 찾았고,

 

어린 시절부터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만들어진 내 세계는 점점 커지고 커져 거울 너머의 다른 세계마저도 잠식하기 시작했다.

 

적절한 멘토와 일련의 긍정적인 사건들 덕분에 눈길 닿는 모든 곳에서 글자가 피어나고 상이 일그러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본인이 죄다 환상임을 인식하고 있다 뿐이지, 이게 완치될 증상은 아닌 걸 나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약간 융화되었다 뿐이지, 내 Fantasie는 그대로 주변을 맴돈다.

 

 

 

1번이든 2번이든, 피할 수 없는 것들은 끌어안고 가는 게 상책이다. 걷다 보면 대안이 생각나겠지.

유일한 불만은 이제 점점 외로움의 쓸쓸한 온도를 체감하는 11월인데 무게를 덜어줄 사람 하나 없다는 거.

아니, 사람이 없다기보다는 내가 남한테 짐 싣기가 미안하고 또 두려워서 손을 못 뻗치겠다.

이 사람이 안 해도 되는 일인데 쓸데없이 맡긴 건 아닌가?

내 또 다른 면을 봐 버린 저 사람이 나와 떨떠름한 관계가 되어버리면 어떻하지?

무관심한 척 귀찮은 척 하지만, 그나마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마저 떠나가버리면 난 아마 주저 않고 뛰어내릴 거 같다.

그래, 애정결핍 또는 과도한 스트레스에 의한 부작용 발생도 추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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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

공기와 이것저것 얘기하면서 기나긴 귀갓길을 견디다가 채식을 하기로 느닷없이 득달같이 약속을 해 버렸다 ㅋㅋ

 

Bio-제품(환경친화적/유기.무기농 제품) 광팬들의 나라라서 그런지 독일엔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심지어 학교 급식에까지 채식하는 사람들을 위한 메뉴가 따로 두세 종류는 준비되어 있을 정도였다,

 

같은 학교의 한국인 누나가 채식하는 걸 보고 신기해서 따라한 적이 있었다.

 

결국은 원석이 형의 지속적 꼬드김에 다시 불판을 잡게 되었지만 ㅋㅋㅋ 두 달에서 두 달 반 정도?? 내게도 채식의 경험은 있었다.

 

고기를 안 먹는다는 게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단백질 섭취에는 콩과 달걀과 유제품이 있었고,

 

굳이 고기에만 매달리는 골수 육식도 아니었으니까 안 먹는다고 해서 냄새만 맡아도 침을 질질 흘리지는 않았다.

 

근데 아무리 채식을 계속해봐도 신진대사에 유리한 점이나 밥 먹는 시간이 줄어드는 따위의 소소한 이점들 빼고는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짜증났다.

 

그래서 때려쳤다.  목적 없는 행동만큼 지속가능성 희박한 것도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요즘은 생각이 또 다르다. 뭐든 내게 득이 되었으면 되었지 해가 될 일이 없는 것이면

 

기분이 어떻든 일단 계에속 쭉 하다 보면 목적이 생기지 않을까? 꼭 멍석이 깔리고 조건이 주어져야 뭔가를 해낼 수 있다는 건

 

그건 단지 변명일 뿐이다.

 

무언가의 지속성을 단순히 기분에 따라 규정짓고 선을 긋는 건 또 하나의 가능성을, 기회를 포기하는 일이다.

 

아 뭐래.

 

아무튼 오늘 아침부터는 채식 시작이네요 ㅋㅋㅋ 더도 덜도 말고 일단 작심 삼 년만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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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봤는데

이기적이라고는 하지만

인간이 완벽할 수는 없는 거니까

동시에 모든 것을 신경쓰다보면 되는 일이 없으니까

자식이라면 언젠가는 그가 경제적 능력이 되든 안 되든

부모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이루어내야 '나'를 중심으로 한 인생을 살 수 있는 거니까

그리고 나는 내 가치를 0으로 평가하니까

고통이 범람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더라도

내가 벽돌을 내려놓고 내가 빗자루로 쓸어 닦은 길을 걸어가야

마음 놓고 숨쉴 수 있겠다.

마음 놓고 행복해할 수 있겠다.

두 번째 탯줄을 잘라내기까지 얼마 안 남았다.

후회하리라, 평생 후회하리라.

그러나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느낄 죄책감과 동시에

자유를 느끼고, 행복을 끌어안고, 주체성과 입을 맞추리라.

나는 아직 펼쳐지지 않은 내 인생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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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심리학??

*

거부기와 따이루의 조언을 비벼서 탄생한 'vision 아즈 2010' ㅋㅋㅋㅋㅋ

진실과 거짓이 40:60이면 어찌되었든 거짓말하는 시크릿보이가 되는건가 싶기도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다른 대안이 없으니 뭐;

아마 엄마한테 나는 현실을 깨닫고 순응하게 된 착한 양처럼 보이겠지.

진심을 감춰야 살아남는 우리 집.

아 씨바 이런 거짓말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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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정 앵커> 그렇군요. 정서적인 학대가 늘고 있다, 좀 구체적으로 정서적인 학대의 유형을 설명해주신다면 어떤 걸까요?

◆ 신의진> 사실 우리 신체적 학대만큼이나 말로 하는 학대라든가 집요하게 마음을 괴롭히는 학대가 상당히 심각하거든요. 예를 들면 요즈음 입에 담질 못할 욕들을 자녀한테 퍼붓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요. 아이들이 너무 마음이 아파서 우울해지는 경우도 많이 있어요. 그런데 대부분 부모님들은 때리지만 않으면 학대가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 김현정 앵커> 아이들이 우울증 걸리기도 합니까?

◆ 신의진> 아이들이 처음에는 불안에 떨다가 이런 학대나 부모로부터의 부당한 행위들이 자꾸 지속이 되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포자기 상태에 들게 되고, 자포자기 하게 되면 우울증이 바로 찾아와요.

◇ 김현정 앵커> 그렇군요. 아니, 그런 학대를 하는 사람들, 부모 중에서도 어느 쪽이 많아요?

◆ 신의진> 특히, 어머님들이 많이 있고요. 왜냐하면 자녀를 직접 양육을 하는 대상이 제일 많아요. 아버님들은 한국의 문화상 아무래도 자녀 양육에 좀 비켜나니까 그래서 어머님 같은 경우가 상당히 많고... 그리고 보통 부모가 어떻게 아이를 그렇게 때릴 수 있느냐, 아프게 할 수 있느냐,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데 실은 부모 자신도 힘들고 아프고 그럴 때 어떻게 보면, 그래서 내 소유처럼 느껴지는 어린 아이들이 제일 만만하거든요. 그래서 자신의 분노가 순간적으로 확 올랐을 때 그 분노가 아이들에게 쉽게 가는 게 현실이에요.

◇ 김현정 앵커> 그런데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혼나고 눈물 흘려도 돌아서면 금방 웃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이 그래도 쉽게 어른들보다는 학대 받아도 금방 잊어버리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드는데... 그렇지 않나요?

◆ 신의진> 우선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감정에 있어서 생동감이 있기 때문에 잊어버리는 것처럼 보여요. 금방 이 기분에 있다가 저 기분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 김현정 앵커> 울다가 금방 웃잖아요?

◆ 신의진> 그런데 실은 울었을 때 상처를 절대로 잊어버리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어린 아이들의 뇌가 사춘기까지 성장하는 단계거든요. 그런 것들이 뇌 깊숙한 곳에 파고들어서 성인이 됐을 때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고, 자기 아이를 학대하는 고리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 김현정 앵커> 어른이 돼서도 정서적으로 계속 영향을 미치는군요. 많은 분들이 ‘어디까지가 학대지, 지금 내가 한 게 학대인가 아닌가’ 애매하신 분들이 계실 거예요. 어디까지를 학대라고 보면 됩니까?

◆ 신의진> 사실 아이들이 언어적인 폭력 같은 경우는, 부모가 보통 부당한 얘기를 하면 아이들이 대들거든요. “왜, 그러냐!”고 하는데 그것을 안 하기 시작하고, 눈치를 보기 시작하고요. 엄마가 야단을 칠 때 겁에 질려있으면 그때부터 학대예요. 보통 부모님들이 화가 났을 때 아이의 반응을 살피지 않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게 화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그 불만을 토로하지 않으면 학대가 시작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아이들이 이미 포기를 하는 거거든요.

◇ 김현정 앵커> “야, 너 왜 그렇게, 너는 그것밖에 못하니, 바보야!” 뭐, 이런 이야기했을 때 처음엔 “나, 바보 아니야!” 이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바뀌는 거네요.

◆ 신의진> 눈치보고 물렁해지기 시작하면 상당히 깊이 들어가는 겁니다.

◇ 김현정 앵커> 애가 참, 말을 잘 듣기 시작했구나, 이게 아니군요? (웃음)

◆ 신의진> 네, 오히려 자기 자유의지를 꺾는 거거든요.

------------------------------------------------------------------------------------------------------------------------------------(싸이 뉴스 나영이 주치의 기사 발췌)

 

아동심리학 읽기 빡쳐서 피아제 씨발 꺼ㅋ져ㅋ

하고 가만 냅두고 있었는데 다시 펴봐야 될지도...

내게 여러 가지 문제가 있고 그 문제들이 일상까지 침범하고

병원이나 상담센터까지 끌고 가기에는 한국 사회가 병신이고

어떻게든 해결을 봐야 할 때

그저 보기 싫고 역겹고 무섭다고 내 문제를 외면하는 건 답이 아니지 싶다.

근데 읽을 거 존내 많아 보이는데 언제 다 하고 앉았냐능-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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