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때와 곳을 달리하며 등장하죠. 이렇게 사용되기도 한답니다.
보라.님의 [어떤 혐오스러움에 대하여] 에 관련된 글.
좋은 이야기였어. 맑스주의가 여성주의처럼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의식들(사상, 운동 등을 두루 묶어)을 받아안아 지평을 넓혀야 한다는, 뭐 그런 말이었어. 물론 좀더 심오한 철학적 고민을 담고 조심스레 내놓은 말이었어요. 이렇게 정리하는 건, 일단 이만큼이면 되기도 하거니와 내가 그 고민의 궤적들을 쫓아가지 못한 때문이겠지.
그런데 나는 그게 좀 마음에 걸렸던 거야.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의식들이라... 그리고 강의의 내용들을 주욱 따라가다보면 그건 그저 실수 정도이지 않을까 싶었어. 그래서 얘기했지.
여성주의는 오래된 문제의식이고 오히려 맑스주의자들이 그 문제의식들에 주목한 것이 최근의 일이라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맑스주의의 성찰 혹은 반성은 그렇게 시작되어야 할 것 같아요.
라고 말하면 맑스주의 페미니스트 언니들이 서운해할 수도 있지만 내가 하려던 말을 그녀들은 어쩌면 더욱 절실히 이해하겠지 하며 꺼낸 얘긴데.
여성주의가 오래 전부터 있어왔고 그런 사람들도 있어왔지만 사실 여성주의운동이 이렇게 사회에 드러난 건 1968년 즈음이라고 할 수 있죠.
라고 하시네. 그러니까 제 말은 그렇게 보는 것 자체가 여성주의와 여성운동의 역사에 대한 부족한 이해인 것 같다는 건데. 게다가 '뒤늦게서야' 운동으로 터져나왔다는 사실은 다그치듯 말할 것이 아니라 함께 가슴아파해야 하는 거 아닌감. 그만큼 여성들이 처해있던 사회경제적 조건들-자본주의와 가부장제를 포함한-이 남성과 달랐다는 거구 아마도 그래서(?) 맑스주의자들은 '보지 못했던' 거겠죠.
그 말은 마치 지하철노조는 한때 잘 나갔는데 지하철에서 청소하는 여성노동자들은 왜 그렇게 못 싸우냐는 말과 비슷하게 들릴 수 있겠네요.
라고 말한 건 정녕 나의 오바인가.
그런 피해의식은...
별로 더 듣고 싶지 않아졌어. 그리구 이야기가 주욱 이어지다가 서러움의 정서, 뭐 이런 것은 노동자에게도 있었구 등등으로 휘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등등등.
그럴 때는
그냥
웃지요.
여성주의자들이 기대하는 것은 여성주의에 대한 호감이나 선망이 아니라 학습과 실천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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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부리 2006/02/28 15:1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좋은 글...'피해의식'에도 역사가 있는 것인디, '피해의식'이란 말은 피해의식이 생길만한 경험의 역사가 없는 치들이 잘 써먹더라고요. 요짐은 역차별입네 함시롱 역피해의식을 보여감시롱. 맑스주의니 사회변혁이니 하는 것들은 사실은 여성들과 여성운동, 페미니즘을 자양분으로 해서 가능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참으로 오래도록 외면,'은폐'되고 있는 것 같아요. 더 이상 맑스주의의 핵심 개념들이 작동하지 않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도 말이죠. 공부하기 싫던차에 재미나게 읽고 갑니다. 휘리릭.
미류 2006/02/28 15:2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저도 너부리의 글 늘 재미나게 읽고 있어요. 전에 잠깐 만났을 때 얘기 더 많이 나눌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삭이고 있죠. ㅎㅎ
정말로 맑스주의와 여성주의가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운동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