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한 슬픔 없이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을까.
지금은 잃어버린 꿈, 호기심, 미래에 대한 희망.
언제부터 장래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게 된 걸까.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고, 일 년 뒤가 지금과 다르리라는 기대가 없을 때,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는 게 아니라 하루를 견뎌낼 뿐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연애를 한다.
내일을 기다리게 하고, 미래를 꿈꾸며 가슴 설레게 하는 것.
연애란, 어른들의 장래 희망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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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자기 전, 꽤 유명했으나 보지 못했던 드라마들(예컨대 노희경의 <거짓말>)
을 다운 받아 보는 게 요새 가장 큰 낙이다.
최근엔 <9회말 2아웃>과 <연애시대>를 보고 있는데
단연 후자가 압도적이다.
몇 편을 더 보았지만, 여전히 <9회말 2아웃>은 공감이 잘 가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난희의 심정을 이해할 순 있을 것 같다.
(예컨대 주위 친구들이 잘 나가고, 연인이 22살이라는 게
그녀가 막 진입한 서른이 더 괴롭겠구나 하는 것 따위. 이건 수애의 캐릭터 문제일 수도 있는데,
사실 조은지 연기는 꽤 괜찮다. <눈물>에서부터 조은지는
마이너한 캐릭터를 아주 잘 살린다.)
그렇지만 드라마를 이해하면서 봐야 한다니! 드라마 일반에서 사고를 배제하는 건 아니지만
문제는 이 드라마가 나에게 사고와 이해를 압박하는 힘이 되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가끔씩 반짝거리는 대사가 있긴 하지만, 전체 분위기와 잘 맞물리지는 못하는 듯.
반면 <연애시대>는 서른이라는 것 자체를 큰 화두로 삼진 않지만
(감우성이 분하는 이동진이 서른이다)
20대 후반 30대 초반 사람들의 생각과 정서를 아주 잘 상연하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재미도 있고 말이다. 역시 극본이 탄탄해야 한다.
위의 대사는, 왜 사람들이 연애를 하지 않을 수 없는지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즉 연애란,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적) 이상과 사건의 대체물 노릇을 하는 게 아닐까?
뭐 그냥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아포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