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연코,
내가 본 올해의 영화는 Mysterious Skin (2004, Gregg Araki)이다.
한 사람의 감독이 성숙한다는 것은,
그리하여 다시 한 걸음 더 전진한다는 것은,
서슬 푸르게 날이 선 칼을 내리고 손 내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왜 서로 칼을 겨누고 있는지 물어보는 일은 이제
너무 지겹다는 것을,
그 답을 발견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우리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기원에 대한 매혹, 그 이데올로기를 뿌리치라는 것을.
우리는 이제 우리가 어떻게 살아 남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기꺼이 상대가 겨눈 칼을 맨 손으로 쥐겠다고,
혹은 내 칼을 내 품으로 끌어 안아야 한다면 끌어안겠다고.
우리는 살아 남을 것이라고.
외국, 낯선 거리의 어느 극장에서,
숨죽이며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눈치채지 못했다.
몇 일 전인가,
프랑소와 오종이 성숙했다고 떠들던 타임 투 리브를 보다가
알아차렸다.
애러키는 전진하고 있었다.
닥치라 그래.
우린 이렇게 또 살아남을 꺼야.
이렇게 중얼 거리며.
Posted by 아포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