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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홍콩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중의 하나는 간판이었다.
홍콩에서는 간판을 건물 벽에다 달뿐만 아니라 쇠막대 지지대를 이용하여 건물과 직각 방향으로 해 도로 한 가운데에도 간판을 건다.
그리고 간판 크기도 장난이 아니다. 엄청 크다. 크기만 말한다면 커다란 건물 전체를 간판화한 건물도 보았다(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그랬는지도).
그래서 밤에 2층 버스 맨앞에 앉아 달리면(홍콩에 도착한 날이 마침 한 밤중이었는데 운좋게도 이런 경험을 했다) 앞으로 죽 이어져 있는 형형색색의 커다란 간판들을 볼 수 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지 않고도.
한국 간판이 요란하다(유럽에 비하면 이는 사실이다)고 간판 정리를 해야 한다는 말이 가끔 있었는데 한국 간판의 요란은 홍콩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한국 간판이 요란한 이유를 뒤늦은, 실력이 없는 자본주의, 즉 가만이 앉아 있어도 수요자가 찾아오는 브랜드를 가진 자본주의가 아니라 별 것 없으니 과대하게 자기선전을 해야 겨우 수요자가 찾는 브랜드를 가진 자본주의의 한 현상 쯤으로 생각했는데 홍콩을 보니 그것도 아닌가 싶다.
암튼 홍콩 간판들이 이렇다는 것은 홍콩영화를 몇편이라도 본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었다는데 난 홍콩 영화를 본 적이 없었으니 신기할 밖에.
다른 나라를 가기 전 꼭 그 나라 공부를 좀 하고 간다는 게 그게 잘 안된다. 일에 허겁지겁 쫒기다 보니(사실 일을 많이 한다기 보다는 일을 미뤄서 쌓아놓고 하는 스타일이라서요. ^^;;).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반드시 이를 지켜보겠다.
홍콩 관련 글을 반드시 쓰겠다는 결의를 다지기 위해 또 좀 끄적거려본다. 많은 사람들의 지원이 있었으니 뭔가를 좀 생산해야 하는디 바빠서 될른지, 원.
어제 저녁 집에 와서 홍콩바깥에서 우리를 어떻게 보았는가 궁금해서 며칠치 신문을 쭉 훑어보았다.
그러던 중 조선일보웹싸이트에서 앤디 시에(모건 스탠리의 한국경제 전문가)의 한국경제와 관련한 낙관적인 이야기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조선일보에 의하면 앤디 시에는 한국경제에 대해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가 최근 낙관적으로 바뀌었는데, 그 계기가 홍콩에서의 농민 시위를 보고 그랬다나? 엄청 조직적으로 움직인 농민시위가 한국경제의 장래를 이야기해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홍콩에 있을 때 내가 홍콩사람들을 비롯한 다른 외국인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자 외국인들이 한국시위대에서 가장 경이롭게 보는 측면이 이 조직력이라는 것이었다. 한국의 시위가 어떻게 그렇게 조직적일 수 있냐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싸우쓰 차이나 모닝 포스트에 프리랜서로 기고하고 있는 젊디 젊은 미국인이 본 한국시위대의 모습은 이랬다. 여성풍물패가 시위대의 기운을 북돋우는 풍물을 치면 남성시위대들은 경찰과 싸우고, 경찰과 싸우다 최루액을 맞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최루액을 제거하기 위해 물을 뿌려주는 사람이 있고 등등...
한마디로 매혹되었다 한다.
한국 시위대가 오기 전에 자신은 한국농민의 현실도 잘 모르고, wto가 한국 농민현실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하나도 몰랐으면서, 과거 한국 시위대의 자료만을 보고 비판기사를 썼는데 한국농민들의 시위모습을 보고, 얘기를 들으면서 완전 팬이 되었다나. 그래서 심지어는 한국농민들하고 같이 싸우기까지 했다고 한다(프레스 증도 못받고 기사당 3달러를 받는 비정규직 기자여서 가능했겠지만).
잊어버릴까봐 적어놓는다. 나중에 홍콩관련 글을 제대로 한 번 써야할텐디...
여기와서 보니 한국에서 민중가요와 율동을 배운 동남아 활동가들이 아주 많았다.
공식 무대에서 몇 몇 동남아 단위들이 한국에서 이런 노래를 배웠고 저런 율동을 배웠는데 한 번 해보겠다고 하고 시연을 해보였다.
지금 회의를 하려고 하고 있는 여기 사무실에서도 대만 노동자들이 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투쟁의 세계화가 한국민중운동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다고나 할까?
개막집회와 행진을 했다.
행진에 홍콩시민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최첨단 금융도시에 각국에서 온 농민 노동자들이 북, 꽹과리 등 타악기를 두드리고 행진을 하니 신기할 수밖에.
같이 행진을 한, 중국 전문가 백승욱 교수에 의하면 중국인들이 구경을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그들에겐 좋은 구경거리가 생긴 셈이다.
죽느냐 사느냐 절박한 순간에 있는 한국의 농민 등 전세계 소농, 노동자, 위기에 처한 공적 서비스 등의 문제에 그들이, 그리고 세계시민들이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는 날이 하루빨리 와야 할텐데...
농민들은 결국 컨벤션센타가 있는 바다로 결국 뛰어들었다. 약 100여명이.
처음 관련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약간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지만 약간 우려가 되기도 했다. 우선 불상사가 나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약간의 치기같은 것도 느껴졌다. 그러나 이경해 열사 건도 있고, 홍콩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도 있고 해서 전농으로서는 심한 물리적 힘이 동반되는 투쟁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선택가능한 전술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사무총장 얘기로는 달리 방법이 별로 없어서 고심끝에 선택한 전술이란다. 투쟁대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농이 선택한 전술을, 그리고 성격상 내놓고 논의할 수 있는 방안도 아니어서 나를 비롯한 다른 단위들은 잘되기만을 바랄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다.
처음에 약간 머뭇머뭇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결국 하나 둘 물속으로 뛰어들어 약 100여명이 뛰어들어 보기엔 괜찮았다.
그러나 시위대들이 일정한 관심과 환호를 보이긴 했지만 엄청난 환호를 보이는 것 같지는 았았다. 이종회선배는 무척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발언권이 별로 없긴 선배나 나나 뭐...
암튼 물 속으로 뛰어든 전농동지들, 그리고 일부 학생들 수고를 많이 했다고 할밖에.
그리고 컨벤션센타 앞에서 약간의 충돌이 있었고 최루까스가 뿌려졌다.
그런데 최루까스가 경찰과 심하게 싸우는 사람들 개인들 개인들에게만 뿌려졌다.
시위진압의 신자유주의적 판본(^^;;)이랄까. 거칠게 싸우는 사람들 개인 개인에게만 그 책임을 묻는.
내가 참석한 기자회견 화면이 현지 텔레비젼에 반복해서 방영됨으로써 무려(!) 두 명의 현지인이 나를 알아 보았다. 전에 1회사회포럼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헌데 우리단체 게시판을 보니 국내 9시뉴스까지 나왔다니 원.
화면값을 위해서도 열심히 투쟁을 해야겠는데 워낙 싸우는데는 소질이 없어 놔서... 결정적인 순간만 빼고^^;;
연좌집회 때 다른 나라 사람들도 많이 있었는데 한국사람들만 한국말로 비슷비슷한 발언이 이어지는 단조로운 집회가 계속되는 것을 내 제안으로 비아캄페시나 전 의장 라파엘을 발언을 시켰고, 그 이후 다른 외국인 발언도 좀 이어졌고, 한국인 발언도 영어통역이 진행되게 되었다. '대외협력'의 역할을 아주 쪼끔 한 셈이다.
그럼 오늘은 이만... 회의가 곧 시작될 예정.
그럼 다음에...
프레시안 게시판에 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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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의혹 총정리(비전문가용)
진실만이 살 길 / 2005-12-07 오후 4:55:51
추천 11, 반대 4
BRIC(과기부산하 생물학연구정보센터) 게시판: 펌
제가 사실 과학에 그다지 연관 없는 이 사이트에서 왜 할일 없이 열 내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진짜 엉터리 언론의 말만 믿는 분들이 많은 거 같아서 글을 씁니다....
황 교수의 논문은 뭐 최첨단 기술이라 같은 생물하는 사람도 검증하기 어렵다는 정근모의 말..그야 말로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사태를 덮고 싶은 맘은 이해가지만, 진짜 해도 해도...
제가 황교수 논문에 대해서 자세하게!!! 요약해 드리겠습니다.
황 교수의 사이언스 논문은 2004년 논문과 2005년 논문이 있습니다.
2004년 논문내용을 아무 전문적이고 고차원적으로 요약하면
"나 줄기세포 만들었다"
이거 한 문장입니다. 아인시타인 논문이나 페르마의 정리처럼 두껍지도 않고 읽는데 어려운 논문 결코 아닙니다. 줄기세포 만들어서 확인했다, 그 외에는 아무런 내용도 없는 논문입니다.
하지만 대단한 성과이지요. 왜냐면 그동안 줄기세포 만든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이게 왜 힘드냐면, 난자 핵 치환 과정(황 교수팀은 젓가랏질의 기운을 받아 극복하였다는)이 어렵고, 줄기세포의 배양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많은 노하우가 필요하고, 결정적으로... 이게 성공률 자체가 워낙 낮기 때문에 수많은 난자가 필요한데 이렇게 난자 대량으로 구할 연구팀이 황 교수밖에 없었습니다.
2004년 논문에서 황교수는 242개의 난자로 한 개의 줄기세포를 만듭니다.
그러고 나니까 외국 연구팀이 비웃습니다. 나도 난자 200개 주면 하나 정도는 만든다. 없어서 못만들지 그게 뭐 대수냐??? 라고 하니까 2005년에 다시 획기적인 논문을 발표합니다.
"나 줄기세포 11개 만들었다. 이번엔 환자 자체의 세포를 이용하였고, 난자도 180개 밖에 안 썼다.
진짜 대단하지 않냐? 이제 진정한 줄기세포 시대의 개막을 선포한다"
2005년 논문은 양이 좀 많아서 두 줄입니다.
자, 그럼 이것을 어떻게 검증하느냐? 보통 다른 실험 같으면 딴 쪽에서 재현테스트를 하는데, 이건 난자가 없어서 못합니다. 제일 간단한 방법은 황교수가 만든 줄기세포를 확인하면 됩니다.
줄기세포 확인은 이미 수없이 거론된 DNA fingerprint로 하는데 이건 일반인도 1주일 배우면 하는 방식입니다.
2005년 논문은 2004년 논문에서 이어지는 것이므로 특별히 논리적으로 모순될게 없다고 판단이 되어 사이언스에서 검증기간도 극도로 짧게 가지고 특종 보도를 합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 PD수첩의 조사 같은 게 흘려지고 난 후에 황교 수가 논문 정정을 요청합니다.
"나 줄기 세포 만들었다는거 중에 4개가 아직 정확하게 확인 안 된다. 7개 만든 거로 정정해다오"
사실 줄기세포 확인절차인 DNA감식을 국과수에 야매로(!) 한번 한 거 밖에 없다는 게 의아스럽지만,
뭐 이 정도의 수정은 그렇다 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줄기세포 사진 자체가 중복된 것이 5쌍이나 등장합니다. 아울러 DNA noise pattern이 같은 것도 있고요... 단지 사진의 실수라고 하는데, 만약 이게 실수가 아니ㄹㅏ면?
황 교수의 2005년 논문은
"나 줄기세포 2~3개 만들었다. 환자 거에서 나온 세포인지는 확실치 않다" 로 바뀌어 버립니다.
이러면 이 논문 당연히 퇴짜 맞아야 하는 수준입니다.
PD수첩이 내보자 제보로 뭐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으나 황 교수의 줄기세포가 3개 이하라는 의심... 혹은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면 어떻게 할까요?
간단한 것은 '거 줄기세포 좀 구경합시다.' 입니다.
이거 연구 방해하는 거 별로 아니고요, 줄기세포 자체는 분양이 가능하므로 조금 띠어져도 상관없는 겁니다. 그래서 PD수첩이 구경하려고 줄기세포 가져갔는데, 그게 줄기세포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모든 결과가 학계에 퍼졌습니다.
그래서, 원하는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줄기세포 좀 봅시다!!! 실험해서 만들었다는데 그거 좀 구경시켜 주면 안 될까요?"
그 어렵게 만들었다는 줄기세포, 한 번 분양받아서 DNA돌려서 줄기세포의 아름다운 패턴을 보고 싶은 소박한 요구사항일 뿐인데... 처음에는 사이언스가 싫어할 거라는 핑계, 그 다음에는 과학자의 자존심,... 그 다음에는 그 소중한 줄기세포가 아예 11개 모두 손상되었다!!!! 라는 답변...
결국 줄기세포를 다시 만들어서 보여주겠다고 하는군요. 2004년 논문이 잘못 되지 않았다면 분명히 황 교수팀은 줄기세포 만들 능력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미 2005년 논문 자체가 바보 논문이 되어버리는 거죠.
황 교수의 모든 업적을 부정하겠다는 게 아니라 2005년 논문에서 나왔던 11개, 아니 수정해서 7개의 줄기세포를 한번 눈앞에서 세어보고 싶다는 건데... 학자적 자존심이 용납 안되어서 그 중요한 샘플을 한꺼번에 소각장에 넣었다는 얘기인 가봅니다.
뭐, 의혹은 의혹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간단한 요구 사항을 갖은 핑계를 대면서 거부하는 것은 의혹을 증폭 시킬 뿐 아니라, 과학자의 기본자세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벌써 여러 번 거짓말 한 것이 드러났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신뢰가 가지 않는 것이고요.
(대표적 거짓말 : 난자 매매는 결코 없었다. 연구원 기증 없다. 줄기세포는 DNA검증이 어렵다. 가끔은 DNA가 변한다. 포름알데히드 쓰면 DNA검증 안 된다. 사진 수정은 이미 사이언스도 아는 사항이다. MBC덕에 일본애들이 논문 더 먼저 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저 진짜 줄기세포 구경하고 싶습니다. 제가 줄기세포 만들 능력은 당연히 없어서 논문은 못 쓰지만, 줄기세포 주면 그게 줄기세포인지 '검증'은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제가 PD수첩도 PCR 분석 전문가도 아니지만......
줄기세포를 안 보여주기 때문에 줄기세포가 과연 있었을까? 하는 근본적 물음이 남는 것인데...
지금 우리나라 상태를 보니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군요.
보라돌이님의 [증언자를 만나다] 에 관련된 글.
저도 촛불집회를 마치고 오면서 든 생각입니다. 농민들의 자살, 음독, 분신, 마침내(?!) 경찰에 의한 살해 뒤에도 사람들은 너무 차분한 것 같더라구요. 오늘 촛불집회에도 불과 100여명이 참석했거든요. 어제 파업집회와 광화문에서의 밤늦은 연좌가 있어서 오늘부터는 촛불집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좀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도 했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서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의 강도가 점점 엷어지는지, 아님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죽음을 돌아볼 겨를이 없이 바삐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그러는지, 더 나아가 산 사람도 거의 죽음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그런지... 이유가 궁금할 따름입니다.
앞으로도 신자유주의적 권력에 의한 민중살해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데 정말 걱정이네요. 이런 죽음을 계속 경험하면서도 저항다운 저항도 못하고 살아갈 우리들의 마음이 시멘트같이 굳어있을 게 뻔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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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좀 이것저것 많이 쓰시라요 ^^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