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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어쨌다고?"라고 말하는 듯한 저 표정
구려
짜증나

진짜 멜로를 하고 싶으면,
은하의 이야기를 들으란 말이야.
계속보면 스포일러...
무임승차한 좌파
새삼스럽게 색깔이나 방향논쟁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영화속의 영재가, 또는 윤성호감독이 좌파라는 관념을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좌파라는 관념에 무임승차하려는 노력이 이 영화에서 엿보이기 때문이다. 아주아주 짜증이 났다. 가끔씩 스크린쿼터에 대한 이야기도 던지고 FTA이야기도, 대선 이야기도 조금씩 끼워져 있지만, 어느것 하나 진지하게 공격하지 않고, 다만 그것은 허황된 듯한 느낌의 샷으로 말로만 다가올 뿐이다.
감독은 영화의 초반부에 "무임승차한 좌파"라는 말을 던져놓았다. 영재는 민주화투쟁을 겪지 않아서 무임승차한 좌파란다. 자신이 좌파인 것은 어느정도 구린 거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군대고참의 입에서 "민중은 안중에도 없냐"는 질타가 나오는 상황, 지하철에서 승객들이 악기로 연주하는 장면과 그것을 억압하는 한 남성이 오버랩된다. 이 장면은 두 가지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데, 하나는 (연주를 통해서 드러나는) 대중의 운동이 (남성의 폭력에 의해서) 억압되는 장면 그 자체이고, 다른 하나는 "민중은 안중에도 없냐"라고 말하던 군대고참이 그 순간에 폭력과 억압에 대해서 시선을 외면해버리는 장면이다. 나는 여기서 후자의 장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은 후자의 것에 있었다고 본다. 좌파들이 말하는 민중성에 대한 경배가, 그 도덕이 겨우 이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비아냥이다. 그 장면을 거친 후에 영재의 영화에는 민중성에 대한 고민이 완전히 빠져버려도 상관없게 되었다.
그런데 감독의 메세지는 그 뒤에 더 크게 다가온다. 영재가 실어증 때문에 병원에 갔을 때, 가족에 문제가 있는 분이 있냐고 하니까, "사촌에 조선일보 기자가 있다"라는 말을 쓴다. 관객은 웃는다. 하하하. 웃기려고 만든 설정이다. 조선일보가 문제라는 이야기를 우회적으로 한 센스. 그것에 관객은 웃고 말았다. 하지만, 관객이 여기서 웃은 것은 감독의 메세지에 말려든 셈이 되었다. 감독은 그 유머를 통해서 관객에게, "이 영화를 보는 당신 좌파지?" 이렇게 묻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이 영화에서 설정된 관객의 수준이다. 조선일보가 문제라는 이야기는 민주화투쟁 같은 거 거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감독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무임승차한 좌파라는 말로 자신을 낮췄고, 조선일보에 대한 유머를 통해서 관객의 시선을 자신의 규정과 같은 것으로 몰고 간 셈이다. 이미 여기에, 많은 관객이 걸려들었다고 본다.
간단히 말해서, 이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에게, "당신도 구려"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왜 구린지 아는가? 당신은 좌파니까. 다른 이유가 없다. 이 영화속에서 찾을 수 있는 좌파는 처음부터 스크린쿼터를 사수하는 것에 찬성하고, FTA를 반대하고, 이명박을 반대하고, 조선일보를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면 되는, 그런 것이었다. 즉, 입장만 가지면 되기 때문에 무임승차가 되는 것이다. 우리모두 무임승차한 좌파가 되어서, 구린 걸 인정하자는 메세지. 좌파라는 말을 영화의 초반부터 굳이 꺼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도 무임승차하지 않은 좌파는 이미 이 시대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민중에 대한 고민"은 자신을 좌파라고 규정하는 사람들에게는 늘상 있는 강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영재는, 윤성호감독은 지하철의 군대고참의 외면 장면 하나로 그것을 가볍게 부정해버렸다. 그리고 관객에게 유머로서 말하고 있다. "자 당신도 그런 강박 던져버려", "관념 뿐인 민중은 필요없다구". "중요한 건 조선일보가 문제라는 거야." 하지만, 조선일보가 왜 문제인지는 어디에도 진지하게 언급되지 않는다. 그냥 그것은 잘못된 매체고, 병원에서 굳이 관객을 웃기기 위해서 문제라고 적을 만큼의 '문제'일 뿐이다.
실어증과 피해의식
영재는 실어증에 걸린다. 자고 일어나니까, 실어증에 걸렸다는 설정이다. 실어증은 은하앞에서 말 많던 영재가 은하에게 차였다는 것과 동일한 맥락에 있다. 더 이상 은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의미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영화 시나리오도 영화 관계자들에 의해서 심하게 변형되며, 거기에 대해서 영재는 의견을 제시하기 어렵게 된다. 그리고, 끝내 그렇게 변행되어서 완성된 시나리오는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다.
영재는 억울하다. 시나리오를 빼앗긴 것도 억울하고, 은하에게 차인 것도 억울하다. 그런데, 영재는 시나리오를 빼앗긴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반전도 꾀하지 못하면서, 은하에게만 다시 잘해보자는 식으로 대한다. 은하가 다른 감독보다도 더 만만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를 빼앗은 것은 다른 감독이지만, 그것을 되찾는 것은 빼앗긴 순간부터 아예 불가능하다. 이미 게임이 끝났고, 영화계에서 다른 소통의 여지는 없다. 하지만, 은하는 소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영재의 생각이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지만, 은하는 당연히 소통해주지 않는다.
이 설정은 영재의 머릿속에 왜곡된 피해의식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실어증을 통하여 영재의 피해의식은 크게 증폭된다. 아무것도 소통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실어증은 영재가 자의가 아닌 타자에 의해서 소통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처럼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등장했다. 실어증을 통해서 영재는 은하와의 관계에 대한 책임을 지나쳐갔다. 영재가 영화작업을 통해서 뭔가 일이 꼬이고, 피해를 보지만,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스스로 되찾아오지 못한다.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그리고 영재는 은하에게로 간다. 영재에게는 이 모든 일들이 특정한 기간에 동시에 일어나서, 영재의 위기를 낳고 있는 셈이지만, 영재의 대응 방법은 명확하다. 은하가 제일 만만하고, 그런 은하에게서 관계의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자, 이번에는 시나리오 상 다른 여성들을 영재에게 던져준다. 이번에 던져진 여성은 하룻밤의 섹스만으로 소통하는 여성이었고, 그 다음에 결정적으로 등장하는 여성은 말을 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여성이었다. 그것으로 영화는 끝이다. 마치 은하라서 문제였다는 식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필요가 없으니까. (특히 마지막의 장애인의 설정에 주목해야 한다. 어차피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영재는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게다.) 마치 은하에게 결정적인 한계가 있었던 것처럼. 모든 시점은 영재에게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은하는 무조건 외계인이 되어야 했다. 이렇게 해서 영재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것이 연애관계에서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게 된다. 그런데 은하는 그게 마치 본질적인 문제인 듯 영재에게 말하니 영재가 답답할 뿐이다.
은하는 영재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원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영재의 시점에서만 기록이 되었기 때문에, 은하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몇가지 정황을 근거로 추측할 수 있을 뿐. (섹스에 대한 피동적 표현에 대한 문제, 또 김밥과 샌드위치를 싸왔을 때, 오이때문에 먹지 않은 영재와의 갈등 등등) 은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원하지만, 영재는 그것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심이 없다. 다만 영재는 은하가 자신의 옆에 있길 바랄 뿐이다. 이 영화에서는 이런 중대한 갈등을 처음부터 끝까지 영재의 시점에서만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편파적이고 이기적이다. 그냥 영재는 말이 많아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 못하는 단점이 있는 사람이고, 은하는 그걸 감싸주지 못하는 외계인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리는 셈이다.
그런데, 영재와 은하의 연애관계에 대해서, 누가 더 진지하게 고민했을까? 당연히 은하다. 이것은 은하가 더 진지했을 때, 감독의 의도에 더 부합하는 셈이다. 섹스에 대한 영재의 피동적인 표현이 은하의 기분을 매우매우 상하게 했던 갈등. 그리고 은하가 영재의 촬영장에 음식을 준비해서 왔을 때, 영재가 절대로 먹지 않는 것에 대한 갈등. 이런 식의 영재와 은하 사이의 갈등은 영재가 문제라서 갈등이 시작된다. 바로 그렇게 설정되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철저하게 영재의 시점으로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표현하는 의도는 간단하다. 영재에 대한 변명을 하는 것이 이 부분에 있어서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즉, 감독 자신의 변명이다. 지나간 연애관계에서 자기가 잘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관객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이런 관계를 봐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은하를 외계로 밀어내는 한이 있더라도... 그래서 이 영화는 제목이 "은하해방전선"이지만, 은하의 생각과 은하의 고민 따위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은하는 영재의 모든 것으로 위장된 하나의 연애대상일 뿐. 영재는 비겁하다. 사실은 감독이 비겁하다. 자신의 피해의식에 대하여 관객으로부터 동정표따위나 얻고자 이런 영화를 만들다니. 쯧.
공통점의 후까시, 언어유희
영화와 연애의 공통점은 "응석"이란다. 도넛과 영화의 공통점은 "핵심을 떼야 잘 팔린다는 것"이란다. 이 영화에서는 이런 식으로 서로 다른 두가지의 단어의 공통분모를 찾으려는 노력이 있다. 물론 이것은 철저하게 영재의 대사를 통해서 나타난다. 참 재밌는 표현들이다. 무릎을 탁 치게 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이런 연애작업용 멘트같은 표현들이 앞에서 논한 진지하지 않음과 비겁함을 강화한다. 영화와 연애의 공통점은 "응석"이라는 표현은 결국 감독의 연애관이 "응석"이라는 사실을 말하기 위한 것이었고, 도넛과 영화의 공통점은 "핵심을 떼야 잘 팔린다는 것"이라는 표현은 감독의 영화에 대한 생각이 "진지하지 않음"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표현이었다. 지금 감독은 관객에게 대놓고 "진지하지 않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관객들이 언어유희에 무릎을 치고 즐거워하는 것 그 자체를 중요하게 보고 있을 뿐이다. 그 유희의 의미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영재는 다음의 말을 계속 이어간다. 영재가 말이 빠르고, 수사가 현란하다는 것은 이렇게 "진지하지 않음"에 직결되는 문제가 된다.
즉, 처음부터 영재의 결정적인 단점은 말이 빨라서 자기이야기만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언어유희를 즐기는 데에 열을 올리고, 진지한 생각들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은하가 영재와 다시 이야기하려고 메신저에서 만났을 때, 영재는 "연애는 발명"이라면서, 자신이 "사랑의 에디슨"이 되겠노라고 말한다. 그것으로 은하는 영재와의 대화를 끊어버린다. 영재의 언어유희 속에서 은하는 더 버틸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그것이 연애의 끝으로 다가왔고, 또 전혀 진지하지 않은 영재는 은하가 무엇을 말하든지 "사랑의 에디슨"이 되겠다는 작업용멘트만을 날리고 있을 뿐이다.
부산영화제에서 단편이 상영된 후에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영재는 배우인 혁권에서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던져준다. 혁권은 영재가 알려준대로 관객들의 질문에 "소통"만을 강조하면서 대답한다. 이 순간 모든 질문에 대한 공통의 대답은 "소통"이다. 동시에 "소통"이라는 말은 혁권의 대답을 통해, 이미 한번 유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말았다. 그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는 "소통"은 더이상 관객과의 대화 이전에 고민하던 "소통"과는 다른 것이 되고 말았다. 적어도 관객과의 대화 이전에는 "소통"이라는 것에 대한 고민의 영역이 많았을 것이, 그 후에는 "소통"이라는 말도 피상적인 것이 되었으니까. 그 후로는 더 이상 "소통"에 대한 고민이 있을 수가 없다. 즉, 영재에게는 "소통" 역시도 언어유희로 진지함을 해체할 수 있는 하나의 단어에 불과하다. 이런 영재에게 은하가 돌아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영화의 끝에 "은성"이라는 장애여성을 등장시켜서, 은성과의 연애로 영화를 맺는다. 은성은 말을 하지도, 듣지도 못한다. 하지만, 노트북에 말을 쓸 수는 있어서 대화가 가능하다. 즉, 최소한의 의사소통은 할 수 있고, 많은 말을 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영재는 은하에게 썼던 작업용멘트를 은성에게 똑같이 사용한다. "3천원이 있다면 3천원을 다 주겠다"로 시작하는 멘트. 결국 영재는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 은성과의 연애를 위해서 수화를 배웠지만, 수화로 결국 은하에게 했던 말과 같은 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어쨌든 수화를 써야하니까, 말이 조금 느려졌을 뿐. 마지막의 공통된 작업용멘트는 영화 전체의 내용이 영재의 고민을 상승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즉, 감독의 고민은 여전히 같은 수준에서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재의 입장에 몰입하도록 요구한다. 그것은 곧 감독 자신에 대한 변명일 뿐이다.
비합리성에 대한 동정표
[은하해방전선]의 주제는 결국은 "비합리성에 대한 동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매우 모호한 듯한 생각들. 감독은 영재의 입을 통하여, 굳이 완벽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내용에 대하여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식의 속사포처럼 지나가는 말들을 늘어놓으면서 진리의 애매모호함을 느껴보라고 권유하고 있다. 그리고 좌파의 민중성에 대하여 관념적이라고 치부하며 반기를 들었다. 연애에서의 소통의 문제 역시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음으로서, 소통에 대해서도 반기를 들었다. 그것으로부터 출발한 이 영화는 영재가 영화계에서 소통이 되지 않는 상황을 보여주고, 극단적으로 실어증까지 설정하면서, 결국 영재가 꼬이게 된 원인을 영화계에서의 낮은 위치의 한계인 듯 표현하고 있다. 그 다음은 그런 영재의 고민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는 듯한 동정표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적절한 언어유희에 대해 이미 웃음을 지은 관객들은, 영재의 진지한 고민의 부재에 대하여 한마디도 반격하지 못한다.
이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은하해방전선]은 코미디 영화인가? 그냥 웃기면 끝인 영화인가? 웃기는 것 자체가 목표인 영화는 절대 아니다. 이 영화는 분명한 목적이 있는 영화다. 그 목적은 제목자체에서 드러냈듯이, 은하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은하의 진지함에 대한 욕구가 영재를 그늘로 몰고 가는데, 그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이 영화에서 감독의 목표다. 그리고 영재의 이와 같은 해방은 바로 관객을 향한 언어유희에서, 치밀하게 설정된 실어증에서 출발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영재의 화려한 수사에 웃어버린 당신은 이미 영재를 은하로부터 해방시키는 데에 일조한 셈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진지하지 않음"을 "진지함"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데에 일조한 셈이 되는 것이고, "비합리성"을 "합리성"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데에 일조한 셈이 되는 것이다. 영재가 관객에게 하고 있는 말들은 관객에게는 매우 편하게 들릴 것이다. 더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 바로 그렇게 되는 순간 은하는 어디에도 없게 된다는 사실. 그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대중의 비합리성을 정당화하는 것. 우리는 그런 걸 파시즘이라고 불러오지 않았던가? 언어유희에 대한 관객들의 웃음이 무얼 의미하는가? 부산영화제에서 관객과의 대화 도중에 한 사람이 던진 "연애는 뭐라고 생각하고, 사랑은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 관객을 끌어내버리는 것. 그것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게 되던가? 적절히 "진지하지 않음"을 희망하는 대중의 욕구가 이 영화를 통해서 힘을 얻게 되는 것. 그게 이 사회에서 필요한 영화일까? 나는 그것이 의심스럽다.
결론
이 영화의 제목의 의미는 결국 "은하로부터 영재가 해방되는 전선"이라고 할 수 있다. "난 너와 대화를 한 적이 없어"라는 은하의 말에 "다 들어줄게"라고 하는 영재의 말은 어쩌면 국민들의 정치적 요구에 대해, 대통령후보가 선거때 "다 들어줄게"라고 형식적으로 말하는 것과 같다. 이 영화에서는 영재가 은하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봤지만, 사실 우리가 고민해야 했던 것은 은하가 영재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어제 이 영화를 보고난 후에, 그 자리에서 윤성호감독과 관객과의 대화가 있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지하게 한마디 하고 싶었다. 당신 파시스트냐고... 그래서 결국 영화속에서 은하는 어디로 갔느냐고.
포스터에 있듯이 진짜 멜로를 하고 싶다면, 소통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좋겠다. 제발 진지해져라. 영재, 그리고 윤성호감독. 그리고 이 영화에 대하여 찬양 일색인 언론과 관객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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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하게 저 영화보고 실어증 걸렸어요. 저런 허접한 게 찬양 일색이면 다시 실어증 걸려야 되겠는데, 스캔님의 시원한 비평때문에 속이 후련한데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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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즐겁게 본 편입니다. 좌파에 대한 강박이 없는편이라서 그런건지~ 맘에 안맞는 영화에 대해서는 까칠한 편인데 이 영화는 나름 점수 주고 싶더라구요. 고생한 사람들 눈에 밟혀서 ㅎㅎ 귀뜸하나 16일날 우익청년 윤성호 상영하네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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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재밌었는데. ㅋ 영재는 바보고, 그래서 은하와의 연애에 실패했고, 영재는 말을 다시 배우고 있는 중이지. -_- 말을 다시 배운다는 건 중요하지 않을까. 다들 소통을 말하지만, 소통은 말로 하는 게 아니니까.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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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앞으로 스캔이랑 같이 영화보려면 긴장되겠는데요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면 윤성호 감독은 좋아할거예요
스쳐가면서 잠시 만났지만, 새로운 의견이나 관객들의 지적을 늘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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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 속이 후련하다니까 기분이 좋군요. 이 영화 예고편이나, 다른 사람들의 소감만을 보고도 저는 너무너무 답답해서, 진짜 얼마나 답답한 영화인지 확인하고 글을 쓰자고 작정하고서 어제 극장에 갔었죠.ㅋ 역시 글은 나왔지만, 돈 아깝다는 결론. 돈받고 보라고 해도, 보면 안될 것 같은 영화에요.ㅋ처절한기타맨 // 좌파에 대한 이야기도 문제지만, 결정적으로 이 영화는 은하를 외계로 보내버리는 게 목적인 영화에요. 이런 영화에 점수를 주고 싶다니, 좀 어이가 없군요. 사실 이런 말 하기는 정말 조심스럽지만, 진지한 여성의 이미지인 은하와 전혀 진지하지 않은 영재의 대립을 설정한 게, 그리고, 결국 은하를 외계로 날려버리는 건, 페미니스트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으로도 보인단 말이죠.
디디 // 그게 윤성호감독이 전하고 싶은 메세지겠지. 나는 말을 다시 배우고 있어. 그러니 좀 봐달라. 하지만 그렇게만 해석될라면, 최소한 은하하고 연애할 때의 작업용멘트가, 마지막에 수화로 반복되는 건 하지 말아야지. 결국 말을 다시 배우는 게 아니라, 영재의 말은 그대로고, 거기에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척하기 위하여 수화를 추가한 것 뿐이라고. 소통은 작업용멘트가 아니잖아. 은하처럼 진지하지 않아도 수화 하나쯤 배우면, 장애여성과 연애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 결론은 역시 진지해질 필요가 없다는 것. 아 짜증나. 이 영화를 재밌게 봤을수록 더 위험하다는 건 알아줬으면 해.
나루 // 윤성호감독이 좋아할 거라는 말을 보니, 더욱 기분이 나빠지네요. 새로운 의견이나 관객들의 지적을 기다리는 건, 관객의 지적을 언어유희로 되받아치기 위해서가 아닐까하는 두려움이 생기는데요. 은하의 지적에 대하여, "사랑의 에디슨이 되겠다"라고 말했듯이... 나는 윤성호 감독이 영화를 이따위로 만들거면, 하루빨리 스스로 영화를 그만두는 게 이 사회를 위해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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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연하든 편승하든 그게 말장난일지 모르지만, 하나만 이야기하면, 지하철 장면에서 '민주노조' 글씨 확실하게 찍힌 조끼 입은 여성 노동자가 생존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앵벌이를 하는 설정은 미친놈한테 두들겨 맞는 걸 빼더라도, 그 장면이 아무리 영화에서 상징화되었다고 하더라도 감독이 좌파나 노동자나 민중 등에 대한 시각이 일천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뭣도 모른다는 걸 꽤나 잘 보여주더라구요. 말장난도 예술의 경지가 있겠지만 이런 말장난은 안스러울 따름이죠...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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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이름 // 제가 그 장면에서 "민주노조"라고 쓰여진 글씨를 미처 못봤었네요. 앵벌이에서 악기연주로 넘어가는 맥락에서 뭔가 빠진듯한 관념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이제야 감독이 의도한 그 관념의 조각이 맞춰지는 것 같아요. 아 정말 답답할 노릇이로군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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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영화볼때, 병장이 <제국>이 읽고 있는걸 보고, 피식하고 비웃은 기억이 납니다. 전 그냥 "한국에서 멋으로 학생운동을 하다가 어줍짢게 <제국>을 읽은 자칭좌파"의 자위라고 생각했어요. 그저 그런 자칭좌파가 "후까시 피우는건 쿨하지 않은 짓이야"정도의 깨달음을 얻은 정도를 자의식 과잉과 우디 앨런 흉내로 보여주는것 정도랄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님.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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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었습니다.당연히 나와야 할 이야기들인 것 같아요.극장이라는 공간에서 그런 소통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이 무리한 바람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 대해서는 이런 논의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바랬는데. 아직 늦지 않았겠죠.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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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요새들어 제가 생각하는건 소위 좌파연하는 이들의 문제가 뭐냐하면요. 자기들, 자기 무리들만 굉장히 고결하고 도덕적이라고 착각하는거에요. 사회 민주화 투쟁은 지들이 전부 다 한것처럼~ 가끔은 어깨에 들어간 힘을 좀 뺏으면 해요. 따라서 자신들이 소재로써 희화화 되는걸 끔찍하게도 싫어하고 몹시 불쾌해 못마땅해 하는것 같음. 전 연애에 관한 이야기보담은 영화 만들기에 대한 시니컬한 잡담이 더 재밌었슴. 하긴 신랄하고 날선 진담 쓰기에는 사실 아직 내공이 모지라긴 하겠지요. 그래도 다음 작품까지는 함 기대해볼까 싶어요. 作亂이 지나치긴 하니까...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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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_+ 나는 형식이 달라질 때, 모든 말은 다른 말이 된다고 생각하였는데. 아무튼 이 영화가 비호감인 사람은 무척이나 많았구나. ㅋ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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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로 // 민중을 말하는 자가, 영재의 군대고참이라는 설정 자체가 매우 고의적이었던 것 같아요. 민중을 말하는 자가 영재보다 계급이 높다는 설정. <제국>이라는 책 제목도 그런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 같네요. 뭔가 모순적이라는 식의 설정이죠.imaginaire // 감사합니다. 뭔가 활발한 논의가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저한테는 이 영화 자체가 그런데에 있어서 너무 힘빠지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해요. 영화에서 "소통"이라는 개념조차도 언어유희로 빠져들어가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처절한기타맨 // 자기무리들만 고결하고 도덕적이라고 착각한다는 게 어떤 건지는 저도 알아요. 좌파를 희화화하는것 자체로는 뭐라고 할 생각이 없는데, 대신 희화화하는만큼 자신의 진담을 꺼내야 하는 것 같아요. 제가보기에는 이 영화는 그런게 없어서, 결국 그냥 좌파를 씹는 영화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 시니컬한 뒷담화의 설정이 재미의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지만, 그게 결국은 내용이 없어서, 그 재기발랄함이 오히려 빛을 잃어버린 게 아닌가 싶네요.
디디 // 나는 너와 전화로 이야기할 때와 메신저로 이야기할 때 다른 말이 된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는데.ㅋ 난 어제 이 영화를 보고, 사실 어느정도 짜증이 날 거로 예상하면서 극장으로 들어갔음에도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어.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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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스캔, 난 윤성호 감독 팬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예요다른 사람의 영화를 볼 땐 한 사람의 관객일 뿐이지요
전작들을 봤기 때문에 스캔이 쓴 글에 대해서 공감하는 부분도 있어요
하지만 아직 이 영화는 못봤기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는 뒤로 미뤄야겠고
감독이 이런 의견도 들었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덧글 달았거든요
관객들이 윤성호표 영화에 대해 칭찬을 많이 하는 편이라 이런 이야기는 못들었을거 같아서요
그런데, 스캔의 답글을 보고 나니 굉장히 당황스럽군요
영화가 아무리 스캔을 불쾌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제 덧글에 대해서까지
분노를 담아야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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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 // 나루한테 화가나는 건 절대로 아니에요. 그렇게 보였다면 죄송하군요. 나도 그 뜻은 알기는 알아요. 나루가 덧글로 말한 건, 윤성호감독이 그런 사람일 것 같다는 이야기뿐이었죠. 그리고 나도 윤성호감독이 나의 이런 글을 보면 좋아할 것 같다고 예상하고 있어요. 거기까지는 나루랑 생각이 비슷한데, 나는 그런 예상을 하면 기분이 좋지 않아요. 나는 차라리 윤성호 감독이 내 글을 보게 되면, 기분이 나빴으면 좋겠거든요. 감독이 이 글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감독에게 이 글은 또 다른 언어유희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나는 그런 점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내 답글이 나루에게 불편했다면 미안하군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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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스캔 무서워요 ㅋㅋㅋ흠, 나도 영화를 재미있게 봤어요.
이런 생각하지 하지는 못했지만, 뭔가 다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 기분이야. 라는 생각은 들었죠..
흠,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할 거라면 영화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너무 무섭다-_-;; 이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진통을 겪고 성장해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라는 생각이..
스캔이 화가 나는 부분은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는 언론과 사람들,
한 방향만을 보는 협소한 시각 같은 것들이 아닌가 싶은데..
만일 이 영화가 그렇게 언론을 타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화가 났을까 싶은.. 언어 유희로 돌리긴 했지만 결국 '소통' 이 중요하다는 건 감독도 인정한 부분인 것 같고.. 난 나름 이런 언어유희도 괜찮았는데ㅎㅎ
제가 감독에 대한 기대치가 없어서 일 수도 있고..
뭐 여하튼 잘 읽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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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봉 // 저는 글에서도 썼듯이, 이 영화는 의도가 매우 분명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우리에게는 이 영화에 대한 넓은 시각이 필요한 게 아니라, 감독의 의도를 제대로 분석하는 능력이 필요한 거죠. 이 영화에서 무서운 것은, '진통을 통한 성장'조차도 이미 부정당했다는 점이죠. (은하와의 관계에서의 진통이 은성과의 관계에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음으로 결론지어져 버렸으니까요.) 이것은 동시에, 감독이 인정한 '소통'의 중요성이, 얼마나 피상적인 것인지 드러내주고 있죠. 저는 제가 생각하는 소통의 중요성, 그리고 여기 블로그를 쓰는 사람들이 생각할 소통의 중요성은, 윤성호감독이 [은하해방전선]을 통하여 드러낸 소통의 중요성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하거든요.내가 화가나는 것은 "그래서 은하는 어디로 갔느냐"는 점 때문이에요. 협소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그저그런 웃음과 유희의 결과로, 은하의 소통에 대한 진지한 자세는 대놓고 짓밟혔다는 거에요. (영재가 영화속에서 전혀 성장하지 않음으로서, 은하는 외계로 보내졌는데, 관객들은 그걸 보면서도 그저 웃고만 있는 거죠.) 그리고 이 사회에서는 이 영화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진지한 사람들을 그 누구든 짓밟을 수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나는 이런 영화는 하루빨리 사라져야한다고 생각하고,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거면 영화를 그만두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왜 스캔은 무섭고, [은하해방전선]은 재밌을까요? 나는 이 질문부터 다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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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사실 영화 자체도, 스캔의 글도잘 이해 못한 것 같아요-_-;;
영화 자체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데, 스캔의 글을 잘 이해했다면 이상하겠죠; 이런 글들을 볼 때마다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점점....-_-;;;
은하해방전선이 재밌었는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네요,
어렵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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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봉 // 만약에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면, 은하의 입장에 주목하면서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다시 보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요.ㅋ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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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영화를 보는 내내 남성인 영재보다는 여성인 은하가 더 사려깊다는 생각을 했지요. 어쩌면 사랑이라는 소통에 서툰 이기적인 한 청년의 진면목을 속내를 보여주는것일런지도. 그런 미숙함이 때론 귀엽게 보이기도 합지요. 화를 낼정도로 나쁜 영화로까지는 생각 하지않는데~ 다른 사람의 견해를 자신의 시각과 다르다고 무조건 어이없다고 하는것이 조금 어이 없네요. 진짜 쓰레기 같은 건 넘치고 넘쳐 흐르고 있습니다. 호불호에 대한 개인의 취향은 다르니 쉽게 서로를 이해시키는건 어렵긴하겠죠. 전 양윤호 감독이 갠적으로 젤 싫어하는 감독중 하나입지요. 그렇다고 그 사람 영화 재밌게 봤다는 사람에게 왜 쓰레기같은 영화 보고 즐거워하냐고 내뱉지 않을려고 노력중이에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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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기타맨 // 네. 제가 무조건 어이없다고 한 것 맞습니다. 처절한기타맨님의 첫 덧글은 너무너무 어이없었습니다. 뭐, 저는 나름대로 이 영화에 대하여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썼고, "관객들이 재밌다고 생각하는 지점이 굉장히 위험한 것"이라고 글을 썼더니, "그래도 나는 그 영화 보고 즐거웠다. 후한 점수 줄란다."라는 덧글이 달렸지요. 뭐, 왜 재밌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고, (좌파에 대한 강박이 없다는 것이 재밌는 이유가 되지는 않잖아요.) 제가 비판하고 있는 지점에 대한 의견도 없는 덧글이지요. 즉, "그래 너는 그렇게 생각해라. 그래도 나는 재밌었다."였죠.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보세요. 처절한기타맨님께서 자신의 블로그에 진지한 글을 썼는데, 제가 덧글로 다른 말 없이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아요."라고만 쓰면, 어이없지 않을까요? 그냥 글에다가 대놓고 초치자는 거죠. 처절한기타맨님의 첫 덧글은 딱 이런 수준의 덧글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저도 딱 그 수준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제가 어이없어 하는 것에 새삼스럽게 어이없어 하시지 마시고, 자신의 덧글의 수준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 글은 [은하해방전선]을 즐겁고 재밌게 봤을 사람들을 겨냥해서 쓴 글입니다. 결코 가볍게 읽으라고 쓴 글이 아닙니다. 제가 지적한 부분들에 대하여 다른 해석이 가능한 부분들도 많겠지만, 최소한 제가 이 영화를 해석한 방식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영화를 보고 느낀 즐거움에 대해서 다시한번 되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해석이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또는 다른 해석을 주장하고 싶으시다면, 그렇게 주장하시면 됩니다. 그 경우에는 제가 의견이 다른 부분에 대해서 다른 의견을 내든, 인정을 하든 뭔가 의견 표현을 할 수 있겠지만, 이번처럼 어이없어하지는 않을겁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취향의 문제로 몰고가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저는 이 영화의 주제에 대한 비판을 했지, 제 취향상 맞지 않다고 한 적 한번도 없습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저의 취향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서 드러난 윤성호감독의 파시즘에 가까운 철학입니다. (저는 윤성호감독의 전작들을 알지 못합니다. 이 영화를 통해서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으니까요. 그러므로 제가 들여다보는 건 오직 이 영화를 통해서뿐입니다.) 어쨌든 저는 이 영화를 "진짜 쓰레기"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들이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는 것은 뭐라고 할 생각이 없습니다만, 저는 최소한 제가 이 영화를 쓰레기라고 규정할 수 있는 근거를 이 글에서 어느정도 풀어놓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덧붙이자면, 이 영화는 감독이 자신을 드러낸 매우 솔직한 영화입니다. 처절한기타맨님께서 "진면목을 보여준다"라고 했던 의미도 그런 것이겠지요. 거기까지는 저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솔직함이 정치적인 그릇됨에 대한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어필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 "솔직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솔직함이 다른 것들에 대한 면죄부로 작용하려고 하는 듯 해서, 저는 다른 어떤 영화들보다도 무서운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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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파스 백과사전에서 조금 훑어 왔습니다.파시즘은 모든 형태에 있어서 주요한 특징들을 보여 주고 있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국가의 절대 우위이고, 다른 특징들은 모두 여기에서 유래한다. 개인의 뜻을 굽혀 국가가 명시한 대로 국민의 통합된 뜻에 따르고 국가를 상징하는 보통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에게 완전히 복종하는 것이 파시즘의 특징이다. 또한 군사적 가치관과 전투 및 정복을 찬양하고,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합리주의 및 부르주아적 가치관은 낮게 평가한다. 무솔리니가 로마 제국의 '부활'을 예언한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국가나 민족을 신성한 것으로 받들고 그 운명을 선언하는 파시즘의 표현에는 대개 신비주의의 요소가 짙게 배어 있다.
다른 어떤 영화들보다 무서운 영화를 만든 파시스트 감독 윤성호라~ 나중에 만나면 좀 골려먹어야겟네요. ㅋㅋ 그가 지닌 정치적인 그릇됨이 어떤건지 적확히 설명을~ 어떤 파시즘이 어떠한 코드로 영화에 깔려있는지 사려깊은 설명을 부탁드려요.당췌 제 머리가 나빠서여~
오래전 은하해방전선 만든 PD(김일권)의 다른 작업(사자성어라는 작품) 씹어서 그놈 졸라 삐졌었거든요.(그땐 그 작업에 음악 스탭으로 참여까지했었지요.) 근데 이번 작업은 전 흥행좀 됫스면 하거든요.
후한 점수를 주는 이유는 나름대로 재기 발랄한 상상력들 + 그걸 당대의 우스꽝스런 현실과 강박없이 접합하는 방식들 그리고 저예산으로 찍는 독립 영화 작업 자체에 대한 모순들까지도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있거든요.
제가 얼마전 실연 해서 동병상련의 감정이 느껴져서 그런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극장에서의 기타 반주와 더불어 나오는 영재의 울먹거림은 애잔하더라구요. 개인적으로 음악작업을 하다보니 그런 부분은 참 잘 만들어진 씬이더군요.
그 좌충우돌 까대는 맛때문에 나름 재미있었지요. 가오잡는 일본 배우에 대한 감독의 시각이 파시즘을 설마 옹호하는것으로 보신건 아니겠지요?
다큐멘타리 연출하는 '안녕 사요나라'의 김태일 선배 까메오 깜짝 출연이 제일 전 재밌었구요. 김태일 선배까지 파시스트 감독에게 이용을 당한 셈이네요. 쩝~.~;; 영화는 완전 쓰레기가 되버렸구요.
아직 치기 만발한 젊은 친구라 사유의 깊이의 한계는 있지만 나름대로 발군의 저예산 영화라고 전 생각 합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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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기타맨 // 파시즘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토마스 만(Thomas Mann)의 단편소설 "마리오와 마술사"를 읽어보기를 권장합니다. 단편이니까 길지도 않습니다. 그 소설에서 마술사와 관객의 관계설정이 [은하해방전선]과 관객(여기서는 영화속 부산영화제의 관객도 되고, 영화밖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저와 같은 관객도 됩니다.)의 관계설정과 흡사하니까요. 그리고 "마리오와 마술사"라는 소설이 세간 사람들에게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를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결정적으로 "파시즘"이라는 언어를 떠올리게 되었던 장면은 부산영화제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중에 한 관객을 끌어내는 장면이었습니다. 물론 이 장면만 가지고 논할 생각이 없습니다만, 그래도 이 장면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파시즘에 대해서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논하는 그 정도의 사전적인 지식은 고등학교 세계사만 잘 배워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틀에 맞춰서 파시즘을 다시 설명해달라고 요구하는 것 같아서, 질문자체가 피상적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제가 이 글에서 파시즘을 언급한 부분이 "비합리성에 대한 동정표"라는 소제목으로 되어 있습니다. 파시즘에 대해서 공부를 조금만 해보신다면 그 소제목을 왜 파시즘으로 연결시켜서 사고할 수 있는지 대번에 이해하실텐데... 그렇게 어려운 내용이 아니거든요.
저는 파시즘으로 보고 있지만, 그렇게 보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그런 단어에 매몰되는 것 자체가 제 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일 뿐입니다. 이 영화에서 윤성호 감독이 지닌 정치적인 그릇됨은, 글에서도 지적했듯이 "진지한 은하를 외계로 보내버린 것을, 진지하지 않은 영재가 합리화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파시즘이든 아니든 간에, 바로 이 지점에서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윤성호감독을 만나서 골려먹으려면, 이 지점을 이야기하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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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인맥을 들먹거리면서 영화 자체에 대한 논의의 초점을 비껴가는 모습은 상당히 우습네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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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의 어떤 분과 약간 아는 처지를 숨기고 싶은데, 진보블로그 홈에 익명이 기본이라고 해서 ^^스캔님 글에서 느껴지는 이 영화의 짜증나는 것들은 처절한기타맨님의 덧글이 주는 느낌과 비슷하군요. 파시즘의 사전적 의미를 끌어들이는 언어유희와 그것이 저 영화에서 제국이란 책이 등장하는 것을 연상시키는 점, 영화관계자와의 사적 관계를 은연중에 과시하는 한국사회 특히 남성사회의 연고주의를 보여주는 점, 이름있는 중견 감독(?)을 선배라 칭하는 속물근성, 그리고 이건 백미라고 볼 수 있는데, '아직 치기 만발한 친구라 사유의 깊이의 한계는 있지만 발군의 저예산 영화...' 라는 문장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거만한 착각이 느껴집니다.
짜증나고 구리고 찌질하기에 아주 주옥같습니다. 유쾌하진 않지만 그 주옥같은 글의 재미가 끝장이군요. 계속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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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유희, 사적관계, 연고주의. 이름있는 중견감독? 속물근성. 발군의 거만한 착각 졸라 씹혔네요. 굳이 사적인 관계를 드러낸것은 그만큼 나와 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의 작업에 대해 짜증만 아니라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음을 별탈 없겟지 하고 스스럼없이 드러낸 것이였는데 앞으로는 개인적 관계에 대한거 드러내는것은 무척 조심해야겟군요. ㅎㅎ 처절한 실수인거 싶네요. 까칠한 댓글들 덕택에 기분이 서늘해지기는 합니다요. 토마스 만의 마리오와 마술사는 함 구해 읽어보도록 해야겟네요. 요새 파시즘의 징후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긴 하더군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보다 수준 이하 기대이하라고 단정짓고 그 폄하의 표현이 완전 쓰레기라고 막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씁쓸하네요. 어째든 고민은 좀 해 봐야겟네요. 그렇게도 윤성호 감독의 영화가 문제가 심각했나. 그리고 본인의 댓글이 그리도 짜증나고 구리고 찌질하고 주옥 같았는지~사적인 관계에 관한 드러냄이 과시로 읽힌거에 대한 반성은 좀 해야겟군요.어째든 익명이 기본이 아니라 익명이 폭력인듯도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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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리플 진짜 길어서 다 못읽었어요..뭐가 그렇게 어려워요..파시즘이니..군국주의니..
우리 그냥 쉽게 나가요 ㅠㅠ 나 이런거 언제 다배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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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한 // 결국은 그거죠. 어떻게든 초점을 비껴가는 것.익명이 기본 // 저는 그 분들이 누군지도 몰랐는데, 이름있는 중견감독(?)들이었군요.ㅋ 뭐, 제가 영화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요. 저는 그 분들 영화를 본 적도 없는데, 괜히 이 논의에서 이름이 거론되면서 이 영화와 아무런 상관이 없을지도 모르는 그 분들께 쓸데없이 누가 될까봐 걱정스럽군요.
처절한기타맨 // 막말하기로 따지면, 윤성호감독이 먼저 한 셈이죠. 왜 [은하해방전선]이 관객에게 막말하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 걸까요? 그리고 처절한기타맨님께서 단 덧글이 왜 수준에 맞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말씀드렸습니다. 이정도로 부족한가요? 더 보충 설명이 필요합니까? 저는 절대로, 아무 근거 없이 수준이하라고 단정지은 거 아닙니다. 수준이하라고 한 것을 '막말'로 취급하려면, 최소한 제가 수준이하라고 판단했던 근거를 설명한 것에 대해서, 반박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익명이 폭력인 듯도 싶다고 그러셨는데, 정말 제가 할까말까 고민했던, 고민의 결과 하지 않기로 결정했던 말을 먼저 하시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스캔"도 익명이고, "처절한기타맨"도 익명이지 않습니까? 처절한기타맨님은 영화관계자들을 어느정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익명으로 글을 쓰는 스캔이라는 사람이 영화를 비판해놓은 것에 대해서, 고생한 사람들이 눈에 밟힌다는 이야기를 뻔뻔하게 던질 수 있었죠. 어차피 익명이고 모르는 사람이니까, 어차피 스캔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상관없으니까. 그리고 영화쪽 일은 처절한기타맨님이 저보다는 더 잘 알테니까... 제 글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대응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처절한기타맨님이 영화관계자들을 좀 안다는 것을 무기로, 상대적으로 스캔은 그런 거 잘 모를 거라고 예상하면서, 제 글의 논점을 다 흐리려고 애쓰는 그 모습. 그것 역시 처절한기타맨님이 익명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아닌가요? 영화관계자들을 잘 알고 있다는 처절한기타맨님의 상대적인 권위가 무너졌는데, 그 순간에 마지막으로 빼든 카드가 "폭력"이라는 단어인 셈이었죠. 이렇게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그래도 "폭력"이라는 말 쉽게 안 쓸라고 노력했는데, 처절한기타맨님의 손에서는 그 말이 너무 쉽게 던져지는 것 같아서 안타깝군요.
제발 바라옵건데, 제 글에 대해서 딴지를 걸고 싶으시다면, 저의 해석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던가, 아니면 [은하해방전선]이라는 영화 자체에 대하여 저의 해석과는 다른 해석이 가능함을 보여주십시오. 최소한 그 정도의 책임감은 갖고 논쟁했으면 좋겠습니다.
chesterya // 여기 덧글에는 '군국주의'라는 말은 나오지 않아요.ㅋ 뭐 다 못 읽었으니까, 나오겠거니 했겠지만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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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찜찜한 요소가 있지만, 그런대로 재밌게 볼만했다 고 생각했는데요. 두가지 방향에서 생각이 듭니다. 하나는 '무임승차한 좌파'라고 표현하신 부분이고, 하나는 '시선'이라는 부분입니다.찜찜했다고 하는 것은 시선과 관련한 것인데요. 이 영화 철저히 영재의 시건에서 그려지지요. 그런데, 이를 그려낸 감독이 영재의 시선을 동조하는 것에서 그려내었는가, 이를 '보여주기'를 하면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일단 유보적입니다. 유보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은하와의 '관계맺기'와 관련해서, "우리는 대화를 한 적이 없었어"라는 말을 명시적으로 한다는 점인데요. 과연 감독이 영재와 은하가 맺고 있던 관계에 대해 문제의식이 없었는가에 대해 쉽게 이야기 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스캔님께서 짜증난다고 느끼시는 양태로 행동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행태를 보여주면서 일종의 비틀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해석도 가능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감독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는 모르는 상황에서 이에 대해 판단을 내리기는 어려울 거 같아요. 감독의 전작품들과 성향을 알고 있다면 판단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은 들어요. 같은 표현이더라도, 이는 맥락에 따라서 다를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일단 유보라고 하는 겁니다. 마지막 작업용 멘트가 똑같다고 하셨는데, 저는 전에는 있는대로 다 줄께에서, 적어도 삼천원은 줄께로 달라진 거로 기억하는데, 정확한 기억은 영화를 다시 봐야 확인될 수 있겠지만요. 이전 영재와 이후 영재가 일단은 달라졌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그게 뭐 달라진거야'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겠지만, 그 작은 뉘앙스의 차이가 있었을 때 영화를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고 보거든요
그럼에도 은성이 말을 하지 못했고, 그제서야 소통이 가능했다는 식의 설정을 보면서 스캔님이 화가 났던 부분에 대해 충분히 공감이 가는 것이구요. 때문에 저는 복잡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이 사람은 실제로는 어떤 생각을 했던 것일까?" 이런거요.
'무임승차한 좌파' 라는 부분에 대한 생각인데요.
"당신은 좌파니까. 다른 이유가 없다. 이 영화속에서 찾을 수 있는 좌파는 처음부터 스크린쿼터를 사수하는 것에 찬성하고, FTA를 반대하고, 이명박을 반대하고, 조선일보를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면 되는, 그런 것이었다. 즉, 입장만 가지면 되기 때문에 무임승차가 되는 것이다. "
라고 쓰셨어요. 그러면서 "조선일보가 왜 문제인지는 어디에서도 진지하게 언급돼지 않았다"라고 하셨지요.
저는 오히려 이 부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입장만 가지면"보다는 '왜 문제인지"에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조선일보-이명박 반대를 이야기하는 사람과 지금 시점에 있어서 시장주의적 질서를 반대하는 사람들 사이의 간극은 "입장만 가진다"의 문제라기 보다는 '입장 자체"의 차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입장만 가진다'와 이를 '현실의 문제로 가져간다'는 또 다른 결의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일단은 조선일보,이명박 반대 라는 입장과 시장주의적 질서에 대한 반대라는 입장이 분명한 차이를 지닌다는 것은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입장만 가진다"로 뭉뚱거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이 영화를 볼 때에 조선일보를 예로 든 것이, 조선일보-이명박 반대를 말하는 (상대적으로 수많은) 주류에서 말하는 '좌파'들의 유희를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경쟁력 이데올로기라든지, 시장주의의 기본적인 전제들에 대한 제기는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조선일보가 문제라고 이야기했던 자유주의적 세력과는 분별점을 지니고 있다고 봅니다. 물론, 말만으로 입장만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주어진다면, 그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영화가 적어도 자유주의적인 입장과는 구별되는 입장을 가진 상태라는 생각은 저는 든다는 것이구요, 문제가 되는 것은 이것을 그저 냉소적인 유희로써 던지는 것인가 어쨌든 입장이라는 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고민 속에서 던지는 것인가의 맥락으로 묻는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게 적절할 거 같아요.
그냥 제가 들었던 생각들을 적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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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귀 // "우리는 대화를 한 적이 없었어"라는 말은 영재의 입에서는 단 한번도 나온 적이 없습니다. 오직 은하의 입을 통해서 몇번이고 나왔을 뿐이죠. 철저하게 영재의 시점으로 그려지고 있는 영화에서, 영재의 입을 통하여 나오지 않은 말들은 더 이상 사유의 과정을 거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은하와의 관계맺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결여되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작업용멘트가 "있는대로 다줄께"에서 "삼천원은 줄께"로 바뀐 것은 맞습니다. 그 차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될 수 있겠군요.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고, 사실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하는지 잘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작업용멘트의 커다란 틀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가 "왜 문제인가"에 대한 판단이 문제가 된다는 지적은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쓴 글이었습니다. 입장만 가지면 되는 문제는 영화속에서 그렇게 그려진 것이었다고 판단한 거고,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왜 문제인가"라고 생각합니다.
자유주의 세력과 분별점을 지니고 있다는 지적과 동시에 말만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의 질문에 대한 이야기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자유주의적인 입장과 구별된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하기에도 애매하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결국 영화속에서 자유주의적인 입장과 구별되는 입장을 실현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고민조차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제가 이 영화와 결별해야 한다는 판단을 갖게 된 근거가 되었답니다.
새삼스럽게 스캔님이라고 하니까 이상하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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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쵸, 참 새삼스럽드라구요.. ㅋ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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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귀 // 하지만, 그렇게 쓰기로 결정한 너의 심정을 알 것 같기도 해.ㅋㅋ 조만간에 한번 보자~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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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저는 지금 난감해요. 대선후보의 비리를 고발하는 영상을 만들었는데, 그 대선후보의 꼴도 보기 싫기 때문에 이 영상을 만들어서 굳이 보여주는 너도 싫다는 이야기를 듣는 판국. 다만, 이 공격성이 그렇게 단순한 정체는 아니리라 생각은 합니다. 같은 고발을 하더라도 오해 받을 여지를 많이 남겨놓은 묘사의 태도나 서사의 구멍들이 텍스트 바깥의 상황 (후한 리뷰들이라든지, 마켓팅팀의 전략이라든지) 과 겹쳐 글쓰신 분이 작정한 비호감을 좀 더 부채질한 거 아닌가 싶습니다. 이건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개개인의 선택이죠.
다만, 자기 머리를 쥐어박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쥐어박힘을 당해 마땅한 제 머리 또한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요. 자신의 부박한 커뮤니케이션을 반성하는 (실은 여직 제대로 반성의 지점을 못 찾고 있는) 영재 캐릭터를 그리기 위해서는 영재의 부박한 커뮤니케이션 또한 충실히 묘사해야 한다 생각해서 어설프게 영화를 얘기하고 연애를 소비했던 주인공의 어줍잖은 상황과 고만고만한 말발을 배열한 것인데 (그 말발에 지금도 동감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의 심정으로 배열한) 그렇게 회초리 맞아야할 꺼리로 묘사한 에피소드 및 대사들을, 마치 연출이 옹호하는 것처럼, 그 상황들에 동정을 호소하는 것처럼 독해하셔서 긁적긁적입니다. 저는 그 반대인데..
"뭐 그렇게 대단한 창작을 한다고 소중한 사람과의 대화를 게으르게 했니, 왜 자기 말할 순서만 기다렸니, 너는 대화를 한 적이 없어! 그런 인생의 휴가는 끝! 엄살도 끝!" - 저렇게 작품 속에도, 좀 많이 친절하다 싶을 정도로 명시를 해놓았는데.
스스로에게 (그리고 또래의 많은 동료들에게) 꿀밤도 먹이고 늦은 연애편지 (또는 지난 연애를 반성하는 편지) 도 보내보는 그런 영화를 만든 건데, 꿀밤을 먹이기 위해 동원한 꿀밤 맞을 짓에 관한 에피소드를 왜 2007년 현재 연출자가 옹호하고 연민하고 받쳐주고 있다 생각할까요?
자, 이 영화는, 불만을 토로하거나 변명을 하기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니라 불만만 토로하고 변명만 늘어놓던 영재한테 '이제 그만하라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건 옆에 있는 사람을 제일 사랑하라고, 영화 만드는 일, 창작을 한다는 일은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자기 말할 순서만 기다리지 말라고' 만든 영화. 물론 아직 서툰 연출이고 만약 언젠가 어느 정점에 다다른 연출을 했다손 치더라도 많고 다양한 대중들 나름의 혹평도 있고 불만도 있을 터. 아쉬워하는 경우의 수는 아예 마주치기 싫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허나, 적어도 영재의 머리를 쓰다듬는 건지, 그 머리를 쥐어박는 건지.. 정도는 분간이 가게 만든 영화 같습니다. 영화의 만듦새를 아쉬워할 수도 있고 주파수가 안 맞아 정서적으로 별 무반응일 수도 있고 어떠어떠한 코드들 때문에 비호감으로 분류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 연출이 의도한 바를 전혀 다른 식으로 독해할 수도 있어요. 모두가 보신 분들의 권리.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쉽고 궁금해요. 확연히 묘사된 꿀밤의 주체와 과녁이 그렇게도 안 보이셨을까. 덧글까지 읽어보니 애초 영화관을 갈 때부터 이 영화를 싫.어.하.려.고. (또는 싫어할 근거를 획득하려고) 가신 것 같은데 그렇게 미리 구획진 판단이 감상에 영향을 주신 건 아닐까요. 적어도 파시스트 4음절 꼬리표를 망설임 없이 붙이시는 데는 영향을 끼쳤을 것 같아요.
여담인데, 실제로 저는 영재가 이렇게 나이먹을 경우 파시스트가 될 확률이 있다 생각하면서 에피소드를 전개하긴 했어요. 지난 몇 년간 만난 몇몇 젊은 친구들을 모델로 만들어낸 - 실제 일본 배우 중 한명이 모델이기도 하구요 - 기무라 레이야말로 요새의 분열증적인 파시스트 캐릭터인데 영재는 멋모르고 이 아이돌한테 열을 올리고 있었으니까요. 말인즉슨, 이 블로그의 주인장님이 경계하는 태도와 원하는 세계의 모양새는 이 영화를 만들 때의 저와 공유하는 바가 있는데 서로의 송수신에 큰 노이즈가 있었던 거 아닌가 하는 거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영화에 상당한 애정과 호감을 가질 때에만 리뷰를 남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관객이 연출의 의도에 맞춰 작품을 훑고 읽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다른 관객들의 관람여부나 행위에 영향을 끼치고 싶을 정도로 이 영화가 싫었다면, 적어도 이 영화가 누구에게 먼저 꿀밤을 날리는지 정도는 파악해주셨음 해요. 연출자는 영재에게 꿀밤을 먹이는 겁니다. 영재를 사랑해주라는 얘기가 아니라 영재는 혼 좀 나봐야한다는 얘기구요, 은하 보고 왜 영재를 떠났느냐며 둘을 대립시키는 얘기가 아니라 은하는 영재를 떠날만 했다는 이야기고, 영재한테 은성을 선물로 안겨주는 얘기가 아니라 구화만 안했지 누구보다 말많고 적극적인 은성이 영재를 선택한 거구요 (제 경험담이기도 하구요). 이제 영재는 적어도 상대의 눈과 입을 쳐다보며 의사소통을 하게 된다는 (진작 그랬어야 했다는) 이야기고, 결정적으로 아마도 그 실수들을 또 반복할 거라는 얘기구요 (그래서 일부러 고만고만한 작업멘트를 반복하도록 했지요, '이 놈 봐라 또 이러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같은 맥락에서, 영화제 GV 중에 끌려나가는 관객 질문자는 제가 끌어내린 게 아녜요, 영화 속 사회자 (안다고 안다고 말하지만 사실 알려고 남기려고 하지 않는 어떤 지식인 캐릭터) 가 끌어내린 거죠. 그렇게 누군가가 등퇴장하는 순간은 그 상황에서의 개연성에 따른 것입니다. 거기서의 주체가 꼭 연출자는 아닌 거예요, 아니 반대로 연출자는 그 주체를 경계하고 있는 걸 수도 있구요. 은하를 우주로 보내긴요. 은하는 스스로 떠났어요, 이제 영재한테 마음이 없으니까, 영재의 뒤늦은 블라블라가 이제 그녀한테 닿질 않으니까. 그 뒤 그녀의 행로를 제가 정해준다면 그게 오히려 연출자가 다 개입하려는 오만 아닐까, 그녀 캐릭터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음을 말하면서 정작 그 캐릭터의 행보까지는 제가 구획짓는다면 그건 아니다 싶었지요.
3.
아, 이 모든게 몇번의 말글로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압니다. 누군가를 싫어하기로 맘먹은 이상, 그 뒤부터 작동하는 이성은 싫어할 근거를 찾는 이성인 거죠. (그런 면에서 이 블로그의 주인장님도 영화 속 영재랑 닮은 캐릭터 아닐까 조심스레 반문해봅니다. 다양한 독해가 가능한 서사를 두고, 그 귀납적 근거를 이제 하나 얻은 마당에 그 연출자를 '파시스트'로까지 규정하는 거 보면 소비에트나 맥카시.. 이런 게 연상됩니다, 그런 물리력이 있으셨다면 어땠을지 좀 겁도 나요). 하지만 제 장편영화가 첫 번째 편지였다면 이왕 이 게시물과 덧글을 발견한 이상 두 번째까지는 편지를 보내고 싶었어요. 아아, 위 글을 보며 나루님 말씀마냥 재밌거나 즐거워하고 있 않아요. 기분이 나쁘다기 보다는 많이 힘이 빠져요. 몇달전에 디워 관련해서 이송 감독의 문제제기가 담론이 되지 않고 쑥대밭이 되는 걸 보면서 (그때 저는 한창 영화촬영중이었죠) 제 몸에 이상이 갈 정도로 근심이 됐었는데, 그 때 다들 우파 민족주의를 경계할 때 저는 그것도 문제지만 애초에 지금 여기의 사람들이 대화를 하기보다 단정을 짓고 자기 말할 순서를 기다리는 태도 (말씀하신 비합리성, 대화에서의 아마츄어리즘, 남을 몇가지 키워드로 요약하는 태도) 가 팽배해있는 게 걱정이었어요. 한국에서 소위 수구보수 이 쪽 양반들이 애초에 대화를 하기 싫어한다면 그 반대의 친구들은 자신이 대화를 하고 있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일단 제가 그랬고 제 선배들이 그랬고 친구들이 그랬고 여러분들이 그러하니까요, '이 책을 읽어보면 어떠냐 이 키워드로 그대를 골려먹고 싶다'는 건 대화가 아녜요, 대화로 바뀔 수도 있는 상대가 아닌 텍스트로서의 적이 필요하신 것 같아요, 저는 사실 공부를 많이 한 편이 아니라서 그런 지점들을 골려먹긴 쉬우실 겁니다, 저는 들을 건 들으면서 혹 제 진심과 상대의 교집합은 없는지 부박한 비유를 찾겠지만).. 혹평을 용납 못하는 게 아니라 (더 심한 리뷰도 많답니다, 논리가 아닌 음절만 있는) 말이 통할 것도 같은 상대의 단정적인 태그가 힘들어요. 마음이 많이 안 좋아요. 허나, 저는 응석이 되지 않도록 노력, 분발.. 그 다음은 모르겠습니다. : - l
ps. 분위기에 영합하려는 건 아니구요, '처절한 기타맨'님의 나중 덧글은 (죄송합니다) 제가 봐도 도움이 안되는군요. 연출자랍시고 고매하게 거리를 두려는 게 아니라 극장에 개봉한 영화의 나름 수많은 리뷰와 일일이 피드백을 주고 받을 수 없어서 (저는 또 다른 생계가 있으니) 그런 물리적 이유 때문에, 위 리뷰를 갸우뚱거리면서 보고도 넘어가려했는데, '처절한 기타맨'님의 어떤 무익한 덧글을 보고는 (죄송합니다, 그나마 제 영화를 재밌게 봐준 분인데 죄송. 근데 정말 여기의 날선 반응에 대응하기엔 뜬금없는 결을 내세우셨어요) 저라도 뭔가 다른 변을 달아야겠다 싶어서 급히 덧글을 달아봅니다. 아,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있어요. 처절한 기타맨님이 논의의 초점을 비껴나갈 때, 그게 아직 강짜의 수준까지 가지 않았다면, 거기에 대한 피드백은 '우습다''속물근성이다' 하는 조롱이나 비난의 층위가 아닌 '텍스트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사적인 연고를 드러내는 건 미스다''그건 오히려 논의를 방해한다'는 정도의 충고나 의문의 범주에서 오가야하는 거 아닐까요? 나름 강퍅한 사람들, 꼰대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지지 않고 할말 하면서 살아왔는데 오히려 진보넷 블로그에서 맘이 무거워지는 스스로를 발견합니다. 이게 단순히 제 영화에 대한 비판 때문은 아닌 듯 해요.
pps. 살면서 별로 좌파연한 적은 없습니다, 저의 포지셔닝 정도가 딱 중도우파인 듯 해서...... 영화 속 캐릭터가 치는 대사 equal 연출자의 현재진행형 발언으로 생각하시는 건 아니리라고 봐요. 고로, 영재-은하 뿐만 아니라 군대 고참이든 꼬장 부리는 아저씨든 스탭이든 심지어 조선일보든 그렇게 언급된 피사체들의 특성 중 어떤 조롱의 과녁이 되는 부분의 chapter 1 은 제 자신입니다.
전에 한 인터뷰 중 하나.. 인정은 못하셔도 참조는 되실 듯 해서 옮겨오자면..
Q. "실어증에 걸린 후 찾은 의사에게 '사촌 중 조선일보 기자가 있다' 고 영재가 답할 때 객석도 즐거워하고 나도 통쾌했다.
A. 글쎄, 내가 원한 반응은 그게 아니었다. 조선일보를 개인적으로 좋아하진 않지만, 조롱하려는 의미로 그 대사를 집어넣은 것은 아니다. 영재 캐릭터라면 그런 말을 할 것 같은 개연성을 위한 뭐 그런 정도.... ,그 대화를 보고 사람들이 웃을 때는 어떤 '공모하는 의식'이 깔려있다고 본다, 깔깔대면서 '나는 달라' '나는 조선일보 정도는 비웃는 정치적 올바름이 있지' 이런 거.. 그런 건 사실 진짜 세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 장면은 '발언'이 아닌 그냥 '묘사'다. 사람들의 반응은 의외고, 웃으니까 좋긴 한데, 원하던 반응은 아니다.
지하철 장면 관련해서는 제가 실제로 경험한 에피소드. 실제상황에서 저는 고참이었고 영재였고 좌석에 앉아있는 은하이기도 했지요. 그 체험들에서의 권력관계를 다른 식으로 꼬아놓은 건데요, 언제 기회되면 들려주고 싶군요.
휴, 잘은 모르지만, 급히 가지 못하고 느리게 느리게 가더라도 맞는 길을 가려는 게 진보라고 생각해요. 저한테도 필요한 덕목이고, 어쩌면 (제발 빈정으로 생각하지 마시길) 여러분한테도 필요한 덕목 아닌가 싶습니다. 정치적으로 올바름 내지 진보는 사람들에게 위협적으로 디밀 판결문이 아니라 '혼자만 잘살면 무슨 재미니' 하며 유혹하는 손짓이어야 한다고 봐요. 저도 좀 더 올바르게 유혹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러므로, 여러분에게도 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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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들 읽고 ㅎㅎ 이럴때 흘러나오는 말 아 쪽팔려 ㅡ.ㅡ;; 공부가 더 필요하거나~ 반성이 필요하거나~ 에잇~ 초점 어긋난거 백배천배만배 인정합다, 근데 전 논리나 논쟁같은거는 잼병이라구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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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ock // 작정한 비호감이라니요. 감독이라는 사람이 자기 영화를 비판한 사람에게 한다는 생각이라는 게, 그래서 자기 영화를 비판한 사람에게 한다는 말이라는 게 겨우 이것밖에 안되는군요. 실망스럽습니다. 제가 [은하해방전선]을 보기 전부터, 이 영화가 구릴 것 같다고 예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이 글에 제일 처음에 올려놓은 포스터때문이었습니다. 은하에게 항변하는 듯한 저 자세. 게다가 영재는 포스터의 화면을 가득메울정도로 큰데, 은하는 영재의 아이템인 듯 매우매우 작게 그려져 있죠. 저는 이 포스터를 보고, 영재라는 남성이 자기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기 위한, 그래서 관객에게 동정표를 얻기 위한 영화일 거라고 예상했고, 따라서 좋지 않은 영화일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어쨌든 영재도 남성이고, 남성적인 시각으로 자신의 연애를 바라보고 있을 거니까요. 그런데, 제가 알고 있는 몇몇 사람들은 이 영화가 괜찮고, 재밌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느낀 재밌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확인하고자 영화를 봤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본 결과, 내가 처음에 예상했던 것이 어느 정도는 맞았다는 판단을 하게 되더군요. 물론 영화를 보고 나서, 파시즘에 대한 생각을 추가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감독님께서 제 글을 통해서 보신 작정한 비호감이겠군요. 재밌어요. 저의 의견을 꼴랑 "작정한 비호감"으로 치부해버리는 센스. 이런 식으로 말할거면, 영화 포스터나 똑바로 만들고 말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싶네요. 저 같은 사람이 이런 비호감을 작정하지 않도록 말이죠.제가 좋아하는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스타크래프트 중계를 볼 때, 임요환선수가 나오는 경기들이 있죠. 요즘은 예전보다는 덜한편인데, 예전에는 임요환선수가 나오는 경기들에서는 편파중계의 극치를 볼 수 있었죠. 물론 편파중계라고 해서 임요환선수를 칭찬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식이라면 더 양호한 셈이죠. 임요환 선수가 이기고 있는 게임에서는 "아, 임요환 선수 대단해요."와 같은 임요환선수에 대한 찬양멘트들이 나오는데, 임요환 선수가 불리한 게임에서는 "임요환 선수, 대응이 늦어요.", "지금 상황은 천하의 임요환이라도 막기 어렵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죠. 분명히 해설진은 임요환 선수를 꾸짖고 있지만, 어쨌든 임요환 선수의 편에 서서 중계를 하는 것은 확실하죠. 중계를 중간부터 듣기만 하면, 상대선수가 누군지 알기도 힘들 정도죠.
제가 이 글에서 [은하해방전선]을 비판한 결정적인 지점은 "그래서 은하는 어디로 갔느냐"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감독님의 덧글에서 느껴지는 문제의식은 영재를 옹호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로 보이는군요. 그래서 영재의 머리를 쓰다듬는 건지, 쥐어박는 건지... 정도는 분간이 가게 만들었다는 점을 말하고 있죠. 뭔가 제 글을 잘못 읽으셨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는 "은하가 어디로 갔냐"고 물은 건데, 감독님의 이 덧글에서조차도 은하는 어디로 갔는지에 대한 논의가 단 한 줄도 없으니까요. E스포츠에서 임요환선수를 칭찬하든, 꾸짖든 결국 임요환 선수 이야기만 하는 게 편파중계였던 것처럼, [은하해방전선]에서 영재를 쓰다듬든지, 꾸짖든지, 결국은 영재 이야기만 나오게 되는 것 역시 편파적인 영화라는 겁니다. 꿀밤의 주체와 과녁은 이 문제를 먼저 정리한 뒤에 봐야 하는 것이지요. 결국 영재와 은하의 관계에서 감독님은 영재의 입장만을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영재를 나무라든 칭찬하든 그것 역시 관객들이 판단하겠지만, 그 사고의 틀 속에서 "은하는 이미 외계로 보내졌다"는 점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둘 중에 하나겠죠. 이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거나, 아니면 매우 고의적으로 영화를 이렇게 만들었거나... 어느 쪽이든 결과는 똑같습니다. 이미 영화는 완성되었기 때문이죠.
제가 감독님에게 "파시스트"라는 4음절의 단어를 붙인 것은 결코 "기무라레이"라는 캐릭터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캐릭터는 파시즘하고 별로 상관이 없죠. 파시즘과 일본의 우익 사이의 연결고리에 주목하시는 것 역시 파시즘에 대한 고등학교 교과서적 이해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에트, 맥카시... 이런 걸 연상하셨다니, 더 할말이 없군요.)
저는 영재가 파시스트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기무라레이가 파시스트라고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직, 윤성호감독님이 파시스트라고 했을 뿐입니다. 영재나 기무라레이가 파시스트 캐릭터인 게 아니라, 윤성호감독님이 이런 영화를 통해서 관객을 만나는 것 자체가 파시즘에 가깝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처절한기타맨님께 추천해드린 "마리오와 마술사"라는 소설 속의 치폴라가 윤성호감독님인 셈이죠. 관객을 끊임없이 웃게 하지만, 뭔가 뒤가 구리고, 결정적으로 잘 짜여진 관객들의 웃음의 판에서 누군가는 배제당하게끔 만들어진 치폴라의 공연과 [은하해방전선]. 윤성호감독님이 파시스트라고 규정당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언어유희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과정과 누군가를 배제하는 과정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그 사실. 이게 파시즘의 구조와 동일합니다. 윤성호감독님은 [은하해방전선]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이러한 결과를 이끌어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를 통해서 감독님을 "파시스트"라고 규정했을 뿐입니다.
은하를 외계로 보낸다는 것은 영재가 은하를 외계로 보냈다는 것이 아니라, 감독님이 관객들로하여금 은하라는 캐릭터에 몰입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뭐, 주인공이 아니라서 그렇다... 라고 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만, 이 영화는 영재와 은하의 연애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주된 소재로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은하는 영재의 시선을 거쳐서 나오는 피상적인 사람으로만 그려지고 있을 뿐이죠. 감독님께서는 은하가 영재를 떠난 이후의 행보에 대해서는 구획지어서는 안된다고 하셨는데, 그 말은 동의합니다. 은하가 영재를 떠난 이후의 행보에 대해서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은하가 영재를 떠나게 되는 (이미 지난) 과정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시간적인 흐름에 대한 변화를 꾀하면서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는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고, 그런 방식으로 영재와 은하와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죠. 물론 이것 역시 철저하게 영재의 시점이죠. 그리고 결론은 은하는 영재에게서 떠났다... 라는 사실로만 그려지고 있지요. 그래서 은하의 지난 고민들은 다 어디로 갔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결국 [은하해방전선]에서는 그런 것은 배제당해야 했다는 이야기겠죠. 물론 영화가 이렇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이 영화가 철저하게 영재의 시점으로만 그려지는 계획을 갖고 만들어진 영화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두가지의 판단이 가능한데, 하나는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기에는 영재의 시점으로만 고집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영재의 시점으로만 그리려고 하는 영화 속 소재로 연애의 문제는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이죠.
그리고 제가 책을 소개한 것은 처절한기타맨님께서 물어보셨기 때문에 소개했을 뿐입니다. 골려먹겠다고 말씀하신 것도 처절한기타맨님이셨죠. 저는 감독님을 사적으로는 모르는데, 제가 어찌 감독님을 골려먹겠습니까? 그저 영화를 본 것만 가지고 판단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감독님께서는 은근히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끌려나가는 질문자에 대한 이야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저는 어떤 해석이든지 개연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서는 끌어내는 주체가 누구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끌어내는 상황이 유도하는 영화속 감정의 한계를 말하고 싶군요. 너무 진지하면 끌려나간다는 것보다, 저렇게 울먹이는 행동을 GV중의 관객, 또는 실제의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에게 끌려나갈만한 것인양 그려놓은 감독님의 정상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장면을 영화속의 다른 장면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이, 이제와서 끌어내는 주체가 연출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연출자가 아니라 다른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모호한 대답을 내놓으시는 건, 자기 영화에 대한 책임회피로밖에 보이지 않는군요. 저는 그 장면이 관객들의 머릿속에 그나마 남아 있을 진지함에 대한 잔상을 극장 밖으로 끌어내버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우 결정적인 장면이었죠.
조선일보와 관련된 인터뷰를 옮겨오신 부분에 대해서는, 원하던 반응이 아니었다는 말까지는 인정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웃을 때 어떤 "공모하는 의식"이 깔려있다는 점도 동의합니다. 저는 바로 그 "공모하는 의식"때문에, 이 부분이 "무임승차한 좌파"라는 말과 더불어서, 관객에게 "당신도 구려"라고 말하고 있다고 해석했죠. 그 "공모하는 의식"이 형성된 배경에는 [은하해방전선]이 독립영화로 취급받는 것과, 대중 사이에 형성된 독립영화에 대한 기대치 같은 것들이 있었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어요.
그런데, "발언"이 아닌 그냥 "묘사"라는 말... "발언"과 "묘사"는 영화속에서 그렇게 쉽게 n분법적으로 구분이 가능한 것이었나요?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영화를 제작하는 입장에서 고민한 것이 아니므로 잘은 모르겠지만, 제가 지금까지 겪은 대중앞에 내놓는 그 어떤 작품도 "발언"과 "묘사"를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것 없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 경험이 부족한 탓인지도 모르겠군요.
저는 "무임승차한 좌파"라는 말도, 감독님께서 자신을 "중도우파"라고 한 것도, 또 "진보"에 대해서 생각하시는 부분을 말씀하신 것도 관념의 판결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말들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영화에 대해서 굳이 "파시즘"이라는 말을 쓴 건, 이 영화에 대한 해석이 분명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무조건 감독님을 비난만하려고 쓴 욕설이 아니라, 파시즘이 성립하는 원리가 이 영화를 그대로 관통하고 있기 때문에 적용한 현실적인 판단일 뿐입니다. 그 근거는 이미 이 글과 덧글에서 이야기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재론하지 않겠습니다.
처절한기타맨 // 논쟁하다보니까, 서로 감정이 많이 상한 것 같아요. 뭔가 인정하시니까,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드는군요. 다음부터는 재밌는 이야기 많이 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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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이 또 달릴까 궁금했는데 역시나~ 예상대로 까칠한~ 방금 꽤 써서 올렸는데 홀라당 날림 에구 이 방정맞은 손목아지~.~;; 사적인 연고를 들어낸 본인의 글은 감독 본인에게도 보탬 하나도 안되는걸로 판명 닭짓한거 잘 알고 있으니 그건 그렇고, 어째든 전 감정은 별로 안 상했어요. 수박 겉핥기 인상 비평이나 얄팍한 주례사 비평 싫어하고 호불호 확실하게 드러내는것 좋아하지만 대화하는 방식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것을 이야기하는 방식에서 이 영화 쓰레기야 감독은 파시스트야 시점은 편파적이야...라고 딱 규정지어놓고 말하는 것 즉 다른 여지를 이야기할 틈을 주지 않아서 그게 저를 은하해방전선에 뛰어들게한듯싶네요. 영화를 볼때 머리로 논리 따져 보기도 하지만 가슴으로 감정 따져 보기도 하지요. 갠적인 경험(사적인거라 과시하는거라고 할까봐 후덜덜ㅜ.ㅜ;;) 몇번 안되지만 작업하고 GV하면서 내가 생각하지못한 부분을 미스 포인트를 관객들이 톡 쏘듯 짚어줄때 식은땀 나기도 하지만 즐겁고 고맙거든요. 오독이건 과도한 해석이건 관객이랑 작업자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결과물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과 아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글을 쓴 셈입니다. 자신의 해석을 100% 신봉하는것이 나쁘진 않지만 때론 틀릴수도 그리고 다를수도 있다는 생각은 가끔 해보았스면 하네요. 전 100%는 없다고 생각하니깐요. 머리로는 이해 안되도 가슴으로 이해 되는게 있더군요. 제 온전한 생각입니다.그리고 저한테 미안해 할 필요는 전혀 없어요. 스스로 판 무덤은 잘 아니깐 그만치 찌질하다고 구리다고 욕 먹은거로 충분하니깐요. ㅎㅎ
아래의 댓글 읽고 떠오른 단어 -> 영재추방전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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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기타맨 // 제가 규정지은거는 인정합니다. 하지만, 저는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그런 규정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게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이야기를 할 여지는 제가 주는 게 아니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은 분들이 개연성을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결과물에 대하여 최소한의 애정도 가지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이 부분은 처절한기타맨님과 제가 가진 결정적인 입장의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영재가 가진 왜곡된 피해의식이 너무나 잘 이해됩니다. 저도 살아오면서 그런 걸 느낀 때가 꽤 있었습니다. 저도 그 느낌이 뭔지는 아는 사람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제가 유별나게 거리감을 두려고 노력하는 것은, 왜곡된 피해의식에 젖어서 살았던 제 삶을 조금이라도 후회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에게 [은하해방전선]은 차라리 그런 설정을 이해할 수 없으면 더 편한 영화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영재에게 바랐던 것은 은하와의 관계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달라질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이 영화를 보는 동안에 그나마 붙잡고 있었던 최소한의 애정이었고, 마지막에 자막이 올라갈 때쯤에는 그 애정마저도 초라해지더군요. 영화속에서 소통의 가능성은 단 1%도 발견할 수 없었으니까요. 내가 마치 은하가 된 기분이었죠. 이 영화를 보면서 영재를 통하여 느낀 저의 감정은 이런 것이었습니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