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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준비 2호] 더블딥 우려?
이미 자본주의 체제위기!
- 이민수
지난 8월 초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이 있고 난 후 다시 ‘더블딥 우려’에 대한 기사들이 언론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2010년 중반에도 한 동안 떠들썩했다가 다시 잠복했었던 ‘더블딥 우려’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경기재침체라고 번역하는 더블딥(double dip)은 불황(또는 ‘경기침체’)으로부터 짧은 회복기가 있은 뒤 곧바로 다시 불황으로 빠져드는 현상을 말한다.

통상 자본가들이 기대하는 대로라면 경기침체 끝에 회복기를 거쳐 호황 국면으로 가야 되는 것인데 이번 경우에는 이런 ‘정상적인’ 순환이 작동하지 않고 잠시 회복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다시 불황에 빠져드는 형국이다 보니 당혹스럽고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막대한 천문학적 재정을 공황구제/ 불황타개를 위해 쏟아 부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이전 불황/공황 때는 약발이 있었던 이 같은 경기부양책이 이번에는 전혀 듣지 않으니 말이다.
미약하고 짧은 회복
이는 2008년에 시작한 경제위기가 통상 7-10년마다 되풀이되는 순환적 위기(주기적 공황)를 넘어 다른 유형의 위기가 작동하기 시작한 것임을 의미한다. 이 위기는 세계자본주의 체제 위기이다. 이 위기 속에서 세계경제는 극심한 수축과 정체가 장기화하고, 그 사이에 간간이 짧고 미약한 회복기가 끼어드는 양상을 보일 것이다. 1973년 이래 구조적인 과잉축적 위기를 부르주아지가 세계화 전략으로 돌파하려다가 오히려 더 가중시키고 마침내 2008년 금융공황으로 시작된 이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적인’ 위기는 동일하게 역사적인 규모로의 자본 파괴에 의해, 그리고 세계의 잉여가치 원천과 원료, 시장을 둘러싼 제국주의 간 세계 재분할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위기이다. 우리 앞에 ‘야만이냐 사회주의냐’를 제기하는 위기인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자본가들이 ‘우려’해야 할 것은 더블딥 정도가 아니라 체제의 존망이다. ‘더블딥’이라는 자본가의 경제용어를 가지고 말하더라도 이미 ‘우려’가 아니라 각종 경기지표 상의 하강을 보이고 있는 올해 2011년 2/4분기 이래로 ‘현실’이 되었다. 2009년 중반부터 세계 자본가들은 경기침체가 이제 바닥을 치고 회복기에 들어섰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2010년 초반에 와서는 완연한 회복세를 타고 있다면서 경기부양책을 거두어들일 ‘출구전략’ 시점을 놓고 자기들 간에 행복한 논란을 벌이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2010년 중반부터는 다시 ‘더블딥 우려’가 제기되어 하반기까지 계속 논쟁이 되다가 연말 쯤 쑥 들어갔다. 그러던 것이 이번에 미국 신용등급이 강등되고 경기지표가 예상을 넘는 하향세로 나타나자 다시 불거진 것이다. 그만큼 불황으로부터의 회복이 미약하고 불안정하기 때문에 도통 이 ‘회복’이란 게 미덥지가 않아 이런 ‘더블딥 우려’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체제위기와 경제회복
자본주의 체제 위기라고 해서 어떤 회복이나 경기 호전도 있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경기 분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절충주의는 경계해야 하겠지만, 자본주의 체제 위기와 경제회복은 모순되며 양립할 수 없다는 식의 교조적인 도식주의적 입장은 맑스주의적 위기 분석과 아무 관계도 없다. 이 글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중심부 나라들에서 2009년 하반기부터 진행된 1년여 동안의 이 짧은 회복기의 특징들을 검토하고자 한다. 이러한 검토를 통해 더블딥이 왜 필연적인지, 그리고 이와 함께 현 위기가 어떤 종류의 위기인지를 보다 명확히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2009년 9월 미국 피츠버그에 모인 G20 ‘정상’들은 세계경제 여건이 개선되고 있다고 선언했다. 신문들은 경제회복에 대한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그러나 동시에 경제전문가들과 자본가들과 정치가들은 여전히 불확실성에 사로잡혀 불안을 떨치지 못했다. 경제회복이 되고 있다면 다시 일자리가 늘어나야 하고 이윤이 상승하고 자본주의 체제의 위신이 회복되어야 하는데 아직 분명하게 ‘그렇다’라고 확언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회복이 미약하고 매우 불안정해 보였다.
한편으론 경기지표들과 수치들로 볼 때 산업 순환주기가 거의 바닥을 치고 있는 것 같고 상승 국면이 지평선 위에 떠오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회복이 더디고 너무 완만할 것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인플레와 함께 심지어 제2차 침체(즉 ‘더블딥’ 또는 ‘W’자 형 불황)로 빠져들 강력한 위험성을 보여주는 지표들도 널려 있었다.
안정화 조짐들
2009년 4월 이래 체제의 안정화 기미들이 나타났는데 자본가들이 이로부터 자신감을 찾기 시작했다. 한 달 전인 2009년 3월에 경제수치들은 세계가 1930년대 이래 가장 동시적으로 최악의 침체에 들어갔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직후 4월과 7월 사이에 자본가들은 그들의 주식과 증권의 가치가 급격히 회복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8월-9월 초에 다시 하락하기 시작했지만). 실업률은 그 어느 것보다 경기변동을 잘 보여주는 지표이다. 미국에서 2009년 첫 세 달 동안 월별 일자리 감소분은 평균 691,000 개였다. 그러나 8월에는 이것이 민간 부문에서 298,000개(근 1년 동안 가장 낮은 수치)로 낮아졌다.
미국에서 실업률이 계속 증가하여 10%에 육박했지만 일자리 감소 속도는 완만해 지고 있었던 것이다. 투자를 유치하려고 하는 사장들에게는 희소식이지만, 6월부터 8월까지 실직으로 생존권을 박탈당한 백만 명의 사람들, 또는 2009년 초부터 따지면, 거리로 내몰린 450만 명의 미국인들에게는 별로 반가운 소식도 아니다.
일자리 감소 폭이 줄어들고 있고 어렴풋이 회복의 조짐들이 나타난 것은 미국만이 아니었다. 2009년 여름에 부르주아 언론들은 프랑스와 독일과 일본이 모두 두 달 연속 GDP 성장을 기록했다면서 “불황에서 빠져나왔다”고 의기양양해 했다. 중국도 2006년 및 2007년 11-12%의 경제성장을 보였던 것이 2008년에 들어와 급격히 하강하면서 2천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세계 공황의 타격으로 정리해고를 당했었는데, 2009년 9월에 인구 증가 대비 적정 GDP 수준인 8% 성장률로 복귀하였다.
위기가 계속되다
이런 회복 기미들에도 불구하고 왜 자본가들은 그들의 체제가 지속가능한 성장과 수익성을 되찾는 전망에 대해서 확신을 못하고 계속 그렇게 불안해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2008년 금융위기의 효과가 전혀 잦아들고 있지 않다는 것, 회복을 다시 끌어내릴 기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전 세계 신용경색으로 은행들이 기업들에 대한 대출을 모두 끊었다. 지급불능에 처한 은행들에 역사적으로 전례 없는 천문학적 구제금융 기금을 각국 정부들이 쏟아 부었는데도 여전히 은행들은 기업들에게 대출 창구를 열지 않았다. 왜? 기업들이 매우 낮은 수익 실적을 보여서 대출을 갚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투자가 급감하고, 이에 따라 경기회복을 떠받치는 데 필요한 자본 스톡이 극히 부족했다.
기업들이 지출을 감축하고 파산함에 따라 대량해고가 한 동안 지속했다. 미국 공식 실업률은 10% 아래였지만, 실망실업자와 파트타임 노동자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각각 10%와 16.5%에 육박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소비할 현금을 가진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식료품과 기타 소비재 판매는 계속 감소했다. 이것은 다시 경제에 부정적인 연쇄효과를 일으켜 정체의 악순환을 가져왔다.

0.8% 성장으로 불황에서 벗어났다고 보고된, 당시 세계 2위 경제대국 일본에서도 실업률은 2009년 9월에 5.7%에 달했고, 2008년 9월 이래 백만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실직으로 내몰렸다.
국가부채가 치솟다
회복이 고통스럽고 느릴 것임을 암시하는 또 하나의 중대한 요인이 있다. 공공재정의 위기이다. 경기하강은 세금으로 국고에 들어오는 돈이 급감하고, 실업수당으로 더 많은 돈이 지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와 동시에 은행들에 대한 수조 달러의 구제금융으로 인해 각국 정부들이 엄청난 빚을 걸머지게 되었다. 경기부양을 위해 쏟아부은 기금 또한 정부 부채를 더욱 늘렸다. 은행들이 악성 대출로 입은 손실을 어디서나 한결같이 정부들이 떠안았다. 그리고나서 이제 이 부채를 노동계급 납세자들에게 전가하는 데서도 정부들은 일치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재정적자를 빌미로 의료와 교육 등 공공서비스 지출 삭감에 착수했다. 이런 식으로 수백,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더욱 빈곤해짐에 따라 그들이 소비할 돈은 더욱 줄어들고 이것은 다시 침체 추세를 가중시켰다.
인플레, 디플레, 침체
반면 정부들이 이러한 복지 삭감과 긴축을 충분히 실시하지 않을 경우, 혹은 노동자계급의 저항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저지될 경우 공공재정 위기는 통화 가치 하락을 강제할 것이다. 국제 외환시장에서 해당 나라의 통화 투매가 벌어질 것이다. 채권시장, 즉 각국 정부들에 자금을 빌려주는 국제 금융자본가들은 삭감과 긴축을 제대로 실시하지 못하는 정부들한테는 인플레를 일으켜 징벌을 할 것이다.
세계경제 공황을 예견해서 유명해진 누리엘 루비니 교수가 다음과 같이 지적한 것은 적절하다.
“정책결정자들은 해도 욕먹고 안 해도 욕먹는다. 만일 그들이 대규모 재정적자를 심각하게 여겨 세금을 거두고 지출을 삭감하면 그들은 경제회복을 손상시키고 다시 경제를 스태그-디플레이션(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으로 빠뜨릴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대규모 재정적자를 유지하면, 채권시장은 정책결정자들을 징벌할 것이다. 그러면 인플레 기대심리가 솟구칠 것이고 채권 금리가 급격히 치솟아 스태그플레이션을 가져올 것이다.”
더욱이, 회복의 기미가 일단 뚜렷해지면 은행과 금융사들 주위에 어슬렁거리던 잉여 자금이 저평가된 자산들과 기업들을 포착해내서 우르르 달려들 것이다. 이것은 자산 가격을 다투어 올리게 만들 것이고, 그 결과 훨씬 더 급격한 인플레를 가져올 것이다. 2008년에 전 세계적으로 폭동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 석유와 식량, 원자재 가격 급등을 재연시킬 것이다.
이와 같이 여기에는 두 가지 시나리오가 존재한다. 정부의 지출 삭감과 긴축정책이 노동자 민중들을 궁핍화시키고 소비자들의 지출 능력을 대거 저하시키거나, 아니면 인플레가 화폐 가치를 떨어뜨려 노동자 민중들을 궁핍화시키고 세계경제를 더 한층 불안정 상태로 몰아넣는 것이다. 단명한 회복기가 끝난 2011년 현재 이 두 가지 시나리오가 함께 작동하고 있다.
공황 - 정체- 회복 - 호황 - 공황
맑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는 약 10년 주기로 반복되는 산업 순환 패턴을 밟는다고 말했다. 하나의 순환은 공황으로 시작하여 정체, 회복, 호황 국면들을 거쳐 다시 공황으로 끝난다. 부르주아 경제학자들과는 달리 맑스주의자들은 공황과 정체가 정상적인 발전으로부터 궤도 이탈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에 내재적인 것이며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으로부터 비롯하는 피할 수 없는 부산물이라고 주장한다.
공황의 근본 원인은 자본주의 자체에 내재하는 이윤율 저하 경향이다. 생산적 경제부문에서 투자에서 오는 수익성이 하락하면 자본가들은 온갖 형태의 금융상품 속으로 돈을 쏟아 붓는다. 그러나 결국 은행과 금융업체들은 이윤율이 하락하면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대출을 중지한다. 불황이 닥치면서 보유하고 있던 채권과 금융상품들이 모두 허구적 가치로 드러나 버린다. 신용경색이 뒤따르고 증시가 곤두박질치며 은행들이 파산한다.
생산적 부문에서 수익성을 못 찾아 투자하지 못하고 쌓여 있는 과잉 자본의 존재를 맑스는 “자본의 과잉축적”이라고 불렀다. 이것을 바로 잡으려는 시도가 말하자면 공황이다. 이 잉여 자본을 파괴함으로써 다시 경제회복을 도모하는 것이다. 과잉자본의 파괴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은행 및 기업 도산, 대량 정리해고, 대중의 궁핍화,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 파괴로 나타난다.
교훈
두 가지 교훈을 오늘의 경제위기로부터 끌어내야 한다. 첫 번째는 경제회복이 우리의 일자리와 생존권을 다시 구해줄 것이므로 경제회복이 오기를 앉아서 기다리면 된다는 생각은 환상이라는 것이다. 회복은 오더라도 미약하고 불안정할 것이며 여전히 높은 실업률을 유지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강력한 회복이 온다면 그것은 우리들의 일자리와 임금과 복지와 생존권이 파괴된 폐허 위에서만 올 것이다.

두 번째 교훈은 경제위기가 정부의 나쁜 정책이나 은행과 금융업체들의 “탐욕”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본성 그 자체에 의해 일어난다. 그리고 이 체제는 바꿀 수 있다. 민주적으로 계획된 경제에 기반한 합리적 체체로 대체시킬 수 있다.
결론은 간단하다. 노동자계급은 자본가들이 자신들이 만든 위기를 전가시키려는 모든 시도에 맞서 저항해야 한다. 그리고 나아가 이 저항을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정치적 도전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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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정해놓고 수개월동안 매일 폭격을 퍼붓고 수많은 인민을 학살하는 제국주의 군대!!반군이라 불리는 제국주의의 앞잡이들(그들은 대게 cia를 비롯한 제국군대의 첩자들이다)을 혁명군으로 포장하는 제국주의 언론들!!!
이들의 속임수에 꼭둑각시가 되어 제국주의나팔수를 자임하는 한국의 자칭 사회주의자들..!
제국주의군대와 첩자들과 그들의 선전선동에 놀아나는 덜떨어진 사회주의자들에 대항하여...
분노하는 인민들에게 병기를 나누어주고 어렵게 투쟁전선을 사수하는 가다피 반제진보정권...!
북아프리카와 중동 어느지역에서 지금 리비아와 같은 제국주의국가들과의 직접(아니 일방적인 공습)대결이 펼쳐지고 있는가?
석유자원을 노리는 제국주의국가의 무차별공습과 첩자들의 암살과 학살로 처참하게 쓰러져간 리비아 인민들과 불타는 깃발은 누구로부터 저주받고 있는가?
....ㅉ..
트로츠키주의자들 답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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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트로츠키주의적인 입장에서 쓰여진 글이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글에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카다피를 반제진보정권으로 규정하는 황당한 생각에도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자본주의 쇠퇴기에 모든 정권은 제국주의의 일부일 뿐이며, 민족해방 투쟁은 경쟁하는 제국주의 블록들 사이에서 지속적인 분쟁 속의 한 구성요소에 불과하고, 이때 노동자들과 농부들은 그들이 강제로 함여하든 자발적으로 참여하든 단지 총알받이 역할을 할 뿐입니다. 현재 리비아의 상황은 제국주의적 지배자를 다른 제국주의 지배자로 대치하는 것일 뿐입니다.
지금 리비아에 필요한 것은 오직 노동자평의회 권력과 그것의 가장 급진적인 일부인 노동자혁명당입니다.
가칭)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의 모든 구성원이 트로츠키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처럼 <혁명>을 구독하며 가칭)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을 지지하는 이들이 모두 트로츠키주의를 지지하는 것도 아니구요. 오히려 저는 트로츠키주의가 자본주의 좌파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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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들 논리대로라면 그들 자신의 규정에 따라 북에 대한 미국 등의 공격도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겠군요관리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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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누가 적인가' 명의 댓글과 '가칭)...지지자' 명의 댓글에 대해 아래 글을 참조할 것을 권합니다. 아래 글은 2011년 4월 당시 사노위 의견그룹 동지들이 이끌었던 사노위 서울지역위 온라인 정치신문 <사회주의자 통신>에 실렸던 글입니다. 위의 '왜 사회주의자들은 리비아혁명을 지지해야 하는가' 글과 궤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이 글까지 검토해서 체계적인 논쟁을 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댓글 다신 두 동지의 적극적인 논쟁 기고를 당부드립니다.- 아래 -
[리비아혁명과 제국주의] 카다피를 방어하라고?
민주당 같은 자본가 정치세력과 손잡고 민주대연합을 이루기 위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만신창이로 만드는데 앞장 선 노동운동 내 소부르주아 민족주의 세력 일부는 현재 리비아 혁명에 반대하여 카다피를 방어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카다피가 반제국주의 투사라는 것이다. 반면 지금 카다피에 반대하여 떨쳐 일어선 리비아 봉기세력은 제국주의의 사주를 받고 있는 세력이라는 것이다.
‘반제 반미’가 최고의 잣대인 이들 소부르주아 민족주의 세력이 베네주엘라의 차베스와 마찬가지로 리비아 혁명에 반대하여 카다피 방어 입장을 취하는 것은 그들의 계급적· 정치적 본질로 볼 때 그리 낯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전위당 건설을 주장하며 맑스-레닌주의를 자처하는 세력이 이러한 소부르주아 민족주의 세력에 놀아나서 리비아 봉기세력을 반동세력이라 지칭하고, 카다피를 방어해야 한다고 할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노동자정치협회(이하 노정협)가 바로 그러한데 이들은 “지금 리비아에 제국주의가 군사침공을 하고 있는 상황과 카다피 반군들의 반동주의적 성격들이 분명하게 폭로되어 정세가 일변한 상황에서는 카다피 방어노선을 견지하는 것이 올바른 입장”(노정신 73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리비아 봉기세력을 지지하고 차베스의 카다피 방어를 비판하는 남한의 사회주의자들을 “제국주의에 놀아나는 세력들”이라며, 다음과 같이 비난하고 있다.
“리비아의 ‘무장한 노동자 민중들’의 ‘무장’한 형태만 보았지 ‘무장’의 내용, 즉 무장반란군들의 계급구성, 요구, 목표는 외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제국주의의 이해에 따라 춤추게 되었다. 저들은 차베스는 물론이고 쿠바조차도 ‘가짜 사회주의’라고 말하면서 리비아 침공을 신중하게 반대하는 진보적 정권들마저도 규탄하고 있다.”
리비아 혁명은 튀니지, 이집트 혁명의 연속선상에 있는 혁명이다. 지금 계속해서 예멘, 시리아, 바레인, 사우디 등지로 확산되고 있는 중동 혁명, 아랍권 혁명이라는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 이 아랍권 혁명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혁명이다. 독재와 폭정에 맞서 민중들이 떨쳐일어선 것이다. 또한 만연한 실업과 물가폭등 같은 경제위기의 고통으로 인한 불만이 폭발한 것이기도 하다.
리비아에서 애초 민중들의 시위와 항쟁은, 이집트나 튀니지와는 달리 초장부터 카다피 정권의 무력 학살로 인해 내전으로 발전하였다. 무장반란군(‘반군’)의 기층은 노동자, 청년층, 빈민들이며, 이들이 지금 카다피 정부군과 일선에서 대치 중에 있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한편 반군의 상층부에는 카다피 정권에서 넘어온 각료들과 장성들, 친서방 부르주아 정치인들도 존재하며 이들이 벵가지에 있는 과도국가평의회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리비아 혁명을 카다피 축출에 제한시키려 하고 있고, 서방의 개입을 적극 환영하고 있다. 반면 기층의 노동자와 혁명적 청년층은 카다피 타도를 넘어 보다 급진적인 사회경제적 변화를 갈망하고 있고 서방의 개입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이들의 요구와 목표 또한 이집트, 튀지니에서 거리에 나선 노동자 민중들이 외친 것과 동일한 ‘독재 타도’이며, “생존권 쟁취”라는 것도 이미 다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집트, 튀니지를 넘어 예멘, 시리아, 바레인 등 아랍권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과 그 본질적 성격에서 다르지 않다. 그러나 노정협은 리비아 반란의 상층부 인사들이 서방의 개입을 환영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이 반란이 민주주의혁명이 아니라 반동적 성격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87년 6월항쟁에서 상층부를 이룬 김영삼 김대중이 친미세력이라고 해서 6월항쟁이 민주주의혁명이 아닌 반동적 성격으로 바뀌는가?
맹목적으로 카다피를 지지하는 소부르주아 민족주의 세력들은 리비아에서 봉기가 시작하자 봉기 세력에 대해 친제국주의 또는 친왕정주의라고 규정해버리고, 봉기의 맥락(중동혁명, 아랍혁명의 맥락)과 독재를 타도하고자 하는 민중들의 분명한 열망을 처음부터 무시하였다. 리비아의 봉기자들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물론 동질적이지 않다. 그러나 봉기자들이 이집트에서 타흐리르 광장을 점거한 사람들이나 벤알리를 퇴진시키기 위해 튜니스에서 시위를 벌인 사람들과 그 성격에서 다르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맑스-레닌주의를 자처하는 노정협이 소부르주아 민족주의 세력에게 놀아나서 아랍혁명의 일부로서의 리비아혁명을 부정하고 ‘서방 제국주의 대 반제투사 카다피’의 구도로 몰아가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수치스런 짓이다.
한편 우리는 차베스가 서방의 리비아 침공에 반대하는 것에 대해 문제 삼고 있지 않다. 반대는 당연하다. 그러나 서방 제국주의의 군사 개입 이전부터 이미 차베스는 리비아 봉기세력을 비난하고 카다피를 옹호했는데 우리는 여기서 차베스가 말하는 ‘21세기 사회주의’의 기만성을 지적했을 따름이다. 그러나 노정협은 이런 사실은 애써 못본 체 하고 교묘하게 ‘리비아 침공 반대’가 쟁점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서방 제국주의 세력이 리비아에 개입하는 목적은 그들이 내세우는 ‘인도주의’가 아니라 반군 내 노동자와 혁명적 청년층 대신에 상층부의 친서방 세력이 혁명을 주도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리비아혁명이 급진화 하지 않도록 통제하고 그리하여 리비아 내 서방측의 이권과 영향력을 보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그렇게 해서 리비아혁명이 사우디 등 친미 왕정국가들로 확산되는 것을 막고 중동 및 아랍권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제국주의적 패권과 영향력이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반군의 상층부만이 아니라 기층의 노동자, 청년층도 한때 카다피의 반격으로 궤멸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서방의 개입에 반대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봉기세력 · 반군의 성격이 제국주의의 사주를 받는 세력이나 반동세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 리비아 혁명은 카다피는 물론이고 제국주의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는 노동자, 청년층의 주도 아래 있다. 제국주의 개입에 반대하면서 계속해서 카다피 정부군과의 내전을 수행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한편 서방의 군사개입이 시작하자 카다피를 방어해야 한다며 모든 리비아 사람들이 반제국주의 공동전선을 결성해야 한다는 입장도 나오기 시작했다. 사노위 신문 8호에 실린 “제국주의에 맞서 리비아를 방어하자!” 기사도 그 중 하나인데, 이 기사는 리비아 노동자계급이 "카다피와 일시적으로 제휴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제국주의의 타겟이 된 자들(여기서는 카다피 정권)에 대해서는 노동자계급이 자동으로 편을 들어야 하나? 현재 놓여 있는 정치적 맥락이나 양측의 전쟁 목표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러나 이 반제 공동전선의 목표가 무엇일 수 있겠는가? 카다피와 리비아 노동자들이 어떤 당면 목표를 공유한다는 것인가?
지금 리비아에서 결정적인 문제는 ‘제국주의자들이 누구를 공격하고 있는가?’가 아니다. ‘리비아 혁명이 카다피 체제를 타도하는 데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카다피와의 공동전선이란 ‘불가능’ 그 자체이다. 물론 리비아에 개입하고 있는 서방 나라들의 노동자 민중들은 개입과 공습에 반대하는 항의와 시위를 전개해야 한다.
북한, 이란에 대해 미 제국주의가 벌이는 전쟁위협 책동에 반대하여 북한, 이란을 방어하는 것과 리비아 상황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지금 리비아를 방어하라는 것은 지금 전개되고 있는 리비아 혁명을 멈춘다는 것을 뜻한다. 만약 리비아 혁명처럼 북한 혁명이나 이란 혁명이 전개되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제국주의에 맞서 북한 이란을 방어하라!’가 아니라 당연히 ‘북한 이란 혁명의 승리!’를 내걸어야 한다.
리비아 내에서 반군을 비롯한 민주주의 혁명세력이 제국주의자들에게 개입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 혁명 세력이 제국주의자들의 반카다피 개입이 낳아 놓은 효과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는 결코 반대하지 않는다. 제국주의 개입과 공습으로 인해 보안군과 용병대 등 카다피의 탄압기구가 약화되었다는 이유로 이 탄압기구에 대한 이제까지의 투쟁을 중지하고 카다피와 제휴해야 할 것인가? 리비아의 반란세력은 어떤 경로로부터 오는 것이든 그들이 거머쥘 수 있는 무기는 그 무엇이든 거머쥐어야 하며, 그럴 자격이 있다. 우리는 이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넘어 우리의 전략은 이집트와 튀니지에 있는 형제자매들이 반란세력의 전투를 도울 수 있도록 사람과 무기로 지원에 나서도록 호소하는 것이다. 나아가 반란세력은 새로운 상황을 이용하여 전투를 밀고 나아가야 한다. 스스로를 보다 효과적인 전투 단위로 조직하여 빼앗긴 도시들을 다시 장악해야 한다.
카다피가 제국주의 침략 위협으로부터 트리폴리를 방어하기 위해 “무기고를 개방하여 인민을 무장시키겠다”고 말한 걸로 보도되고 있다. 카다피가 통제하는 영토 내에서 민주주의혁명의 지지자들은 무기의 즉각 분배와 민중적이고 민주적인 의용군 창설을 요구해야 한다. 제국주의자들이 만약 지상군 공격과 리비아 본토 점령을 시도한다면 이 의용군은 원칙을 분명히 하는 선에서 카다피에 대한 어떠한 정치적 지지도 하지 않은 채 카다피 세력과의 공동전선을 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체의 점령 시도를 패퇴시키고, 의용군들 자신들이 카다피와 그의 체제를 타도할 능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공동전선 전술을 펼칠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이것은 제국주의의 지상군 공격과 리비아 본토 점령 시도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경우를 전제로 해서다.
리비아 혁명은 지금 기로에 섰다. 만일 카다피가 제국주의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이용하여 자기 체제에 대한 지지를 강화하고 반란세력을 약화시킬 수 있게 된다면, 이것은 아랍혁명에 중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시리아와 예멘,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로 혁명의 확산과 이집트, 튀니지에서의 제2 혁명에 당장 어려움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제국주의에 맞서 ‘카다피를 방어하라’거나 ‘카다피와 제휴하라’는 것은 리비아혁명을, 나아가 아랍혁명을 파괴하는 데 일조하는 반동적인 슬로건이다. 카다피 체제 타도와 함께 아랍 전역에서 제국주의 타도와 자본주의 타도를 향해 계속 전진하는 ‘영구혁명’을 통해서만이 리비아를 비롯한 아랍의 인민들이 진정으로 민주주의와 빵과 평등을 찾을 수 있다.
2011년 4월10일
양효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