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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8] ‘변혁정치 모임’을 비롯한 반자본주의 세력 - 투쟁하는 노동자 중심의 대선 전술로 대선투쟁의 경로를 장악해야 한다!

 

‘변혁정치 모임’을 비롯한 반자본주의 세력

 

- 투쟁하는 노동자 중심의 대선 전술로

 

대선투쟁의 경로를 장악해야 한다!

 


 

- 고민택

 

 

[‘변혁정치 모임’을 비롯한 반자본주의 세력과 투쟁하는 노동자 중심의 대선 전술로 대선투쟁의 경로를 장악해야 한... (33.50 KB) 다운받기]

 

  2013년 세계자본주의 위기 국면이 더욱 본격화/첨예화 될 것이 거의 분명한 정세에서 노동자 민중에 대한 국가와 자본의 전면적 공세와 탄압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경제민주화’, ‘재벌 개혁’, ‘복지’ 등은 그러한 공세와 탄압을 가리기 위한 ‘정치적 수사’ 내지 지배계급의 ‘선제 조치’에 불과하다.

 

 

반자본주의 대중투쟁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2012년 대선투쟁은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는 방어적 공세를 통해 2013년 이후 투쟁 진지/거점 구축을 현실화하기 위한 일대 계급전쟁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는 ‘선거혁명’, ‘정권교체’, ‘연립(공동)정부’ 등은 사실상 무장해제를 의미하며 지배계급에 대한 종속을 스스로 자처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 지금 위기에 처한 것은 지배계급이다. 세계자본주의 위기는 일차적으로 명백히 자본의 위기다. 그럼에도 지배계급은 현 위기를 돌파/극복할 수 있는 그 어떤 정치력도 발휘하고 있지 못하며 그러한 현상은 갈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다. 자본의 세계정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국주의 사이의 피 터지는 경쟁과 대립이 난무하고 있다. 세계가 국가로 나뉘어 있는 것은 형식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자본과 노동으로 분할되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아래로부터의 저항과 투쟁이 그 구체적 양상은 다르더라도 점차 반자본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도 바로 그 같은 정세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한국 노동자대중투쟁의 핵심 요구로 등장한 ‘정리해고/비정규직 철폐’ 역시 반자본주의적 성격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같은 성격을 더욱 의식적으로 진전시켜 나가야 한다. 지금 문제의 핵심은 대중의 요구와 투쟁을 집중시킬 수 있는 투쟁 구심, 정치 구심을 형성하는 일이다. 대중의 요구와 투쟁이 산발적, 제한적 차원에서 그치고 있는 결정적 이유도 바로 그러한 투쟁 구심, 정치 구심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을 핑계 삼는 그 어떤 논리도 사실은 이를 은폐하기 위한 것이자, 자신의 무능함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에 불과하다.

 

  2012년 대선투쟁을 전개하는 일차적/기본적 목표와 의미는 반자본주의 대중투쟁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 점을 간과하거나 혹은 추상적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그 어떤 것도 대중을 설득할 수 없으며 대중의 주체적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없다. 야권연대 반대, 투쟁하는 노동자독자후보 완주 등은 이를 위한 절대적 수단인 것이지 그 자체가 별도의 목표일 수 없다. 대선투쟁의 승패는 오직 반자본주의 대중투쟁전선 구축 여하에 달려 있다.

 

 

‘변혁정치모임’을 비롯한 반자본주의 세력이

대선투쟁의 경로를 장악해야 한다.

 

  반자본주의 대중투쟁전선은 현재 투쟁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대중은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무장된 활동가일지라도 정세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정도의 세력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능동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지금 정세는 반자본주의 세력이 능동성/주도성을 발휘할 수 있는 정세다. 그 능동성과 주도성은 일차적으로 정치적 명확함으로부터만 발생할 수 있다. 동요하는 세력은 결코 능동성과 주도성을 발휘할 수 없다.

 

  반자본주의 세력이 대선투쟁의 경로를 장악해야 한다. ‘변혁정치 모임’이 그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 ‘변혁정치 모임’ 이상으로 정치적 집중성을 발휘할 수 있는 단위는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통진당(하나든 둘이든), 민주노총, 진보신당, 연석회의 등은 투쟁 구심, 정치 구심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은 현실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주체로 하는 대선 전술을 절대로 구사할 수 없다. ‘변혁정치 모임’만이 유일하게 그 가능성과 잠재성을 발휘할 수 있다.  특히나 ‘변혁정치 모임’은 열린 구조다. ‘변혁정치 모임’이 투쟁하는 노동자와 가장 긴밀히 결합되어 있다. 이 두 가지면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묶어세울 수 있다. ‘변혁정치 모임’이 명분(대의)과 (투쟁)동력을 쥐고 있다. 대세를 형성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투쟁하는 노동자 중심의 대선 전술을 밀고 나갈 수 있으며 밀고 나가야 하고 성사시킬 수 있다.

 

  이 투쟁하는 노동자 중심의 대선 전술이 성공하려면 일차적으로 현장노동자들의 동의와 주체적 참여를 조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쌍차투쟁, 현대차비정규직투쟁, 공동투쟁단투쟁을 ‘변혁정치 모임’이 책임지고 함께 투쟁해야 한다. ‘변혁정치 모임’에서 이미 이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제 공감을 넘어 실제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투쟁과 정치, 투쟁과 조직을 일치시켜 나가야 한다. 그러한 힘과 신뢰를 먼저 보인다면 수만 투쟁하는 노동자 선거인단을 조직할 수 있다. 그들 투쟁하는 노동자 선거인단은 보수정당은 물론 진보정당 대다수 당원과 같은 수동적 존재가 아니다. 대선투쟁 기간에 대중파업(총파업)을 조직하는 주체로 서는 선거인단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한다면 민주노총 조합원 사이에서조차도 통진당, 민주노총, 진보신당, 연석회의에 비판적인 새로운 동력을 형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변혁정치 모임’으로부터 출발해서 저들 세력을 퇴출, 재편시켜 나갈 수 있다. 단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밀고 나가면 가능한 일이다.  

 

  ‘변혁정치 모임’이 이 같은 계획과 경로를 구체화해서 대중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민주노총 조합원은 물론 미조직, 실업, 청(소)년, 소수자, 배제된 자, 자본의 횡포에 억압당하는 모든 민중들에게 함께 투쟁할 것을 간곡히 호소해야 한다. 대중 자신이 투쟁과 정치와 조직의 주체로 설 수 있는 공간과 길을 열어야 한다. ‘변혁정치 모임’의 임무와 역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이것이 곧 다수파 전략이다. 또한 이것이 곧 대선투쟁의 핵심 전략이다. 나머지 구체적. 세부적 것들도 모두 이 핵심 전략에 따라 정리/관철하면 된다.

 

 

대선투쟁(선거) 강령으로 말해야 한다.

 

  ‘변혁정치 모임’은 9월 9일을 계기로 이미 하나의 공동전선, 공적 기구로 객관화됐다. ‘변혁정치 모임’은 이에 대한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기꺼이 떠안아야 한다. ‘변혁정치 모임’은 ‘당 건설 추진모임’을 결성하기로 사실상 결정했다. 10월 13일은 또 하나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변혁정치 모임’은 모처럼 긍정적 의미에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여기서의 망설임이나 후퇴란 있을 수 없다. 오직 전진하는 것만이 역사와 대중 앞에 책임지는 것이다.

 

  물론 ‘변혁정치 모임’이 최종적으로 어떤 결과/결론을 낳을 것인가는 아직 예정되어 있지 않다. 그만큼 아직은 많은 변수가 가로 놓여 있다. 다만 한 가지는 미리 말할 수 있다. 어떤 결론/결과를 낳던 간에 적어도 운동지형과 대중투쟁의 양상이 ‘변혁정치 모임’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 일차 시험대가 바로 대선투쟁이다. 대선투쟁 조직화 과정과 그 결과에 따라 ‘당 건설’의 일차 향방이 결정되게 되어 있다.

 

  ‘변혁정치 모임’은 이제 좋은 의미에서 ‘공투체’를 넘어섰다. 그러나 ‘변혁정치 모임’은 오히려 이제부터 ‘공투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 다만 ‘변혁정치 모임’이 수행하는 ‘공투체’로서의 역할은 이제까지 보아왔던 ‘공투체’와는 다르며 달라야 한다. ‘당 건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대선투쟁을 경유하는 ‘공투체’이기 때문이다. ‘변혁정치 모임’이 대선투쟁의 경로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투쟁하는 노동자독자후보 완주’만으로는 부족하다. 앞서 말했듯이 이것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투쟁하는 노동자독자후보 완주’ 이 자체가 하나의 내용을 표현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직은 형식이다. 그 내용은 ‘대선투쟁(선거) 강령’으로 제출/제시되어야 한다.

 

  ‘대선투쟁(선거) 강령’은 반자본주의 대중투쟁전선 구축을 위한 나침반이자 지렛대다. ‘대선 투쟁(선거) 강령’은 “자본가 정당과 단절, 야권연대 반대,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립”을 실질화/현실화시키는 중차대한 문제다. 왜 ‘투쟁하는 노동자독자후보 완주’이어야 하는가를 뒷받침 하는 실질적인 근거다. 이 근거를 빼놓거나 확정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투쟁하는 노동자독자후보 완주’ 전술은 전술로서의 정당성을 대중적으로 확인/확정하기 어렵다.

 

  지난 87년 이후, 더 구체적으로는 진보정당 이후의 대선투쟁과 명백히 그 결과 질이 다르며 동시에 후보 전술 없이 투쟁으로 돌파하자는 전술과도 명백히 다르다. ‘선거주의/의회주의’가 잘못됐다는 것을 실물적으로, 경험적으로, 대중적으로, 정치적으로 경험하고 훈련할 수 있는 절호의 계기, 기회다. 조합주의와 개량주의 사이에서 동요하거나 거기에 신물이 난 대중을 다시 호명하고 그들 스스로가 주체로 나서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정치체제를 근접해서 위협하기 위해서는 단지 투쟁의 물리력만이 아니라 투쟁의 정치적 방향과 요구가 또한 그럴 수 있어야 한다. ‘대선 투쟁(선거) 강령’은 단지 선전을 위한 문구가 아니다. 현 정세가 요구하고 있으며 대중이 투쟁 속에서 외치는 투쟁요구와 맞닿아 있어야 한다. 대중추수에 머물러 가지고는 의미가 없으며 추상적 선전으로 빠져들면 대중과 분리될 수밖에 없다. 반자본주의 대중투쟁전선 구축에 부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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