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시안적인 대중의 충동에 호소하고 싶은 정치가들은
실비오 게젤의 거대한 플랜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가 지성이 결여된 작자라면 이 플랜에 황당해할 수도 있다)
그 정치가들은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뭐? 국제무역구조를 개혁하자고? 그리고 돈과 땅을 개혁하자고?
그래 네 말이 다 맞아. 근본적인 원인을 파고든다면 그렇게 해야겠지.
하지만 대중들은 먹고 살기 어려워서 당장 구해달라고 손을 벌리는데,
이 귀머거리들한테 국제무역구조 이런 얘기 해봐야 씨알이나 먹히겠냐고?
지역에 당장 대기업을 유치해서 큰 공장 만들고 일자리 바로 늘려야 하지 않겠냐고?
뭐라고? 대기업이 안 들어올라고 한다고? 왜 그러는데?
땅도 싸게 주고 세금도 줄여줘.
그럼 들어오겠지.
뭐? 기업들이 더 좋은 조건을 요구한다고? 안 그러면 중국이나 베트남으로 갈 거라고?
그러면 중국이나 베트남 수준으로 임금을 떨어뜨리면 되잖아.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들자고.
정규직 줄이고 비정규직 늘리고 임금은 베트남 수준으로 줄이면
기업들은 적어도 베트남으로는 안가겠지..."
물론 그 정치가가 노골적으로 이렇게 이야기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구사하는 정책은 틀림없이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나올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정부와 재벌이 시장을 지배하고
대중은 주도권을 잃게 될 것이다. 모든 측면에서.
각 경제주체의 상호작용이 자연스럽게 유기적으로 엮이는 게 아니라
임의적인 개입으로 뚝딱 만들어지고
그래서 그건 언제든지 뚝딱 사라질 수 있는 그런 거니까.
정부의 개입과 자본의 착취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들은 일상생활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위의 정치가는 좀 다르게 갈 수도 있다
"임금을 떨어뜨리는 건 노동자들이 반대하니까 다른 수를 찾아보자고.
옳지. 대기업들한테 땅이나 세금에서 좀 더 혜택을 많이 주는 거야. 대신 임금은 현 수준으로 유지하고. 뭐? 세수가 부족해지지 않냐고? 그래 맞아. 하지만 괜찮아. 노동자들한테 세금을 더 뜯어내면 되니까. 임금은 안 떨어졌고 세금은 담배같은 상품에 끼여넣는 거지. 그러면 노동자들은 눈치채지 못할 거야."
기업한테 뜯기든지 정부한테 뜯기든지 대중들은 어쨌거나 뜯길 것이다
그래서 우린 정도正道를 걸어야 한다
필자는 경제학계가 진지하게 실비오 게젤의 The Natural Economic Order를 연구해주길 기대한다
학계에서 이 주제를 진지하게 다룰수록 사회유기체social organism의 치유 가능성은 높아진다
학계가 게젤의 독일어 텍스트를 모두 번역연구하고, 그걸 국내정책과 국제외교에 반영한다면 이 병든 세상 전체를 치료하게 될 것이다
의학은 고작 한 번에 1명을 구하지만
경제학은 한 번에 수십억을 구원할 수도 있다
경제학계가 진지하게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