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종파주의 비판
민주당ㆍ개혁주의자들과는 어떠한 타협도 있을 수 없는가
올해 상반기 이명박 정부의 반민주ㆍ반노동 공격에 맞선 투쟁에서 민주당에 대한 비판을 삼가지 않으면서 특정 사안을 놓고 민주당과 전술적으로 제휴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었다.
예컨대 1917년 러시아 혁명 과정에서 우익 장군 코르닐로프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볼셰비키 혁명가들은 부르주아 정부의 수장인 케렌스키와 함께 코르닐로프에 맞섰다.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이 과정에서 “케렌스키를 지지하지 않[고] … 민중에게 케렌스키의 약점과 동요를 지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로츠키도 “케렌스키를 코르닐로프를 맞출 총의 조종대로 사용하자. 케렌스키는 나중에 처리하자”는 입장이었다.
이처럼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으면서, 민주당의 동요와 약점을 지적하면서, 민주당을 이명박을 맞출 ‘총의 조종대’로 이용하는 전술이 필요했다. 그러나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민주당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면서 정치적으로 민주당을 추수하는 인민전선적 동맹을 추구했다.
<레프트21>과 ‘다함께’는 이런 인민전선적 동맹 추구가 이명박의 공격을 막아낼 진정한 동력인 노동자ㆍ민중의 힘과 사기를 떨어뜨리며 이명박 정부가 언론법 날치기 등을 강행할 수 있는 틈을 제공했다고 비판해 왔다.
그런데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이하 사노련)은 이런 인민전선적 동맹뿐 아니라 민주당과의 전술적 제휴를 포함한 어떠한 타협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부르주아지와의 동맹을 … 전술 수준에서까지 일관되게 반대한다.”(
나아가 사노련은 개혁주의 단체들 ― NGO, 한국진보연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 과의 연대마저 사실상 거부한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은 “자본가당과 어울리며 이중대 노릇이나 하는 가짜 노동자당”(
이런 관점에서 사노련은, ‘민주당과 전략적 동맹은 안 되지만 불가피할 때 전술적 제휴는 가능하다’는 ‘다함께’도 비판한다. “[다함께는] ‘민주주의 요구와 반자본주의 요구의 결합’을 이야기하지만, 민주당과의 ‘동맹’ — 일시적이든 상설적이든 — 요구는 이러한 이야기를 모두 공문구로 만든다. 실제로 다함께는 노동자 생산 통제, 정방대 구성, 노동자 정부와 같은 어떠한 반자본주의적 이행 요구도 제출하지 않 … 고 있다”(
“최대강령(전략적 과제)과 당면 투쟁을 분리시키는 … 기회주의가 바로 민주당과의 ‘전술적 제휴’론에 깔려 있는 본질”(
결국, 민주당과는 어떠한 타협도 안 되며, ‘노동자 정부 구성’ 등 최대강령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개혁주의자들과도 절대 타협할 수 없고, 개혁주의자와 연대하는 ‘다함께’는 기회주의라는 게 사노련의 주장이다.
정치적 무능력
혁명적이면서도 누구보다 현실적이었던 레닌은 이처럼 “어떤 것이든 타협 일반의 허용 가능성을 거부하는 것, 그것은 진지하게 고려하기조차 어려운 어리석은 짓”(≪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레닌은 “볼셰비즘의 온 역사가 유연한 대응, 협조, 부르주아 정당을 포함한 다른 정당들과의 타협의 사례로 가득차 있음”을 강조하며 어떠한 타협도 거부하는 것은 “산을 올라가면서 때로는 지그재그로 올라가고, 때로는 되돌아가고, 때로는 일단 선택한 길을 버리고 다른 길을 구하고 하는 일들을 미리 포기해 버리는 것과 완전히 똑같[다]”고 비판한다.
물론 민주당은 자본가 계급에게서 돈ㆍ인력ㆍ자원을 충원하고 따라서 이명박과 근본에서 다르지 않은 정책을 추구하는 자본가 정당이다. 민주당을 추수하는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근본적 변혁이 아니라 자본주의 내에서 점진적 개혁을 추구한다는 한계가 있다. 레닌은 “그러나 이로부터, 이 사람들을 지지하는 것은 혁명을 배신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혁명가들은 혁명을 위해서 이러한 신사양반들에게 어느 정도 의회적인 지지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우리에게 폐물이 된 것을 계급에게 폐물이 된 것으로, 대중들에게 폐물이 된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오늘날 진보와 개혁을 바라는 평범한 사람들이 민주당이 이명박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고 확신하고 있는가? NGO, 한국진보연대, 진보정당 등도 결국은 자본주의 내에서 개혁을 추구하기 때문에 민주당과 똑같다고 보고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민주당은 이명박과는 다른 개혁정당으로 알려져 있고 진보진영의 단체들은 모종의 좌파로 알려져 있다.
물론 ‘민주정부’ 10년을 거치면서 민주당에 대한 기대가 많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차악’ 논리 속에 다시 민주당에 대한 환상이 살아나고 있다. 촛불 이후 급진화한 청년들도 곧바로 무슨 혁명적 사회주의에 대한 지지로 옮아온 것이 아니다.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대체로 민주당 좌파나 급진적 개혁주의 정도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올해 언론악법 등 MB악법에 맞선 투쟁에서 다수 대중은 민주당이 미덥진 않지만 이명박에 맞서 민주당까지 포함한 광범한 연대가 이뤄지길 기대했다. 이런 상황에서 혁명가들은 대중 속에서 활동할 줄 알아야 하고 불가피하다면 이를 위해 부르주아 정당과도 일시적으로 타협할 수 있다는 게 레닌의 강조점이었다.
“[부르주아 자유주의나 개혁주의] ‘지도자들’ … 로부터 오는 어려움들, 곧 고통, 속임수, 모욕, 박해 등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대중이 있는 곳에서 작업해야만 한다. … 공산주의자들의 참된 과제는 후진 분자들을 설득하고, 후진 분자들 사이에서 작업할 줄 아는 것이지, 억지로 고안해 낸 유치한 ‘좌익’슬로건들로 그들을 둘러막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말은 마치, 민주당과 일시적ㆍ전술적 제휴조차 할 수 없다며 대중과 자신들 사이를 둘러막은 후 ‘노동자 생산 통제’, ‘노동자 정부 구성’을 외쳐대는 사노련을 겨냥하고 한 말처럼 들릴 정도다. 이런 종파적 태도는 역설적으로 민주당에게 반이명박 투쟁의 주도권을 넘겨주는 결과를 낳는다.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가 주도한다는 이유로 어떤 투쟁에 “관여하기를 꺼리는 자들은 사실상 자유주의자들로 하여금 지도적 지위를 점하게 하고 … 정치투쟁의 헤게모니를 넘겨주고 있는 것”(≪레닌저작선≫)이다.
헤게모니
실제로 올해 상반기 정치 투쟁의 정점이었던 6.10 대회가 그것을 보여 줬다. 당시
그런데 사노련 등 종파적 좌파들은 민주당이 공동 주최한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6.10 대회에 개입하는 것과 쌍용차 노동자들이 이 집회에 참가해 연대를 호소하는 것 모두를 마뜩찮아 했다. 반면 민주당을 추수하던 개혁주의 지도자들 또한 6.10 대회에 급진좌파들이 개입하거나 쌍용차 투쟁의 요구들이 결합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결국 개혁주의자들의 민주당 추수와 종파적 급진좌파들의 정치적 무능력 덕분에 민주당은 6.10 대회 후 투쟁의 열기를 식히며 별 저항 없이 국회로 복귀했고, 이어서 이명박 정부는 언론악법 날치기와 쌍용차 살인진압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레닌은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어떠한 타협도 거부하는 좌파들에게 이런 따끔한 지적을 한다.
“당신들은 스스로를 ‘겁나게 혁명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당신들은 노동운동 내의 부르조아지의 영향력에 맞선 투쟁에서 비롯하는 비교적 사소한 어려움조차 두려워하고 있다.”
당장 9월 26일에도 용산참사 해결을 위해 야4당(민주당, 창조한국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과 용산범대위가 공동 주최하는 집회가 있을 예정이다. 용산범대위 소속 단체인 사노련은 이 집회에도 불참할 것인가? 이 집회 개최를 합의한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준비모임 등 다른 좌파 단체들도 기회주의라고 비난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