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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4회 [맑스꼬뮤날레] 원고. 거의 초고 상태의 따끈따끈한 글. 언제 퇴고할지는 모른다.
촛불-프롤레타리아-다중
1. 촛불은 누구인가? 이 질문에는 선재된 대답과 더불어 하나의 부정이 있다. 대답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날카롭게 도드라져 보이는 이 ‘부정성’을 먼저 밝게 톺아 봐야 하겠다.
우리는 어째서 ‘촛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 ‘촛불은 누구인가?’라고 묻는 것일까? 그것은 일견 너무나 당연하다. 촛불을 든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스스로를 ‘아버지’, ‘어머니’, ‘학생’, ‘소비자’, ‘애국자’, ‘노동자’라고 부른다. 이들은 이런 ‘사람들’이고 그래서 ‘무엇’이라고 묻는 대신 ‘누구’(Qui)라고 묻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바로 이것이 중요하다. 즉 이 물음에는 나와 집단을 가르는 반성적 매개로서의 ‘지성’보다 반응과 수용(receptivity, 감수성)의 새로운 감성이 존재한다는 확신이 담겨 있다. 왜냐하면 이 ‘누구’라는 질문 속에는 주체와 대상을 이분화하고 대상을 주체 아래(sub)에 던져 놓는(ject) 폭력적 근대성에 대한 거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라고 묻는 자(지식인, 학자, 토론자, 발제자)는 에누리 없이 ‘누구’에 대해 답을 준비하는 또 다른 자와 다르지 않다. 언표의 주체와 언표 행위의 주체가 다르지 않은 상황, 해석적 주체와 해석 상황이 겹치는 이 새로운 감수성의 출현은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자면 해석이 “앞과 뒤로”(réegressif et prospectifs) 연관되는 순환적 관계에 처해 있는 것이다.1
촛불은 인위적(artificial)이다. 그것은 자연발생적이라고 볼 수 없다. 촛불은 자연의 일방향으로서의 죽음의 계열을 더 앞으로 추동하거나(그래서 그 반응을 파쇼화하여 내파(impulsion)하거나), 그와는 다른 방향으로 양태를 다기화하여 예측불가능한 춤으로 승화시켰다(축제로서의 집회, 경찰들에게 던져졌던 농담들). 그러므로 촛불은 예술(art)이며 기술(ars)이며 인위적(artificial)이다. 정치가 공적 담론장에서 하나의 예술이라면 촛불은 공적이면서(광장) 동시에 사적인(가정과 개별적 감수성) 담론장에서의 예술적 기예라고 할 수 있다. 촛불이 전복했던 그 모든 고전적 또는 근대적 형상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담론장의 분열에 다리를 놓는 작업, 사적 담론장의 노예이길 거부하는 주부들(82 쿡),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수동적 호명기제이기를 거부한 학생들(10대연합)이 광장으로 나왔고, 전통적 집회주체들(전대협 동우회와 시민단체들)이 뒤로 빠지거나, 사적 담론장인 가정에까지 가서 촛불을 밝혔다(재택 촛불, 광우병 반대 현수막). 그러나 먼저 물어 보자. 이것은 정치인가? 그리고 다음 질문이 제출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유령인가? 또한 이것은 프롤레타리아인가? 대답이 부정적일수록 전망은 더 모호한 지점을 향해 열릴 것이다. 그렇다고 이 모호한 지대(zone obscure: Deleuze)가 공허하다고 말해서는 절대 안 된다. 거기에는 분명 들끓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강렬한 무언가가 있다. 지금도 우리는 그것을 느낀다.
2. 이것은 정치인가? 사람들은 말한다. 자신들은 ‘정치를 혐오한다’고, 아니면 ‘이제 정치적이 되었다’고. 전자는 정치적 행위의 모든 방면으로 부정성을 실어 나른다. 후자는 최소한 부정성을 거두고 소극적인 수준에서부터 적극적인 수준으로 자신의 감수성을 부르주아 정치와 광장 정치에 개방한다. 이 둘은 이렇게 차이가 나지만 또 한편으로 동일한 구조 속에서 나오는 목소리라는 데 공통성(communality)이 있다. 그 구조는 부르주아 정치라고 불리워진다. 이들이 혐오하면서 동시에 관심을 가지는(결과적으로 혐오스러운) 정치(Politic)2는 광장의 절규가 아니라 의회의 정치, 다시 말해 대의정치인 것이다. 대의정치의 한계라는 의제는 이런 경우 매우 합당해서 두 말할 필요조차 없다.3
광장 내부에서도 이 정치에 대한 혐오가 드러났다.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다함께’ 방송차량에 대한 거부, 깃발에 대한 거부. 나중에 드러나지만 중요한 것은 ‘다함께’가 아니라, ‘앞 장 선’ 방송 차량이고 깃발들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광장의 정치‘들’은 자신의 정당성을 지키기 위해 전위들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하여간 ‘대중은 전위를 경외한다’라는 오래된 볼세비키적 경구는 전위에 대한 대중의 오래된 불신을 전위 자신들도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이들은 정치신문(맑스의 [라인신문], 레닌의 [이스크라])이 필요했으며, 여기에 조직적 역량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4
그러나 2008-9년 서울의 광장에서는 이 신문들은 방석 역할 정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무엇보다 전위들이 더 이상 전위일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어떤 전위 인자의 과학적 예측력도 촛불의 형상을 그 명민한 두뇌 안에 그려내지 못했다는 것, 이 기가 막힌 전위의 무능력이 촛불들로 하여금 그들의 퇴장을 명령하게 한 것이다. ‘예측’과 ‘발 빠름’이 없는데 앞서(avan-) 지키는 것(-guard)이 가능한가? 웃음거리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촛불이 켜진 뒤에야 날개짓 했던 올빼미들이 그 둔한 몸을 이끌고 독수리처럼 날려고 했다는 것이 그들이 퇴출된 이유였다는 걸 알 필요가 있다.5결론적으로 촛불은 부르주아 정치와 더불어 볼세비키 정치도 거부한 것이다
3. 문제는 그 다음이다. 부르주아 정치와 전위들이 빠진 자리에 촛불은 어떤 형상을 하고 서 있는가? 프롤레타리아? 정치(politic)? 아니면 온전히 프롤레타리아 정치? 촛불이 프롤레타리아였던 적이 있었던가? 촛불은 대중(mass)인가? 다중(multitude)인가? 우리는 지금 헤묵은 ‘주체론 논쟁’의 영역에 진입하는 중이다.
가장 손쉬운 대답은 이것이다. 그래도 시작은 여기서 해야 한다. 첫째, 촛불은 중간계급이다. 둘째, 촛불은 근대적 형상의 민중(people)도 아니고, 경멸적 의미의 군중이나 어중이떠중이(룸펜)도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주체성’의 탄생이다. 셋째, 촛불은 진지구적 세계화와 지구제국에 대항하는 다중(multitude)의 한 흐름이다. 그리고 네 번째 대답이 가능하다. 즉 촛불은 맑스의 1848년에 유령처럼 떠돌던 그 공산주의적 주체성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바로 그것이 두 세기를 경과하면서 가면을 바꿔 쓴 누승적 역량이며 그것의 회귀이다.6
첫째 대답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많은 지식인들이 촛불은 ‘중간계급 운동’이며 그러한 계급적 한계에 갇혀 있으며, 그 의제가 지속적, 집중적이지 못하다는 것에 특징이 있다고 말했으며, 지금도 그런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촛불의 최초 의제는 ‘교육’이었고 그 다음은 ‘검역주권’(광우병 소고기 수입 금지, “협상무효, 고시철회”)이었으며, 그리고서 “정책 반대”(“명박퇴진”)였으고, 투쟁이 진행될수록 반정부 투쟁적 성격이 전면에 나섰다.7여기 어디에 중간계급적 특징이 있다는 것일까? 참여한 촛불들의 계급적 기반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중간계급’이라는 계급론적 바운더리 내에서는 그 지평이 다 잡히지 않는다는 점을 말해야 한다. 거기에는 노동계급(전통적인 산업프롤레타리아를 포함하여)도 있었으며, 주부와 학생들, 노인들도 있었다. 이런 방향에서 계급론이라는 정치학적 범주를 적용하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촛불의 의제가 중간계급적이라는 것인가? 이 방향에서는 의제가 가지고 있는 표면적 모양새에 천착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을 말해야 한다. 교육이든 검역주권이든 정책반대든 간에 촛불들의 주장과 요구는 모호하거나 산발적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중간계급적 요구의 특징인 ‘이권’에 속박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권리’와 ‘존엄’, ‘생명’에 관한 것이었고, 이러한 가치들을 소외시키는 정책과 정권에 대한 반대투쟁이며, 따라서 그것은 ‘해방 투쟁’이다.8
계급적 기반도, 의제의 의미도 중간계급적이지 않다면, 전술적 차원에서 촛불이 중간계급적이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특히 투쟁 기간 동안 현장을 떠돌던 ‘폭력/비폭력’ 공방은 이러한 성격규정에 결정적인 단서를 던져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사안은 매우 섬세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 이 주장들은 여러 갈래의 계열들을 거느린 담론 상황을 연출한다.
일단 어떤 경우에서든 폭력은 안 된다는 주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겠다. 그것은 투쟁이 잠재성 차원에서 도사리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터져 나오지 못한 활력이 출구를 찾아 숨을 몰아쉴 때야말로 폭력의 새파란 본성이 더욱 선명하게 부각된다. 활력(puissance)을 검열하는 권력(pouvoir)은 필연적으로 ‘지하의 격정’을 유발하기 때문이며, 억압된 폭력은 반드시 귀환하기 때문이다(Deleuze, Lacan). 그렇다면 어떤 폭력인가? 여기서 폭력은 해석적 지평의 확산과정을 거쳐야 한다. 즉 ‘앞으로 뒤로’ 들고 나야 하는 것이다.
권력의 폭력이 경찰력을 통해 대리되는 것과는 달리 촛불의 폭력은 직접적이다. 무엇보다 권력의 폭력은 촛불들의 경제적 잉여가치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기생적이며, 결국 그들을 움직이는 동력은 숙주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그러나 물리적인 강도에 있어서는 권력의 폭력이 월등하다. 여기에서 바로 ‘무장’의 요청이 나온다. “다 알겠다. 하지만 현장에서 그저 맞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는냐?”라는 질문은 너무나 선명하고, 절실한 실용적 요청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이제 무장이 이루어지지만, 여기에는 단서가 달린다. ‘자구책’으로서의 폭력, 즉 ‘정당방위’에만 무장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촛불들은 플라스틱 방패를 제작해서 들고 다녔다. 하지만 그런 보잘 것 없는 무장은 현장에서 전시효과조차 내지 못하는 무용지물임이 곧 밝혀졌다. 여기에 또 한 계열의 문제가 발생한다. 도대체 논의 과정에서 말한 그 자구책이라는 것도 현장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이때부터 대오 이탈이 발생하면서 좀 더 전투적인 부위와 그렇지 않은 부위 간의 조직적 스펙트럼이 뚜렷이 형성되는데, 이 과정에는 반드시 노선투쟁이 겹친다(대책위와 안티MB, 연석회의, 전대협). 그렇다 하더라도 적극적인 폭력 투쟁이 필연적으로 급진적 부위에서 발생한다는 사고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현장에서의 투석전이나 거점 점거(명동 투석전, 하이서울 페스티발 무대 점거)가 폭력 투쟁 선도 부위의 주도로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투쟁의 물리적 폭력성이 현실화 될수록 대오에 변화가 생긴다. 다시 말해 소극적 부위의 투쟁에 대한 회의가 나타나고, 이들의 이탈이 가시화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잠깐 살펴보자. 이러한 대오이탈과정이 과연 비가역적인가?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과연 주체역량의 훼손이나 감소를 증명하는가? 두 질문 모두 ‘아니다’로 답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후의 사태들(제2, 제3의 촛불들)이 ‘아니다’라는 대답에 실물적인 근거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쟁의 폭력성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제반 상황들의 정련을 통해 투쟁이 잠재성의 차원에서 지속되면서 더욱 더 밀도 있게 성장한다는 것이다.9
그런데 나는 이 두 질문에 대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동하는 기제가 ‘촛불중간계급론’의 사유를 지탱하는 철학적 패러다임을 형성한다고 생각한다.
목적론이 그것이다. 이 사고는 고전적인 진보주의의 끈질긴 관성 하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세계는 여러 단계의 사회구성체를 거치면서 그 최후의 부르주아적 형태인 자본주의로 진화하였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 자신의 주체적 역량의 발휘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에는 상당한 목적론적 낙관주의가 숨어 있다. 첫째로 세계의 역사적 경로가 필연적인 전진형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노동계급의 주체 역량에 대한 믿음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역사의 전진은 노동계급 투쟁 승리의 역사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이 목적론 패러다임은 물론 진화론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철학적으로 살펴보았을 때에도 상당히 협소한 근거 위에 세워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목적론이 도달하는 지점은 다름 아닌 ‘천년왕국’이다. 그리고 그 과정 전체는 가능태로부터 현실태로 가는 선형적 경로와 일정 안에 놓여 진다. 아리스토텔레스적 전망 안에서 목적론은 신학적 메타포를 구사하면서 운동의 원초적 촉발에서 종말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지속을 단지 물리적 흐름으로 축소시키는 효과를 달성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실은 물리적 과정의 총계의 축적일 뿐 아니라, 비물질적 과정, 즉 관계와 비실체적 항들 간의 조우와 공명을 통해서도 움직여진다고 말할 수 있다.
정당하게도 촛불은 이러한 조우와 공명의 과정을 증명한다. 촛불에게는 사전모의훈련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목적은 운동이 변해 가면서 함께 변화했으며, 대오의 움직임은 타격지점(청와대)과 거점확보(청계광장, 시청광장, 명동 등)를 구분하지 않았으며, 관계는 물리적으로 정해진 흐름(조직적 질서)을 따라 형성되기 보다, 그때그때마다 휴대폰과 인터넷을 이용하여 형성되었다. 오히려 이런 비물질적 매개들이야말로 투쟁의 중요한 계기로 작동하였다. 따라서 촛불의 주체역량은 감소하지도 않으며 대오이탈이라는 현상적 모습이 비가역적인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촛불-주체’라는 형상은 어떤 단일하고 구조화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고, 오로지 관계성의 역량과 과정의 진퇴 하에서 그것의 동력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여기서 관계성은 상대방(동지들, 심지어 적들까지) 또는 상대항(투쟁의 도구들, 피켓, 장소들, 구호들)을 소외시키면서 서로를 만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촛불이라는 거대한 투쟁-기계 안에 동등한 흐름으로 서로를 인정하면서 시작된다. 이렇게 되었을 때만이 투쟁은 대오의 양적 팽창과 감소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존엄을 유지하면서 영구혁명(또는 지속투쟁)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제2, 제3의 촛불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관계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고전적 목적론이 결코 선취할 수 없는 관점을 투쟁 일정의 도약 가운데에서 촛불 스스로가 현실화시킨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과연 촛불을 그저 중간계급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촛불에는 협소한 중간계급론이 점유하기에는 벅찬 지평이 분명히 존재한다. 물론 화석화된 계급론은 이러한 지평을 다 포괄하지 못한다.10
촛불을 중간계급이라는 관점으로 재단하는 폭력을 행사하기보다, ‘프롤레타리아’라는 전통적 개념을 재구성해 보는 것이 더 낫다.11
4. 다음으로 두 번째, 도대체 ‘새로운 주체성’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민중이라든지 군중이라는 근대 정치철학적 주체성으로부터 한참 멀리 떨어져 있다는 대답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방면에서 이런 식의 대답은 운동에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는 소극적 규정에 그치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는 촛불을 통해 주체성의 형상에 대해 좀 더 근원적인 비판을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촛불-주체성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상상하는 주체성의 도식과는 완전히 다른 형상, 괴물의 도래를 예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더 이상 초기 산업자본 시기의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다. 이 주체성은 스스로 착취의 대상이기를 거부하고 있으며, ‘착취→임금’이라는 임노동 관계의 기본 일방향(bon sense)을 역전시키면서 ‘임금’에 대해 수동적 자세를 버리고, 사회적 존엄에 대한 당연한 결과로서 화폐를 자기 아래에 종속시키기를 원한다. 이들의 요구는 궁극적으로 화폐관계의 폐절을 향할 것이다. 이들은 부르주아 기업과 국가의 자기 구제책으로 번번히 시도되는 인위적 인플레이션과 내핍정책의 양 극단에 내 몰리면서 스스로의 노동가치를 평가절하 당하기를 바라지 않으며, 오히려 이러한 기업 간 경쟁의 폭력적 분위기에서 자유롭기를 원한다. 촛불-주체성은 자신의 몸에 기생하는 국가 권력에다 대고 ‘헌법 1조’를 들이 대며 자신의 제헌적 권능을 확인시키고 이들 기생 권력으로부터 그동안의 모든 영양 공급에 대한 댓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생존재가 이제는 숙주의 관대함을 비웃을 정도로 자신의 존재기반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도 이들은 외생적 판단에 길들여지기보다 스스로 이론을 형성하고, 경험과의 피드백을 통해 철학(공동체주의), 경구(함께 살자, 대한민국), 행동 지침(반MB 전선)을 발명해 낸다. 그 모든 전위적 이론들을 비웃으며 추상의 그물(궁극적으로 지식-권력 기계의 포획망인)을 빠져 나가면서 자신을 시물라크르화한다. 실체 없는 주체, 대상화되어 종속되지 않는 이 주체는 그래서 ‘주체’(subject)가 아니다. hypokeimenon도 ousia도 될 수 없는 이 ‘천민’들, 소피스트들, 반소크라테스, counter-idea, 체계의 전복자들, 히드라 ... 이들은 하나의 명사로 지칭되지 않는다. 다만 인터넷 생중계의 화면 안에 어른거리며, 권력의 심장부에 당도한 괴기한 ‘아침이슬’ 소리, 그 유령일 뿐이다.12
다시 한 번 물어 보자. 이들을 ‘촛불-주체’라고 부르는 게 가능한가? ‘주체’라는 그 빈약한 개념의 그릇에 이들을 담아내는 게 가능한가? 맑스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가 프롤레타리아라는 개념을 재정의하고 그것에 변혁의 전망을 담아 냈을 때, 실재로 프롤레타리아가 ‘주체’였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촛불도 마찬가지다. 1848년에 ‘공산주의-유령-프롤레타리아’가 가능했다면, 지금은 ‘X-괴물-촛불’이 가능한 건 아닐까?
5. 세 번째 대답에 대해 살펴보자. 촛불을 든 사람, 즉 캔들러(candler)는 다중(multitude)이라고 불리워진다. 그리고 그럴 수 있다. 촛불을 ‘중간계급’이라 칭하는 것보다 정확하다. 왜냐하면 촛불의 특이성과 다중의 특이성이 언제나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13 그러나 촛불은 차라리 민중의 부정적 상으로서 군중에 가까울 때도 많다. 선두에 선 촛불들이 물대포를 맞으며 연좌하고 버틸 때 대부분의 촛불들은 비 맞은 개미떼처럼 물러났다. 선두의 촛불들에 대한 어떤 동지애도 그 순간에는 없었다. 두려움, 동요, 변덕, 이기심 ... 이와 같은 것들이 촛불들에게는 있다. 그리고 그런 경향이 매우 강하다. 여기, 이 지점이 바로 정치‘들’이 실패하는 지점이다. 이때 정치는 예술로 승격되는 것이 아니라, 플라톤적 의미의 ‘정의’로 격하된다. 그 모든 부르주아적 공격들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수행된다는 것을 기억해 보자. 실패한 정치‘들’은 자신의 예술가적 인격성을 고스란히 부르주아들에게 번제하고, 스스로 대문자 정치 안으로 해소되길 기꺼이 바란다. 외디푸스 감옥에 다시 갇힌 촛불들, 이들에게 ‘프롤레타리아’라는 영광된 이름이 가당키나 한 것일까?14
이들에게 어떤 공통성(communality)이 있는가? 이들은 기껏 세계에 내던져져 불안(Angst)에 떠는 ‘그들’(das Man: Heidegger)일 뿐이다.15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니다. ‘그들’로서의 촛불은 동시에 역사적 프롤레타리아보다 더 위대한 공통성을 향유한다. 앞서 말한 이들의 소통, 공명, 창조성 등을 생각해 보면 그렇다. 역사적 프롤레타리아에게 이런 공통성의 질감이 존재했던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촛불이 향유하는 공통성은 정보사회 자본주의의 유산이 고스란히 발휘되는 시점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프롤레타리아는 1968년 부터 1990년대의 투쟁순환 국면 동안 비물질적 노동의 성과를 투쟁의 활력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16
불안과 위대함이 공존하는 촛불은 그래서 ‘어떤 활력’(puissance-aliquid)이며, 그들이 가진 감수성의 필연적 운명에 따라 부침하지만, 또한 그들이 가진 코나투스(conatus)의 운명에 의해 공통성의 기쁨, ‘억누를 수 없는 코뮤니스트의 웃음’(Negri)을 향유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아니, 이들은 존재(einai)가 아니다. 이들은 삶의 부정성까지 긍정적으로 포섭하는 운동이며, 이 역동적 운동 속에서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는 투쟁의 반환점이기 때문이다. 실체를 거부하는 운동인 이 촛불들은 어떤 이름 붙여진 것이 아니다. 이들은 다중이라기보다 다중적이며, 프롤레타리아라기보다 프롤레타리아적이며, 신이라기 보다 신적이다.17고귀하며 야만적인 어떤 것, 그것은 ‘촛불’이라기 보다 오히려 정확히 말하면, 촛불-되기이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이 운동은 통합과 전체화의 운동이 아니라, ..., a, b, c, ... 촛불 ... x, y, z ... 이렇게 이어지는 이접 항들의 운동이다.
6. 네 번째 대답, 즉 촛불은 맑스의 1848년에 등장한 유령의 누승적 역량이며 그것의 회귀라는 대답을 살펴 보자. 이는 프롤레타리아의 재구성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전략 안에서 촛불은 온전한 주체성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이는 아마 두 번째 대답의 보완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대답에는 그것을 주체성이라는 ‘온전함’을 만족시키지 않는 계획적인 방해가 존재한다. 이 방해는 앞서 살펴 본 면면에서 알 수 있듯이 촛불 자체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다.
먼저 1848년의 프롤레타리아는 그 실체적 면모가 갖추어지기 전이었다. 맑스는 그것을 호명하고, 그 힘을 ‘불러낸’ 것이지, 자족적인 하나의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를 ‘명명한’ 것이 아니다.18 그렇다면 촛불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이긴(프롤레타리아적이긴) 하지만 진보주의에서 구상하는 그런 방식의 강고한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다. 촛불은 다중으로 불리워질 수 있지만, 다중이 아니고 프롤레타리아가 아니지만 프롤레타리아적이다. 촛불은 정치적 차원에서 정치‘들’의 관계성이며, 주체성의 차원에서 ‘-되기’의 운동일 것이다.
7. 100만 촛불, 이 숫자는 촛불의 양적 팽창을 표현하는 것만이 아니다. 이 숫자에는 통계적 추정을 넘쳐나는 예측불가능하고, 측정 불가능한 특이점이 존재한다. 그래서 촛불은 멈춰 있거나 과거에 고착되지 않고, 항상 도래하는 것인 바, 이는 불안과 두려움의 분위기 속에서 부르주아지의 진지를 배회하는 괴물의 모습을 띄고 있기도 하지만, 프롤레타리아 편에서는 투쟁과 축제의 모습으로 광장을 점거하는 것이다.
대문자 정치를 탈주하는 정치‘들’과 주체성의 경계를 비웃으며 계급 간격을 뛰어 넘어 공명하는 ‘-되기’는 때로 ‘정의’(dikaiosyne) 안에서 활력이 선분화되고 벡터가 영점으로 수렴되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소통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운동은 진행 중이다. 빛의 속도로 주파하는 이 활력들은 결코 일방향으로 달리지 않으며, 정치적 시공간의 휜 면을 따라 가장 빠른 길을 달린다. 우리는 촛불을 대상화하고 스스로를 주체화할 수 없다. 정치적 시공간의 속도는 그러한 매개 전략을 허용하지 않는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모든 것이 직접적이다. 우리는 촛불을 들고 나가야 하며, 정신력을 투여하면서 정세를 밀어내야 한다. 그 순간에, 광장에서-지금/여기(hic et nunc) 전술이 결정된다. 내 몸의 클리나멘과 저 몸의 클리나멘이 만나 조우하고 교전하는 광장에서 정치‘들’의 관계성이 들끓는다.
촛불 시대의 레닌은 외치지 않고 노래한다. - REDBRIG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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